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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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라고 해서, S대를 나왔다고 해서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노예의 눈으로 강대국을 위한 변명을 하는 학자들을 우리는 많이 본다.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부족한 서양사에 대한 지식을 마음껏 충전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서양 근대사'를 수강했다. 영국에서 학위를 한 교수님이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을 교재로 서양 근대사 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자유무역과 서구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국을 무던히도 사랑했다. 동양에서는 자본주의의 싹이 보이지 않을 때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세계를 선도했다는 내용의 강의가 무척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양에서도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고 항변하자, 그 교수는 쌩뚱맞은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상투틀고 살아야지." 정말,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서양사 교수와 너무도 닮은 견해를 가진 학자의 책을 만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을 읽으며 대학시절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던 그 교수가 생각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은 어떤 책이길레 나의 불편함이 그리도 켰을까?


1. 영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 벌인 비도덕적인 일에 눈감다.

  대학시절, 같이 '서양근대사' 수업을 같이 들었던 타과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왜? 서양에서는 도덕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않나요?"라는 타과생의 질문에, 그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편전쟁을 비롯해서 영국이 저지른 비도덕적인 전쟁을 열거하면서 비도덕적인 서양 제국주의의 모습을 직면하도록 했다. 그 교수는 귀찮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답변을하지 않았다.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고 있지 않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섬나라 영국은 자본이 많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영국의 가장 큰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해적질을 들 수 있다. 1579년 스페인 보물선을 약탈해서 26톤의 은괴를 약탈했으며, 보물선의 선장이 은괴를 빼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기 위해서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는 보물선 선장에게 약탈품 목록을 써주기까지 했다. 저자는 이를 '영국 신사다운 해적'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해적의 나라가 어울릴 것이다. 타국의 보물을 훔쳐 부를 쌓고, 해적질을 잘한 드레이크에게 기사작위를 주었고, 심지어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쳐들어오자, 드레이크가 영국해군을 이끌고 무적함대에 맞서싸운다. 해적과 한몸이되거 도적질로 성장한 나라가 영국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적질을 저자는 비판했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영국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페인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착취해서 부를 쌓았기에 떳떳하지는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도둑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도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면직물 산업에서 시작되었다. 실을 뽑고, 이 실로 면직물을 만드는 과정에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산업은 혁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술혁신을 이룬 영국인들의 놀라운 힘을 칭찬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국의 기술혁신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우리는 약소국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영국산 면직물보다 더 좋은 면직물이 있었다. 바로 인도산 면직물이다. 무굴제국의 황제가 공주에게 살결이 다 비치는 옷을 입었다고 나무라자, 공주는 옷감을 세겹이나 둘렀다고 변명했다. 그정도로 영국산 면직물은 품질이 좋았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질좋은 면직물을 짜내는 영국 직공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직공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도의 면직물 산업은 붕괴했다. 간디가 붕괴해버린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 스스로 물레를 돌려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인도를 침략하는 영국에 타격을 주면서 인도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인도인이 필요한 옷감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서술해야만 한쪽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의 기술혁신을 찬양하는 내용은 있었도,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붕괴시켜 영국의 소비시장으로 만들려 잔인한 짓을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진실을 적지 않는 것도 진실을 왜곡하는 일임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이기 보다는 깡패의 나라였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에 아편을 판매하고, 이를 단속하는 청나라에게 우수한 무기로 위협하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킨 영국 신사의 행위는 절대 신사적이지 않다. 물론, 도덕적이지도 않다. 만약, 약소민족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우리역사를 몸으로 알고 있는 학자라면, 대영제국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책에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영국과 중국이 맺은 통상조약은 영국에게만 독점적 특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 세계로 향한 개방 경제 체제의 일환이었다."-132쪽


  아편을 단속하는 청나라의 정당한 행위를 트집잡아 일으킨 전쟁에 대한 비판은 없고, 오히려 영국이 중국을 개방 경제 체제로 이끌어냈다는 찬양은 나의 눈을 의심케했다. 철저히 제국주의 영국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철저히 제국주의 일본의 시각에서도 역사를 바라보지는 않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2.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는 정당한가?

  우리의 관점에서 인도를 이해하면 인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도는 그들을 200년간 식민지배한 영국과도 웃으며 헤어진 나라이다. 일찍이 완벽히 통일된 인도가 성립된 것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민족적 각성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인도인이라는 관념이 생성되었다. 한반도에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고 오랫 동안 중앙집권적 국가 속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인도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차이가 여기에 있다. 민간인들에게 총을 난사하여 397명이 죽고 1200명이 다친 암리차르 학살 사건 (Amritsar massacre) 을 저지른 영국에게서 독립하고서도 영연방에 남아있는 인도가 우리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대영제국 하의 자치를 주장하는 인도의 민족주의자과 일제 강점기 일제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자치를 주장한 이광수와 같은 친일파를 비교하면 인도와 한국의 역사인식에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다르다하여도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것이 행복할리 없다. 이것은 세계 모든 약소민족의 공통된 역사일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일제 36년이라는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인도의 역사를 서술한다면 영국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는 인도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야하지않을까? 

  '제국의 품격'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을 철저히 부서버린다. 우리가 세계사교과서에서 배운 세포이 항쟁(1857년 ~ 1858년)을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반란"으로도 불릴 수 있고, "항쟁" 혹은 '제1차 독립전쟁"으로도 불릴 수 있다. 한국인 교수가 쓴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했을까? 놀랍게도 "반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저지른 잔혹한 일들에 대해서는 일체 서술하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도가 근대화되었다는 내용의 서술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인도인들의 말을 인용하며 인도인들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고마워하고 있다는 서술을 강조해서한다. 그렇게 영국이 인도에 잔인한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왜? 세포이항쟁이 일어났는지 묻고 싶다. 피식민지인들에게는 그 어떤 제국주의 국가도 선한 존재일 수 없다. 

  저자 박지향은 인도인이 왜? 세포이 항쟁을 일으켰는지를 먼저 서술하기 보다는 영국 군인과 가족이 죽임을 당한 칸푸르 사건을 먼저 서술하며 여자와 아이를 학살한 세포이들의 잔인함을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은 암리차르 학살 사건을 서술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세포이들이 잔인하고 야만적이기에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알맞은 서술방식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박지향은 친절하게 영국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술을 한다. 


