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표정있는 역사 7
호사카 유지 지음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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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너무도 먼 이웃 일본! 조선을 움직인 선비와 막부를 움직인 사무라이! 그들이 만든 선비문화와 사무라이 문화는 너무도 다른 한국과 일본을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의 참모습을 알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사 잘 아는 저자가 집필한 책이 필요했다. 일본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유지의 책이 제격이었다. 호사카 휴지의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칼의 문화와 붓의 문화
선비가 만들어낸 붓의 문화와 사무라이가 만든 칼의 문화는 너무도 다른다. 한국에서 여성은 어머니로 기억 되지만 일본에서는 부인으로 기억 된다. 한국에서 무식하다는 말은 엄청난 모욕감을 주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욕이 없다.
한일간에는 엄청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붓으로 싸우는 조선의 선비와 칼로 싸우는 일본의 사무라이는 너무도 다른 문화를 만들었다. 이것이 순종적이면서도 잔인한 일본을 만들었고, 깨어 있는 시민들이 움직이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일본의 거친 사무라이를 길들인 것은 조선의 선비문화였다.

2. 조선 선비, 일본을 가르치다.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라는 책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읽었을 정도로 서양인들에게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소개한 대표적인 책이다. 호사카 유지교수는 무사도를 분석하면 놀라운 사실을 밝혀낸다. 무사도에 소개된 사무라이의 규범 대부분이 조선 선비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사무라이와 선비는 너무도 다른데, 그 규범은 왜이리도 비슷할까?
임진왜란을 우리는 일본에 철저히 유린당한 사건이라 기억한다. 그런데 군사적으로 일본이 조선을 유린했지만 조선 선비의 문화는 일본 사무라이의 정신을 장악한다. 일본군에게 잡혀 아들과 딸을 잃어버리고 포로로 끌려간 강항은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조선 성리학을 가르처 준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제자를 길러 일본에 성리학이 뿌리 내리게한다. 호사카 유지교수는 조선 성리학이 에도막부가 200여년 동안 평화를 누린 비결 중에 하나라고 지적한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다르면서도 비슷한점이 있는 이유는 임진왜란 시기 일본에 전해진 조선 성리학이 사무라이의 야생의 기질을 길들였기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조선 성리학이 대한해협을 건너니 사사도가 되었다. 사무라이를 길들였으나 그 야만적인 본성을 없애지는 못했다. 사무라이의 침략 본성이 동아시아를 피로 물들게 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이 조선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조선 성리학의 중심이 된 심성론을 깊이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사무라이가 조성 성리학의 심성론의 중요성을 깨달아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지금의 일본 정치인과 순종적인 일본시민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일본 시민이 깨어 있는, 옳은 일을 행동하는 시민으로 거듭나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p.s. 재미있는 사료가 있어 적어둔다
아시카가 요시미쓰에 이르러서는 명나라에 무릎을 꿇고 신이라 칭했다. 외부에도 신을 칭함은 인신의 도리가 아니다. (중략) 몸은 천하의 실권을 쥐면서 신임을 이방에 칭하여, 이방으로 하여급 천조를 번신처럼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쿠다이(국처) 를 손상시켰다. -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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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정훈 옮김 / 김앤김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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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았는가? 피터 자이한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포기하고 고립주의로 돌아간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며 미국없는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미국과 친해지라 말한다. 미국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오만한 주장이라 생각되지만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이라면 브레튼우즈체제 성립 이전의 고립주의로 회귀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는듯하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오만한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하며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을 펼쳤다. 내 생에는 일어나리라 상상하지 않았던 코로나19 펜데믹이 발생하고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라들의 민낯을 보며 그 어떤 가능성도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1. 지금의 세계질서는 기이한 현상인가?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결국 그 탐욕의 끝은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유럽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초강대국 미국을 탄생 시켰다. 미국도 세계를 식민지로 지배할 수있었겠지만 미국은 다른길을 선택한다.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항해의 안전을 제공한다. 기존 패권국이 해오던 수탈 방식과는 너무도 다른 방식이었다.
세계는 미국이 만든 브레튼우즈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과 같은 나라는 번창하였다. 미국이 깡패국가로 지목한 나라는 경제적 파국으로 내몰렸다.
