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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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라고 해서, S대를 나왔다고 해서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노예의 눈으로 강대국을 위한 변명을 하는 학자들을 우리는 많이 본다.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부족한 서양사에 대한 지식을 마음껏 충전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서양 근대사'를 수강했다. 영국에서 학위를 한 교수님이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을 교재로 서양 근대사 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자유무역과 서구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국을 무던히도 사랑했다. 동양에서는 자본주의의 싹이 보이지 않을 때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세계를 선도했다는 내용의 강의가 무척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양에서도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고 항변하자, 그 교수는 쌩뚱맞은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상투틀고 살아야지." 정말,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서양사 교수와 너무도 닮은 견해를 가진 학자의 책을 만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을 읽으며 대학시절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던 그 교수가 생각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은 어떤 책이길레 나의 불편함이 그리도 켰을까?


1. 영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 벌인 비도덕적인 일에 눈감다.

  대학시절, 같이 '서양근대사' 수업을 같이 들었던 타과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왜? 서양에서는 도덕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않나요?"라는 타과생의 질문에, 그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편전쟁을 비롯해서 영국이 저지른 비도덕적인 전쟁을 열거하면서 비도덕적인 서양 제국주의의 모습을 직면하도록 했다. 그 교수는 귀찮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답변을하지 않았다.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고 있지 않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섬나라 영국은 자본이 많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영국의 가장 큰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해적질을 들 수 있다. 1579년 스페인 보물선을 약탈해서 26톤의 은괴를 약탈했으며, 보물선의 선장이 은괴를 빼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기 위해서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는 보물선 선장에게 약탈품 목록을 써주기까지 했다. 저자는 이를 '영국 신사다운 해적'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해적의 나라가 어울릴 것이다. 타국의 보물을 훔쳐 부를 쌓고, 해적질을 잘한 드레이크에게 기사작위를 주었고, 심지어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쳐들어오자, 드레이크가 영국해군을 이끌고 무적함대에 맞서싸운다. 해적과 한몸이되거 도적질로 성장한 나라가 영국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적질을 저자는 비판했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영국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페인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착취해서 부를 쌓았기에 떳떳하지는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도둑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도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면직물 산업에서 시작되었다. 실을 뽑고, 이 실로 면직물을 만드는 과정에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산업은 혁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술혁신을 이룬 영국인들의 놀라운 힘을 칭찬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국의 기술혁신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우리는 약소국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영국산 면직물보다 더 좋은 면직물이 있었다. 바로 인도산 면직물이다. 무굴제국의 황제가 공주에게 살결이 다 비치는 옷을 입었다고 나무라자, 공주는 옷감을 세겹이나 둘렀다고 변명했다. 그정도로 영국산 면직물은 품질이 좋았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질좋은 면직물을 짜내는 영국 직공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직공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도의 면직물 산업은 붕괴했다. 간디가 붕괴해버린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 스스로 물레를 돌려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인도를 침략하는 영국에 타격을 주면서 인도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인도인이 필요한 옷감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서술해야만 한쪽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의 기술혁신을 찬양하는 내용은 있었도,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붕괴시켜 영국의 소비시장으로 만들려 잔인한 짓을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진실을 적지 않는 것도 진실을 왜곡하는 일임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이기 보다는 깡패의 나라였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에 아편을 판매하고, 이를 단속하는 청나라에게 우수한 무기로 위협하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킨 영국 신사의 행위는 절대 신사적이지 않다. 물론, 도덕적이지도 않다. 만약, 약소민족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우리역사를 몸으로 알고 있는 학자라면, 대영제국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책에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영국과 중국이 맺은 통상조약은 영국에게만 독점적 특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 세계로 향한 개방 경제 체제의 일환이었다."-132쪽


  아편을 단속하는 청나라의 정당한 행위를 트집잡아 일으킨 전쟁에 대한 비판은 없고, 오히려 영국이 중국을 개방 경제 체제로 이끌어냈다는 찬양은 나의 눈을 의심케했다. 철저히 제국주의 영국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철저히 제국주의 일본의 시각에서도 역사를 바라보지는 않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2.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는 정당한가?

  우리의 관점에서 인도를 이해하면 인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도는 그들을 200년간 식민지배한 영국과도 웃으며 헤어진 나라이다. 일찍이 완벽히 통일된 인도가 성립된 것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민족적 각성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인도인이라는 관념이 생성되었다. 한반도에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고 오랫 동안 중앙집권적 국가 속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인도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차이가 여기에 있다. 민간인들에게 총을 난사하여 397명이 죽고 1200명이 다친 암리차르 학살 사건 (Amritsar massacre) 을 저지른 영국에게서 독립하고서도 영연방에 남아있는 인도가 우리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대영제국 하의 자치를 주장하는 인도의 민족주의자과 일제 강점기 일제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자치를 주장한 이광수와 같은 친일파를 비교하면 인도와 한국의 역사인식에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다르다하여도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것이 행복할리 없다. 이것은 세계 모든 약소민족의 공통된 역사일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일제 36년이라는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인도의 역사를 서술한다면 영국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는 인도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야하지않을까? 

