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의 레코드] 2007년의 노래 5개 - 우디 거스리, 첨바왐바,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미드나이트 오일, 몬티 파이쏜

Woody Guthrie - "추방자들(로스 가토스 비행기추락사고)Deportee(Plane Wreck at Los Gatos)"
Chumbawamba - "벨라 차오!Bella Ciao!"
Manic Street Preachers - "제국의 바디백Imperial Bodybags"
Midnight Oil - "붉게 물든 강물River Runs Red"
Monty Python -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보세요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장석원 객원기자
출처 : <레디앙> 2007 12 31


첫 번째 노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추방자들(로스 가토스 비행기추락사고)Deportee(Plane Wreck at Los Gatos)"

   
▲ 우디 거스리는 항상 자신의 기타에 "This Machine Kills Fascists(파시스트를 처단하는 무기)"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언론사들은 언제나처럼 '10대사건'을 선정해 보도합니다. 외국기자들이 '한국에 부임하면 기사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이 나라는 큰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올해도 온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굵직굵직한 사건사고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중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10건을 간추려야 하는 언론사의 고충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올해 신문, 방송에서 선정한 연말결산 10대뉴스를 보면 아주 중요한 사고, 사실상 2007년 대한민국의 문을 열었던 사건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제외시켰습니다.

바로 2월 11일 여수에서 발생한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사건입니다. 강제출국대기 중이던 이주노동자 10명이 쇠창살에 갇힌 채 속수무책으로 타죽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인권문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편견, 이주노동에 대한 정책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사고였음에도 언론사들은 10대사건의 끄트머리에도 이들의 서글픈 죽음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올해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우리에게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12월 13일 이주노조 지도부 3인을 강제추방하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사건과 이주노조 지도부에 대한 표적 단속을 접하면서 머릿속에는 60년 전 미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면 만들어진 "추방자"들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1948년 1월 29일,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 가토스 협곡에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32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중 28명은 미국이민국에 적발돼 메히코(멕시코는 미국식 표기입니다)로 송환되는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나머지 4명은 비행기 승무원과 이민국 관리, 그러니까 '미국인'들이었습니다.

당시 라디오 뉴스는 사고소식을 전하면서 소위 미국인 사망자들의 신원만 전할 뿐 다른 사망자들은 한데 묶어 추방자들이라고만 보도했습니다. 민중가수인 우디 거스리는 이 뉴스를 들으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미국의 인종주의적 태도에 분노하며 그 자리에서 시를 써내려갔습니다. 후에 다른 이가 이 시에 가락을 붙여서 만든 노래가 '추방자들(로스 가토스 비행기추락사고)'입니다.

이후 이 노래는 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이 폭발하면서 자주 불러졌고,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노조활동가들에게는 노동운동가로 쓰였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 주민이 증가하면서부터는 초기 이주자들의 수난을 기억하는 의미로 에스빠냐어로 번안돼 불리고 있습니다.

오래된 사건이고 노래지만 60년 전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노래인 셈입니다. 그러나 정말 서글픈 것은 한국사회의 편협한 시선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운동을 '타민족 운동'으로 표현하고, 이주노동자를 '해결해야 할 사회병폐'로 규정하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도된 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제국주의는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새해에는 미제국주의가 절대악이기 때문에 그에 맞서는 것은 무조건 절대선이다는 식의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줍은 영어 실력이지만 노랫말을 우리말로 옮겨봤습니다. 노랫말은 부른 이들마다 조금씩 다른데 우디 거스리가 처음 쓴 시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참고로 이 시는 앞과 뒤는 우디 거스리의 시점에서, 중간 부분은 죽은 이주노동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추방자들 (로스 가토스 비행기 추락사고)'

작물은 시들고, 복숭아는 썩어 가는데
오렌지는 방부처리장 안에 쌓여만 가는데
일할 사람들은 모두 비행기를 타고 남쪽국경을 향하고 있네
어차피 그간 번 돈을 모두 날려서라도 다시 돌아올 길인데


잘가게 후안, 안녕 로살리타
아디오스 나의 친구들, 헤수스와 마리아
난생 처음 타보는 큰 비행기지만 아무도 너희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
그저, '추방자들'이라고 부를 뿐이지


* * *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저 강을 건너 이곳으로 왔어
이민 브로커들은 할아버지가 평생 번 돈을 가로챘지
내 형제자매들도 과수원에서 일해
아마 죽을 때까지 이 트럭에서 내리지 못 하겠지


우리들 중 누군가는 불법이고 누군가는 용인될 수 없다는군
근로계약은 휴지조각이 됐고, 이제는 떠나야만 한다네
6백마일 너머에 있는 메히코를 향해서
우리가 마치 무법자나, 범죄자나, 도둑이라도 되는 냥 몰아댔지


우리는 너희들의 언덕 위에서, 너희들의 사막 한 가운데서
너희들의 계곡에서, 너희들의 들판에서
너희들의 나무들 사이와 덤불 속에서
너희들의 강 양 쪽 편에서 그저 일만하다 죽었을 뿐인데


* * *

비행기가 로스 가토스의 골짜기 위에서 불길에 휩싸였을 때
불덩이가 날아다니고, 산들이 진동하고
그런데 마른 이파리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은 누구지?
라디오 뉴스는 이렇게 전할 뿐이야, "그들은 단지 추방자들일 뿐입니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낙엽처럼 그들을 대지위에 흩뿌리는 것이
우리의 과수농장을 관리하는 최고의 방법인건가
우리의 과일들을 기르는 최선의 방법인건가
그들 하나하나의 이름대신 그저 "추방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잘가게 후안, 안녕 로살리타
아디오스 나의 친구들, 헤수스와 마리아
난생처음 타보는 큰 비행기지만 아무도 너희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
그저, '추방자들'이라고 부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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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노래: 첨바왐바Chumbawamba - "벨라 차오!Bella Ciao!"

