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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유목주의’ 이미지만 떠돈다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⑤ -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①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 노마디즘은 저항의 철학인가 침략의 철학인가? 홍윤기 교수는 노마디즘이 실체는 없이 이미지만 떠도는 실험 단계의 기획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보였다. 칭기즈 칸의 동상,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한국 국적 취득자들(왼쪽부터).〈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 논쟁 ⑤

① 개념부터 확정해야

유목주의로 옮겨지는 노마디즘(nomadism)이 국내에 본격 알려진 시기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천의 고원〉(1980) 해설서 〈노마디즘 1·2〉가 나온 2002년께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가 쓴 이 책에서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이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으로 규정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특히 그들의 저서에서 “국가로 상징되는 고착된 가치에 맞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도구”로 ‘전쟁기계’를 노마디즘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노마디즘은 지난해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씨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란 책을 내놓으면서 논쟁이 일었다. 천씨는 다리를 놓고 길을 내며 질주하는 유목의 세계에서 반생태성과 비지속성 그리고 ‘침략과 파괴의 역사’를 읽어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노마디즘은 칭기즈 칸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복고주의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외형상의 유목이나 움직임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배적 가치와 대결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안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홍윤기 교수는 이번 글에서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서 수많은 노마드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하거나 대립·공존하고 있음을 우선 지적한다. 자크 아탈리류의 ‘시장 노마드’나 첨단기기로 사이버공간을 가로지르는 ‘고급소비자 노마드’라고 해서 진정한 노마드가 아니라고 배제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노마드들이 갖고 있는 의미가 특정 규정으로 결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지 못하고 다감각의 ‘이미지’로 교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노마디즘은 ‘개념’과 실행’이 부족한 탈현실 기획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노마디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의 응답부터 말하자면, 아직 ‘어떻게’ 봐야 할 ‘그 어떤’ 노마디즘 같은 것은 우리 생활 안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말을 써서 모종의 효과를 유발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은 우리 주변에 넘친다. 그리고 이 효과들은 상호 충돌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변화무쌍한 그 용어의 용례들부터 정리하고 나서야 가능할지 모른다.

1.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공저 〈천의 고원〉이 역사학을 제외한 인문학계와 일부 사회학자들, 그리고 학문적 유행에 민감한 언론계, 소비자 취향에 집중하는 사업계 등의 지도적 인사들로 하여금 노마디즘을 일상적으로 입에 달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1227년”이라는 암호 같은 연대를 앞세운 이 책 12장의 표제를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라고 붙이면서 “전쟁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진술로 그 장을 시작한다.(유목민의 최고 상징 격인 칭기즈 칸은 바로 이해 8월18일 서하(西夏) 정벌 중 병사했다.) 이때 “전쟁”을 무엇으로 이해했든 들뢰즈·가타리는 전쟁과 관련된 유목민의 역동성 같은 것이 “국가”의 영토성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탈국가적·탈경계적 추진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했다. “전쟁기계는 유목민의 발명품이다”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은 “불복종 행위, 봉기, 게릴라전 또는 행동으로서의 혁명이라는 반국가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전쟁기계가 부활하여 “새로운 유목적 잠재세력”이 출현한다는 일반명제를 제시했다.

탈국가 지향하는 제2의 칭기스칸
사이버 공간 활보하는 고급 소비자들
모든 문명 내던지는 원시 회귀 까지
수많은 노마드 주장들 대립·공존


2. 문제는 이들이 그렇게 타파하려는 국가가, 민주적이든 독재적이든, 어떤 종류의 국가인지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국가는 그 자체로서 이미 어떤 형태이든 “포획 장치”이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작동시키고자 하는 전쟁기계의 목표가 반드시 전쟁은 아니라는 언명은 전쟁을 게임 속에서의 경쟁쯤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정도로 문제의 진지성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전쟁 기계의 가동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뿐만 아니라 노동·상품·자본 등 “포획”을 연상시키는 모든 제도 장치로부터의 탈주를 권장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전면적 탈경계 기획은 그 실천적 함의가 대단히 다양하다.

3. 이것을 문명의 모든 성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 그것은 원시로의 회귀까지 각오한 급진적 생태주의가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때의 탈주는 역진적 퇴주가 되는 셈이다.

4. 만약 탈경계의 지향점을 문제삼지 않을 경우, 삶의 조건과 영역에 처진 경계들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왕래하거나 이동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와 생활양식은 모두 노마드적이다. 인간이란 “여행을 존재의 본질”로 한다고 하여 ‘호모 노마드’를 부각시킨 자크 아탈리는 세계화된 지구시장을 그 옛날 대상로가 거미줄처럼 얽혔던 실크로드로 간주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노마드로서 진화의 최종점에 도달하며, 이들이 전세계를 장악하기까지의 무질서 너머로 “모든 인생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땅”이 전개된다고 고무한다.

5. 당연히 아탈리류의 시장 노마드는 세계 자본 순환과 그것의 외양인 제국에 완전히 포획되어 그 안에서 이익에 혈안이 된 “여행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여행자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다. 농촌자치 공동체를 꿈꾸는 농민 철학자 천규석 선생에게 이런 “유목주의는 침략주의이다.”