그런데 미국이 변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은 미국이 당연히 해오던 일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이 타국에서 피를 흘리며 돈을 쓸 필요가 있가? 한국과 같은 부자나라에 미국이 군사력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가? 피터 자이한은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에 이책을 통해서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기할 미래를 제시했다. 미국이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항해의 안전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없는 세계는 무질서한 아비규환 지옥이다. 유일한 초강대국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 남아있지 않는다. 이때 미국의 무력으로 보호받으며 발전했던 한국은 이제 일장춘몽에서 깨어나야만할까?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 받는 천혜의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미국이 셰일혁명으로 날개를 달았다. 더이상 석유를 구하기 위해서 중동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다. 자원과 인구학을 이용해서 미국의 미래를 살펴봐도 세계에서 미국의 미래는 밝다.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저출산과 고령화의 덧에 빠져있다.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불안하며 자원도 안전적으로 조달하기 힘들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그 피해를 톡톡히 보는 나라도 많다.
피터 자이한은 미국없는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미국과 친해지라 말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미국없는 미래를 예측한 피터 자이한의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2. 피터 자이한의 주장이 가진 함정
세계적 석학들은 미래를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모두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피터 자이한은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피터 자이한은 2040년 구미당기는 술 한 병을 사들고 찾아오라는 여유를 부린다.
피터 자이한의 예측이 들어 맞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 되어야한다.
첫째, 트럼프세력이 군산세력을 이겨야한다. 고립주의로 회귀하려는 트럼프와 분쟁을 유발해서라도 세계 각지에 미군을 보내려는 군산세력의 대결에서 트럼프를 중심으로한 세력이 승리해야한다. 트럼프가 노련하게 군산세력과 맞서고 있지만 군산세력의 반격도 만만치않다.
둘째, 탁월한 리더쉽이 필요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에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타국에 반감을 얻어서는 안된다. 왕은 여우의 머리와 사자의 심장을 가져야한다. 트럼프식 일방주의는 수많은 적을 만들어 미국을 고립시킨다.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도 지키는자가 어리석다면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셋째, 미국의 지정적 잇점을 위협하는 요인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ICBM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있다. 발전은 미국의 지정학적 잇점을 무력화 시킬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을 보듯이 예측할수 없는 신종전염병은 미국을 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 기후변화도 미국을 위협할 수있다. 피터 자이한은 미국은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미미하게 받을 것이라 예측했으나 기후변화의 피해는 지정학자인 피터 자이한의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밖에도 내가 예측하지 못한 수많은 변수들이 미래에 펼쳐질 수있다. 우리는 오만해지기 보다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피터 자이한은 ˝간단히 말해서 세계는 그야말로 지옥을 향해가는데 미국은 여기서 쏙 빠지게 된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지옥에서 벗어 나고 싶다면 미국의 친구가 되라! 그의 확신에찬 몇몇 주장은 빗나가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에 위협이되지 않기에 미국은 중국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예측은 미중무역전쟁을 보면 빗나간예측이었다. 또한 미국은 베네수엘라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통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역시 빗나간예측이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패권을 포기한다는 예측도 빗나갈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쥔자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 놓지는 않는다. 하물며 세계 패권인들 말해서 무엇하랴!
미국 우월주의에 빠진 피터 자이한의 예측이 빗나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지정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정학을 이용하는 인간의 리더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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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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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기획살인˝이라는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었다.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를 문재인 정권이 기획했다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원자력 전공학생들이 대학가에 붙인것이다. 이들에게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교훈은 찾아 보기 힘들다. 과학기술 만능의 사고관으로 무장한 일본이 치유할 수없는 상처를 지구에 남겼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것은 물론이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태평양을 방사능 오염수로 채우려하고있다. 일본의 과학만능의 사고관을 들여다본다면 탈핵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을 펼쳤다.

