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거의 같은 시기에 새 앨범을 낸 밴드 허클베리핀과 노브레인은 인디 음악이 진화할 수 있는 두 갈래 길을 보여준다. 대중성이냐 작품성이냐. 1996년에 결성한 노브레인이 폭넓은 대중성으로 스타 밴드가 되었다면, 1997년에 결성한 허클베리핀은 높은 작품성으로 열광적인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인디 음악 1세대의 대표 주자인 두 밴드의 새 앨범을 통해 인디음악계의 현재를 돌아본다.
‘작품성’으로 압도하거나 ‘대중성’으로 다가가거나
■ 허클베리핀 4집 <환상…나의 환멸>?
허클베리핀의 리더이자 작곡가인 이기용(33)은 평단과 음반 관계자들로부터 최고의 작곡·작사가로 평가받는다. 평론가 박준흠씨는 “신중현, 한대수로부터 시작한 한국 싱어 송 라이터 계보의 현주소”라고 극찬한다.
이번에 발표한 4집 <환상...나의 환멸>은 이미 데뷔 앨범을 능가하는 역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정성으로 기울었던 2, 3집과 달리 록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 현악기를 배제하고 기타와 신디사이저, 드럼과 베이스를 중심으로 짰다. 거의 전곡에 걸쳐 나타나는 기타 리프(짧은 구절이 반복되는 멜로디)는 어려울 것만 같은 허클베리핀의 음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 같은 구실을 한다. 듣다보면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음울하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의 보컬 이소영(30)은 한층 성숙해졌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듯 모를듯한 중성적인 목소리는 타협을 거부하는 허클베리핀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함축적이며 은유적인 노랫말은 여전하다. 국내 밴드로는 드물게 지식인 팬을 몰고다니는 데는 시적인 가사가 큰 몫을 한다. ‘내달리는 사람들’은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밤이 걸어간다’는 홍대 앞의 밤 풍경을 노래한다. “중동지역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억압적인 행위에 분노가 치밀어”(이기용) 만들었다는 ‘낯선 두형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뜻하고, ‘휘파람’은 북녘의 동포들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다.
이기용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기타를 처음 들었다. “세광출판사에서 나온 노래책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25살에야 밴드를 시작했다. 이기용은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오히려 더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디로 살기 위한 ‘물적 토대’를 만들려고 홍대 앞에 ‘빠샤’라는 술집을 냈다.
■ 노브레인 5집 <그것이 젊음>
노브레인의 노래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노랫말은 쉽고 단순하다. 5집 <그것이 젊음>에서는 이런 성격이 더 강해졌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넌 내게 반했어’처럼 쉽고 따라부르기 좋은 노래들이 즐비하다. 타이틀곡인 ‘그것이 젊음’이 대표적이다.
“때론 부딪혀봐, 때론 울어도봐 그것이 젊음, 거침없이 제껴봐/때론 부딪혀봐, 때론 울어도봐 그것이 젊음이기에”
박력있는 리듬과 사운드에 맞춰,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를 따라 하다보면 청중은 행복감에 젖는다. 노브레인이 대형 라이브 공연의 단골 출연자로 인기를 끄는 이유다. 노브레인의 대중성은 이렇게 획득된다. ‘메이크 잇 빅’ ‘컴 온! 컴 온! 마산 스트리트여!’ ‘한밤의 뮤직’ ‘탈옥’ ‘내일로 내일로’ ‘고마워 친구’ 등도 쉽게 친해지는 노래다.
노브레인의 대중성을 ‘변절’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2집까지 함께 활동하며 음악적 리더 구실을 했던 기타리스트 차승우가 탈퇴한 이후, 모든 기성 질서에 저항하는 펑크 밴드의 지향을 잃었다는 비판이다.
밴드 리더 이성우(31)는 당당하다. “그런 얘기 들어도 상관없어요. 펑크 정신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요. 어릴 때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는데, 커서 먹으면 그 맛을 못느끼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계속 바뀌는데, 자신을 속이고 싶지는 않았어요. 기대치에 부응하려고 연기하는 게 싫었죠. 오히려 뒤통수를 치고 싶었어요.”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기대에 역행하려고 하는 노브레인의 이런 반응이 오히려 더 펑크에 가까운 듯하다. 아무튼 노브레인은 “인디 음악에 대한 대중 일반의 이해를 확장시키는데 공헌한 바가 크다”며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가수상’을 탔다. 그들의 노래에 깊이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디 음악계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음악적 지향이나 장르는 다르지만, 허클베리핀과 노브레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홍대 앞’이라는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했던 지난 10여년 동안 인디 음반의 발매량은 10배 가까이 늘었다. 한해 250장 가량의 인디레이블 음반이 쏟아져 나온다. 양이 곧 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지표로 읽힌다.
