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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조용필도 줄 서서 먹는 양곱창

[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21) 서래 양곱창

불만 가득한 남친 앞세워 양과 곱창 2인분을 시켜보라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9 28

» 사방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들이 붙어 있다. 단골이 되면 어느날 그들과 마주치는 행운을 누릴수 있을지도 모른다.

» 소 양과 곱창을 섞어 지글지글, 맛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8차선 도로에 차들이 어두운 불빛을 뚫고 아웃토반인 양 달린다. 육교 넘어 반짝이는 아파트는 황량하다. 저 꽉 짜여진 네모반듯한 공간 안에서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투쟁을, 누구는 꿈을 꾸고 있으리라. 어깨 너머로 살짝 언 바람이 태풍처럼 불어오면, 불현듯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워진다.

몇 블록을 지나 젊은이들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서래 양곱창’의 문을 열었다. 긴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남정네가 문 앞에서 한껏 맛난 폼으로 고기를 집고 있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사방에는 가수 이효리부터 축구선수 송종국까지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이 가득하다.

“어제 효리 씨가 다녀갔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기 가수, 그녀가 단골이란다. 그럼 자주 오면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단다.

며칠 전에는 근처에 살고 있는 가수 조용필 씨에게 곱창을 배달했단다. 그 역시 단골인데, 공연 후에는 늘 이곳에서 회식을 했단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불편했는지 배달을 요청하더란다. 곱창 배달도 되냐고? 다른 이는 안 되고 조용필 씨만 가능하다. 주인장 부부 모두 열렬한 팬이기에.

어찌 이리 많은 연예인들이 단골일까? 처음에 안주인이 새치름해 보여 말 붙이기가 어려웠다. 전형적인 도시 아낙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윽고 마주 앉아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하자 더없이 푸근하고 매력적이었다.

» 서래양곱창
‘흔히 이럴 것이다’하고 생각하는 것을 확 뒤집는 것만큼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지금은 ‘본죽’ 체인점으로 유명해진 김철호 사장도 그랬다. 죽 체인점을 만드는 것도 참 특이한 일이지만 그의 엉뚱함은 호떡 장사를 할 때부터 나타났다. 숙명여대 앞에서 호떡을 팔던 그는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고급스런 양복을 입고 호떡을 팔았다.

그런 면에서 김철호 사장과 주인장은 닮았다. 사람들이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식으로 바꾼다. 새벽 5시까지 영업하는 것도 그런 주인장의 생각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민 간 언니가 하던 고깃집을 이어 받아서 운영을 했단다. 언니가 돌아오면서 둘만의 곱창 집을 열게 된 것이다. 굳이 소 양와 소 곱창을 요리해서 팔기로 한 건 주인장 부부가 모두 곱창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곱창을 먹으러 다니는 일은 일상이었다. 그 일상의 즐거움과 따뜻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단다.

이 집에서는 곱창 중에서 제일 좋은 부위만 가져온단다. 여러 집에서 재료를 공급받고, 냉동 곱창은 가까이 하지도 않는다.

» 둥글둥글 의자와 탁자, 곱창 맛을 더 쫄깃하게 한다.
곱창은 다른 고기와 다르게 절임이 안 돼서 진정 신선하지 않으면 맛이 없다. ‘특양’은 소 위중의 하나로. 양도 작고 가장 작고 귀하다. ‘기본’은 소 양와 소 곱창을 섞어 2인분이 나 오는데, 양과 곱창을 동시에 맛볼 수 있어서 좋다. 맛은? 설명이 필요 없다. 너무 맛있다. 여름에는 가게 밖의 도로변까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다. 밤이 깊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쳐다보면 민망해진다. 그럴 때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예쁜 주인장에게 멋들어진 곱창 한 접시를 부탁하자. 지글지글 곱창이 익어가는 동안 그 뿌연 연기 속에 네가 유명인 인지, 내가 유명인 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맛있는 곱창을 사랑하는 너와 나는 친구일 뿐!

위치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전화번호 02-3477-0234
영업시간 오후 5시~새벽 5시
메뉴 기본 2만5천원 / 특양 1만5천원 / 곱창 1만원 / 소주 3천원 / 맥주 4천원

* 강력추천 곱창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당신, 이곳에서 그 맛을 평가해 보라. 서로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오래된 연인이라면 함께 곱창을 씹어보자.

* 귀뜸 한마디 밤이 깊을수록 연예인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매일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내오랜꿈 -----------------------------------------------------------------

퇴근 뒤 친구들과 만나 가볍게 소주 한 잔 하는 자리, 주메뉴는 역시 삼겹살이나 곱창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삼겹살과 곱창은 차이가 있다. 삼겹살이야 어느 집을 가도 대충 기본은 하는 메뉴다. 요즘이야 와인 숙성이니 된장 숙성이니 올리브 숙성이니 하지만 뭐 못 먹을 정도의 삼겹살 집을 만나는 게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곱창은 다르다. 제대로 맛을 내는 집을 찾아가야지, 무턱대고 아무 집에나 갔다가는 젓가락 몇 번 깨작거리다 입에 욕을 품고 나오게 마련인 것. 그래서 곱창을 메뉴로 선택할 때는 미리 어느 집을 가자고 작정한 뒤에 약속을 정하게 마련이다.

광명시 철산동에는 제법 알려진 곱창집이 하나 있다. 친구 하나가 광명에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짐승의 내장 종류라면 꺼려하는 아내도 그 집에서만큼은 잘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즈음, 곱창에 소주 한 잔은 다른 모든 먹거리를 뿌리칠 만큼 강력한 유혹이다. 얼마전부터 아내에게 수원에서 제법 알려진 곱창집에 가자고 몇 번 이야기했지만 그때마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아내의 동의를 기다리기보다는 이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는 조카들이나 한 번 불러모으는 게 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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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0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래마을이라면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
한 번 가봐야 겠습니다..^^

내오랜꿈 2007-11-09 12:45   좋아요 0 | URL
가 보시고 괜찮으면 후기 남겨주십시오..^^

하이드 2007-11-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겁나 시끄럽고, 겁나 비싸요. 양은 그닥 안 많고, 손님 있는한 계속하고, 장소 굉장히 협소해서 기다리는 일도 많아요. 곱창이 왜 날씬한 곱창 있잖아요. 그래요. 개인적으로는 합정의 황소곱창이 진짜 맛있는데!말이죠

내오랜꿈 2007-11-09 12:5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소주 한 잔 하기는 장터 분위기도 나쁠 것 없죠^^..

그런데, 좀 제대로 된 곱창이나 양은 다 저 정도 가격 하지 않나요? 광양에 숯불고기 유명한 데가 많은데 그 시골바닥에서도 저 정도 가격은 다 하는 데요?

합정동의 황소곱창, 유명하죠. 그러나 지금은 평가가 극과 극으로 달리는 것 같습니다. 좋을 때는 좋은데, 나쁠 때는 너무 형편없다고... 너무 크게 확장하다 보니 곱창 수급이 그리 원활하지 못한 듯 합니다. 수급이 안될 땐 질이 떨어지는 곱창도 쓴다는 반증이죠.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10)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州)의 뷘스도르프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벙커속에 묻어준 ‘전쟁 기억들’

 
뷘스도르프는 행정구역상 조센 시 소속이다. 역의 이름은 발츠슈타트 뷘스도르프. 이 간이역에서 젊은 연인이 베를린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숲속 마을로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낙엽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적시는 굵은 빗줄기가 그 소리를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서곡보다 더 장중하게 울려퍼지던 빗소리 사이로 인기척도 없는 건물들은 을씨년스럽게 수 십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한 채 건너 비어 있는 꼴이다. 그 길가 땅속에서 불쑥 백색의 병사가 튀어나온다. 참호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석상이다.

