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18(토) : 볼 게 많아 걱정인 교토 (3)

 
☞ 동선 : 교토고쇼 - 킨카쿠지 - 료안지 - 고류지 - 덴류지 - 토롯코 열차(편도) - 교토 시내 관광(한큐 가와라마치역 부근)


6. 토롯코 열차

위의 동선 표시에서 보듯 오늘 하루 돌아다닌 곳들은 하루에 돌아보기에 엄청 무리가 따르는 코스이다. 아마도 교토에 머무르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유적지 하나라도 더 볼려는 욕심이 빚어낸 결과라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일정이 빡빡한 탓에 생기는 신체적 고통에서 나오는 후일담만은 아니다.

▲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주무대였던 아라시야마의 모습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찍은 주무대 가운데 하나가 아라시야마라는 사실과 일본의 국민작가로 일컬어지는 나쯔메 소세키가 즐겨 머물면서 소설을 썼다는 온천이 바로 이 아라시야마 온천이라는 사실을 일본에 와서 안내 책자를 보고서야 알았다. 나쯔메 소세키는 일본인들에게는 근대문학의 시조로 추앙받는 작가인데, 얼마 전에 읽었던 정선태의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이라는 책을 통해 소세키가 자주 머물렀다는 아라시야마라는 지명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이 이곳인줄은 정작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것.

▲ 아라시야마역을 출발하자마자 왼편 강기슭에 있는 아라시야마 온천
내 생각에 오늘 우리가 돌아본 일정은 고토고쇼에서 고류지까지를 하루 코스로 하고, 아라시야마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덴류지와 토롯코 관광열차를 포함시키는 것을 별도의 하루 코스로 추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혹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아라시야마를 하나의 테마로 정해서 천천히 돌아보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덴류지의 위상이나 의미 같은 것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덴류지 북쪽의 대숲길을 벗어난 호젓한 곳에 자그마한 토롯코 아라시야마역이 있다. 토롯코 사가역에서 토롯코 카메오카역까지의 7.3km 정도를 운행하는 토롯코 관광 열차가 정차하는 역 가운데 하나다. 토롯코는 광산이나 토목 공사용 차를 의미하는데, 폐광된 곳이 많은 지금은 호즈강의 비경을 끼고,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인기를 누리고 있다.

"H"가 5호차 짝수열 표를 끊으라고 누누히 강조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전부 끊을 수는 없었고, 4장은 짝수열, 3장은 홀수열로 오후 4시53분 막차를 끊을 수 있었다. 조그만 종이 차표에 시간과 좌석이 수기로 표기되어 있는 점이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가 표를 끊고 조금 지나자 관광객들이 왕창 몰려들어, 조금만 늦었어도 입석으로 갈 뻔 했으니 이나마 다행이다.


▲ 토롯코 관광열차를 표현해놓은 모형도.

▲ 승차까지 시간이 남아서 아이스크림 빨며 주변을 산책 중에 만난 두루미(?). 이 주변은 다닥다닥 붙은 일본 전통 가옥과는 달리 부촌인지 정원 딸린 고급 전원 주택형이 많다. (사진협찬 "H")

하루 종일 절간만 찾아 다닌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줄만한 비경을 기대하며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역무원의 멘트가 역내에 울려퍼진다. 그런데 소리의 진원지는 방송실이 아니라, 제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역무원이 마이크를 들고 역사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하는 즉석 방송멘트이다. 마치 가라오케 분위기를 연출하는 의외의 그 모습이 코믹하고 멋있어서 한바탕 웃는 사이, 토롯코 사가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들어왔다.


▲<左> 한무리의 중국 관광객들, 역시 시끄럽다. <右>알록달록한 땟깔로 치장한 토롯코 열차.
 

▲ <左>멘트의 주공인인 역무원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 <右>지붕과 좌우가 훤한 5호차 내부

"H"가 5호차를 고집한 이유를 열차를 타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사방이 오픈형이라 풍경 감상에 좋을 거 같았다. 지정석이 만석이라 입석으로 가는 사람도 꽤 있어서,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홀수열 셋은 남자들이 앉고 짝수열 네자리는 여자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여 터널을 지나자 첫풍경은 짝수열을 고집한 보람도 없이 홀수열에서 시작되자, 모두들 이거 정보가 잘못 된 거 아니냐,며 실망의 눈길을 쏘았다. 물론 그것도 아주 잠깐일 뿐, 호즈강의 본격적인 비경은 역시 짝수열 방향이었지만..

사실, 우리의 강원도만 가도 널린 게 이런 경치인지라 무턱대고 칭찬만 할 정도로 감탄스러운 건 아니지만 하루종일 걷는데 지쳐있던 일행들에게 피로회복제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된 것 같다.

이런 류의 관광열차가 그렇듯, 방송으로 연신 안내 멘트를 하지만 시끄러운 열차 소리에 묻혀 알아듣기 힘들어서 무용지물에 가깝다. 호즈강을 끼고 컴컴한 터널을 자주 통과하는데, 경치본다고 창문을 모두 열어둔데다 속도를 빨리하니, 소음이 엄청나서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다.