예나 지금이나 인디의 숙제는 홍보와 유통이다. 1년씩 땀을 흘려 음반을 내놓아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음반업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계’ 문제가 인디에서는 발생한다. 무슨 뾰족한 수가 따로 있으랴. 미디어의 공정한 관심과 귀밝은 청중을 기다릴 수밖에.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환상... 나의 환멸] (2007/Sha Label)
이지환
출처 : <웹진 가슴> 2007/09/27
90년대 이후, 문화가 새로운 것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고 그저 옛것에 대한 주석들에 지나지 않게 된 초라하고도 빈곤한 시대, 그와는 정 반대의 길을 가며 오직 자신에 대한 믿음 한 조각 위에 자기 존재를 완전히 새롭게 세우려는 진지하고 고집 센 한 예술가, 96년 겨울, 자신의 조그만 방안에서 무언가를 파괴하고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이미 했던 것이나 반복하며 하품만 나오게 하는 도식적 표현들과 단호히 결별하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비틀거리던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손바닥만 한 자신의 작은 땅위에 새로운 꿈의 건축물을 지으려는 멋진 청년. 그에게 분노는 한없이 하찮아진 세상에서 자신의 열정을 되찾게 해 주는 강력한(동시에 치명적인) 환상이자 든든한 감정의 방패였다. 밑도 끝도 없이 열광하는 창백한 무리들에서 벗어나 홀로 침잠하길 택한 그, 처음 가졌던 파괴의 분노를 끝까지 잊지 않고 자신을 육성하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기를 벌써 10년. 이제 청년의 시절은 지나가고, 그 옛날 작은 공간에서부터 꿈꾸었던 아름다운 비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다짐한 2007년 늦여름, 자신의 밴드 허클베리핀의 네 번째 음반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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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겨울, 허클베리핀 2집은 (세간의 평가완 달리)나에겐 하나의 충격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 음반을 통해 난 이기용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표면에 불과한 절망의 정서가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도 여전히 간직하게 되는, 그 선명한 무엇의 표현을 향한 치열한 응시임을 알게 되었다. 난 그에게서 저 멀리 위대한 거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하고 있는 거대한 표현의 희망을 보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음악의 윤곽들은 몇 번을 다시 들어도 대부분 뚜렷이 기억나질 않는다는 사실을 난 깨달았다. 얼마 후 ‘웹진 가슴’에 기고한 이기용 본인의 글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고(아마 이즈음부터 ‘가슴’과 나의 인연은 시작 되었던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언급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의 윤곽. 그것을 채우고 있는 무늬들, 희미하고 엷은 무늬들”이란 말을 곱씹었다. 이는 신기하게도 글을 읽던 당시, 내가 홀로 구상하던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 말이었기에 더욱 큰 울림을 가졌는데, 허클베리핀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 어떤 풀리지 않는 매듭은 이 때 비로소 풀리게 된다.