1930년대 말에 방공호로 구축된 삼각뿔 구조물. 이런 것들이 붕커 공원 내에 여기저기 솟아 있다.
벙커형 건물은 수십 동에 달한다. 30ha의 방대한 단지 밑으로 지하터널도 2㎞나 뻗어 있다. 낭만적인 정취는커녕 끔찍한 수수께끼가 숨겨진 미로 속으로 빨려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가 아니다. 너무나 단순명쾌한 배열 탓에, 동어반복적인 구조가 자아내는 기이한 헷갈림이다. 건물의 베란다에서 이따금 깜찍한 인형들이 비를 맞고 있다. 목각 올빼미들이다. 온종일 비를 맞으며 눈을 부릅뜨고서 무엇을 지켜보았을까? 옆구리에 책을 끼고 손전등을 휘두르는 올빼미는 북을 치며 행진하는 호전적인 독일병정 인형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집들은 벽의 두께가 60㎝에서 1m에 이른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에 조성된, 주거단지로 위장한 요새다. 또 그 단지 소나무들 틈 사이로 3층 높이를 훌쩍 넘는 뿔 모양의 구조물도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이것도 방공호의 일종이다. 또 다른 건물로 접근할수록 입은 더 타들어왔다. ‘체펠린’ ‘마이센바흐’ 등 첨단성능을 자랑하는 엔진을 개발했던 인물과 기업의 이름을 딴 통신소 건물과 원폭공습에도 견딜 수 있게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다. 마이센바흐는 전시에 탱크를 만들었지만 체펠린은 나치에 협력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도 잘 나가는 마이센바흐의 로고 타입은 바로 이 괴기스러운 삼각형 참호의 변형이다. 일부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들은 무서운 상상력으로 비약된 공포와 적개심의 화신으로 보인다. 이 숲속의 벙커는 45년 독일국방군이 패망하던 4월의 그날까지 사령부지휘소가 들어앉아 있던 곳이다. 그 뒤 이곳에 진주한 소비에트 군대가 94년에 완전 철군할 때까지 자신의 기지로 사용했다. 그러니 군사전략가나 국방전문가라면 이곳을 한 번쯤 찾지 않았을까? 책마을은 이렇게 붕커(영어로 벙커)와 군사박물관과 함께 ‘과거 속으로 산책’을 즐기는 공원으로 홍보되고 있다.

우선 빗줄기를 피해 카페로 들어서자 작은 액자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의 병영생활이 담긴 사진들이다. 복무를 마치고 귀향하는 병사의 기념사진도 끼어 있다. 서울 삼각지에서 볼 수 있는 미군병사의 기념사진과 흡사하다. 카운터에서 커피를 따라주는 아가씨는 야윈 뺨에 야무진 인상이 영락없이 파스빈터 감독이 ‘라인강의 추잡한 기적’을 파헤쳤던 영화 ‘독일여자, 롤라’에서 경제성장기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던 여주인공을 빼닮았다. 파스빈터가 동독의 영웅 칭호를 받았던 화가 오토 딕스가 그려낸 여인상에서 빌려왔던 이미지다. 윤곽선은 곱고 가냘프지만 불안한 눈매 뒤로 그보다 더욱 깊고 강인한 의지와 애욕이 엿보이는 인상이다.

포복하는 병사의 석고상이 설치미술 형식으로 마을 땅바닥에 놓여 있다.
대낮에 밝혀진 붉은 등불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다보니 자연스레 18세기 계몽기의 독일이 떠올랐다. 출판시장과 전업작가와 유한부인들이 주도하는 독자층이 등장하던 시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시 독서광이 출현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유행 덕분에 제일 많은 재미를 본 사람들은 커피장사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원작자, 마르틴 빌란트나 레싱 같은 문인도 저작권을 얻기 위해 애썼다. 번역을 하고 잡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전업작가의 입지를 다지려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첫 번째 세대였다. 정신적 자유를 얻기 위해 물질적 예속을 감수해야 했던 쓰라린 모순의 출발기였다. 같은 시대에 “명예로운 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글쓰기에 매달렸다고 해도 대문호 괴테는 인세 수입에서 제일 재미를 보았다. 기도와 웅변을 닮은 해묵은 독서방식이 막을 내렸고 독서는 비로소 즐기기 위한 취미활동에 편입되었다. 독서하는 주체로서 개인이 탄생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개인의 자각이라는 관점에서라면, 그림 속에서 ‘개인’이 주권을 찾았던 네덜란드 사실주의 미술의 시대에 비해 훨씬 뒤늦은 일이었다.

‘고서적’상은 전쟁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병사들이 내무반으로 쓰던 벽장은 서가로 바뀌었다. 36만권을 헤아린다는 서가 틈에서 듬직한 노인이 나타났다. 이 사람이 라이너 밍크 박사로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베를린에도 서점을 갖고 있다. 그는 진지하게 마을의 현황을 들려주고 서점을 소개했다. 전쟁 관련 서적은 나라·시대·장르별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방대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쉴 새 없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살아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전쟁사진집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면, 라이프치히 도서축제의 목록을 비롯한 도록·자료집·팜플렛과 리플렛, 조잡하지만 촌부의 손때가 묻은 ‘딱지본’이라고 할 소책자, 잡지 등이 풍성하다. ‘컬렉션’을 위한 앨범들은 매력적이다. 우표첩이나 그림엽서는 축에 들지도 못한다. 주화를 금박으로 재현한 기발한 취미의 구식 짝퉁 화폐들, 여러 독일 제국의 문장(紋章)과 고대의 장식유물을 복제한 동판화첩을 들춰보면 독일 철학자의 표현대로, ‘피와 땅’이 다를 때 취미와 관념은 얼마나 끔찍하게 달라지는지….

‘붕커샵’의 실내 전경. 군복과 군장이 책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
밍크 박사는 내년의 책마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로 바쁘다. 이태 전부터 시작한 애호가를 위한 중고 군용차량 견본시장도 준비해야 한다. 작년에는 수천 명이 몰리는 대성황이었다. 프로모션을 위한 행사 가운데 ‘군대 이야기의 밤’은 학계와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군대와 전쟁 체험에 대한 회상과 고백과 증언으로 이어지는 이 행사는 구술사(口述史)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밝히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작가 한스 울리히 브란트는 전쟁 중에 이 마을사람들이 도모했던 반나치 저항운동에 대한 기록문학 작품을 발표해서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동호회의 활발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후로는 이렇다할 공적자금의 지원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사민당의 하원의장 마티아스 플라체크가 방문하면서 새로운 지원책을 시사한 점도 향후 책마을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붕커와 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서점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배가할 예정이다.

마을의 마스코트인 올빼미 캐릭터.
이런 전망 속에서 러시아와의 친교는 각별하다. 모스크바 군사박물관과는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이 붕커 박물관 겸 공원은 독일군의 자취보다 소비에트와 그 뒤를 이은 러시아군의 영예에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고장이 일찍이 슬라브 민족이 정착했던 지역이라는 점도 은연중 도움을 주었을지 모른다.

