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창당이 원칙적이고 현실적"
[인터뷰-홍세화] "자주파 장악 민주노동당 진보정당 아니다"

이광호
출처 : <레디앙> 2007-12-28


예상치 못한 대선 참패를 겪은 민주노동당이 지금 ‘예상대로’ 크나큰 내부 진통을 겪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에게 낙제 점수를 받았으며,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았다. 외면과 지지 철회, 이를 통해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향해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민주노동당 평당원 홍세화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역사적 결별의 필요성도 얘기한다. 그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데 따르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참기 어려운 내부 모순도 분명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좁디좁은 편집국의 구석 자리에 책상을 놓고 앉아 있었던 홍세화 기획위원은 이제 한겨레 건물 8층에 작지만 독립된 방을 하나 가졌다. 그의 글쓰기 산실에서 대선 이후 당의 진로 등에 대해 그의 말을 들어봤다.

* * *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있었다. 어떻게 보고 있나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다 아는 것처럼 이번 대선 결과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보다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노 정권은 서민과 노동자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를 받아 안고 출범했지만 이내 배반했다. 참여정부가 아니라 배반의 정부다. 배반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 내용을 보면 우선 참여정부가 패러다임의 개혁을 내걸었지만 경제주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사회와 경제부문의 균형, 복지와 사회구성원 간의 연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지만 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채 성장 위주 정책으로 몰고 갔다.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은 시도도 못해보고 박정희 시대부터 내려오고 있는 경제주의 논리가 유지되고 관철됐다. 이른바 87년 체제가 정치적 민주주의에 국한됐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권력이 이동한 것이 민중의 처지에서 보면 어떤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자리, 즉 좋은 일자리 3만개의 주인이 바뀌는 것 말고 뭔 차이가 있을까.

다음으로 투표한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이명박이나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노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유사성과는 다른 면에서 우리 사회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퇴영적이라는 걸 의미한다. 이와 관련돼서 진보정당이 마땅히 치고 나가야할 부분을 놓쳤다는 점은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해야 된다.

-투표를 하지 않은 40% 가까운 사람들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너무 인색하다는 시각도 있다.

=대세가 이미 기운 것처럼 보이고, 개혁으로 포장된 세력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고, 결국 표를 줄 데가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지표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동당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사실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 포장된 개혁세력에 실망한 표를 받았는데, 6% 득표에 그쳤다.

뭔가 흡인력과 친화력을 줄 수 있었음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진보정당의 책임이 막중하다. 흔히 말하는 대로 사표 부담이 없었음에도 허망하고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데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의 참패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나.

=1차적으로 후보에게 있다. 식상하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한계를 스스로 짊어진 채 후보가 됐다.

그 다음에는 내부 혼선이다.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 ‘코리아연방공화국’ 같은 것들은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일반 서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할 내용들이다.

그 동안 당내 정치에 매몰되어 대중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중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서 진보정당으로서 차별성을 보이는 데 완전 실패했다. 대중적인 친화력과 흡인력이 작동되지 못한 것이다. 좋은 기회였는데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민주노동당 당권파인 자주파를 광신자 집단에 비유하기도 했다.
 

-홍 위원께서는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왜 그런가.

=민주노동당의 당권파인 자주파 또는 주체파는 한국적 분단현실의 산물이긴 하나, 그들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책임 주체도, 토론 주체도, 진보의 주체도 아니다.

책임은 지지 않고,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공부와 학습도 하지 않는 종북 주체일 뿐이다. 자신들끼리 폐쇄회로를 이루고 있으며 수적으로 우세한 당내 헤게모니 장악에만 관심이 있다. 당은 통일전선 전술의 시각에서 보고 있으며 진보는 포장이지 내실이 아니다.

자주파 또는 주체파가 장악한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토론과 학습이 없는 진보정당의 예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자주파 중 누구도 자기비판이든 술회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이 없다. <참여정부 평가포럼>의 안희정 씨는 ‘폐족’ 발언이라도 하고 있지 않나?


-향후 진로를 놓고 민주노동당은 격론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 논의는 서로 갈라서서 딴 살림을 차리는 것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새 정당 창당과 내부 혁신이라는 큰 가닥의 논의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4월9일 총선까지 시기적으로 너무 안 좋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민이 많은 것을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하고,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권을 잡고 있는 주체파의 환골탈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토론이 가능해야 기대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는 광신자 집단이나 사교(邪敎) 집단의 그것에 가깝다.


광신자들은 사람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가르고 믿지 않는 자는 대화의 대상으로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사교집단은 교주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리고 열성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광신자 집단이나 사교 집단과 비슷하다. 우리는 물론 그들의 열성적인 점은 배워야 한다.

그들은 이미 말한 것처럼 통일전선론에 입각한 진보정당으로 포장한 채 내부 헤게모니 장악에만 관심이 있다. 그 결과가 이번 대선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파탄 났고, 재정적으로도 파탄 났다. 당 재정 적자 규모가 30억 원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에 머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총선이 10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도 현실이지만 이런 점들도 현실이다. 이들을 허덕이면서 안고 가는 것은 마이너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차라리 제로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정당 창당이 더 낫다.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
 
-당원은 물론 대중들에게 분당으로 비쳐질 창당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 예컨대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의원은 나름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진솔한 자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데 민주노동당에서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정치인들이 관성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용기가 부족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이 당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을 때 심상정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경우 봉합하는 수준으로 가면 안 된다. 특히 종북적인 것을 털고 가야 된다는 게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 어느 선에서 털어낼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것이 전제됐을 때 새로운 정당 창당이 아닌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수준의 쇄신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일심회 사건, 독도와 북핵 관련 발언, 회계 문제 등에 대한 확실한 선을 그을 수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이 분당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될 수 있다.