   
▲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반WTO 시위의 상징이 된 사진.
 
90년대 초반 김영삼 정권이 '국제화'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면서 본격화된 이 땅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미FTA를 통해 완성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국회 비준동의라는 형식적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대선의 결과를 보면 협상안의 국회통과는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1년 동안 참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공세에 대항하는 반세계화운동은 1999년의 '시애틀 공방전'을 통해 화려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현실사회주의국가의 붕괴 이후 승승장구하던 자본주의의 행진에 결정적인 태클을 걸며 들불처럼 번져나간 반세계화운동은 지금 정체 상태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한미FTA 저지 투쟁의 한계도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반세계화운동의 주제가는 이딸리아의 민중가요인 '벨라 차오'입니다. 이 노래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딸리아 민요로 특별히 좌익운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19세기부터 노동운동가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확산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딸리아 빨치산들이 즐겨 부르면서부터입니다. 기독교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섞여있던 빨치산들은 산속의 근거지에서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이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애틀 이후 열린 반세계화 집회에서는 이 노래가 주제가처럼 불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빨치산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세계화 데모대를 구성하는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생태주의자 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행진합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배워가야 할 노래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부르는 만큼 '인터내셔널가'처럼 각 나라말로 가사가 다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영국의 무정부주의 노래집단인 첨바왐바가 부른 영어판입니다. 이딸리아 빨치산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담아 전통의 가사를 수정했듯이 첨바왐바도 새 가사에 반세계화운동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2008년부터는 한국에서도 우리말로 된 '벨라 차오'를 함께 부르며 반세계화 투쟁을 벌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무정부주의자답게 첨바왐바는 자신들의 녹음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거리낌 없이 내려받기!

다운로드: http://www.chumba.com/media/Chumbawamba-Bella_Ciao.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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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노래: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Manic Street Preachers - "제국의 바디백Imperial Bodybags"


   
▲ "Send Away The Tigers" 앨범 커버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음반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마법Magic"이었습니다.(네, 저는 유사프로그레시브 밴드로 변질된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별로 안 좋아 합니다.)

그러나 가장 반가웠던 음반은 3년 만에 나온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의 새 앨범 "호랑이 쫓아 보내기Send Away the Tigers"입니다.

2001년에 발표한 "Know Your Enemy"와 2004년에 발표한 "Lifeblood", 이 두 장의 앨범이 실망스러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완성도를 보여줬고 밴드의 창작력도 정체 상태에 있는 듯이 보였었습니다. 그러나 새 앨범은 이런 우려를 일거에 말소시켰습니다.

워낙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밴드인 만큼 새 앨범도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국의 바디백"은 7년차에 접어드는 이라크 전쟁을 다룬 반전가요입니다. 바디백은 군대에서 전사자들을 담는 플라스틱 포대를 말합니다. 밴드는 교전 당사국이며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를 낸 영국의 제국주의적 전쟁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도 지난 2월 파병 5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철군은커녕 레바논으로 파병지역이 늘어났고 얼마 전에는 이라크에서의 파병연장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2008년에도 우리는 교전당사국으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습니다.

존 레논이 "당신이 원한다면 전쟁은 끝난다"고 말한 게 35년 전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지구상의 누군가는 전쟁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맞서 평화를 지키는 것은 모든 민중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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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노래:
미드나이트 오일Midnight Oil - "붉게 물든 강물River Runs Red"


   
▲ "Blue Sky Mining" 앨범 커버
 
1990년 5월 30일, 뉴욕 엑손 오일 본사 앞에서는 불법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밴드가 음향 설비를 갖춘 대형트레일러를 몰고 와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엑손 오일을 강하게 비난하는 게릴라콘서트를 연 것입니다. 이 밴드의 이름은 "미드나이트 오일"이고 국적은 오스트레일리아였습니다.

공연은 전 해인 1989년 3월 29일 엑손Exxon 오일 소유의 유조선이 알라스카 앞 바다에서 좌초하면서 당시까지 최악의 해상기름유출 사건을 일으켜 생태계를 말살한 것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피터 개럿Peter Garrett의 대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미드나이트 오일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편이지만 환경문제, 원주민문제, 평화문제에 올인했던 사회파 밴드로 더 유명합니다.

항의시위 당일 미드나이트 오일이 엑손 오일사에 선물한 노래는 모두 여섯 곡입니다. 그 중에는 존 레논의 "인과응보Instant Karma"도 들어있습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거대기업에게 '저지른 만큼 돌려받게 될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트레일러에 붙어있던 현수막의 내용은 "미드나이트 오일은 여러분을 춤추게 만들지만 엑손 오일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였습니다.

하지만 여섯 곡중 가장 강한 메시지를 담은 것은 오염문제를 다룬 노래 "붉게 물든 강물River Runs Red"이었습니다. 붉게 물든 강, 검게 변한 비, 먼지만 남은 대지를 묘사하면서 밴드는, 자연은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지만 '달러'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폭주하게 만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엑손은 알라스카 기름유출 사고로 오랫동안 미국 정부와 환경운동가들에게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서해 기름유출 사고에는 기름은 떠있는데 기름 주인이 언론보도에서 사라져 버리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오죽하면 해안에서 기름을 닦아내던 자원봉사자가 시커멓게 '삼성 X새끼'라고 쓴 비닐우의를 입고 있는 사진이 메신저를 타고 돌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언론 대신 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나라 국민이 너무 착해빠진 것일까요? IMF사태도 그렇고 언제까지 재벌이 사고 치면 국민이 뒷수습해야 하는 걸까요?