지도와 도록과 나란히 첩첩이 쌓인 사진집들을 들춰나가자 우리 6·25전쟁에서 알몸으로 지프를 올라타고서 성조기에 철모를 걸고 승리를 구가하는 미군병사의 사진이 튀어나온다. 엄동설한의 어둠 속에 밤길을 재촉하는 난민,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슬픈 행렬도 이어진다. 차마 들여다보기 민망한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잔혹행위에 치를 떨다가 동성애자나 기형인간을 조롱하고 학대하며 기념촬영까지 감행했던 나치의 미소와 마주치자 벙커의 천장에 부딪쳐 울리는 그 웃음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폴란드 로츠 게토에서 몰래 카메라를 갖고 만행을 촬영했던 멘델 그로스만의 사진과도 재회했다. 초간본과 다른 저자들의 텍스트를 덧붙인 신판이 나오고 있다. 그 사진 가운데 어린 아이를 죽음의 가스실로 떠나보내며 철조망 사이로 입을 디밀어 부비며 나누는 최후의 작별 ‘키스 신’ 앞에서 우리는 “아우슈비츠 이후 더는 시도 쓸 수 없고 노래도 부를 수 없다”고 절규했던 철학자의 외침을 듣는 듯 얼어붙고 만다. 이토록 간절하다 못해 숭고한 입맞춤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폴란드 로츠 유대인 집단거주지에서 멘델 그로스만이 목숨을 걸고 몰래 촬영했던 사진이다. 여자들이 분뇨를 나르는 장면과 자식을 최후의 수용소로 보내면서 작별하는 장면이다. 그로스만은 결국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런 사진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면서도, 이탈리아 사람으로 독일에 살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요체를 훌륭하게 전했던 철학자 에르네스토 그라시가 기획한 문고판 ‘로볼츠’ 총서를 뒤적이는 것으로 긴장을 풀어보았다. 그는 이 총서를 통해 이탈리아 화가 아르킴볼도를 발굴하고 소개했다. 지금 파리에서 관중몰이를 하고 있는 아르킴볼도의 익살맞고 공상적인 ‘사서(司書)’의 이미지는 30년대에 유럽 전역에 ‘바로크’ 개념을 내세워 또다른 민족 신화의 바람몰이에 나섰던 독일 미술사학계의 과욕을 비웃는 듯하다.

창밖에서 비는 그칠 줄 모르며 음습한 분위기를 부추겼다. 그러던 중 세찬 빗줄기가 뿜어대던 물안개가 방금 전 버스에서 내린 한 무리 관광객에게 묻어 실내까지 몰려 들어왔다. 혹시 중세를 짙게 덮었던 그 물안개였을까? 민족주의라는 보검(寶劍)의 광채를 찾아내고 싶어하던 독일식 신비주의를 자극했던 바로 그 푸르스름한 물안개가 여기까지 밀려든 것일까…. 라인 강 서쪽과 알프스 이남 사람들은 이런 의욕에서 야만성만 보려 했고, 또 독일인은 얼마나 이 야만성에서 창조를 위한 파괴의 열정을 읽어내겠다며 강변을 거닐었을까….

‘고서적’에 이웃한 얀스 슈말렌베르거가 운영하는 ‘붕커숍’에는 서적 외에도 러시아 군복과 군장, 군모, 표장과 수기본 등이 가득했다. 러시아군 병사가 고향 우즈베키스탄에서 받았던 엽서에는 이슬람 사원의 그림우표가 우아하게 붙어 있다. 이곳에는 박물관 전시기획자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사진 등 도상자료를 수배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매우 잦다. 전투 현장의 고증에 필요한 상당한 부분을 해결한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 베를린 시가전과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나 잠수함 ‘U보트’ 전투를 다룬 영화들도 이곳에서 발굴한 자료에 크게 의존했다.

이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책의 마구간’은 밀려드는 책을 방치하다시피 쌓아두었다. 러시아 군이 마구간으로 쓰던 곳이다. 손가락 모양이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단 돈 1유로에 어떤 책이든 집어들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지역 ‘아카이브’처럼 기증품을 보관해두기도 하지만 낭송회나 음악회를 여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얼마 전처럼 팔순을 기념해서 갖고 있던 장서 전체를 기증하는 사람도 있어 마구간은 그 잘 생긴 군마(軍馬)를 떠나보낸 자리를 책장 넘기는 소리로 채워가고 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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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10)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州)의 뷘스도르프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벙커속에 묻어준 ‘전쟁 기억들’

 
뷘스도르프는 행정구역상 조센 시 소속이다. 역의 이름은 발츠슈타트 뷘스도르프. 이 간이역에서 젊은 연인이 베를린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숲속 마을로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낙엽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적시는 굵은 빗줄기가 그 소리를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서곡보다 더 장중하게 울려퍼지던 빗소리 사이로 인기척도 없는 건물들은 을씨년스럽게 수 십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한 채 건너 비어 있는 꼴이다. 그 길가 땅속에서 불쑥 백색의 병사가 튀어나온다. 참호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석상이다.

1930년대 말에 방공호로 구축된 삼각뿔 구조물. 이런 것들이 붕커 공원 내에 여기저기 솟아 있다.
벙커형 건물은 수십 동에 달한다. 30ha의 방대한 단지 밑으로 지하터널도 2㎞나 뻗어 있다. 낭만적인 정취는커녕 끔찍한 수수께끼가 숨겨진 미로 속으로 빨려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가 아니다. 너무나 단순명쾌한 배열 탓에, 동어반복적인 구조가 자아내는 기이한 헷갈림이다. 건물의 베란다에서 이따금 깜찍한 인형들이 비를 맞고 있다. 목각 올빼미들이다. 온종일 비를 맞으며 눈을 부릅뜨고서 무엇을 지켜보았을까? 옆구리에 책을 끼고 손전등을 휘두르는 올빼미는 북을 치며 행진하는 호전적인 독일병정 인형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집들은 벽의 두께가 60㎝에서 1m에 이른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에 조성된, 주거단지로 위장한 요새다. 또 그 단지 소나무들 틈 사이로 3층 높이를 훌쩍 넘는 뿔 모양의 구조물도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이것도 방공호의 일종이다. 또 다른 건물로 접근할수록 입은 더 타들어왔다. ‘체펠린’ ‘마이센바흐’ 등 첨단성능을 자랑하는 엔진을 개발했던 인물과 기업의 이름을 딴 통신소 건물과 원폭공습에도 견딜 수 있게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다. 마이센바흐는 전시에 탱크를 만들었지만 체펠린은 나치에 협력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도 잘 나가는 마이센바흐의 로고 타입은 바로 이 괴기스러운 삼각형 참호의 변형이다. 일부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들은 무서운 상상력으로 비약된 공포와 적개심의 화신으로 보인다. 이 숲속의 벙커는 45년 독일국방군이 패망하던 4월의 그날까지 사령부지휘소가 들어앉아 있던 곳이다. 그 뒤 이곳에 진주한 소비에트 군대가 94년에 완전 철군할 때까지 자신의 기지로 사용했다. 그러니 군사전략가나 국방전문가라면 이곳을 한 번쯤 찾지 않았을까? 책마을은 이렇게 붕커(영어로 벙커)와 군사박물관과 함께 ‘과거 속으로 산책’을 즐기는 공원으로 홍보되고 있다.

