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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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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시아인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라고 당당히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될까?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동아시아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서아시아에서 부터 시작하여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하나로 묶는 '아시아'라는 개념이 과연 타당할까? 이러한 의문을 가질 정도로 아시아라는 개념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광대한 지역이다. 그리고 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조차도 타지역의 아시아인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아시아네트워크)'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1. 그것은 거짓말일까?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라는 얇은 책을 읽는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책이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기존 나의 지식을 무참히 짓밟는 주장들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는 '간디는 성자인가?'라는 질문이다. '간디 자서전'을 읽은 나로서는 간디는 당연히 성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지옥에 내려간 사람이 "발가벗은 마하트마 간디와 마릴린 먼로가 정을 통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와, 마하트마는 행운이야. 좋은 일 한 걸 되돌려받는 모양인데, 바로 저거야. 내가 원하는 벌도...."  그러자 천사가 귀띔했다. "저건 간디가 벌받는 게 아니라 마릴린 먼로가 벌받는 거야."-16쪽

 

 '유명한 인도 우스개'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 농담을 읽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위대한 성자 간디를 간디인들이 이러한 농담소재로 삼을 수 있는가? 간디를 비판하는 자들은 무슨 근거로 간디를 비판할까?

  간디를 비판하는 자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간디에게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혁할 조언을 구하러온 노동자에게 간디는 협력과 조정을 권한다.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적극적 투쟁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간디의 조언을 따른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열악해졌고, 간디를 따르지 않은 노동자들의 생활은 개선되었다. 노동문제 뿐만 아니다. 간디는 매혹적인 젊은 아가씨를 옆에 재우면서 어떻게 자제했는지를 장황하게 묘사하는 일로 '금욕주의'를 설파했다. 그런데, 그 실험 대상이 된 여성의 인권은 짓밟은 꼴이 되었다. 간디는 종교의 벽도 넘지 못했다.자신의 아들이 이슬람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간디의 투쟁 방식이 비폭력적이었다. 이것은 영국 자본가의 눈에 과격한 노동투쟁을 하는 자들에 비해서 간디가 성자로 보일 수도 있다. 특정 인물을 영웅시하다보니, 그 인물의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간디가 비록 흠결이 있지만, 그의 전체적인 삶을 살펴볼때 그는 경멸의 대상이 될 정도의 인물은 아니다. 진보진영에서 과도하게 도덕성을 강조하여 탁월한 진보의 리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간디는 완벽한 성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를 존경하지 못할 정도로 큰 잘못을 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도 인간이니까?

 두번째 '인권 투사 코라손'은 과연 인권투사였는가?라는 질문이다. 1986년과 2001년 피플파워의 주인공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을 우리는 필리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과연 인권투사였는가라는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까? 그녀가 집권하고 나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성과가 미미했다. 군부세력의 쿠데타 위협속에서 군부세력과 타협하며 적극적인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이것은 그녀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힌 결과일 뿐이지, 이를 두고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987년 '멘디올라 학살' 사건은 그녀를 더 이상 변호할 수 없었다. 토지개혁을 외치던 농부가 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보기만 했던 대통령'을 변호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이라 자평하는 포괄적 토지개혁법이 무력화 되기도 했다. 자신의 일가친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지주들이 빠져나갈 구멍들을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피플 파워"를 통해서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지 못한 무능한 아키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할까? 지금의 문재인 정권도 '촛불 혁명'을 통해서 집권했다. '촛불 혁명'의 힘을 이용해서 적폐세력을 몰아내는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권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촛불 혁명'을 주도했던 국민들은 힘이 되어주기도 해야겠지만,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매서운 비판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실패를 우리의 반면 교사로 삼아야한다.
 세번째. ''킬링 필드'의 전설을 끊는다.'이다. 킬링필드는 크메르루주에 의해서 캄보디아에서 300만명이 학살당한 사건이라 기억한다. "'킬링필드'의 전설"이라는 제목 자체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킬링필드'는 거짓이라는 말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킬링필드는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 킬링필드는 1969년 부터 1973년까지로 베트남전쟁 시기에 미국이 캄보디아를 폭격하면서 40만~80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다. 2차 킬링필드는 1975년 부터 1979년까지로, 크메르루즈를 이끄는 폴 포트에 의해서 처형 10만~30만명에다가 기아와 질병, 중노동으로 사망한 이들을 합쳐 최대 약 80만~100만명이 사망했다. 1차와 2차를 합쳐 10년 동안 약 150만~160만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킬링필드는 크메르루즈에 의해서 이뤄진 학살만을 떠올린다. 강대국 미국에 의해서 이뤄진 죽음은 애써 외면한다. 국제사회가 학살자 처벌을 주장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만 호출하여 재판하려한다. 강자의 학살에는 눈감고, 약자의 학살에는 단호한 것이 정의란 말인가? 강자든 약자든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면 모두 재판대에 올라야하지 않는가?

 이책을 읽으며 가장 읽는 시간이 많이 걸렸던 부분이다. 나의 고정관념을 수정해야했고,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는 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시아'에 대해서 나는 너무도 무지했다.

