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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 차베스의 상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 새사연 신서 2
김병권. 손우정. 안태환. 여경훈. 이상동. 정희용. 한우림 지음 / 시대의창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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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미풍처럼 스며들고,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친다." 

언뜻 생각해보면 '혁명'과 '개혁'의 위치가 뒤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를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손석춘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글을 시작한다.

"혁명의 시대. 누군가 지금을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핀잔받기 십상이다. 혁명의 꿈은 어느새 덧없는 열망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 그러나 냉철히 톺아볼 일이다. 과연 그 시기(=1980년대-인용자)가 혁명의 시대였을까.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1980년대의 몇 가지 정황을 이야기하며, 먹물들 사이에 혁명의 담론만 넘쳐났지 노동자 농민에게는 기실 아무런 준비없이 부닥친 자연발생적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목하자고 한다.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미FTA 체결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농민, 악화되는 부익부빈익빈, 부시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보라고 한다. 일흔을 앞둔 소작 농민과 4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백주대낮에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 숨지는 시대,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평택 대추리 주민의 삶을 앗아가는 시대가 지금 여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도 왜 혁명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1980년대의 논리가 민중의 삶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대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의 꿈이 영글어가는 시대에...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며 혁명을 준비하자고 한다. 언뜻 보면 이 무슨 철 지난 유행가도 아니고 생뚱맞은 소리인가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오해없기 바란다. 무장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 선거 혁명의 시대다.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거 혁명이 옳은 노선이다. 비단 브라질의 룰라가 보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보라. 미국과 맞서 꿋꿋하게 베네수엘라 경제를 혁명적으로 재건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베스의 실험은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시각차가 존재할 것이다. 과연 '선거혁명'이 유일하게 옳은 노선인지, '선거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02년에도 '얼빠진' 인간들, 노무현 당선을 일러 '선거혁명'이라고 하던 얼빠진 인간들이 어디 한 둘 이었던가? 아마도 2007년 12월에도 '선거혁명'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분석하고 있다. 먼저 배네수엘라 혁명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1980년대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 10년의 폐해 속에서 싹튼 민중의 저항에서 그 싹을 찾아낸다. 또한 차베스가 우발적 쿠데타의 실패 이후 10년이 지나 합법적 선거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배경에는 40년 동안 정당정치를 통해 안정화된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정치지형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집권 이후 반혁명 세력에 맞서 진정한 '민중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제헌의회', '볼리바리안 헌법' 등이 차베스 집권 이후 행해진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면,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차베스를 군기지에 감금했을 때 보여준 민중들의 '응징'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과정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의렴풋이 기억하는 2002년 그 봄의 며칠 동안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들려왔던 뉴스의 세세한 내막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칫 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재판이 된 채 잊혀진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과정을 헤쳐나오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용기는 부러움 그 자체다. 차베스가 집권 이후 3년 동안 인민들에게 준 것을 인민들은 잊지 않고 3일 만에 차베스에게 보답해준 것이었다. 이것은 베네수엘라 선거혁명의 핵심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만 되면 '주둥이'로만 '선거혁명'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허왕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의 10년을 거치면서 내용  없는, 알맹이 없는 '개혁'의 허황됨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용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용 이전에 그 내용을 담보하는 '이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거창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이념이 아니라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고 그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드러나는 이념적 지향 같은 것.

이외에도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볼리바리안 클럽'의 형성과 활동,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정착되는 과정, 미국의 대외정책에 맞서는 대안적 중남미 지역네트워크 건설 등을 8편의 글들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주목은 사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우리 나라 진보세력도 주목하고 연대를 표방했지만, 이상하게도 베네수엘라 만큼은 우리의 관심에서 비켜 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스러운지는 몰라도 작년부터인가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차베스 혁명에 대해서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란 자가 자신을 지지해준 정파의 비위를 맞추느라 '혁명열사릉 참배' 같은 소리나  하고, 무슨 2단계니 3단계니 하는 통일방안을 연출하느라 카메라 앞에서 폼이나 잡고 있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정신 차릴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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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 Better Blues (모 베러 블루스)
Branford Marsalis 외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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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보다 좋을 순 없다'