미드나이트 오일의 '붉게 물든 강물'은 1990년에 발표한 앨범 "푸른 하늘의 광산Blue Sky Mining"에 수록돼 있습니다. 앨범의 제목이 된 노래 "Blue Sky Mine"은 저임금 노동자를 다룬 것입니다. 우리로 치면 비정규 노동자 문제쯤 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미드나이트 오일이 1987년에 발표한 앨범 "디젤과 먼지Diesel and Dust"에 실린 노래 "불타는 침대Beds Are Burning"는 원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문제를 다룬 것이지만, 갈림길에 놓여있는 민주노동당의 상황에 딱 어울릴 것 같은 노랫말을 담고 있습니다.

옮겨 보자면, "때는 왔다. 사실과 진실을, 원래의 소유주에게 되돌려주자.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데 춤이나 추고 있을 텐가? 침대가 불타고 있는데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미드나이트 오일은 2002년 해산했고 피터 개럿은 2년 뒤 호주노동당 소속으로 원내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노동당이 정권을 탈환하면서 환경, 문화, 이주민 문제 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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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노래:
몬티 파이쏜Monty Python -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보세요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2007년의 한국사회를 이야기하면서 대선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정작 할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연초 개인블로그에 '차기 정권은 한나라당'이라는 농반진반의 예측을 적었는데 말이 씨가 됐는지 대선 결과 이명박 후보가 보기 좋게 당선됐습니다.

반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우려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여권의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라는 말은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선자의 노동관이나, 사회관, 교육관 모두 문제가 있고, 특히 파국적인 재앙이 될 것이 뻔한 '대운하'는 이명박 정권의 5년이 노무현 정권의 5년보다 역동적이면 역동적이지 결코 국민들의 기대만큼 조용하고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항상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행동의 결과를 온전히 예측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어떤 행위는 항상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겠지요.

   
▲ 실제로 십자가에 메달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 상태에서 즐겁게 합창을 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있다.
 
몬티 파이쏜은 영국의 대표적인 코미디 집단입니다.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영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입니다. 이들이 1979년 만든 영화 "브라이언의 일생Life of Brian"은 예수가 살던 시절의 예루살렘을 통해 60~70년대 서구 급진좌파를 풍자하고 조롱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반로마 운동단체에 가담한 유대청년 브라이언이 혁명영웅이 됐다가 결국 십자가 못 박히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십자가에 메달린 다른 죄수들이 브라이언에게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처형과 죽음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며 불러주는 노래가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보세요"입니다.

삶의 어떤 부분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하지요.
다른 부분은 그저 욕만 나오게 합니다.
인생의 오돌뼈를 잘근잘근 씹을 때는,
불평하지 마세요, 휘파람을 불면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 에요.
그리고...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을 바라보세요.


노래의 시작부분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지만, 이명박 후보의 득표가 50%를 넘겼다는 출구조사 발표를 보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한사람의 인생은 짧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오래 지속됩니다. 혁명은 항상 골목 어귀 어디에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말고, 과도한 절망도 근거 없는 낙관도 멀리 하면서 새해를 맞이합시다. 연말연시 따뜻한 아랫목에서 편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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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0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갔어요? 안보이네....

내오랜꿈 2008-01-11 01:24   좋아요 0 | URL
어디 안갔음!

뭐하냐고?

사이트마다 특성이 있는데, 이명박 찍은 사람들은 숨죽이고 노무현 정동영 계열 지지한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최고의 선인 양 꼴갑을 떠는 사이트가 많지. 알라딘이 특히 더 대표적인 거 같네. 도대체 이명박 찍은 사람들보다 이명박 안 찍었다는 이유로 큰소리 치는 인간들이 난 이해가 안되네? 거의 정신병자 수준 같아 보여.....

그래서 글올리기가 싫어졌다. 이왕 싸울 거면 수백, 수천 명이 보는 사이트에서 올리고 싸워야지 기껏 몇 십 명 보는 사이트에서 '찌지고 볶고' 해봐야 뭔 소용이 있겠나?

난 이명박 찍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이명박 지지했다고 나섰으면 한다. 그래서 그네들이 노무현 지지자들, 민주신당 지지자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 뭔 잘난 것도 없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당당한가 말이다. 대가리 쳐박고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찮을 인간들이...

바람돌이 2008-01-13 00:56   좋아요 0 | URL
까칠하기는.... 대가리 처박고 석고대죄해야 할 인간에 형이나 나는 뭐 안들어갈 것 같수?
여기? 그냥 노는데잖수? 난 그런데.... ^^ (아 또 뭐라 길길이 날뛸려고 그러지? 에이 정초부터 좀 참아주슈.... )

내오랜꿈 2008-01-1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좌파들이 자유주의자들한테 패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네.

자유주의자들은 이곳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를) 자신들의 선전선동의 장으로 활용하여 자유주의 우파들의 입을 봉하고 좌파들과 무대포 논쟁을 서슴지 않는데, 좌파들은 그냥 '노는 데'라고 여기고 있으니 말이지....

난 그럴 수 없네요. 모두가 실천의 장이지. 그래서 이왕 싸울 거면 기껏 수십 명 남짓 들오는 이곳보다는 수백, 수천 명이 들오는 곳에서 싸워야 하지 않겠수?
 

