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비교한국학회에서 2월 14일 <증언으로서의 문학과 문화예술>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저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증인들이다: 12.3 친위쿠데타 이후 증언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게 됐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대회 주최 측에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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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윤석열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려는 황당한 시도를 한 바 있죠.



https://v.daum.net/v/20250109161004869


https://v.daum.net/v/20250110205844948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파동은, 제 생각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진화위)의 문제와 동일한 구조를 지닌 문제라고 봅니다.


 두 기관 모두 본질적으로는 인권의 가치에 기반을 둔 정부 기관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두 기관의 조직 구성은 전혀 인권의 가치에 


기반을 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요컨대 두 기관은 다른 정부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상명하달식의 조직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관장 및 상임위원들의 결정에 기관 전체의 의사가 종속될 수밖에 없죠. 기관장에 이상한 놈들이 임명되면 


기관 전체가 그 구성원 다수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끌려가게 되어 있는 것이죠.  




민주주의의 지속성을 위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조직의 민주화입니다. 운동이 지속되려면 항상 조직이 필요하고, 


혁명은 언젠가 국가 조직으로 이동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조직이 관료적인 논리로만 작동하게 되면 그 혁명은 조만간 타락하게 마련이고, 


운동은 어느새 타성을 넘어서 운동의 적으로 전환되죠. 막스 베버(와 그의 제자들)만큼 이 문제를 잘 지적한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인권위 문제와 진화위 문제는, 특히 그것이 인권의 가치에 기반을 둔 정부 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의 민주화라는 쟁점을 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조직의 민주화의 핵심 측면 중 하나는 <대표/재현>(representation)의 문제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진보 연구자들이 


<대표/재현>의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대표/재현>이라는 문제는, 진보적인 의제와 상관이 없다는 듯한 생각이 


문제겠죠. 커먼즈의 문제가 <대표/재현>의 문제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가야트리 스피박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제기한 핵심 쟁점 중 하나도 바로 representation의 문제였죠. 그것은 당연합니다. 


서발턴의 문제는 곧 말할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말을 해도 들릴 수 있는 통로를 갖지 못한 이들, 따라서 그 정체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거든요. representation은 곧 말할 수 없는 이들의 정체성과 주체성의 문제인 것이죠. 서발턴은 특정한 집단들이나 개인들의 명칭이


아니라, 서발턴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 일반, 또는 생명체들 일반의 문제예요. 그런 점에서도 representation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핵심 쟁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점들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인권위나 진화위 같은 기관을 말하자면 <대항 기관 counter-institution>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국가 안에서 <대항 국가>를 구성하고 확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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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개미 2025-02-0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발턴에 대해서 흥미롭게 생각하고 알아보려고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쓴 책 <애도에 애도를 위하여>에 나와있던 부분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스피박의 서발턴 이론에 대해 설명이 잘된 책 몇권 추천해 주실수 있을까요.

그나저나 <을의 민주주의> 2권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ㅋ

balmas 2025-02-0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피박 서발턴 이론에 관해서는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온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 수록된 스피박에 관한 논문들이 제일 좋을 겁니다.^^ 김택현 선생의 [트리컨티넨탈리즘과 역사](울력, 2012)도 서발턴 이론과 역사학을 이해하는 데 필독서죠.
그리고 존 베벌리의 [하위주체성과 재현](그린비, 2013) 가운데 4장이 서발턴 논의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개미개미 2025-02-0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제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공동으로 번역한 루이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이 공동 저술한 


[자본을 읽자]가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초판이 출간된 것이 1965년이니까 무려 60년만에 국내에 완역본이 소개된 셈입니다. 60년 세월을 건너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읽히고 새로운 문제화를 촉발하는 역량을 지닌 이 책을 마침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무척 감회가 깊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려고 계획한지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작업이 지지부진해서 


출판사와 다른 번역자들, 독자들에게 무척 죄송했는데, 다른 번역자들, 특히 배세진 선생의 


열정과 노고 덕분에 이 책의 번역을 끝낼 수 있게 됐습니다. 공역자 선생님들의 노력과 열정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외국에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연구와 토론의 촉매로서 작용하고 있고, 