1. 사무라이가 과학 기술을 받아들이다.
밈(Meme)이라는 말이있다. 문화적 유전자라 번역하는 밈은 한 사회에서 유전자 처럼 문화정보가 유전된다는 개념이다. 일본인의 밈에는 사무라이의 칼이 담겨져 있다. 같은 과학기술도 일본인들은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로 받아들였다.
의사의 난학이 사무라이의 양학이되면서 일본인들은 서양의 모든것을 배우고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서양으로 유학가는 젊은이들에게 일본인을 개량하기 위해서 백인여성을 아내로 맞이해 오라고 훈시하기까지했다. 그러나 서양의 학문이라 할 지라도 일본이 군사강국이 되기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사무라이의 칼이라는 밈이 작동한 결과이다. 망치를 손에 쥔 목수에게 모든 것은 못으로 보이듯이, 칼을든 사무라이에게 모든것은 베어버릴 적이거나 적을 쓰러뜨릴 도구로 보였다. 서구의 과학기술은 적을 쓰러뜨릴 너무도 강력한 칼이었다. 일본은 과학기술이라는 보검을 얻기위해서 그 어떠한 댓가도 치룰 준비가 되어 있었다. 1543년 다네가시마의 도주가 조총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딸을 포르투갈 남자에게 바쳤듯이 말이다.

2. 사무라이, 과학기술이라는 보검을 얻기위해 영혼을 팔다.
일본의 근대는 천운이 함께한 시기였다. 19세기 후반 서구 각국에서 과학연구가 사회적으로 제도화 되었고 직업과학자가 생겨났다. 서구 과학기술을 습득하기에 장벽이 너무 늦았다. 에너지혁명이 일어난지 반세기밖에 안되었으며 선진국은 기계기술을 일본에 팔기에 바빴다. 선진국이 실패를 쌓으며 발전시킨 과학기술을 일본은 실패없이 배워갔다.
아무리 천운을 타고 있는 일본이라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했다. 일본을 군사강국으로 만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이를위해서 여공들은 주야 2교대라는 살인적인 노동에 혹사 당했다. 일본인이 존경하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지는 이러한 여공의 모습을 보며 국제적 경쟁의 이점이라 평가했다. 비인도적인 살인적인 노동을 근대화를 통한 군사강국 일본을 만들기 위한 잇점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노동자와 농민만이 일본 근대화의 희생양인것은 아니다. 일본의 자연도 고통을 받았다. 아시오 구리광산 광독 사건이 대표적 사건이다. 1885~1895년 일본 국내 구리의 4할 이상을 생산한 아시오광산은 어민과 농민에게 커다란 고통을 준다. 채광과 정련과정에서 나온 오염수가 와타라세강을 오염 시켰다. 오염수는 농지를 오염시켰다. 물고기는 떼죽음 당하고 곡식은 열매를 맺지 못했으며 가축과 사람은 병들어갔다.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일본정부는 국익을 내세워 기업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국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 시킬 수있다는 논리는 패전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미나마타병과 이타이이타이병은 일본의 기업과 정부 학계가 하나로 뭉쳐 만들어낸 괴물이다. 기업은 이익을 위해서, 정부는 성장을 위해서, 학계는 기업이 제공하는 이익을 얻기위해서 환경 오염을 묵인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돈과 권력 권위를 이용해서 기업의 범죄행위를 용인했다. 그러나 가장큰 문제는 생명의 어머니, 자연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자연을 괴롭혀 경제 발전을 통한 군사 강국이 되려했다. 결국 그 속에서 자연이 죽어갔다.

