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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레코드] 2007년의 노래 5개 - 우디 거스리, 첨바왐바,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미드나이트 오일, 몬티 파이쏜

Woody Guthrie - "추방자들(로스 가토스 비행기추락사고)Deportee(Plane Wreck at Los Gatos)"
Chumbawamba - "벨라 차오!Bella Ciao!"
Manic Street Preachers - "제국의 바디백Imperial Bodybags"
Midnight Oil - "붉게 물든 강물River Runs Red"
Monty Python -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보세요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장석원 객원기자
출처 : <레디앙> 2007 12 31


첫 번째 노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추방자들(로스 가토스 비행기추락사고)Deportee(Plane Wreck at Los Gatos)"

   
▲ 우디 거스리는 항상 자신의 기타에 "This Machine Kills Fascists(파시스트를 처단하는 무기)"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언론사들은 언제나처럼 '10대사건'을 선정해 보도합니다. 외국기자들이 '한국에 부임하면 기사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이 나라는 큰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올해도 온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굵직굵직한 사건사고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중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10건을 간추려야 하는 언론사의 고충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올해 신문, 방송에서 선정한 연말결산 10대뉴스를 보면 아주 중요한 사고, 사실상 2007년 대한민국의 문을 열었던 사건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제외시켰습니다.

바로 2월 11일 여수에서 발생한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사건입니다. 강제출국대기 중이던 이주노동자 10명이 쇠창살에 갇힌 채 속수무책으로 타죽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인권문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편견, 이주노동에 대한 정책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사고였음에도 언론사들은 10대사건의 끄트머리에도 이들의 서글픈 죽음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올해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우리에게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12월 13일 이주노조 지도부 3인을 강제추방하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사건과 이주노조 지도부에 대한 표적 단속을 접하면서 머릿속에는 60년 전 미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면 만들어진 "추방자"들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1948년 1월 29일,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 가토스 협곡에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32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중 28명은 미국이민국에 적발돼 메히코(멕시코는 미국식 표기입니다)로 송환되는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나머지 4명은 비행기 승무원과 이민국 관리, 그러니까 '미국인'들이었습니다.

당시 라디오 뉴스는 사고소식을 전하면서 소위 미국인 사망자들의 신원만 전할 뿐 다른 사망자들은 한데 묶어 추방자들이라고만 보도했습니다. 민중가수인 우디 거스리는 이 뉴스를 들으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미국의 인종주의적 태도에 분노하며 그 자리에서 시를 써내려갔습니다. 후에 다른 이가 이 시에 가락을 붙여서 만든 노래가 '추방자들(로스 가토스 비행기추락사고)'입니다.

이후 이 노래는 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이 폭발하면서 자주 불러졌고,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노조활동가들에게는 노동운동가로 쓰였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 주민이 증가하면서부터는 초기 이주자들의 수난을 기억하는 의미로 에스빠냐어로 번안돼 불리고 있습니다.

오래된 사건이고 노래지만 60년 전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노래인 셈입니다. 그러나 정말 서글픈 것은 한국사회의 편협한 시선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운동을 '타민족 운동'으로 표현하고, 이주노동자를 '해결해야 할 사회병폐'로 규정하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도된 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제국주의는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새해에는 미제국주의가 절대악이기 때문에 그에 맞서는 것은 무조건 절대선이다는 식의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줍은 영어 실력이지만 노랫말을 우리말로 옮겨봤습니다. 노랫말은 부른 이들마다 조금씩 다른데 우디 거스리가 처음 쓴 시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참고로 이 시는 앞과 뒤는 우디 거스리의 시점에서, 중간 부분은 죽은 이주노동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추방자들 (로스 가토스 비행기 추락사고)'

작물은 시들고, 복숭아는 썩어 가는데
오렌지는 방부처리장 안에 쌓여만 가는데
일할 사람들은 모두 비행기를 타고 남쪽국경을 향하고 있네
어차피 그간 번 돈을 모두 날려서라도 다시 돌아올 길인데


잘가게 후안, 안녕 로살리타
아디오스 나의 친구들, 헤수스와 마리아
난생 처음 타보는 큰 비행기지만 아무도 너희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
그저, '추방자들'이라고 부를 뿐이지


* * *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저 강을 건너 이곳으로 왔어
이민 브로커들은 할아버지가 평생 번 돈을 가로챘지
내 형제자매들도 과수원에서 일해
아마 죽을 때까지 이 트럭에서 내리지 못 하겠지


우리들 중 누군가는 불법이고 누군가는 용인될 수 없다는군
근로계약은 휴지조각이 됐고, 이제는 떠나야만 한다네
6백마일 너머에 있는 메히코를 향해서
우리가 마치 무법자나, 범죄자나, 도둑이라도 되는 냥 몰아댔지


우리는 너희들의 언덕 위에서, 너희들의 사막 한 가운데서
너희들의 계곡에서, 너희들의 들판에서
너희들의 나무들 사이와 덤불 속에서
너희들의 강 양 쪽 편에서 그저 일만하다 죽었을 뿐인데


* * *

비행기가 로스 가토스의 골짜기 위에서 불길에 휩싸였을 때
불덩이가 날아다니고, 산들이 진동하고
그런데 마른 이파리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은 누구지?
라디오 뉴스는 이렇게 전할 뿐이야, "그들은 단지 추방자들일 뿐입니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낙엽처럼 그들을 대지위에 흩뿌리는 것이
우리의 과수농장을 관리하는 최고의 방법인건가
우리의 과일들을 기르는 최선의 방법인건가
그들 하나하나의 이름대신 그저 "추방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잘가게 후안, 안녕 로살리타
아디오스 나의 친구들, 헤수스와 마리아
난생처음 타보는 큰 비행기지만 아무도 너희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
그저, '추방자들'이라고 부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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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노래: 첨바왐바Chumbawamba - "벨라 차오!Bella Ciao!"

   
▲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반WTO 시위의 상징이 된 사진.
 