6. 그렇지만 자본과 제국의 포획 안에서 자신의 생활압박 때문에, 베네치아에서 출생하고 호주에서 성장하다가 프랑스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네덜란드에서 교수로 취업한 로저 브라이도티 같은 이에게 유목적 주체란 연속된 이주로 복잡화되고 다층화된 수많은 다양한 타자들 사이의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7. 그러나 자본의 속도는 유목민의 다양화를 앞질러간다. 이미 시장에는 마셜 매클루언의 예언대로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피디에이(PDA), 디지털카메라, 엠피3(MP3)을 갖춘” 고급 소비자들이 노마드를 자칭하면서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무한 초원을 무대로 “공간의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법을 능동적으로 바꾸어가는 창조적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21세기판 유토피아 꿈꾸는 노마디즘
개념·실행 없는 ‘탈현실’ 실험일 뿐
찬반을 말하기엔 아직 일러
변화무쌍한 용례들부터 정리해야


자, 위의 노마드 또는 유목민의 사례들 가운데 자기만 빼고 다른 것은 진정한 노마드나 유목민이 아니라고 얘기할 권리가 있는 진정한 유목민은 몇 번인가? 그 의미가 어떠하든 노마디즘은 어떤 동기나 근거에서든 21세기 현재의 (지구)사회적 지형 위에서 과거의 ‘유토피아’ 구상을 대체하는 탈현실(post-reality) 기획이다. 그야말로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 수많은 노마드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면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하거나 대립하거나 공존한다. 이때 의미들(senses)은 특정 규정으로 결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기보다 다(多)감각(multi-sense)의 ‘이미지’ 파문으로 교착한다.

다만 노마디즘 기획은 노마드를 바로 지금 이곳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유토피아 구상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탈경계의 이동이나 탈주를 하는 듯이 보이는 소수 엘리트층 또는 자기 땅에서 밀려나 탈국가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수많은 빈민이나 노동 이민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진경 교수의 말대로 이들은 “떠돌아다니지만 끊임없이 어딘가 멈출 곳을 찾는” ‘실질적 고착자들’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역시 이진경 교수의 구상을 빌려, 떠남/멈춤의 이동성을 신체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사상과 갈등을 자유자재로 읽고 사유하는 한층 정신적인 차원에서 유목성을 추구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목성이 국가·자본·시장과 같은 외적 준거점을 떠나 정신과정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그런 관념적 유목성이 들뢰즈·가타리가 “모델을 늘리지 않으면서” 끝까지 놓지 않으려던 “매끈매끈한 판”을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홈 안으로 몸을 도사리는 것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는 단지 탈주의 기획을 말했을 뿐이다. 그것은 노마드에서 많은 것을 학습하는 과정, 곧 노마돌로지(유목론)적 탐색이긴 해도 노마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노마디즘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 홍윤기 교수
 
노마드나 노마디즘은 거기에 대한 찬반 의견을 말하기엔 그 자체의 ‘개념’과 ‘실행’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현재적으로 태부족한 실험기획이다. 더 중요한 것은 들뢰즈·가타리가 결국 인정했듯이 노마드 그 자체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다. 곧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의 매끈한 공간만으로 충분하다고는 절대 믿지 말라.”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홍윤기 교수는 1957년생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사회통합의 규범기반 모델, 그리고 문화적 가치의 철학적·사회과학적 실현 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변증법 비판과 변증법 구도> <헌법 다시 보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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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거부한 애정의 경제학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러스킨 지음·김석희 옮김/느린걸음·1만2000원

한승동 선임기자 / 그림 느린걸음 제공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러스킨 지음·김석희 옮김/느린걸음·1만2000원


영국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의 혁명적 사상
부는 ‘제로섬’…‘정의와 애정’이 최선 낳아
“생명 향한 열망 담아야 진짜 경제학” 역설


〈신약 성서〉 마테오복음 20장에 포도밭 일꾼 얘기가 나온다.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꾼들에게 1데나리우스를 주기로 하고 포도밭 일을 시켰다. 주인은 아홉 시와 열두 시, 그리고 오후 세 시쯤에도 일꾼들을 각각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저녁에 일삯을 주는데 모두 1데나리우스씩 주자 일찍 시작해 긴 시간 일을 한 사람들이 불평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중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산업혁명으로 최성기를 구가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비평가요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1819~1900·그림)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느린걸음)에서 애덤 스미스에서 토머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로 이어진 자본주의 정통 경제학의 전제조건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는 고용주와 노동자를 포함한 경제 주체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정의와 애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모든 당사자가 저마다 자기 이익을 꾀한다고 가정”(밀)하면서, 이기적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손”(스미스)의 역할을 낙관한 정통 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정통 경제학자들은 예컨대 집주인은 가능한 한 하인들이 빈둥거릴 짬을 주지 않고 그들이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의 빈약한 음식과 형편없는 방을 주고 다른 데로 떠나가지 않을 한도 내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며 매사에 한계점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주인과 사회, 나아가 하인에게도 최대의 이익을 안겨주는 합리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스킨은 기계와 달리 “영혼을 동력으로 삼는” 하인이 최대한 많은, 질 높은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은 보수나 강한 압력이 아니라 의지나 정신, 친절과 신뢰, 정의, 공평무사, 한마디로 애정이라고 말한다. 공장주와 노동자, 장교와 병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러스킨은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보수도 같아야 한다며, 의사나 교회 목사에 대해서는 그들 솜씨가 좋든 나쁘든 똑같은 사례를 지불하면서 노동자들에겐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노동력에 대한 대가에 차등을 두게 될 때 미숙련 노동자가 싼 값으로 숙력 노동자의 자리를 빼앗거나 임금을 깎아내리고 무한경쟁에 돌입함으로써 대다수가 망하는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조지 버나드 쇼가 카를 마르크스보다 훨씬 더 “혁명적”이라고 했다는 러스킨 사상의 급진성은 부(富)에 대한 그의 생각에 집약돼 있다. 러스킨은 일정한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근대경제학자들의 절대적 개념의 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 부는 제로섬과 같다. 누구 주머니에 든 1기니라는 돈의 힘은 이웃의 주머니 속에 1기니가 없다는 사실과 그 이웃이 돈을 원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부자가 되는 기술은 재산을 모으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이웃이 자기보다 적게 소유하도록 획책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자신만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불평등을 확립하는 기술인 것이다.”