 

2. 혁명의 시련과 고통의 아시아.

  우리에게 5월은 민주화의 시기이자, 고통의 시기이다. 5.18 민주화 운동부터 시작하여, 5.16 군사쿠데타와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5월에 일어났다. 5월은 잔인한 계절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태국에도 5월 혁명이 있었으며, 필리핀에도 5월 항쟁이 있었고, 인도네시아의 5월도 뜨거웠다. 그러나 이들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다. 민주화를 위한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 구질서를 말끔히 제거하지 못했다. 마치 5.18민주화 운동 이후에 신군부세력의 폭압정치가 이어졌듯이 그들도 계속 혁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눌 스님이 '돈오점수'를 말하지 않았던가! 돈오! 깨달았다면, 점수! 수행해야한다. 한번의 혁명으로 시대가 바뀌지 않는다. '시민의 힘이 조직되지 않는다면 혁명은 납치 당한다.'라는 유발하라리의 말처럼, 시민은 조직되어 계속 혁명을 이어가야한다.

  이들 나라들이 혁명의 첫발을 이뤘다면, 동티모르 대통령 사나나 구스마오는 혁명의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구스마오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의 기쁨도 잠시, 인도네시아와의 독립투쟁을 해야만했다. 많은 동지와 동포들이 죽어갔고, 그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감옥에 갖혀 혹독한 심문을 받아야만했다. 국제사회의 관심으로 독립의 기쁨을 느낀 것도 잠시, 인도네시아에 매수당한 반독립파들이 동족을 죽이는 현실을 보며 울분을 토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그들이 되돌아와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우리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게릴라 동지들이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빌 것임을 분명히 약속했다."-251쪽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없다. 진실은 승리한다." 촛불 집회 때 불렸던 노래 가사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진실이 승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직시하면 많은 슬픔이 밀려온다. 인도네시아에 빌붙어 동족을 죽였던 반독립파를 끌어 안아야만 하는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의 심정은 얼마나 착잡할까? 진실이 힘을 갖지 못한다면,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구스마오가 독립과 혁명의 기쁨을 누렸다면, 그 기쁨을 위해서 달려가는 두 사나이가 있다. 한명은 민주화를 위해서 밀림으로 간 의사 나잉옹이다. 다른 한사람은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 야신이다. 버마에서 안락한 의사생활을 할 수도 있었던 나잉옹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밀림으로 들어가 게릴라가 되었다. 승리가 보이지 않는 투쟁을 이어가며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는 인간 나잉옹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국경지대의 소수민족과 유대를 지켜가며 자신들의 진로를 모색하는 모습은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는 독립투사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나잉옹은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타국의 민주화를 지원해줄 정도의 성숙된 모습을 가지는 못했다. 그것이 현실이다.

 아흐메드 야신! 그는 나잉옹 처럼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내야했다. 게다가 달리기를 하다 쓰러져 불구의 몸이 되었다. 이러한 나약한 몸의 소유자가 강력한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1948년 "대학살"을 겪고, 고향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인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지 고민한다. 술과 마약, 섹스로 펠레스타인 젊은 이들을 유혹하여 정보를 빼내는 이스라엘을 고발하는 책을 쓰고, 무장단체 하마스를 조직한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잡혀 자신의 눈 앞에서 아들이 고문당하고, 자신의 육체가 부서져도 그는 이스라엘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몸도 망가졌다. 그러면서 한국의 독자에게 말한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시절을 돌아보자. 한국 시민들은 자신들의 순결한 독립투쟁의 역사를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들의 난동으로 불러왔던가?"-264쪽

 

  아흐메드 야신의 이말에 나는 숨이 멈졌다. 자신의 삶의 터젼을 잃어버린 이들의 절규가 느껴졌다. 야신은 "과연 누가 테러리스트고 누가 희생자였던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답해야한다.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강자의 폭력인 전쟁, 약자의 폭력인 테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악한가? 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인간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인권을 유린한다면 그 세력이 나쁜 것이 아닐까? 나치의 박해를 경험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면 분쟁의 역사는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너무 큰 희망사항일까?

  아시아는 아파하고 있다. 한번의 혁명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계속 혁명을 위해서, 혹은 독립과 혁명을 위해서 부단히 몸부림치고 있다. 아파서 울고 있는 아시아에 너무도 무지했던 우리는 이제 관심을 갖아야하지 않을까?

 

3. 아시아의 여성과 성

미투운동이 한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억눌렸던 여성들이 이제 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의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당당히 밖으로 나온 것일까?