90년대 초반 김영삼 정권이 '국제화'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면서 본격화된 이 땅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미FTA를 통해 완성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국회 비준동의라는 형식적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대선의 결과를 보면 협상안의 국회통과는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1년 동안 참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공세에 대항하는 반세계화운동은 1999년의 '시애틀 공방전'을 통해 화려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현실사회주의국가의 붕괴 이후 승승장구하던 자본주의의 행진에 결정적인 태클을 걸며 들불처럼 번져나간 반세계화운동은 지금 정체 상태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한미FTA 저지 투쟁의 한계도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반세계화운동의 주제가는 이딸리아의 민중가요인 '벨라 차오'입니다. 이 노래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딸리아 민요로 특별히 좌익운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19세기부터 노동운동가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확산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딸리아 빨치산들이 즐겨 부르면서부터입니다. 기독교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섞여있던 빨치산들은 산속의 근거지에서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이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애틀 이후 열린 반세계화 집회에서는 이 노래가 주제가처럼 불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빨치산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세계화 데모대를 구성하는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생태주의자 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행진합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배워가야 할 노래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부르는 만큼 '인터내셔널가'처럼 각 나라말로 가사가 다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영국의 무정부주의 노래집단인 첨바왐바가 부른 영어판입니다. 이딸리아 빨치산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담아 전통의 가사를 수정했듯이 첨바왐바도 새 가사에 반세계화운동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2008년부터는 한국에서도 우리말로 된 '벨라 차오'를 함께 부르며 반세계화 투쟁을 벌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무정부주의자답게 첨바왐바는 자신들의 녹음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거리낌 없이 내려받기!

다운로드: http://www.chumba.com/media/Chumbawamba-Bella_Ciao.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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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노래: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Manic Street Preachers - "제국의 바디백Imperial Bodybags"


   
▲ "Send Away The Tigers" 앨범 커버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음반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마법Magic"이었습니다.(네, 저는 유사프로그레시브 밴드로 변질된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별로 안 좋아 합니다.)

그러나 가장 반가웠던 음반은 3년 만에 나온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의 새 앨범 "호랑이 쫓아 보내기Send Away the Tigers"입니다.

2001년에 발표한 "Know Your Enemy"와 2004년에 발표한 "Lifeblood", 이 두 장의 앨범이 실망스러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완성도를 보여줬고 밴드의 창작력도 정체 상태에 있는 듯이 보였었습니다. 그러나 새 앨범은 이런 우려를 일거에 말소시켰습니다.

워낙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밴드인 만큼 새 앨범도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국의 바디백"은 7년차에 접어드는 이라크 전쟁을 다룬 반전가요입니다. 바디백은 군대에서 전사자들을 담는 플라스틱 포대를 말합니다. 밴드는 교전 당사국이며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를 낸 영국의 제국주의적 전쟁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도 지난 2월 파병 5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철군은커녕 레바논으로 파병지역이 늘어났고 얼마 전에는 이라크에서의 파병연장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2008년에도 우리는 교전당사국으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습니다.

존 레논이 "당신이 원한다면 전쟁은 끝난다"고 말한 게 35년 전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지구상의 누군가는 전쟁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맞서 평화를 지키는 것은 모든 민중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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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노래:
미드나이트 오일Midnight Oil - "붉게 물든 강물River Runs Red"


   
▲ "Blue Sky Mining" 앨범 커버
 
1990년 5월 30일, 뉴욕 엑손 오일 본사 앞에서는 불법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밴드가 음향 설비를 갖춘 대형트레일러를 몰고 와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엑손 오일을 강하게 비난하는 게릴라콘서트를 연 것입니다. 이 밴드의 이름은 "미드나이트 오일"이고 국적은 오스트레일리아였습니다.

공연은 전 해인 1989년 3월 29일 엑손Exxon 오일 소유의 유조선이 알라스카 앞 바다에서 좌초하면서 당시까지 최악의 해상기름유출 사건을 일으켜 생태계를 말살한 것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피터 개럿Peter Garrett의 대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미드나이트 오일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편이지만 환경문제, 원주민문제, 평화문제에 올인했던 사회파 밴드로 더 유명합니다.

항의시위 당일 미드나이트 오일이 엑손 오일사에 선물한 노래는 모두 여섯 곡입니다. 그 중에는 존 레논의 "인과응보Instant Karma"도 들어있습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거대기업에게 '저지른 만큼 돌려받게 될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트레일러에 붙어있던 현수막의 내용은 "미드나이트 오일은 여러분을 춤추게 만들지만 엑손 오일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였습니다.

하지만 여섯 곡중 가장 강한 메시지를 담은 것은 오염문제를 다룬 노래 "붉게 물든 강물River Runs Red"이었습니다. 붉게 물든 강, 검게 변한 비, 먼지만 남은 대지를 묘사하면서 밴드는, 자연은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지만 '달러'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폭주하게 만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엑손은 알라스카 기름유출 사고로 오랫동안 미국 정부와 환경운동가들에게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서해 기름유출 사고에는 기름은 떠있는데 기름 주인이 언론보도에서 사라져 버리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오죽하면 해안에서 기름을 닦아내던 자원봉사자가 시커멓게 '삼성 X새끼'라고 쓴 비닐우의를 입고 있는 사진이 메신저를 타고 돌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언론 대신 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나라 국민이 너무 착해빠진 것일까요? IMF사태도 그렇고 언제까지 재벌이 사고 치면 국민이 뒷수습해야 하는 걸까요?

미드나이트 오일의 '붉게 물든 강물'은 1990년에 발표한 앨범 "푸른 하늘의 광산Blue Sky Mining"에 수록돼 있습니다. 앨범의 제목이 된 노래 "Blue Sky Mine"은 저임금 노동자를 다룬 것입니다. 우리로 치면 비정규 노동자 문제쯤 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미드나이트 오일이 1987년에 발표한 앨범 "디젤과 먼지Diesel and Dust"에 실린 노래 "불타는 침대Beds Are Burning"는 원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문제를 다룬 것이지만, 갈림길에 놓여있는 민주노동당의 상황에 딱 어울릴 것 같은 노랫말을 담고 있습니다.

옮겨 보자면, "때는 왔다. 사실과 진실을, 원래의 소유주에게 되돌려주자.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데 춤이나 추고 있을 텐가? 침대가 불타고 있는데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미드나이트 오일은 2002년 해산했고 피터 개럿은 2년 뒤 호주노동당 소속으로 원내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노동당이 정권을 탈환하면서 환경, 문화, 이주민 문제 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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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노래:
몬티 파이쏜Monty Python -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보세요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2007년의 한국사회를 이야기하면서 대선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정작 할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연초 개인블로그에 '차기 정권은 한나라당'이라는 농반진반의 예측을 적었는데 말이 씨가 됐는지 대선 결과 이명박 후보가 보기 좋게 당선됐습니다.

반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우려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여권의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라는 말은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선자의 노동관이나, 사회관, 교육관 모두 문제가 있고, 특히 파국적인 재앙이 될 것이 뻔한 '대운하'는 이명박 정권의 5년이 노무현 정권의 5년보다 역동적이면 역동적이지 결코 국민들의 기대만큼 조용하고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항상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행동의 결과를 온전히 예측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어떤 행위는 항상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겠지요.