러스킨은 식민지경영과 불평등 교역을 통해 전세계로부터 부를 빨아올리며 자연을 파괴·오염시키며 국가간, 그리고 국가내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켜가던 대영제국의 작동방식과 그것을 뒷받침한 근대경제학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비판했다. 나라 안팎을 넘나드는 주식투자와 신종 펀드들이 난무하고 부동산 투기 등 ‘재테크’가 일상화한 21세기 한국사회는 당시 영국사회와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런 재테크는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부의 이전과 집중에 따른 불평등을 창출한다. 그것은 내부 양극화뿐만 아니라 전세계 차원의 국가간·지역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강자들간의 도박게임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나오기 7년 전에 발간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말하자면 150년 전에 거기에 이의제기를 한 것이다.

근대경제학은 그런 불평등을 긍정한다. 그 바탕 위에서 각자 최대의 이익, 이윤을 짜내는 걸 정당화한다. 오늘날 세계와 한국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그 연장이자 필연적 귀결이다.

러스킨에게 “진짜 경제학”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그리고 파멸로 이끄는 물건을 경멸하고 파괴하도록 국민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자립적 소농경제 쪽을 지향한 마하트마 간디가 러스킨한테서 큰 영향을 받았던 것도 이 부분일 것이다. 자본도 “생명에 유용한 어떤 물건을 공급하느냐, 생명을 보호하는 어떤 구조물을 짓느냐”를 기준으로 봐야 하며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자본의 증식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그런 자본은 아예 없느니만 못하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최대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을 양성하는 나라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하여 그 인격과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오렌지색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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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민주 국가, 사회 국가를 향하여
[좌파, 국가를 디자인하다] 사회 국가③ -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
 
출처:<레디앙> 2007년 12월 27일 진보정치연구소 redian@redian.org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이번에 펴낸 책,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후마니타스)는 한국 사회가 재설계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면서 ‘사회 국가’를 그 열쇠말로 제시한다.

<레디앙>은 진보정치연구소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책 내용 가운데 서론과 결론 부분을 발췌해 몇 차례에 걸쳐 나눠서 싣는다. 이 책의 서문은 조승수 연구소 소장이 썼으며 내용은 장석준, 성은미, 조진한, 이상호, 정택상, 강병익 연구위원들이 맡아서 썼다. <편집자 주>

3절 ‘강한’ 민주 국가, 사회 국가를 향하여

비정규직 증가, 청년 실업, 영세 자영업 부도, 농업 붕괴, 부동산 대란 …. ‘양극화’라는 말 뒤에 자리한 지금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이다. 이들 문제에 대한 개별적인 대응 방안도 날이면 날마다 신문 지상을 장식한다. 하지만 응급 처방이나 개별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 국가, 시장 국가가 버티고 있는 한.

위에서 우리는 ‘약한’ 민주화의 틈을 비집고 나온 것이 자본 국가라고 진단했다. 그럼 자본 국가에 맞서려면 어떤 원칙에서 출발해야 하겠는가? ‘약한’ 민주 국가, 즉 민주주의의 허약성을 극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는 말했다, “민주주의가 문제를 갖고 있다면 그에 대한 처방은 바로 더 큰 민주주의”라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20년 간의 민주화의 맹점과 한계에 도전하는 ‘강한’ 민주주의다.

‘약한’ 민주주의는 대통령 직선제를 민주화와 등치시킨다. 보수 정당끼리 정권을 교체하고 명문고 명문대 출신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걸 바라보는 게 민주화라고 한다. 그러나 ‘강한’ 민주주의는 노동 현장과 거리의 사람들이 직접 권력을 쥐지 않는 한 민주화는 완성된 게 아니라고 본다. 모든 결정 과정에서 대중이 주도권을 쥐어야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못 받는다.

‘약한’ 민주주의는 청와대나 국회 같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다. 재벌 회장실이나 공장 담벼락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춘다. 그 때문에 자본 국가가 들어설 여지를 항상 열어둔다. 하지만 ‘강한’ 민주주의는 가진 자의 권력에 손을 대지 않고서 그게 무슨 민주주의냐고 단언한다. 독재자라면 총칼의 독재자뿐만 아니라 황금의 독재자도 용납할 수 없다.

‘약한’ 민주주의는 자본 주도의 세계화에 속수무책이고 되레 그것에 편승한다. 자본의 이권 확대에 함께 하는 반면 대중의 살림살이를 챙기는 데는 무능하다. 그래서 ‘약한’ 민주주의 아래서 서민들의 입에서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허나 ‘강한’ 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민중의 생존권 더 나아가 행복할 권리를 가장 우선한다. ‘강한’ 민주주의는 다름 아니라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다.

‘강한’ 민주 국가의 다른 이름, 사회 국가

이제부터 우리는 ‘제2의 민주화’의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강한’ 민주 국가를 세워야 한다. 1980년 광주의 아픔을 딛고 7년 만에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을 물리치며 민주화를 시작했던 것처럼, 사회 양극화의 폐허 위에서 우리 세대의 모든 열망과 역량을 모아 ‘강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쌓아야 한다.