Mo' Better Blues. 너무나도 익숙한 곡이자 지금 자신의 상태를 평가해줄 만한 곡이다. 아주 유쾌하게 흥얼대며 들을 수도 있고 음악 뒤에 숨어 있는 왠지 모를 서글픔과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는, 듣는 이의 기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흑인 인권주의자 감독인 '스파이크 리'의 영화 『Mo' Better Blues』에 쓰인 동명의 곡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블루스보다 좋을 순 없다'쯤 될 것이다. 영화와 관련지어서 해석하면 많은 의미가 함축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블루스 자체가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 음악장르이기도 하고...

블루스란 음악장르는 그 역사를 알지 못하면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힘든 음악장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블루스의 정의는 '미국의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서아프리카의 해안 지역으로부터 백인들에게 포획되어 유입된 흑인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애환을 노래한 노동요(Work Song)를 시초로 하고 있는, 12마디의 화음조성 구조를 가진 음악'(신현준,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문학과 지성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블루스는 하나의 음악 장르 명칭에만 머물지는 않는데, 이른바 '블루지'한 상태란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지향점이자 인생관, 삶의 태도를 일컫는 의미로까지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흔히들 재즈는 뉴올리언즈에서부터, 블루스는 미시시피에서부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뉴올리언즈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흑인들의 드럼 사용이 선동용 기구라는 미명 아래 금지되었기 때문에 흑인 밀집지역 중 하나였던 미시시피에서는 주로 보컬과 현악기 위주였기에 벤조나 급조한 형태의 악기, 가령 워시보드, 하모니카 또는 휘파람 등이 사용되어 블루스가 발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뉴올리언즈의 경우 어느 정도 드럼이나 관악기의 사용이 가능했기에 후에 퍼레이드 음악의 유행과 함께 재즈가 발전된 것이라 보고 있다.

「Mo' Better Blues」 자체는 완전한 블루스 음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뭐 어쨌건 장르 자체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같이 공감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음악이 어디 있으랴!

영화 『Mo' Better Blues』는 개봉되지 않았고 비디오로만 나와 있다. 이 영화에선 유명한 트럼펫 주자인 'Branford Marsalis'가 직접 연주한 음악들이 나오는데 「Mo' Better Blues」 역시 그가 직접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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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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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1,2,3권을 처음 읽었던 때가 아마도 1986~87년 쯤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아직 완간이 되지 않고 1부, 2부... 이런 식으로 발간할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거의 20년이 지난 셈이다. 당시에 사 모았던 책들을 가지고 91년 쯤인가 다시 한 번 읽고서는 책장에 보관하다가 조카가 군대 있을 때 읽을 거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보내주었다 조카 내무반의 책이 되어버렸다. 다시 가져 오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강제로' 태백산맥을 읽히게 하고 있다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으로 잊고 지냈다.

