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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재구성의 신호탄인가?
[서평]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최광은 / 한국사회당 대변인
출처 : <레디앙> 2007-12-17


   
  ▲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 진보정치연구소 | 후마니타스(2007) 표지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를 사흘 남겨두고 공개된 이명박 후보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막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지금,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BBK라는 영문 세 글자만 머릿속에 남는 대선으로 마무리될 것 같다.

대통령 선거라는 공간이 정책과 가치, 비전의 대결로 치러져야 한다는 것은 정말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고만 것 같아 씁쓸하다.

어제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사회당 중앙당사로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보낸 것이었다.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진보정치연구소 지음, 후마니타스, 2007)라는 책이었는데, 1판 1쇄 발행일이 2007년 12월 10일자였다. 내용을 대략 훑어보고 나니 불현듯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타이밍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좀 더 일찍 발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 비전과 민주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코리아연방공화국 비전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토론되고 경쟁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사회국가, 코리아연방공화국, 사회적 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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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공산주의와 다른 ‘우정의 정치학’
연구공간 수유+너머 ‘코뮨주의 선언’ 펴내

강성만 기자
출처 : <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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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이른바 '87년 체제의 리바이벌'이라 할 수 있는 '비지론자'들의 아우성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번 17대 대선의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다. 적어도 내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란 의미에서 그렇다.

그들, 비지론자들이 주로 했던 말 가운데 대표적 사기성 발언은 "지난 번 대선에서는 나도 백기완 선생 지지했었는데, 이번에는 DJ를 지지(해야)한다. 지난 번 대선에서는 진보정당을 지지했었는데 이번에는 노무현을 지지(해야)한다."는 류의 발언일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진정한 진보주의자나 좌파는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그 어떤 행위의 대상을 만나더라도 자신의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올곧게 표현해내는 사람들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대오를 이탈하여 보수야당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뉴라이트'의 기치를 드는 변절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보수정치판으로 가든, 뉴라이트의 기수가 되든-은 솔직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명확하게 공표했다는 점에서. 이도 아니면서 '진보緣, 좌파緣' 하는 사람들은 또 그 얼마나 많은가. 문국현을 이야기하고, 찍을 사람이 없어서 기권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이들이 과연 진보주의자고 좌파일까? 만약 이들이 지난 번 대선 같이 한나라당이라는 극우와 자유주의 정당이 박빙의 승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또 뭐라고 말하고 행동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장투쟁이 아니라 의회민주주의 노선을 통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주의자, 좌파라면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 말고 고민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 두 개의 정당 말고 사민주의나 사회주의적 지향을 당 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정당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진정한 좌파, 진보주의자라면 그 어떤 공간에서든 지금과 같은 선거국면이라면 자신의 이념적 지향에 맞는 행동방침을 드러내고 조직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권한다는 소리, 투표할 사람을 못 찾았다는 소리가 진보주의자, 좌파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이상은 오늘 올리는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와 수유+너머의 <코뮨주의 선언>을 소개하는 글들, 그리고 여러 블로그들에 올라와 있는 대선 관련 글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이 사회에 실현하고자 이런 저런 실천방향과 기획을 모색해 나가는 이들의 노력에 대해서 진보연하는 먹물들이 이들의 문제의식을 읽어보거나 고민해보지도 않은 채 책상에 앉아서 조롱하거나 폄하하는 모습들은 솔직히 역겹기까지 하다.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하고 진보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이들이 내놓는 실천의 기획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최광은의 말대로 이 책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가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그 어떤 변화를 촉진하는 매개체가 될지는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지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젼으로 선포하는 그룹과는 분명 함께 할 수 있는 차이를 넘어서는 차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위의 두 권의 책과 '자율평론 그룹'에서 지속적으로 번역해내는 네그리의 책들, '새사연'의 차베스에 관한 책들을 비교검토 해봐야겠다. 아무래도 내일로 다가온 투표보다는 투표결과 이후의 연장전이 더 재미 있을 것 같기에 시대에 뒤쳐지지 않을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200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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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공산주의와 다른 ‘우정의 정치학’
연구공간 수유+너머 ‘코뮨주의 선언’ 펴내