-대중들을 설득하거나 그들에게 설명하려면 더 많은 것이 필요할 거 같은데.

=대중들이 볼 때 자기들끼리 싸우고 갈라서는 것으로 보일 거다. 하지만 우리가 당 안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너무 많을 울타리를 치면서 시야를 좁히고 있을 수도 있다.

분당과 새로운 당 창당 문제에 대해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염증을 느끼거나 식상해서 떠나고 벗어난 사람들이 많다. 당원 번호와 실제 당원 수의 차이가 이를 말해주는 대표적 지표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왜 빠져나갔는지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껏 당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온 장이었다.

새로운 정당 창당 과정에서 사회당, 초록당과 노동운동의 좌파 조직 등과 함께 진정한 진보정당을 한다면 대중들도 납득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기 때문에 좁은 영역만 보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당에서 멀어져간 지식인 그룹들도 다시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이 탄탄한 진보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면 마이너스가 아니라 제로에서 출발할 수가 있다.

-민주노동당을 기준점으로 가정하고 좌우의 스펙트럼까지 포괄하는 신당 창당 주체를 상정했을 때 무엇이 공통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비정규직 노동자 해법, 한미FTA에 비판적인 세력이면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당내 야당이라는 ‘평등파’가 북한을 모델로 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쪽수’에 밀려서인지 토론도 제대로 제기하지 못하면서 북유럽을 모델로 하는 세력을 우습게 보는 것에 대해 나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진보정당의 외피를 쓰고 헤게모니를 관철시킨 당내 주체파에 대해서는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면서 소수 사민주의 세력을 가볍게, 경멸하는 듯한 태도는 정말로 황당하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바깥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민주노총 국민파가 중앙파와의 헤게모니 투쟁 때문에 자주파와 손잡는 일을 납득할 수 없는데, 마찬가지로 당내 평등파의 행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적대적 공존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알량한 권력 분점을 위해서라는 얘긴가. (홍세화 기획위원은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황당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한국인들의 의식 지형을 보면 북유럽 모델도, 심하게 표현하면 ‘극좌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세금폭탄론이 통하는 사회에서 북유럽 모델을 가소롭게 보니 가소로운 것이다. 북유럽 나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그 같은 사회를 만들어냈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우습게 알고 있다. 민주주의 성숙의 역사에는 월반(越班)이 없으며 간혹 월반을 했다 해도 결국은 되돌아온다.

   
  ▲홍위원은 노회찬, 심상정 같은 대중정치인이 신당의 비례 후보에 전면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은 새로운 당을 만드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에 이런 흐름이 가시화된다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일정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을 텐데.

=나야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할 것이다.

정서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지금까지처럼 경계지점에서 척탄병 노릇을 할 것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치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정치는 하는 것이다.

현실 정치적으로 역량이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게 배치가 되고, 나 같은 경우는 그 장소에는 직접 뛰어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그걸 짊어지고 가는 게 맞다. 당면한 필요성에 의해 움직이기보다 긴 안목으로 보고 싶다.

-신당을 지금 만들어서 총선을 돌파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이는데.

=심상정과 노회찬 의원 같은 사람을 신당의 비례후보로 전면적으로 배치해야 된다. 그들이 내가 말한 현실 정치적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다. 또 정태인 씨처럼 검증된 사람을 전진 배치하면서 돌파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이 정체성이 드러나게 될 텐데 합리적 진보세력은 폭넓은 소구력을 가지고 있다.

약간 다른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당과 당원 사이의 친화력을 표현하는 방식이 당비 1만원 내는 것만으로 대표돼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며 시작해야 될 때라고 본다.

또한 당원들은 당비만 내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안에 대한 학습과 토론이 이뤄지는 기본 과정이 있어야 되며, 당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단계를 거치도록 당이 운영돼야 한다.

-권영길 후보의 거취에 대해서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계를 떠나라고 얘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백의종군 수준이 아니라 성찰적인 자기 술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영길 의원과 같은 대중 정치인의 손실은 당의 손실이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오렌지색,붉은색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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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체포·강제추방·법개악까지…냉담한 사회 ‘슬픈 자화상’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처우 악화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홍세화 기획위원
출처 : <한겨레> 2007년 12월 20일


» 이주노조 중부지부장 나렌드라(가운데)씨 등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에서 이주노조 집행부 표적단속을 규탄하고 이주노동자 운동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지난 주말인 12월15~16일, 소말리아 사람 400여 명을 실은 두 척의 배가 예멘 땅에 도착하기 전에 침몰했다. 자본 축적기인 16~19세기 그들의 선조들이 노예로 잡혀 울부짖으며 떠나야했던 땅을 오늘 그 후예들은 죽고 살기로 떠나려고 한다. 억지로 끌려갔던 과거에 비해 자발적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그만큼 역사는 진보한 셈인가. 오랜 착취로 발전의 토대를 잃고 미국식 소비문화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면서 나타난 모습인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 이하의 조건으로 자본의 착취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배에 탔던 사람 중 200명에 가까운 이들이 익사하거나 실종됐다고 ‘난민을 위한 유엔고등판무관’은 밝혔다. 그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이 뉴스는 단신으로도 취급되지 않는다. 사람의 가치는 대략 에너지 소비량에 비례하고, 소말리아 사람 200명의 가치는 미국 사람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연대 ‘촛불집회’ 21일부터 매주 금요일 열려

‘세계인권선언일’(12월10일)과 ‘세계이주민의 날’(12월18일)을 사이에 둔 12월13일 새벽, 한국 정부는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던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의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을 강제 추방했다.