3. 과학자가된 사무라이의 폭주
메이지유신 시기, 사무라이들은 천대 받았던 과학기술자가된다. 사무라이들은 군사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과학을 연구했다. 최신 무전기술을 전쟁에 도입해서 화약제국 러시아를 제압했다. 1차 세계대전은 과학이 전쟁승리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일본정부는 전쟁 승리를 위해서 과학기술에 투자했다. 기업은 이익을 위해서 군수 무기를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얻기위해서 마음껏 연구하기 위해서 국가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했다. 이 시기, 아니 일본의 과학자는 ˝전문적 연구자가 수행해야할 사회적 역할은 의식하지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 만큼 권력자가 다루기 쉬운 것은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낸 아이히만 처럼 자신이하는 연구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올지 생각하지않았다.
일본이 패망했다. 일본의 총력전에 충실히 봉사한 과학기술자들은 반성했을까? 천만의 말씀,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지 못한 핵을 미국이 만든 것에 경의를 표하고 미국보다 먼저 핵무기를 만들지 못한 것을 송구스러워했다. 일본인들은 패전의 원인을 과학기술에서 찾았다. 그래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경제 성장에 매진한다. 특히 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핵기술을 얻기위해 부단히 노력한 일본은 핵발전소를 가동하며 핵무장의 기회를 엿본다.
2011년 3월 11일 지옥의 문이 열렸다. 기술강국 일본, 안전한 일본이라는 신화는 허상이었다. 통제불능의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국토의 70%가 방사성 세슘에 오염 되었다. 자연을 고문한 댓가를 일본을 포함한 지구인들이 나눠 부담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있다. 더 이상 자연은 고통을 참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기계장치가 발명되자,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힘쎈 남자가 하던 일을 여성과 아이들이 할 수있게 되었기에 노동은 더욱 가혹해졌다. 전등이 발명되자, 야간노동이 가능해졌다. 주야간 2교대라는 고강도 노동에 인간은 내몰렸다.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기계 그자체 만으로는 결코 인간 노동이 경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학기술도 과학기술 그 자체만으로 인류에게 행복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 과학기술을 부릴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숙할 때만이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미소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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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싸우는가? -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전쟁과 평화 연대기
김영미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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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세계를 만나는 시간 NOW"를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소식을 접하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 특히 국제분쟁 전문 PD 김영미의 "중동백과사전"은 생생한 현장성이 살아 있어 재미와 정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코너였다. 서가에서 김영미 PD의 책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펼쳤다. 처음 나의 눈에 들어온 나라는 레바논이었다. 그런데, 최근 폭발 사고가 일어난 베이루트가 책속에 소개된 레바논이라는 사실을 책장을 한참 넘긴 다음에게 머릿속에 떠올렸다. 분명, 김영미 PD가 자세히 설명해준 베이루트 폭발사고를 머릿속에 담고 있었는데, 책으로 만난 베이루트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은 조각난 상태로 파편이 되어 나의 머릿속을 떠돌뿐, 하나의 지식으로 머릿속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편화된 정보를 하나의 지식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다읽기로 마음 먹었다. 


1. 강대국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가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도 다양하지만, 상당수는 강대국들의 욕심이 분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그 사례 두가지를 살펴보자. 

  '블랙 위도우(Black Widow)'를 아는가? '어벤져스' 스리즈에 미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매혹적이면서도 악당들을 유연한 몸놀림으로 제압하는 강한 여성 전사이다. 그런데, 현실 속의 '블랙 위도우'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이다. 사랑하는 이의 원수를 갚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슬픈 존재이다. 2002년 10월 23일, 체첸군이 모스크바 돔쿨투리 극장에 난입하여 "러시아군의 일주일 내 체첸 철수"를 요구하며 인질극을 벌였다. 러시아는 마취제를 사용해서 인질로 잡혀 있던 민간인을 포함해서 체첸 '자살 특공대'를 제압했다. 50여명의 체첸 '자살 특공대' 중에는 19명의 여성 시신이 있었다. '검은 미망인(Black Widow)'이라 불리는 여인들이었다. 러시아군에게 가족과 남편을 잃은 '블랙 위도우'들은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살 특공대'가 되었다. 

  소련이 붕괴했지만, 러시아는 체첸의 독립을 허락하지 않았다. 체첸 국경 지대인 캅카스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180억~35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기에 러시아는 체첸을 놓아 주지 않았다.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석유를 비롯한 다아야몬드 등의 갑비싼 광물들이 많은 나라들은 강대국들에 의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과 분쟁에 고통받는 나라들이 많다. 이들 나라들은 '자원의 저주'를 받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풍부한 지하자원을 지킬수 없다면, 풍부한 자원은 오히려 재앙이 된다. 체첸의 풍부한 석유와 가스가 체첸에게는 행복을 주기보다는 러시아의 식민지배라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지하자원도 풍부한 러시아의 욕심은 끝이 없다. 999석을 가진 부자가 1000석을 채우려 가난한자의 1석을 빼앗으려는 모습을 국제 사회에서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도 자국의 욕심을 채우는데 혈안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사담 후세인은 '중동의 헌병'이라 불릴 정도로 친미적인 사람이었다. 미국을 대신해서 이란과 대리전쟁도 치뤘으며, 미국은 이란의 병력 배치를 인공위성으로 찍어 후세인에게 알려줄 정도로 미국과 후세인의 관계는 돈독했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할 때도 이라크 외교관이 미국 외교관에게 침공여부를 물었다. 미국은 "그건 당신들 일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을 후세인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도 미국은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로 해석했다. 결국 걸프전쟁이 일어나 이라크는 경제제제를 받았다. 아버지 부시에 이어서 아들 부시도 이라크를 침공해서 후세인은 제거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강대국의 외교정책이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업보가 있기에 미국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쿠르드족 문제를 떠올리면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처칠이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을 좌절시키기 위해서 독가스로 쿠르드족을 죽이기도 했으며, 후세인이 독립운동을 하는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살해하기도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때는 물론이고, 미국이 IS를 제거할 때도 쿠르드족은 미국을 믿고 이라크와 IS를 상대로 힘겨운 전투를 벌였다. 여성들 까지 전투에 참여할 정도로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한 미국을 믿고 자신들의 모든 것은 쏟아 부었다. 그러나, 미국은 연이어서 쿠르드족을 배신했다. 약속했던 독립국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강대국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약자를 배신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생각한다. 