강성만 기자
출처 : <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12일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들이 안산의 이주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구원들은 지난해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노동자 및 이주노동자들과 연대 모임을 갖고 집회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실천 활동을 펼쳐 왔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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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면 역시 그들의 '집'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궁금하신 분들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홈페이지(http://www.transs.pe.kr/)에 들러보기 바란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건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곡해된 프리즘으로 이들을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들이 펴낸 <소수성의 정치학>에 대해 언급하면서 '소수성의 정치'에서 '전위'를 찾아내는 무지함을 용감하게 표출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의 그 어느 '연구집단'도 새만금 반대투쟁의 일환으로 삼보일배투쟁이나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투쟁에 집단적으로 참가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나 역시 왜 이들의 실천적 모습이 하필 이러한 문제에 발언하는 것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표방하는 '꼬뮨주의'를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래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핵심으로 참여하고 있고, <꼬뮨주의 선언>의 공저자의 한 사람인 이진경씨와의 대담이다. 상당히 오래전(2,000년)의 대담이지만, '꼬뮨주의'의 사상적 모태는 이때부터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일차적으로는 1997년의 <맑스주의와 근대성>에서 이미 그가 말하는 '꼬뮨주의'의 기본적 골격이 갖추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꼬뮨주의에 대한 단상
[인문학데이트] ⑨ 이진경

글 고명섭 기자 사진 김진수 기자
출처 : <한겨레신문> 2000년 07월 20일


인문학 데이트 아홉 번째 초청자는 이진경(37)씨다. 이씨는 약관 25살 때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으로 1980년대 대학가에 마르크스주의 원전 학습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학생운동 조직사건에 연루돼 2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출감 뒤 왕성한 필력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에서 강의와 공부를 하고 있는 그를, 같은 공간에서 강의를 한 바 있는 권보드래(31) 서울대 강사(국문학)가 만나 <수학의 몽상> 등 그의 저서들을 놓고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눴다. 편집자

'근대에 묶인 사람'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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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07-12-1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왠지 이진경은 현실 너머에 메달려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의 글을 읽을 적마다 불편했습니다. 그의 글들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작한다면 좋을 듯 싶은데 1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글에 달린 수많은 주석들이 글읽기를 방해하곤 합니다.

내오랜꿈 2007-12-13 00:29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런데 그의 글에 달린 수많은 주석이 달린 책이란 어떤 책을 말씀하시는 거죠?

제가 아는 한 그의 최근 주저인 <자본을 넘어선 자본>(2004)은 주석이 아예 하나도 안붙어 있고, <미래의 맑스주의>(2006>는 거의 주석이 없는데요. 이 책들 말고 최근에 나온 그의 책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ntitheme 2007-12-13 00:41   좋아요 0 | URL
최근 책들 중 많이 읽진 않았지만 <미래의 맑스주의>의 경우 주석보다는 수많은 인용이 가독성을 떨어뜨리더군요. 전 인용 많은 글도 별로 안좋아하는 성격이라...

내오랜꿈 2007-12-13 00:56   좋아요 0 | URL
ㅎㅎ..
무시하고 읽으시면 될텐데...^^
그래서 요즘은 많이들 인용은 후주로 일괄 처리하잖아요(<미래의 맑스주의>도 그렇고...).

어쩌면, 인용은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번역서들의 경우는 특히나 어쩔 수 없는 것일테고요.

antitheme 2007-12-13 00:59   좋아요 0 | URL
수유+너머나 이진경의 성과들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진경의 글에서 맑스, 알튀세르, 발리바르 등의 어록(?)이 사라지고 현실과 그의 육성이 담긴 글이 나와서 좀 더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사사방>, <현실과과학>, <노급> 등에서 보여줬던 나름의 벽과 한계를 아직은 깨뜨리지 못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학자로서 이진경보다는 그이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성과물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오랜꿈 2007-12-13 01:28   좋아요 0 | URL
음~~

제가 생각할 때 <현실과 과학>이나 <노급>의 그림자는 90년대 중반 이진경이 <문화과학> 그룹과 교류할 때까지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푸코, 들뢰즈를 경유하면서 알튀세르 발리바르와도 어느 정도 일차적인 단절을 겪습니다(97년의 <맑스주의와 근대성>이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경계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적어도 2000년 이후 이진경에게서 알뛰세르나 발리바르의 그림자는 조금 찾기 힘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맑스주의자에게 맑스를 버리라는 건 좀 너무 가혹한 것 같고요..^^