실체 없는 ‘유목주의’ 이미지만 떠돈다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⑤ -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①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 노마디즘은 저항의 철학인가 침략의 철학인가? 홍윤기 교수는 노마디즘이 실체는 없이 이미지만 떠도는 실험 단계의 기획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보였다. 칭기즈 칸의 동상,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한국 국적 취득자들(왼쪽부터).〈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 논쟁 ⑤

① 개념부터 확정해야

유목주의로 옮겨지는 노마디즘(nomadism)이 국내에 본격 알려진 시기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천의 고원〉(1980) 해설서 〈노마디즘 1·2〉가 나온 2002년께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가 쓴 이 책에서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이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으로 규정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특히 그들의 저서에서 “국가로 상징되는 고착된 가치에 맞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도구”로 ‘전쟁기계’를 노마디즘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노마디즘은 지난해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씨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란 책을 내놓으면서 논쟁이 일었다. 천씨는 다리를 놓고 길을 내며 질주하는 유목의 세계에서 반생태성과 비지속성 그리고 ‘침략과 파괴의 역사’를 읽어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노마디즘은 칭기즈 칸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복고주의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외형상의 유목이나 움직임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배적 가치와 대결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안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홍윤기 교수는 이번 글에서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서 수많은 노마드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하거나 대립·공존하고 있음을 우선 지적한다. 자크 아탈리류의 ‘시장 노마드’나 첨단기기로 사이버공간을 가로지르는 ‘고급소비자 노마드’라고 해서 진정한 노마드가 아니라고 배제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노마드들이 갖고 있는 의미가 특정 규정으로 결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지 못하고 다감각의 ‘이미지’로 교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노마디즘은 ‘개념’과 실행’이 부족한 탈현실 기획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노마디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의 응답부터 말하자면, 아직 ‘어떻게’ 봐야 할 ‘그 어떤’ 노마디즘 같은 것은 우리 생활 안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말을 써서 모종의 효과를 유발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은 우리 주변에 넘친다. 그리고 이 효과들은 상호 충돌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변화무쌍한 그 용어의 용례들부터 정리하고 나서야 가능할지 모른다.

1.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공저 〈천의 고원〉이 역사학을 제외한 인문학계와 일부 사회학자들, 그리고 학문적 유행에 민감한 언론계, 소비자 취향에 집중하는 사업계 등의 지도적 인사들로 하여금 노마디즘을 일상적으로 입에 달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1227년”이라는 암호 같은 연대를 앞세운 이 책 12장의 표제를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라고 붙이면서 “전쟁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진술로 그 장을 시작한다.(유목민의 최고 상징 격인 칭기즈 칸은 바로 이해 8월18일 서하(西夏) 정벌 중 병사했다.) 이때 “전쟁”을 무엇으로 이해했든 들뢰즈·가타리는 전쟁과 관련된 유목민의 역동성 같은 것이 “국가”의 영토성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탈국가적·탈경계적 추진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했다. “전쟁기계는 유목민의 발명품이다”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은 “불복종 행위, 봉기, 게릴라전 또는 행동으로서의 혁명이라는 반국가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전쟁기계가 부활하여 “새로운 유목적 잠재세력”이 출현한다는 일반명제를 제시했다.

탈국가 지향하는 제2의 칭기스칸
사이버 공간 활보하는 고급 소비자들
모든 문명 내던지는 원시 회귀 까지
수많은 노마드 주장들 대립·공존


2. 문제는 이들이 그렇게 타파하려는 국가가, 민주적이든 독재적이든, 어떤 종류의 국가인지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국가는 그 자체로서 이미 어떤 형태이든 “포획 장치”이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작동시키고자 하는 전쟁기계의 목표가 반드시 전쟁은 아니라는 언명은 전쟁을 게임 속에서의 경쟁쯤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정도로 문제의 진지성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전쟁 기계의 가동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뿐만 아니라 노동·상품·자본 등 “포획”을 연상시키는 모든 제도 장치로부터의 탈주를 권장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전면적 탈경계 기획은 그 실천적 함의가 대단히 다양하다.

3. 이것을 문명의 모든 성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 그것은 원시로의 회귀까지 각오한 급진적 생태주의가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때의 탈주는 역진적 퇴주가 되는 셈이다.

4. 만약 탈경계의 지향점을 문제삼지 않을 경우, 삶의 조건과 영역에 처진 경계들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왕래하거나 이동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와 생활양식은 모두 노마드적이다. 인간이란 “여행을 존재의 본질”로 한다고 하여 ‘호모 노마드’를 부각시킨 자크 아탈리는 세계화된 지구시장을 그 옛날 대상로가 거미줄처럼 얽혔던 실크로드로 간주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노마드로서 진화의 최종점에 도달하며, 이들이 전세계를 장악하기까지의 무질서 너머로 “모든 인생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땅”이 전개된다고 고무한다.

5. 당연히 아탈리류의 시장 노마드는 세계 자본 순환과 그것의 외양인 제국에 완전히 포획되어 그 안에서 이익에 혈안이 된 “여행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여행자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다. 농촌자치 공동체를 꿈꾸는 농민 철학자 천규석 선생에게 이런 “유목주의는 침략주의이다.”

