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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얼어 눈꽃으로 피어난 소백산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블로그의 간판사진으로 내걸어 놓은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그 「고사관수도」를 한 번 보시라. 살아오면서 저토록 무심히 한 곳을 응시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일상의 분주함을 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하는 삶, 이것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유유자적 할 수 있는 자연이란 어쩌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본 자연은 늘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만 인간에게 먹을 거리를 주고, 인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는 것 같다. 내가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들의 주요 여행목적이기도 했던 사과따기 체험을 하러 들른 사과밭을 돌아보면서 든 생각이다. 사람들은 가끔 너무 쉽게 전원생활을 이야기하고 시골생활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갖고 있는 자들의 허영심의 또다른 표현은 아닐까.

월요일 아침, 굽이굽이 휘어진 가파른 길을 올라 다다른 죽령. 텅빈 휴게소 주차장이 오늘이 휴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휴게소 식당문을 밀고 들어가니 주인 내외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일명 '빼치카'로 불리는, 커다란 드럼통을 세워 놓은 듯한 군대식 난로가 놓여 있다. 아직 한겨울은 아닌지라 타고 있는 장작불의 화력은 최대한 낮춰 놓은 것 같다.

▲ 소백산 등반 안내지도 중 '죽령-연화봉-희방사' 코스
서둘러 해장국과 산채비빔밥으로 배를 채운 뒤 물과 간식을 챙겨 오르기 시작한 산행길. 입구의 '죽령 탐방 지원센터' 직원이 주는 안내도를 받아들고 눈 앞에 펼쳐진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왜 이 멋대가리 없어 보이는 죽령 코스를 택했을까. 이 코스는 흔히 소백산 종주 코스의 시발점이나 종착점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종주가 목적이 아닌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풍기 쪽에서는 희방사 코스를, 단양 쪽에서는 천동 코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코스를 택했을까?

지난 여름에 읽은 책 가운데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책 전체의 서술을 겨울 소백산 산행에 비유해서 써나간다. 묘하게도 내가 책을 읽은 시점이 푹푹 찌는 한여름이었는데, 소백산 겨울 바람의 매서움을 유난히 강조하는 터라 인상 깊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소백산을 간단히 인용해 보자.

"보통 소백산하면 사람들은 능선에 아름답게 핀 화려한 철쭉꽃, 그리고 그 꽃을 부드럽게 애무하는 봄바람을 연상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매력적인 소백산의 정경은 겨울이 되어야만 만날 수 있다.

내게 있어 소백산은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것만 같은 강력한 바람으로 기억되는 산이다. ( … ) 단양과 영주를 동서로 가르는 능선 위에서 맞는 바람. ( … ) 소백산은 지형학적으로 볼 때 단양으로 이어지는 북쪽의 경사로는 완만하다. 이와 달리 남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며 풍기와 영주로 이어진다. 한편 동서 방향으로는 길게 능선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의 소백산은 유난히 거칠고도 날카롭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 단양 쪽의 완만한 경사를 타고, 마치 깔때기에 물이 모이듯 함께 모여 예상치 못한 거대한 바람으로 불어닥치기 때문이다.

( … ) 나는 죽령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 방향으로 연화봉에 올라, 능선을 타고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1440m)에 다다르는 길을 특히 좋아한다. 이 코스에서 나는 휘몰아치는 겨울바람과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신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한겨울도 아닌데 그렇게 매서운 소백산의 칼바람을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그저 이 책을 읽은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데다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휴게소 식당이 있으니까 선택된 코스이리라. 하지만 아내한테는 아무런 말도 않고 다른 탐방센터와 달리 주차비를 안 받는 곳이라만 했다.


▲ 제2연화봉까지 이어진 시멘트길 / 철지난 억새

이 죽령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제2연화봉에 있는 KT중계탑까지 시멘트 포장길이다. 철지난 억새들만 바람에 흩날릴 뿐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산행하는 맛이 안 나는 것 같다고 아내와 주고받으며 오르기를 50여 분. 처음으로 전망이 조금 트여 풍기쪽이 내려다보이는 쉼터가 나타난다. 어제 먹은 막걸리와 소주가 좀 과했는지 시작이 힘들다.