   
▲ 실제로 십자가에 메달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 상태에서 즐겁게 합창을 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있다.
 
몬티 파이쏜은 영국의 대표적인 코미디 집단입니다.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영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입니다. 이들이 1979년 만든 영화 "브라이언의 일생Life of Brian"은 예수가 살던 시절의 예루살렘을 통해 60~70년대 서구 급진좌파를 풍자하고 조롱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반로마 운동단체에 가담한 유대청년 브라이언이 혁명영웅이 됐다가 결국 십자가 못 박히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십자가에 메달린 다른 죄수들이 브라이언에게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처형과 죽음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며 불러주는 노래가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보세요"입니다.

삶의 어떤 부분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하지요.
다른 부분은 그저 욕만 나오게 합니다.
인생의 오돌뼈를 잘근잘근 씹을 때는,
불평하지 마세요, 휘파람을 불면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 에요.
그리고...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바라보세요.


노래의 시작부분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지만, 이명박 후보의 득표가 50%를 넘겼다는 출구조사 발표를 보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한사람의 인생은 짧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오래 지속됩니다. 혁명은 항상 골목 어귀 어디에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말고, 과도한 절망도 근거 없는 낙관도 멀리 하면서 새해를 맞이합시다. 연말연시 따뜻한 아랫목에서 편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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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0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갔어요? 안보이네....

내오랜꿈 2008-01-11 01:24   좋아요 0 | URL
어디 안갔음!

뭐하냐고?

사이트마다 특성이 있는데, 이명박 찍은 사람들은 숨죽이고 노무현 정동영 계열 지지한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최고의 선인 양 꼴갑을 떠는 사이트가 많지. 알라딘이 특히 더 대표적인 거 같네. 도대체 이명박 찍은 사람들보다 이명박 안 찍었다는 이유로 큰소리 치는 인간들이 난 이해가 안되네? 거의 정신병자 수준 같아 보여.....

그래서 글올리기가 싫어졌다. 이왕 싸울 거면 수백, 수천 명이 보는 사이트에서 올리고 싸워야지 기껏 몇 십 명 보는 사이트에서 '찌지고 볶고' 해봐야 뭔 소용이 있겠나?

난 이명박 찍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이명박 지지했다고 나섰으면 한다. 그래서 그네들이 노무현 지지자들, 민주신당 지지자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 뭔 잘난 것도 없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당당한가 말이다. 대가리 쳐박고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찮을 인간들이...

바람돌이 2008-01-13 00:56   좋아요 0 | URL
까칠하기는.... 대가리 처박고 석고대죄해야 할 인간에 형이나 나는 뭐 안들어갈 것 같수?
여기? 그냥 노는데잖수? 난 그런데.... ^^ (아 또 뭐라 길길이 날뛸려고 그러지? 에이 정초부터 좀 참아주슈.... )

내오랜꿈 2008-01-1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좌파들이 자유주의자들한테 패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네.

자유주의자들은 이곳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를) 자신들의 선전선동의 장으로 활용하여 자유주의 우파들의 입을 봉하고 좌파들과 무대포 논쟁을 서슴지 않는데, 좌파들은 그냥 '노는 데'라고 여기고 있으니 말이지....

난 그럴 수 없네요. 모두가 실천의 장이지. 그래서 이왕 싸울 거면 기껏 수십 명 남짓 들오는 이곳보다는 수백, 수천 명이 들오는 곳에서 싸워야 하지 않겠수?
 

그래, 노브레인은 변했다
이명박 후보의 로고송으로 쓰인 <넌 내게 반했어>…
혈기 넘쳤던 그 밴드의 10년 전을 회상하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 출처 : <한겨레21> 제 688호 2007년 12월 06일


본격적으로 대선이 시작되면서 후보들이 로고송을 내놓았다. 물론 기존 인기곡들을 개사한 ‘노가바’(노래가사 바꿔부르기)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로고송들이다. 온갖 의혹에도 떨어지지 않는 철의 지지율을 과시라도 하듯, 쌍끌이 어선을 동원해 세간의 이목을 끌 만한 노래들은 다 갖다붙였다.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 슈퍼주니어의 <로꾸꺼>, 올라이즈밴드의 <무릎팍 도사> 시그널, 그리고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다. 응? 노브레인?


△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로고송은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 슈퍼주니어의 <로꾸꺼>,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 등이다. 그런데 노브레인이라고?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문민정부에 퍼붓던 욕설

한국에서 연예인은, 특히 가수들은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걸 움찔해한다. 대중의 인식이 가수가 정치에 관련되는 걸 영 마뜩잖아하는데다 줄을 잘못 섰다가 어떤 피해(요즘은 네티즌들로부터)를 입을지 몰라서다. 지난 대선 때 공개적으로 한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에까지 참여했던 신해철도 그 뒤 꽤나 당한 모양인지 올해 새 음반을 낸 뒤 가진 인터뷰에서 아주 학을 떼는 걸 지켜봤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느 가수나 작곡가가 특정 후보에게 자신의 노래를 로고송으로 제공했다고 해서 정치적 행동으로 볼 필요는 없다. 별로 그렇게 보는 사람도 없다. 그건 그냥 거래일 뿐이다. 그래서 <오빠만 믿어> <로꾸꺼> 같은 노래가 쓰이든 말든, 사실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노브레인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는 노브레인은 <넌 내게 반했어>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며 그 노래를 부른 노브레인은 영화의 흥행 결과 이상의 수혜를 받았다. 공중파에 진출한 건 물론이고,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국을 돌며 온갖 축제와 행사에 불려다녔다. ‘노브레인이 행사계를 쓸고 다닌다더라’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나는 노브레인의 10년 친구다. 친구로서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선 로고송에 노래가 쓰였으니 꽤 짭짤했겠구나, 라며 축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이명박’으로 가사가 바뀌어 흘러나오는 노브레인의 노래를 듣는 기분은 착잡하다. 이건 내가 다른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 뚜렷한 지지 후보도 없거니와, 친구의 노래가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로고송으로 사용된다 해도 받아들일 톨레랑스 정도는 갖고 있다. 친구 얘기를, 그것도 안 좋을 수도 있는 얘기를 공적인 지면에 쓰는 게 썩 내킬 리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들의 옛날 모습이 떠올라서다.