▲ 중간 지점인 호즈쿄역에서 오니, 가면을 쓴 사내의 깜짝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 호즈쿄역의 명물은 역시 이 너구리들. 중앙에 발라당 누워 있는 두 녀석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들뜬 관광객을 싣고 한참을 올라간 토롯코 열차가 산속 한가운데 정차하는 곳이 바로 토롯코 호즈쿄역. 우리가 탄 열차에서는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호즈강의 뱃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차해 보트를 타고 다시 아라시야마로 돌아간다고 한다. 원래 벌목운반용 배가 이곳에서 오사카까지 나무를 실어날랐던 것인데, 이것을 관광용으로 개발한 것이라 한다.




이런 풍경을 끼고 20여 분 달리니, 일본여행 오기 직전에 갔었던 강원도 정선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우라지 근처에 레일바이크를 타는 관광상품이 개발되어 성황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일본과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은 폐광이나 벌목용 산림철도를 관광상품화 해서 운행하고 있는 게 전국적으로 24개나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관광상품화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훼손,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없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몇몇 건축업자나 가진 놈들 배불려주는 지역개발 사업이나 동계올림픽 유치 같은 것에 목메지 말고, 그 돈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러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데 좀더 많은 고민을 하면 안 되나, 하는 짧은 생각도 스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열차는 이내 종착역인 토롯코 카메오카역에 도착했다.


▲<左>종착지인 토롯코 카메오카역 <右>호즈쿄역에서 가면을 썼던 주인공이, 종착역에서 관광객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 교토역으로 가기 위해 누구는 '쎄빠지게' JR 우마호리역을 찾아 헤매는 동안, 누구는 이 아가씨들과 사진박기를 하고 있었다. 유카타를 입은 그녀들도 우리와 같은 관광객인 듯 싶은데,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덕분에 우리 모두 돌아가면서 한장씩.

토롯코 카메오카 역에서 JR우마호리역까지 걸어가는 짧은 길 옆은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다. 모르고 걷는다면 여기가 일본인지 우리나라인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7. 한큐 가와라마치에서



교토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한큐 가와라마치역 인근에서 내렸는데, 현대적 건물과 상점들이 즐비하고 있어서 번쩍거리고 북적이는 폼새가 한눈에도 시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형 건물마다 보도 위에 지붕을 내고 있어서, 비오는 날 우산없이 다녀도 좋을 것 같다. 아.. 구경은 잠시 뒤로 미루고, 맛있고 근사한 저녁 먹을 곳을 찾는게 우선 과제다.
 
▲ <左> 쭉~~~ 늘어선 택시의 행렬 <右>한큐 백화점 옆 골목에서 식당 찾아 헤매고 또 헤메고...
▲ 돈까스 전문점 "카쯔쿠라"

모름지기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을 뺀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본다한들 무슨 기쁨이 있으리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여행에서의 먹거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특히나 그 지방을 방문하면 지역 특산물은 될 수 있는대로 먹어보자는 주의다.

하지만 이틀 코스 분량을 하루에 움직인 이날, 일행들의 몸은 맛있는 걸 찾아 헤메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고 해야 하나? 교토에는 300년이 넘는 가게들도 즐비하고 맛집을 소개한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었지만 피곤하고 배고픈 '동물들'에 불과한 그 순간의 우리들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 겨우 가까운 골목에서 꽤 유명하다는 튀김집을 찾아냈지만 자리가 없어서 퇴짜 맞고, 본토초 입구에서 눈에 보이는대로 찾아 들어간 곳이 돈까스 전문집.

이번 일본여행에서 느낀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웬만한 식당은 나름대로 일정 수준의 질은 담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첫날 쿄토타워에서의 라멘집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먹을만 했던 것을 보면. 돈까스 정식에 산토리 맥주를 곁들여 맛있게들 비워냈다.


▲ 입구에서 샘플보고 주문한 돈까스 정식. 밥도 있고, 미소국도 있다. 소스는 본인이 갈아서 제조하는 이런 집이 한국에도 많아서 그리 색다른 곳은 아닌데, 탱탱한 새우튀김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 가모가와 강변 본토초 거리에 형성된,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술집들.

원래 계획은 가모가와 강을 따라 형성된 본토초를 지나 기온가까지 걸어가는 것. 하지만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이 기온(祗園)까지 걸어가 교토의 밤문화를 즐기기에는 역부족. 몇 발자욱 걷지 않아 모두들 호텔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한 살이라도 덜 먹은 티를 내는지, 인테리어 일을 하는 "J"만이 아이디어도 얻을 겸, 교토 밤거리를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며 한큐 가와라마치 쪽으로 가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갖가지 맥주를 사가지고 먼저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나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보여지는 일행들의 모습은 이게 진정 한 시간 전의 인간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생생하기 그지 없다. 아사히 생, 기린 골드, 산토리 프리미엄, 아사히 드래프트, 기린 드래프트로 이어지는 맥주의 향연 속에 둘쨋날 밤이 깊어간다.

▲ 편의점 진열대에서 발견한 우리 '신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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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0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사진요. 두루미 아니고 백로래요. 어젯밤에 어떻게 맨날 가르쳐줘도 모르냐며 어찌나 구박을 하던지.... 언니 요즘 많이 바쁘다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어떻게.... 대단하셔요. 탱자 탱자 노는 형은 옮기는거나 하고 말야.
저도 솔직히 아라시야마를 산책하면서 좀 찬찬히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언제 가을에 아라시야마 다시 가봤으면 좋겠다. .... ㅎㅎ

내오랜꿈 2007-09-05 15:06   좋아요 0 | URL
저 새를 보고 백로라고 그때 사진 찍으면서도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두루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학 종류 아닌가? 또 백로보다는 몸집도 좀 크지 않나?