정부는 11월27일에 세 사람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표적 체포’한 바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낳고 최근 ‘다문화’를 강조하는 한국 정부가 바란 대로 이 소식은 대통령 선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국내외 인권노동단체의 항의를 간단히 일축했고, 진정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 강제추방을 하지 말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요청도 무시했다. 그리고 강제추방 집행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피하려고 보호소 철창을 절단해 세 사람을 빼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국내 시위활동에도 가담했다”고 추방 이유를 들었다. 미등록(불법체류)인 주제에 감히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그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해 그 사회 인권 상황의 정확한 증언자가 된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해 그 사회 노동조건을 정확히 알게 해주는 증인이 된다.

경제동물에게서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기대하기 어렵듯이, 인권의식이나 연대의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른바 ‘경제’ 대통령을 찍는다는 투표일인 12월19일 오후, 서울 종로5가의 기독교회관 7층에 있는 ‘단속추방 중단,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 이주노조 표적 탄압 분쇄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농성장에는 이주노동자와 연대활동가 2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8월부터 집중된 단속으로 이주노조는 생존 위기에 처했다. 투쟁을 통해 조직을 재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냉담하다. 게다가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마구 ‘사냥’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을 개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농민운동가가 말했듯이 “이 땅은 우리가 우리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다. 이 땅은 우리 자손에게서 잠시 빌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이 땅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하는가. 21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6시30분에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강제추방을 규탄하고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와 단속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그 자리에 함께 하려는 것은 나 또한 한 때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인간이며 노동자로서 잠시나마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함이다.

내오랜꿈 ---------------------------------------------------------------------------

내가 DJ나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민주니 개혁이니 진보니 하는 말만 끌어들였지 실제로 그런 가치에 걸맞는 정책을 제대로 이루어낸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진보라는 게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에 기초해서 정책들을 입안하는 것이다. 예컨대 하루 십만 명이 이용하는 건물에 단 한 사람의 장애인을 위해서라도 장애자 이동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인류 문명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결론내린 '진보'적 가치인 것이다. 여기에 기회비용이니 효율성이니 하는 가치는 장애인이라는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서는 부차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것.

도대체 그렇게 요란했던 '민주개혁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진보적 가치에 걸맞는 정책들이 몇 개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노동유연성을 빌미로 도입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나 이주노동자 문제는 DJ/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최악의 상태로 치달아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문제로 발전했다. 다수당이 아니라서 힘이 없어 폐지 못한다던 국가보안법은 다수당이 된 뒤에도 걸레가 된 채 표류하고 있다. 석유자원을 위한 침략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해도 민주투사들은 '국익'이라며 지지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며 생지랄을 하다 온 나라의 아파트와 땅값을 사상 최고로 올려놓았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인텔리 출신의 '민주투사'(?)들은 DJ/노무현 정부를 진보개혁세력이라 외치며 자기위안을 일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 울분을 토하는 많은 정동영 지지자들, 통합신당 지지자들을 보면 안쓰럽다 못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당하고도 애정이 남았다니 존경스럽다. 하긴 그렇게 당하고 난 뒤 문국현으로 옮겨간 '민주투사'들도 많지만...

이랜드 노조간부 해고 소식이나 이주노동자 관련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진보라는 가치를 자신들의 존재가치와 비슷한 걸레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에게 하릴없는 분노가 쏟아진다. 부질없는 짓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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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2-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간 해놓은게 하나는 있어요. 국가인권위원회!
별로 힘을 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 않나? 이것마저 이제 해체될까봐 겁나요.

내오랜꿈 2007-12-21 19:19   좋아요 0 | URL
그렇군...
그러고보니 <월간 인권>을 창간호부터 받아보고 있네.

이런 것 학교에서 받아 보나? 애들한테 보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인권위 홈페이지에서 "웹진 인권" 찾아 들어가서 구독 신청하면 무료로 보내 주고 있슴.

바람돌이 2007-12-23 23:59   좋아요 0 | URL
아 몰랐어요. 내일 가서 바로 신청해야지...
좋은 정보 감사!!!
 

지적 인종주의
홍세화칼럼

홍세화 기획위원
출처 : <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12일


» 홍세화 기획위원
학업 성적의 차이가 사회적 차별을 낳는 것을 ‘지적 인종주의’라면서 강하게 비판한 사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였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지적 인종주의자’들이다. 인종주의자들이 인종에 따른 차별을 당연히 여기듯이, 우리는 학교 성적이 사회적 차별을 가져오는 것을 아주 당연히 받아들인다. 우리에게 내면화된 ‘지적 인종주의’는 미성년자들에게 ‘너는 1등급’이고 ‘너는 9등급’이라고 등급을 매기는 행위도 마다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야만의 교육은 야만의 사회를 낳는다.

‘지적 인종주의’ 사회에서 쌍둥이 자매 여고생이 나란히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일단짜리 기삿거리도 되기 어렵다. 불감증도 이미 중증에 이른 것이다. 부모 자식 관계가 부모가 가진 재산과 비례한다는 뉴스도 이젠 놀랍지 않다. 철저히 서열화된 대학 졸업장의 효용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는 전적으로 부모 능력에 따른다. 주택 보유 능력처럼 교육자본도 부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에서 자식은 부모 재산이 가진 힘에 민감히 반응하도록 일찍부터 학습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과 부모 사이의 생명에 관한 그 무궁한 의미와 찬가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져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며 인간과 자연을 알아가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우쳐 나가는 관계는 돈의 위력 앞에서 왜곡되었고, 일그러진 교육제도가 주는 불안과 공포 앞에서 한낱 초라한 시 구절에 불과한 것이 돼 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지적 인종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오로지 등급과 등수를 매기는 데서만 의미가 있고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진다. 가령 한국의 교육현장에서 80/100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점수가 몇 등이고 몇 등급인가만 중요하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교육이 교육이 아님을 알아야 하지만 지적 인종주의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 교실과 학원 강의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학습 영역도 지극히 좁다. 주어진 영역, 닫힌 영역에서 등수와 등급 경쟁을 하기에 끊임없이 선행 학습, 반복 학습을 거듭하면서 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도록 학습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는 배경이다.