특히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젊은 연구자들의 주목할 만한 작업의 지적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이 책이 국내에서도 새로운 독자들의 관심과 열정, 도전을 자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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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janya 2025-01-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한다는 소식을 어언 10년 전 쯤 들었던 것 같은데 마침내 나오게 됐네요. 책 잘 보겠습니다!

balmas 2025-01-1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진작에 출간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서 출판사와 독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에쿠우스 2025-01-21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번역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번역자 선생님들의 지적 작업 덕분에 늘 큰 도움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balmas 2025-01-2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 즐거운 독서하시길 바랍니다.
 

윤석열, 한덕수, 이재명: 탄핵 정국에 대한 몇 가지 단상 (5)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3주 정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역사의 한 복판에 있다 보니 3주가 마치 3달도 더 된 것처럼 느껴지네요.

 

1214일 국회에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속전속결로 탄핵 심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한덕수최상목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를 볼모로 삼은 내란세력의 끈질긴 저항이 있었고, 공수처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역시 경호처의 완강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마치 한남동 관저를 최후의 요새로 삼아서 내란 세력의 최종적인 결사 항전이 전개되는 듯한 양상이죠. 그 와중에 공수처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탄핵 과정이 보여주는 것: 냉전 극우 세력의 뿌리 깊은 현존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 우리의 물질적 헌정에 냉전 극우 세력이 참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구나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명백히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윤석열 일당의 내란 시도에 대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주류가 단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것이 지난 2016~17년 탄핵 정국과의 일차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현재와 비교하면 훨씬 약소한(?)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 있는 박근혜에 대하여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과반 세력이 단절을 시도한 바 있고, 또 대부분은 박근혜의 잘못에 대해 사죄를 한 바 있죠.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 아래,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1640여 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남동 관저로 몰려간 데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윤석열을 방어하고 옹호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탄핵 판결이 나온 뒤에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마치 주군을 떠받드는 봉건 영주들이라도 되는 양 윤석열을 결사 옹위할 태세를 보이고 있죠.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헌정을 파괴하는 윤석열 일당의 내란 행위까지 정당성을 부여하고 옹호하는 형국이죠. 이런 내란 옹호 정당이 과연 국고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 받을 가치가 있는지, 마땅히 해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탄핵 판결 이후 엄정히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 더 나아가 한덕수, 최상목 권한대행의 행태에서 보듯이, 행정부 자체가 윤석열 내란 세력에 자발적인 볼모가 되어 내란 세력에 대한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수동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것 역시 지난 8년 전의 탄핵 정국과 뚜렷이 대비가 되는 모습입니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은, 이후의 행태가 보여주듯 그 스스로 냉전 극우 세력의 일원이었음에도 박근혜의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저항을 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심각한 범죄 행위이자 반헌법적 행위와 연루되어 있는 윤석열 일당에 수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행정부 자체가 스스로 내란의 동조 세력이라는 점을 자인하고 있는 형국이죠. 역시 차후에 행정부 각료들을 비롯한 관료들에 대하여 내란 공범 여부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위법 사항에 대해 엄중한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겁니다.

 

셋째,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른바 아스팔트 극우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옹호 세력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죠. 2016~17년 탄핵 정국에서 우익 대중은 박근혜와 일찌감치 단절을 한 바 있고, 그 덕분에 수사 및 탄핵 심판이 어렵지 않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정권을 상실하고 난 이후 흔히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극우 대중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가 되었고, 그 주요 변곡점을 이룬 것이 이른바 조국 사태였죠. 조국 사태를 경과하면서 태극기 부대는 촛불 시위대와 대등한 규모의 대중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 대중 운동 세력 및 그 이념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뉴라이트 세력이 정부의 주요 기관으로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뉴라이트 세력이 윤석열 정부에서 역사 및 신문방송과 관련된 주요 기관장을 장악했다는 점이죠.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등을 비롯 무려 25개의 역사 기관에 뉴라이트가 포진해 있죠. (경향신문 기사 참조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14573?cds=news_edit) 이것은 윤석열 정권과 뉴라이트의 관계가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뉴라이트가 역사 기관들을 장악한 것 역시 의도적인 것이죠. 지난 번에도 말한 바와 같이 2025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해입니다. 1905년의 을사늑약, 1945년 해방, 1965년 한일협정이 대표적인 것이고, 또한 뉴라이트에게는 무엇보다 뉴라이트의 국부라고 할 만한 이승만 출생 150주년(1875년 생)이라는 점이 중요하겠죠. 윤석열 정권이 건재하게 유지되었다면, 뉴라이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들이 중첩되어 있는 2025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역사 다시 쓰기 작업을 진행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상당수의 뉴라이트 인사들은 윤석열의 무모한 친위쿠데타에 대해 깊이 탄식했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올해가 뉴라이트 역사 다시 쓰기의 신기원이 될 수 있었을 텐데 ... 하고 말이죠.