넌 글을 읽어보고도 옮기기만 한다고 하냐? 네가 쓴 여행기도 손좀 봐야겠다. 어째 맞춤법이랑 문맥이랑 너 닮았냐?
 


2007.08.18(토) : 볼 게 많아 걱정인 교토(2)
 
☞ 동선 : 교토고쇼 - 킨카쿠지 - 료안지 - 아라시야마로 이동, 고류지 - 덴류지 - 도롯코 열차(편도) - 교토 시내 관광(한큐 가와라마치역 부근)

 
유적지 폐문시간은 '뽀작뽀작' 다가오고, 료안지를 나오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니시오지산죠에서 아라시야마行 환승버스(11번)를 기다리며, 찬 음료만 마셔서 밥 생각이 없는 패와 그래도 밥 안주냐고 칭얼대는 패로 갈린다. 큰 길임에도 근처는 마땅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골목마다 널린 게 가게 천지인 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남은 일정 중 한 두 개를 빼면 모를까, 시간상 제대로 된 식사는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고 맹탕으로 굶을 수만은 없어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간단히 때우고, 해 있을 때 부지런히 움직이는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 거리의 벽보에 걸린 수배자 전단, 왜 찍었을까요?
교토관광에서는 지하철보다 버스 이용이 거의 절대적인데, 전반적인 버스 운행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초행길인 사람도 노선표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조금은 적응 안되는 것이 우리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차선이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 때문인지 순/역방향이 한번씩 헷갈리는 것이다. 이는 순전히 운전석의 방향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다른 때는 확인 차원에서라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더위에 지친 이번 만큼은 선두를 선 남편을 철커덕 믿고 따랐다. 샌드위치 나눠 먹고 수다떨며 기다리다 마침내 기다리던 11번 버스를 타긴 탔는데, 확인 결과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였다. 한 코스도 채 지나지 않아서 버스기사에게 확인 사살을 날렸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쭉~ 어디까지 갔을지....
 

4. 고류지(廣隆寺) ; 경내 무료, 보물관 700엔
 
고류지는 이름난 사찰임에도 교토의 전형적인 관광코스 인기도 순위에서는 좀 밀리는지, 아니면 오늘만 그런건지, 앞서 번잡했던 금각사나 료안지에 비해 조용하고 한산했다. 버스를 내린 곳이, 주차장(?) 입구인 듯 싶은 곳과 연결된다. 대숲과 뿌리가 하나로 붙은 신기한 나무는, 천왕문으로 왔다 갔다 했으면 보지 못했을 그림이다.
 
▲ <左>대숲과 구름의 조합이 근사하다. <右> '連理枝'는 가지가 서로 엉겨 붙었는데, 이 나무들은 뿌리가 붙었으니, '連理根'이라 해야겠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물부터 찾는데, 자동판매기의 천국인 일본인지라 열기를 덜어 줄 냉음료를 즉시 뽑아 먹을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판기는 안 보이고, 경내 앞마당에 손 씻는 용도의 쯔꾸바이(つくばい)만 있다. 절로 약수가 철철 넘치는 우리의 절집이 그리운 순간이기도.
 
고류지는 일본의 일만엔짜리 지폐에 실렸었을 정도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쇼토쿠 태자와 관련이 깊은 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한 때 일본의 국보 제1호였다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우리의 고대사 영향 아래 그 출처에 대해 여러 각도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목조미륵반가사유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둘러본 몇 군데 일본의 유적지에서는 국보 제 몇 호라는 식의 표기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일반 유적지 뿐만 아니라 나라 국립박물관에 진열된 국보 더미 속에서도 그러했으니, 이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국보 1호였다는 설도 별로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아니, 신뢰라기보다는 '국보1호였었다'는 걸 자꾸 강조, 재생산해내는 우리의 의식구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발바닥이 아파오고 더위에 지쳐서, 태자당 마루에 퍼질러 앉았더니, 중력의 법칙이 강하게 눈꺼풀에 작용했다. 마냥 늘어지면 더 힘들 것 같아서 한 켠에서 휴식하는 일본인 관람객에게 전차 노선을 물었는데, 자기도 초행이라서 지니고 있던 가이드북을 꺼내든다. 뒤적뒤적, 그리고 한참...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빠져나갈 타이밍을 찾고 있는데, 다른 동반자의 지도까지 펼쳐든다. 일행들은 그냥 오라는 무언의 싸인을 보내고, 그렇게 나는 재차 타이밍을 놓쳐 주저 앉고... 끝까지 도움은 못 받았지만 어쨌던 시간 들여 최선을 다하는 마음만은 고마운 일이다. 휴식을 종료하고, 이제 슬슬 모두가 기대해 마지 않는 '목조 관음상'을 만나러 보물관으로 향했다.
 

▲ <左>아빠는 읽어주고, 딸래미는 받아적고.. 우리나라 유적지에서도 흔히 보는 그림. 학구적인 부녀를 덴류지에서 다시 만남. <右>보물전 앞에 뜰에 핀 도라지, 이렇게 키다리 도라지는 처음 봄.
 