‘약한’ 민주 국가가 자본 국가, 시장 국가를 불러들인 것과는 달리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강한’ 민주 국가는 자본 국가, 시장 국가에 정면으로 맞선다. 자본 국가와는 정반대되는 그 지향을 우리는 ‘사회 국가’라 부른다. 즉, ‘강한’ 민주 국가의 또 다른 이름은 ‘사회 국가’다.

   
▲ ‘사회주의 국가’를 외치는 베네수엘라 인민들 (사진=로이터/뉴시스)
 
사회 국가는 민중의 생존권 및 행복추구권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권리들을 소유권이나 경영권 같은 다른 권리보다 위에 둔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에 따라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구축한다.

자본 국가에서 소수의 자본 소유자들이 대다수 다른 시민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리는 것과는 달리 사회 국가에서는 사회 전체의 정의의 실현을 위해 자본 소유자들의 권한을 제어한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의 기득권 자체를 해체해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되돌린다.

‘사회 국가’는 본래 독일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2차 대전 이후 제정된 독일 각 주의 헌법은 ‘사회 국가’나 그 비슷한 말을 즐겨 사용한다. 바이에른 주 헌법 제3조는 바이에른 주가 ‘사회 국가(Sozial staat)’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헌법 제43조는 ‘사회적 인민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독일 전체의 헌법인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의 제20조 1항은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라고 규정한다.

이웃 나라 프랑스도 헌법에 비슷한 개념을 담고 있다. 1946년 제정된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은 제1조에 ‘사회적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담았다. 이 제1조의 정신은 현재의 제5공화국 헌법에도 계승되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1조의 첫 머리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는 분리 불가능한 세속적, 민주적, 사회적인 공화국이다.”

독일, 프랑스, 베네수엘라의 ‘사회 국가’

21세기 벽두부터 급진적 사회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도 ‘사회 국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1999년 새로 제정된 베네수엘라 헌법 제2조는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법과 정의에 기초한 민주적 사회 국가(a Democratic and Social State)로서 생명, 자유, 정의, 평등, 연대, 민주주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인권과 윤리, 정치적 다원주의의 보편적 실현을 법질서와 집행의 최고 가치로 삼는다.”

독일식의 ‘사회 국가’ 개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복지 국가’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즉, 복지 국가의 법률적, 법학적 표현이 사회 국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보면, 이 이름을 굳이 서유럽 복지 국가에만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주창하는 이 나라도 신자유주의의 첨병이 돼 있는 다른 나라들과 구별하는 명칭으로 ‘사회 국가’를 채택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사회 국가’도 이러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전제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일정하게 조절하면서 사회권을 보장하려고 노력하는 북유럽 복지 국가들도 사회 국가의 한 유형이라 생각하며,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사회 체제를 구축해서 사회권을 실현하려는 베네수엘라 같은 사례도 사회 국가의 또 다른 유형이라고 본다.

어쨌든 이 두 유형 모두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 한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사회 전체를 자본의 독재 아래 헌납하려는 신자유주의의 공세와는 적대 관계에 있다.

국내에서는 조희연(성공회대 교수, 사회학)이 우리와 같은 시각에서 ‘사회 국가’의 비전을 제시한다. 조희연은 박정희의 국가자본주의 축적 모델과 신자유주의 양극화 축적 모델을 동시에 극복할 급진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대안적 사회국가 모델’이라고 이름 붙인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대안적 사회국가 모델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나는 박정희와 싸웠던 민주세력들이 주도하는 민주정부가 비록 정치적으로는 박정희와 대척점에 서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박정희 모델의 변형된 재생산정부라고 판단한다.

이를 넘어서지 않는 한 진정으로 박정희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포스트 박정희 시대를 대안을 가지고 열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축적 모델은 단순히 서민이나 하층대중만이 아니라 중간층 중산층마저 몰락시키는 총체적인 양극화 모델로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사회국가는 바로 이러한 총체적 재구성의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 조희연, 「진보논쟁에 이어, '진보적 희망의 언어'를 위하여」, 진보 싱크탱크 연합토론회 발제문, 2007. 3. 22.

우리가 제시하는 ‘사회 국가’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우리는 이 책 전체를 통해 현재의 자본 국가, 시장 국가에 맞서는 대안의 밑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포괄하는 이름이 곧 ‘사회 국가’다.

사회 국가에는 역사적으로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 서유럽형 복지 국가도 있고, 다양한 사회주의적 시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서로 다른 유형들을 꿰뚫는 공통의 특성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적 권리들의 최대한의 실현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자본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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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는 ‘약한’ 민주화
[좌파, 국가를 디자인하다] 사회 국가② - 그 결과는 자본 국가, 시장 국가
진보정치연구소 redian@redian.org
출처 : <레디앙> 2007-12-22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이번에 펴낸 책,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후마니타스)는 한국 사회가 재설계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면서 ‘사회 국가’를 그 열쇠말로 제시한다.

 <레디앙>은 진보정치연구소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책 내용 가운데 서론과 결론 부분을 발췌해 몇 차례에 걸쳐 나눠서 싣는다. 이 책의 서문은 조승수 연구소 소장이 썼으며 내용은 장석준, 성은미, 조진한, 이상호, 정택상, 강병익 연구위원들이 맡아서 썼다.