  여성의 지위를 말할때 그 사회의 대통령 혹은 수상이 여성출신이 있는가?를 물어본다. 이 질문에 아시아는 당당히 있다고 말한다. 여성을 억압한다고 평가 받아온 이슬람 사회에서도 여성 대통령과 총리가 선출되었으며, 스리랑카와 필리핀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활약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여성의 인권은 높지 않다. 왜? 일까? 문제는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가보다 여성이 어떠한 정치를 하는가에 있다. 치마를 입은 남성이 정치를 한다면 현실정치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여성다운 정치를 하지는 못했다. 스리랑카의 쿠마라퉁가는 남편이 암살된 후, 가정주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대통령이 된 그녀는 타밀 호랑이와 전쟁을 확대한다. 경제는 피폐해지고 결국, 그녀도 몰락한다.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여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했으며, 남성의 마초적인 정책을 흉내내려했다. 이는 스리랑카에서만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다른 나라의 여성정치인에게서 나타난다. 자신의 능력으로 최고 지위에 올라가지 않고, 가문이나 혈통의 후광에 기대어 최고 위치에 올라가다 보니, 남성 정치를 흉내낼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아시아의 여성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하이힐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이스라엘군을 향해서 돌을 던지는"여성이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이다. 독립만 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에 안주가히 보다는 지금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 용감히 현실에 뛰어드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2천개의 율법"으로 여성을 옥죄고 있는 레바논의 경우를 보면서, 여성의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레바논 여성들은 최소한 교육에서는 외형상 성평등을 이뤘으니 말이다.

  "오럴 섹스"를 하면 종신형에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그것도 강소국 싱가포르에서 말이다. 아시아에서 '성'은 억압의 대상이다. 태국의 경우, 성산업을 황색 저널리즘으로 이용할 뿐, 성노동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성애 교범인 카마수트라를 남긴 인도 역시 성을 금기시한다. 서구에 비해서 아시아는 성에 대해서 억압적이고 수줍어한다. 물론, 성진국 일본은 예외이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억압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섹스를 장려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치게 억압할 필요도 없다. 건전한 성문화는 사회를 밝게 만들테니 말이다.

 

 

4. 민족주의는 악마인가?

 민족주의를 악마화 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민족주의를 말하면, 히틀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1민족 1국가의 역사가 깊지 않은 서구와 남아시아 사람들에게 민족은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민족을 순수 혈통과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바라보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악마일까?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거짓말을 진실로 믿기 때문이라 말한다. '종교'와 '민족'이 사피엔스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민족을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규정한다면, 민족주의에 쏟아지는 비난은 달라질 것이다. 또한 아직 민족을 만들지 못한 국가의 민족 만들기는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마치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민족을 호출했듯이 말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독립투쟁을 '민족주의'를 만드는 핵심 신화로 이용했다. 그러나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1965년 9월 공산주의자 박멸을 '민족주의'를 만드는 신화로 이용했다. G35S가 인도네시아의 주요장군을 살해한 사건을 수하르토가 격퇴하면서 그는 민족의 영웅이 되어 독재정치를 한다. 기존의 인도네시아 교과서에서도 수하르토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주요 장군들이 신체 중요부위가 잘라진체 죽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주요 장군들은 공산주의자에게 신체 고문을 당한 흔적이 없으며, 신체 중요부위가 절단되지도 않았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인도네시아 현대사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한다.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설 때만이 인도네시아는 보다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올바른 민족만들기가 이뤄져야할 것이다.

  민족을 만드는데, 민족의 문화유산은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재를 돌볼 경제적 여유가 없고,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문화재를 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아시아의 현실이다.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은 도굴과 약탈, 파괴를 겪어야했다. 그리고 지금도 팔레스타인 땅에서 발굴되는 유물은 이스라엘의 입맛에 맛는 유물만 살아남고 있다고 이책에서는 말한다. 약자의 힘은 단결에 있다고 한다. 약소국들이 많은 아시아가 하나로 단결하여 문화재 도굴, 약탈, 파괴 문제를 다룰 때만이 해결의 실마를 얻을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시아의 민족만들기는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잘못된 신화와 싸워야하며, 강대국의 약탈과 파괴에 맞서야한다. 아시아의 연대는 요원한 걸까?

 

 

 6.25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는가? 내전? 강대국의 대리전? 등등 수많은 평가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6.25가 아시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본에게는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며, 인도는 비동맹의 리더로서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되었고, 필리핀은 파병을 강요당했으며, 타이의 경우 군부가 부자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많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6.25는 아시아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된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말이다..... 나는 질문한다. 혹시, 당신에게서 아시아도 6.25와 같은 잊혀진 존재는 아닌가? 힘있는 강대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 갖으면서, 우리의 이웃인 아시아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심이 없다. 아시아는 제2의 6.25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시아는 바로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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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 베트남 세계를 읽다
벤 엔겔바흐 지음, 김아림 옮김 / 도서출판 가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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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중국에 천년의 지배를 받고도 민족성을 잃지 않았으며, 몽골의 3차에 걸친 침입을 물리쳤다. 프랑스와 미국과의 3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의 상처가 치유되기 전에 캄보디아와 중국과 연이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잠들어있던 베트남이 '도이모이'정책을 펼치며 기지개를 펼치고 있다. 이번 겨울 가족여행을 베트남으로 정했을 때, 그 베트남의 힘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잘보고 잘 느끼기 위해서 '세계를 읽다. 베트남'이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벤 엔겔바흐'이다. 미국인 영어강사가 베트남에 대한 여행안내서를 썼다. 베트남 전쟁 당사국으로서 편견이 개입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그는 너무 낭만적인 베트남에 대한 묘사를 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베트남의 부정적인 면만을 그리지도 않았다. 베트남의 현실을 서술했다. 택시기사와 노상시장에서 바가지를 쓴일도 서술하면서도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는 마음씨 착한 베트남인의 일화를 서술하기도 했다. 가감 없이 베트남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 이책의 매력이다.