<고류지의 보물관에서>
 
태자당 뒤켠에 있는 보물관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사진 촬영 금지와 함께 모자를 벗어라고 재촉했다. 실내는 겨우 선풍기 두 대만 돌아가는 완전 찜통 속이었는데, 국보급 유물을 상당수 보유하다 보니 꽤나 까다롭게 군다 싶으면서도, 그네들의 유물관리 정책엔 나름대로 수긍이 가기도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했으니 더워도 어쩌겠는가...^^
 
왼쪽의 입장권 사진을 한 번 보시라. 나는 아직 국립 중앙 박물관에 못 가봐서, 우리의 금동으로 만든 미륵반가사유상의 실물은 못 봤지만 아마츄어의 눈에도 역사 관련 책에서 늘 보아오던 매우 눈에 익은 모습임을 알아챌 수 있다.

흔히 언급되는 이야기처럼, 이 반가사유상이 한 때 일본의 국보 1호로 매겨졌었다가, 재질이 일본에서 자라지 않고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적송이라고 밝혀지면서 국보1호에서 순위를 후퇴시켰다면, 이것은 아마도 중국이나 한반도에 비해 고대사의 출발이 늦었던 일본의 컴플렉스가 여실히 보여지는 측면 가운데 하나로 읽혀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볼 여지도 있는 것 같다. 위에서 '국보1호였었다'는 걸 재생산해내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관해 언급했는데, 이것 역시 우리가 비판하는 일본인들의 그것과 똑같은 컴플렉스의 일종-고대 일본은 반드시 우리의 영향을 받았어야만 한다는 문화적 우월감의 발로-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어디에선가 읽어본 것 같은데,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보의 순위를 번호로 매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일본에서는 나름의 가치판단을 가지고 국보의 번호체계를 없앤 것인데, 우리가 유독 그것을 가지고 일본의 컴플렉스 운운하는 형태로 담론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우리 나라에서 논란이 된 국보 1호 교체 논쟁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교체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보 1호 교체가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논리 자체도 우습거니와 굳이 1호, 2호 순으로 번호를 매겨서 유물의 가치를 줄세우기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차라리 관리,보전의 편의란 차원에서 비슷한 성격의 유물군으로 묶는 새로운 번호체계가 필요하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 반가사유상은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됐던 유물인데, 한반도 것임을 인정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백제의 것이다 또는 신라의 것이다 등으로 의견이 나뉘는 모양이다.
 
뭐, 이것 말고도 사천왕이 'ㄷ'字 구조로 지키고 있는 나라시대의 밀교 형식 대형불상도 어마어마하고, 불교를 정치 기조로 삼은 쇼토쿠 태자 시절에 만들어진 유물들이 꽤 전시되어 있었다. 끊임없는 전란으로 인해 목조 유물이 홀라당 불타 버려, 삼국시대의 것이라고는 한 점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누구 말대로 제대로 된 외침 한 번 받지 않은 복 받은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설렁설렁 보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일행들은 가는 곳 마다 진지하고 꼼꼼한 관람자세를 흐트리지 않기에, 시간은 늘 모자란다. 누가 역사 선생 아니랄까봐...-.-...

▲ 우여곡절 끝에 타게 된, '아라시야마'역으로
가는 게이후쿠 전철
천왕문으로 나오다가 입장하는 관람객에게 우즈마사역이 어딘지 물었는데,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찜통 같은 더위 속을 걸어야 했다. 전차 레일을 따라가다가 갈라지는 방향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마침 지나는 젊은 츠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기꺼이 자신을 따라오란다. 어제 비행기에서 본 뉴스를 화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걷다가, 우즈마사역이 우리가 걸어나왔던 고류지 천왕문에서 살짝 비켜선 왼편이었음을 알았을 때의 허탈감이란...

전혀 역사 같아 보이지 않는 간이역이었지만 찾아볼 생각도 않고, 무턱대고 타인에게 의존할 생각부터 했으니, 누굴 원망하랴. 그런데 그 사람 참~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할 것이지, 무슨 배짱으로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는지. 과잉친절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4. 덴류지 ; 08:30 ~ 17:30, 600엔(정원관람만 500엔, 법당은 토/일요일 공개 별도 500엔)
 
따가운 해가 절정에 이른 오후의 아라시야마역은 어딘가 들뜨고 술렁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역 앞에서 사찰 순례는 고류지를 끝으로 마감하고 관광철인 토롯코 열차를 바로 탈 것인가, 아니면 덴류지를 들린 후에 탈 것인가로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가는 길목이니 들리자는 쪽으로 결정났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정원 쪽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먼저 앞서 간 남편이 법당 마루에서 빨리 올라오라는 재촉을 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올라갔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정원에서 법당 마루로 오르는 것은 금지였다. 본당으로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600엔짜리 입장권을 사던가, 또는 정원으로 가는 매표소에서 500엔짜리 입장권을 끊었다면 추가로 100엔을 더 내던가 해야 했는데, 매표소가 두 군데인 걸 몰랐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얌체 짓을 하여 100엔을 아끼는 사태가 발생했다.
 

▲ 14세기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소겐치 정원. 과거 아라시야마 전체가 이 절의 정원이었다니, 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을 것 같다.

▲ 마루로 올라가면 안돼요!

사전 정보없이 간 때문일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면 조금 더 무게 있고, 무엇인가 차별화를 가지며 상징성이 짙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점에서 보자면 겉으로 보이는 덴류지는 나에게 썩 무게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마음 가짐에 더해 오후 3시의 작열하는 태양빛은 모든 것을 귀찮게 만들고도 충분한 남음이 있었다. 일행들 또한 지친 기색이 역력하여 구석구석 답사를 포기하고 다다미가 깔린 실내에서 '소겐치 정원'의 풍경을 조망하는 것으로 시간을 떼운다. 반쯤은 누운 자세로 풀어질대로 풀어져서, 피로한 다리에게 휴식을 주며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으로 입장권의 가치를 인정해줬다고나 할까.
 