노브레인의 1999년 EP <청춘 98>은 한국 펑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이라 해도 좋다. 네 곡이 담겨 있는 이 음반에서 마지막에 실린 곡은 <아주 쾌활한>이란 노래다.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차승우가 곡을 썼고 지금도 노래하고 있는 이성우가 가사를 썼다. 99년 발표됐지만 96년쯤 만들어진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문민정부 좆까는 소리/ 문민정부란 개소리는 개한테나 줘버려라… 씨발 청와대/ 씨발 안기부….’ 97년 발표한 위퍼와의 합동 음반에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노래가 담겨 있다. 역시 이성우가 가사를 썼다. ‘우리가 가진 건 분노와 소외감/ 질리게 들어온 강요와 설교뿐/ 잘사는 사람 계속 잘살고/ 못사는 사람 계속 못사는….’ 2001년 노브레인의 2집에서 이성우는 <투혼>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가슴속에 그려진 고통을 지워버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마음속의 투혼을 목 터질 듯 불러보리라.’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밥 말리의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라는 말을 실감하곤 했다. 동세대에 이런 이야기를 멋진 음악으로 들려줄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는 게 더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꽤 많은 소년소녀들이 그런 노브레인의 음악과 태도에 감화되어 펑크 키드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테 없는 성장?

그때의 노브레인과 지금의 노브레인을 단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초기의 음악적 두뇌였던 차승우가 2집을 끝으로 탈퇴한 탓이다. 그 뒤 <넌 내게 반했어>를 발표하고 성공을 거둔 뒤 가진 인터뷰에서도 노브레인은 “우리는 변했다. 예전의 노브레인과는 다르다”라고 천명하곤 했다. 인정한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영원한 반항아란 좀처럼 찾기 힘든 법이다. 그들도 성장했다. 사람의 성장은 나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베어보면 중심에서 주변으로 나이테가 퍼진다. 묘목 시절의 흔적을 지키며 나무는 자란다. 노브레인이 문민정부의 후예인 이명박을 지지해서 로고송을 제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거래일 뿐이니까. 다만, 10년 전부터 꽤 오랫동안 지켜오던 패악질과 혈기의 흔적이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이명박의 로고송으로 사용된 <넌 내게 반했어>를 들은 날, 친구에게 이런 심경을 토로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친구는 되물었다. “그래도 꼭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담배만 피워댔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스피커에서는 루시드 폴의 신곡 <사람이었네>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역시 옛 친구의 하나다. 이 노래에서 루시드 폴은 제3세계에 가해지는 선진국들의 착취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세련된 너의 착취/ 세련된 너의 폭력.’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내오랜꿈 -------------------------------------------------------------------------------------------

요 며칠 사이 5년마다 이사하는 '철새'들이 집을 옮기느라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는 것 같다. 뭐 그건 그네들의 직업의 '본질'이니까 그렇다 치고, 록뮤지션의 이사(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는 좀 생뚱맞다. 아래 인용해 놓은 베이시스트 정재환의 "노브레인" 탈퇴 관련 기사가 나오고, 곧바로 <넌 내게 반했어>의 이명막 후보 로고송 사용 소식이 나오자 정재환의 탈퇴가 과연 이것과 무관할까, 라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글쎄, 록이 저항정신을 잃으면 그게 록일까? 쩝, 시대가 어느 때인데 케케묵은(?) 록의 진정성이니 어쩌니 하는 사람이 있을까만.

허접한 연예인들의 이명박 지지선언은 '그래? 그건 네 자유다' 하며 별일 없는 듯 냉소하며 넘어갈 수 있는데, 시대의 불의를 이야기하고,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던 록뮤지션의 '이상한' 행보는 어딘지 '정치적 변절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긴 정치적 변절자를 따지자면 아무리 싫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얼굴을 보거나 이름을 접하게 되는 현 한나라당 대변인 박형준 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80년대 사회과학계의 이론가요, 90년대 초반 노동문제의 전문가로서 '계급적대'를 그렇게 외치던 인간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학계에도 평소에 이론적으로는 마르크시즘이 어떠니 계급이 어떠니 진보가 어떠니 하면서 정작 대통령 선거때만 되면 후보단일화니 어떠니 하는 교수나 '지식인'들도 꽤 되는 것 같다. 그들은 입으로는 '계급적대'의 해결을 외치면서 그나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진보정당조차 외면하고, 그 적대의 해결을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하고 새로운 실천의 기획에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냉소와 조롱을 보낸다.

어쩌면 이건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알라딘은 어떨까? 그래도 이곳은 아니다,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노브레인' 정재환, 11년 몸담은 팀 탈퇴

"추구하는 음악 노선이 달라…서로 인생의 길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

▣ 방송연예팀 이해리 기자
▣ 출처 : <노컷뉴스> 2007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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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1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일전에 페이퍼로 심경을 토로한 바 있지만, 노브레인의 행보는 매우 씁쓸합니다. 정재환의 탈퇴와 로고송의 시점이 딱 들어맞는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고. 음... 10년 지기 친구라 하는 김작가가 - 요새 이분 여기저기 활동 많이 하시던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 - 요 정도 글을 공개적으로 썼다면, 다른 분들이야 더 말 할 필요 없겠죠. -_-

내오랜꿈 2007-12-13 23:41   좋아요 0 | URL
노브레인을 해부하는 김작가라는 사람이 심정은 정말이지 이해가 갑니다. 개인적 친분이 없는 사람의 책에 관한 서평도 공개적으로 쓸 때는 안 좋은 소리하기가 많이 망설여지거든요. 알라딘에 와서 읽지도 않은 책들에 막말을 하는 것을 보고 좀 놀라긴 했지만요...

Mephistopheles 2007-12-1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지금까지의 모습이 포장이였고 지금의 모습이 진짜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종종합니다. 이번 대선은 여러모로 찡그리는 일들이 많이도 발생하는군요..

내오랜꿈 2007-12-14 11:10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들의 음악에서 단순한 내짖음만 있었지 그 어떤 '깊이' 같은 건 느낄만한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Scott 2008-03-1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읽었습니다.
96학번으로 홍대 인디씬의 시작을 보아왔던 저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특히 노브레인이 말이죠. 그래서 계속 마음속으로만 왜? 베이스까지 탈퇴할까?
라고 생각해왔죠. 그에 대한 조그마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닉슨과 FBI가 입국을 막은 '불온한 좌파'
[토요연재-반역의 레코드] 존 레논, 오노 요코 <언젠가 뉴욕에서>

장석원 객원기자
출처 : <레디앙> 2006년 12월 09일


“혁명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 존 레논 (1971년 타리크 알리, 로빈 블랙번과의 인터뷰)

 
"Some Time in New York City"
John Lennon & Yoko Ono
1972년
Disc 1
1.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2. Sisters, O Sisters
3. Attica State
4. Born in a Prison
5. New York City
6. Sunday Bloody Sunday
7. The Luck of the Irish
8. John Sinclair
9. Angela
10. We're All Water
Disc 2 - Live Jam
1. Cold Turkey
2. Don't Worry Kyoko
3. Well (Baby Please Don't Go)
4. Jamrag
5. Scumbag
6. Au
12월 8일은 존 레논의 기일이다. 그가 뉴욕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살해당한 것이 1980년이니 올해로 26주년이 된다. 추모를 겸해 그의 활동 기간 중 발표한 작품 중 가장 급진적인 앨범인 1972년작 '언젠가 뉴욕에서Some Time in New York City'를 소개한다.