무릇 과해서 좋은 것이란 없는 법. 오늘 이 산행에서 어제의 과함을 비워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산행의 묘미를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데서 찾는 것 같다. 그러나 산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우리의 마음을 철저하게 비우도록 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비록 알면서도 이 비움을 자주 실행하지 못해 문제긴 하지만.


▲ 비워냄으로써 홀가분한 마른 가지에 피어난 서리 눈꽃/죽령 너머 영남(嶺南)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기념촬영 한 컷

귤과 함께 커피 한 잔을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전날의 숙취가 풀리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어제 내가 걸었던 길이 기억 속의 익숙한 풍경을 찾아가는 것이었다면, 오늘의 이 길은 전혀 낯설고 새로운 길이다. 해발 1,000M 고지를 넘어서니 밤새 능선 위에 내린 서리가 얼어붙어 눈꽃처럼 피어나 환상적인 실루엣을 연출한다. 역시나 낯설고 새로운 길은 직접 걸어봐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준다.


▲ 해발이 높아질수록 서리가 얼어 피어난 눈꽃의 장관이 점점 더 짙어진다.


▲ 소백산에서는 보기 드문 어린 소나무에 피어난 눈꽃. 좌:일반 촬영 / 우:접사 촬영


▲ 겹겹으로 아득한 산주름이 그대로 풍경이 되는 단양과 제천 방면 정경. 이렇게 그림 같은 산봉우리들이 또 있을까.


▲ 두번째 휴식 지점인 제2연화봉(1,357m)에서 바라본 천문대, 그 뒤의 꼭지점이 바로 연화봉인데, '서리꽃'이 동쪽 경사면과 서쪽 경사면을 확연히 구분되게 갈라놓는 장관을 연출한다.


▲ 제2연화봉과 천문대 사잇길 / 이정표처럼 우뚝 솟은 천문대. 천문대 너머가 연화봉 정상


▲ 휴대폰으로 찍은 눈꽃 사진을 어제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날리느라 잠시 지체한 사이 먼저 연화봉에 도착한 아내가 마음대로 셔터를 누르고 있다. 왼편 멀리 보이는 것이 KT 제2연화봉 송신탑, 오른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소백산 천문대.


▲ 영주 방면. 확실히 단양 제천 방향의 능선과는 달리 가파르게 하강한다.


▲ 산객들이 대여한 시집과 엽서,편지를 수거하는 유명한 소백산 우편함 / 3시간의 등반후 먹는 사과와 오이맛은 어떨까?

연화봉 정상에 앉아 바라보는 소백산은 망망대해 그 자체다. 단양 방면으로 보이는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는 구름 속으로 이어져 끝이 안 보인다. 반면에 영주 방변으로는 급격하게 하강곡선을 그리며 주저앉는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 단양 쪽의 완만한 경사를 타고, 마치 깔때기에 물이 모이듯 함께 모여 예상치 못한 거대한 바람으로 불어닥"친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올 겨울이나 내년 5월에 다시 한 번 오자는 말을 주고 받으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처음 올라올 때는 다시 죽령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지만 밋밋한 그 길을 다시 가기에는 영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아 희방사 코스로 하산길을 정했다.


▲ 하산길의 '희방사 코스'는 급경사라서 돌계단 한가운데 설치한 긴 철파이프를 잡고 내려오는 길이다. 희방사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한숨소리로 변하고 있다.


▲ 맑고 쩌렁쩌렁한 희방사 풍경소리.


▲ 가뭄으로 수량은 적지만 멋진 희방폭포.

문제는 희방사에서 죽령 휴게소 주차장에 세워둔 차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것. 걸어가거나 차를 타거나 일단 내려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니 미모로 히치하이킹 하기에는 좀 딸리지?', 라며 한 마디 하니까, '걱정을 붙들어 매라'는 실없는 말들이 오고 간다. 직벽에 가까운 길을 내려와 들른 희방사. 산사는 고요하고 풍경소리만 요란하다.

희방폭포를 지나 '희방탐방센터'에 도착, 직원에게 죽령까지 거리가 얼마냐고 물으니 5Km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죽령이 영주와 단양의 경계이기 때문에 완행버스가 다니지 않는단다. 게다가 역시나 히치하이킹 하기에는 딸리는 미모를 간직한 여자와 같이 있으니 걸어갈 수밖에. 터벅터벅 굽이굽이 휘어진 산모롱이를 돌아가며 죽령으로 오르는 길. 오늘이 아니면 언제 걸어서 올라가보랴 싶어 없는 힘을 짜내어 오르는데, 올라가는 사람은 없어도 내려오는 사람은 더러 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걸으니 죽령 주막이다. 주막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동동주가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 5시간의 산행 뒤에 터벅터벅 걷는 죽령길. 왜 아니 힘들겠는가.