 

아무튼 이 세 가지 측면을 미뤄볼 때, 냉전 극우 세력은 이제는 지나간 한국 현대사의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놀랍게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 뚜렷이 드러나죠. 탄핵 정국에 대한 고찰과 평가, 대응은 이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탄핵 과정의 긍정적 측면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런 측면들을 확인하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 잘됐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윤석열이 저렇게 무모하고 난폭한 친위쿠데타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한국 군대 내에 저렇게 뿌리 깊은 냉전 극우 세력이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시민들이 깨닫지 못했겠죠. 이번 친위쿠데타 모의 및 전개 과정이 하나씩 밝혀질수록, 그리고 심지어 북한을 자극해서 남북 간의 전쟁을 유도하려고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고 있는 만큼,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진짜 위협은 북한보다는 바로 저 냉전 극우 세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많은 시민들, 특히 청년 시민들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윤석열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친위 쿠데타 시도가 가져다 준 뜻하지 않은 소득인 셈입니다.

 

국민의힘은 어떤가요? 저들이 만약 2016~17년처럼 윤석열 일당과 곧바로 단절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면서 새로 거듭나겠다고 하소연했다면, 저들을 때로는 극우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는 정상적인우익 정당 세력이라고 간주하게 되었겠죠. 저들이 뻔뻔하게 극우적인 세력일 뿐만 아니라, 더 나쁜 것은, 저들이 무언가 공공의 이익 같은 것,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나 국민 전체의 행복 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채로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만 골몰해서 어떠한 궤변이나 만행도 서슴지 않는 세력이라는 것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겠죠. 더욱이 겉으로는 개혁적인 척 떠들고 다니던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들의 본색이 무엇인지도 잘 드러나지 못했겠죠.

그리고 한덕수와 최상목을 비롯한 행정부 내의 냉전 극우 세력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수동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윤석열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행정부 관료들을 그냥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그들이 지금도 저렇게 뻔뻔하게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주고 있는 덕분에, 관료들의 영혼은 냉전 극우 사상으로 오염돼 있다는 사실을 아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문수 같은 특정한 이들만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 것이죠. 아니, 김문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수라는 것을 알게 됐죠.

 

한덕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0여 년 동안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고위 공직자를 맡아온 전력이 말해주듯이 한덕수는 개인적인 능력과 별개로 한국 엘리트 집단의 기회주의 및 보신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만큼 닳고 닳은 처세술을 발휘한 인물인 만큼, 저는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후에도 특유한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궁지에 몰린 윤석열의 노선을 따르기보다는, 적어도 헌법 재판관의 임명에는 찬성함으로써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의 대세를 따를 것으로 보았던 것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덕수는 이번에는 지조 있게(?) 내란수괴 윤석열 및 국민의힘의 노선을 꿋꿋하게 견지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결과 사상초유의 권한대행 탄핵의 대상이 되었으며 윤석열 내란사건의 주요 피의자 중 한 명으로 수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최상목은 훨씬 더 졸렬하면서도 기회주의적이라고 할까요? 3명의 헌법재판관 중 2명만을 임명한 것은 참으로 졸렬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들이 내란 사태에 직면해서도 이처럼 뻔뻔하고 졸렬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이들이 얼마나 속속들이 극우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었겠죠.