우선 이 음반은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의 ‘합동작품’이다. 둘은 1968년과 69년에 모두 3장의 실험음악 앨범을 공동명의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음반들에 담긴 음악은 전위적인 음악가들조차도 당혹스러워할 만한 것들이었다.

더 많은 대중들이 듣기를 기대하고 만든 음악은 처음부터 아니었던 셈이다. 이후 이들 부부는 서로의 녹음 과정에 함께 했지만 자기가 만든 노래는 자기 이름의 앨범에 모아서 발표했다.

'언젠가 뉴욕에서'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함께 작곡한, 혹은 서로의 작품을 하나의 레코드에 담은 최초의 작품집이다. 녹음에는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밴드인 ‘엘레판트 메모리 밴드’가 동원됐다.

또한 이 앨범은 이들 부부가 1971년 9월 급작스럽게 영국으로부터 뉴욕으로 거주지를 이전한 후 제작한 첫 번째 작품이다. 존 레논은 살 곳조차 정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이 영국을 떠났다.

주된 이유는 이들 부부의 재혼 후 일본인인 오노 요코에게 쏟아진 영국인들의 인종주의적인 편견이었다. 여기에 군주제가 여전히 살아있는 계급사회 영국의 숨 막히는 답답함이 존 레논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땅’을 찾는 보헤미안처럼 떠나게 만들었다.

행선지가 뉴욕이었던 이유는 재혼하기 전 오노 요코가 예술활동을 벌이던 무대이기도 하고, 존 레논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시대의 로마'가 바로 뉴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로마는 이방인들을 받아들일 의사가 전혀 없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단순한 체류가 아니라 영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FBI와 닉슨행정부는 이 ‘불온한 좌익인사’가 미국에 둥지를 트는 것을 결코 용인 할 수 없었다.

이민국은 60년대 레논의 약물관련 체포혐의를 들어 영주권은 고사하고 미국으로부터 추방할 것을 결정했다. 이때부터 시작한 법정투쟁은 1975년 레논 부부의 승리로 끝났다. 추방명령을 둘러싼 4년간의 투쟁은 얼마 전 '미국정부 대 존 레논The U.S. Versus John Lennon'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개봉되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존 레논을 국외로 내쫓으려고 기를 쓴 이유는 물론 그의 약물관련 전과 때문이 아니다. 비틀즈의 멤버라는 그의 대중적 영향력을 베트남 반전운동이나 좌익활동에 결합시킬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존 레논이 공항에 내린 날 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FBI는 그가 미국에 와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애비 호프만이나 제리 루빈 같은 신좌익운동의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레논 부부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내놓은 앨범이 당시까지의 대중음악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선동가요집이니 미국정부가 얼마나 경악했을지 짐작이 간다.

 
▲ 지난 가을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미국정부 대 존 레논"의 포스터.
앨범의 첫 곡은 성차별주의를 다룬 ‘여성은 세상의 깜둥이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이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싱글로도 발매된 곡이지만 제목의 ‘깜둥이’라는 단어가 논란이 되어 많은 방송국에서 거부당했다.

존 레논은 흑인은 몇몇 나라에서만 인종차별을 받지만 여성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차별당함을 지적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노랫말 자체가 맘에 안 드는 방송국 입장에서는 좋은 핑계거리였던 셈이다.

“여성은 노예 중의 노예다, 그녀가 노예이기를 거부하면 우리(남성)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질책한다, 만약 그녀가 현실을 직시하면 남자가 되려고 애쓴다고 비난한다.” 발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노래가 묘사하고 있는 광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어지는 곡도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든 자매들에게Sisters, O Sisters’는 오노 요코가 만든 페미니즘 행동주의의 찬가다. 70년대 초반 오노 요코는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그가 '언젠가 뉴욕에서'에 바로 이어 발표한 솔로 앨범 '아마도 끝이 없는 우주Approximately Infinite Universe'는 지금도 페미니즘 락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티카 주립교도소Attica State’는 1971년 발생한 아티카 교도소 폭동사건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공연에서 처음 선보였다. 아티카는 뉴욕의 주립교도소로 알카트라즈 이후 나쁜 의미에서 가장 유명한 수용시설이었다.

폭동 당시 이미 흑인과 남미계 수형자의 비율이 60%를 넘어갔고 인종차별과 인권 유린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결국 작은 사건이 불씨가 돼 교도소가 수형자들에 의해 점령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화당 소속의 넬슨 록펠러 주지사는 협상보다 경찰 투입을 선택했고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언론은 “하루 동안의 무력충돌로는 남북전쟁 이후 최대, 최악의 규모”라고 평했다.

사건 이후 “아티카”라는 구호는 경찰의 폭력성을 상징하게 됐다. 존 레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아티카 교도소’라고 노래하고 있다. 무자비한 폭력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당신이 운동에 동참해 인권의 기준을 높이는 것” 뿐이라고 역설한다.

레논의 시각을 이어받아 오노 요코 역시 “우리는 감옥에서 태어나 학교라는 이름의 감옥에 보내지고 결국 감옥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고 주장한다. (‘감옥에서 태어나Born in a Prison’) 이 앨범은 같은 주제를 놓고 남편과 아내가 하나씩 만든 노래가 계속 짝을 이루고 있다.

다음 주제는 아일랜드 해방투쟁이다. ‘피의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은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주일미사를 마치고 시민권 행진을 벌이는 가톨릭계 주민들을 영국 공수부대가 무참하게 학살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아일랜드인들 뿐만 아니라 영국인들에게 충격을 준 이 사건에 격분한 존은 단숨에 영국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분노를 담은 곡을 완성했다.

“너희 앵글로색슨 돼지들이 북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만들고 피 묻은 유니온 잭을 자랑스럽게 흔들지만 (...) 아일랜드를 아일랜드인에게! 영국놈들은 바다로 쓸어버리자!”