▲ 죽령주막에서의 뿌듯한 뒷풀이, 주막 내부 사진은 카메라 밧데리가 떨어져 휴대폰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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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미모가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 험악한 형이 옆에 있으니 아무도 안태워주는거지... 하여튼 남탓으로 돌리기는.... 흥!!!
근데 저 연화봉 보니까 진짜 소백산 다시 가고싶다. 내가 저 능선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죠? ㅎㅎ 우리는 오늘 간월재 가서 얼어죽는줄 알았음다. ㅎㅎ

내오랜꿈 2007-11-19 00:51   좋아요 0 | URL
내가 분위기 험악해서 히치하이크 못 하는 거라면, 니는 뛰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평생 못하겠다....

그나저나 다음에 만나면 그 '국망봉' 이야기나 들어보자.

바람돌이 2007-11-19 10:21   좋아요 0 | URL
옛적에 버스타고 여행다닐때 저는 히치하이크 무진장 잘했거든요. 당연히 나의 미모덕분이지만..... ㅎㅎ

국망봉 얘기? - 다음에 심심하면 페이퍼로나 올릴까? 여행다니면서 재밌었던 일들이 꽤 많았었는데 이게 나이들면서 잊혀져가는게 요즘 조금 섭섭해진다우? 그래서 진짜 다 잊어버리기 전에 페이퍼로라도 정리해둘까 하는 생각도 듭디다. ㅎㅎ
 

꽃살문의 유혹, 성혈사(聖穴寺) 그리고 사과따기 체험



아침 8시 30분. 부석사를 나와 아침을 챙겨 먹었는데도 시간은 마냥 여유롭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몸이 나른한 느낌이다. 그래서 소수서원에 들렀지만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주차장에서 2시간 남짓 눈을 붙였더니 심신이 개운해진 느낌이다. 한 시간여 거리의 모처에서 일박한 지인들이 여유를 부리는지 출발이 늦어지는 것 같다. 시간도 죽일 겸 순흥쪽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성혈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소백산 국망봉 자락에 위치한 성혈사(聖穴寺)는 아스팔트를 벗어나 사과밭 사이로 한참을 올랐는데도 과수원이 끝나는 곳으로부터 30도 경사는 되어보이는 산길을 또다시 올라야 한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협소한 길이다 보니 내려오는 차라도 만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딱히 주차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공터에 차를 세우니, 길 오른편 산자락에 모과나무에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손이 모자라는 건지 나무 밑에는 모과가 떨어져 뒹굴고 있고,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독경 소리만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술 담그기에 관심이 넘치는 남편이 '따 갈까?'라고 묻기에 '일부러 시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고 싶냐'고 타박하며 말려야 했다.

경내는 기울어가는 절 상태를 반영하는지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 된 느낌이다. 중창과 보수를 위해 서까래 삼십만원에서부터 기둥 삼백만원까지 등급별로 금액을 적어 불사를 모집중인 플랭카드가 요사채로 여겨지는 건물의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불편한 마음은 잠시 접고 경내를 둘러보지만 이렇게 인적이 드물어서야 어디 제대로 모금이 될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2, 3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집 근처의 경기도 박물관에서 '꽃살문 전시회'를 했을 때 성혈사란 이름이 각인되었는지, 전문적으로 답사를 다니는 친구의 입을 통해 각인된 익숙함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정작 와 보기는 처음이다. 부석사와 마찬가지로 의상대사의 창건물인 아담한 '나한전'. 단청이 칠해지지 않아 더 맛이 깊은 꽃문살을 눈으로 어루만지며 망중한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인근의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더없이 매력적인 곳이긴 하지만 관광지화된 지 오래라 번잡하고 사람으로 넘쳐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혹여라도 그 곳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시달림을 겪었다면 이 곳에 들려 마음을 위로받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나한전에는 석조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친근한 인상의 16 나한이 모셔져 있는데, 찾아 온 예를 드리고 급하게 찍은 것이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빛바랜 단청의 천정 조각에서도 수백년 세월이 느껴짐.