오히려 이진경이나 그의 동료들은 '꼬뮨주의'를 정식화하면서 알튀세르나 발리바르 같은 그들이 한때 기대었던 사람들보다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나, 용수의 <중론>이나 <벽암론> 등 불교 사상, 아날학파의 역사학 등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착취'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현재의 이진경보다 안티테마님께서 더 많은 '이진경의 옛그림자'를 짊어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바라 2007-12-13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껏해야 철굴을 통해 그의 저서를 접했을 뿐인 저는 이진경을 잘 모릅니다만 최근의 미-래의 맑스주의 같은 책을 예전에 어설프게 읽은 기억으로는 이진경씨에게 알튀세르는 거의 의미가 없는 듯 했고 들뢰즈나 네그리를 주된 전거로 삼는 듯 했습니다. 이진경씨에 대해서는 예전에 무영이란 분이 올려놓으신 글이 생각나네요.(http://blog.aladdin.co.kr/muratova/870232) 뭐 저는 한참 공부가 짧아 뭐라 가치판단은 못하겠지만; 수유너머라는 집단이 흥미롭다는 생각은 듭니다

내오랜꿈 2007-12-13 10:06   좋아요 0 | URL
네에, 이들의 코뮨주의에는 안토니오 네그리 등의 '아우토노미아운동'의 흔적이 많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영님의 글은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정보에서 잘못된 게 있습니다. 이진경은 63년생이니까 <사사방>을 쓸 때는 24살인데 27살로 되어 있군요. 아마 인물정보에서 착오가 있으셨던 듯. 그리고 황우석 교수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입니다.
또한 "그가 말하는 '코뮨주의'가 정말 들뢰즈와 노자에게 비롯될 수 있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고 한 대목도 너무 단순화시킨 전제를 만들어놓고 비판의 논지를 펴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코뮨주의'가 들뢰즈와 노자에게만 전적으로 기대어서 나온 건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비판하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제가 일별한 느낌이 그랬습니다.
 

'라클라우/무페 논쟁'으로 유명한 샹탈 무페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고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받아들여 자신들(논쟁을 하면서도 라클라우와 무페는 지속적인 공동작업을 수행한다)의 '급진적 민주주의' 기획을 도출해낸다.

그들은 '사회'(구성체)를 그 요소들, 예컨대 자본, 이데올로기, 노동, 실천 등의 요소들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접합과정'으로 이해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내재하는 본질주의적 토대결정론을 비판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라클라우와 무페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서 다루는 계급투쟁이 실제로는 다양한 사회적 대립를 구성하는 하나의 층위일 뿐이며, '사회'(구성체)에는 다양한 투쟁들이 경합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 사회의 변화/변혁이란 항상 '가능성의 (새로운) 장'이란 의미에서 열려 있으며, 그 열린 공간을 누가 어떻게 장악하느냐 하는 것 또한 항상 가능성의 장으로 열려 있다고 파악한다. 이러한 열린 가능성의 장에 새로운 접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헤게모니 투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여기서 그람시 헤게모니 개념의 전략적 의미가 도출된다.

이러한 이들의 이론적 정식화는 공저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번역은 김성기, 김해식 등에 의해 <사회변혁과 헤게모니>(1990, 터)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당시의 시대분위기와 맞물려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 역시 당시 어떤 '갇힌 공간'에서 한창 그람시를 새롭게 읽고 있었기에 흥미롭게 보았던 책 가운데 하나였다.

아래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 대한 서평이다. 그런데 솔직한 느낌으로는 너무 늦게 찾아온 손님 같다. 앞에서 언급한 <헤게모니와 사회전략>의 연장선 상에서 읽혀지고 다루어졌어야 할 책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헤게모니와 사회전략>이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을 너머 새로운 급진적 민주주의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이 책 <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마르크스주의 정치학과 완전히 단절된 시각을 보여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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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노예들이여, 정치로 돌아오라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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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접점을 찾다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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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7-12-08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좀 늦게 소개된 감이 있습니다. :-)

내오랜꿈 2007-12-08 17:46   좋아요 0 | URL
네에,, 아마 그때는 사회과학계 내에서 '(맑시즘에서) 너무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문화수첩] ‘오래된 미래’ 씁쓸한 개정판