아일랜드 해방투쟁과 아일랜드공화군IRA에 대한 그의 연대의식은 다음 노래 ‘아일랜드인의 운명The Luck of the Irish’에서도 이어진다.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이지만 가사는 슬프다 못해 처절한 느낌마저 준다. “당신이 아일랜드인의 운명을 타고 났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길 겁니다. 다음 생에는 영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하겠지요. (...) 세상에 영국인 같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주님의 이름으로 학살을 저지르고, IRA와 아일랜드 꼬마들에게 죄를 덮어씌웁니다.”

영국 정보국은 존 레논이 IRA에 자금을 제공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런 ‘추정’을 미국의 정보국에 제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입증할 증거는 발견된 것이 없다. 설혹 그가 아일랜드의 무장투쟁에 연대선언 이상의 물질적 지원을 했다 하더라도 영국 정부는 뭐라 할 자격이 없다.

1972년 ‘피의 일요일’ 학살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정치문제에 초연한 폴 매카트니 조차도 ‘아일랜드를 아일랜드인에게 돌려주라Give Ireland Back to the Irish’라는 싱글을 발표하게 만들 정도였다. 매카트니의 노래는 발표 즉시 BBC로부터 방송금지 당했다.

 
▲ '언젠가 뉴욕에서' 앨범의 커버는 뉴욕타임즈 지면을 패러디하고 있다. 노래 제목은 기사제목으로 기사 내용은 노래가사로 바뀌어 있다. 사실 앨범의 제목도 신문의 이름을 뒤집은 것이다.


아일랜드에 이은 주제는 미국의 양심수들이다. 존 싱클레어는 좌익예술가이자 ‘백표범당’의 활동가였다. 백표범당은 흑인급진주의 조직인 ‘흑표범당’을 지원-연대하기 위해 결성된 신좌익 단체다. 경찰은 마리화나 소지죄로 그를 투옥시켰다.

마리화나 소지는 신좌익 활동가들을 체포할 때 경찰이 자주 수용한 수법이었다. ‘존 싱클레어John Sinclair’는 존 레논이 미국에 와서 처음 작곡한 곡들 중 하나다. 원래는 71년 겨울에 열린 싱클레어 석방촉구 공연을 위해 만든 것으로, 레논 부부가 앨범 녹음을 시작할 때는 이미 석방됐지만 레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앨범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오노 요코는 흑인 페미니스트이며 미국공산당원인 안젤라 데이비스의 석방을 요구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흑표범당 관련 정치범의 탈옥사건과 관련돼 FBI에 의해 전국에 지명수배 된  데이비스는 체포 후 18개월 동안 계속된 공판에서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안젤라 데이비스는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로 지금도 진보정당운동과 인권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레논 부부가 ‘안젤라Angela’를 쓰고 녹음할 무렵 영국에서는 롤링 스톤즈가 안젤라 데이비스를 지지하기 위한 노래 ‘사랑스런 흑인 천사Sweet Black Angel’를 발표하기도 했다.

남은 두곡 중 ‘뉴욕시티New York City’는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뉴욕에 도착한 후 겪은 일들을 경쾌한 리듬에 실은 노래고, ‘우리는 모두 물방울We're All Water’은 재치있는 격언을 만들어내는 오노 요코의 재능이 가사에 유감없이 발휘된 곡이다.

특히 ‘우리는 모두 물방울’은 모든 차이는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오노 요코 특유의 이상주의를 엿볼 수 있다. 레논에 비해 사상적으로 철저하지 못함(?)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마오 주석이나 닉슨 대통령이나 벌거벗겨 놓으면 별로 다를 것도 없다”거나 “백악관이나 인민궁전이나 창문개수만 놓고 보면 별 차이도 없다”는 노랫말은 나름대로의 진실을 담고 있다.

라이브 녹음을 담고 있는 두 번째 디스크는 일종의 보너스다. ‘금단증상Cold Turkey’과 ‘교쿄야 걱정마렴Don't Worry Kyoko’ 두곡은 1969년 12월 유니세프 주최의 자선공연에서 녹음된 것이고 나머지 4곡은 1971년 6월 뉴욕에서 프랭크 자파와 함께 가진 합동공연에서 녹음한 것들이다. 특히 69년 유니세프 공연은 조지 해리슨도 함께 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두 명의 비틀즈 멤버가 함께 공연한 마지막 기록이다.

 
▲ 앨범이 처음 발매될 때 보너스로 들어간 우편엽서. 자유의 여신상이 쭉 뻗고 있는 오른손을 잘 보라.
'언젠가 뉴욕에서'는 사실 존 레논, 오노 요코 부부가 ‘작정’하고 만든 앨범이었다. 미국 정부가 우려했던 바대로 이들은 자신들의 대중적 영향력을 사람들을 계몽하고 행동하게 만드는데 쓰려고 했다.

그러나 평단의 오른쪽 펀치야 예상했지만 정작 대중들의 왼쪽 펀치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전작인 '이매진Imagine' 앨범이 워낙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넘치던 레논은 팬들의 외면에 충격을 받았다.

앨범 전반에 흘러넘치는 정치적 주장과 구호들도 사람들에게 소화 불량을 일으켰지만 무엇보다도 생경한 음악 형식이 문제였다. 오노 요코는 그의 음악활동 중 최대한 대중적인 작곡과 노래를 한다고 했지만 일반대중들의 귀에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전위예술로 인식됐다.

존 레논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이 앨범에 실린 그의 작품들은 이전에 발표한 것들과 비교할 때 ‘의식의 과잉, 미학의 빈곤’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존 레논은 1971년 혁명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혁명을 노래할 수는 있지만, 노래로 혁명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이듬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 2005년에 나온 개정판CD는 프랭크 자파와의 라이브 연주 중 3곡을 삭제하고 1장짜리 CD로 재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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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와 영국과 칠레를 이어주는 노래의 기억
빅토르 하라 - <선언>(1974)

장석원 기자
출처 : <레디앙> 2006 05 22


   
"nueva cancion chilena"
19??
.
1 Chile herido INTI-ILLIMANI    
2 Las últimas palabras APARCOA    
3 Manifesto VICTOR JARA    
4 Vientos del pueblo ISABEL PARRA    
5 Canción al partido APARCOA    
6 Compañero presidente QUILAPAYUN    
7 La segunda independencia INTI-ILLIMANI    
8 Ya no es tiempo de esperar ISABEL PARRA    
9 Aquí me quedo VICTOR JARA    
10 El rojo gota a gota irá creciendo QUILAPAYUN    
11 Cuando amanece el día ANGEL PARRA    
12 Alerta pueblos del mundo HECTOR PAVEZ    
13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QUILAPAYUN 
 
레코드 커버 앞면에 적혀있는 <칠레의 새로운 노래nueva cancion chilena>라는 앨범 제목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커버의 뒷면은 그냥 하얀 백지다. 하다못해 수록곡의 목록조차 적혀있지 않다.