▲ 정면3칸 중,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모란꽃의 오른쪽 문살과 빗꽃살이 규칙적으로 새겨진 왼쪽 문살.


▲ 좌,우 문살의 단정함에 자연 돋보이는 가운데 문살. 양문에는 연꽃과 연잎 사이에 물고기, 개구리, 게, 동자 등이 아로새겨져 그야말로 여름날 한가로운 물속 세상이다.


▲ 나오는 길에, 호수가 예뻐서 차를 세우고 잠시 단풍놀이를 즐기다가 제대로 엎어져 피를 보았다. 구경을 끝내고 차 쪽으로 몸을 돌리려다 뒤의 벤취를 미처 못 본 탓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시라도 했는지 몇 일 전, 웬지 밴드 한 상자를 차에 비치하고 싶더라니.. 끙~

▲ 전원주택에 관심이 많은 고로, 아름다운 호수를 낀 언덕에 전원주택인지 별장인지는 모르지만 '한스빌'이라는 문패를 달고 작은 촌락을 형성하고 있기에, 잠시 올라가서 구경을.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남편의 대학 써클 후배들로 구성된 지인들 일행이 부석사쪽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들과는 지난 여름의 일본여행 동반을 비롯하여 계절에 한번 이상은 주기적으로 모임 형성이 잘 되는 편인데 '가을에 부석사 사과 따러 가자'는 제안은 이미 지난 여름휴가 중에 나온 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소백산 산행을 포함하여 겸사겸사 오게 되었는데, 다른 팀들은 아직은 애들이 어린 까닭에 우리 부부처럼 마음 놓고 산행을 즐기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경북 구미가 주소지였을 당시, 중앙고속도로는 풍기까지만 개통했고 제천과 풍기 구간의 죽령터널은 아직 뚫리기 전이었다. 춘천여행을 다녀오며, 굽이굽이 죽령고개를 넘은 직후에 풍기의 도로변에서 구입한 사과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조직은 단단하고 신맛과 단맛의 환상적인 조합은 물론, 쪽을 갈랐을 때 노란 꿀선이 선명하게 빛을 발했다. 이후 명절날 선물 들어온 최상품이라는 사과조차 그때 먹었던 풍기사과 만큼 맛나지는 않았다. 강수량은 적고,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해발고도가 높아 온도차가 큰 천혜의 자연조건이 맛 좋은 사과를 재배 가능케 하는 것이란다.

대구나 경북이 사과의 최대 주산지로 알려졌지만 최근엔 지구 온난화 현상의 영향을 받아 강원도 최전방에서도 재배된다는 소식이 들리는 상황이다. 그런 까닭에 남편과 나는 그때의 사과 맛이 날까, 궁금해 하며 사과따기 체험이 예약된 '뜬바우골' 농장으로 달려갔다.

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하는 '뜬바우골 작목반'에서 나온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사과를 먹어가면서 재배법이나 종류, 맛있는 사과 따는 요령 등의 강의를 듣고, 사과 따기에 돌입했다. 나눠 준 봉지에 사과를 따고, 무게 만큼 가격이(\5,000/1kg) 책정되는데, 환경을 살리는 자연 농법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그닥 비싼 가격은 아닐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인당 오천원을 받고 적당량 만큼 따가는 식의 체험이었는데, 채산이 안 맞았는지 올해부터는 방법이 바뀌었단다. 사과를 따면서 과수원 내에서 먹는 것은 무제한 공짜라서, 힘 닿는 한 양껏 먹을 욕심을 부려보지만 대부분 2개 정도만 먹으면 배가 불러온다. 나중에 지갑이 대책없이 가벼워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막무가내로 따지 말라는 약간의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 두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강의 듣는 일행들.


▲ 초록잎 사이로 주먹만한 사과가 올망졸망 달려, 붉은 빛을 발하며 유혹한다.


▲ 쓱쓱 문질러서 두쪽 가르기가 힘겨울 만큼 단단한 조직을 자랑하는데, 변함없는 천연 꿀맛에 감동.


▲ '맛있다'를 연발하며, 사과에서 입을 떼지 않는 아이들.