  "영국인들이 느꼈던 공포심의 상당 부분은 그들이 사적으로 잘 알고 지냈을 뿐아니라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원주민들이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돌변하여 몇 시간 전만해도 자신들이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던 아이들의 부모들을 난도질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228쪽


  박지향의 서술을 따라간다면 인도인들은 영국인들 앞에서는 상냥하지만 가슴에 칼을 숨기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 글을 뒤집어 읽어보면, 종교에 심취하고 온순한 성격의 인도인이 영국인들 앞에서 굴종하며 가슴속에 비수를 품을 수 밖에 없는 영국의 간악한 식민지배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서술이기도하다.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여 자신들의 부를 빼앗고, 그들의 힘에 굴종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도인들의 분노가 세포이 항쟁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를 박지향은 알지도, 서술하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세포이 항쟁에 대한 평가도 박하게 한다. 


  "이 사건을 인도민족운동의 효시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20세기에 몇몇 인도인이 그렇게 믿고자했지만 세포이 반란은 결코 독립을 위한 국민적 투쟁이 아니었다."-227쪽


  전국적으로 일어난 세포이 항쟁은 무굴제국의 황제를 구심점으로 본격적인 반영운동을 하려하였다. 그러나 무굴제국 황제는 인도인의 구심점이 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영국의 최신식 무기에 세포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향은 인도의 토호국이 영국편에서 세포이를 진압한 사실을 근거로 세포이 항쟁은 '인도 민족 운동의 효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직 완벽한 '인도 민족'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박지향의 주장이 일면 타당해 보기이기도하지만, 세포이 항쟁이 '효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하찮은 운동은 아니다. 영국의 용병이 영국이 지급한 총을 들고 영국과 맞서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지향은 철저히 영국인들의 시각에서 인도를 바라보느라, 인도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박노자가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한탄한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제국주의 국가를 찬양하는 책이 출판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박지향은 인도 독립운동의 상징인 간디도 비판한다. 간디가 근대적 산업과 근대 국민국가와 서양 문명을 거부하고, 근대적 기술을 비판했다는 것이 박지향의 간디 비판 근거이다. 특히 간디가 근대적 기술을 비판하면서도 '사진을 가장 많이 찍힌 당대정치가'라고 간디를 비판한 부분은 코미디로 느껴졌다. 마치 영국이 저지른 부도덕한 전쟁을 비판하자, "그럼, 상투틀고 다녀야지"라고 말한 K교수가 떠올랐다. 간디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힌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박지향의 간디비판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박지향은 한발자국 더 나가서 인도가 힌두-이슬람으로 분리 독립한 것도 간디의 책임인듯 서술했다. 특히 간디가 힌두-이슬람 무력 충돌을 막지 못했다면 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한다. 분리독립을 막기 위해서 단식하다가 힌두 극단주의자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그를 비판하는 장면은, 분단을 막기 위해서 38선을 넘으며 통일 조국을 만들려 노력하다가, 친일파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 김구를 비판하는 뉴라이트 세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박지향, 그녀에게 일제 식민지배는 어떻게 평가될까?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한 것과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을 오버랩시키며 식민지배를 축복으로 여길까?


3.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다!!

  '덜나쁜 제국주의'는 있을까? 이 질문은 '덜 나쁜 강간범'은 있을까?라는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다. 국토를 유린하고 식민지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그들을 '더 나쁜 제국주의자'와 '덜 나쁜 제국주의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영국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 박지향은 "영국은 확실히 '가장 덜 나쁜 제국'이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박지향은 영국인들은 두개의 사명이 있다고 설명하다. 첫째는 인간이 사용하도록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복한 과실을 '영구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은 탁월한 과학 기술로 무장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또한 의회 민주주의, 자유 선거, 기독교 윤리, 법치, 자유주의 경제체제,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탁월한 시스템과 가치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 뿌리 내렸다고 단언한다. 박지향이 '제국의 유산,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박지향은 21세기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영비어천가'를 쓰고 있다. 강자의 폭력을 미화시키며 약자의 신음소리에 철저히 귀를 닫는 박지향의 무책임한 역사 서술에 깊은 한숨이 나온다.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노스차일드와 아랍의 하심가문에게 팔았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의 편을 들어준다면 유대인에게도 아랍인에게도 자신의 국가를 팔레스타인에서 건국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영국이 했다. 그리고 무책임하게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했다. 그결과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겨났으며, 오늘도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의 집에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인도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독립한 것도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종교 분리 정책 때문이다. 인도에서 힌두인과 이슬람인을 등록하게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하나로 뭉쳐 영국에 대항한 세포이 항쟁처럼, 영국은 제2의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분할하여 통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인도는 힌두의 인도와 이슬람의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했다. 그과정에서 수 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무력 대결을 하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이밖에도 영국의 식민지배 유산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 약소국들이 많다. 그들이 박지향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영국이 흘린 떡고물을 보면서 영국이 빼앗아간 떡은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어야만 한다면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가장 났다."(323쪽)라는 글을 책에 쓰기보다는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자"고 말하자.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면,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영어를 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는 노예근성을 가진자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한심함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낀다. 이 땅의 역사학자는 다음 세대에게 식민지 노예 근성을 학습시기기 보다는 자립과 자주 정신, 독립정신을 일깨워주어야하지 않을까? 박지향에게 묻고 싶다. 



  대학시절, 서양근대사를 수강하며, K교수와 잦은 마찰을 겪었다. 나중에는 K교수가 나를 교수실로 불렀다. 서양사 교수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성공한 혁명으로 설명하기에 '문화대혁명은 실패한 운동으로 결론이 났는데 무슨 근거로 성공했다고 하십니까?'라고 질문한 나를 교수실로 부른 것이다. K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논리적으로 대기 보다는, 자신을 타교수와 같이 대해달라고 했다. 타교수님은 전공에 대한 열정과 심오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지는 분들이다. 그러나 K교수는 그러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영국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에 반대하는 주장에 철저히 귀를 닫고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했다. 토론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 공부한 K교수가 학부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교수실로 학부생을 불러 자신을 타교수와 같은 급으로 대해달라는 어리석은 주장에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박지향은 대학에서 만난 K교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제국의 품격'에서 영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서술한 이유를 서문에 "이 책은 굳이 영국의 단점을 들추려하지 않았다. '''' 이 태도는 요즘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다."(7쪽)라고 서술했다. 나이가 들어 심각한 보수화가 진행되었다는 고백으로 읽힌다. 강자의 장점만을 보고, 약자의 고통은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K교수에게 느꼈던 측은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외눈박이 물고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서문에 "정년 후 한동안은 쉬고 .... 다시 책을 쓰고 싶어지면, 그땐 영국에 대한 부정적인 책을 한번 써볼까?(7쪽)" 라고 쓴 것 처럼 대영제국의 어두운면을 서술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외눈박이 물고기는 두개의 눈으로 온전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s.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영국은 16세기 왕과 신민들 사이에 일종의 '정치 계약'에 의한 관계라는 의식이 생겨났으며, 이는 홉스의 사회계약설로 이어진다. 중세 봉건제도가 "쌍무적 계약관계'이며, 홉스와 로크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 "계약"이라는 관념은 서구 문화의 핵심이며, 동양의 관념과는 많이 다른 그들의 문화라는 생각이든다. 