수록곡은 레코드를 꺼내 가운데에 붙어있는 라벨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라벨에 붙어있는 앨범 제목은 또 커버의 그것과 다르다. 라벨에는 <칠레 투사들Chile Combatiente>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이 제목을 단서로 수소문해 본 결과 1975년에 프랑스에서 발매된 레코드 <칠레 저항의 노래들Chansons De La Resistance Chilienne>과 내용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프랑스에서 발매됐던 음반을 누군가가 다시 찍어낸 것이다. 남은 문제는 그 ‘누구’를 찾아내는 일이다.

하얀 백지인 앨범의 커버 뒷면 구석에 보면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Zrinyi Nyomda, Budapest"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마지막 단어는 쉽게 해독이 된다. ‘부다페스트’ 이 레코드가 헝가리와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앞의 두 단어는 또 한참동안 수소문한 끝에 헝가리 사회주의 정권시절부터 존재한 출판사의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때 아닌 탐정놀이 끝에 헝가리의 출판사가 프랑스에서 발매된 앨범을 자국에서 다시 찍어낸 레코드라는 것까지 확인했다. 다만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프랑스 원본이 1975년에 나왔으니 그 이후라는 것만 짐작이 된다. 발매한 목적도 알 길이 없다. 당시 헝가리의 국영레코드회사에서 제작하지 않고 왜 ‘출판사’가 이런 레코드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레코드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레코드가 품고 있는 노래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따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 노래를 통해 민중의 계몽과 연대, 사회변혁을 꿈꿨던 칠레의 ‘누에바 깐시온’운동은 해외에서도 유명했고, 또 1973년 칠레 쿠데타 이후 해외로 망명한 누에바 깐시온 가수들이 꾸준히 음악활동을 했기 때문에 제3세계 음악 답지 않게 잘 알려져 있다.

또 ‘문화운동’이 발달해 있던 칠레답게, 쿠데타 이후 칠레의 반독재운동과 망명객들을 지원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설립된 ‘칠레연대기구’들이 이 노래들을 음반으로 제작해 재정사업을 벌였던 것도 칠레의 노래와 가수들이 널리 알려지는데 한몫을 했다.

비록 프랑스에서 원본을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이 헝가리의 레코드는 칠레의 ‘누에바 깐씨온’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들만을 담고 있다. 쿠데타 이후 칠레 바깥에서 복각된 레코드들이 대부분 한 가수의 노래를 모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처럼 누에바 깐씨온을 대표하는 노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경우는 보기가 드물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빅토르 하라와 누에바 깐씨온의 대모 역할을 했던 비올레타 파라의 딸과 아들인 이사벨 파라와 앙헬 파라, 그리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민중가요 노래패인 인티 일리마니와 퀼라파윤의 노래들이 한 장의 레코드에 들어있다. 선곡은 누에바 깐씨온의 서정적인 면보다는 ‘투쟁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 실려 있는 대부분의 곡들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에 칠레 민중연합의 집회나 모임에서 자주 불려지던 노래들이다.

그중에서도 칠레 민중들이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담아 불렀던 “대통령 동지compañero presidente”, 민중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한 찬가인 “당을 위한 노래canción al partido”, 그리고 칠레 민중운동의 주제가였던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는 쿠데타로 인해 좌절된 희망과 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들이다. 다만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를 지지하는 좌파 정당 연합체인 “민중연합”의 상징곡으로 사용됐던 "승리venceremos"가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

* * *

   
Victor Jara
"Manifesto"
1974년 발표
.
1. Te Recuerdo Amanda
2. Canto Libre
3. Aqui Me Quedo
4. Angelita Huenuman
5. Ni Chicha Ni Limona
6. La Plegaria A Un Labrador
7. Cuando Voy Al Trabajo
8. El Derecho De Vivir En Paz
9. Vientos Del Pueblo
10. Manifesto
11. La Partida
12. Chile Stadium
 
누에바 깐씨온을 대표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빅토르 하라였다. 그와 함께 노래 운동을 펼쳤던 동료들이 이유야 어찌됐건 살아남았던데 비해 그만이 쿠데타 세력이 민중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을 학살한 칠레 스타디엄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음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누에바 깐씨온이라는 하나의 문화운동이 예술과 정치와 민중이라는 요소들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고 또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꿰뚫고 있던 지도자였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쿠데타 정권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빅토르 하라 만큼은 살려둘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하라의 부인인 조안 하라는 영국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을 하라로 바꾸면서 이미 자신을 칠레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취급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조안 하라는 추방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출국이 허용됐다.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그는 남편의 녹음 원본 일부를 짐 속에 숨겨 반출했다.

빅토르 하라의 오리지널 녹음 테이프들은 당시 군사정권의 제거대상 1호였다. 빅토르 하라는 생전에 3곳의 레코드 회사에서 앨범을 제작했는데 그중 외국자본인 칠레EMI는 쿠데타 세력이 요구하기도 전에 빅토르 하라의 녹음을 파기해버리는 기민성을 보였다.

이대로 놔두어서는 남편의 분신과도 같은 노래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조안 하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녹음 테이프들을 반출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다큐멘터리 <칠레 전투>를 제작한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도 쿠데타 정권의 눈을 피해 칠레에서 촬영한 필름을 조금씩 해외로 반출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렇게 어렵게 반출된 녹음을 가지고 1974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음반이 <선언Manifesto>이다. 쿠데타로 칠레에서 빅토르 하라의 녹음들이 파기된 이후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의 레코드가 꾸준히 제작됐지만 대부분 레코드 자체를 복각하거나 라이센스를 통해 제공된 녹음 복사본에 기초하고 있다. 빅토르 하라의 오리지널 녹음으로 제작된 앨범은 이 <선언> 뿐이었다.

물론 이 레코드의 가치는 오리지널 녹음으로 제작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녹음을 반출한 조안 하라와 칠레의 민중 투쟁을 잊지 않고 현지의 반독재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영국의 진보세력들의 존재가 이 앨범을 소중하게 만든 것이다.