그 뒤 직장을 여수로 옮기고 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여러 가지 시간때우기용 책을 읽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소설책이 그 첫번째 목록을 차지하게 된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혼불>, <삼국지>(황석영 번역본)을 새로 읽게 되었고, <아리랑>, <프로메테우스>, <고요한 돈강> 등도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속 한구석에 허전하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태백산맥>의 부재라는 사실에서 오는 허기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하소설들을 읽다 보니 다시 한 번 <태백산맥>을 읽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그렇게 해서 <태백산맥> 전집을 다시 사게 되었다. 나 혼자 읽기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는 <태백산맥>을 읽은 친구가 거의 없는 회사 직원들의 빈약한 책읽기를 채워주고픈 욕심이 더 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 직원들이 대부분 20대 후반 30대 초반이고,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자랐고, 대부분 고등학교만 나오다 보니 <태백산맥>이란 소설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는 친구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신기하기조차 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15년 만에 다시 읽게 된 <태백산맥>. 그 내용이야 새삼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하리오. 이 책의 발매 자체를 용공으로 몰아가던 20년 전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지금이야 대명천지지만, 다시 접하게 된 <태백산맥>으로 인해 드는 궁금함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 가장 첫번째는 이 책이 수능시험이나 논술을 위한 고등학생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는데, 작금의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단순히 논술에 도움되기에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과연 지금의 젊은 친구들이 그 시대의 치열한 삶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선생들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이전에 <태백산맥을> 읽었던 사람이든 새로 접하는 사람이든 한번쯤은 고민해보라고 권하게 싶은 게 있다면, <태백산맥>이라는 시대의 삶이나 지금의 삶이나 여전히 고달프고 아프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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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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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엔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있지 못할 게다.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빠는 소신껏 행동했으며 내 자신의 이념에 충실했단다. 아빠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로 자라기를 바란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하여 주기 바란다.
(체게바라가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체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흔히 쓰는 표현으로 질풍노도와 같았던 80년대적 꿈과 이상이 쓰러진 자리에는 아픈 회한과 눈물만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눈물과 회한조차 돈이 된다면, 춤추는 자본의 기획으로 포섭되어 최신 유행의 상품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혁명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 난무하던 지난 97년, 전세계적으로 가장 각광받았던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체게바라일 것이다. 그의 사망 30주기를 추모하는 물결로 시작한 흐름은 그의 피가 묻힌 안데스 산맥에서, 그의 시신이 누워 있는 쿠바에서, 그의 죽음을 사주했던 미국에서, 심지어 생전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90%는 넘을 대한민국에서조차도 하나의 '유행'이었다. 대학가에 휘날리는 짙은 수염의 체의 초상화, 체의 얼굴이 붉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 그 티셔츠의 뒷면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Revolution Forever!"

헉! 내가 그걸 보고 들었던 첫 느낌의 표현이었다. 혁명을 찬양하는 그 문구가 놀라운 게 아니라 혁명조차 돈이 된다면 '상품'으로 팔아먹는, 영악한 자본의 속성이 새삼스러워서 그랬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포스트모던' 세태를 새삼 나무란들 무엇하랴. 이기와 물질에 찌든 현대인에게 어쩌면 그런 '변덕'조차 고마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혁명은 더 이상 시대의 유행은 아니겠으나, 그 혁명이 해결하려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간의 자유와 정의를 억압하는 그 모든 현실이 있는 한…. 그런 현실 앞에서 우리도 이젠 마냥 목놓아 괴로와하기보다는 적당히 영합할 줄 아는 '솔로몬의 지혜'를 터득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든, 그 꿈과 이상의 복원을 기원한다. 그 꿈, 체게바라가 안데스 산맥에서 고립돼 죽어가는 순간에도 결코 놓지 않았던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가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게릴라 대원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말이다. 불가능한 꿈. 물론 이건 결코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었다. 이걸 그는 쿠바혁명을 통해, 소수 게릴라 대원들을 이끌고 농민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려 그 꿈을 실현시켜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혁명후 그는 쿠바 국립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역임하면서 혁명후 쿠바사회 건설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고, 뛰어난 언변을 활용해 외교관으로 나서서 전 아메리카 대륙에 혁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마침내, 그 자신이 역설한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혁명 실현을 위해 피델(카스트로)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 남기고 볼리비아의 밀림 속으로 스며든다.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은 해방된 사회가 아니라 압제에 맞서 싸우는 볼리비아 민중들'이라는 말을 남기고...

이런 체게바라였기에 당시 미국정부는 그가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에서 게릴라군을 지휘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선 그의 제거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가 10월의 안데스 산맥에서 볼리비아 정규군에게 생포되고도 18시간만에 사살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판이니 뭐니 하는 과정을 거치다간 전세계적으로 일어날 구명운동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미 그의 이름은 하나의 '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체게바라를 생각하면 난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루이 알뛰세와 레지 드브레. 현대 프랑스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이야 익히 들어 봤을 테고... 사제지간인 이 두 사람의 관계 속에도 체게바라는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스며든다.