6. 그렇지만 자본과 제국의 포획 안에서 자신의 생활압박 때문에, 베네치아에서 출생하고 호주에서 성장하다가 프랑스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네덜란드에서 교수로 취업한 로저 브라이도티 같은 이에게 유목적 주체란 연속된 이주로 복잡화되고 다층화된 수많은 다양한 타자들 사이의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7. 그러나 자본의 속도는 유목민의 다양화를 앞질러간다. 이미 시장에는 마셜 매클루언의 예언대로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피디에이(PDA), 디지털카메라, 엠피3(MP3)을 갖춘” 고급 소비자들이 노마드를 자칭하면서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무한 초원을 무대로 “공간의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법을 능동적으로 바꾸어가는 창조적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21세기판 유토피아 꿈꾸는 노마디즘
개념·실행 없는 ‘탈현실’ 실험일 뿐
찬반을 말하기엔 아직 일러
변화무쌍한 용례들부터 정리해야


자, 위의 노마드 또는 유목민의 사례들 가운데 자기만 빼고 다른 것은 진정한 노마드나 유목민이 아니라고 얘기할 권리가 있는 진정한 유목민은 몇 번인가? 그 의미가 어떠하든 노마디즘은 어떤 동기나 근거에서든 21세기 현재의 (지구)사회적 지형 위에서 과거의 ‘유토피아’ 구상을 대체하는 탈현실(post-reality) 기획이다. 그야말로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 수많은 노마드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면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하거나 대립하거나 공존한다. 이때 의미들(senses)은 특정 규정으로 결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기보다 다(多)감각(multi-sense)의 ‘이미지’ 파문으로 교착한다.

다만 노마디즘 기획은 노마드를 바로 지금 이곳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유토피아 구상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탈경계의 이동이나 탈주를 하는 듯이 보이는 소수 엘리트층 또는 자기 땅에서 밀려나 탈국가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수많은 빈민이나 노동 이민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진경 교수의 말대로 이들은 “떠돌아다니지만 끊임없이 어딘가 멈출 곳을 찾는” ‘실질적 고착자들’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역시 이진경 교수의 구상을 빌려, 떠남/멈춤의 이동성을 신체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사상과 갈등을 자유자재로 읽고 사유하는 한층 정신적인 차원에서 유목성을 추구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목성이 국가·자본·시장과 같은 외적 준거점을 떠나 정신과정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그런 관념적 유목성이 들뢰즈·가타리가 “모델을 늘리지 않으면서” 끝까지 놓지 않으려던 “매끈매끈한 판”을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홈 안으로 몸을 도사리는 것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는 단지 탈주의 기획을 말했을 뿐이다. 그것은 노마드에서 많은 것을 학습하는 과정, 곧 노마돌로지(유목론)적 탐색이긴 해도 노마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노마디즘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 홍윤기 교수
 
노마드나 노마디즘은 거기에 대한 찬반 의견을 말하기엔 그 자체의 ‘개념’과 ‘실행’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현재적으로 태부족한 실험기획이다. 더 중요한 것은 들뢰즈·가타리가 결국 인정했듯이 노마드 그 자체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다. 곧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의 매끈한 공간만으로 충분하다고는 절대 믿지 말라.”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홍윤기 교수는 1957년생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사회통합의 규범기반 모델, 그리고 문화적 가치의 철학적·사회과학적 실현 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변증법 비판과 변증법 구도> <헌법 다시 보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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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에서 길어올린 ‘변혁의 꿈’
12세기 성화에서 21세기 현대화까지 150장 도판으로 한눈에
격변의 역사 속 삶 담아내고 바꾸려는 반체제적 특성 돋보여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 러시아 이동파 대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의 기념비적 작품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1873). 레핀은 ‘지혜롭고 강인한 민중의 현자’(왼쪽 두번째), ‘누적된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네번째), ‘미래를 향해 눈을 돌린 소년’(여섯번째)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 러시아 민중의 모습을 담았다.

〈러시아 미술사〉
이진숙 지음/민음in·2만2000원


오랜 세월 ‘철의 장막’에 갇혔던 러시아 미술의 놀랍도록 풍요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1년 전 이맘때 나온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은 낯선 세계의 장대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미술 연구자 이진숙씨가 쓴 〈러시아 미술사〉는 가장 추운 나라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특별한 예술 정신 깊숙한 곳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책이다. 이주헌씨의 책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관을 여행하는 사람의 눈길로 첫 경험의 설렘을 생생하게 전해준다면, 이진숙씨의 책은 12세기 이콘화(성화)에서부터 21세기 현대화까지 두루 아우르며 러시아 미술의 역사를 넓은 시야에서 조망하게 해준다.

동시에 이 책은 150장에 이르는 도판을 활용해 각 시대 화가들이 창조한 작품의 풍성하고도 독창적인 세계에 독자를 마주 세운다. 지은이의 문학적 필치는 그 화가들이 품었던 열정을 끄집어내 그 열정의 빛깔과 강도를 생기 있게 묘사한다. 애초 독문학을 공부했던 지은이는 러시아 여행 중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그림 작품들에 ‘충격’을 받아, 평생의 업을 등지고 러시아 미술을 새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날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나에게는 신천지가 열렸고, 인생이 바뀌었다.”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강렬한 힘, 러시아 미술 작품들이 뿜어내는 그 힘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는 민속학자 니콜라이 르보프의 말을 빌려, 러시아 문화의 핵심을 ‘격렬한 삶’이라고 요약한다. ‘격렬한 삶’은 그대로 러시아 미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러시아 미술은 고통·분노·열정·희구와 같은 ‘격렬한 삶’이 일렁이는 바다다. 삶이야말로 러시아 미술의 본질이고 목표다. 러시아 화가들의 열망은 삶과 예술의 일치, 다시 말해 예술을 통한 삶의 구현에 있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러시아 미술의 출발점을 이룬 것은 이콘화였다. “이콘화가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 수 없다. 강력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과 늦은 근대화로 러시아에서는 서유럽과 달리 오랫동안 이콘화의 전통이 유지됐다.” 수도승으로서 성화를 그렸던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15세기 러시아 이콘화의 정점을 보여준 사람이다.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걸작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절실하게 그려냈듯이, 루블료프는 러시아 민중의 절절한 소망을 종교화로 형상화함으로써 ‘러시아적 회화’의 한 고원을 이루었다.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의 등장과 함께 러시아 미술은 결정적 방향 전환을 이룬다. 급진적 서구화를 밀어붙였던 이 냉혹한 차르는 이콘화 중심의 러시아 미술 세계를 일변시켰다. 서유럽의 화가들을 초빙하는가 하면 유망한 젊은 화가들을 서유럽으로 유학시킴으로써 러시아에 처음으로 ‘근대적 화가’가 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표트르 대제 이후 프랑스식 궁정문화가 번창하고 로코코풍의 미술양식이 퍼졌다.