  미국인이 쓴 책이라서 미국인의 눈에 비친 베트남의 모습이 너무 이해가지 않는다는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체면"과 "많은 권력을 가진 노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것은 중국인이나 한국인도 마찬가지이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노인이 많은 권력을 가졌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이것은 '노인에 대한 공경'으로 표현해야할 것이다. 노인 공경이 '권력을 가진  노인'으로 해설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국인을 통해서 새롭게 알았다. 물론, 노인으로서 품의를 지키지 못하고 박근혜 지지 집회에 나가는 분들을 보면서 모든 노인에 대한 공경은 힘들다는 생각을 해왔다. 아뭏튼, 노인을 공경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를 이해못하는 외국인의 시선이 낯설다. 미국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베트남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미국인이 가진 프리즘을 살필수 있는 기회이기도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인의 시선에 '체면'과 노인공경은 이해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이책에는 베트남에 대한 여행정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어떻게 관광비자로 타국에 와서 직장을 얻으며 생활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이 책에 그 비법이 서술되어 있다. 저자 자신도 중국과 한국을 거쳐서 베트남에 정착하며 주변국을 여행한다. 10여개국을 여행하며 현실을 즐기는 욜로족의 모습을 보며, 초강대국 미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났다는 특권을 무기삼아 세계 여러나를 여행하고 현재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다. 단지 영어를 할 줄알며, 백인이라는 특권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며 인권을 침해당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위화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아차, 동남아시아 노동자에게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우리가 엄청난 특권을 가진 존재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해외여행을 하면 그 나라에 대한 책을 몇권읽고 가려 한다. 너무 학술적인 책과 너무 단편적인 정보만 담은 책 사이에서 인문학적 지식과 여행정보를 함께한 얇지만 깊은 책을 찾고 있었다. 간편히 하루면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베트남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이 책에 필수 베트남어가 몇개 소개되어 있다. 씬 짜오(안녕하세요), 땀 비엣(잘가요). 깜언(감사합니다.) 이 세단어는 베트남 현지에서 사용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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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 인도사로 본 한국사회
이광수 지음 / 이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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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에게 일본혼을 심어줘야 하다. 그렇지 않고 조선인의 민족적 반항심이 타오르게 된다면 이는 큰일이므로 영구적이며 근본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조선인의 심리연구이며 역사연구이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말이다. 역사가 핵무기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라는 이광수의 책은 인도사를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한국사의 아픈 곳을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가 서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만들어진 인도'라는 사실에 놀라고, 인도의 다르면서도 비슷한 한국의 모습에서 다시한번 놀란다. 책장을 읽으며, 연신 핵폭탄을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인도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고민했다. 인도사학자 이광수가 전해준 충격을 함께 나눠보자.

 

1. 만들어지는 역사

 '역사는 과거의 객관적인 사실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역사는 똑같이 재현될 수 없다. 과거 사실을 카메라로 똑 같이 찍어 놓지 않는 이상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 설혹 카메라로 과거 사실을 찍는다 하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어떠한 관점에서 사실들을 찍고 편집하는가에 따라서 과거 사실은 새롭게 창조된다. 인도의 역사도 역사의 재창조, 재해석 작업이 끊임 없이 진행되었다. 자신들에 의해서,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된 인도사는 인도인의 마음을 올가 메고 있다.