우선 빗줄기를 피해 카페로 들어서자 작은 액자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의 병영생활이 담긴 사진들이다. 복무를 마치고 귀향하는 병사의 기념사진도 끼어 있다. 서울 삼각지에서 볼 수 있는 미군병사의 기념사진과 흡사하다. 카운터에서 커피를 따라주는 아가씨는 야윈 뺨에 야무진 인상이 영락없이 파스빈터 감독이 ‘라인강의 추잡한 기적’을 파헤쳤던 영화 ‘독일여자, 롤라’에서 경제성장기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던 여주인공을 빼닮았다. 파스빈터가 동독의 영웅 칭호를 받았던 화가 오토 딕스가 그려낸 여인상에서 빌려왔던 이미지다. 윤곽선은 곱고 가냘프지만 불안한 눈매 뒤로 그보다 더욱 깊고 강인한 의지와 애욕이 엿보이는 인상이다.

포복하는 병사의 석고상이 설치미술 형식으로 마을 땅바닥에 놓여 있다.
대낮에 밝혀진 붉은 등불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다보니 자연스레 18세기 계몽기의 독일이 떠올랐다. 출판시장과 전업작가와 유한부인들이 주도하는 독자층이 등장하던 시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시 독서광이 출현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유행 덕분에 제일 많은 재미를 본 사람들은 커피장사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원작자, 마르틴 빌란트나 레싱 같은 문인도 저작권을 얻기 위해 애썼다. 번역을 하고 잡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전업작가의 입지를 다지려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첫 번째 세대였다. 정신적 자유를 얻기 위해 물질적 예속을 감수해야 했던 쓰라린 모순의 출발기였다. 같은 시대에 “명예로운 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글쓰기에 매달렸다고 해도 대문호 괴테는 인세 수입에서 제일 재미를 보았다. 기도와 웅변을 닮은 해묵은 독서방식이 막을 내렸고 독서는 비로소 즐기기 위한 취미활동에 편입되었다. 독서하는 주체로서 개인이 탄생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개인의 자각이라는 관점에서라면, 그림 속에서 ‘개인’이 주권을 찾았던 네덜란드 사실주의 미술의 시대에 비해 훨씬 뒤늦은 일이었다.

‘고서적’상은 전쟁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병사들이 내무반으로 쓰던 벽장은 서가로 바뀌었다. 36만권을 헤아린다는 서가 틈에서 듬직한 노인이 나타났다. 이 사람이 라이너 밍크 박사로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베를린에도 서점을 갖고 있다. 그는 진지하게 마을의 현황을 들려주고 서점을 소개했다. 전쟁 관련 서적은 나라·시대·장르별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방대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쉴 새 없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살아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전쟁사진집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면, 라이프치히 도서축제의 목록을 비롯한 도록·자료집·팜플렛과 리플렛, 조잡하지만 촌부의 손때가 묻은 ‘딱지본’이라고 할 소책자, 잡지 등이 풍성하다. ‘컬렉션’을 위한 앨범들은 매력적이다. 우표첩이나 그림엽서는 축에 들지도 못한다. 주화를 금박으로 재현한 기발한 취미의 구식 짝퉁 화폐들, 여러 독일 제국의 문장(紋章)과 고대의 장식유물을 복제한 동판화첩을 들춰보면 독일 철학자의 표현대로, ‘피와 땅’이 다를 때 취미와 관념은 얼마나 끔찍하게 달라지는지….

‘붕커샵’의 실내 전경. 군복과 군장이 책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
밍크 박사는 내년의 책마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로 바쁘다. 이태 전부터 시작한 애호가를 위한 중고 군용차량 견본시장도 준비해야 한다. 작년에는 수천 명이 몰리는 대성황이었다. 프로모션을 위한 행사 가운데 ‘군대 이야기의 밤’은 학계와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군대와 전쟁 체험에 대한 회상과 고백과 증언으로 이어지는 이 행사는 구술사(口述史)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밝히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작가 한스 울리히 브란트는 전쟁 중에 이 마을사람들이 도모했던 반나치 저항운동에 대한 기록문학 작품을 발표해서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동호회의 활발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후로는 이렇다할 공적자금의 지원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사민당의 하원의장 마티아스 플라체크가 방문하면서 새로운 지원책을 시사한 점도 향후 책마을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붕커와 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서점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배가할 예정이다.

마을의 마스코트인 올빼미 캐릭터.
이런 전망 속에서 러시아와의 친교는 각별하다. 모스크바 군사박물관과는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이 붕커 박물관 겸 공원은 독일군의 자취보다 소비에트와 그 뒤를 이은 러시아군의 영예에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고장이 일찍이 슬라브 민족이 정착했던 지역이라는 점도 은연중 도움을 주었을지 모른다.

지도와 도록과 나란히 첩첩이 쌓인 사진집들을 들춰나가자 우리 6·25전쟁에서 알몸으로 지프를 올라타고서 성조기에 철모를 걸고 승리를 구가하는 미군병사의 사진이 튀어나온다. 엄동설한의 어둠 속에 밤길을 재촉하는 난민,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슬픈 행렬도 이어진다. 차마 들여다보기 민망한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잔혹행위에 치를 떨다가 동성애자나 기형인간을 조롱하고 학대하며 기념촬영까지 감행했던 나치의 미소와 마주치자 벙커의 천장에 부딪쳐 울리는 그 웃음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폴란드 로츠 게토에서 몰래 카메라를 갖고 만행을 촬영했던 멘델 그로스만의 사진과도 재회했다. 초간본과 다른 저자들의 텍스트를 덧붙인 신판이 나오고 있다. 그 사진 가운데 어린 아이를 죽음의 가스실로 떠나보내며 철조망 사이로 입을 디밀어 부비며 나누는 최후의 작별 ‘키스 신’ 앞에서 우리는 “아우슈비츠 이후 더는 시도 쓸 수 없고 노래도 부를 수 없다”고 절규했던 철학자의 외침을 듣는 듯 얼어붙고 만다. 이토록 간절하다 못해 숭고한 입맞춤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폴란드 로츠 유대인 집단거주지에서 멘델 그로스만이 목숨을 걸고 몰래 촬영했던 사진이다. 여자들이 분뇨를 나르는 장면과 자식을 최후의 수용소로 보내면서 작별하는 장면이다. 그로스만은 결국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런 사진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면서도, 이탈리아 사람으로 독일에 살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요체를 훌륭하게 전했던 철학자 에르네스토 그라시가 기획한 문고판 ‘로볼츠’ 총서를 뒤적이는 것으로 긴장을 풀어보았다. 그는 이 총서를 통해 이탈리아 화가 아르킴볼도를 발굴하고 소개했다. 지금 파리에서 관중몰이를 하고 있는 아르킴볼도의 익살맞고 공상적인 ‘사서(司書)’의 이미지는 30년대에 유럽 전역에 ‘바로크’ 개념을 내세워 또다른 민족 신화의 바람몰이에 나섰던 독일 미술사학계의 과욕을 비웃는 듯하다.

창밖에서 비는 그칠 줄 모르며 음습한 분위기를 부추겼다. 그러던 중 세찬 빗줄기가 뿜어대던 물안개가 방금 전 버스에서 내린 한 무리 관광객에게 묻어 실내까지 몰려 들어왔다. 혹시 중세를 짙게 덮었던 그 물안개였을까? 민족주의라는 보검(寶劍)의 광채를 찾아내고 싶어하던 독일식 신비주의를 자극했던 바로 그 푸르스름한 물안개가 여기까지 밀려든 것일까…. 라인 강 서쪽과 알프스 이남 사람들은 이런 의욕에서 야만성만 보려 했고, 또 독일인은 얼마나 이 야만성에서 창조를 위한 파괴의 열정을 읽어내겠다며 강변을 거닐었을까….