  '제국의 품격'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을 철저히 부서버린다. 우리가 세계사교과서에서 배운 세포이 항쟁(1857년 ~ 1858년)을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반란"으로도 불릴 수 있고, "항쟁" 혹은 '제1차 독립전쟁"으로도 불릴 수 있다. 한국인 교수가 쓴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했을까? 놀랍게도 "반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저지른 잔혹한 일들에 대해서는 일체 서술하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도가 근대화되었다는 내용의 서술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인도인들의 말을 인용하며 인도인들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고마워하고 있다는 서술을 강조해서한다. 그렇게 영국이 인도에 잔인한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왜? 세포이항쟁이 일어났는지 묻고 싶다. 피식민지인들에게는 그 어떤 제국주의 국가도 선한 존재일 수 없다. 

  저자 박지향은 인도인이 왜? 세포이 항쟁을 일으켰는지를 먼저 서술하기 보다는 영국 군인과 가족이 죽임을 당한 칸푸르 사건을 먼저 서술하며 여자와 아이를 학살한 세포이들의 잔인함을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은 암리차르 학살 사건을 서술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세포이들이 잔인하고 야만적이기에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알맞은 서술방식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박지향은 친절하게 영국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술을 한다. 


  "영국인들이 느꼈던 공포심의 상당 부분은 그들이 사적으로 잘 알고 지냈을 뿐아니라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원주민들이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돌변하여 몇 시간 전만해도 자신들이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던 아이들의 부모들을 난도질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228쪽


  박지향의 서술을 따라간다면 인도인들은 영국인들 앞에서는 상냥하지만 가슴에 칼을 숨기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 글을 뒤집어 읽어보면, 종교에 심취하고 온순한 성격의 인도인이 영국인들 앞에서 굴종하며 가슴속에 비수를 품을 수 밖에 없는 영국의 간악한 식민지배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서술이기도하다.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여 자신들의 부를 빼앗고, 그들의 힘에 굴종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도인들의 분노가 세포이 항쟁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를 박지향은 알지도, 서술하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세포이 항쟁에 대한 평가도 박하게 한다. 


  "이 사건을 인도민족운동의 효시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20세기에 몇몇 인도인이 그렇게 믿고자했지만 세포이 반란은 결코 독립을 위한 국민적 투쟁이 아니었다."-227쪽


  전국적으로 일어난 세포이 항쟁은 무굴제국의 황제를 구심점으로 본격적인 반영운동을 하려하였다. 그러나 무굴제국 황제는 인도인의 구심점이 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영국의 최신식 무기에 세포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향은 인도의 토호국이 영국편에서 세포이를 진압한 사실을 근거로 세포이 항쟁은 '인도 민족 운동의 효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직 완벽한 '인도 민족'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박지향의 주장이 일면 타당해 보기이기도하지만, 세포이 항쟁이 '효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하찮은 운동은 아니다. 영국의 용병이 영국이 지급한 총을 들고 영국과 맞서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지향은 철저히 영국인들의 시각에서 인도를 바라보느라, 인도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박노자가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한탄한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제국주의 국가를 찬양하는 책이 출판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박지향은 인도 독립운동의 상징인 간디도 비판한다. 간디가 근대적 산업과 근대 국민국가와 서양 문명을 거부하고, 근대적 기술을 비판했다는 것이 박지향의 간디 비판 근거이다. 특히 간디가 근대적 기술을 비판하면서도 '사진을 가장 많이 찍힌 당대정치가'라고 간디를 비판한 부분은 코미디로 느껴졌다. 마치 영국이 저지른 부도덕한 전쟁을 비판하자, "그럼, 상투틀고 다녀야지"라고 말한 K교수가 떠올랐다. 간디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힌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박지향의 간디비판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박지향은 한발자국 더 나가서 인도가 힌두-이슬람으로 분리 독립한 것도 간디의 책임인듯 서술했다. 특히 간디가 힌두-이슬람 무력 충돌을 막지 못했다면 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한다. 분리독립을 막기 위해서 단식하다가 힌두 극단주의자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그를 비판하는 장면은, 분단을 막기 위해서 38선을 넘으며 통일 조국을 만들려 노력하다가, 친일파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 김구를 비판하는 뉴라이트 세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박지향, 그녀에게 일제 식민지배는 어떻게 평가될까?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한 것과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을 오버랩시키며 식민지배를 축복으로 여길까?