더욱이 인문사회과학은 본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는 학문임에도 등급과 등수를 매겨야 하므로 학습 내용은 단답형, 객관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영역에 머문다.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추게 하지 않는 대신, 단순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만 묻고 그 결과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지배자든 피지배자든 인간을 이해하는 눈이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지배하고 지배당한다. 사회적 책임이 없는 지배와 그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 관철된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반노동자적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단순 암기와 문제풀이로 등급, 등수를 매기는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학력 차별과 지적 인종주의를 어느 시대에나 있는 보편적 사회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누군가 지적했듯이, 주어진 사회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은 지배계급이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보다도 훨씬 넓고 다양하다. 등급제 문제로 말이 많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안의 절망과 체념을 내던지는 일이다. 대학 평준화에 대한 적극적 상상력은 지적 인종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학부모가 알아야 할 것 - 교고등급제에 대한 논란

홍세화 기획위원
출처 : <한겨레신문> 2004년 09월 25일


고교등급제에 대한 분노의 심정을 담은 한 학부모의 글을 읽었다. 서울 강남권 바깥에 산다는 그는 능력만 된다면 이 땅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나 자신 교육이민을 강요받은 처지가 됐었고 그래서 지금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지만,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저을 수 만은 없었다. 세살과 여섯 살이었던 두 자식이 무상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아 대학원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고마웠던 일은 아이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도 불평등을 겪지 않아 기죽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린 아이에게 불평등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은 없다. 더욱이 사회구성원들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주는 것은 민주주의사회라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보편 원칙이다. 그것이 버젓이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부유층 자식들이 서울대를 점령하기 시작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대의 문은 치솟는 사교육비와 족집게 과외비를 충당할 수 있는 부유층에게 넓게 열려 있다. 이에 뒤질세라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이 집안 출신배경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음이 의혹의 수준을 넘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땅의 교육계 귀족들은 사회구성원들을 입시지옥의 질곡에 집어넣는 것만으로 부족하여 강남의 부유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 학생과 학부모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다.

오늘날 경제적 자본과 부는 재산뿐만 아니라 교육자본까지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부, 권력, 명예가 사회귀족의 독점물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고 그런 용들조차 개천 시절의 기억을 상실한 채 사회귀족의 권위를 즐기며 교육을 통한 계층순환을 도모하지 않는다. 빈익빈부익부는 더욱 심화되고 열악한 사회안전망 아래 사회상태는 더욱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어린 사회구성원들을 잠도 제대로 못 자게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언뜻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듯한 착각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경쟁은 이미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다. 부유층 자식들이 승자의 모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구성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치열한 경쟁과정은 계층의 고착화와 대물림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거짓 속임수에 가깝다. 동시에 경쟁에서 승리한 자의 지배를 받아들이도록 작용한다. 교육과정 자체가 이미 인권침해 과정이니만큼 인권을 침해하는 지배까지 받아들이도록 하며, 학교에서 강조되는 질서의식과 더불어 ‘경쟁에서 이긴 자의 질서에 승복하라’는 명령에 자발적으로 복속하도록 한다. 사회귀족의 대물림 지배가 사회구성원의 비판과 견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사회귀족은 비용을 투자했고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을 당연한 보상인양 인식한다. 사회적 책임의식을 찾기 어렵고, 비판과 견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오만과 뻔뻔함을 내면화한다. 귀족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능력도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머리 좋다는 학생들을 긁어모은 위에 특별법으로 특혜를 받은 서울대의 국제경쟁력이 세계 150위권 밖에서 맴돌고 있는 실정은 대부분의 사회귀족들이 자랑하는 학벌이라는 교육자본이 국내경쟁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보잘것 없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능력도 부족하고 사회적 책임의식도 없는 사회귀족들의 대물림 지배구조. 그러나 이 땅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모두 내 자식만의 계층상승만을 도모한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 구조를 불평 속에서 받아들인다. 그것은 마치 로또복권 횡재의 기대와 상상 속에서 오늘의 잘못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의 자식이 스카이(S.K.Y)대학을 통해 사회귀족의 반열에 입문할 가능성은 학부모가 로또복권에 당첨될 가능성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 이 땅의 학부모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분노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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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1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이 없는 학문에 자꾸만 답을 하라하니... -_-

내오랜꿈 2007-12-12 17:28   좋아요 0 | URL
<한겨레>에서 옮겨 놓고 나니 옛날에 비슷한 주제로 홍세화 선생이 썼던 글이 생각나서 찾고 있는 사이에 아프님이 들리셨군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다른 것은 뭐 현재의 여당이나 정책이란 게 '그나물에 그밥'이라 별로 걱정이 안 되는데, 교육정책 만큼은 조금 걱정됩니다.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아야 몇십년 뒤에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교육인데, 지금도 엉망인 것을 더 엉망으로 만들테니 말입니다.

우일신 2007-12-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신의 돈과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욕구까지야 뭐라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희와 같은 불법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 문제를 삼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돈과 권력 뿐 아니라 부모들의 욕심과 세계관까지 고스란히 세습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세태는 정말 안타깝죠. 정년퇴임을 앞둔 김수행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요즘 서울대 학생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잘 모른다고....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덕에 소외된 이웃들과 부딪힐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것이겠죠. 내오랜꿈님이 말씀하신 대로 결국 교육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요....