  인도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많은 사람들이 '힌두교'를 떠올릴 것이다. 저자 이광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힌두교를 설명하면서 '피자 효과'를 언급한다. 신혼여행을 로마로 갔을 때 맛보았던 담백한 이탈리아 피자는 다시 미국으로 전해져서 미국식 피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탈리아의 번화한 중심상점에는 미국식 피자가 즐비했다. 반면, 전통 이탈리아 피자를 먹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서민들이 살고 있는 골목을 찾아가야했다. 이탈리아를 점령한 '미국식 피자' 처럼, 인도의 힌두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한번 굴절되었다. 그리고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서 왜곡되었고, 다시 인도가 이를 역수입하면서 '미국식 힌두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힌두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 속에는 서로 상반된 주장과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불살생과 소숭배, 정신적 안정의 추구를 핵심으로하는 힌두교만이 서구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었고, 이를 힌두교의 전부라 믿는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인도의 슬픈 현실은 우리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는 이미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서구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신경쓰며,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국의 이미지를 통해서 한국의 것을 찾는 어리석음을 우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려할 때, 강력한 제국즤의의 군화발에 짓밟혔던 약소국들!! 그들은 스스로의 문화를 고민해볼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많은 고유문화들이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사라졌다. 타국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 대한 다른 선입견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인도는 종교의 나라이다.' 혹은 '인도는 종교 때문에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세 인도에 침입한 무슬림들이 인도의 사원을 약탈했으며, 이것이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저자 이광수는 정면 반박한다. 소미나타 사원 약탈 사건을 살펴보면, 무슬림의 기록에는 대대적인 약탈 사건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힌두인들의 기록에는 그러한 기록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우상을 파괴했다는 자랑꺼리로 소미나타 사원 약탈을 과장했을 것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성과라 이광수는 주장한다. 그런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종교로 분할 통치하려했고, 서구 역사학자들은 충실히 제국주의자의 의도에 복종했다. 이슬람인들만의 기록을 토대로 힌두와 무슬림의 대립은 필연적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역사는 현재 인도를 종교 분쟁의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마들어진 역사의 족쇄는 다시 인도인들을 분열과 대립의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서울 수 있다. 역사라는 무기를 수구세력이 잘알고 있었다. 뉴라이트세력들은 뉴라이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만들려했다. 친일파 중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분열과 대립, 좌절과 노예근성을 심어주려했던 그들의 노력은 다행스럽게도 촛불혁명으로 좌절되었다. 수구세력이 역사라는 무기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진보라는 사람들은 역사에 무관심했다. 역사를 수능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우리의 역사를 말하는 것을 쇼비니즘적인 생각으로 몰아붙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해야할 때에 역사라는 배타적 민족의식을 기르는 과목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역사는 평화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으나, 세상을 아마게돈으로 몰고갈 수 있는 핵무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500년 후,  '전두환은 평화주의자다.'라는 기록을 학생들이 배우게 된다는 상상을 당신은 해보았는가? 저자 이광수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와 비슷한 일이 인도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쇼카왕은 인도 대륙을 정복하고 전쟁의 비극을 깨닫는다. 그리고 평화주의자가 되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만약 아쇼카가 평화주의자라면 깔링가 정복 후, 15만 명의 포로를 풀어주었어야했다. 그러나 아쇼카는 15만 포로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가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더 이상 추가적인 대외 팽창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뿐이다. 대외팽창보다는 충분히 팽창된 영토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제대로된 사료 비판을 하지 않고, 아쇼카가 남긴 글들만 그대로 믿는다면, 전두환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반포한 글들을 그대로 진실로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러한 이광수의 지적은 나의 머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료비판!! 이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기위한, 깨어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였다. 아쇼카가 만들어 놓은 아쇼카식 역사를 바로보지 못한다면, 500년 후, '전두환은 평화주의자다.'라는 왜곡된 역사를 우리 후손들이 배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2. 인도사를 통해본 한국의 민낯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저자 이광수의 날카로운 인도사에 대한 통찰에 놀라고, 그의 한국사에 대한 송곳 같은 비판에 아파한다.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인도를 바라보았다. 그러한 잘못은 우리가 우리를 바라볼 때도 반복된다. 진정한 자아를 찾이 못한 인도와 한국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도와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자.

  '네루왕조'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네루를 비롯해서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의 큰아들 라지브 간디로 이어지는 네루 혈통들이 인도의 수상직을 역임했다. 네루의 후광을 등에 업고 검증보다는 혈통을 중요시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은 한국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 박정희가 18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다. 그리고 박근혜는 정치를 시작한지 18년만에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인간은 왜이리도 어리석을까?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라면, 혈통보다는 능력을 보아야한다는 진리를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무당에게 연설문을 수정받고, 세월호 7시간 동안 머리 올리기에 정신없었던 지도자를 아직도 추종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박근혜 통치시기, 국민은 좌와 우로 분열되었다. 박근혜는 한국인 모두의 대통령이기 보다는 보수의 대통령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Divide and rule(분할하여 통치하라)"의 통치방식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힌두와 무슬림을 분리하여 인도인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물론, 일제가 문화통치시기 친일파를 양성하여 우리민족을 분열시키려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사회를 하나로 통합해야하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일 터인데, 자신의 권력을 쥐려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비열한 통치는 인도와 한국에서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학습지를 만들지 않아, 인터넷에 보면, 나보다 더 잘만드는 사람들이 많은데뭐!" "SKY 나온 애들이 나보다 잘하잔아. 그네들을 믿어"라는 말을 젊은 시절에 선배 교사로부터 들었다. SKY 출신이라면 주눅부터 드는 나약한 선배교사!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선배교사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SKY는 최고"라는 신화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으며,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을 내재화하고, 한국사회의 주인으로 살기보다는 노예로 살려는 자들이 우리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한편, 한국사회의 "SKY 출신"이라는 신화는 다시 수구 신문에 의해서 합리화되고 있다. 수구신문은 한국사회의 평화와 자주를 싫어한다. 일본자위대의 위협비행을 수구신문은 일본의 편에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제한을 일본의 입장에서 변호한다.