3.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다!!

  '덜나쁜 제국주의'는 있을까? 이 질문은 '덜 나쁜 강간범'은 있을까?라는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다. 국토를 유린하고 식민지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그들을 '더 나쁜 제국주의자'와 '덜 나쁜 제국주의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영국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 박지향은 "영국은 확실히 '가장 덜 나쁜 제국'이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박지향은 영국인들은 두개의 사명이 있다고 설명하다. 첫째는 인간이 사용하도록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복한 과실을 '영구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은 탁월한 과학 기술로 무장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또한 의회 민주주의, 자유 선거, 기독교 윤리, 법치, 자유주의 경제체제,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탁월한 시스템과 가치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 뿌리 내렸다고 단언한다. 박지향이 '제국의 유산,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박지향은 21세기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영비어천가'를 쓰고 있다. 강자의 폭력을 미화시키며 약자의 신음소리에 철저히 귀를 닫는 박지향의 무책임한 역사 서술에 깊은 한숨이 나온다.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노스차일드와 아랍의 하심가문에게 팔았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의 편을 들어준다면 유대인에게도 아랍인에게도 자신의 국가를 팔레스타인에서 건국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영국이 했다. 그리고 무책임하게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했다. 그결과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겨났으며, 오늘도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의 집에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인도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독립한 것도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종교 분리 정책 때문이다. 인도에서 힌두인과 이슬람인을 등록하게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하나로 뭉쳐 영국에 대항한 세포이 항쟁처럼, 영국은 제2의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분할하여 통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인도는 힌두의 인도와 이슬람의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했다. 그과정에서 수 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무력 대결을 하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이밖에도 영국의 식민지배 유산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 약소국들이 많다. 그들이 박지향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영국이 흘린 떡고물을 보면서 영국이 빼앗아간 떡은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어야만 한다면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가장 났다."(323쪽)라는 글을 책에 쓰기보다는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자"고 말하자.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면,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영어를 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는 노예근성을 가진자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한심함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낀다. 이 땅의 역사학자는 다음 세대에게 식민지 노예 근성을 학습시기기 보다는 자립과 자주 정신, 독립정신을 일깨워주어야하지 않을까? 박지향에게 묻고 싶다. 



  대학시절, 서양근대사를 수강하며, K교수와 잦은 마찰을 겪었다. 나중에는 K교수가 나를 교수실로 불렀다. 서양사 교수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성공한 혁명으로 설명하기에 '문화대혁명은 실패한 운동으로 결론이 났는데 무슨 근거로 성공했다고 하십니까?'라고 질문한 나를 교수실로 부른 것이다. K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논리적으로 대기 보다는, 자신을 타교수와 같이 대해달라고 했다. 타교수님은 전공에 대한 열정과 심오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지는 분들이다. 그러나 K교수는 그러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영국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에 반대하는 주장에 철저히 귀를 닫고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했다. 토론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 공부한 K교수가 학부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교수실로 학부생을 불러 자신을 타교수와 같은 급으로 대해달라는 어리석은 주장에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박지향은 대학에서 만난 K교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제국의 품격'에서 영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서술한 이유를 서문에 "이 책은 굳이 영국의 단점을 들추려하지 않았다. '''' 이 태도는 요즘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다."(7쪽)라고 서술했다. 나이가 들어 심각한 보수화가 진행되었다는 고백으로 읽힌다. 강자의 장점만을 보고, 약자의 고통은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K교수에게 느꼈던 측은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외눈박이 물고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서문에 "정년 후 한동안은 쉬고 .... 다시 책을 쓰고 싶어지면, 그땐 영국에 대한 부정적인 책을 한번 써볼까?(7쪽)" 라고 쓴 것 처럼 대영제국의 어두운면을 서술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외눈박이 물고기는 두개의 눈으로 온전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s.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영국은 16세기 왕과 신민들 사이에 일종의 '정치 계약'에 의한 관계라는 의식이 생겨났으며, 이는 홉스의 사회계약설로 이어진다. 중세 봉건제도가 "쌍무적 계약관계'이며, 홉스와 로크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 "계약"이라는 관념은 서구 문화의 핵심이며, 동양의 관념과는 많이 다른 그들의 문화라는 생각이든다. 

   대헌장은 1215년 만들어진 후, 16세기 까지 30차례에 걸쳐 재확인되었고 보완 발전되었다. "대헌장의 인생에는 공백기가 없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처음은 초라했지만, 끝은 창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른 대헌장의 인생에 공백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재산권","계약"이라는 개념이 영국을 발달시켰다. 자유무역과 안정된 의회제도, 우수한 해군력이 더해져 대영제국이 성립했다. 이점이 영국이 돋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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