   대헌장은 1215년 만들어진 후, 16세기 까지 30차례에 걸쳐 재확인되었고 보완 발전되었다. "대헌장의 인생에는 공백기가 없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처음은 초라했지만, 끝은 창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른 대헌장의 인생에 공백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재산권","계약"이라는 개념이 영국을 발달시켰다. 자유무역과 안정된 의회제도, 우수한 해군력이 더해져 대영제국이 성립했다. 이점이 영국이 돋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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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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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공기의 사랑"!! 이보다 적정 사랑을 잘 표한한 말이 있을까? 사랑이 고픈 이에게 한 공기의 사랑은 가장 최적의 사랑이다. 한공기의 사랑마저 받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방황한다. 한 공기를 넘어 두공기, 세공기, 아니 그 이상의 사랑을 준다면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된다. 저자 강신주는 철학 강의를 하면서 철학의 원래 뜻이 '지에 대한 사랑'이라고 설명한다. 이중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차례의 강연과 그의 저서를 통해서 강조해왔다. 이제 그 결정판이 나왔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이 바로 그 책이다. 불교철학을 기반으로 김선우 시인의 시 8편을 캐스팅해서 강신주만의 설명을 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학교 현장에서도 중요한 주제이다.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이 너무 넘쳐서 발생하는 학교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교사 다락방 "독서와 수업 사이"에서 이 책을 첫번째 읽을 책으로 선정한 이유이다. 그럼, 한공기의 사랑을 맛보러 가보자.

 

1. 사랑의 매는 존재할까?

일체개고(一切皆苦)! 사람은 태어났기에 고통을 겪는다. 삶이 곧 고통이라는 이 말은 불교를 염세주의적, 비관주의적 종교로 착각하기 만들기 좋은 단어이다. 저자 강신주는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처럼, 고통 뒤에 행복을 배운다고 말한다. 한 공기의 밥을 먹으면 배고픔이 사라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고파진다. 배고픔의 고통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한 공기의 밥을 먹는다. 한 공기의 밥은 잠시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할뿐, 영원히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다. 수많은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 고통을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을 완화하면서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한 공기의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듯이 말이다.

현실은 행복과 사랑으로 넘쳐나는 천국이라 호도하지 말자! 현실을 냉정하게 보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희망과 사랑을 품자! 싯다르타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고통의 현실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그 고통을 덜어주려 노력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우리는 공감이라한다. 저자 강신주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사람이이라면 '사랑의 매'라는 논리를 들이대며 폭력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폭력에 익숙해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개발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주변에는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그 폭력을 합리화하는 논리에 나 자신도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었다. 동료 교사의 고통을, 학생들의 아픔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낀다면 폭력을 합리화하는 '사랑의 매'라는 표현은 존재할 수 없다.

()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행복과 자비와 웃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 학교 현장에서 진정한 교육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감수성에서 출발해야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2. 지는 꽃은 가치가 없을까?

학생들 중에는 유독 청소를 싫어하는 녀석이 있다.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 청소해요?"라고 묻는 학생에게 나는 말한다. "너는 어차피 배고플 텐데 왜? 밥을 먹니?" 그렇다. 우리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불교에서는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표현한다. 형성된 모든 것들은 소멸하는 법이다. 모든 것이 소멸하기에 모든 일은 부질없는 것이라 말한다면, 이는 지나친 염세주의이다. 변하기에, 영원하기에 우리는 지금 이순간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저자 강신주는 '조화''생화'를 예로 든다. 생화가 우리의 현실이라면, 조화는 이상화된 천국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존재하지도 않은 천국을 좋아한다. 천국이라는 논리에 매몰되어 오늘을 천국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당신은 조화와 생화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조화보다는 생화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라는 말이 있다. 참다운 불교의 진리를 담고 있는 우리 속담이다. 지극한 행복만이 있어 지지 않는 꽃만이 존재하는 천국보다는 힘겹게 꽃망울이 터지더니 활짝 핀 꽃이 행복하게 하늘거리는 현실이 좋다. 그리고는 이내 꽃이 떨어진다. 떨어질 꽃이기에 지금 활짝핀 지금의 모습이 더 아름답고 애절해 보인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해야한다.

아파마데나! '올바른 자각' 혹은 '올바른 지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래,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을 올바로 바라고 소중하게 간직하자! 작년에도 나는 학생들과 일 년을 함께 보냈다. 올해도 학생들과 일 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내년에도 학생들과 함께 일 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작년의 학생과 올해의 학생은 다르다. 올해의 학생과 내년의 학생은 다르다. 지금 이 순간 만난 학생은 내생에 유일한 올해 나의 제자들이다. 이들과 만나는 올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이 순간의 소중함을 간직하자!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아모르 파티", 이 순간을 잡으라는 뜻의 "카르페디엠"이라는 단어가 우리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도 우리 세상의 유한함과 모든 것은 영원함이 없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은 우리에게 두 번 오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오늘 만나는 모든 이는 소중하다.

 

3. 교칙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해야할까?