   이러한 모습을 인도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라만 세력을 약화시키려했던 아쇼카왕의 노력은 그가 죽자 실패로 끝났다. 결국, 브라만과 왕은 타협한다. 브라만은 현실 세계의 왕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댓가로 브라만은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 브라만은 자신의 특권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에 자신을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왕의 족보에 삽입해준다. 견고한 브라만의 '신화'는 현대 인도사회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 다른면서도 비슷한 인도와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씁슬함을 감출 수 없다.

  인도농민의 자살 쓰나미가 밀려왔다. 2006년 한해 동안 1만 7060명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국적 농업회사의 횡포속에 나약한 농민들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개방화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농민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더이상 농민의 죽음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지는 못한다. 개방화 속에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농촌은 공동화되고 있다. 인도보다 더 심각한 농촌문제를 보면서 사라지는 농촌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괴롭다.

  저자 이광수는 냉철하게 인도역사를 읽어내려간다. 인도 고대사를 전공한 그가 인도의 현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연신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

 

3. 과연 그럴까?

  날카로운 이광수의 글들을 읽으면서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 이광수와 나의 역사관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어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이광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살펴보자.

  첫째, 굽타 시대를 '고대 인도의 황금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인가? 저자 이광수는 굽타시대 브라만을 5.18 후 전두환을 위해서 기도한 목사들에 비유한다. '마누법전'에 브라만의 특권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있다는 내용은 카스트에 저항하는 조짐이 빈발했다는 반증이라 주장한다. 이시기 발달한 언어학과 천문학은 신을 위한 것들이라 주장하며, '고대 인도의 황금기'라고 보기 보다는 '브라만 문화의 황금기'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 주장한다. 이광수는 브라만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다는 생각이든다. 문학, 천문학, 언어학이 신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발전했다면 그것은 인도문화의 한부분이다. 따라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고대의 문화들은 지배층의 문화가 아니었던가? 그리스로마의 문화도 수많은 노예 노동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배층의 문화였다. 중세의 성당들도 농노들의 경제력을 찾취해서 만들어진 기념물들이었다. 조선 세종시대의 문화도, 조선의 농민들을 수탈해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 문화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그시대 그 사회의 생산력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기에 그것 나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둘째, 민족주의는 반역일까? 저자 이광수는 "민족주의가 강할 수록 다른 의제는 위축된다."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 담론만이 지배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타민C를 과다 섭취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의 과다는 분명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인간이 생존하는데 비타민C가 필요하듯이, 인류가 생존하는데 민족주의는 필요하다. 이광수가 지적하듯이 거대한 인도가 작은 나라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인도인에게 '민족'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사피엔스가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상상의 공동체를 믿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강력한 '민족'이라는 무기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파괴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망이 될 수도 있다. 서구의 강대국들은 민족주의라는 무기를 선업혁명과 결합시켜 대외 팽창의 에너지로 활용했다. 그들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수입했다. 저항적 민족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히틀러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경험한 서구는 민족주의를 반역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서구의 이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학자들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도 서구와 같이 원초적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규정한다. 사실 유럽은 근대에 국민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민족이라는 원초적 개념이 근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부터 '삼한일통'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타민족을 지배하면서 팽창해간 역사가 아니기에, 좁은 한반도에서 동류의식을 키워갔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을 버리고 일본군에게 세금을 바치면 될텐데도, 조선의 백성들은 왜군에 맞서 싸웠다. 못난 지배층을 버리지 않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땅을 지켜낸 민초들을 보면서 묻는다. '무엇이 당신들을 싸우게 만들었냐고?' 왜군이 이해못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성의 주인이 바뀐 것은 백성들에게 세금낼 대상이 바뀐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조선의 백성들을 달랐다. 원초적 민족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땅을 지켜올 수있고, 통일을 이끌수 있는 원동력이 '민족'에 있다. 민족이라는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민족주의에 가려 의제화되지 못하는 의제를 발굴한다면, 민족주의는 반역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이념과 사상은 존재할 수 없기에 '민족'을 수선해서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셋째, 변혁인가! 안정인가! 저자 이광수는 말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회에서 방치되어 있는 계층이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나라는 없다. 총기가 난무하는 5.18때도 전당포 한 곳 털리지 않았고, 전국에서 백만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면서도 사건 사고 한건 터지지 않았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박노자가 '평화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쓴적이 있다. 그들에 눈에는 한국인들이 평화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평화적 3.1운동에서 평화적 촛불집회가 이상해보일 수도 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제의 식민지배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냉정한 비판도 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무장투쟁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안정이 사회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 있지 않은가?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명예혁명을 비롯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국가의 에너지를 국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비했다. 영국과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연기에 있었다. 평화적 방법을 통해서 정권을 교체시킨 우리의 저력은 비판의 대상이기 보다는 타국이 배워야할 교본이 아닐까?