‘고서적’에 이웃한 얀스 슈말렌베르거가 운영하는 ‘붕커숍’에는 서적 외에도 러시아 군복과 군장, 군모, 표장과 수기본 등이 가득했다. 러시아군 병사가 고향 우즈베키스탄에서 받았던 엽서에는 이슬람 사원의 그림우표가 우아하게 붙어 있다. 이곳에는 박물관 전시기획자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사진 등 도상자료를 수배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매우 잦다. 전투 현장의 고증에 필요한 상당한 부분을 해결한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 베를린 시가전과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나 잠수함 ‘U보트’ 전투를 다룬 영화들도 이곳에서 발굴한 자료에 크게 의존했다.

이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책의 마구간’은 밀려드는 책을 방치하다시피 쌓아두었다. 러시아 군이 마구간으로 쓰던 곳이다. 손가락 모양이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단 돈 1유로에 어떤 책이든 집어들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지역 ‘아카이브’처럼 기증품을 보관해두기도 하지만 낭송회나 음악회를 여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얼마 전처럼 팔순을 기념해서 갖고 있던 장서 전체를 기증하는 사람도 있어 마구간은 그 잘 생긴 군마(軍馬)를 떠나보낸 자리를 책장 넘기는 소리로 채워가고 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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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9) 스웨덴 쇠데르만란드 주(州)의 멜뢰사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0월 26일
-평화의 기원 켜켜이 ‘간이역 책숲’-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마을 한 복판에서 소떼들이 풀을 뜯고 젖을 빨며 거닐고 있다.

열려 있는 문을 밀고 들어서자 실내는 온통 붉은빛에 싸여 있다. 서가에 꽂힌 책도, 벽과 천장, 바닥, 커튼도 온통 붉었다. 마을 곳곳에서 탐스럽게 익어 나뒹구는 사과의 홍조를 닮았다. 그래서 창에 비치는, 초록이 채 가시지 않은 바깥 풍경은 더욱 광채를 띠며 첨단 LCD 화면처럼 번쩍였다. 피아노 위에 쌓인 책도 붉은 장정이다. 복도를 지나 그 다음 방으로 들어서자 깊은 호수 속으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파란색으로 실내를 마무리했다. 부엌 겸 식당인데 선반과 조리대 위까지 책이 차지했다. 이렇게 2층 건물의 방마다 특색 있는 서재로 꾸몄다.

나무 계단 특유의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안주인 바르브로 에르게티가 내려왔다. 반색을 하며 이방인을 맞는 중년을 훌쩍 넘긴 부인은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수더분하기 그지없으나 안경을 고쳐 쓰거나 펜을 놀리며 대화를 끌어가는 부인은 빈틈없는 수완가의 몸짓과 눈빛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녀는 6년 전, 개점 당시 찾아온 책마을의 왕, 웨일스의 리처드 부스 이래 가장 멀리서 온 가장 귀한 손님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기야 사흘 밤낮을 달려온 끝이기는 했다.

부인은 우선 책마을을 꾸려가는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부터 쏟아내었다. 또 이웃 나라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책마을 사정도 자세히 들려주었다. 특히 이웃 나라에 비해 당국의 지원이 미미하다며 그 인색함을 탓했다. 이런저런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민간단체로서 동호회가 조직되어 있고, 한 주일에 두 명씩 자원봉사자가 업무를 돕고 있지만 사람의 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녀는 마치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지난 몇 해를 버텨온 용사처럼 열정과 자제를 뒤섞으며 대화에 몰두했다.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멜뢰사 간이역은 평화를 기원하는 책방으로 개조되었다.
그녀 자신의 모험담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녀는 전직 기자로 에티오피아에서 스무 해 넘게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에티오피아인 남편을 만나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멜뢰사라는 이 작은 촌을 ‘평화의 책마을’로 명명한 것은 부부의 간절한 인연도 한몫했다. 에티오피아의 그칠 줄 모르는 내전과 분쟁, 독재자의 통치가 빚어낸 참담한 현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전쟁 중이기는 마찬가지라며 서로 쓴웃음을 지었다. 동포끼리의 부끄러운 대치야 말할 나위도 없고 레바논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까지 전장에 젊은이들을 보내고 있다고.

아무튼 평화 책마을을 위한 그녀의 분전에 원군이 없지는 않았다. 바로 엊그제 발표된 노벨 생리학상과 의학상을 주관하는 카를린스카 의과대학의 저명한 스벤 브리톤 교수라는 결정적인 후원자가 있었다. 브리톤 교수는 감염의학의 권위자로, 에이즈 치료와 연구를 위해 에티오피아에서 머물던 중 그녀를 만났다. 얼마 남지않은 은퇴를 준비하면서 평화에 대한 간절한 기원을 인생의 끝까지 조금이나마 실천할 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며 의기투합했다. 브리톤 교수는 주민이 현저히 줄어들어 불과 수백 명 남짓한 이 마을의 옛 간이역(簡易驛) 건물을 사들였다. 기찻길 너머 안골 농장의 방치되었던 커다란 창고도 기증받은 책을 쌓아두는 보물창고로 변해갔다. 마을과 직결되는 플레인 역이 있는 마을에는 인기작가 로버트 아스바카 부부가 집필실 겸 서점을 열고 정착했다. 그러나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학교 등과의 연계사업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인근에 왕국의 총리가 휴가를 보내는 별장지가 있지만 정객들이 책마을을 찾는 일은 드물다.

멜뢰사 책마을의 여장부, 바르브로 에르게티.
이렇다 할 급속한 발전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 젊은이들은 기회만 되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파리의 카페에서 일하거나, 유로디즈니랜드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 합숙소 같은 곳에 기숙하며 박봉을 감수한다. 스칸디나비아 시골처녀들 또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블롱드’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받지 않던가. 금발 미녀이건만 “머리는 텅 비었다”는 정당하지 않은 시샘과 놀림감이 되어야 한다. 이 모두가 타향살이의 서러움이다. 심지어 눈이라도 적게 오는 날에는 방학 때조차 학생들은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로 스키를 즐기러 떠난다. 물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알프스 이남에서 겨울을 나고, 여름 한동안만 고향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우리는 인터넷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광통신이 깔리지 않아 전화선을 연결해 사용하고 있어 접속은 느려 터졌다. 그래도 마침내 경향신문 홈페이지에 지난 연재물의 그림이 뜨자 그녀는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서로 안면이 있는 분들을 화제로 잠시 수다를 떨며 재미있어 했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녀는 늘어진 턱주름을 매만지며 겸연쩍어 했다. 그래서 “아 그거야 하느님의 귀한 선물 아닙니까”라고 위로해주자 그녀는 금세 숫처녀 같이 눈을 치켜뜨며 파안대소했다.