▲ 우리 부부는 적당히 무게를 가늠하며 땄지만 아이들이 있는 집은 대중없이 따다보니 가격이 만만찮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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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글이구나! 나중에 산 사과가 가격은 쌌지만 맛은 역시 뜬바우골 사과와 비교가 안되더군요. 일단 맛난 사과부터 열심히 먹어치우고 있는 중입니다. 근데 넘어져 다친데는 다 나았나요? 제법 많이 긁혔던데 말입니다.
소백산 산행은 그립다. 국망봉 하니까 갑자기 추억이 확 떠오르는데... 한 10년전에 소백산꼭대기에서 국망봉을 한 100번쯤은 외쳤던 기억이... 왜냐고요? 뭐 얘기하자면 기니까 다음에 재밌는 얘기 하나도 없어지면 하죠뭐... ^^

내오랜꿈 2007-11-16 19:40   좋아요 0 | URL
확실히 맛의 차이가 존재하더만!
내가 술 안 먹고 나가서 봤더라면, 보기만 봐도 다른 걸 알 수 있겠더만...

 


익숙한 그리움, 부석사


사람의 발길이란 '익숙함'을 찾게 마련이다. 늘상 새로운 일상을 꿈꾸며 여행을 떠나곤 하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발길은 어느새 좋았던 내 기억 속의 어느 곳으로 닿아 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익숙한 그리움'이라 표현한다. 나에게 '익숙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절집 세 곳을 꼽으라면 화순 운주사, 청도 운문사 그리고 영주 부석사다.

그 세 곳에 대한 그리움의 기억은 물론 제각각일 터인데 결혼한 이후 아내와 함께 한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이 바로 부석사다. 수원과 구미에 따로 떨어져 살며 주말부부로 지낸 2년 동안 틈만 나면 돌아다닌 곳이 경북 북부 일대다. 아마도 구미에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으면서 여러 가지 볼거리를 간직한 곳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당연히 안동, 영주 일대가 선택된 것이리라.

나의 그리움과는 별도로 아내는 또 그 나름대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라 우리 부부에게 부석사는 여건만 허락한다면 언제든 달려가고 싶은 곳이다. 지난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낸 모임에서 다음에는 부석사에 사과 따러 가서 보자며 작별인사를 대신했는데, 벌써 그게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다가선다.

그러나 가을의 주말이 항상 여유롭지만은 않다. 집안 행사, 결혼식, 다른 모임 등으로 언제나 분주한 게 봄, 가을의 주말 풍경이다. 지난 주말 역시 아내의 조카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진주에서도 오는데 서울 근처에 살면서 안 가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아내와 의논한 끝에 토요일 일정은 포기하고 일요일 새벽에 떠나서 부석사를 둘러보고 월요일에 소백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미 길을 떠난 부산팀들이 "병산서원"이라며 전화를 해서 지금이라도 출발하라고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아, 이 무렵의 "병산서원"은 또 얼마나 익숙하고 아름다운 그리움인가!

일요일, 새벽 4시. 집에서 나와 풍기IC까지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영주 외곽을 지나 소백산 자락 가운데 하나인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부석사로 찾아가는 길 양옆으로 사과밭이 즐비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빨간 사과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가 코 끝에 스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파고든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아마도 조금 늦어버린 방문인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옷깃을 곧추세우고 오르기 시작한 부석사 흙길.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500여 미터의 비탈길. 노란 은행잎이 깔려 걷기조차 아깝다. 무엇이든 가장 아름다울 때 찾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바램일 터이지만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한 은행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흙길. 늘씬한 당간지주가 있어 아쉬울 것도 없고 차근차근 음미하며 걷다 보면 지루할 틈도 없다.






경사를 최대한 이용하여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건물의 가람 배치. 천왕문에서부터 경내가 시작되는데, 사천왕이 지키고 있으니 이 안쪽이 도솔천인 셈. 범종루 아래에 서니 안양루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높낮이에 차별을 둔 석축도 음미하여야 할 볼거리다.




▲ 범종각에는 법고와 목어만 있고, 정작 범종은 서편 다른 건물에 있다.



▲ 범종각의 한 단 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백발이 된 뒤에야 올랐다는 안양루가 살짝 비껴 있다.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을 맞추고 쌓아서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석축.



▲ 안양루 계단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비껴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 답사객. 요리조리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석등의 미학에 폭 빠졌나 보다.




