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청난 배신-과학에서의 사기… 호레이드 저드슨|전파과학사
‘다시 그 가을이 돌아왔다. 2년 전 이맘 때부터 인터넷을 통해 황우석 전 교수의 난자 위반 윤리, 논문 진위 문제가 알려졌다. PD 수첩팀이 황우석 박사의 연구 윤리를 문제 삼기 시작한 지 벌써 2년. 조사 결과는 과학과 상관이 없었을 뿐 아무 죄 없는 일반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뿌리치고 진실의 편에 손을 들어 주었다.
왜 난데없이 다시 “황우석 스캔들”이냐고? 잊혀져야 할 시점에 나 자신, 그 누구보다 곤혹스럽다. 황우석 사태는 결국 내 교수 생활의 색깔까지 바꾸고 말았다. 나는 윤리 전문가가 아닌데 요즘은 가끔 연구 윤리 교육과 자문을 ‘부업’처럼 하게 되고 말았다. 결코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고,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지당하신 말씀들 때문에, 또 두 해 전 당시 서울대 총장에게 황우석 박사의 논문 진위 문제를 조사해 달라고 했다는 그 운명 같은 ‘인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찔끔찔끔 기자들에게 인터뷰를 해주다 보니, 내 인생의 색깔이 원하던 것과 조금 달라졌다.
인연은 계속되었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에서는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양서를 번역하여 출판해오고 있다. 2004년부터 학회의 출판 위원을 맡았던 나는 학회 사업으로 번역할 책을 찾고 있었다. 첫해는 나의 게으름으로 출판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 그 이듬해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연구 윤리에 대한 책만 찾아다녔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는 황우석 사태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논문 조작에 가담했던 중요 인사들이 학회의 회원들이었으며, 국민 영웅 시절 황우석 박사는 학회의 윤리위원장을 거쳐 부회장까지 지냈다. 2004년이 가기 마지막날, 사태를 파악한 학회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냈으나, 학회가 책임을 벗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위조, 변조, 표절 등의 연구 윤리 위반 행위들은 황우석 스캔들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그 혹독한 겨울을 나면서 배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회를 대표하여 책을 펴내야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과학계 연구 윤리에 관한 책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저드슨은 분자생물학의 탄생을 생생하게 기록한 과학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창조의 제8일’의 작가이다. 박사학위 과정 때 지도 교수는 갓 대학원에 들어온 내게 그 책을 권했다. 그 책을 읽으며 과학도로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주저없이 나는 그 책을 번역하자고 덤벼들었다. 저드슨은 분자생물학의 태동 이후를 타임지의 과학기자의 눈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사를 공부하여 대학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쳤다. 그의 통찰력으로 각 사건을 취재해가며 쓴 책이라면, 당연히 신뢰할 만했다. 그렇게해서 어렵사리 번역 판권을 확보하고 한 번의 좌절 후 이한음씨의 번역으로 2년이 걸려 책이 완성되었다.
저드슨은 과학에서의 사기를 ‘엄청난 배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장 정직해야 할 과학이 경제, 언론, 스포츠, 종교에서의 사기와 같은 유형과 형태를 지님으로써, 그 여파는 훨씬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무섭게도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기도 한다. 저드슨은 과학 사기의 원인과 그 유형을 사회 문화적 배경, 무소불위가 된 과학 권력, 동료 논문 심사 시스템의 문제 등을 짚어가며 분석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생물학에서의 사기 사건들을 다루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형태가 우리가 겪은 황우석 사태와 흡사하다. 이것이 교훈이었던 것이다. 과학 사기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불러낸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 욕망을 부채질하는 다양한 사회적 원인이 있었다. 그 원인을 알면 예방책도 나오는 법이다. 부끄러워 숨기기보다는 처절하게 분석하고 거듭 반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우석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비단 아직도 계속 언론에 등장하는 그의 행보나 시위를 멈추지 않는 그의 추종자들만 가리켜 하는 말이 아니다. 최근 학력 위조 사건, 최고 기업들의 비자금, 회계 부정, 기자들의 날조 기사, 종교집단의 위선과 탈선 등…. 사례는 널려 있으며 세상을 뒤흔드는 모든 거짓은 과학계의 사기와 맥락을 같이한다. 본질을 들여다보면, 모든 사기의 유형은 같다고 저드슨은 이야기한다.
그래서 진부하다는 비난을 받아가며 즐겁지 않은 책, ‘엄청난 배신-과학에서의 사기’를 펴낼 수밖에 없었다. 황우석 사태를 처음부터 지켜본 같은 대학의 후배 교수이자 같은 학회의 회원으로서 참회의 마음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과학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실은 참이 참으로 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같은 울림을 얻으리라 확신한다.
〈이현숙|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내오랜꿈 ------------------------------------------------------
 호레이드 저드슨의 책 발간에 때맞춰 국내 과학계에서도 황우석 사태의 본질과 그것이 가능했던 '과학사회-네트워크'에 대해 분석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황우석 사태. 벌써 2년이나 되었나 싶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도 '벌써'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리라. 황우석 사태는 사실 끝난 적이 없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윗글에서 언급되는, 아직 그를 추종하는 집단들이 인터넷이나 현실 공간에서 활동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황우석 사태의 본질, '맹신'과 '애국'으로 무장한 폭력성을 얼마 전 <디워> 사태를 통해서 다시 한번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국익, 애국을 위해서라면 침략전쟁 파병도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는 시민의식을 가진 나라에서 파시즘은 그들 시민들 가슴 속에 언제든 부화할 수 있게끔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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