'제법무아(諸法無我)'! 사물에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다. 이 개념을 강신주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일화로 설명한다. 추운 겨울 혜림사에 단하스님이 묵게 되었다. 너무도 추워 단하스님은 목불을 도끼로 쪼개어 땔감으로 만들었다. 단하스님이 불을 쬐고 있는 모습을 본 혜림사 스님은 화를 냈다. 그러자 단하스님은 "이 부처에 사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려고 태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혜림사 스님은 "나무에 무슨 사리가 있는가?"라고 내뱉었다. 그렇다. 목불은 나무일뿐 부처가 아니다. 목불에는 '자성'이 없다. 사물에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듯이, 우리에게도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다. 단지 수많은 인연들이 얽혀서 이루어진 관계일 뿐이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고, 아들에게는 아들에게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다. 그렇다면, 학생에게도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는 학생을 위해서 만든 것이 학교의 교칙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을 위해서 만든 교칙이 본래 의도를 벗어나 학생이 교칙을 위해서 존재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여학생의 교복 치마에 치맛주름이 있느냐? 없느냐? 가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교칙은 학생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치맛주름을 없애는 것은 교칙을 위반하는 일이라고 단속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치맛주름을 없애는 것은 교복변형을 금지시키는 교칙을 위반했으니, 학생부장이 아침부터 열심히 여학생을 지도해야했다. 그런데, 학생에게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다면, 교칙에도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으며, 교복에도 본래 주어진 속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 교칙도 교복도 학생을 위해서 존재해야지, 학생이 교칙과 교복을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되지 않은가? 교복 변형이 문제라면, 불편한 교복을 후드티와 같은 학생이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옷으로 변경하면 되지 않을까? 실재로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많이 입는 후드티를 교복으로 정해서 학생들에게 박수를 받은 사례가 있다.

여기서 나는 전율을 느낀다. '제법무아'라는 단어는 우리 교육현장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혁명적 사상을 담고 있었다.

 

4. 진리를 깨달은 싯다르타는 행복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은 바보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상의 근심 걱정도 알지 못하기에,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먹을 것이 자신의 입에 들어오면 마냥 행복한 바보가 가장 행복한 존재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모든 진리를 깨달은 싯다르타는 행복했을까?

나의 질문에 저자 강신주는 원효 스님을 소환한다. 원효는 고요한 마음을 '진여문'이라고 부르고 요동치는 마음을 '생멸문'이라 부른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혹은 내부의 욕망에 의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생멸문'이라고 한다면, 모든 갈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고요한 물과 같은 마음을 '진여문'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상태에 이른 것이다. 원효는 생멸문을 두개로 나눈다. 미숙한 생멸문과 성숙한 생멸문이 그것이다. 미숙한 생멸문은 나에 대한 고집 때문에 생기는 생멸문이다. 이에 반해서 성숙한 생멸문은 타인의 고통 때문에 생기는 생멸문이다. 내부의 욕망과 집착으로 부글부글 끓던 마음이 생멸문을 거쳐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며 나뭇잎에도 파문이 이는 잔잔한 물처럼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진여문에 제대로 도달한 싯다르타는 다시 생멸문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스스로 파계승의 길을 선택하고 속세로 나아간 것이다.

교사 생활을 하다보면, 고고한 것처럼 보이는 교사가 너무도 험한 일을 많이 당한다고 절망할 때가 많다. 전두엽이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고, 변연계가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충동적인 고등학생을 상대하다보니, 논리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고, '금이야 옥이야' 하며 애지중지 키운 자녀를 교사가 혼냈다고 막말을 해대는 막무가내식의 학부모도 보았다. 그럴 때마다. 속세의 때를 벗어 던지고 산사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속세의 때가 싫어 산사를 찾는다면 싯다르타는 아마도 나를 혼낼 것이다. 강신주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부처는 타인의 고통에 너무나 아파하고 타인을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이다." 참다운 깨달음의 세계에 이른 사람은 중생을 외면할 수 없다. 속세의 때가 없는 곳에서 깨달음을 얻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깨달았다면 다시 속세로 나와야한다. 참다운 깨달음의 방법은 때가 가득한 속세에서 깨닫고 부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신주는 말한다. "자비가 아니라면 불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화이트헤드나 들뢰즈와 같은 서양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형이상학에 만족하지만, 불교는 인연, 연기 등의 이론적 틀로 "자비"를 실천하라 말한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상인가!

 

5. 나쁜 인연에 대처하는 법은?

교사 생활을 하다보면, 유난히도 나를 괴롭게 만드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다. 다음해에는 그들과 만나기 싫기에 그 학생들과 함께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강신주는 나쁜 인연을 만나면 다시 수평선 너머로 배를 몰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나쁜 인연에 길들여진 존재는 나쁜 인연에 안주하게 된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쉽게 길들여진다. 나도 나를 괴롭히는 인연을 쉽게 단절해버렸다.

 

그런데, 교사라는 직업은 반전의 연속이다.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학생과 학부모가 다음해에, 혹은 2~3년이 지나서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너무도 말썽을 부렸던 녀석들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학교를 찾아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나에게 감사를 표한다. 유난히도 속을 섞였던 녀석들이 많은 해일수록, 그해 졸업생 중에서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녀석들이 많다. 나쁜 인연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좋은 인연으로 성숙하는 경우가 교육 현장에서는 꾀나 있다.

싯다르타는 극단의 영원성이나 불변성에 빠지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한편의 극단적 순간성에도 빠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지금 이 인연이 나쁜 인연이라고 혹은 좋은 인연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지금 힘든 인연이라면 일단은 그 인연과 관계를 잘 마무리 짓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자. 그러나 나에게 힘든 인연이 성숙하여 좋은 인연으로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자. 극단에 치우치기 쉬운 것이 우리의 인생사이다. 싯다르타는 그 극단을 경계했다. 성숙한다는 것은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6.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가?

학생을 상담하다보면, 진로를 두고 부모와 갈등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녀를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가 이뤄주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부모는 자녀를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시기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며 하나의 인격체로 홀로서고 싶은 학생과 자녀를 자신이 못한 일을 대신해주는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하는 부모 사이의 갈등은 첨예하게 대립되다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때로는 실업계 학교로 가기 위해서 교칙을 어겨 징계를 받는 경우도 보았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돌봄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하기에 라캉이 말했듯이,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동일시한다. 그래서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인으로 살기 힘들다. 자신의 삶을 살겠다며 부모와 대립하며, 때로는 퇴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하나의 인격체로 홀로서기를 선택한 존재들이다.