내용 중 푸른 색의 제목은 원책자에 나온 것이며 검은 색의 굵은 글씨 제목은 편집진에서 임의로 붙인 것이다

<편집자 주>


2절 ‘약한’ 민주화의 결과는 자본 국가, 시장 국가

겉으로만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중남미나 동남아시아와는 달리 군부 세력은 이제 더 이상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가 아니다. 전두환, 노태우를 어떻게든 재판에 회부한 것도 예를 들어 칠레 같은 나라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대목이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는 죽을 때까지 어떠한 단죄도 받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또한 한 차례 정권 교체를 경험하기도 했다. 군부 독재 정권 시절 가장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던 야당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혁명 비슷한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가 정착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대한 문제점과 한계가 존재했다. 무슨 문제들이었는가? 우선 그 주인공에게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또한 그 의제에 문제가 있었다. 이제부터 그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민주화의 주역들이 분열되다

첫째, 민주화의 ‘주인공’의 문제를 살펴보자. 한국에서는 민주화를 위해 싸운 대중들이 곧바로 분열되었다. 그리고 이 분열은 좀처럼 극복되지 못하고 점점 더 곪아들어 갔다.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노동자, 농민이 독자적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 당시에도 노동자 민중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해 있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은 보수 야당이 쥐고 있었다. 치열한 학생운동이 있었고 85년 무렵부터는 민주노조운동도 불붙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민주화 운동의 정치적 상징은 김영삼, 김대중이었다.

   
▲ 1987년 대선 당시의 양김씨
 
그런데 198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들 양김 씨가 대통령이 될 욕심에 보수 야당을 둘로 가르고 말았다. 그러자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더해 ‘지역’이라는 새로운 대립 구도가 등장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대의 아래 호남 민중이 따로 없었고 영남 민중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87년 대선 뒤부터는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도) 어떠한 다른 대의도 ‘지역’이라는 분열선을 쉽게 넘어서지 못했다.

운동권이라 불린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90년대 내내 선거만 다가올라 치면 이른바 ‘새로운 피의 수혈’이 있었다. 선거 때마다 재야 명망가들이나 학생운동 경력자들(세칭 ‘386’ 정치인들) 혹은 노동운동 상층 간부들이 김영삼, 김대중 중 어느 한 쪽에 줄을 대서 지역주의 보수정당의 공직자 배지를 단 것이다.

일단 이런 식으로 흡수되고 나면 모두들 지역주의의 들러리가 되거나 보수정치의 새로운 주역으로 거듭 났다.

이러한 주체의 분열은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에서도 나타났다. 새롭게 등장한 민주노조들은 하나같이 ‘기업별’ 노동조합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법적으로 그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단 조직들이 기업 단위로 쪼개져 존재한다는 것은,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노동자들은 새롭게 민주노조를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기업 단위로 분열된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초기에는 이러한 문제가 그렇게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았다. 대기업 노조든 중소기업 노동자든 모두 자본가와 국가의 극성스러운 탄압에 시달렸기 때문에 서로 활발한 연대 투쟁을 벌였고 동지라는 의식도 강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여러 가지 조건들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한 쪽은 임금이 오르는데 다른 쪽은 그렇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어느 한 쪽이 임금이 오른 것 때문에 다른 쪽 노동자들이 고달파지는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이런 현실이 부각되자 노동자들 내부의 분열 양상이 걷잡을 수 없이 강화되었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를 요구할 주역인 노동계급이 스스로 분열의 덫에 빠져 제 역할을 못하는 형편이다.

엘리트들 사이의 타협이 민주화 과정을 지배하다

둘째, 민주화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보자.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지배한 것은 상층 엘리트 간의 타협이었다. 비록 엄청난 대중 동원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지만, 그 정치적 과정은 항상 기득권 세력 간의 타협으로 끝났다.

87년 6월 전국의 거리는 역사책에 나오는 혁명의 순간을 방불케 했다. 어떤 때는 한 장소에 무려 100만 명 가까이 모이는 일도 있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한국의 민주화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의 힘이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딱 여기까지 만이었다. 군중 동원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대신 정치적 방향을 결정한 것은 군부 정권과 보수 야당의 상층 엘리트들이었다. 그 예고편은 1986년 4월 30일의 청와대 3당 합의였다. 이 때 군부 정권과 보수 야당은 국회 합의를 통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

여기서 우리는 ‘국회 합의’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당시 ‘국회’란 군부 독재 세력과 보수 야당 양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헌법 개정이라는 전 국민적 사안을 정권과 보수 야당만의 협상과 합의로 처리하겠다는 것. 여기서 빠져 있는 것은 결국 누구인가? 바로 정작 민주화 운동의 주역인 거리의 대중이다.

이러한 타협의 연장선 위에 6. 29 선언이 있다. 6. 29 선언은 거리의 대중에 대한 군부 정권의 ‘항복’ 선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단 위기부터 넘기고 보려고 보수 야당에게 타협을 제안한 것이기도 했다. 6. 29 선언 어디에도 민주화의 실질적 조치는 담겨 있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다만, 양김 씨에게 대통령 직선의 기회를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제6공화국의 헌법은 4. 30 합의 그대로 기존 국회 원내 정당들 사이의 협상만으로 만들어졌다. 오로지 그 해 12월의 대통령 직선 일정에 맞추기 위해 가을에 밀실에서 전격적으로 새 헌법을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 이행을 한 브라질과 비교해보자.

브라질에서는 민주 체제의 새 헌법을 만들기 위해 의회를 새로 소집했다. 이 의회는 ‘제헌의회’라 불렸다. 그리고 약 2년에 걸쳐 개헌 토론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 투쟁에 참여한 여러 사회 세력들의 요구가 의제에 올랐다.

개중에는 노동권의 신장을 원하는 노동조합들도 있었고, 농지 개혁을 바라는 농민운동 조직들도 있었다. 외채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있었고, 아마존 생태계를 지키자는 환경운동의 주장도 있었다.