베일과 분칠을 벗겨버린 그 알맹이만을 가지고 과연 어떻게, 어디까지 자신을 전개시켜 나갈 수 있을지, 난 그가 예술가로서의 위엄을 한껏 드러내는 그 의연함과 대범함이 무척이나 멋지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비평적 풍토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영원한 오해로 남기 십상인 이곳에서 얼마나 자신을 실현시킬지, 매우 궁금했다. 간드러지는 가사 하나 없고 유행하는 스타일의 차용 없이 오직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 하나만으로 부단한 음악적 담금질을 하던 허클베리핀은, 종종 또렷하고 선명한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뭉개진 회색 선을 그려 넣곤 했다. 이기용은 ‘선명’하게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들려고 작정하는 듯 했고, 이 모순된 방식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묵직하고, 거칠고, 생생하게 살아남으며 자기만의 자율적인 진행 원리와 정서적 효과를 찾아 나가는 허클베리핀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난 이기용 음악의 자기 전개과정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진검승부는 언제나 승패에 관계없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음악의 스타일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려는 야심찬 음악가이다. 오직 내적인 힘만으로 지탱되어 외양이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되는 음악. 그 어떤 가이드라인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음악. 그래서 그는 구태여 에두르지 않는 정공법을 택한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가락과 리듬을 가지고, 자신이 겨냥하는 심리적 진실, 그 정중앙을 단숨에 잡아내려 한다. 결국 ‘멀리서 선명히 보이는 그림의 윤곽’이란 말은 가슴으로 음악을 하기위한 이기용의 음악적 방법론이자 자신을 긴장시키는 그만의 독특한 알레고리의 표현이지 않았나 싶다. 그는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음악을 하게 되는 순간, 음악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 당당히 밝히기도 하는데, 이것은 이제 청자들에게도 거꾸로 적용되는 말이 된다. 평자들은 그동안 고리타분한 스타일 분석 비평을 통해 허클베리핀 표면의 허울 정도야 붙잡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 4집은 그 부스러기조차도 붙잡을 것이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허클베리핀 음악에 가슴으로 적극 동참할 수 없다면, 이들의 음악적 매력을 조금이나마 감득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허클베리핀 4집엔 따뜻한 태양빛을 쬐고 있는 문학적인 도마뱀 같은, 성숙한 종합을 이룬 한 예술가의 인간적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들은 밤에만 해왔던 지상에의 요구를 낮의 모습 앞에서도 당당히 드러내기도 한다. 비틀즈의 [Abbey Road]음반을 연상케 하는 복고적 사운드 편성도 눈에 띄며, 전체적으론 정통 록에 기반을 둔 간결하고 직선적이면서도 다층적인 악곡 구조를 지닌다. 4집은 허클베리핀 작품 중에서 가장 밝은 태양 빛에 의해 건조된,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작품이다. 그 안에서 이기용은 불이 붙을 듯 바싹 마른 톤으로 내면에 응축된 에너지를 뽑아내는 멋진 기타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며, 사운드의 공간을 폭넓게 활용하는 음악 장인다운 노련함을 통해, 자신의 자아마저 훌쩍 뛰어넘는 경이로운 순간을 온전히 담아내기도 한다.
강약의 리듬을 탄력적으로 교환하며, 시원스레 내뻗는 기타와 보컬의 정서적 교감, 그것이 빚어내는 묘한 긴장을 멀리 공명시키는 <밤이 걸어간다><오나비야><죽은 자의 밤>,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늘한 서정이 끝 모르며 굴곡을 이루는 <60‘s><환상환멸><휘파람>, 재치 있는 편곡과 담백한 사운드가 드넓은 멜랑콜리의 바다를 암시하는 <푸른 수평선><알바트로스>,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활성화 시키며 들끓는 아나키의 세포들을 마구 두들겨 깨우는 <그들이 온다><내달리는 사람들><낯선 두 형제>. 이렇게 이기용은 자신의 꿈과 도취의 환희, 열정, 그리고 서늘한 환멸의 기억들을 하나도 버릴 것 없는 11곡 안에 빼곡히 채운다.