내오랜꿈 2007-12-13 00:1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부모들의 세계관'이 그대로 자식에게 '세습'되고 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한테 대선에서 누구 지지할 거냐,고 물어보면 아버지가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있다고 합니다.. -.-;
 

"참여정부, 새로운 문화 창조에 실패"
[정치와 사람들④ 홍세화] "그래도 한나라당은 '삼진아웃' 돼야"

정제혁/객원기자
출처 : <프레시안> 2007년 11월 19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에게 '인문성'이란 대단히 정치적인 주제다. 그에게서 주체성, 의식, 문화와 같은 어휘들은 직접적인 정치적 의미를 얻는다. 그가 보기에 정치, 사회, 경제적 진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하는 것만큼 이뤄진다. 달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묘책은 없다.
  
  의식의 발전이란 뭔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각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고민의 사회적 축적 없이 이뤄진 단기적 권력 변동의 결과는 늘 허탈하다. 동일한 의식의 장에서 사람들은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그저 정치적 선호를 옮긴다.
  
  홍 기획위원은 "참여정부의 잘못은 새로운 문화의 창조에 실패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노력 없이 오로지 경제수치에만 매달렸다는 얘기다. 이제 사람들은 나날이 경제적 동물로 축소되고 있고, 이런 풍토에서이명박 씨가 고평가되는 건 외려 자연스럽다. 이명박 씨가 뜰 수 있는 정신적 토양을 일군 건 노무현 정부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정치도 바뀐다. 홍 기획위원은 "사회구성원의 의식을 한꺼번에 바꾸는 게 혁명"인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집요하고, 성실하고, 무엇보다 겸손"하게 다가서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이 바뀌어야 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제도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구성원의 의식에 관계하는 제도 가운데 그가 특히 주목하는 건 교육이다. 그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무상교육, 무상의료만 가능하다고 해도 참 행복하겠다. 무상교육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홍 기획위원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고 했다. '잃어버린 10년'의 기득권이 부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조중동과 한나라당 세력을 삼진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며 "이념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한나라당에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진보정치에 대한 예의'라는 칼럼을 통해 '비판적 지지론'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던 그가 "한나라당을 패배시키는, 삼진아웃시키는 가능성을 놓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홍 기획위원은 "다른 어떤 후보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품격'이라는 게 보이지 않나 싶다"며 문국현 씨에게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개혁의 문화' 조성 실패"
  
▲ ⓒ프레시안

  프레시안:이회창 씨가 대선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회창 씨와 이명박 씨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홍세화 : 차이야 있겠죠. 이회창 씨 발언을 보더라도 수구적인 냉전보수의 대표성, 차별성을 내걸고 있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이 집권에 두 번 실패하고 나서 수구적인 냉전보수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느냐 하는 흐름이 있지 않았나 생각되고, 이명박 씨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추대됐다고 보여집니다. 과거의 냉전보수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특히 남북관계에서는.
  
  프레시안 : 이회창 씨의 등장을 퇴행으로 볼 수 있겠군요.
  
  홍세화 : 그렇게 볼 수 있죠. 퇴행이라고 할 수 있죠. 한나라당의 울타리 안에 있던 냉전보수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좀 빼앗겨온 것 아닙니까? 그 세력들이 이제 나서겠다고 하는 거죠. 한편으론 자기들이 망하는 길을 재촉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퇴행이지만 한번쯤은 거쳐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프레시안 : 이회창 씨의 등장을 보수의 분화로 보시는군요.
  
  홍세화 : 수구세력의 분화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회창 씨는 극우적이며 냉전적인 보수죠. 이명박 씨는 울트라 신자유주의자고요. 수구적인 보수세력은 한나라당으로 뭉뚱그려졌는데 거기서도 분화가 이뤄지는 거죠.
  
  프레시안 :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 중 상당수가 현재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일까요.
  
  홍세화 :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경제지상주의적 조류와 맞물리면서 이명박 씨에게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여정부의 잘못은 새로운 문화의 창조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개혁의 문화를 조성하지 못했다는 거죠.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풍토를 만들지 못했다는 거죠. 경제지상주의적 가치관으로 보면 노무현 정부나 한나라당이나 박정희 집권 때나 차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새만금 사업 같은 경우 오로지 경제적인 수치의 문제로만 접근했는데, 그런 기준으로 보면 이명박 씨가 성공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겠죠. 지금의 40~50대는 20대에 '이 억압에 맞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강요받으면서 정치적 동물이 됐고, 나이 들어 외환위기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거치면서 '경제적 동물'로 축소됐죠. 지금 20대는 그런 과정 없이 '경제적 동물'이 되고 있고요. 결국 모두 경제적 동물이 되어 있는 셈인데, 이들의 가치관으로 보면 이명박 씨에게서 커다란 하자를 발견하기 어렵죠.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결국 누가 해도 마찬가지네' 하면서 '저 사람이 경제는 잘 할 것 같다'고 이명박 씨를 지지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한나라당이 '삼진아웃' 돼야 하는 이유
  
  프레시안 : 한나라당과 범여권의 차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 차이를 중시하는 논리의 연장선에서 반한나라당 연합론이 나오는데요. 권영길 후보도 가치연정을 말했죠.
  
  홍세화 : 이거 아주 난처한 질문인데(웃음). 골치 아파요. 아주 난처한 상황인데, 사실 조중동과 한나라당 세력을 삼진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보면 사태가 제대로 보일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10년' 소리를 계속 해온 세력이 이번에 이렇게 고공행진을 했는데도 집권하지 못한다면 '잃어버린 15년' 소리를 할 수 없다는 거죠.
  