  저자 이광수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와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의 탁월한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주장에 반문을 던지는 경험 자체가 나로서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이광수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겨울의 세계사 연수에서였다. 인도사의 권위자를 만나 인도사에 대한 편견을 수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으며, 인도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우리 사회와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인도는 왜 매국노가 없을까?'라는 주제였다. 세계사 연수에서는 한국에서는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인도는 그러하지 않았다고 규정한다. 이 책에서는 여기에 "인도에서는 대영제국의 지배에 찬성하는 이들이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식민지배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친일 세력이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식민지배를 했다."라고 말한다. 한국사의 맥락에서 인도사를 이해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오류들! 인도사는 인도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함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인도사와 한국사를 비교함으로서, 그 대비를 통해서 한국사를 분명히 알게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국사를 뛰어넘어 세계사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바라보자는 말이 설득력을 얻나보다.

  부처는 자신을 신으로 신봉하라 말하지 않았다. 그져 먼저 깨달은 사람일 뿐이다.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철저히 부정했고, 한곳에 머무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는 부처의 말을 어기고 불교 교단을 형성했다. 인도에서 불교가 융성할 수록 불교의 퇴보는 시작되었다. 발전이 퇴보로 이어져 인도사회에서 불교가 힌두교에 포섭되었다. 서구의 일직선적, 단선적 발전 사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인도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는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 사고의 확장을 바라는 독자, 인도사를 바로보는 것을 뛰어넘어 한국사를 꿰뚫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ps.  이책을 사랑하는 관점에서 오류 몇가지를 지적한다. 인도사 전공자이다보니, 한국사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가 몇가지 보인다.

144쪽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거란족이 함께 만든 나라"라는 표현은 '거란족'을 '말갈족'으로 수정해야한다. 거란족은 발해를 멸망시킨 족속이다.

157쪽 "5세기경 고구려에서는 차별을 기초로한 율령적 신분제가 나타났다. " 고구려는 4세기 소수림왕때 율령이 반포되었다. 5세기를 4세기로 수정해야한다.

265쪽 "쇄국"이라는 용어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수정해야한다. 한국사 용어가 바뀌었다.

75쪽 "항일 독립군에 가담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왕조의 복원을 주장했다. 그들이 꿈꾼 것은 평등사회건설이 아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라는 서술은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물론 왕정복구를 추구한 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공화정으로 대세가 바뀌었다. 3.1운동의 결과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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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근현대사 - 최병욱 교수와 함께 읽는
최병욱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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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쓴 베트남사'와 '베트남사'를 읽고서 베트남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특히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베트남 근현대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서가를 찾아 헤매다가 '최병욱 교수와 함께 읽는 베트남 근현대사'를 보게 되었다. 목차를 보니 연대기적 서술방식이아니라, 주제중심의 서술이었다. 기존에 읽었던 연대기적 서술 방식의 베트남사와는 분명 달라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의 역사와 우리와 너무도 비슷하지만, 너무도 대비된다는 사실을 새삼알게되었다. 그럼, 한국과 베트남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정리해볼 까한다.

 

우선, 이책은 베트남의 근대사에서 부터시작한다. 그 시작은 응우옌왕조의 최고 공신 보 따인에서 부터 시작된다. "나를 불태워라"며 자신을 희생해서 북진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서 통일 베트남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것이 베트남 근대의 시작이다. 보통 서양세력의 충격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과 베트남과의 차이이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물론, 1880년대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강력한 설득력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밖에 중국은 아편전쟁을, 일본은 미국의 페리제독의 포함외교를 강력한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베트남식 근대화의 관점을 수용한다면, 베트남 근대의 시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근대보다 확실히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럼, 공통점은 없는가? 중국의 오른쪽과 왼쪽 팔뚝에 해당된는 곳에 자리잡은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베트남이 황제를 칭했다면, 우리는 원간섭기 이후, 중국의 제후국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데 만족해했다. 두나라가 중국의 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달랐던 것이다. 이러한 유교문화의 영향 속에서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방식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띈다. 우리나라에 의병운동에 해당되는 운동이 베트남의 근왕운동이다. 왕을 중심으로 외세를 배격하는 운동을 처절하게 추진한 것은 비슷하지만, 그속에서도 다른점이 너무도 많다. 베트남의 황제들은 수도를 탈출하면서까지 항불항전을 독려하였으며, 프랑스에 의해서 황제가된 바오다이 조차도, "식민지의 황제로 사느니 독립국의 평민으로 살겠다."며 절대독립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대한제국의 황실은 어떠하였는가? 왕자 이강을 제외하고서는 일제에 제대로된 저항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영친왕의 경우에는 일제의 볼모로 사는 것에 만족해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철저한 항일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대한제국과 응우옌왕조의 질적 차이이다.

 

한편, 우리에게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의 약점과 강점을 알고, 서로의 약점을 서로의 강점으로 보충하려한, 비밀결사 '신민회'가 있다. 그리고 신민회의 독립전쟁방략은 이후 독립운동 방략에 계승되었다. 일제에 대항할 강력한 독립군을 기르고, 일제가 타국과 싸우는 최적의 시기에 독립전쟁을 일으킨다는 전략이 '독립전쟁방략'이고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방략과 괴를 같이한다. 그리고 나를 되찾고나서는 '공화제'국가를 세우려했다.