▲ 아이고 다리야~~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는 "J"의 다다미 강의도 듣고....

▲ 8번의 화재로 옛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의 것은 메이지 시대에 새로 지은 것.
 
아기자기한 정원을 감상하며 덴류지의 북문 쪽으로 쭉 나가면 '토롯코 아라시야마역'으로 통한다. 하루 일정의 말미에 이르러, 지친 상태에서 경사진 길이 좀 힘들긴 하지만 울창한 대숲이 펼쳐져 피로가 싸~ㄱ 가시는 기분이다. 대숲 사이 오솔길을 호젓하게 걷다 보니, 영화 <와호장룡>의 공중 칼싸움 장면이 생각난다.
 
일행들과 사진도 찍고, 드디어 기~인 사찰 순례를 끝내고 관광열차인 토롯코 열차를 탈 기대감에 설레어 있는데, 갑자기 저만치 앞서가던 남편이 원숭이처럼 대나무를 타고 오를 폼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에 국제적 망신이라고 모두들 말리니까, 이내 내려왔지만 남편의 개구스런 행동은 언제나 예측불허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 <左> 대나무 길이가 15미터는 족히 넘을 대숲 길. <右> 아저씨 나이, 40대 중반인 거 아시유??



글쓴이:Lee, H.O.
교정/감수:내오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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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8(토) : 볼 게 많아 걱정인 교토 (1)


☞ 동선 : 교토고쇼 - 킨카쿠지 - 료안지 - 고류지 - 덴류지 - 토롯코 열차(편도) - 교토 시내 관광(한큐 가와라마치역 부근)

794년부터 1868년까지 천 여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의 구조를 모방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찰과 유적이 많다. 오늘 하루는 갈 곳도 많고, 동선이 길기 때문에 '교토 관광 1일 승차권(1200엔)'으로 대부분의 교통비를 해결한다. 이런 류의 관광상품이 일본은 잘 발달되어 있어 부럽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여행자에게는 이런 사소한 데서 느끼는 감동이 꽤나 크기 때문이다.

호텔을 나와 토자이센(東西線)-니죠죠마에 역까지 걷는 10분 동안, 몹시 무더운 하루를 예감하듯 벌써부터 등줄기에 땀이 느껴졌다. 교토고쇼를 돌려면, 여권을 챙겨들고 궁내청 사무실에 아침 08:45분까지 도착하여 신청을 마쳐야 하므로 마음이 급하다.


1. 교토고쇼(京都御所) : 옛 천황의 거처



궁내청 사무실 입구에 친절하게 휴관 안내가 되어 있지만 '8월 셋째주 토요일만 된다'고 모가이드 북을 참조하여 일정을 짰다고 하는데 첫코스부터 낭패를 만났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마침 자전거를 타고 온, 직원인 듯한 남자가 보이기에 물어보니 역시 휴관이란다.

- 대기실 >> 정전인 시신덴(천황의 즉위식 거행) >> 슌코텐(보물창고, 실제 보물은 모두 에도성에 있음) >> 세이료덴(천황의 생활공간 겸 정치공간) >> 교토교엔(왕실 정원)을 투어하고 시간이 남으면 윤동주님이 다녔던 도이샤 대학의 '윤동주시비'를 보려고 했는데....

높은 습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일이 꼬이자 더 덥다. 아침 일찍, 서둘렀던 보람이 없어지자 모두들 가이드북 저자에게 단체 항의 메일을 보내자고 투덜거리며, 102번 버스를 타고 금각사로 향했다.


2. 킨카쿠지(金閣寺) ; 09:00~17:00, 400엔

일행중 유일하게 일본말이 좀 된다는 이유로 총무를 맡아서, 늘 저렇게 종종 걸음으로 한발 앞서 가서 입장권을 끊어야 했다. 여기서 총무의 역할은 별 게 아니고, 내역 정리할 필요없이 일행들이 사달라는 것 계산하고 모자라면 회비 더 걷으면 되는, 아주 바람직한 보직이다.^^ 이번 여행의 동기부여 죄로(?) 일정 짜고, 교통패스 구매와 호텔 예약하느라 애쓴 'H'에 비하면 이까짓 것 정말 별 것 아니다. 우리의 추석격인 오봉절과 겹쳐 호텔 잡는데 엄청 고생한 것으로 안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일본의 두 번째 막부인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지금의 도시샤 대학 건너편에 '하나노고쇼(花の御所)'라는 저택을 짓고, 실권을 상실한 천황가를 내쫓고 스스로 천황위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 요시미쓰가 쇼군 직은 아들에게 주고, 혹시나 있을 반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은 은퇴 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면서 주거지로 삼은 것이 바로 킨카쿠지(金閣寺)다.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인데, 전각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건축은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로 잘못 널리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소설 <금각사, 金閣寺>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99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내에 들어서면, 연못 위에 눈부신 금덩이(?) 하나가 초록을 배경으로 빛을 발한다. 저 금각은 사리를 보관하는 것으로 1950년에 한 사미승의 방화로 불타고, 지금의 모습은 1955년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다시 입혀 재건한 것이라 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화려함에 다소 기가 질리기도 하는 킨카쿠지를 배경삼아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 무리가 제각각 사진을 박고 있었다. 일본 와서 처음으로 모국어 소리가 귓결에 들리는 순간이기도...