  이 얘긴 뭐냐 하면, 한나라당이 현재의 이념적 지향으로는 집권을 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되면, 냉전적 보수는 물론 시장만능주의적인 것과도 일정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흔히 얘기하는 합리적 보수로의 자리매김이 이뤄지지 않겠느냐, 전망을 해보는 거죠.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과 자유주의 보수 세력의 차별성은 정말 별 게 없어지는 거고, 결국 진보정당의 입지도 강화되지 않겠느냐 생각해보는 거죠. 또 남북관계의 변화로 냉전의식에서 벗어나게 되면 분단 상황에서 진보정당은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접근이 용이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프레시안 :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경우 민주주의가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는군요.
  
  홍세화 : 그렇습니다. 중요한 점을 하나 지적해야 할 것 같아요. 사학법 재개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사익추구집단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아주 집요합니다. 조선일보의 극악함도 마찬가지인데,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얘기하듯이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대로 집권에 실패하게 되면 이제 집요함을 버리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수준에서 양보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거죠. 예를 들어 남아공에서 과거사 청산이 일정하게 성과를 거뒀던 이유는 백인정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식이 결국 백인들로 하여금 사회경제적인 기득권을 향유하는 선에서 일정정도 타협을 하도록 강제한 거죠.
  
  프레시안 :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이 저지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강조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60(한나라당)대 20(범여권)대 2(민주노동당)입니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데요. 그래서 '진보개혁' 일각에선 단기 승리를 위한 '사술'보다는 '준비된 패배'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합니다.
  
  홍세화 : 어…(한숨). 준비된 패배라…. 준비 됐건 안 됐건 패배는 안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저는 여전히 기대를 놓지 못하고 있어요. 어쨌건 이명박 씨는 상한선을 그은 거고 이제 내리막길밖에 없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회창 씨에게도 거품이 있다고 보고요. 제가 주목하는 건 오히려 정동영 씨와 문국현 씨의 지지율 변화예요. 정동영 씨가 계속 정체상태에 머물고, 문국현 씨가 약진하는 모습이 나타나면 기대의 집중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거죠. 한국사회는 짧은 시간에도 변화무쌍하니까요. 그럼 문국현 씨는 어떠냐, 이런 질문이 나오면 골치 아픈데(웃음). 결국은 기대인거죠. 어쨌든 준비된 패배가 아니라 한나라당을 패배시키는, 삼진아웃시키는 가능성을 놓지 못하겠어요.
  
  프레시안 : 문국현 씨가 내세우는 가치나 그가 현재까지 보여준 걸로 추론되는 실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홍세화 : 참 어렵습니다. 사람은 놀음을 같이 해봐야 안다는데(웃음). 내가 그 분을 알 기회는 없었죠. 그러나 뭔가 기대해볼 만하다는 면에서 단어 하나를 떠올려보면 '품격'이라는 겁니다. 다른 어떤 후보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품격'이라는 게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문 후보의 정치철학이나 내공은 검증되지 않았고 지금 검증할 수도 없지만 '품격'이라는 데 이끌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그 분의 공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죠. 그러나 공약이야 노무현 대통령도 화려하지 않았습니까. 다 '사기'여서 문제였죠. 문 후보의 정치철학이나 공약이 제 기준에서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자신이 내놓은 공약에 대해 오리발을 내밀지는 않는 품격 같은 것에 기대를 걸고 싶은 면도 없지 않죠, 솔직히.
  
  "민노당, 이래서야 무슨 수권능력이 생기겠나"
  
▲ ⓒ프레시안

  프레시안 : 권영길 후보가 고전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소통의 중요성을 각별히 강조하시는데요. 지난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소통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어떤가요.
  
  홍세화 : 우선 민노당이 위기를 맞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열 분이 국회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막 떴죠. 당시 민노당이 가장 먼저 한 게 기자실을 크게 만든 겁니다. 홍보를 제대로 하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있었다고 봅니다. 분단 상황 속에서 진보정당을 잘 모르면서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책개발도 열심히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당원 상대의 정치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외연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당원을 대상으로 한 정치에 비하면 아주 적었죠.
  
  비근한 예로 2012년 집권을 말하면서도 지역구에 전혀 힘을 기울이지 않았고 정책개발도 미흡했습니다. 저는 비례대표제가 당의 초기 약진에는 기여했지만 나중에는 독약이 됐다고 봅니다. 당의 지도부가 어디를 보느냐가 중요한데, 민중을 보지 않고 당원만 바라보게 됐습니다. 말은 안 해도 비례대표 의석을 바라보는 거죠. 그러는 동안 민중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한 노력이나 의지는 실종됐어요. 또 그렇게 내부정치에 몰두하다 보니 정파의 문제에서도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정파의 우두머리는 비례대표로 선출되는 데만 매몰되고요.
  
  프레시안 : 비정규직에 비례 2, 3번을 주자고 제안하셨는데요. 당내 반응은 어떤가요. (인터뷰 뒤인 17일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원회에서 비정규직을 비례대표 2번에 할당키로 결정했다.)
  
  홍세화 : 잘 모르겠어요. 곧 토론회도 한다고 하는데, 저야 얼마 전에 <레디앙>에 기고한 대로, 말로만 비정규직 얘기하지 말고 선언적이라도 비례대표 2, 3번 줘야한다, 4번부터는 전략공천 해야 한다, 8번까지는 2004년에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당 지도부들은 넘볼 게 못된다, 당 지도부가 역할을 했다면 9번부터 자격이 있는 거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죠. 평당원 주제에 마구…(웃음).
  
