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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이야기 - BBC 한 권으로 읽는 인도의 모든 것
마이클 우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살림 / 2018년 11월
평점 :
서구 문명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찾는다. 수 많은 히피들이 그러했듯이 신비의 나라 '인도'를 상상하며 인도를 찾아 떠나지만, 그들이 상상하는 인도와 현실의 인도는 다른다. 머릿속에 상상하는 인도의 모습만을 보려고 노력하는 그들에게 인도는 자신의 수많은 모습중에서 일부만 보여준다. 마이클 우드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인도를 세상에 알렸다. 그가 만난 인도는 어떤 모습일까? 영국인이라는 한계를 그는 뛰어 넘어 참다운 인도의 모습을 발견했을까?
세상은 넓은면서도 좁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와 서구의 언어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을 1786년 콜카타에 살던 영국인 판사 윌리엄 존스 경은 발견한다. 산스크리트어가 그리스어, 라팅어와 흡사하다는 사실은 이들 언어가 동일한 뿌리에서 갈라져나왔다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인도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윌리엄 존스 경 처럼 인도의 언어를 공부하며 스스로 의문을 품고 이 질문에 답하려할 때만이 자신의 모습을 조금 보여준다.
인도의 참모습을 보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인도의 참다운 모습을 보려고하기 보다는 없애버리려고하는 자도 있다. 우리가 세계사 교가서에서 배운, 쿠샨 왕조의 카니슈타왕의 석상이 2001년 4월 카불 박물관에서 탈레반의 손에 박살냈다. 극단적 종교 중심주의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재를 우상으로 규정하고 훼손했다. 머리가 사라져버린 카니슈카왕의 석상은 우리에게 극단적 종교중심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같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굴제국의 아크바르는 달랐다. 그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힌두교 등의 다양한 종교의 화합을 추구했다.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져들지 않고, 관용과 화합이라는 탁월한 정책으로 무굴제국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 샤 자한을 황금 감옥에 가둔 아우랑제브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휩싸여 제국을 병들게 했다.
"나는 혼자 와서 이방인으로 떠난다. 내가 누군지, 지금껏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서운 죄를 지었다. 어떤 처벌이 날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구나!"-355쪽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이 믿는 신에게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죄를 저지른다면, 그 죗값은 더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죄를 저지르면서 죄를 짓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종교가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종교를 폭력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라는 색안경으로 인도를 바라보는 사람이 인도의 일부분만 볼 수 있듯이, 국가라는 색안경을 쓴자도, 인도의 일부분만 왜곡해서 바라보게된다. 저자 마이클 우드는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죄악을 정면으로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도 영국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영국이 인도를 200년 동안 식민지배하면서, 수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의 만행은 인도인을 분할하여 통치하려는 계획이다. 뱅골분할령은 인도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이 심화되도록 했다. 비록, 뱅골분할령이 당시에는 실패했을지라도, 이후의 영국의 인도 식민정책의 근간은 힌두와 이슬람교를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간계는 성공해서, 인도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독립되도록 했다. 만약 마이클우드가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를 반성하는 사람이라면, 영국의 뱅골 분할령을 언급하며 통렬한 반성을 했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며, "분할이 영국의 현실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도의 분할은 여러 번에 걸친 실패의 결과였다."라며 영국의 책임을 회피한다고,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만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안경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 영국인 마이클우드는 인도의 참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가 아무리 가족과 인도를 많이 찾고,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할지라도, 그는 제국주의 영국이라는 저질 안경으로 인도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인도를 전공한 학자가 적고, 인도 관련 서적이 적기 때문에 인도에 관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 비록 무더운 여름철 시워한 냉수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지는 못하지만, 마이클우드의 '인도 이야기'는 인도에 대한 지식에 목말라하는 우리에게 한모금의 김빠진 사이다의 맛을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문자의 한계는 분명했다. '살림'출판사가 이책을 다시 출판하려한다면, 부록에 이책의 다큐멘터리를 함께 담아 출판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유튜브에 관련 다큐멘터리를 올려 놓고, 이책에서 안내를 해준다면, 책과 다큐멘터리가 조화를 이룬 재미있는 인도 여행이 될 것이다.
ps. 흥미로운 사료를 첨부한다.
"왕으로 봉해진 지 8년이 지나 데바남피야 피야다시 왕-'신드의 사랑을 받는 자'-은 칼링가를 공격했다. 15만 명이 생포되었고, 10만 명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그 뒤에도 거의 같은 수의 사람들이 죽었다."
"칼링가를 무릎 꿇린 뒤 왕의 마음속에서 투쟁심 또는 갈등, 법을 향한 갈망이 싹텄다. 정복에 대한 후회도 생겼다. 자유민을 정복한다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학살하고, 노예로 만든다는 듯이다. 이제 왕은 이런 일에서 고뇌를 느꼈다. 대단히 심각한 일있다."-아소카 석주 8
"위대한 구원의 건축가인 쿠샨의 카니슈카, 올바른 분, 정의로운 분, 전제군주, 신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는 분, 나나를 비롯한 모든 신에게서 왕의 자리를 얻으셨다. 왕은 첫 번째 해에 즉위하셨다. '''' 그리고 그리스어로 '칙령'을 발표하신 뒤 아리아어로 번역하셨다. '''''' 왕의 영토는 사케타시, 카우삼비시, 파트나시, 스리캄파시까지 이르렀다. '''' 왕의 의지에 굴복한 모든 왕과 그밖에 중요한 인물들에게 까지, 왕은 인도 전체를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켰다. "-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