전유럽을 강타했던 68년 5월 혁명의 진행 속에서 '멍청한' 각국의 사회당, 공산당 지도부는 노동자, 학생들이 주도하는 사회혁명의 열기를 승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혁명의 열기에 놀라 뒷걸음질 치다 혁명지도부로부터 배척당하는 웃기지 못할 사태로까지 이어진다(그리고 이것이 68년 5월 혁명이 미완의 혁명으로 남는 중대한 이유가 된다). 이 와중에서 노동자 학생운동의 지도부는 좌파 이론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알뛰세의 말만은 경청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 알뛰세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레지 드브레. 알뛰세로부터 가장 총애를 받던 그는 체게바라가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의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서 있을 곳도 그곳이다'라는 듯 만류하는 알뛰세를 뒤로 하고선 체를 따라 볼리비아의 밀림 속으로 뛰어든다. '파리고등사범'의 촉망받는 철학자에서 게릴라 전사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알뛰세는 드브레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된다.

"투쟁에 대한 긴급한 요구가 있지. 하지만 (...) 때로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결정적인 연구에 전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긴요한 것일세. (...) 투쟁에서 면제된 이 시간은 결국 투쟁 자체 속에서 시간을 절약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네."
(L. 알뛰세, 「레지 드브레에게 보내는 1967년 3월 1일자 편지」)

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이론연구에 전념하는 게 싸우는 시간을 앞당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 '니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구를 해라'는 말이다.

그런데 난 이런 레지 드브레에게서 하나의 역사의 아이러니를 본다. 그렇게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까지 찾아가 무장투쟁에 가담했던 드브레는 생포되고 난 뒤 국제적인 청원운동으로 다시 프랑스에 살아 돌아와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그는 '이미지론'에 몰입하면서 현실운동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 지난 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인 좌파의 죠스팽 대신 우파의 시라크 지지선언을 해 그의 전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체게바라 전기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볼리비아의 산 속에서 체가 유일하게 신뢰하고 의지했던 레지 드브레, 마지막 10여 명이 남을 때까지 끝까지 저항하다 체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레지 드브레. 그는 과연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이렇게 '체게바라' 라는 이름은 60년대 유럽 젊은 지성들의 이정표이자 마음 속에 진 빚으로 남아있는 이름이었다. 체 역시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선택받은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뛰어난 게릴라 전략전술가로서, 뛰어난 혁명이론가로서 수많은 저술을 남기기도 한 인텔리 출신이었기에... 그들이 머리 속으로만 그리고 있던 것을 체게바라는 몸으로 실천해 보인 것이다. 진정 60년대는 체게바라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지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손에 다시금 '체게바라 평전'이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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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달 1집 - 두번째달 [재발매]
두번째달 연주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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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남편의 차 안에서 듣자마자 반해버린 이 음반, 너무 좋다. 전곡 모두,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몽환의 여행을 떠나는 듯 맑은 느낌이다. 그 중 9번 트렉의 '얼음연못'은 처음임에도 익숙하게 들려서, 아무래도 드라마 '궁'의 OST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남편은 아니라고 하더라. 당시에는 나도 두 번 정도인가 본 드라마라서 긴가민가 하여 끝까지 우기지 못했었고...^^ 그런데 오늘 몇 권의 책과 함께 이 음반을 주문하며 찾아보니 이궁~ 맞네? 두어 번 듣고도 귀에 익었던걸 보면, 특별하게 들렸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 과천 현대미술관 가면서 자켓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았었다. 태초에 달이 두 개였을 것이라니, 얼마나 재미나고 깜찍한 발상이던지... 
 
아내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두번째 달>을 들은 소감이다. 그런데 난 전혀 기억이 없는 것을 마치 사실처럼 써놓았다. '얼음연못'이 드라마 '궁'의 OST냐고 물어본 적도 없고, 당연히 내가 아니라고 답했던 적도 없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아내는 마치 사실처럼 꾸며 놓았다. 누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아마도 <두번째달>의 그 몽환적인 사운드에 취해서 그런건가?
 
그건 그렇고 나한테 음반이 있는데, 굳이 또 자기가 주문할 건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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