에나르 노렐리우스가 그린 ‘톰타르와 트롤’ 동화책의 삽화.
둥근 탁자가 가운데 놓인 응접실에 해당되는 방은 역시 현대문학이 주종이다. 놀랍도록 외국문학의 번역서가 많았다. 심미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종종 미학적 논쟁을 주도했던 웅변적인 조수에 카르두치의 시편과 그 자신 고문헌학자였던 이탈리아 문인 루이지 피란델로가 사서를 영웅으로 내세운 매력적인 ‘고(故) 마티아 파스칼’ 등 불어로 읽어야 했던 걸작의 스웨덴 원본이 보였다. 10여년 전에 화단의 위작을 둘러싼 세계를 통념과 다른 시각에서 조명하는 소설 ‘진실을 예찬하며’를 발표했던 토르니 린드그렌의 책도 보였다.

여류작가 코너도 풍성하다.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셀마 라겔뢰프의 ‘닐스 홀게르손의 경이로운 스웨덴 여행’도, 케르스틴 에크만의 ‘스쿨레 숲의 산적’도 모두 스웨덴 원본을 만나니 조금 흥분되었다. 스웨덴 문인으로 서구에는 애독자가 많은 에크만은 이 산적 이야기를 스칸디나비아의 오래된 민중설화 ‘톰타르와 트롤’에서 빌려왔다. 난쟁이 우화로 대변되는 민중신화는 어느 나라에서나 반응이 좋다. 산적이든, 숲속의 공상적인 존재이든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모험담 속에서나마 그 소망을 이루기 때문일 듯하다. 그런 염원은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또 결코 이뤄진 적도 없기는 하지만….

식당 창가에 파랗게 장정한 책들이 수북하다.
수십 년간 대중소설과 동화, 영화로 산업화한 ‘반지의 제왕’을 쓰면서 영국인 소설가 존 톨킨조차 난쟁이를 등장시킬 때 이 스칸디나비아 숲속의 해묵은 주인공들을 모델로 삼았다. 이렇게 난쟁이 설화의 원조 격인 톰타르와 트롤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우리는 비좁은 층계참을 돌아 지하로 내려섰다. 불을 켜자 5만여권이 넘는다는 장서가 첩첩산중이다. 또다른 작은 스웨덴 지하의 숲이었다. 톰타르와 트롤은 그 이본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스톡홀름에는 이들의 이름을 딴 패션과 장난감 매장도 성업 중이지 않은가. 스웨덴 농가 곁에 더불어 살았다던 이 야생의 존재는 그 자연의 숭고함을 잃고 차츰 도시의 상품으로 길들여져 애완용 짐승처럼 어색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에르게티 부인은 그 이본 중 가장 널리 읽힌 그림책으로 사랑받는 에나르 노렐리우스의 삽화를 덧붙인 1960년대 판을 내게 선사했다. 통나무가 책을 읽고 이불처럼 펼쳐진 책속에 숨은 꼬마가 정답게 들어 있다. 책을 읽는 고목은 점점 더 책을 덜 읽는 사람을 점잖게 질책하는 유머러스한 수법이다.

그러나 이 집의 백미는 북극 라포니 지방의 유목민 사미족의 구술회상록이다. 또 올해 탄생 300주년을 맞아 스웨덴 전역과 유럽에서 그 영광을 되새기고 있는 식물학자 칼 폰 린네의 수많은 저작 가운데 최고인 ‘라포니 여행기’를 꼽아야 한다. 이런 회상록과 여행기를 읽다보면 순록과 늑대의 울음소리 뒤로 숨어버린 저 전설적인 유목민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오후가 저물어 가는 문 밖의 햇살은 따사롭다. 대로변에서 아저씨들이 쇠공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길가의 가게로 들어가 커피를 청했다. 카페 한구석에는 주로 지역의 역사가 담긴 사진집과 문고판 소설이 놓여 있다. 가게를 보는 엄마와 함께 가게에 나와 있던 꼬마 알렉스와 잠시 놀아주었다. 애기 엄마는 젊은 금발의 미인이었지만, ‘블롱드’는 아니었다. 그녀는 사회당이 주력이라며 진보성향인 이 지역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고,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유기농 잼을 만들고, 이방인의 출현은 드물지만 그럭저럭 알뜰살뜰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가게를 나서자 두 량의 열차가 지나가고 건널목이 열리면서 소떼가 느릿느릿 몰려들며 콧방귀를 뀌어댄다. 바로 그 앞의 작은 간이역은 완전히 서점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동네 사람들은 소떼와 이따금 지나가는 열차 승객에게 구경거리가 되면서 접이식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하며 책을 읽을 것이다. 판잣집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마을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어도 땅바닥에 나뒹구는 사과를 집어 허벅지에 쓱쓱 문지른 다음 한입 베어 먹는 즐거움은 수십년도 더 된 기억 아니던가?

스웨덴 농촌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 ‘산딸기’의 거칠고 소박한 들판이 눈앞에 있다. 복분자를 빼닮은 산딸기도 주렁주렁 달려 있다. 책 창고가 있는 건넛마을로 접어드니 한 농가의 열린 창 밖으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활짝 열어 젖힌 또 다른 창고 앞에는 오래 된 펌프가 기념비처럼 서 있다. 그 창고 속에는 재활용품이 산더미 같다. 덤불과 사과나무 사이로 이따금 소울음이 들려왔다. 스타인벡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메리카 서부의 통나무집을 연상시키는 가옥은 붉고 푸른 페인트로 덮여 있다. 마당 차고 앞에 길게 드러누워 있는 젊은 부부는 정담인지 희롱인지 아무튼 무엇인가 서로 나누고 있다.

목가적인 풍경의 전형이다. 하지만 풍경이 제 아무리 흉중을 숨기고, 그 침묵이 제 아무리 진솔하다고 한들, 인간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해 주는 법은 없다. 그 넌지시 손짓하는 무서운 암시 때문에 자연은 그토록 숭고해 보이면서도 때때로 파렴치해 보인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이웃 마을에 사는 동호회장 아주머니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붉고 둥근 카펫을 현관 밖에 새로 깔았다며 에르게티 부인은 다시 한번 넉살을 부렸다. 찰칵거리는 소음도 없이 어느 순간에 찍히는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우리는 그 순간에 딱 어울리는 표정을 지어보려고 나름대로 쑥스럽게 숨을 죽였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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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약념’의 매혹

소문난 ‘요리의 달인’의 비결은 스파이스, 음식의 화룡점정이 몸에 좋은 약도 되네

<한겨레21> 제682호 2007년10월25일

▣ 채윤정 자유기고가 lizard25@naver.com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2주에 한 번씩 인도음식 전문점을 찾는 회사원 이찬우(33)씨는 매콤한 탄두리 치킨과 신선한 나프라탄 커리가 차려진 식탁 앞에 앉으면 호사가가 된 기분이 든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색과 향이 강렬한 음식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입 안에는 상사를 설득시켜야 할 논리정연한 말 대신 침이 고인다. 강렬하고 매콤한 향을 입 안 가득 씹고 있으면 일상에 활기가 돈다는 이씨는 요즘 들어 점심 시간이면 향신료를 활용하는 베트남이나 타이 음식전문점들도 찾는다.


△ 여러 가지 향신료들. 윗줄 왼쪽부터 육계피, 사프란, 겨자, 강황, 올스파이스, 회향, 아랫줄은 정향, 커민, 팔각, 육두구, 고추, 카더몬.(사진/ <향신료> 김영사 제공)

친구들에게 화려한 식탁을 제공해 ‘요리의 달인’으로 통하는 조혜란(47·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씨는 신선한 재료와 마지막에 첨가하는 향신료를 ‘비결’로 꼽는다. 평소에 잘 맛보지 못하는 요리를 선택하고 이에 맞는 향신료를 넣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조씨는 향신료가 요리를 요리답게 하는 필수적인 ‘조연’이라고 했다. 조씨의 부엌에는 냄새를 풍기는 다양한 씨앗과 열매들, 가루와 꽃잎이 밀폐용기에 각각 담겨져 있다.