15년 전 D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징계위원회에 참석해서 눈물 흘리는 학부모의 모습이 안타까워 문제 학생에게 물었다. ? ? 문제를 일으키냐고……. 어머니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자신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온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퇴학당하겠다고 말했다. 놀란 나는 학생의 어머니와 면담하며, 실업계로의 전학을 권했다. 그것이 어머님과 학생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어머님은 울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실업계로 전학을 보내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 후, 학생은 퇴학을 당했다. 그 후로 3년여가 흘렀다. 그해 졸업식이 끝나고 홀가분히 집으로 오는데, 전화를 받았다. 그때 그녀석의 어머니였다. 선생님과 식사를 같이하고 싶다는 것이다. 녀석은 D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실업계에 진학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실업계 전형으로 대학에도 했다고 한다. 나의 조언이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한 것이다. 그 녀석은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 많은 길을 돌아가야 했다. 시간은 걸렸지만,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살고 있는 녀석이 대견하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들이 사실은 타인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네가 서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다!! 임제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도 주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7. 아끼는 사람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끼는 사람을 아끼는 방법을 강신주는 간단명료하게 제시한다. "아끼는 사람을 반려동물처럼 보는 연습을 반복하자."라는 강신주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반려동물에게서 우리는 많은 기대나 보은을 원하지 않는다. 맛있게 사료를 먹고, 나를 위해서 웃음만 지어주길 기대한다. 때로는 집안에 똥을 누워도 탓하지 않는다. 특별한 보은을 바라지 않기에 반려동물 때문에 고통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무수히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학원을 보내고, 좋은 성적을 요구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를 한다. 이러한 사랑이라는 요구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이러한 사랑은 집착이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부모가 아닌,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아바타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강신주는 "아끼는 사람을 반려동물처럼 보는 연습"을 하도록 했나보다.

사랑한다면, 아낀다면, 우리는 건강한 사랑의 방법을 배워야한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이다. 더욱이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사랑은 절대적이다. 농작물이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듯이,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강신주의 표현대로 "아끼는 사람에 대해 우리 자신이 '한공기의 연'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을 채우지 못한다면, 아끼는 사람의 행복은 우리로 인해 파괴되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이 힘든 가 보다. 학생이 자라기 위해서는 학생과 연을 이루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건강한 만남을 이뤄야한다. 교사는 그 인연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제자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는 나약한 존재가 교사이다.

 

교사 생활을 하기전, '사랑'이라는 뻔한 단어에 환멸을 느꼈다. 너무도 교과서적인 단어이며, 교사를 혹사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용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학생들과 무수히 많은 학부모를 만나면서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발생하여 '사랑'으로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와 교사의 사랑이 잘못된 방법으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며, 부모와 교사의 건강한 사랑이 사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학생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병아리들이다. 그러하기에 강신주 자자의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은 우리들에게 참다운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게 해준다. 심오한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참다운 사랑의 방법을 알려준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학교 현장의 많은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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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01 2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의 정성 가득 담긴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교직에서 치열하게 아이들을 사랑하시느라 애쓰시는 모습이 느껴지네요~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강나루 2021-05-01 21:17   좋아요 3 | URL
책읽은 감상을 두서없이 적은 것인데, 칭찬을 해주시니 쑥스럽네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6-04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교육 현장에 강나루님 같으신 분!이
계신 것만으로도 뭉클한 감동이 ^ㅅ^

강나루 2021-06-04 21:28   좋아요 1 | URL
과찬이십니다.
저는 평범한 교사일 뿐입니다.
scott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6-04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06-04 21:2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초딩 2021-06-04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불금 되세요~~~

강나루 2021-06-05 04:43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초딩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bookholic 2021-06-05 0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월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시원하고 즐거운 주말.... 하지만 천천히 지나가시길...^^

강나루 2021-06-05 05:56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bookholic 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6-05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1-06-05 11:13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해요
이하라님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래요^^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도태된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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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중국역사를 편식한다. 사마천의 '사기'를 즐겨 읽고, 춘추 전국시대의 고사를 인용한다. 그러나,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중국 역사에 대한 편식은 나또한 예외라 할 수 없다. 대학에서 중국사 강의를 들으면서도 교수님의 전공인 당나라와 송나라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웠지만,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 중국사 불균형은 한국사를 공부할 때 빈틈이 생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에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조선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움직이는 시기이다. 결국, 명,청시기에 대한 이해 부족은 한국사 이해에 한계를 가져왔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도 마땅한 책을 못찾던 차에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만났다. 청나라 역사 속으로 빨려들어가 보자. 


1.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들

  중국사의 특징은 빠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곧이어 빠른 노쇠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청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누르하치는 여진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하며 명나라를 위협한다. 이시기 조선은 임진왜란의 전란에 휩싸인다. 누르하치는 명나라와 조선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했다. 누르하치의 군대가 조선에 온다면, 일본군은 많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으로서는 행운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누르하치의 지략과 인품을 알고 나서 나의 생각을 180도 달라졌다. 그는 탁월한 지략과 리더십을 겸비한 인물이다. 만약 그가 조선에 원병을 파견한다면, 조선의 문약함을 알았을 것이다. 누르하치는 중원으로 진출하기 보다는 조선을 먼저 정벌하여 이를 발판으로 명을 공격하는 전략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선의 역사가 200년으로 단절되고, 여진족이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을 것이다. 변발과 문자의 옥을 비롯한 갖가지 사상탄압이 우리땅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었을까?

  청나라의 전성기는 현엽 성조 강희제에서 시작하여 윤진 세종 옹정제를 거쳐 홍력 고종 강희제시기에 절정에 달한다. 일명 강건성세라고 불리우는 기간 동안 중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개척한다.(원나라는 중국사로 보기보다는 몽골의 역사로 보아야한다.) 

  세명의 황제 중에서도 강희제는 단연 돋보인다.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정성공 세력을 굴복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도량이 넓은 것은 조선에 배푼 그의 호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숙종 23년(1679) 조선 팔도에 대기근이 돌았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시체가 도성에 산처럼 쌓였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조선의 상황은 매우 안좋았다. 숙종은 청에 중강에서 무역시장을 열게해달라고 간청했다. 청나라의 쌀을 사서 조선 백성의 굶주린 배를 채워보겠다는 말이다. 강희제는 달랐다. 성경(심양) 창고에서 5만석을 선박으로 운반하여 조선 백성을 구제했다. 이 사건이 있기 이전 강희제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강희제를 패륜 황제로 그렸다. 사냥을 하면서 서민의 아녀자를 겁탈하는 천하의 패륜아로 묘사했다. 조선 선비의 옹졸함과 강희제의 도량이 너무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러했기에 조선의 북벌은 실질적 북벌이 아니라, 정신 승리 차원의 북벌일 수밖에 없었다. 

  옹정제는 강희제 시기의 전성기를 이어간 황제이다. 악종기에게 반란을 사주한 증정을 직접 심문하며 논리적으로 증정을 굴복시켰다. 증정의 '지역적 중화'에 대항해서 옹정제는 '문화적 중화'로 맞섰다. 그리고 이를 '대의각미록'이라는 책으로 편찬했다. 그럼 증정은 죽였을까? 옹정제는 증정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증정을 앞세워 반청지식인을 색출하고 청의 충실한 '개로' 만들어 그를 한껏 이용해서 여진족의 중국지배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증정의 스승 여유량은 부관참시하고 그 일족 중에서 16세 이상의 남자는 모두 살해하였다. 냉면제왕 옹정제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 섬득한 사례이다. 