아기자기한 정원이 끝나는 곳의 언덕배기에는 귀인석이 있고, 그 옆으로 금각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띠집이 '셋카테이(夕佳亭)'라는, 싸리로 촘촘히 지붕을 얹은 찻집이다. 석양이 아름다운 곳으로 茶를 마시며 권력에 대한 욕망을 초조하게(?) 다스리고 있었을 요시미쓰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토요일을 맞아 붐비는 관광객으로 인해 다소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을 움켜쥐기 직전, 최후 절차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천황보다 먼저 죽어버렸으니, 쯧쯧...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았던가. 천하의 상징물인 금각에서 안민택(安民宅)이라 명명한 정원 연못을 비롯하여 이 셋카테이까지, 한 인간의 인생무상 순로를 되짚어 간다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左>부적같은 입장권. <右>사찰과 신사(神社)의 도시답게 별 새롭지 않는 풍경.



▲ <左>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쭉 늘어선 우리의 절집과는 다른 분위기 <右>외국인 관광객의 뒷태가 길쭉해서 찰칵. 아유~ 부러워.

역시, 살인적인 더위에 무방비 상태로 다니다 보니, 물 값과 아이스크림 값이 솔찮이 든다. 답사 기안자가 금각사에서 료안지까지 걸으면 10분 정도 걸리지만 그래도 버스를 타자고 강력히 주장하는걸, 일행 다수가 '그까이 꺼 뭘 타냐'며 버스 기다리는 시간에 걷기로 했다가 큰 코 다쳤다. 아무리 가도 목적지에 닿지 않아 잘못왔는가 싶어 지나는 행인에게 몇 번을 묻다가, 결국은 한코스를 남겨둔 도모토인쇼 미술관 맞은편에서 59번 버스에 오르고 말았다. 금각사 초입에서 교통정리 하는 안내원에게 확인까지 했는데, 도대체 10분이란 시간이 어떻게 계산되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다음에 한여름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킨카쿠지 앞에서 버스를 타라고 권하는 바이다. 안그래도 시꺼먼 살결이 컴플렉스건만, 양산도 없이 선크림 하나에 의지한 팔이 벌겋게 익어버렸다. 그나마 하나의 위안이 있었다면 교토 전통 가옥과 마을 풍경을 곁눈질할 수 있었다는 것.


▲ <左>'헤어샤롱'이란 간판이 재밌고, 촌스럽다. <右>길 물어보는 사람이 많어서 귀찮았던지, 료안지 가는 도중에 누군가 약도를 정성스럽게 손으로 그려놨다. 친절한 거이겠지?


3. 료안지(龍安寺) ; 08:00~17:00, 500엔



두번째 찾은 료안지(龍安寺) 또한 본당으로 가는 길 왼편에 교요지(鏡容池)라는 연못을 끼고 걷는다. '덥다'라는 말을 백 번 말해도 부족할 지경의 이놈의 날씨. 걸음은 늘어지고, 고만고만한 정원 풍경에 식상해 할 즈음에 턱받이를 한 다섯 동자신을 만났다. 처음 보는 것이라 일행들에게 물어보니 의견이 나뉘면서 딱히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본에는 죽은 아이의 원혼을 달래는 빨간 턱받이를 한 석상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도 그런 류가 아닐까 하는 의견으로 모아지긴 했지만...

료안지는 귀족인 도쿠다이지 집안의 별장을 양도받아 세운 선종 사찰이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료안지의 백미인 <돌 정원> 모형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이 <돌 정원>은 무로마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가마쿠라 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진 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국 송나라의 화가 종병(宗柄)이 주창한 이래 일반화된 산수화의 '상징'이라는 화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곧, 하얀 모래는 바다를, 돌은 섬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정원 양식인 꽃과 나무 연못 대신, 흰 모래 위에 상징성을 가진 15개의 수석을 배치한 '가레산스이 식' 정원은 감상의 대상이자 참선의 도구이기도 하다. 마루에서 제각각의 표정으로 앉아 상념에 잠긴 명상객들은 각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작 돌 몇 개 던져진 이 정원이 나는 좀 당황스러워서 그 깊이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15개의 돌을 찾아 세어보는 것도 이 곳을 찾은 또 하나의 재미일 수 있겠다.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15개의 돌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1개는 찾기 힘들다는데, 모든 걸 한번에 소유하려 들지 말고, 현재에 만족하라는 깨달음의 장치가 아닐런지. 좀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 왔다면 나도 명상객으로서의 기본은 할 것 같은데, 방해요소로 사람이 많았다는 것과 시간에 쫓겼다는 정도로 변명을 해 둔다.^^


▲ 하루에 한 번, 하얀 모래를 고르며 마음의 파장을 다스리는 참선인의 자세를 그려본다.


▲ 본당 측면에 어디서 많이 본 듯, 눈에 익은 산수화.

▲ 마실수 있는 약수가 아니라, 쯔꾸바이(つくばい)로 신사나 찻실 입구에 손을 씻기 위한 것.