  '세계를 만나는 시간 NOW'에 출연한 쿠르드족 출신 기자 알파고 시나씨는 미국에게 이용만 당하면서 버림받는 쿠르드족을 "막대기"에 비유했다. 필요할 때 강대국의 적을 때리는 막대기로 상요하다가 필요가 없으면 언제든지 버림받는 "막대기"가 바로 쿠르드족이이다. '한번 속으면 속인 사람의 잘못이지만, 두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못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쿠르드족은 영국을 비롯한 수많은 강대국들에게 수차례 이용만 당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강대국의 외교정책을 우리는 반면 교사로 삼아야한다. 서울시 광장에 성조기와 태극기, 심지어는 이스라엘기를 가지고 시위하는 철없는 노인들이 있다. 미국의 비위만 맞추려 간도 쓸개도 다 내어주려하는 철부지들이 있다. 이들이 냉혹한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날이 오길 소망해본다. 


2.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가장 가까운 존재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마르라는 소년의 누나는 자살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폭탄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오마르는 자신의 누나가 너무도 자랑스러우며, 자신도 누나의 뒤를 따르겠다고 말한다. 김영미 PD는 오마르의 말에 너무도 놀란다. 


"나는 내 운명을, 아니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알아요. 난 한 명이라도 이스라엘 사람을 죽이라고 태어났어요"


  오마르는 너무도 일찍 철이들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축구하고, 부모에게 응석을 부려야할 나이에 철이들어버렸다.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알고, 자신도 그 운명을 따라가야하는 사실을 너무 일찍알아버렸다. 너무 어린 나이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행복해야한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은 너무도 이른 나이에 자신의 운명을 알아버렸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극단 세력들은 갈등을 부추긴다. 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부정부패를 숨기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에 의해서 자식이 죽음을 당한 이스라엘 어머니에게 팔레스타인 어머니가 찾아가 위로했다. 얼마 후, 이스라엘인에 의해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시신이 되어 발견되었다.그 장례식에 자식을 잃은 이스라엘 어머니가 찾아가 위로했다. 자녀를 둔 어머니라면, 팔레스타인이든 이스라엘이든 자식 잃은 고통은 같을 것이다. 그런데, 피의 보복을 통해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 화해의 꽃를 피울 수는 없을까?

  죽음 곁에 살아야하는 사람은 팔레스타인 사람만이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젊은이들 중에서도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아프가니스탕에 파견된 미군의 나이는 18살에서 23세이다. 김영미 PD가 군대에 지원한 동기를 묻자, "대학에 가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전쟁에서 희생되는 존재들은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이다. 무기와 군수물자를 파는 부자들은 돈을 벌고, 가난한 자들은 시체를 내어준다. 미국은 모병제 국가이다. 군대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돈이 필요한 가난한자들이다. 그들은 방금전까지 자신과 대화했던 전우가 시신이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아야한다. 그리고 자신도 언제 죽은 전우의 품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한다. 

  미국의 군인과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은 다 같이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미군은 죽음을 곁에 둔 댓가로 자신이 필요한 돈을 얻는다면,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죽음을 통해서 가족과 민족의 울분을 토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가 이들을 죽음 곁으로 내모는가?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을 개혁할 방법은 없을까?