» 〈러시아 미술사〉
그러나 이런 껍데기만의 근대화는 러시아 민중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은 러시아인의 민족적 자각을 낳았다. 이어 1825년 터진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이 자각이 사회변혁의 열정으로 표출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젊은 귀족들이 참여한 이 반란을 통해 러시아 특유의 반체제적 지식인, 곧 인텔리겐치아가 탄생했다. 러시아 미술은 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화하고 변모했다. 19세기 러시아에서 화가들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지식인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들에게 그림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었고 삶을 변혁하는 도구였다. ‘비판적 리얼리즘’은 러시아 화가들의 창작 규범이었다. 그런 예술가 정신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것이 1870년 결성된 ‘이동파’였다.

이동파의 등장이야말로 근대 러시아 미술을 서유럽 미술과 근본적으로 단절시키는 지점이다. 이동파란 러시아 모든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려고 여러 도시로 옮겨다니며 전시회를 연다는 취지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이동파는 말하자면, 미술계의 브나르도(‘민중 속으로!’) 운동이었다. 1923년까지 존속한 이동파는 세계 미술운동사에 유례없는 실험이자 성과였다. “이동파는 정치적·경제적으로는 후진국이면서도 정신적으로 이것을 극복하려 했던 지식인들 중심의 민주적 미술 유파였다. 세계 미술사에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반체제적 성격을 유지한 미술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동파는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러시아 미술의 전통을 극대화시켰다.”

이동파가 활동을 시작한 1870년대에 서유럽 미술의 중심지 파리에서는 인상파가 최초로 전시회를 열었다. 많은 러시아 화가들이 파리 유학을 다녀왔지만, 이들은 인상파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빛의 묘사’가 아니라 ‘민중의 삶’이었다. 그러나 이동파의 초기 양식은 아직 회화의 기술적 측면에서 완벽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이동파 운동의 지도자 이반 크람스코이는 인상파와 이동파를 이렇게 선명하게 대비했다. “그들(프랑스 인상파)에게는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다. 우리(러시아 이동파)에게는 형식은 없고 내용만 있다.” 이 난점을 해결한 사람이 일리야 레핀이었다. 레핀은 1873년 작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로 러시아 이동파의 창조성을 극점으로 끌어올렸다. 레핀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이 대작에서 회화의 형식을 일신시킴과 동시에 민중의 강인한 삶을 극적으로 구현했다. 레핀의 풍속화에는 러시아 사회의 근본적 변혁의 꿈이 내장돼 있었다. “레핀의 모든 그림은 레핀 개인만의 진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 미술 전체의 진보였다.” 그 정신은 아방가르드 화가들을 통해 20세기로 이어졌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와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구성주의는 그 정신의 혁명성이 최고의 형태로 드러난 운동이다. 이 전위 운동들은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형식 실험 속에 러시아 혁명의 이념을 담았다. 지은이는 이들의 운동을 이렇게 평가한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들의 미친 듯한 창조의 열정은 1917년의 혁명 분위기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솟구쳤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보다 더 강력하고 뜨겁게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고 동시에 갱신하려는 열정은 세계 미술사 어디에도 없었다.”


19세기 러시아 미술은 ‘문학이 모델’
고골·톨스토이 등 유명작가와 작품에서 큰 영향 받아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 19세기 러시아 미술은 ‘문학이 모델’

“19세기 러시아 미술가들은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들이다. 러시아 화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당대 러시아의 삶 자체였다.” 러시아 미술의 이런 특성은 문학에 빚진 바 컸다. 19세기 러시아 문화를 이끈 것은 문학이었다고 이진숙씨의 〈러시아 미술사〉는 말한다. “푸시킨·고골·도스토옙스키(그림 가운데)·톨스토이(오른쪽)·투르게네프·오스트롭스키 등 위대한 작가들이 러시아 지성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엄격한 검열이 이루어지던 이 시기에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도 급진적인 논의들이 문학비평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러시아 미술은 문학으로부터 ‘이야기 특성’만 빌려온 것이 아니었다. 미술은 문학과 내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고, 작가와 작품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그런 영향이 처음으로 나타난 그림이 알렉산드르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다. 20년 세월을 바쳐 1858년에 완성한 이 대작에 이바노프는 작가 고골의 얼굴을 새겼다. 희곡 〈검찰관〉(1836)에서 러시아의 암담한 현실을 예리하게 풍자했던 고골은 이후 점차 종교적 신비주의에 빠졌다. 현실에서도 예술 속에서도 해답을 찾지 못한 고골리는 정신 착란 상태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는데, 이바노프는 자신의 그림에서 고골리의 그런 마음 상태를 표현했다.