 

또한 아주 중요한 점이지만, 윤석열의 무모한 쿠데타 시도가 초기에 무력화되고 그 결과 냉전 극우 세력의 핵심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안 권력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경호처의 완강한 저항에서 우리는 소수의 물리력만 가지고서도 내란 세력이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똑똑히 봤습니다. 만약 내란 세력이 검찰이나 경찰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면, 아울러 군대의 물리력까지 동원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123일 운명의 계엄 선포 당일날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의 발빠른 대응 덕분에 국회에서 계엄해제 의결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결국 12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계엄 당일 열 일 제쳐놓고 한밤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과 의원 보좌관들, 국회 직원들의 헌신적인 투쟁, 추운 날씨에도 탄핵 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 남태령 대첩을 거둔 농민들과 청년들의 아름다운 연대 투쟁, 한남동 관저 앞에서 전개된 담요 시위 등과 같은 민중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쨌든 그리하여 조기에 군대와 검찰, 경찰 등과 같은 공안 권력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정정으로서 윤석열 탄핵

 

하지만 제일 중요한 소득은, 윤석열 일당 및 그들을 추종하는 내란동조 세력의 완강한 저항 덕분에 우리가 2016~17년 탄핵 정국과 현재의 탄핵 정국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현재의 탄핵 정국은 2016~17년 박근혜 탄핵 정국에 대한 비판이자 정정, 만회의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16~17년 탄핵 정국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승리감에 도취해서 촛불혁명이니 촛불시민혁명이니 하는 아름다운 수사법으로 자화자찬하기에 바빴죠. 저는 한 번도 이런 표현들에 동의한 적이 없고, 이런 표현들을 쓸 경우에는 항상 중립적인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 인용 부호를 붙여서 사용했지만(서문,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참조), 당시에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언론과 지식인들, 특히 진보적인 지식인들조차 너무 쉽게 촛불시위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촛불시위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간주했죠.

 

하지만 이번 탄핵 정국은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정체를 더 정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우리의 승리로 간주되었지만, 사실 그때의 우리는 여러 소수자들을 배제한 가운데 성립한 우리였죠.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했겠지만, 그 당시의 촛불 무대에서 소수자들이 발언권을 얻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발언권을 얻는다고 해도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그것이 비정규노동자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이든 장애인이든 간에)을 드러내려고 하면 곧바로 야유를 받거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것을 강요받았죠. 일단 탄핵을 하고, 일단 민주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저런 소수자들의 과제는 나중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해결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박근혜 탄핵 이후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7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광주민주화운동과 촛불집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주권의 시대를 여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말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 = ‘촛불시민혁명’ = 문재인 정부 = ‘국민주권의 시대라는 등식이 성립한 셈이었죠. 긍정적으로 이해해준다면, 이는 문재인 정부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징되는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하여 이를 국민주권이라는 형태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5년에 대한 평가는 그 스스로 윤석열 집권으로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시에도 많은 그의 팬들은 그가 마치 성군이라도 되는 양 달님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치켜세우기에 바빴지만, 윤석열이 집권한 이후에도 눈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문구로 윤석열 정권을 비난하면서 마치 문재인 정권 시절이 대단한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회고적인 착각에 빠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윤석열 탄핵의 쟁점이 다시 문재인 정권 시절로 복귀하는 것, 또는 민주당 집권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쉽다는 점이죠. 여기에 이재명 씨의 사법 리스크를 구실로 하여 극우파 세력이 이재명 공격에 집중하고 있어서, 탄핵 정국의 쟁점이 윤석열 체포 대 수호에서 이재명 저지 대 옹호라는 것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아스팔트 극우 세력의 수뇌 역할을 하고 있는 전광훈 목사가 111일 오늘 한 발언은 이점에서 볼 때 시사적입니다.