  언제나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을 우리가 직접적으로 도울 방법이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바라만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해야한다. 김영미 PD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을 소개한다. 공정무역을 통해서 콜롬비아 초콜릿을 먹는 방법이다. 납치와 마약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콜롬비아에서 코카인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커피나무나 카카오나무를 재배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우리가 콜롬비아 초콜릿과 커피를 마신다면, 마약관련 범죄가 줄어들 것이다. 나의 소비를 바꿔서 세상을 보다 안전하게 만든다면 해볼만한 일이지 않을까? 


 서울에서 체첸에 가는 시간과 서울에서 동티무르에 가는 시간 중에서 어느 시간이 더 오래 걸릴까? 체첸은 러시아 서쪽 끝에 있고, 동티무르는 동남아시아에 있다. 정답은 동티무르이다. 체첸까지 12시간, 동티무르까지 12시간 30분이 걸린다. 평면지도에 익숙한 우리에게 좌우는 멀게 느꼊지만, 위 아래는 가깝게 느껴진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평면적 사고가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알된다. 국제 분쟁 전문 PD 김영미의 '세계는 왜 싸우는가' 세계를 평면적으로 인식했던 우리에게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주고 있다. 알리의 죽음을 묻자 마치 눈앞에서 자신의 부모가 죽은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시야파이야기와 포르투갈지배가 계속되길 바라며 친포르투갈 성향을 드러낸 동티무르인과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바라는 친인도네시아 민병대를 이야기, 엄마폭탄이 터지면서 아기폭탄이 사방으로 튀어나와 수많은 살상자를 낳는 끔찍한 집속탄을 우리나라가 생산해 수출한다는 이야기들은 씁쓸하면서도 오늘을 제대로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 책에서 아쉬움은 있다. 전쟁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분쟁지역을 누비는 김영미 PD의 노고는 감사하지만,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종교와 민족의 갈등 이전에, 강대국의 이익과 자본가와 군산세력들이 전쟁을 원한다는 사실을 김영미 PD는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을 없애려면 전쟁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자들을 먼저 없애야한다는 평점한 진리를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또한가지, 로잉야족 사태에 침묵하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서술하면서 "수치여사를 보며 민주화투사라도 정의를 제대로 보고 배우지 않으면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미얀마의 상황에서 아웅산 수치여사는 실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권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여사가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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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진다 - 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꽃은 사쿠라, 사람은 사무라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들은 '사쿠라'를 좋아한다. '사쿠라'는 '사무라이'와 함께 일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런데, 일본을 상징하는 '사쿠라'가 진다니, 무슨 뜻일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은 '첨단 기술과 번영하는 일본'이라는 가면을 벗고 일본의 민낯을 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술이 뛰어난 일본에서 원전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했지만, 일본의 첨단 기술은 허황된 신기루였다. 자연재해에 대비해서 정밀한 매뉴얼을 준비하고 안전한 일본을 만들었다는 고정관념도 허울 좋은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그렇게 사쿠라는 지고 있다.

  "영속패전론"을 읽고 일본의 민낮을 본 이후, 시라이 사토시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살지만, 너무도 다른 일본인들의 정신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쿠라 진다."를 꺼내 들었다. 거리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와 "영속패전론"이라는 명저를 쓴, 시라이 사토시의 대담을 통해서 현대 일본의 민낯을 보자. 


1.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본인

 아베가 그토록 고대하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이 올해 열릴 가능성은 아베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가능성보다 낮다. 아베는 '2020 도쿄 올림픽'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극복한 일본'이라 포장하여 세계에 선전하려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재앙이다. 도쿄까지 고농도 방사능 오염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특정비밀보호법으로 언론을 통제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종결되었다며 일본 국민을 속이고 있다. 빨리 도쿄 올림픽을 손절매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진실을 알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를 줄이려 노력해야함에도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덮으려고만 한다. 일본속담에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다.(臭いものに蓋をする くさいものにふたをする)"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덮을 수 없는 것을 덮으려한다. 시간이 지나면 후쿠시마 원전의 재앙은 더욱 커지고 섬나라 일본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다. 왜? 일본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을 하는 것일까?