이동파를 이끌었던 이반 크람스코이(왼쪽)는 체르니??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삶의 모델로 삼았다. 196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반기를 들고 뛰쳐나온 크람스코이는 이 반란에 가담한 13명과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묘사된 혁명가들의 이상적 공동체를 본보기로 삼아 작업실과 주거지를 공유하는 생활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가 이동파의 모태가 됐음은 물론이다. 크람스코이는 레프 톨스토이와도 각별한 인연을 맺어 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안나 카레니나〉에 감명받아 이 소설의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를 닮은 〈미지의 여인〉을 그렸다.

이동파의 대미를 장식하는 니콜라이 야로센코는 톨스토이의 소설 주제를 그림으로 옮겼다. 그의 대표작 〈삶은 어디에나〉(1888)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직접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산다고 말한다.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는 죄수 호송열차에 탄 정치범과 그 고난의 길에 동행한 가족을 보여준다. 시베리아 유형지로 가는 열차가 잠시 멈추어 서 있다. 젊은 죄수의 아기가 호송열차의 창살 밖으로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준다. 모이를 먹는 비둘기를 보여 잠시 기쁨의 미소를 짓는 죄수와 아내와 아이는 성가족을 연상시킨다. “예수가 고난 속에서 사랑의 승리를 성취했듯 그들은 어디에서나 삶을, 생명을 발견할 것이다. 비둘기들이 모이를 다 먹기도 전에 기차는 유형지를 향해 덜컹거리며 떠날 것이다. 죄수를 싣고 떠난 기차는 더욱 단련된 혁명 전사를 싣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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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거부한 애정의 경제학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러스킨 지음·김석희 옮김/느린걸음·1만2000원

한승동 선임기자 / 그림 느린걸음 제공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러스킨 지음·김석희 옮김/느린걸음·1만2000원


영국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의 혁명적 사상
부는 ‘제로섬’…‘정의와 애정’이 최선 낳아
“생명 향한 열망 담아야 진짜 경제학” 역설


〈신약 성서〉 마테오복음 20장에 포도밭 일꾼 얘기가 나온다.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꾼들에게 1데나리우스를 주기로 하고 포도밭 일을 시켰다. 주인은 아홉 시와 열두 시, 그리고 오후 세 시쯤에도 일꾼들을 각각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저녁에 일삯을 주는데 모두 1데나리우스씩 주자 일찍 시작해 긴 시간 일을 한 사람들이 불평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중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산업혁명으로 최성기를 구가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비평가요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1819~1900·그림)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느린걸음)에서 애덤 스미스에서 토머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로 이어진 자본주의 정통 경제학의 전제조건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는 고용주와 노동자를 포함한 경제 주체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정의와 애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모든 당사자가 저마다 자기 이익을 꾀한다고 가정”(밀)하면서, 이기적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손”(스미스)의 역할을 낙관한 정통 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정통 경제학자들은 예컨대 집주인은 가능한 한 하인들이 빈둥거릴 짬을 주지 않고 그들이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의 빈약한 음식과 형편없는 방을 주고 다른 데로 떠나가지 않을 한도 내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며 매사에 한계점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주인과 사회, 나아가 하인에게도 최대의 이익을 안겨주는 합리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스킨은 기계와 달리 “영혼을 동력으로 삼는” 하인이 최대한 많은, 질 높은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은 보수나 강한 압력이 아니라 의지나 정신, 친절과 신뢰, 정의, 공평무사, 한마디로 애정이라고 말한다. 공장주와 노동자, 장교와 병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러스킨은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보수도 같아야 한다며, 의사나 교회 목사에 대해서는 그들 솜씨가 좋든 나쁘든 똑같은 사례를 지불하면서 노동자들에겐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노동력에 대한 대가에 차등을 두게 될 때 미숙련 노동자가 싼 값으로 숙력 노동자의 자리를 빼앗거나 임금을 깎아내리고 무한경쟁에 돌입함으로써 대다수가 망하는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조지 버나드 쇼가 카를 마르크스보다 훨씬 더 “혁명적”이라고 했다는 러스킨 사상의 급진성은 부(富)에 대한 그의 생각에 집약돼 있다. 러스킨은 일정한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근대경제학자들의 절대적 개념의 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 부는 제로섬과 같다. 누구 주머니에 든 1기니라는 돈의 힘은 이웃의 주머니 속에 1기니가 없다는 사실과 그 이웃이 돈을 원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부자가 되는 기술은 재산을 모으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이웃이 자기보다 적게 소유하도록 획책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자신만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불평등을 확립하는 기술인 것이다.”

러스킨은 식민지경영과 불평등 교역을 통해 전세계로부터 부를 빨아올리며 자연을 파괴·오염시키며 국가간, 그리고 국가내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켜가던 대영제국의 작동방식과 그것을 뒷받침한 근대경제학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비판했다. 나라 안팎을 넘나드는 주식투자와 신종 펀드들이 난무하고 부동산 투기 등 ‘재테크’가 일상화한 21세기 한국사회는 당시 영국사회와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런 재테크는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부의 이전과 집중에 따른 불평등을 창출한다. 그것은 내부 양극화뿐만 아니라 전세계 차원의 국가간·지역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강자들간의 도박게임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나오기 7년 전에 발간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말하자면 150년 전에 거기에 이의제기를 한 것이다.

근대경제학은 그런 불평등을 긍정한다. 그 바탕 위에서 각자 최대의 이익, 이윤을 짜내는 걸 정당화한다. 오늘날 세계와 한국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그 연장이자 필연적 귀결이다.