허브와 스파이스의 차이

카더몬, 사프란, 정향, 아니스, 육두구, 강황, 커민, 올스파이스…. 낯선 이름들이다. 참깨, 후추, 계피, 고추, 생강, 마늘…. 여기는 낯익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제한된 수의 향신료만 사용돼왔다. 국내 식품회사들이 강황, 정향, 월계수잎, 통백후추 등 향신료 제품을 내놓고, 웰빙 열풍이 불면서 천연 향신료를 이용한 에스닉푸드 전문점의 수가 대폭 증가한 것도 2000년대 이후다. 음식칼럼니스트 정한진씨는 “식물의 열매, 씨앗, 껍질, 꽃의 일부로 이름처럼 향이 나고 매운 맛이 나며 먹을 수 있다면 모두 향신료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향신료가 허브와 혼동될 때가 많다. 식물에서 얻되 박하, 파슬리, 바질처럼 잎과 줄기에서 얻었다면 허브로 분류된다. ‘중국 파슬리’로 불리는 코리앤더의 경우 향신료와 허브로 모두 활용되는데, 씨앗은 향신료이며 잎은 허브인 식이다.

향신료가 특별한 이유는 독특한 향과 빛깔 덕분이다. 특별한 향은 향신료에 들어 있는 휘발성 기름인 정유가 낸다. 마늘의 톡 쏘는 듯 강렬한 냄새는 알리신 때문이고, 고추의 알싸한 냄새는 캡사이신, 생강은 청량한 진저롤 덕분이다. 노란색을 내는 카레나 사프란이 들어간 금색 요리는 시각까지 자극해 눈으로 한 번, 코로 한 번, 입으로 또 한 번, 세 번 먹는 셈이다. 식욕을 돋우는 역할 외에도 향신료는 고기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처럼 좋지 못한 냄새를 가리는 구실을 한다. 가령 정향은 방향유 함량이 20%에 달해 원재료의 향을 없애버릴 정도로 향기가 강하다. 그래서 햄이나 고기에 직접 꽂아서 요리하기도 한다. 미나릿과의 회향은 냄새를 되돌린다는 이름처럼 질 나쁜 와인 향을 부드럽게 바꿀 때 이용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말로 ‘회향씨를 뿌리다’라는 관용구가 ‘속이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당수의 향신료는 살균과 방부 효과가 있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해주기도 한다. 열대 지방일수록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음식 보존을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최근 미국 애틀랜타 식품기술공학자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마늘(75%)과 계피(80%)는 식중독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현대의 향신료는 주로 요리에 쓰여 먹는 즐거움을 배가하는 데 사용되지만 고대의 향신료는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향신료는 영어로 스파이스인데 약품이라는 뜻의 라틴어 ‘스피시스’(species)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양념도 사실 한자어로는 ‘약념’으로 표기한다고 알려져 있다. 향신료의 대표적인 건강 효과로는 소화를 돕는 작용을 꼽을 수 있다. 향신료에 함유된 알칼로이드 성분은 타액이나 소화액 분비를 촉진한다. 고기를 먹을 때 마늘을 함께 먹는 것도 소화를 돕기 위해서다.

멀미 날 땐 생강, 딸꾹질엔 회향

각 향신료마다 특별한 건강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차멀미를 할 때는 생강차를 마시면 진정이 된다.

최근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싯>은 생강이 멀미약보다 멀미억제 효과가 2배 이상 뛰어나다고 밝혔다. 딸꾹질을 할 때는 회향을 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졸리고 머리가 무거울 때는 사프란차를 끓여 마시면 좋고, 불면증에는 육두구 가루 약간을 뜨거운 물에 타 마시면 진정 효과를 낼 수 있다. 입안의 마늘 냄새는 코리앤더나 카더몬 씨를 씹으면 껌 이상으로 효과적이다.


△ 향신료 애호가인 조혜란씨는 신선한 재료와 음식 궁합이 잘 맞는 향신료를 고르는 것이 즐거운 식탁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향신료의 최음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지만 고대 로마인들과 중세 유럽에서는 암술 꽃대를 사용하는 사프란을 강력한 최음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프란은 향신료 중 가장 값이 비싼데, 꽃 100송이를 따야 겨우 1g 정도를 얻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원산지로 했던 중세의 향신료는 유럽에서 보석이나 화폐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사프란 500g은 말 한 마리 가격으로 거래됐고 생강 500g은 양 한 마리, 후추 한 줌은 황소 반 마리와 교환됐다. 이제 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요리에 향신료를 사용한다.

향신료에는 단일 향신료와 혼합 향신료가 있다. 인도의 커리나 마살라, 오향장육에 사용하는 오향, 일본 요리에 뿌려먹는 칠미, 프랑스의 카트르 에피스는 모두 몇 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혼합 향신료이다. 가령 오향은 산초·팔각·회향·정향·계피 등 오행철학을 기본으로 해 다섯 가지 향신료를 섞은 것이다. 카레가 노란색을 내는 것은 강황 때문인데 후추·고추·생강·겨자가 들어 있어 매운맛을 담당하고, 커민·회향·정향·계피·육두구·코리앤더 등은 향미를 더한다. 이런 향신료들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순한맛과 매운맛, 아주 매운맛의 카레로 나뉜다.

매일 6쪽 이상 먹으면…

단일 향신료로 대표적인 것들로는 우리나라 음식에 빠지지 않는 마늘, 고추, 생강, 참깨와 외국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육두구, 육계피, 정향, 후추, 커민, 강황, 바닐라 등이 있다. 요리에 언제 넣을지, 어떤 음식과 먹는지에 따라 효과는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마늘은 프랑스 남부지방과 지중해 지역, 인도, 중국에서 많이 사용된다. 마늘에는 살균 효과 외에도 혈액순환을 촉진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 6쪽 이상 먹으면 30~50% 이상 위암 발생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요리에는 통마늘을 그때그때 빻아서 쓰는 것이 향을 유지하는 데 가장 좋다. 고추는 9천 년 전부터 멕시코에서 사용돼 18세기에 이르러 전세계로 퍼졌다. 피망이나 파프리카와 같이 열매가 크고 두툼하며 매운맛은 약하고 단맛이 강한 고추와, 크기가 작고 매운맛이 강한 멕시코의 칠리와 같은 고추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 고추는 피망 쪽에 속하고 매운맛은 중간 정도이다. 고추에는 특히 비타민A와 C가 풍부하다. 비타민C는 감귤류의 2배, 사과의 50배나 된다.

생강은 값비싼 후추 대신 사용됐던 향신료로 단단한 뿌리줄기를 쓴다. 유럽에서는 생강빵이나 생강잼 등 제과나 디저트에 주로 사용되고, 중국에서는 고기 요리에, 일본에서는 식초에 절여 많이 사용된다. 생강은 원기를 북돋우고 갈증을 해소하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모든 부엌의 필수품인 참기름의 원료 참깨는 씨앗 중 가장 오래된 향신료이다. 참깨는 레시틴이 풍부해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기억력을 높이며, 탈모 방지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육두구, 정향, 커민, 강황, 사프란, 올스파이스 등은 이국적인 향신료라 처음 요리에 사용한다면, 4인분을 기준으로 1/2 작은술 정도 넣는 것이 좋다.