  우치다 다쓰루는 재미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2대 혹은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여관의 주인이, 지역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서 내려온 젊은이를 미워하고, 지역 경제를 소생하는 일을 방해한다. 결국 여관은 도산하고, 여관 주인은 타여관의 지배인이 되거나 연금 생활을 한다. 그런데, 도산한 여관의 주인은 더욱 행복한 모습이라고 한다. 왜일까? 여관일을 하고 싶지 않지만, 가업이기에 자기 손으로 여관을 문닫게 할 수 없었다. 여관주인은 차라리 지역 경제가 나빠져 도산을 한다면, 여관일을 그만해도 되기에 오히려 여관이 도산하기를 고대했다고 한다. 

  우리는 10대째 가업을 잇는 일본인을 바라보며, '전통과 가업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이라 칭찬한다. 하지만, 그러한 칭찬을 하기 이전에 가업을 넘겨 받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해서 가업을 잇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가업을 잇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과업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한국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가업을 선택한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타인의 바람에 부응해서 삶을 사는 노예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교토의 "시미센"을 보면서 '전통을 사랑하고 지키는 일본인'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의 바램과 의지를 꺽고 전통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야하는 일본인의 노예적 삶을 생각해야했다. 

  '전통의 노예'가 되어 파산하기를 고대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일본 엘리트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아베정권의 실정을 지적하며 아베를 권좌에서 끌어내야하는 일본 엘리트들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오히려 아베의 눈치만 보고 있다. 시라이 사토시와 우치다 다쓰루가 지적했듯이, 일본 엘리트들에게는 '파괴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미국과의 전쟁은 자멸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서도 1945년 8월 15일 폐허가 된 제국의 수도를 바라보면서 전쟁이 끝났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는 다수의 일본 국민들을 보는 듯하다.

  건강상의 문제로 아베는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아베의 뒤를 이은 스가는 아베의 우경화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아니,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며 태평양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려하고 있고,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한일 협정'을 근거로 한국과 역사 갈등을 증복 시키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섬나라 일본은 물론이고, 지구의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이다. 이는 물고기 소비량 세계 1위인 일본인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지구의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이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 부정은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우경화 정책은 일본군부가 침략전쟁을 확대시키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고 패망했듯이, 일본을 파멸로 몰고갈 것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는 정화할 수 없으며, 역사문제로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는 세계의 정의로인 시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2.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을 추구하는 일본

  2019년 아베는 트럼프에게 275만톤, 약 600억엔(약 6650억원)의 옥수수를 강매당했다. 아베는 “아베 정부가 미국에 아양 떨려고 세금을 마구 쓰고 이를 또 은폐했다”는 비난을 일본 국민들에게 들었다. 한국에게는 너무도 뻔뻔한 일본이, 미국에게는 너무도 작아진다.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저자세 대미외교를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은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정책이라 말한다. 

  "대미 종속"과 "대미 자립"은 서로 상반된 말이다. 마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말과 비슷하다. 일본의 "초사대주의" 외교를 우치다 다쓰루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잘보여 출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예로들어 설명한다. 천한 신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벼락 출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운 겨울에 주인의 신발을 가슴에 품으며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했기 때문이다. 가게 점원이 열심히 일을 해서 가계 주인에게 잘보이면, 주인이 점원에게 분점을 차려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일본은 하고 있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정책으로 오키나와를 돌려 받았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경제 성장을 이뤘다. 이러한 행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일본 우익은 하고 있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 일본은 미국에게 굴욕적인 비밀 조약을 체결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CIA 요원으로 일했다. 그뿐 아니다. 점령국 소속 장교(장군)가 자신의 부인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자신의 아내를 내주기까지 했다. 자신의 침실을 미국 장교(장군)에게 내어주고, 아내를 첩으로 바치면서도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을 꿈꾼 것이 일본 우익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굴종적인 모습을 일본 국민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미국과 대등하게 겨루는 일본국 대표", "미국은 일본에 변함 없는 애정을 갖고 있다."라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굴종적인 대미외교를 계속한다. 

  미군 점령기 일본의 우익들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 우익들은 이 시기를 참고 견딘다. 칼이 지배하는 천년이 넘는 막부시대를 살아온 그들이기에 분노와 울분을 참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행동임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상관에게 잘보이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비루해진다. 비루한 사람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해지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폭압적으로 굴림한다. 미국에게는 굴종적 저자세 외교를 하지만, 한국과 아시아의 약소국에게는 태평양전쟁시기 일본의 만행을 부정하며 폭압적 외교를 전개는 일본의 모습에서 '비루함'을 엿본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이라는 외교전략을 계속 유지하는 이상 일본의 '비루한' 외교는 계속될 것이다. 