뒷뜰에는 도쿠가와 미쓰쿠니가 기부했다는 엽전 모양의 돌확이 있다. 대나무를 통해 '口'字 모양으로 패인 곳에 물이 떨어지고, 바닥에는 관람객들이 각자의 기원을 담아 던진 동전이 쌓여 있다. 사방에 글자가 있어 가운데의 '口'와 어울려 '吾唯,知足'이 된다. 즉,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게 만족하라는 가르침이니, 두고두고 되새길 일이다.


▲  <左>조명과 어우러져 전통찻집 분위기 나는 화장실 복도. <右>양,우산을 두는 곳. 양산이라면 우리는 보통 밝은색인데, 얘네들은 검은 땟깔이 많다. 유행 색상인가?




글쓴이:Lee, H.O.
교정/감수:내오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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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7 (금), 삽질의 하루



남편이 일본 여행을 확정했을 때 나는 썩 내키지 않는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출발 하루 전에야 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회사 다닐 때 출장으로 몇 번 해외에 나간 적은 있으나, 사비를 들인 첫 해외 여행지가 언어가 좀 되는 일본이고 두번째 방문이어서 조금은 푸근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동행한 7명 중 이번 여행을 주도한 'H'를 포함하여 4명이 현직 역사선생인지라 5박 6일 동안 간사이 지방의 문화유적지 투어 중심으로 짜여진 빡빡한 일정의 강행군이었지만 웬만큼 걷는 일에 자신하는 터여서 별다른 걱정이 없었는데, 기내에서 접한 일본의 폭염주의보, 섭씨 40.9도에 13명이 쓰러졌다는 뉴스는 다소 공포스러웠다.

간단한 기내식을 먹고 출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비디오 좀 보니 금방 목적지다. 오사카 국제공항의 과밀화와 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심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간사이 공항은 바다를 매립하여 인공섬을 만든 다음 공항을 건설하였으므로 24시간 이착륙이 가능한 해상 공항인데, 상공에서 내려다 본 전경이 멋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더운 열기가 온몸에 느껴졌고, 사람이 꽤 붐벼서 입국 심사와 짐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부산에서 먼저 출발하여 우리 부부가 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리는 일행들과 반갑게 조우했다. 모두 남편의 20년지기 대학 후배들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에 'KANSAI THRU PASS' 2일권(3,800엔)은 일행들이 미리 사두었으므로, 여권과 교환증을 들고 허급지급 공항 내의 입국장 왼편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갔다. 다른 물가에 비해 교통비가 다소 부담스러운 일본에서 단기 여행자에게 유리한 'JR-WEST RAIL PASS'를 교환하면서 10년간 녹슬었던 일본어의 포문이 열렸다.
 
계획상으로는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교토의 유적지들을(니죠죠 - 히가시혼간지 - 니시혼간지 정도) 후다닥 둘러본 후, 야간놀이로 공중광장, 공중경로, 테즈카오 사무월드 등에서 열심히 놀다가 숙소에 드는 것이었는데, 첫날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소소한 곳에서 시간을 잡혀먹은 결과로 점심은 생략했는데도 JR 하루카를 타고 교토역에 도착하니, 훌쩍 3시를 넘고 있었다. 일본의 유적지들은 보통 네,다섯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일단 우리가 묵을 호텔 앞에 있는 '니죠죠'만 들리기로 했다.
 
JR 하루카를 타고 교토역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구내 2층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려 지도와 버스 일일권(대인 500엔)을 구매하고 일행들이 기다리는 중앙 출구로 나오니, 당황스럽고 황망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것인 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가방에서 낯선 이름의 태그를 발견한 것이다. 외형과 크기가 유사하다지만 착각해도 유분수지, 덜렁거리는 성격이 집 나와서 여지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할 수 없이 간사이 공항까지 되돌아갈 수밖에. 김해공항에서 빠리바게뜨 텍으로 표시한 일행들의 센스에 감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1603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 이후 이에야스가 천황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정식으로 쇼군 칭호를 내리도록 하면서 쇼군의 교토 숙소로 지어져 에도 바쿠후의 시작을 알린 곳이이기도 하고, 1867년, 에도 바쿠후의 막을 내린 '대정봉환'-권력과 주권을 천황에게 반납-의 조서를 내린 장소이기도 한 <니죠죠>.

이 니죠죠를 무척 보고 싶어했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자 가려니까, 일행들이 절대 안 된다고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 바보짓도 정도껏 해야지, 어이하여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이것도 자유여행의 묘미라는 말과 일본에 체류할 5박6일 동안 남편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조건으로 된잔소리를 일단 피했다.^^

니죠성 사진은 이튿날 호텔에서 지하철 타러 가면서 찍은 것. 해자에 둘러 쌓인 성을 보고 있으니 너나 할 것 없이 별로 볼 게 없다는 말로 위로 했지만, 교토에 와서 니죠성을 못보고 간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냐는 남편의 아쉬운 한탄이 아니더라도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집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아, 니죠죠의 아쉬움에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일행들은 니죠죠를 둘러본 후 숙소 체크인을 하고, 7시쯤 다시 교토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JR 하루카에서 배가 고팠던 남편은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고, 나는 두어 젓가락 뒤적거리다가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서 버렸다.

