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권위에 ‘똥침’ 위대한 손가락

정재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년 11월 23일


» 〈갈릴레오의 손가락〉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

〈갈릴레오의 손가락〉
피터 앳킨스 지음·이한음 옮김/이레·2만8000원


의학 분야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쏟아내는 계관시인이 올리버 색스라면, 과학 분야에선 피터 앳킨스가 있다. 그의 글엔 불필요한 사족이 파고들 여지가 없는 정갈함이 있고, 원자에서부터 우주를 관통하는 놀라운 통찰력이 있다. 그가 쓴 <천지창조(The Creation)>나 <원소의 왕국>을 읽고 있으면 그의 재기발랄함에 탄성을 지르며 문장마다 밑줄을 긋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공들여 쓴 <갈릴레오의 손가락>은 과학적 호기심이 가득 찬 사람을 사로잡을 책이다. 특히나 이 책은 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나 앞으로 그러길 희망하는 고등학생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인데, 이 책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착상 열 가지가 가지런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목인 ‘갈릴레오의 손가락’의 뜻부터 의미심장하다. 1737년 3월 12일 갈릴레오의 시신을 피렌체의 한 성당으로 이장할 때 손가락을 떼어내 피렌체의 박물관에 보관하게 되었는데, 손가락을 담은 통을 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 있다고 한다.

“이 손가락을 하찮게 여기지 마라. 별들의 행로를 추적하고 인류가 결코 본 적이 없던 천체들을 알려준 손가락이니. 깨질 듯한 유리알로 만든 작은 기구를 들어 저 높은 신들의 처소에 오르기 위해 헛되이 산을 쌓았던 그 옛날 젊은 티탄들의 힘을 처음으로 넘어선 손가락이니.”

이 좌대의 표현대로, 갈릴레오는 과학사상 처음으로 ‘검증되지 않은 권위’를 부정했고 세계의 본질을 실험과 분석을 통해 이해하려 했던 전환 시대의 상징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손가락은 모든 과학의 흔적을 품고 있다. 갈릴레오는 자연을 단순화해서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새로운 착상을 했으며, 그의 접근 방법은 오늘날 근대과학의 모태가 되었다. 이 책은 그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해서, 자연의 복잡한 진화, 그 근원인 디엔에이(DNA), 그 외에도 에너지, 복잡계, 엔트로피, 대칭성, 양자, 우주론 등 자연을 바라보는 과학적 사고의 착상을 가져다준 주요개념 열 가지를 꼽는다.

»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그의 책을 읽다보면, ‘진화는 자연선택을 통해 이뤄진다’나 ‘에너지는 보존된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대칭하는 것은 아름답다’ ‘우주는 팽창한다’ 등 과학자들에겐 널리 알려진 사실조차 얼마나 깊은 통찰력을 품고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마지막 장인 ‘산술’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진실은 이 우주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했지만, 저자는 산술적 추론에는 한계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자연을 관통하는 ‘궁극의 이론’을 발견하게 될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과학의 추론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신을 향했던 갈릴레오의 손가락이 앞으로 우리를 향하는 일이 없도록 겸손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과학 또한 ‘검증되지 않은 부당한 권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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