3. 무엇이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일본을 전범국으로 만들었는가?

  프랑스는 전승국일까? 전범국일까? 드골의 '자유 프랑스'를 처칠과 루스벨트는 처음부터 프랑스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시 괴뢰정권을 프랑스 대표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드골의 '자유 프랑스'와 레지스탕스가 해방시키고,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자, 미국과 영국은 드골을 인정했다. 패텡의 비시정권을 프랑스의 대표로 본다면, 프랑스는 점범국가이다. 반면, 얼마 안되는 드골의 '자유 프랑스'를 프랑스의 대표로 인정한다면, 프랑스는 전승국이된다. "좋은 프랑스인이 모두 일치하여 대독 협력자와 싸워 독일군을 내쫓았다."라는 이야기는 만들어진 신화이다. 사실 레지스탕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독일군의 패전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이며, 독일에 협력했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레지스탕스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우치다 다쓰루는 프랑스 이야기를 하면서, 패전을 부인하는 상태를 일컫는 "영속패전"은 프랑스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비시 정권 참여자가 제4공화국에 참여한 프랑스나, A급 전범임에도 전후 일본 수상이 되거나 정치무대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일본이나 "영속 패전"상태인 점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일본과 프랑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무엇이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만들고, 일본을 '전범국'으로 만들었을까?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는 프랑스와 일본이 "영속 패전" 상태라는 점은 같지만, 그속에서 프랑스와 일본의 다른점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프랑스가 나치에 협력한 자들을 숙청하고 미국의 독주에 대해서 당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국가로 인식되는 반면, 일본은 점범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과거의 잘못에 반성을 하지 않는 비도덕적인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같은 "영속패전"상태이지만, 프랑스와 일본은 너무도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무엇이 다를까?

  그차이는 너무도 작은 차이에 있다. 비시정권이 활개칠때, 드골은 "자유 프랑스"를 만들어 독일에 대항했다. 비록 미약하지만 레지스탕스들이 독일에 대항해 투쟁했다. 반면, 일본에는 "자유 프랑스"도 없었고, "레지스탕스"도 없었다. 천황을 부정해야하는 공산주의자들 마져도 눈물을 흘리며 천황제를 버릴 수 없다며 전향서를 썼다. 그리고 일본인들을 그 전향서를 감동 깊게 읽는다.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의사는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다. 바닷물에 녹아 있는 소금의 양은 바닷물에 비하면 너무도 작다. 그러나 3%의 소금이 있기에 바닷물은 썩지 않는다. 프랑스에는 3%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있었지만, 일본에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3%조차 되지 않았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우스는 제정 초기 로마 주민들을 "정치적 소신도 없이 물질적 이득과 쾌락만 쫓는다."라고 비판했다. 3%의 소금과 같은 깨어 있는 시민이 없는 로마는 결국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등장했다. 이렇듯, 작은 차이가 폭주하는 일본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영속패전"의 상태로 만들었다. "대중을 다루는데는 빵과 서커스면 충분하다."라는 히틀러의 말이 일본에는 아직도 유효한 명제로 남아 있다. 3%의 소금과 같은 깨어 있는 시민이 없다면, 히틀러의 말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영화 "고질라"를 기억하는가! "고질라"는 원래 일본에서 창작된 작품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고질라를 "근대 일본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적 억압, 죽은 자들의 원한, 잃어버린 전통, 더럽혀진 산하와 같이 일본인이 내버린 것들의 복수담"으로 해석한다. 일본이 내다 버린 것에는 아시아 태평양의 수많은 희생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고질라"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일본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올바로 역사교과서를 서술을하고 이를 일본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냄새 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고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뚜껑의 틈을 비집고 냄새는 다시 새어 나온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전세계의 소녀상을 없앤다고 일본의 전쟁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 시키길 원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반성을 행동으로 증명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요원한 일이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피해국이 약소국이라며 무시하는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고질라"가 출현했듯이, 다시 한번 "고질라"가 출현하여 일본 열도를 삼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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