향신료를 무턱대고 사용할 수는 없다. 재료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에는 겨자, 고추, 마늘, 올스파이스, 정향, 참깨, 카레가 어울리고, 닭고기와 생선에는 겨자, 고추, 마늘, 사프란, 생강, 올스파이스가 어울린다. 추어탕에는 산초가, 샐러드 드레싱에는 겨자와 마늘, 올스파이스, 참깨, 후추 등을 사용한다. 향신료를 사용할 때는 통째로 구입해서 사용하기 직전에 직접 갈아 써야 가장 좋은 향을 낼 수 있다. 향신료는 오랫동안 보관하면 변질될 수 있으니 필요한 만큼 구입한다.대부분의 향신료는 6개월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밀폐용기에 넣어 습기가 없고 어두운 서랍에 넣어둔다.

음식이 거의 익었을 때 넣어라

가루로 빻은 향신료는 일반적으로 음식이 다 익어갈 무렵에 넣어야 향을 살릴 수 있다. 오랫동안 끓여야 하는 스튜류는 서서히 향을 우려내기 위해 향신료를 통째로 넣은 뒤 마지막에 건져주는 게 좋다.

향신료를 주의해야 할 사람도 있다. 가천의대 길병원 박동균 교수(소화기내과)는 “향신료는 식욕을 돋우지만 소화성궤양이나 만성위염이 있는 환자는 속쓰림이 악화될 수 있어 피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고혈압 환자는 자극적인 향신료는 피하되, 소금 대신 참기름, 후추, 겨자, 고춧가루를 소량 사용하면 싱거움을 덜 수 있다.

장소협찬: 라퀴진 아카데미
도움말: 이성재 교수(고대안암병원 통합의학과), 김영순 교수(고려대 식품영양학과)
참고한 책: <향신료>(김영사), <향신료의 이야기>(살림), <식탁 위의 쾌락>(열대림), <먹거리의 역사>(까치)

 
향 그대로 음식에 얹는다

사프란은 우리고 올스파이스는 알갱이 갈아서… 주요 향신료 사용법



육두구:

그윽하고 좋은 향이 난다. 맛은 약간 쓰고 맵다. 크림소스, 생선스프, 그라탕에 사용된다. 육두구는 알갱이째 구입해서 쓰고, 사용하기 전에 갈아서 쓴다. 육두구의 알칼로이드는 독성이 있어 너무 많이 먹으면 마취 효과가 나타나 경련을 일으키거나 불면을 유발할 수 있으니 소량 사용한다. 임산부나 간이 나쁜 사람은 먹지 않는다.

정향:

맛이 달고 맵다. 식욕 증진에 좋다. 정향의 꽃봉오리를 건조시켜 만든 것으로 못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맛이 얼얼해 치과에서 마취제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혼합향신료에 많이 사용되며, 봉오리로 구입해서 직접 갈아쓰는 게 좋다.

커민:

케밥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향신료로 향이 강하며 톡 쏘는 쓴맛이 난다. 인도의 카레 요리나 탄두리 치킨에 사용된다.

겨자:

맵싸름한 맛으로 흑겨자, 갈색겨자, 백겨자로 나뉜다. 흑겨자는 짙은 갈색이나 검정색으로 겨자 중에서 가장 맵고, 백겨자는 향이 고급스럽고 덜 매워 요리에 가장 많이 쓰인다. 갈색겨자는 인도 카레 요리에 쓰인다. 겨자는 씨앗 그대로는 매운맛이 없으나 가루를 내어 물에 개어두면 효소의 작용으로 매운 맛이 난다. 머스터드 소스에 사용된다.

강황(튜메릭):

카레의 노란색과 머스터드의 노란색은 이 강황 덕분이다. 주황색의 고운 가루로 생강과 비슷한 맛이 난다. 요리 마지막에 넣어야 쓴맛이 나지 않는다. 강황의 커큐민이란 색소는 치매 예방과 항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사프란:

10만 배로 희석해도 금빛을 띠는 강력한 염료이다. 특유의 요오드향과 쓴맛이 난다. 지중해, 중동, 인도에서 쌀요리나 수프에 많이 사용한다. 사용하기 직전 미지근한 물이나 육수를 조금 부어 20분 정도 우려내서 소량 사용한다.

올스파이스:

후추알과 비슷하게 생겼고 정향, 육계피, 육두구의 향이 모두 난다고 해서 올스파이스란 이름이 붙었다. 피클을 만들 때 사용하고 제과에도 많이 쓰인다. 맛과 향을 쉽게 잃는 특징이 있으니 알갱이로 사서 빻아서 쓴다.

 


 

이것이 인도 맛 타이 맛!

이국 향 가득한 베스트 향신료 요리

인도 : 탄두리 치킨

재료: 닭다리 2개(1kg 되는 중닭의 다리를 잘라 손질), 레몬 반개, 플레인 요구르트 반컵, 강황 1스푼, 탄두리 파우더 2스푼, 가람 마살라 1스푼, 와인 조금
① 파우더를 모두 섞고 레몬즙을 짜서 섞는다.
② 손질한 닭을 위 양념을 묻혀 서너 시간 재워둔다. 큰 닭은 중간중간 칼집을 내어 간이 잘 스며들게 한다.
③ 그릴을 예열한 뒤 11분간 앞면을 굽고, 4분간 뒷면을 굽는다.

△ (사진/ 인터컨티넨탈 호텔 제공)

타이 : 톰양궁 수프

참새우 10마리, 양송이 200g, 레몬그라스, 라임잎 5장, 우유 1컵, 붉은 고추 7개, 고추장 3티스푼, 물 4컵, 타마린드 쥬스 2티스푼, 액젖과 라임쥬스 2~3스푼.

① 새우를 다듬어 길게 반으로 나눈다.
② 레몬잎을 잘게 썬다. 버섯은 먹기 좋게 자른다. 라임잎은 잘게 찢는다.
③ 끓는 물에 레몬잎과 라임잎을 넣고 3분 동안 끓인다. 새우와 버섯을 넣고 새우가 익을 때까지 끓인다.
④ 고추장과 타마린드 쥬스, 액젓, 라임쥬스, 우유를 넣는다. 수프는 매콤새콤하며 약간 짠 게 좋다.


△ (사진/ <향신료> 김영사 제공)

스페인 : 레드와인 칵테일, 상그릴라 와인칵테일

레드와인 2병, 사이다 1.5리터, 물 2/3컵, 설탕 2컵, 육계피 4쪽, 정향 5개, 바닐라 1줄기, 딸기 2컵, 레몬 2개, 오렌지 3개

① 냄비에 물과 설탕을 넣은 뒤 중간 불에서 끓여 설탕이 다 녹으면 육계피, 정향, 바닐라를 넣고 3분간 더 끓인 뒤 식혀둔다.
② 딸기는 반으로 자르고 레몬과 오렌지는 얇게 썬다.
③ 큰 병에 만들어둔 시럽을 체에 걸러 담고 딸기, 레몬, 오렌지, 파인애플을 넣은 뒤 와인을 부어 잘 섞는다.
④ 냉장고에 6시간 이상 넣어둔다. 마시기 전에 시원한 사이다를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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