 

그럼, 베트남에는 누가 있을까? 바로 판보이쩌우가 있다. 판보이쩌우는 근왕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떠 '입헌군주제'를 추구하였고,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공화제'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까지 추진하려했다. 그러니 호치민 보다 판보이쩌우를 베트남 근대사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판보이쩌우가 가택연금으로 그의 정치적 활동이 마감된 상황속에서 동향 친구의 아들인 호치민이 그 바톤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일제가 패방하려는 결정적 순간에 전국적 봉기를 일으켜 독립을 달성한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진하려했던 독수리 작전을 연상케한다. 우리의 독립전쟁방략이 계획단계에서 일제의 항복으로 무산되었다면, 베트남은 결정적 순간을 잘이용하여 스스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그후 30년 동안의 1,2,3차 인도차이나전쟁, 즉 베트남전쟁을 한다. 우리가 외침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우리 조선왕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제외하고 전후 200년 동안 이렇다할 외침이 없었다. 실로 엄살이다. 그런데 베트남은 그 역사속에서 수많은 외침에 시달렸다. 시련은 베트남을 단련시켰다.

 

반면 우리는 분단되었다. 베트남이 전쟁이라는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아직껏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베트남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의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베트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시켜준다.

 

도이모이정책을 추진하는 베트남을 보면서, 이제 우리가 베트남의 쇄신에 손을 내밀며 친구가 되어야할 시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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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 9.11 테러 10년과 달라진 이슬람 세계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대학을 다니면서 무하마드 깐수라는 교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슬람 사람이래", "이슬람 사람이 한국말을 잘한데"라는 선배들의 말에, 무하마드 깐수 라는 교수가 궁금해졌다. 그는 무슨 이유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왔는가? 동서문화 교류가 그의 전공이었다.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그의 책 머릿글을 읽었다. "한국은 하늘도 아름답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2천년전 신라의 땅에 왔던 어느 무슬림의 말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떠한 감상을 갖고 있는지 직접 묻고 싶어졌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날,  "반납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리던 그 교수의 수업 '아시아지역사'를 수강신청했다. 그리고 그와 강의실에서 만나 진솔한 동서문화 교류의 역사를 배우고 토론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기숙사에서 신문을 펼쳤다. "단국대학교 무하마드 깐수 간첩으로 드러나"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겉으로 보아도 무슬림으로 보이는 그 사람이 간첩이었다니... 더욱이 북한에도 아내가 있고 남한에도 아내가 있었다. 설마하는 생각과 속았다는 생각이 교차해다. 나에게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사람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나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세월을 흘렀다. 대학에서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나의 진로를 두고 수많은 고민으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세웠다. 그리고 역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역사를 가까이에서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역사관련 직업을 얻기 위해서 취업재수를 하면서 부단히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시험을 보았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여행가로 '여행기'를 남긴 사람의 이름은?"이라는 시험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이븐 바투타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코폴로'라고 답을 섰다. 이슬람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 문제로 많은 사람들의 당락이 결정되었다. 서구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알아도, 이슬람의 유명한 여행가 이븐바투타는 모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신문을 펴들었다. 오래된 기사속에서 '정수일 세계에서 2번째로 '이븐바투타 여행기'를 완역하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였다. 시험문제에 '이븐 바투타'가 나온 이유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동서 문화는 대립의 역사가 아니라 교류의 역사이다. 시대적 소명을 이루고 싶다.'라는 정수일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뮤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이슬람 문명과 크리스트교 문명을 대립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그는 문명을 교류의 역사로 바라보있다.

 

  사회에 나와서 이슬람에 대한 강의와 이슬람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리고 9.11테러가 일어나고 파리 테러가 일어나면서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하늘을 치솟았다. 나에게 이슬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슬람과 한반도의 기나긴 교류의 역사 처럼, 나와 이슬람과의 인연은 좁은 실개천이지만,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내가 이슬람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주변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것이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의 교류'로 이행할 수 있는 첩경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한 개설서라고 하면 딱 좋을 책이다. 내가 과거에 읽었던 책들이 주로 이슬람의 역사와 관련된 책이었다면, 이책은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슬람과 우리와의 교류, 종교 분쟁의 원인과 치유책 에 대한 종합 보고서와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내려 놓는 순간 나에게 밀려든 이슬람에 대한 이산은 '슬픈 이슬람'이라는 단어다. 한때 너무도 찬란한 역사를 이룩하였던 머나먼 문명 '이슬람'! 그러나 지금은 서세 동점의 시기에 제국주의 서구에게 철저히 짖밟히고, 억눌리며 20세기를 보내야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받았던 수모와 박해를 팔레스타인의 주인들에게 앙갚은 하듯이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

 

'슬픈 이슬람' 지금의 파리 테러는 슬픈 자들의 추악하고 처절한 절규이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죄없는 영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슬픈 이슬람'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악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끌고 갈 것이다. 종교의 대립과 반목속에서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타 종교에 배타적인 종교인들은, 이슬람이 과거 보여주었던 '관용'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픈 이슬람의' 눈물을 닦아 주길 바란다.

 

피의 보복은 또 다른 피의 보복을 가져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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