그렇게 오르고 올라 가파른 길 맨 위에 자리한 '무량수전' 앞에 섰다. 한 때는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외워야 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외운 중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니 봉정사 극락전이 더 오래되었다고 가르친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만 난 어느 건물이 더 오래된 것인가, 무슨 사건이 일어난 연도는 언제인가, 연대 순으로 잘못 나열된 것은 무엇인가, 같은 식으로 시험을 치르며 역사를 배운 세대다..-.-...

해뜨기 전,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서 지금까지 올라온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시야가 탁 트인 삼층석탑에서 아래를 보면 겹겹이 펼쳐진 유연한 소백산 자락과 마주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양날개로 굽어볼 수 있다. 으레, 이곳에서는 소백산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이 예쁘다는 이야기만 들었기에 이 시간의 부석사는 처음이다. 역시 같은 곳이라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나름의 멋이 존재한다.

아내가 동부도밭에 가자고 하여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지만, 한 단 아래로 잘못 왔는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다시 올라 가기도 그렇고, 새벽부터 움직인 대가인지 배도 고파오기에 서둘러 내려오고 말았다. 방바닥이 따끈하게 데워진 '종점식당'에서 새벽 한기에 으슬으슬해진 몸을 녹이며, 아침으로 청국장이 딸려나오는 산채정식을 시켜 먹는 것으로 부석사를 향한 '익숙한 그리움'을 접었다.



▲ 무량수전 앞에서, 범종각을 중심으로 바라 본 부속 건물들.


▲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한 불제자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피해, 창건주인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전설이 담긴 부석 앞에 섰는데, 이 뜬돌은 부석사(浮石寺)란 이름의 근간이기도 하다.


▲ 무량수전에서 조사당 가는 길목에 화사석을 잃은 석등과 삼층석탑이 있다.




▲ 시야가 탁 트인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풍광들. 겹겹이 펼쳐진 유연한 소백산 자락을 뒷배경으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양날개로 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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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 사람도 별로 없이 한적한 저 부석사 풍경! 저게 보고싶었다고요. 근데 사과 따고 나서 간 부석사는 돗대기 시장이더이다. ㅠ.ㅠ 이번 여행 글 올리려고 들어와 보니 형 글이 올라있네요. 제대로 못 본 부석사를 여기 사진으로 대신해서 아쉬움을 달랩니다. ^^

내오랜꿈 2007-11-15 10:27   좋아요 0 | URL
우리도 내려오면서 그런 말 했다. 조금만 지나면 사람들로 북적거릴 텐데, 정말 새벽에 오길 잘했다고...
 


서리가 얼어 눈꽃으로 피어난 소백산의 정경


아침 일찍 죽령휴게소 식당에 들르니, 주인 내외가 아침 식사중이다. 해장국과 산채비빔밥으로 아침을 먹고 오르기 시작한 소백산. 두 시간 정도를 쉼없이 올라가니 해발 1,357m의 제2연화봉에 다다른다. 그곳 쉼터에서 바라본 소백산은 서쪽 경사면과 동쪽 경사면이 확연히 구분되는 장관이 연출된다.



밤새 내린 서리가 얼어 눈꽃으로 피어난 소백산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 사이의 서쪽 경사면.





모자가 벗겨질 정도의 바람에도 꿈쩍 않는 눈꽃.



제2연화봉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 사이는 길 양쪽이 온통 눈꽃으로 덮여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소백산 천문대



자세한 산행기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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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폰으로 보내준 눈꽃 사진은 염장을 지르기에 충분했다우.... ㅎㅎ 남은 숨쉴틈도 없게 바빠 죽겠는데 말야!!
소백산은 여름에만 두번 등반했었는데 겨울 소백산도 가고싶네... 애들 크면 데려갈 수 있으려나 하다가 아 그땐 내가 체력이 안될거야라는 생각이.... 그 소백산 고개는 정말 죽음이었는데 말이죠. ㅎㅎ

내오랜꿈 2007-11-15 10:15   좋아요 0 | URL
5월에 철쭉꽃이 만발할 때 능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만...
그리고 여건만 된다면 이번 겨울, 눈덮인 소백산 능선을 함 타보고도 싶고...
 