손제민기자
출처 : <경향신문> 2007 12 03


최근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공식 한국어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왔다. 책은 예의 재생용지가 아니라 빳빳한 종이와 두툼한 하드커버로 돼 있다. ‘공식 한국어판’을 낸 곳은 중앙일보 산하 출판사인 ‘중앙북스’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이 책은 10년 전 녹색평론사에서 소개됐다. 인도 북부의 ‘라다크’라는 때묻지 않은 작은 마을이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파괴됐는지 비판적으로 보여준 책이다. 그 사이 이 책은 20만~30만부 팔리면서 한국 생태운동의 고전이 됐고, 녹색평론사의 대표 도서로 자리잡았다. 어떻게 출판사가 바뀐 것일까.

연유는 이러하다.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씨(전 영남대 교수)는 1996년 저자의 허락 하에 이 책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피차 생태운동을 하는 사람들로서 법적인 계약서는 필요 없다고 여겼다. 여기엔 녹색평론사가 상업적 출판사가 아니라는 점과 호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생태학자인 김종철씨에 의해 번역·소개된다는 점을 반겼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에서 ‘오래된 미래’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저작권 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녹색평론사는 그동안 인세에 준하는 돈을 부정기적으로 호지에게 보냈다. 하지만 책이 의외로 많이 나간 사실을 안 호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벌여놓은 활동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여성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는 환경재단 관계자 등에게 혹시 책을 새로 내려면 어떤 출판사가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 때 호지는 중앙북스를 알게 됐다.

호지는 이후 그의 ‘오랜 친구’ 김종철씨(호지는 그를 ‘솔메이트’라 부른다)에게 다른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 맺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통보한 것이어서 붙잡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종철씨에게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은 고심의 산물이다. 이 책의 원제는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다. 일본에서는 ‘라다크, 그리운 미래’로, 프랑스에서는 ‘개발이 빈곤을 낳을 때’로, 독일에서는 ‘라다크의 매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김씨가 붙인 ‘오래된 미래’는 이후 한국 생태운동의 상징어가 되었다. 한 출판사가 이 이름을 딸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이 책의 인기 뒤에는 제목 덕도 있었던 셈이다.

‘공식 한국어판’은 아무런 협의 없이 앞서 녹색평론사에서 펴낸 책의 제목을 그대로 취했다. 중앙북스의 관계자는 “‘Ancient Futures’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 외에 나올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호지 여사는 여전히 김종철 선생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그분이 하시는 활동에도 공감한다. 결별이 안타깝긴 하지만 호지 여사는 라다크에서 펼치고 있는 사업에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와 정식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양 분들은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공식 한국어판’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봤다. 당연하겠지만, 예전 것보다 번역도 더 깔끔한 것 같다. 하지만 수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오래된 미래’를 사랑했던 독자로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반(反)개발주의’의 가치가 대자본이 소유한 출판기업에까지 확산된 것을 두고, ‘이제 대안적 가치가 대자본 또는 주류사회에까지 당당히 진출했다’고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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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제민 기자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2001년도판인데, 240페이지 정도다(초판본은 200페이지 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출간했다는 중앙북스판은 364페이지라고 나와 있다. 아마도 라다크에 관한 사진이나 자료들이 추가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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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2-04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씁쓸하군요. 제목이 주는 힘도 컸고, 재생지 특유의 친자연적인 느낌도 좋았었는데...

내오랜꿈 2007-12-04 09:49   좋아요 0 | URL
네에, 기분이 좀 '꿀꿀한' 소식입니다.

푸하 2007-12-09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사건)에 씁쓸해하실 분이 많을 것이란 기대에 희망을 걸고 인사드립니다.^^;

내오랜꿈 2007-12-10 12:27   좋아요 0 | URL
즐거운 한 주 맞이하세요.^^;
 


한나 아렌트의 전기를 다루는 서평을 읽으면서 책이 왜 이렇게 두껍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올해 들어와 읽은 다른 전기들에 생각이 미쳤다. 그 책들을 펼쳐보니 <빌헬름 라이히> 787쪽,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 1,055쪽 , <존리드 평전> 701쪽, <노신 평전> 421쪽, <이탁오 평전> 589쪽, <밥 말리> 507쪽(이 책은 활자가 다른 책들에 비해 1포인트 정도 작은데, 보통의 활자로 치면 600쪽이 넘는다) 등이다.