  프레시안 : 선생께서는 지역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민주노동당에겐 계급정치 역시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노동당을 떠받치는 골간이 민주노총과 전농 같은 대중조직인데요. 이들 조직이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대표성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대중을 폭넓게 포괄하지 있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위기론도 나오는 것일 테고요. 민주노동당이 보다 폭넓게 노동자, 농민과 소통하려면 민주노총과 전농에만 기대는 활동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홍세화 : 어렵죠. 민주노총은 잘 아시다시피 대기업 노조 중심입니다. 한국 산업구조의 영향 때문이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으로 인해 노조 조직률 같은 게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죠. 이건 일종의 한계인데, 이 한계를 뚫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도 지역 기반의 활동이 모색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포지역위원회와 문화연대, 마포지역 단체들이 '민중의 집'을 해보자고 해서 저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민중들이 만나서 문화적 프로그램을 향유하고 같이 교육도 하는 공간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죠.
  
  제가 또 강조하고 싶은 건 학습입니다. 학습을 너무 안 합니다. 우리 사회 노동자들은 노동자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반노동자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려면 다른 것보다 학습을 해야 하는데 공부를 안 합니다. 대충 다 알고 있다고 믿는 거죠. 아까 2004년 총선 끝나고 기자실 크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연수공간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학습도 안 하는 당이 무슨 진보정당이냐,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평당원은 평당원대로 학습과정이 있어야 하고 간부는 간부대로 학습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자기 나름의 역할을 하려면 유럽의 정당처럼 지적인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 게 섀도우 캐비닛하고도 연결돼야 하는 건데 그런 게 없습니다. 이래가지고야 무슨 수권정당의 가능성이 있겠느냐, 그런 생각도 드는 겁니다.
  
  학교교육의 민주주의가 관건
  
  프레시안 : 선생의 칼럼에는 이 시대의 지배적 정서를 나타내는 말로 '불안'이라는 어휘가 자주 등장합니다. 얼마 전 '이 땅의 교사는 분노를 모르는가' 칼럼에서 "20 대 80으로 양극화된 사회,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각개약진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에서 구성원을 지배하는 것은 불안"이라는 통찰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불안이 깊어질수록 "사회구조를 혁파하려는" 노력보다는 "로또복권에 매달리듯 엷은 가능성에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이 강해지는 듯 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세화 :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은 주체적으로 형성된 게 아니고 주입된 의식인데, 의식화의 주체는 학교권력을 장악한 국가권력과 대중매체를 장악한 자본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학교매체와 대중매체의 조합에 지나지 않은 의식세계를 갖고 있으면서 그걸 고집하는 거죠. 이런 것을 보게 해 주는 게 교육입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의식세계를 주체적으로 형성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학교 교육의 민주주의를 관철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가령 교장제도만 해도 일제 때 시작된 건데 아직 그대로 관철되고 있어요.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을 형성하는 게 아니죠. 일제 때 타율적인 질서의식을 의식화했던 걸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학교에 주목하고 교육 문제에 주목하는 거죠.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사회비판의식을 형성할 수 있을까. 그건 학교 교육을 통해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특별한 계기가 항상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학교 교육과 대중 매체를 통해 형성한 자기의식에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 계기가 된 게 70년대 이후에는 주로 선배였습니다. 선배가 책을 같이 읽자고 하면 선후배간이라는 특수한 인격적 관계 때문에 내치지 못하고 따라갔던 거죠. 그렇게 실제 책을 읽어 보고 나서 '아 이게 아니네' 하면서 그때까지 형성한 의식을 벗어내는 것이 가능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 선배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의 현장이 더욱 중요하게 된 거죠. 학교 현장 자체가 비판적 안목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이 돼야 하는 상황입니다. 과거처럼 따로 교정할 거처와 기회가 없는 거죠. 진보세력보다 냉전보수세력이 학교의 중요성과 전교조의 역할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교조를 약화시키고 주변화 시키는 데 집요한 겁니다.
  
  "살아 있는 동안 무상교육, 무상의료만 가능해도 행복하겠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교육문제가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최근 정동영 후보가 입시폐지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인데요. 민주노동당은 제대로 된 입시폐지 공약을 갖고 있으면서도 '입시폐지'란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정 후보에게 선점당한 꼴이 되었습니다. <레디앙> 기사에 따르면 당 정책위의장이 "교육운동 일부에서 '입시 폐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유로 '입시폐지' 슬로건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홍세화 : 한심한 얘기죠.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런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게 참 답답합니다. 결국 입시폐지도 정동영 씨에게 내준 꼴이 된 거고요. 참 얘기하기 싫어요(웃음). 다만 정동영 씨 공약이 산뜻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다는 건 분명한 거고요. 대학서열화를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입시폐지를 한들 사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며 내신을 올리기 위한 엄청난 로비와 부패를 어떻게 감당할 겁니까. 내건 건 산뜻했지만 내용은 반쪽짜리입니다.
  
  프레시안 : 조금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 했다는 얘기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입시폐지'라는 말이 대중에게 거부감을 줄까봐 걱정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봅니다. 대중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과격한 구호라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은 거죠.
  
  홍세화 : 너무 과격해서? 한국의 교육현실이 과격한 것을 요구하고 있죠.
  
  프레시안 : 정동영 씨가 '입시폐지'를 들고 나온 것도 그래서겠죠. 실제 내용물보다 더 과격한 포장을 해가면서요.
  
  홍세화 : 진보정당이 스스로 위축되는 면이 분명히 있죠.
  