  냉면제왕 옹정제도 불노장생의 허황된 꿈을 꾸었다. 그는 급작스럽게 죽는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서 다양한 설들이 분분하지만, 가장 설득력있는 설은 불노장생하기 위해서 복용했던 단약이 그의 명줄을 줄였다는 설이다. 수은, 납, 주석을 비롯한 다양한 중금속을 섞은 단약을 섭취하고 죽은 옹정제를 보면서,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풀한포기 이상의 신비는 없다."라는 말을 했다. 불노장생의 허황된 꿈을 쫓다가 죽은 중국의 역대 제황들의 사례를 통해서 영민한 옹정제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불로장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더 빨리 저세상으로 갔다. 

  청나라가 빠른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고, 연이어서 훌륭한 황제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가의 적장자 계승법을 고집하지 않고, 태자밀건법(저위밀건법)으로 다음 황제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황제가 유조를 적어 건청궁 '정대광명'편액 뒤에 적어 두고 황제가 죽으면 이를 열어보아 차기 황제를 세우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탁월한 황제가 연이어서 배출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옹정제 이후에 태자밀건법이 실시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인터넷 백과에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도광제 함풍제가 이 방법으로 등극했다고 적혀있다. 하여튼, 이부분은 추후에 더 탐색해봐야할 주제이다.) 능력에 기반한 계승방법은 청나라를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강성할 것으로 보이던 청나라도 건륭제 집권 중반기를 지나면서 쇠퇴의 모습들이 드러난다. 


2. 제국의 쇠퇴를 막지 못한 황제

  건륭제는 할아버지 강희제를 모범으로 삼아 통치했다. 그러나 건륭제는 강희제가 그러했던 것 처럼 자신의 통치 철학을 집권 내내 보이지는 못했다. 그의 집권 중반기에 등장한 화신을 너무도 총애하여 국가를 병들게 했다. 건륭제의 아들 가경제가 집권하고 화신은 가산을 몰수 당하고 목이 베어져 죽게 된다. 그의 집에서 나온 재물이 청나라가 15년 동안 거둬들이는 세금과 맞먹었다고 하니 화신이 저지른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신을 처벌하고 개혁을 시도한 가경제와 같은 황제가 등극했는데, 왜? 청나라의 쇠락을 막지 못했을까? 더욱이 가경제는 검소함을 추구하였으며, 본인이 모범을 보이려 노력했다. 이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 강정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가경제는 화신 한 사람만을 대역죄로 몰아 처벌하고 사건에 연루된 자들의 죄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부패한 관료 조직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420쪽


  그렇다. 건륭제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건륭제의 보호 속에서 갖가지 폐단을 일으킨 화신만을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뿌리 깊은 적폐세력을 통치자의 덕만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다. 과거 군사정권에 빌붙어서 떡고물을 먹고 있던 적폐세력인 기레기들을 이용해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하는 현실을 보며,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복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흔히들, 윗사람이 덕을 베풀고, 예로써 교화시킨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제왕에게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꾀가 필요하다. 덕과 예로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만민이 예의와 염치를 알때이다. 적폐세력들에게는 예의도 염치도 없다. 가경제가 옷을 기워입어도, 가경제 앞에서만 옷을 기워입을뿐, 사리사욕을 챙기는 적폐세력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경제의 우유부단함은 적폐세력에게 이용만 당할 뿐, 서서히 쓰러져가는 청제국을 바로세우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경제의 아들 도광제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도광제는 관군으로 위장한 임청의 반란군 70여명이 황궁을 기습했을때, 친히 금위군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했지 않은가? 그뿐아니라, 그는 반란군 두명을 조총으로 직접 사살하기도했다. 

  태자밀건법에 따라서 가경제가 붕어하자, '정대광명' 편액 뒤에 보관된 밀지를 열었다. 예상대로 면녕을 황태자로 책봉하라는 내용의 조서가 발견되었다. 면녕 그가 바로 도광제이다. 문무를 겸비한 도광제는 충분히 과단성 있는 개혁을 시행하지 않을까? 문무를 겸비한 그도 가경제를 닮아 인자하고 검소했으나 우유부단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짠돌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근검절약했지만, 청제국은 날로 쓰러져갔다. 결국 제1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청제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도광제의 아들 함풍제는 어떠했을까? 청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함풍제는 난세를 이겨낼 그릇이 아니었다. 그도 개혁을 하려는 듯했으나, 보통의 군주에 불과했다. 통치의 스트레스를 호색과 아편으로 도피하는 길을 선택했다.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못난 군주에 불과했다. 지도자의 무능은 만백성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결국 2차아편전쟁이 일어나고 베이징은 영불 연합군에 의해서 유린당한다. 청제국의 영광스러운 나날들도 역사속에 사라져갔다. 



  청나라는 우리에게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겨준 나라이다. 오만한 조선 선비들에게 힘을 과시한 청나라이기에 우리는 청제국에 대해서 애써 무관심했다. 효종의 북벌이 실행되었다면 성공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기도한다. 그러나, 효종이 북벌을 한들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강희제 시기에 과연 청제국이 호락호락 무너졌을까? 태자밀건법이라는 탁월한 제도로 연이어서 훌륭한 황제가 등극했다. 청제국은 광활한 영토를 넓혀서 지금의 중국인들에게 선물로 남겨주었다. 

  그러나, 태자밀건법으로 능력있는자가 황제가 되었지만, 황제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인물이 줄어들면서 태자밀건법이 청제국의 쇠약을 막지는 못했다. 보다 과단성있고, 보다 주도면밀한 자가 황제가 되어 개혁을 했어야만했다. 검약을 솔선수범하는 보통의 군주가 거대한 청제국의 쇠약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청제국은 우리에게 보다 넓은 인력풀 속에서 탁월한 능력있는 자를 리더로 선택해야만 제국의 쇠약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과연 우리는 청제국이 걸었던 쇠락의 길을 걷지는 않는지 반문해본다. 