비오듯 주루룩 육수를 흘리며 물어물어 간사이 국제공항의 아시아나 항공 사무실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내가 잘못 가져온 짐을 화물로 붙였다. 외국 나온 첫날부터 짐을 잃어버려 황당했을 주인에게 전화상으로 실수를 사죄하고, 애물단지 내 가방을 찾았다. 그 사이 남편은 자동판매기에서 아사히 맥주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한모금 얻어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 왔다 갔다해서 어느새 친숙해져버린 간사이 공항 JR 타는 곳


▲ 짐을 찾아 다시 하루카를 타고 교토 가는 길에 배롱나무 군락이 인상적이어서 셔터를 눌렀는데, 빠른 속도에 제대로 안 잡혔음.



어쨌거나 말이 쉽지 교토에서 간사이국제공항까지 다시 갔다 오는 일은 만만찮다. 다행히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까지(1시간 15분 정도 소요) 빨리 갈 수 있는 'JR-West Kansai Area Pass' 일일이용권을 사둔 잇점이 십분 발휘된 순간이다. 하루 동안 JR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이 패스를 사지 않았으면 교통비가 얼마나 나왔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럴 때 "뽕을 뽑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겠다.

다시 JR 교토역에 도착, 일행들을 기다리며 천년고도의 관문인 驛舍의 초현대식 건물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예전에 내가 교토에 왔을 때는 없었던 건물인데, 1997년에 헤이안 수도 1200주년 기념사업으로 1997년에 오픈했다 한다. 역 주변의 백화점, 호텔, 빌딩들 때문에 언뜻 보면 대도시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역사를 두고 찬반양론이 분분했다지만 모던한 외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교토역 내의 극장존에 만화 '아톰'으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테즈카 오사무'의 스튜디오가 있고, 캐릭터숍인 '데즈카 오사무 와루도'가 있다. 어렸을 때 친근한 케릭터라 들리고 싶었는데, 개장이 저녁 7시까지라 아쉬웠다. 위용을 자랑하며 층층이 양쪽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트와 실내 사진을 몇 컷 찍었는데 모두 시꺼멓게 나와서 아랫쪽을 보고 찍은 이것이 그나마 볼만하다.

9층 레스토랑은 너무 비싸서 못가고, 10층의 소바가에서 줄을 선 끝에 일본 라면을 먹었는데, 뼈를 우려낸 느끼한 국물에, 짠 맛이 강해서 크게 실망했다. 일본 음식이 대체로 담백하고 싱거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확 뒤집는 맛이었다. 대신 차디찬 얼음냉수를 몇 통이나 비운 것으로 위로 삼고 스카이 라운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교토 야경을 즐겼다.



교토역 중앙 출구 맞은편에 있는 <교토 타워>는 바다가 없는 교토를 지키는 등대를 형상화시킨 것이라 한다. 철판을 용접하여 세운 덕분에 지난 고배 대지진 때 심한 흔들림 속에서도 잘 견뎌주었단다. 쿄토역을 나와 물어 물어 100엔샵을 찾아 갔으나 또다시 폐문. 하는 수 없이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서 버스로 숙소인 '고쿠사이 호텔'로 돌아갔다.



☞ 잠깐, 이틀밤을 묵었던 교토 고쿠사이호텔(京都ホテル) 소개
 
▲ 니죠죠(二 城) 바로 앞에 있는 이 호텔은 옛 후쿠이(福井)방주의 저택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곳에 세워졌다.

▲ 아름다운 일본정원에 고니가 노니는 그림같은 풍경을 만끽하며, 일식과 양식이 적절히 조화된, 뷔페식의 맛있는 아침 식사가 가능하다. 평소 아침은 토마토 쥬스 한잔이 전부인데, 하루 종일 많이 걸어야하는 부담감에 체력안배를 위해 꾸역꾸역 잘 먹어두기로 했다.

▲ 2인실 2개와 3인실 1개를 사용했는데, 사진의 방 구조는 2인실이다. 다소 좁다고 생각되어지나 일반 비지니스 호텔과 비교하면 거짓말 좀 보태서 운동장 수준.


▲ 마실 것이 갖춰진 공간 맞은 편에 세면대가 있고 그 왼편 문을 열면 비데가 설치된 욕실이 있다.


하루 일정이 끝나면 3인실에 모여, 새벽 1시나 2시까지 각종 일본 생맥주를 돌려 마시며 뒤풀이를 가졌다. 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 곁들일 만큼 모두들 일본 맥주를 좋아했다. 하루 종일 걷고, 아침 6시반에 어김없이 기상하여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고 즐겁게 다녔으니, 최고의 길동무들이다.


글쓴이:Lee, H.O.
교정/감수:내오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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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8-2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교정/감수 내오랜꿈???? 푸하하~~~ 너무 웃긴다. 그냥 언니가 쓴거지 무슨 교정은.... 글자 틀린거 몇개 잡았수? ^^ 글구 댓글을 쓰면 답글좀 남기슈.

내오랜꿈 2007-08-28 13:13   좋아요 0 | URL
뭔말이여? 댓글 남겼잖아?
글고, 나 충분히 교정/감수 자격 있어^^ 일단 맞춤법 다 교정보지, 문맥 수정하지, 역사적 관점이나 사실에 내 의견 개진하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리고 이렇게 하니까 뭔가 좀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나???

바람돌이 2007-08-2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선하기는 뭘 신선???? 무임승차하겠다는 심보구만.... 언니 글쓰는데 옆에 앚아서 어떡했을지 안봐도 비디오유... ㅎㅎ 아 댓글 남긴건 내가 늦게 봤어요. ㅎㅎ

파비아나 2007-08-2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같은 곳을 여행하신 두분의 조금은 다른 여행기라니 참 좋네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