지금의 브라질 헌법이 이들 요구를 완벽히 충족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와 비교해보면, 브라질에서는 적어도 대중의 목소리를 민주화 과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의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이후에 비슷하게 재연되었다. 노태우 정권 이후 등장한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은 모두 1992년의 3당 합당과 1997년의 DJP연합이라는, 군부 잔당들과의 타협에 기반을 두었다. 3당 합당이나 DJP연합이 족보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어쩌면 이들 야합은 87년 이후 한국 민주화 과정으로부터의 일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 궤도 안에 있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사실 타협을 통한 민주화가 우리만의 사례는 아니다. 1970년대 스페인의 민주화 과정도 비슷했다. 스페인에서는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나서 민주화 이행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도 역시 기존 지배 세력과 야당 사이의 타협에 따라 민주화의 방향과 일정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 때 스페인의 야당은 좌파정당인 사회노동당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좌파정당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도 협상에 참여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중요한 제도 정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1996년 연말에 시작된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가 정치적 실체로 부상한 중대한 사건이었는데, 그럼에도 그 결말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노동조합을 배제한 채 정부와 보수 야당만의 협상이 진행됐고, 그래서 원래의 노동법 개악안이 거의 그대로 다시 통과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약한’ 민주화였다

셋째, 민주화의 ‘의제’ 측면에서 나타난 문제를 보자. 한국의 민주화는 철저히 정치적 민주화의 좁은 틀 안에서 추진되었다. 사회 경제적 민주화는 관심에서 비껴났고, 더 나아가서는 최근까지도 탄압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민주노조의 활동이 각종 노동악법의 족쇄에 묶여 있었던 데서 잘 드러난다. 민주노조의 전국조직인 민주노총이 합법적 지위를 부여받은 게 불과 10년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공무원노조는 여전히 각종 제약 아래 놓여 노동조합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민주화 초기부터 사회 경제 민주화가 의제의 중심에 오른 사례들이 많이 있다. 위에서 이미 살펴본 스페인만 해도 그렇다. 프랑코 독재 정부가 물러나고 제일 먼저 추진한 것 중 하나가 노동조합의 권한 강화였다.

포르투갈은 더 했다. 포르투갈에서도 스페인과 같은 시기에 민주화가 시작됐는데, 스페인과 달리 민중 혁명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1976년에 개정된 이 나라의 헌법은 정치적 민주화뿐만 아니라 대중의 사회 경제적 권리 신장을 약속하는 내용들이 풍부히 담겼다. 그 중에는 심지어 자본가들이 노동자 파업에 맞서 직장을 폐쇄하는 것을 원천 금지하는 조항까지 있었다.

브라질 제헌의회에서도, 위에서 소개한 대로, 사회 경제 민주화 조치들이 활발히 논의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사안은 노동권의 완전한 보장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의 새 헌법에는 120일의 유급 출산휴가, 노동시간 단축, 여성과 여타 가내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권 적용 확대 등 굉장히 구체적인 노동권 관련 조항이 담기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헌법의 내용으로는 좀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말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는 지금까지도 정치 의제의 협소함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17대 국회에서도 그랬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이른바 ‘4대 개혁’ 안에는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직접 보탬이 되는 사회 개혁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 각박하게 만드는 비정규직 관련 악법이 허울 좋은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라는 명목으로 통과됐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주체의 분열, 엘리트간 타협의 과정, 의제의 편협함―은 한국의 민주화가 ‘허약한’ 민주화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떤 점에서 ‘허약’했는가? 군부 독재 정권 아래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사회 세력들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댈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들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할 수 있는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못했다. 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있는 게 바로 자본, 특히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 자본이다.

군부 독재의 뒤를 이은 자본 독재

자본에 맞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회 세력은 노동운동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조차도 기업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자본에게는 그렇게 두려운 도전자가 되지 못했다.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치열한 쟁의 행위는 재벌 독점자본의 권력을 문제 삼는 게 아니었다. 단지 이들을 기업 단위 교섭 테이블에 불러들이기 위한 압박에 불과했다. 따라서 민주화 투쟁의 절정기에도 거대 자본의 권력은 거의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권력을 강화했다. 우선 80년대 중반 3저 호황으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축적했다. 이제 한국의 독점 자본은 그들 스스로 초국적 자본으로 비상하길 꿈꾸기 시작했다. 또한 민주화도 대자본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군부 독재 정권이 힘이 약해지자 재벌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들은 국가보다 더 위에 군림하려 했다. 거대 자본이 직접 권력의 주역으로 나서고자 한 것이다. 이것을 현학적으로 표현한 게 “권력을 시장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구호가 곧 ‘자유화’였다.

97년 외환위기조차도 거대 자본의 힘을 누그러뜨리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굳게 다지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일부 재벌들이 퇴출당하기는 했지만, 이른바 ‘빅딜’을 계기로 삼성, 현대 등 극소수 거대 자본은 더욱 막강한 권력을 차지했다.

   
▲ 이건희 삼성 회장과 노무현 대통령 (사진=뉴시스)
 
급기야는 그 권력이 좁은 경제 영역을 넘어서 사회 구석구석으로까지 뻗어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삼성 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유행어까지 나돌게 됐다.