  강정만 교수의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은 무협소설을 읽는 듯이 재미있다. 제목이 딱딱하여 어려운 논문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읽어보라. 얼마나 재미있는지 강정만 교수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을 것이다. 출판사가 제목을 매력적으로 다시 짓는다면 판매부수가 두배로 뛰어오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청제국에 대해서 알고 싶은자. 머리를 식힐겸 가볍게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ps. 555쪽에 청일전쟁 이후 "조선은 이때 부터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라고 적고 있으나 이는 오류이다. 러일전쟁 이후로 수정해야한다. 청일전쟁의 결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가능성은 있었으나,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는 불행을 막았다. 


괜찬은 사료 몇개를 소개한다. 


224쪽 (강희제가 조정 대신에게) 오삼계는 오래 전부터 역모를 획책하고 있는 자이오. 서둘러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큰 우환이 될 것이오. 철번을 윤허해도 반란을 일으킬 것이며, 윤허하지 않아도 역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오. 차라리 지금 선수를 쳐서 제압하는 편이 낫소" 

461쪽 '엄색루치이배국본소'(도광제 시기) 국가의 많은 은자가 낭비되는 까닭은 아편 판매가 증가하기 때문이며, 아편 판매의 증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편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아편을 피우지 않아 아편 판매가 감소하면 서양 오랑캐의 아편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조정에서 엄한 벌로 다스리려면 먼저 아편을 피우는 자들을 엄격하게 처벌해야하옵니다. 황상께서 조서를 내리시어 금년 모월모일부터 내년 모월모일까지 1년 동안 아편을 끊는 기간을 반포해주시기를 신은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렇게 하면 아편 중독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아편을 끊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494쪽(함풍 2년) '봉천토호격포사방유' 백성들에게 간절히 호소하니 내말을 분명히 들어라! 천하는 하나님의 천하이지 오랑캐의 천하가 아니다. 의복과 음식은 하나님의 것이지 오랑캐의 것이 아니다. 자녀와 인민도 하나님의 것이지 오랑캐의 것이 아니다. 만주족 오랑캐들은 잔혹한 성질을 함부로 부려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는데도, 천하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중국의 백성들은 모두 오랑캐의 풍습을 따르고 오랑캐처럼 행동하면서 조금도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비분강개를 금할 수 없다. 지금 중국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중구에는 중국의 형상이 있는데도 중국인은 만주족 오랑캐으 변발 명령에 복종하여 긴 꼬리를 몸 뒤에서 질질 끌고 다니고 있다. 이는 중국인을 개돼지로 변하게 했다. 중국에는 중국의 의관이 있느넫도 오랑캐는 정대(청조 때 관직을 구별하는 모자의 꾸밈새)를 만들어 중국인에게 오랑캐으 의복과 원숭이의 관을 쓰게 하여 우리 조산의 의복과 면류관을 파괴했다. 이는 중국인에게 우리의 근본을 잊게 하였다. 중국에는 중국의 윤리가 있는데도 예전에 거짓되고 요망한 가자 황제 강희가 만주족 관리 한 사람에게 한족 가정 열집을 관장하게 하여 중국 여자들을 마음껏 강간하게 했다. 이는 중국인을 모조리 오랑캐 종자로 만들고자 하는 속셈이다."

505쪽(장개석 왈) "예날에 홍수전, 양수청 등 앞선 시대의 사람들이 동남 지방에서 일어나 만주족 청나라와 싸웠다. 그들의 원대한 포부와 위업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태평천국은 갖자기 망했지만, 그 민족 사상의 발양은 역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584쪽(선통제 퇴위 조서) "민군이 봉기를 일으켜 여러 성에서 호응하자, 중국 전체가 들끓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특별히 원세개에게 명령을 앤려 민군 대표와 대국을 토론하고 국회를 열며 국가의 체제를 공고적으로 결정하게 했다. (중략) 지금 전국 인민들의 마음은 대부분 공화정으로 기울었다. 남방 각 성의 인민들은 앞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북방의 여러 장수들은 뒤에서 공화정을 주장하고 있다. 인심의 향방이 천명임을 알아야한다. 나 또한 청조를 건국한 애신각라 성씨의 존귀함과 번영을 지키는 일 때문에 백성의 감정을 무시하는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595쪽 (청조 귀족 출신,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자 희흡이 부의에게 보낸 전보) "황상께서는 조종의 발상지인 만주로 돌아오셔서 대청제국을 다시 건설하셔야합니다. 재난에 빠진 백성을 구하시고 우방국 일본의 지지를 받고 먼저 만주를 통치하신 후에 다시 중원을 도모하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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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이야기 - BBC 한 권으로 읽는 인도의 모든 것
마이클 우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살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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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문명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찾는다. 수 많은 히피들이 그러했듯이 신비의 나라 '인도'를 상상하며 인도를 찾아 떠나지만, 그들이 상상하는 인도와 현실의 인도는 다른다. 머릿속에 상상하는 인도의 모습만을 보려고 노력하는 그들에게 인도는 자신의 수많은 모습중에서 일부만 보여준다. 마이클 우드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인도를 세상에 알렸다. 그가 만난 인도는 어떤 모습일까? 영국인이라는 한계를 그는 뛰어 넘어 참다운 인도의 모습을 발견했을까?


  세상은 넓은면서도 좁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와 서구의 언어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을 1786년 콜카타에 살던 영국인 판사 윌리엄 존스 경은 발견한다. 산스크리트어가 그리스어, 라팅어와 흡사하다는 사실은 이들 언어가 동일한 뿌리에서 갈라져나왔다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인도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윌리엄 존스 경 처럼 인도의 언어를 공부하며 스스로 의문을 품고 이 질문에 답하려할 때만이 자신의 모습을 조금 보여준다. 

  인도의 참모습을 보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인도의 참다운 모습을 보려고하기 보다는 없애버리려고하는 자도 있다. 우리가 세계사 교가서에서 배운, 쿠샨 왕조의 카니슈타왕의 석상이 2001년 4월 카불 박물관에서 탈레반의 손에 박살냈다. 극단적 종교 중심주의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재를 우상으로 규정하고 훼손했다. 머리가 사라져버린 카니슈카왕의 석상은 우리에게 극단적 종교중심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같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굴제국의 아크바르는 달랐다. 그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힌두교 등의 다양한 종교의 화합을 추구했다.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져들지 않고, 관용과 화합이라는 탁월한 정책으로 무굴제국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 샤 자한을 황금 감옥에 가둔 아우랑제브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휩싸여 제국을 병들게 했다. 