  프레시안 : 위축이 선택적으로 나타나서 문제인 것 같은데요.(웃음)
  
  홍세화 : 선택적으로?(웃음)
  
  프레시안 : 지금은 메인 슬로건이 아닙니다만, 권영길 후보가 처음에 들고 나온 게 '코리아연방공화국'이었습니다. 대중들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는데요. 차제에 진보진영의 대북정책 및 통일정책 전반에 대한 점검과 반성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대중과의 소통이란 기준에서 말이지요. 선생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홍세화 : 그건 말 안 할랍니다. 뻔히 아는 얘기를 왜 물어봐요?(웃음)
  
  프레시안 : 민주노동당은 사회의 진보를 말하지만 정작 민주노동당 내부의 구조는 그리 진보적이지 않은 듯 합니다. 외려 사회 전반의 평균적 합리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느껴질 때가 많은데요. 각종 회계문제나 당직자들 급여문제, 당내 노조를 대하는 지도부의 태도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홍세화 : 어려운 질문 계속하시네(웃음).
  
  프레시안 : 기존의 국가모델 가운데 선생께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국가모델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요즘 사민주의 모델에 대한 얘기가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홍세화 : 저야 물론 북유럽 사민주의죠. 일단 사민주의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무상교육, 무상의료만 가능하다고 해도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상교육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겁니다. 얼마 전 칼럼에서도 썼지만, 무상교육에 의해 의사가 된다고 하면 한국의 의사들하고는 전혀 다른 멘탈리티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사회 비용으로 의사가 됐기 때문에 사회에 되돌려 준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의사뿐이겠습니까. 무상교육은 사회적 연대의 실현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알게 모르게 연대의식과 사회 환원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인간관계가 파괴될 때 더불어 사는 제도를 만드는 건 대단히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프레시안 : 선생께서는 올 초 칼럼에서 우리 사회의 물신주의적 가치관을 개탄하면서 "사회 구성원의 의식이 바뀌어야 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제도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적 세력관계로 보면 제도 변화라는 게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홍세화 : 쉽지 않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집요해야 합니다. 집요해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무엇보다 겸손해야 합니다. 단순한 품성의 얘기가 아닙니다. 절대 포기해선 안 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회구성원의 의식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이 혁명인데, 지금 한국 자체의 역량으로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느냐, 어렵다고 봅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와 달리 정보의 흐름에 대한 지배와 통제가 강화된 지금 소수에 의한 변혁은 불가능합니다. 해외에서 과거의 68 혁명과 같은 게 일어나서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일부에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말하지만 남미만 해도 주변부여서 우리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결국 다른 길은 없습니다. 기동전이건 진지전이건 전방위적으로 성실하게 해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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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홍세화 기자
출처 : <한겨레> 2007년 11월 20일


» 홍세화 기획위원
삼성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우리 시대 성공과 출세의 아이콘이다. 공히 사익 추구의 성공을 바탕으로 나라의 공적 부분을 넘보고 장악하려 한다. 사익을 더욱 창출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유일한 주군인 ‘돈’을 향한 열성과 집념은 전방위적이다. 삼성의 촉수는 청와대, 검찰, 금융감독원, 국세청, 언론, 대학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돈으로 하수인을 만드는 데 머물지 않고 모든 공적기관에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효과도 거둔다. ‘양화’들은 주변으로 밀려나 패배자가 되고, 삼성은 온갖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도 승리자로 남는다. 위장전입, 각종 투기 의혹에 자녀 위장취업까지 이명박 후보의 치부를 향한 일상 또한 전방위적이고 조건반사적이다. 돈을 주인으로 모신 그가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고, 삼성이 온갖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도 끄떡하지 않을 수 있는 배경에는 ‘경제’라는 주술이 있다.

경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인간과 사회를 위한, 인간존재와 인간관계를 위한 것이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인간과 사회가 경제를 위한 것으로 전락할 때, 돈은 법과 질서 위에 군림하고 인성은 실추되고 인간관계는 파괴된다. 법질서는 본디 명쾌하고 단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자조하면서도, 마지막 기댈 곳으로 법과 질서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라는 주술은 이미 사회구성원들의 정신을 무장해제시켰다.

오랜 가난은 분단현실과 함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발판이자 재벌 발흥의 근거였다.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던 독재권력에 대한 기억은 민주화 과정에서 퇴색해 갔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이라 자찬하는 이들에 대한 경배는 더욱 공고해졌다. 독재자를 물리친 시민의식은 ‘경제’ 주역 앞에서 점점 더 작아졌다. 이 변화 속에서 뱀처럼 대처한 삼성은 제국이 되었고, 국민은 ‘자발적 복종’으로, 정권은 ‘적극적 엄호’로 답했다. 삼성의 괴력과 이른바 탁월한 경영능력이란 돈이면 다 되는 세태를 의심하지 않고 십분 활용한 집요함에서 비롯된다.

이회창 후보의 자식 병역문제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었던 지난 대선에 견줘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가 별로 움직이지 않고, 삼성 특검 요구에 거대 여야 정당이 시늉만 보이고 청와대가 딴죽을 걸어 ‘불법·비리를 저질러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라는 논리로 결국 이명박 후보를 돕고 있는데도 공분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경제동물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리에 있었다면 모두 그들처럼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을지라도 그 부정과 비리를 비난할 줄 알았던 과거에 비해, 오늘은 ‘경제’라는 한마디 앞에서 아예 부정과 비리까지 두둔하게 된 것이다. 이미 장래 희망으로 ‘부자’와 ‘시이오’(CEO)를 꼽는 아이들에게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고 가르치고,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무서운 학습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개혁’정권의 학습효과인 ‘그놈이 그놈’이라는, 그래서 어차피 그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도 한몫 크게 거들었겠지만,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사회는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인간은 선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추악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고 했지만, 과연 더 추락할 데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민변·참여연대의 활동, 철학자들의 격문은 우리에게 ‘의지로 낙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사익 추구 집단보다 더 집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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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경제학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한다. '의지로 낙관'하며 견디는 건 어쩐지 자기위안을 위한 최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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