진보정치연구소는 2005년 5월 1일 발표한 보고서(장석준, 「기업지배사회를 넘어 노사관계의 전면 재편이 필요하다」)에서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기업지배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다. 여기서 ‘기업’이란 말은 다름 아니라 ‘자본’을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이 보고서는 기업지배사회를 “기업의(사실상은 지배적 기업, 즉 재벌 독점자본의) 단기적 이해와 편향된 가치가 사회 전체의 장기적 이해와 이에 대한 민주적 논의 결정 구조를 억압 왜곡하는 상황”이라고 정의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본의 편협한 단기적 이해 때문에 사회의 다른 모든 가치와 이익, 저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장부에 흑자 수치를 늘리기 위해 하청 중소기업의 제조 단가를 무조건 낮추라고 요구하는 게 바로 그런 횡포 아닌가? 수많은 젊은이와 여성들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그야말로 잠깐씩 쓰다가 소모품처럼 내버리는 것도 그런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뽑아낸 이윤으로 주식 배당금 잔치를 벌이고, 남는 돈을 부동산 투기에 쏟아 부어 불로소득을 누리는 게 다 그런 짓 아닌가?

이쯤 되면 민주주의의 1인1표I(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행사한다)의 원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그보다는 시장의 1원1표의 원칙(돈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권리를 누린다)과 주주총회의 1주1표의 원칙(주식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권리를 누린다)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게 옳겠다.

이것은 사실상 인민(demos)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 노릇하는 국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한 마디로 ‘자본 국가’라고 부른다.

자본 국가는 기업지배사회의 정치적 측면(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을 좀 더 부각시킨 개념이다. 자본 국가는 자본의 권리가 사회의 다른 모든 권리들에 우선하는 정치 사회 체제다. 자본의 이윤 추구가 민중의 행복 추구에 우선하고, 소유권 경영권 행사가 다른 기본권의 보장보다 더 중요시되는 것이다.

자본 국가는 또한 ‘시장 국가’이기도 하다. 자본 국가에서는 자본의 고삐 풀린 자유가 활개 치는 ‘시장’ 영역이 사회의 다른 영역에 비해 항상 우위에 서고, 더 나아가는 시장이 사회의 다른 부분을 자신의 식민지로까지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약한’ 민주화의 귀결은 ‘약한’ 민주 국가였고, 그 틈을 비집고 성장한 게 결국 자본 국가, 시장 국가다. 피를 흘린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엄한 자들이 제 뱃속을 채웠다.

그리고 이제 자본 국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오직 국내외 거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골몰한다. 최근의 그 결정판이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협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국내외 거대 자본의 입맛에 맞게 송두리째 바꾸려는 일종의 ‘위로부터의’ 혁명이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도에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파괴적으로 휩쓸리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자본 국가, 시장 국가는 세계화에 맞서 민중의 권리를 방어하려 하기보다는 도리어 앞장서서 다수 대중의 삶을 짓밟으며 자본의 권리를 늘릴 대로 늘린다. 양극화를 제어하기보다는 그것을 유례없이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사회학)도 한국 사회를 우리와 비슷한 각도에서 분석한다. 그는 작금의 한국 사회가 ‘기업사회’로 변해가고 지적한다. 김동춘이 정리하는 기업사회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자본의 고유한 권력인 생산 지휘권이 극대화되고 사회 영역으로 확대된다.

2. 정치, 사회가 기업 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3. 기업의 생산성이 곧 국가나 사회의 생산성으로 간주된다.

4. 1인1표의 원리가 아닌 소유 지분만큼의 권리 원칙이 기업 외의 사회 조직에도 적용된다.

5. 대기업 및 기업가 단체가 단순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영역에까지 간섭한다.

6. 정치 활동, 정책 활동, 법원, 미디어 등은 주로 대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7. 국민, 시민, 주민 혹은 기업의 판매망 안의 모든 사람들은 곧 소비자로 불린다.

8. 모든 정부, 사회 조직의 우두머리는 경영자 CEO를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 설정한다.

9. 조직의 목표가 기업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조직, 예를 들면 교회와 학교까지도 기업의 모델을 따라서 자신을 재조직한다.

10. 정치, 사회 엘리트층까지도 주로 기업 경영자 출신이 차지하게 된다.

11. 노조활동은 대체로 기업 경영의 방해물로 간주된다.

12. 행정부는 기업조직을 모델로 한다. 정부 부처 중에서는 경제 부처가 다른 모든 부처를 압도한다.

13. 경제학이 사회과학 중의 사회과학이 되고, 또다시 회계학과 경영학이 경제학을 대신한다.

14. 경쟁력이 없는 것은 곧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된다. 공공성은 곧 무책임과 동일시된다.

(김동춘,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 ‘기업사회’로의 변화를 중심으로」,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 길, 2006.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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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의 민족’ 버리고 ‘주체적 우리’ 고민할 때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④ -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⑦

김상봉 교수/전남대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12-21


»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단체가 지난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서 함께 연 ‘이주노조 표적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 현장. 김상봉 교수는 ‘나’는 민족의 범주 속에서 참된 의미의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한다면서,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야 할 필요성과 의미를 강조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우리시대 지식논쟁 ④

7. ‘민족’ 해체는 절박한 과제

이번 주로 모두 일곱 차례에 걸친 ‘민족주의 논쟁’을 마무리한다. 1, 5회의 안병욱 교수를 비롯해 박노자·임지현·김동춘·권혁범·김상봉 교수 등 모두 여섯 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가운데 안병욱 교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민족주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이라면서 계급연대가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박노자·임지현·권혁범 교수는 탈민족주의 시각을 폈다. 박 교수는 민족주의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한다는 점에 강조점을 뒀다. 임 교수는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생명이나 평등 등 보편가치가 종속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중도 시각의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민족현실론’을 폈다.