그는 이제 자신의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동안 정면으로 마주하길 꺼려 저 멀리 지나가 버린 듯 했던 청년 시절의 진한 절망의 기억과, 그 속에서 건진 아름다웠던 비전들을 다시금 불러내, 현재 자신의 거울 속 이미지들과 냉정히 비추어본다<환상환멸>. 그 속에서, 자기 그림자들의 배후를 보기 시작하며 또 하나의 새로운 현실과 마주친다. 비틀즈 다큐멘터리를 본 후 영감을 받아 만든 <60'>에서, 젊은 날 그 거인들과 함께 꿈꾸었던 영원한 비전들은 따뜻한 온기를 얻는다. 끝 모를 듯 막연했던 감정들은 빛나는 서광을 받아 하나의 특색 있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푸른 수평선>은 따뜻한 태양이 내리쬐는 유토피아를 열광적으로 쫒는 현재의 환상을 위트 있게 표현하면서도, 그의 내면은 여전히 서늘한 환멸의 바다라는 암시를 던져준다. 2:40초 부터 시작되는,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충만한 힘과 긴장을 선사 하는, 지금까지 결코 들어본 적 없는 가락으로 순간적인 섬광처럼 번뜩이는 기타 연주. 그 어떤 음악적 도취의 상태에서 흘러나왔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상을 불허하는 진행. 이 지속적이고 강렬한 쾌락과 활력을 가져다주는 힘의 획득을 통해 그의 자아는 더 큰 다양성과 능동성을 드러내며 갑작스런 도약을 한다. 이렇듯 이기용은 음반 곳곳에 자신의 자아마저도 훌쩍 뛰어넘는 경이로운 성숙의 순간을 예리하게 잡아낸다. 그는 날고 있으면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기용이 음악을 통해 분출하고자 하는 두 가지 주된 열망, 선명한 시적 정적의 환희와 생생한 힘의 역동성은 <밤이 걸어온다><오나비야><죽은 자의 밤>에서 성숙한 종합을 이룬다. 강한 리듬 섹션을 중심으로 율동적인 생동감, 위풍당당한 단순함을 구현하는 이 순도 100%의 열정은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음들의 연결고리에 심혈을 기울이며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듣는 이를 압도한다. 허클베리핀이 붙잡으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환희와 비애, 희망과 공포, 희열과 절망 사이를 쉴새없이 진동하는 동적인 고요이며, 그 속에 깃든, 굴복하길 거부하는 그 어떤 심리적 확실성이다.
<그들이 온다>의 속편격인 <내달리는 사람들>에서 이기용은, 온 대기를 부유하며 떠도는 역사 속 거인들의 영혼을 불러 모으는 흑마술사의 섬찟한 목소리로 새로운 세상의 조짐, 그 복음을 동지들에게 타전한다(<그들이 온다>의 2분12초 에서부터 시작되는, 노이즈 속에 숨겨진 나레이션에도 함께 귀 기울여 보라!). 그들이 돌아온 후,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노예의 고통이 자신들의 고통이었음을 깨닫고는 비로소, 시간의 얼음장을 깨고, 스스로 일어난다. 이제 그들과 함께하는 우리는 더 이상 도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린 새로이 실재하는 저만치의 세상을 향해, 함께 내달리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형상의 왕국은 이렇게 건설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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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음반은 처음 들었을 때 그 어떤 시원한 청량감마저 느껴졌을 정도로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투명하고 직선적이었다.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그저 마음을 열어놓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뿐이지만, 음악을 분석적으로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미궁으로 남을 만한, 허클베리핀 제 2기를 세상에 알리는 걸작이다. 또한 음악적으로 약간은 혼재된 듯했던 이기용의 개인 프로젝트 스왈로우와의 음악적 영역 구분에 대한 정리도 끝나면서, 허클베리핀은 더욱 강한 집중력을 갖게 되었다.
이전 허클베리핀 작품들에선 특유의 절제된 표현과 탐미적 성향이 혼재되어 있었다. 난 그가 표현에 대한 강렬한 예술가적 열망이 그 어떤 심리적 리얼리티에의 완고한 집착 때문에 자신의 상상력을 제한하곤 했다고 느꼈는데, 이기용에겐 자신의 음악이 윤리적·실천적 함축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낭만적인 취향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빠져드는 것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 경계가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난 탐미적 성향으로 음악적 중심을 마음 놓고 잡아본 스왈로우 1집을 내심 음반 전체의 완성도로 볼 때 이기용의 최고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허클베리핀 4집 음반을 통해 탐미와 리얼리티 양자 간의 성숙한 통합이 이루어 졌으며, 그들 음악은 새로운 항해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기용은, 자신의 자유로운 탐미 성향을 스왈로우 활동을 통하여 더욱 자유로이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가 황홀한 환상의 혼란, 그 인간의 근원적인 혼돈에 마음 놓고 뛰어들길 바란다. 그는 그곳에서 굉장한 어떤 것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괴물 같은 예술가이다. 이제 그는 이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이기용은 환상과 환멸을 거듭하며 자신을 숙성시키는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을 음악 안에 정교히 아로새겨왔다. 그의 음악이 전개해 가는 과정은 정신의 자기전개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지칠 줄 모르는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 그 항해의 끝에 도달하게 될 새 세상이, 나는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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