또 빅토르 하라가 쿠데타군이 수용소로 사용한 칠레 경기장에 갇혀 있는 동안 감시의 눈을 피해 쓴 마지막 유고시 “칠레 스테디엄”이 수록돼 세계에 알려진 것도 이 레코드를 통해서다. 물론 고인이 된 빅토르 하라의 육성이 아니라 부인인 조안 하라의 목소리로 녹음돼 있다.

앨범 커버 뒷면에는 영국의 좌파 시인이며 극작가인 애드리언 미첼이 빅토르 하라에게 바치는 송시가 적혀있다. 2년 뒤인 1976년에는 미국 민중가요의 전설인 우디 거스리의 아들인 알로 거스리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남미의 위대한 영혼의 죽음을 추모하기도 했다.

<선언>에는 앞서 이야기한 유고시 “칠레 스타디엄”을 제외하고 11곡의 노래가 들어있다. 이중 “선언Manifesto”, 네루다의 시에 곡을 붙인 “내가 머무는 이곳Aqui Me Quedo” 두곡은 헝가리 레코드에도 들어있다. “민중의 바람Vientos Del Pueblo”은 헝가리 레코드에서는 이사벨 파라의 녹음으로 들어있다.

이외에도 빅토르 하라를 대표하는 곡인 “아만다를 기억하며Te Recuerdo Amanda”가 역시 앨범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공장으로 향하는 두 젊은 노동자 마누엘과 아만다를 통해 칠레의 노동계급을 전체를 노래하는 놀라운 재주를 보여줬다. “평화롭게 살 권리El Derecho De Vivir En Paz”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시각을 칠레와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로 돌렸던 노래다.

* * *

칠레가 민주화 되면서 외국을 떠돌던 망명 정치인들과 예술인들은 대부분 칠레로 돌아갔다. 조안 하라도 칠레도 돌아가 “빅토르 하라 재단”을 건립했다. 빅토르 하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투사들이 목숨을 잃었던 칠레 스타디엄도 2003년 빅토르 하라 경기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민주화의 성과였다.

조안 하라가 재단을 건립한 것은 죽은 남편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유산을 칠레의 민중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녹음을 복원하는 게 급선무였다. 재단의 노력으로 쿠데타 후 파기됐던 그의 녹음들은 대부분 복원돼 지난 2001년 8장의 CD로 재구성됐다. 다국적 거대기업인 원뮤직 인터내셔널이 제작과 배급을 맡았다는 것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 CD들을 통해 그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녹음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방송에 출연해 부른 녹음이나 쿠바에서의 공연 실황들이 새롭게 발굴되기도 했다.

이 복원작업에는 빅토르 하라가 칠레의 EMI를 통해 발표한 녹음은 포함돼지 않았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자 먼저 녹음을 파기했던 이 대자본은 재단이 복원한 CD들이 시장에 선보이자 즉각 EMI시절의 빅토르 하라의 녹음들을 <Victor Jara 1959-1969>라는 제목의 CD 두장짜리 앨범으로 복원해 내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Manifesto - VICTOR J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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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라면 봐서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5년이 지났지만 <로얄테넌바움>의 그 끔찍했던 '가족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신문에 실린 리뷰를 봐서는 이 영화 역시 어느 가족의 이야기인 듯 한데, 이번에는 <로얄 테넌바움>과는 달리 해피엔딩인 듯한 암시가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 발길이 뜸했던 영화관을 이 영화 때문에라도 가야할 것 같다. 그런데, 서울까지 가야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로얄 테넌바움>에 대해서는 아래 접힌 부분 참조)

>> 접힌 부분 펼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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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다즐링 주식회사’
- 삶의 가치를 찾는 삼형제의 로드 무비 -

장원수기자 / 온라인뉴스센터
출처 : <경향신문> 2007 12 02


거의 죽을 뻔한 오토바이 사고 후 맏형 프랜시스(오언 윌슨)는 ‘자기 자신을 찾고, 형제애를 다지기 위해’ 두 동생에게 인도여행을 제안한다. 아내가 임신하자 (그녀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고 이혼을 도모하는 둘째 피터(애드리언 브로디), 이전 애인의 자동응답기를 도청하는 막내 잭(제이슨 슈왈츠먼). 삼형제는 아버지가 남겨준 11개의 루이비통 트렁크를 들고 기차에 오른다.


‘다즐링 주식회사(The Darjeeling Limited)’는 위기의 세 형제가 연고도 없는 인도에서 필사적으로 ‘정처 없이 거닐기’를 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을 인도에서 수행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알리기 위함이지만, 큰 형은 참된 나를 찾기 위한 ‘영적 순례’라고 말하고, 둘째는 임신한 아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여성 편집증’ 막내의 관심은 온통 아름다운 기차 여승무원뿐이다. 이렇듯 왜 인도 여행을 하는지,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지 모른 채 형제들은 온갖 사고, 해프닝을 겪는다.

사실 형제가 며칠동안 붙어 다니면 싸움밖에 하지 않는다. 이들 형제도 예외 아니다. 날카로운 언어의 창끝은 서로의 상처를 헤집고, 오해는 불만을 쌓게 한다. 잭의 “현실에서 형제가 아니라면 인간적으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라는 말대로 형제가 아니라면 친구도 되지 않았을 사이. 너무나도 개성이 다른 삼형제는 서로에게 ‘미안해’라는 한마디를 하지 못한 채 기차에서 쫓겨난다. 같이 기차여행을 하던 독일 여성이 ‘콩가루 형제들’라며 손가락질 하는 것을 뒤로 하고.


형제간의 믿음도 깨어지고, 원대한 계획도 틀어지려는 순간, 이들은 개울에 빠진 아이들을 구해준다. 하지만 아쉽게 한 아이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 삼형제는 아이의 장례식에 초대받는다. 주변의 사소한 일에서 삶과 죽음, 찾고자했던 길을 어렴풋이 알게 된 형제들은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내려 어머니가 있다는 사원으로 향한다.

영화는 따뜻하면서도 유머가 있으며 시종일관 경쾌하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어수선하고 불협화음의 삼형제는 여행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게 되고, 갖은 고생 끝에 다시 원위치에 선다. 그렇지만 형제간의 신뢰는 여행 전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돈독해졌다.

‘로얄 테넌바움’의 웨스 앤더스 감독이 프로듀서 로만 코폴라, 배우 제이슨 슈왈츠먼과 함께 인도여행 경험을 살려 ‘삼형제의 유쾌한 행복 찾기’를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12분짜리 단편영화 ‘호텔 슈발리에’를 볼 수 있다. 막내 잭과 그의 여자친구로 나오는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깔끔하면서도 신선하다.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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