마지막 논자인 김상봉 교수는 서양 이론에 기댄 소모적 논쟁보다는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족 해체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 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해가야 한다고 했다. 다음 주제는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민족주의가 ‘집단적 자기’에 대한 집착이라면,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것은 지금 한국에서 절박한 실천적 과제다. 아집이 어리석은 것은 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집이란 자기동일성에 대한 집착인데, 살아 있는 어떤 것도 순수한 자기동일성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동일성이란 플라스틱처럼 죽은 사물의 특징인 것이다. 하물며 개인도 아닌 집단인 민족을 두고 고정된 동일성을 몽상하는 것은 계몽된 시대에 어울리는 자기인식이라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민족의 구분기준은 너무도 야만적이다. 현행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민족을 “씨족이나 종족, 부족 등의 단어와 마찬가지로 공통의 조상을 가진 한 핏줄로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정의한 뒤에 너무 자연스럽게도 민족을 “하나의 큰 가족”이라고 이르고 있다.(도덕 II, 156) 민족을 가족과 같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맞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만, 민족이 핏줄로 규정되는 나라에서 민족 구성원들에게는 맹목적 충성이 강요되는 반면, 조금이라도 핏줄이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세계화된 시대에 정말 심각한 질병이다.

한편에서는 차라리 감옥에 갈지언정 군대 가서 총을 들 수 없다는 젊은이들은 핏줄이 같다 해서 군대에 끌려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살면서 이 사회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다. 새로 결혼하는 일곱, 여덟 쌍 중의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는 나라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핏줄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는 이 사회의 주류에게 까닭 없이 배제되고 차별받은 소수자들의 좌절과 증오가 집단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핏줄’ 로 규정되는 민족주의는 주체성 억압·타자와 소통 방해
“민족이 세계화의 대안” 주장은 질병으로 다른 질병 고치는 격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까닭은 민족주의 없이는 개인을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실린 국기에 대한 맹세는 우리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조국은 언제나 민족을 팔아 충성을 강요한다. 그렇게 홀로주체로서 군림하는 조국과 민족 아래에서 개인은 주체성을 빼앗기고 전체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런즉 민족주의는 개인의 주체성을 억압하고, 타자와의 참된 만남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타파해야 할 이데올로기이다. 더러는 계급이 민족과 만나야 강해진다거나,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그나마 민족주의가 자기를 지키는 방파제가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질병을 다른 질병을 통해 고치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사회의 도를 넘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이제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로까지 타락한 상태이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히 국가주의에 저항하고 민족주의를 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민족주의를 비판할 뿐 그것의 존재 근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질병을 결코 치유할 수 없다. 민족은 실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주체성은 자기인식에 존립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스스로 욕구할 줄 모르면서 주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꿈과 동경 속에서 이상적 자기를 욕구하는데, 안정된 자기인식은 기억 속의 자기와 동경 속의 자기가 조화를 이룰 때 형성된다.

이 기억과 동경의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자기인식은 필연성과 자유라는 두 계기 사이에서 생성된다. 필연성은 고정성으로서 이를 통해 나의 존재는 안정성을 얻는다. 반면 자유는 유동성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나는 노예 상태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자유로운 필연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긴장 속에서만 자기를 주체로서 인식하고 실현하게 된다. 고정되어 주어진 나의 존재로부터 자유롭게 나를 형성할 때 비로소 나는 자기를 온전한 주체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는 주체들의 공동체가 나라
민족이란 그런 나라 이루는 집단
국가 비판하며
능동적으로 형성할 ‘우리는 누구인가’ 묻고 모색해야


그런데 나의 주체성은 결코 고립된 홀로주체성일 수 없다. 나의 기억과 동경은 언제나 너의 기억 및 동경과 맞물려 있다. 그런즉 나는 오직 너와 더불어 우리가 될 때, 참된 주체가 된다. 이것이 서로주체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체성의 현실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연성과 자유가 같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가족은 필연적 공동체일 뿐 자유의 현실태는 아니다. 반면 정당이나 기업 같은 사회적 결사체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이지만 필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는 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가족 속에서는 자유의 결여 때문에, 그리고 계급 속에서는 필연성의 결여 때문에 참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필연성과 고정성을 가지면서도 자유의 현실태인 공동체가 바로 나라다. 나라는 내가 그 속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에서 이미 주어진 나의 과거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의 현실태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나라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강렬하게 확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족이란 그런 나라를 이루는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 한에서 민족이란 인종처럼 생물학적인 범주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인 범주로서, 그 속에서 나는 참된 의미의 주체 곧 시민적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계급적 연대나 다른 탈민족적인 만남 속에서 해체하자는 제안은 세계시민적 주체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제안이지만, 민족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이런 제안은 온전한 나라의 형성이라는 과제를 방치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국가기구와 법률을 결국은 악한들의 손에 내맡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라를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로서 우리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 김상봉 교수 / 전남대
 
하지만 그런 나라를 같이 만들어야 할 서로주체인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수백년 동안 이 땅에 살아왔지만 분단되어 반세기 이상을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과 새로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과 이 땅에 살다가 다른 나라로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의 우리로 불러모을 수 있는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민족의 문제는 오직 이 물음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을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개방적으로 해석하는 박노자의 상상력과 고체화된 민족과 국가를 비판하는 권혁범의 이성과 온전한 나라를 형성하려는 김동춘의 열정을 모두 필요로 한다. 그런즉 지금은 민족주의에 대한 서양 이론의 한 끄트머리씩을 붙잡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1958년생으로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벌없는사회’를 만들어 전 사회적인 반학벌 운동을 전개했으며 현재는 5·18에 대한 철학적 해석에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 저서로는 <서로주체성의 이념> <도덕교육의 파시즘> <학벌사회> <나르시스의 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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