 

https://v.daum.net/v/20250110175000133

 

1987년 민주화 이후 개헌이 이루어졌고, 그 이후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연속 당선, 그리고 2016~17년 박근혜 탄핵 및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 민주화 세력의 성장과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80년 동안 한국의 헌정,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질적 헌정의 지배자가 극우 냉전 세력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극우 냉전 세력이 디자인하고 제도화한 물질적 헌정 질서 역시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2016~2017년의 이른바 촛불혁명의 정치적 대표를 자임하고 나선 문재인 정권이 불과 5년만에 허망하게도, 탄핵을 당한 세력과 결합한 윤석열에게 정권을 내주고 무너진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권이 무능력했음을 말해주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극우 냉전 세력이 얼마나 견고하고 뿌리 깊게 확산돼 있는지 뚜렷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탄핵 정국의 마지막 고비가 될 윤석열 체포가 임박해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탄핵 이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것이 다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 정국을 박근혜 탄핵 정국의 반복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후의 전망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가지고 현재의 탄핵 정국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지난 번 올린 글에서 저는 최대주의 개헌이야말로 윤석열 탄핵 정국을 한국 사회 전환으로 이끌어갈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빠르면 2, 늦어도 3월이면 탄핵 판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선 역시 4~5월 경에 치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극우파 세력의 집중된 비토와 이재명 씨 본인의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차기 대전에서는 이재명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문제는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고 해도 그것이 후련한 승리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것이고, 그것은 대선 이후 이재명 씨와 민주당의 정치적 행보를 상당히 제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말은, 자칫 잘못 하면 이재명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반복으로 끝날 확률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윤석열 탄핵이 박근혜 탄색의 반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재명 정권이 문재인 정권의 반복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반복이 아닌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당 핵심 지지 세력이 생각하는 것처럼, 필사적인 이재명 수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문재인 정권 당시에도, 그리고 조국 사태 당시에도 민주당 지지 세력은 필사적인 민주당 지지로 일관했죠. 그럼에도 결국 윤석열 집권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는데, 이번에도 필사적인 이재명 지지로 일관한다면, 2022년과 다르지 않은 결과로 귀착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재명 씨나 민주당에게, 차기 정부는 최대주의 개헌을 위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재명 씨는 5년의 임기를 채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임기 단축을 각오한 가운데, 해방 80년을 맞은 한국 사회 대전환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최대주의 개헌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최대한 실행하는 길만이 이재명 씨 본인이 사는 길이고, 민주당이 한국 헌정의 주도적인 정당으로 혁신하는 길입니다.

 

해방 8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의 헌정은 1987년 민주화를 변곡점으로 단절을 겪은 바 있습니다.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은 오늘날 보더라도 혁신적이고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었음에도 1987년 민주화 개헌이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의 헌정은 연속적인 독재로 왜곡되고 굴절된 헌정으로 남아 있었죠. 1987년 이후 민주주의적인 헌정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이후 40여 년이 지난 동안 1987년의 미완의 개헌이 남긴 문제점들에 더하여 새로운 문제점들이 누적되면서 더는 개헌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다중적인 재난들을 무시하고 근본적인 개헌과 체제 전환 작업을 미룰수록 한국 사회는 더 큰 파열과 붕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근본적인 체제 전환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길만이 윤석열 탄핵을 박근혜 탄핵의 되풀이로 만들지 않고, 이재명 정권을 문재인 정권의 반복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제 경고를 무시하지 말기 바랍니다.

 

최대주의 개헌이란 무엇인가? 몇 가지 해명

 

이 글은 사실 며칠 전에 비밀 댓글로 저에게 질문을 해주신 분께 답변을 달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제 그 분의 질문에 대해 몇 가지 답글을 하면서 제 글의 결론적인 논점을 제시해보겠습니다.

 

그 분은 제가 지난번에 올린 해방 80,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하여: 최대주의 개헌을 시도하자”(https://blog.aladin.co.kr/balmas/16061111#C4186060)라는 글에 대해 몇 가지 유익한 질문을 제기해주셨습니다.

 

우선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서 제가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하셨습니다.