남한산성, 너무 늦어버린 가을날의 하루


계획에도 없던 남한산성에 다녀왔다. 요즘은 주로 입으로만 산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광교산에서부터 지리산, 소백산, 월악산, 민둥산... 지난 몇 주일 동안 우리 부부가 입으로 다녀온 산들의 목록이다. 실제로 갈려고 계획했다 여건이 맞지 않아 포기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즉흥적으로 입에 올리다 계획한 전날에 이런저런 핑계로 유야무야 된 게 대부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않고 노트북을 켰다. 하루 사이에 몇 백만 원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아내에게 말을 걸며 주식 관련 정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제 올랐던 주가가 아침부터 폭락하고 있었던 것. 그때 갑자기 아내가 남이섬을 가고 싶다 한다. 한번도 간 적이 없다면서. 사실 아내의 남이섬 타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아마도 남이섬은 아내가 품고 있는 영원한 '이니스프리'인지도 모르겠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항상 '좋더라'란 감탄과 함께 시작되는 것을 보면...

굳이 못 갈 이유도 없기에 가자고 하니까 아내는 왠지 미적미적한다. 머냐, 어디로 가느냐, 얼마나 걸리냐 같은 의미없는 물음들을 던지며. 그 와중에 지도책을 펴고 남이섬이 있는 가평 가는 46번 도로를 찾다 남한산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아내에게 '남이섬이 멀면 남한산성을 갈까'라고 하니 좋다고 거든다. 그래서 나서게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몇 일째 붙박이로 꽂아 둔 카오디오에서 들려나오는 <라디오 스타> OST를 지겨운 줄 모르고 반복해서 듣고 부르며, 분당시내를 가로지르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 산성의 남문에 이르렀다. 이 길은 서울 생활하면서 외로운 '솔로'들이 모여 일요일이면 들락거렸던 길이다. 막걸리에 닭백숙, 그 뻔한 메뉴를 참 지겹게도 먹어댔던 시절. 꼽아 보니 불과 10여 년 전이다. 그때 함께 했던 후배놈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는 안타까운 인생들.



그렇게 오른 남문 입구.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커다란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소설 <남한산성> 작가 김훈 초청 사인회". 그 플랭카드는 우리가 조금 후면 도착할 산성 안 로타리 주변에도 붙어 있었다. 솔직히 짜증이 팍 솟았다. 불과 두어 달 전에 방송, 신문 등 온갖 언론 매체가 지원하는 홍보성 이벤트를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한단 말인가? 좀 그만 울궈 먹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작부터 약간은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남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점심을 먹기로 한, 인터넷에서 잘 알려진 한 식당을 찾아 나섰다. 몇 번을 이리저리 돌아본 끝에 '오복'이라는 상호를 보고 '저기다'라며 들어섰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손두부와 막걸리를 주문하고 점심으로는 산채 비빔밥을 시켰다. 하지만 산행을 한 뒤 돌아본 주차장에서 전혀 엉뚱한 집이었음이 밝혀진다.

점심을 먹고 로타리 주차장에 차를 박아두고, 북문-연주봉옹성-서문-수어장대-남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잡았다. 손바닥 만한 산성인지라 무슨 코스 운운하는 게 어색할 정도다. 일주한다고 해도 두어 시간이면 족할 그런 산성이기에. 그렇게 오르게 된 산성안 단풍은 이미 절정을 지나 있었다. 더군다나 하늘조차 우리들의 늦어버린, 게으런 단풍놀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원래 이 곳의 視界가 그런 것인가. 날씨는 그닥 나쁘지 않았는데, 희뿌연 공기가 시야를 흐린다. 게다가 걷는 내내 손두부를 곁들여 아내와 나눠 마신 동동주 한 통에 속이 부대껴서 고생을 하고 보니, 오랜 만에 찾은 가을날의 남한산성이 그리 오래 기억될 것 같지 않다.


▲ 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 옆 어느 식당의 단풍나무.


▲ 북문에 걸터앉아 노래자랑 퍼레이드 중인 할머니들.




▲ 걸음은 건들건들, 동동주가 위에서 발효하는 신호를 자꾸 보내니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내가 벤취에 누워 자는 사이 아내가 몰래 찍은 사진들


▲ 북문에서 연주봉옹성에 이르는 중에 잠시 휴식.



▲ 시계가 좋지 않아 별 감흥을 못 일으키는 만추의 가을산/옹성에서 바라본 서울 모처.


▲ 이제부터 썩어져 내년을 준비할 낙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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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07-11-09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이 온통 엑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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