그러고 보니 철학자나 정치사상가들에 관한 전기는 대부분 엄청난 분량이었던 것 같다. 2권으로 나누어 번역된 미셸 푸코나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도 800쪽 분량이었고, 호치민 전기도 1,000쪽 가량 됐으니...

하지만 대부분 책값은 2~3 만원 정도였었는데(제일 두꺼웠던 <괴벨스>가 35,000원이었다), 한나 아렌트 전기는 신기록을 세운다. 할인받아도 50,000원이다. 완전 허걱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정치철학자의 삶
한나 아렌트 전기 번역출간 / 홍원표 옮김 / 955쪽 / 5만5천원

김승욱 기자
출처 : <연합뉴스> 2007년 11월 29일


(서울=연합뉴스) = "이 책은 대작이다", "그는 마르크스와 견줄만 하다". 1951년 출간된 '전체주의의 기원'에 쏟아진 비평가들의 찬사는 대단했다.

   1963년 출간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악(惡)의 본질을 해부했다. 이 책은 '악의 문제에 대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여'로 평가받았다.

   '전체주의의 기원'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이자 '제2의 로자 룩셈부르크',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정치철학자'로 불리는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전기가 최근 번역.출간됐다.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분석재활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엘리자베스 영-브륄이 펴낸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펴냄)'는 1천 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으로 아렌트의 일생과 사상을 풀어냈다.

   아렌트는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의 몸에는 아버지 파울 아렌트와 어머니 마르타 아렌트로부터 물려받은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렌트는 일생동안 유대인임을 의식했고 이는 그의 사상에 바탕을 이뤘다.

   18살이 되던 해 마부르크대학교에 진학한 아렌트는 평생 동안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한 남성을 만난다. 아렌트는 자신을 가르친 마르틴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유부남이면서 17살이나 연상인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사랑을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25년 여름 아렌트는 아무리 깊은 관계를 맺더라도 하이데거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당신은 왜 나에게 손을 내미는지요?/ 부끄럽게, 그것이 마치 비밀이라도 되나요?/ 당신은 우리의 포도주를 알지 못할 만큼/ 먼 나라에서 온 사람인가요?'
비록 하이데거와의 사랑은 지속되지 못했지만 하이데거와 아렌트는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훗날 하이데거는 "아렌트가 없었다면 '존재와 시간(1927년 출간된 하이데거의 대표작)'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아렌트는 공부를 계속해 1928년 칼 야스퍼스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독일 생활은 전체주의의 광풍에 휘말려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1933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됐다 풀려난 아렌트는 파리로 도피했으며 194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51년은 아렌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해였다. '전체주의의 기원'이 출간된 해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 해에 아렌트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33년 이후 아렌트는 18년 간 무국적자였다.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유명세를 탄 아렌트는 놀람과 불편함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스승인 야스퍼스에게 "일주일 전 저는 신문의 표지인물이 됐다는 것과 신문 판매대에서 제 자신을 목격한 것에 대해 선생님께 어떤 편지를 써야 하는지요?"라고 물었다.

   아렌트는 텔레비전 대담에 출연할 때도 등 뒤에 카메라를 설치할 것을 요구할 정도로 얼굴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피했다. 자신의 기질과 성향은 정치행위나 공적인 삶에는 부적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은 아이히만이라는 남자를 체포했다. 그는 유대인 대량학살의 집행자였다.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으로 이송돼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교수형을 선고 받는다.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들은 아렌트는 대학 강의를 모두 취소하고 '뉴요커'지의 재정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의 재판을 참관했다.

   아렌트가 관찰한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전혀 깨닫지 못한 자였다. 그는 전혀 도착적이지도, 가학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머리에 뿔난 괴물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

   미국으로 돌아온 아렌트는 뉴요커지에 악의 평범성을 파헤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5차례 연재했으며 이를 정리해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1975년 아렌트는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으며 자식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몰려들었지만 지적인 동료라 부를 만한 사람은 열렬하게 사랑했던 하이데거 정도였다. 나치에 협력한 이유로 곤경에 처해있던 하이데거는 아렌트가 세상을 뜬 지 1년 뒤인 1976년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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