  "나는 혼자 와서 이방인으로 떠난다. 내가 누군지, 지금껏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서운 죄를 지었다. 어떤 처벌이 날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구나!"-355쪽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이 믿는 신에게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죄를 저지른다면, 그 죗값은 더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죄를 저지르면서 죄를 짓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종교가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종교를 폭력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라는 색안경으로 인도를 바라보는 사람이 인도의 일부분만 볼 수 있듯이, 국가라는 색안경을 쓴자도, 인도의 일부분만 왜곡해서 바라보게된다. 저자 마이클 우드는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죄악을 정면으로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도 영국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영국이 인도를 200년 동안 식민지배하면서, 수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의 만행은 인도인을 분할하여 통치하려는 계획이다. 뱅골분할령은 인도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이 심화되도록 했다. 비록, 뱅골분할령이 당시에는 실패했을지라도, 이후의 영국의 인도 식민정책의 근간은 힌두와 이슬람교를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간계는 성공해서, 인도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독립되도록 했다. 만약 마이클우드가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를 반성하는 사람이라면, 영국의 뱅골 분할령을 언급하며 통렬한 반성을 했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며, "분할이 영국의 현실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도의 분할은 여러 번에 걸친 실패의 결과였다."라며 영국의 책임을 회피한다고,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만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안경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 영국인 마이클우드는 인도의 참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가 아무리 가족과 인도를 많이 찾고,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할지라도, 그는 제국주의 영국이라는 저질 안경으로 인도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인도를 전공한 학자가 적고, 인도 관련 서적이 적기 때문에 인도에 관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 비록 무더운 여름철 시워한 냉수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지는 못하지만, 마이클우드의 '인도 이야기'는 인도에 대한 지식에 목말라하는 우리에게 한모금의 김빠진 사이다의 맛을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문자의 한계는 분명했다. '살림'출판사가 이책을 다시 출판하려한다면, 부록에 이책의 다큐멘터리를 함께 담아 출판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유튜브에 관련 다큐멘터리를 올려 놓고, 이책에서 안내를 해준다면, 책과 다큐멘터리가 조화를 이룬 재미있는 인도 여행이 될 것이다. 


ps. 흥미로운 사료를 첨부한다. 


"왕으로 봉해진 지 8년이 지나 데바남피야 피야다시 왕-'신드의 사랑을 받는 자'-은 칼링가를 공격했다. 15만 명이 생포되었고, 10만 명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그 뒤에도 거의 같은 수의 사람들이 죽었다."

"칼링가를 무릎 꿇린 뒤 왕의 마음속에서 투쟁심 또는 갈등, 법을 향한 갈망이 싹텄다. 정복에 대한 후회도 생겼다. 자유민을 정복한다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학살하고, 노예로 만든다는 듯이다. 이제 왕은 이런 일에서 고뇌를 느꼈다. 대단히 심각한 일있다."-아소카 석주 8

 

"위대한 구원의 건축가인 쿠샨의 카니슈카, 올바른 분, 정의로운 분, 전제군주, 신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는 분, 나나를 비롯한 모든 신에게서 왕의 자리를 얻으셨다. 왕은 첫 번째 해에 즉위하셨다. '''' 그리고 그리스어로 '칙령'을 발표하신 뒤 아리아어로 번역하셨다. '''''' 왕의 영토는 사케타시, 카우삼비시, 파트나시, 스리캄파시까지 이르렀다. '''' 왕의 의지에 굴복한 모든 왕과 그밖에 중요한 인물들에게 까지, 왕은 인도 전체를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켰다.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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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7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이책 찜!!☝
장바구니로~~@@

강나루 2021-05-07 17:3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05-08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강나루 2021-05-08 19: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두서 없이 쓴글이 당선되어 쑥스럽고요
축하까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초딩 2021-05-08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 이야기의 근원이 여기 인것 같군요 ㅎㅎㅎㅎ

서니데이 2021-05-08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1-05-09 05:1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5-09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행복한 날 되세요^^

강나루 2021-05-09 09:27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이하라님도 행복하고 사랑 넘치는 하루 보내세요.^^
 
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 - 세계사를 뒤흔든 중동의 거대한 바람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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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의 눈으로본 세계사'를 읽고, 이슬람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 책을 읽은지 꾀 오래되어 이슬람에 대한 역사도 희미해져갔다. 이슬람 역사에 대하서 다시한번 빠져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전직 외교관 출신이라 그런지, 이슬람의 역사를 설명하면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의 사건들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막에 떠돌아 다니던 유목민을 이슬람교는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리고 그 힘은 대단했다. 이베리아 반도까지 팽창하며 유럽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이 이슬람이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빈을 포위 공격하며 유럽을 위협하였다. 

  이러한 화려한 이슬람의 역사를 이슬람인들은 잊지 못한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슬람인들은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추구하는 정치인들과 과거 영광스러운 순수 이슬람시대로 돌아가자는 종교인들로 양분된다. 이에 대해서 유광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에 생긴 문제는 이 시대의 중지를 모아 현대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187쪽


  영광스러운 과거가 오늘의 족쇄가 된다면, 우리는 과거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 것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설계해야하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과거만을 고집하며 과거를 오늘에 재현하려고 한다면 이는 과거의 노예일 뿐이다. 우리가 과거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교훈을 얻고, 과거의 승리와 패배의 요인을 알아내어, 오늘을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인 과거의 성공 이야기에 취해서, 과거에 했었던 모든 것을 재현하면 과거의 영광이 돌아올 것으로 착각한다. 역사는 변화와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다. 과거의 일이 현재에 다시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변화된 환경과 발전된 사회라는 조건 하에서 유사하게 반복된다 할지라도, 과거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패배자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이슬람은 중세 유럽인들이 이슬람의 발전된 문물을 배워 근대를 이끌어낸 점을 교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탈레반에서 자행되는 여성 억압과 IS에서 이뤄지는 반인륜적인 행동은 이슬람교의 전통에도 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재미있게 이슬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싶다면, 이책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책에도 몇가지 오류들이 있다. '알라신'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알라'는 '신'을 의미한다. '알라신'은 '신신'의 뜻이니, 너무도 황당한 표현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120쪽에 "오스만이 진출하는 곳에는 언제나 예니체리가 앞장섰다."라는 표현이다. 물론, 예니체리를 미화시키는 표현으로도 볼 수 있으나, 사실과는 다른다. 예니체리는 다른 군대를 보내고, 최후의 결정적 순간에 투입해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부대이다. 그들을 총알받이로 앞장세우는 일은 없다. 

  분쟁이 지금도 계속되는 서아시아 지역(중동)을 바라보며, 이제는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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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4-13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광스러운 과거가 오늘의 족쇄가 된다면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된다는 교훈을 배워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