 

그것은 (1) ‘개헌=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식의 통상적인 인식이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개헌에 관한 언급이 나올 때면 늘, 마치 '권력구조' 문제가 개헌의 전부라도 되는 양, 정치권과 언론에서 개헌 논의에 관한 프레임을 만들어왔죠. 심지어 내로라하는 진보 논객들 역시 개헌의 문제를 권력 구조 개편으로 보는 이런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더욱이 이때의 권력구조 문제는 늘 두 가지 양자택일의 문제로 제시되죠. 요컨대 <대통령 중임제냐 의원내각제냐> 하는 권력구조의 양자택일 프레임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된 결과, 지금은 진보적인 학자나 언론인 또는 시민들도 "개헌"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대통령중임제냐 의원내각제냐 하는 권력구조 양자택일을 떠올리게 됐죠. 저는 "최대주의 개헌운동"이 잘 제기되고 성공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런 프레임을 깨뜨리는 게 제일 중요한 쟁점 중 하나라고 봅니다.

 

(2) 또한 이것은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현재의 시점에서 개헌론을 제기하고, 더욱이 권력구조 프레임을 통해 그런 논의를 제기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현재 개헌론을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이라는 프레임에 따라 제기하는 세력은 두 군데라고 봅니다. 하나는 국민의힘 친윤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체가 불분명한 재야 원로들인데, 이 후자가 독자적인 세력을 함축하는지 아니면 일종의 호사가의 관심 끌기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독자적인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문제는 국민의 힘 친윤 세력이 의도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 프레임에 따라 개헌론을 제기하는 것이겠죠. 그 의도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탄핵과 내란수사라는 난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12.14 국회 탄핵소추 의결 이후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특별한 우여곡절 없이 탄핵심판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덕수, 최상목 등에서 보듯이 윤석열 일당은 행정부를 볼모로 삼아 집요한 저항을 시도하고 있죠. 그리고 한남동 관저에서 있었던 체포영장 집행 불발에서 알 수 있듯이 경호처를 호위대로 하여 일종의 배수진을 친 채 관저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섣불리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을 제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3)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력구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개헌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권력구조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이때 제가 염두에 둔 권력구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제기되어온 프레임에서 말하는 권력구조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언젠가는 헌법 및 물질적 헌정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권력구조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 본격적으로 토론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제가 제기하는 최대주의 개헌의 4가지 쟁점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권력 구조 개편의 효과를 산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만, 개헌을 추진할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힘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의도한 대로 제대로 전개되겠느냐,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산출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죠.

 

우선 충분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힘이 무엇인가 한 번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예컨대 국회의 의석을 가리킨다면, 분명 최대주의 개헌을 제안하는 저에게는 그런 힘이 없고요, 아마 민주당에서 저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볼 수 있겠죠.

 

다만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힘이라는 것을 국회 의석수로 한정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사회운동의 힘이라고 본다면, 저는 우리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고, 앞으로 그 힘은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최대주의 개헌을 운동의 측면에서 제안했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최대주의 개헌은 운동의 측면에서 사고할 때 올바르게 사고될 수 있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운동의 측면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는 몇 가지 논점이 담겨 있습니다.

 

(1) 저는 최대주의 개헌을 얼마 전부터 사회운동에서 제기하는 체제전환운동의 한 요소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 말은, “최대주의 개헌이 목표로 하는 것은 텍스트로서의 헌법을 개정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뜻이죠. 텍스트의 헌법을 최대한 많이 개정하는 것, 거의 제헌에 가까운 수준으로 개정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본질적인 것은 텍스트로서의 헌법의 토대이자 그 산물이기도 한 물질적 헌정 질서를 개조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체제전환을 뜻하겠죠. “최대주의 개헌은 물질적 헌정을 최대한 개조하는 작업, 그 체제를 전환하는 작업과 함께 진행될 때 자신의 충분한 의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최대주의 개헌은 운동으로서 전개될 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개헌 작업이 좁은 의미에서의 국회만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개헌은 본질적으로 위로부터의 개헌이었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1987년의 개헌은, 사실 어떻게 개헌이 이루어졌는지 자세한 내막과 진행과정에 대한 관련 문서 하나 남아 있는 게 없는, 전형적인 밀실 타협의 산물이죠. 역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여기에는 분명히 당시 야당이나 재야 세력이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배경이 존재합니다. 곧 임시로 대강 개헌을 해놓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본격적인 개헌 작업을 진행하자는 합의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알다시피 1987년 선거에서 야당은 패배했고, 결국 염두에 두었던 민주화 개헌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그것을 미루고 미뤄서 이제 4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로 맞이한 이 절호의 기회에 다시 개헌을 미뤄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죠. 그것은 민주당 입장에서 봐도 지난 40년의 민주화운동의 약속에 대한 배반입니다.