러스킨에게 “진짜 경제학”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그리고 파멸로 이끄는 물건을 경멸하고 파괴하도록 국민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자립적 소농경제 쪽을 지향한 마하트마 간디가 러스킨한테서 큰 영향을 받았던 것도 이 부분일 것이다. 자본도 “생명에 유용한 어떤 물건을 공급하느냐, 생명을 보호하는 어떤 구조물을 짓느냐”를 기준으로 봐야 하며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자본의 증식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그런 자본은 아예 없느니만 못하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최대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을 양성하는 나라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하여 그 인격과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오렌지색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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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억’ 흔들 2007년의 기억은?
디아스포라의 눈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 디아스포라의 눈
 
디아스포라의 눈/

지금 이 원고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쓰고 있다. 12월19일 피렌체대학에서 열린 프리모 레비 타계 20년 기념논문집 출판기념회에 출석하기 위해 달려왔다. 이 논문집 제목은 〈프리모 레비를 향한 세계의 소리※기억 속에서, 기억을 위하여〉. 이 책은 세계 15명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내가 유일한 기고자다. 내 글 제목은 ‘서울과 도쿄에서 프리모 레비를 읽는다※동아시아의 기억의 싸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했던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그의 저작은 증언문학의 고전으로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2월에 내가 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가 출판됐고, 올해 1월에 레비의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모두 돌베개)가 간행됐다.

타계 20년 기념논문집 편자인 루이지 데이 교수가 피렌체 공항까지 마중나와 주었다. 초대면 인사를 교환한 뒤 물어보니 그는 역사와 정치 전문가가 아니라 화학교수라고 했다. 의외의 사실은 아니다. 프리모 레비 자신이 화학자였고, 파시즘류의 비합리적인 열광에 대해 끊임없이 과학적인 합리정신으로 저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에게 남긴 쓰라린 교훈의 하나는 전문가가 자기 전문영역에 갇혀버리는 위험성이다. 사회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방기하고 스스로 기계가 된 전문가(스페셜리스트)들은 자기 지식이나 기술을 얼마든지 반인간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종합적인 인간학’으로서의 인문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데이 교수와 같은 화학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이런 논문집을 자발적으로 편찬한 것 자체를 파탄의 위기에 처한 인문주의를 현대의 상황 속에서 되살리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출판기념회는 프라 안젤리코의 명화 〈수태고지〉가 있는 산 마르코 수도원 옆 피렌체대학 본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강당도 르네상스 이래의 축적된 역사를 느끼게 하는 중후하고 장려한 건축이었다. 대학 총장과 내빈 인사에 이어 데이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해외에서 온 출석자들인 나와 뉴욕 프리모 레비센터 소장 안드레아 피아노를 회의장의 청중에게 소개했다. 피아노는 피렌체 태생의 유대인인데, 아버지는 피렌체에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대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한다.

올핸 ‘홀로코스트의 증언자’ 프리모 레비 타계 20주년이다. 유대인처럼 잔혹한 정치폭력을 경험했던 한국도 ‘과거사 청산’이라는 기억의 싸움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다음 정권에서 크게 정체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정권이 교체돼도 성숙한 민주적 기반까지 뒤엎을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1990년대 초 일 진보세력의 “일본은 쉽사리 우경화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과 닮았다. 10, 20년 뒤, 올해를 “그 시점에서 역사가 역전됐다”고 회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데이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기억의 싸움’의 의의를 강조했다. 프리모 레비를 단지 ‘기억 속’의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기억을 위한’ 존재로 파악하려는 자세가 이번 논문집 제목에도 드러나 있다. 출판기념회의 제2부에서는 1982년 프리모 레비가 이탈리아 시민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의 기록영상이 상영되었다. “강제수용소에서 우리 수인의 인간성은 철저히 파괴당했다. 간수와 친위대 등 수인을 학대하는 쪽의 인간성도 역시 철저히 파괴당했다”고 인터뷰에서 대답하는 레비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생전의 레비를 만난 적이 있는 피아노는 레비가 매우 조심스럽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나치즘이나 홀로코스트에 관한 서적 가운데 소개돼 있는 책들이 극히 적다. 프리모 레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일부 전문연구자를 빼면 거의 없었던 게 현실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근현대사는 식민지 지배, 내전, 군사독재라는 잔혹한 정치폭력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다수는 머나먼 타국의 학살사건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또 “유대인도 수난을 겪었겠지만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비극을 경험했다. 그들의 경험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도 만났다.

한국에서는 참여정권 아래에서 과거 정치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주는 ‘과거사 청산’이 추진됐다. 이것은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인 ‘기억의 싸움’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 다음날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충분했던 ‘과거사 청산’은 이제 크게 정체될 것이다. 우편향의 ‘기억의 싸움’을 추진해온 일본 우파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많은 한국인들한테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한국사회는 과거 군사정권시대와는 달리 크게 변했다. 설령 이명박씨가 승리하더라도 그동안 성숙한 민주적인 기반까지 뒤엎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1990년대 초에 일본 진보세력이 끊임없이 입에 올렸던 “전후 민주주의를 경험한 일본사회는 쉽사리 우경화하지 않을 것이다”는 얘기와 아주 닮았다.

» 서경식 교수
 
피렌체 거리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아직 학생 같은 젊은이들이 브랜드 제품(명품) 가게에 모여 있었다. 확실히 과거 군정시대에는 맛볼 수 없었던 자유와 풍요를 한국인도 맛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 중에 몇명이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전통, 저항운동의 역사, 유대계 시민의 수난에 관심을 갖고 있을까. 내 눈에 그들 모습은 버블(거품) 경제를 구가하던 시대의 일본 젊은이들과 흡사했다.

이렇게 해서 2007년이 지나가고 있다. 내년은 어떤 해가 될까. 지금의 일본이 그러하듯, 10년 뒤 또는 20년 뒤 올해를 “그 시점에서 역사가 역전했다”고 회상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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