 

개헌 작업은 최대 다수의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고 상상하고 참여하는 개헌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헌법에 대한 시민들 전체의 학습 과정이 되어야 하고, 최대 다수의 시민들이 헌법의 저자로 스스로 참여하는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왜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지, 어떤 조항들을 어떻게 개정해야 하는지 등은 전문가들의 밀실 토론과 합의에 그쳐서는 안 되고, 말 그대로 최대 다수의 시민들의 숙의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헌법 및 물질적 헌정 속에 얼마나 냉전 극우세력의 이해관계가 담겨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이번 친위쿠데타로 터져나오게 되었는지도 분명히 시민들 스스로 학습을 해야 합니다. 그 경우에만 개헌 작업이 운동으로서의 충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집단적 학습 과정이 될 경우에만 최대주의 개헌은 동시에 진정한 정치적 주체화의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3) 따라서 운동으로서의 최대주의 개헌은 말 그대로 아래로부터의 개헌 운동이 되어야죠. 최대주의 개헌은 사회운동의 열망을 표현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다중재난의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약소자들의 바람과 희망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 헌법 및 물질적 헌정 질서를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지, 그것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최대 다수의 을들이 스스로의 몫을 주장하고 나설 때, 자신들의 몫을 헌법 속에, 물질적 헌정 속에 기입하겠다고 주장할 때 비로소 그 내용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개의 실존하지 않는 유령들의 목소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지난 80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국가폭력 및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수백 만 명의 유령들의 목소리입니다. 희생자를 무참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유령들의 목소리조차 입틀막하기 위해 지난 80년 동안 정치, 군사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보수 기독교 및 언론과 학술 세력을 포함한 냉전 극우세력은 한국의 물질적 헌정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축하고 재생산해왔죠. 그것을 깨뜨리고 새로운 헌법 및 헌정 질서를 세우려면, 그들이 두 번 죽인 국가폭력과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것을 기입하려고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유령은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대의 유령입니다. 우리는 국가폭력과 사회적 폭력을 비판하고 그 희생자들을 애도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대에 대하여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수한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특히 생태적 재난은 현실의 재난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재난이기도 한데, 미래 세대는 자신들로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축적된 구조적 재난을 물려받은 가운데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할 세대입니다. 그 세대들의 아직 실존하지 않는 고통과 열망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상상력과 책임을 발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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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김어준 씨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서 다음과 같은 음모론을 설파했다고 합니다. 



https://v.daum.net/v/20241213123901080


https://v.daum.net/v/20241213130754645




저는 김어준 씨를 예전부터 매우 조심해야 할 사람이라고 보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 위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김어준 씨는 

양날의 칼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생각과 발언들은 


1) 한편으로는 한국의 물질적 헌정에서 수구냉전세력이 힘이 여전히 지배적으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2) 하지만 동시에 한국 정치의 수준을 냉전 독재 시절로 끊임없이 회귀시키는 측면도 있죠. 김어준 식의 정치는 늘 그랬어요. 민주당과 국민의힘(또는 그 이전의 수구정당들) 사이의 대립을 뚜렷한 선과 악의 대결로 구조화함으로써, 그 이외의 정치적 대안을 차단하는 효과를 산출했죠. 


그의 음모론에 말려들면, 오직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만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음모론과 종말론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김어준 씨 자체가 냉전수구세력과 적대적 

상호공존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김어준 씨 같은 비합리적인 음모론/종말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더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역사와 구조, 그리고 현재의 정세를 면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 적극적인 대안들도 사고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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