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오케스트라
찰리 헤이든 - 37년 동안의 급진적 재즈 프로젝트
출처:<레디앙(www.redian.org)> 2006년 11월 03일 / 장석원 객원기자
오래간만에 다시 시작하는 반역의 레코드에 적당한 음반이 무얼까 한참 고민했지만 적절한 음반을 찾지 못하고 대신 오래전부터 다루려고 마음먹었던 아티스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고상하게도(?) 재즈다.
재즈는 그 긴 역사와 대중적인 보급에도 불구하고 좌파와의 연관을 찾기가 쉽지가 않은 음악 분야다. 빨갱이들 천지인 포크와는 처음부터 비교불가이고, 짧은 역사의 록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같은 흑인음악인 블루스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재즈만큼 탈정치적인 대중음악도 드물다. 록이 그런 것처럼 미국보다 영국에는 좌파 재즈 뮤지션들이 많이 있고 시선을 북유럽이나 프랑스로 돌리면 더 급진적인 재즈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런 친구들은 재즈 매니아들도 간신히 이름 석자 정도 들어본 그런 경우가 많다.
물론 존 콜트레인이나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를 뒤져보면 60년대 흑인민권운동이나 심지어는 '블랙팬더당'같은 급진파와의 연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건 그 시절 모타운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재즈 음악계에서 유별난 존재가 바로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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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이 바로 찰리 아저씨다.
재즈전문지 Downbeat에서 14년 연속으로 최고의 어쿠스틱 베이스 연주자로 선정되고 있는 '실력파'이기도 하다. |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재즈 뮤지션으로는 정상급에 속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다루게 될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반역의 레코드'에 등장하는 아티스트들 중에 대중적인 지명도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인물이다. 50년대 후반 재즈계의 전설 중의 한명인 오넷트 콜맨의 쿼텟에서 연주를 시작했으니 음악생활이 거의 50년 되가는 베테랑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팻 매스니와 함께 1997년 녹음한 "미주리 하늘 너머Beyond the Missouri Sky" 앨범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참,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베이스다.
그런데 이 양반이 미국 재즈계에서는 보기 드문 '확실한' 좌파다.
찰리 헤이든을 소개할 때 자주 따라다니는 이야기 중에 하나다. 1971년 당시 파시스트 정권이 집권 중인 포루투갈에서 순회공연을 하게 됐다. 공연 중에 그는 자신이 작곡한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Song for Che'를 연주하기에 앞서 이 곡을 여전히 포루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의 혁명가들과 독립투사들에게 바쳤다. 바로 다음 날 비밀경찰은 리스본 공항에서 그를 체포해 억류했다. 미국 대사관의 개입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FBI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그의 앨범과 공연이 정치적인 코멘트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발표했던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앨범에는 좌파는 고사하고 정치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만한 곡이 없다. 공연도 별다른 코멘트 없이 10여분짜리 연주를 길게 이어나가는 편이다. 음반이나 무대를 자신의 주의주장을 알리는 선동의 장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재즈 팬들 중에는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찰리 헤이든은 음악 자체에 충실한 평소의 활동과 달리 급진적인 재즈를 선보일 때는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Liberation Music Orchestra"라는 이름으로 움직인다. '해방'이라는 단어를 앞에 내건 만큼 음악은 주장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다. 구성도 평소 트리오 체계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오케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10명 안팎의 재즈뮤지션으로 이루어진다.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는 지금까지 모두 4번 소집됐다. (99년에 발매된 실황음반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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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tion Music Orchestra"
1969년 |
1. The Introduction
2. Song Of The United Front
3. El Quinto Regimiento (Medley)
4. The Ending To The First Side
5. Song For Che
6. War Orphans
7. The Interlude (Drinking Music)
8. Circus '68 '69
9. We Shall Overcome |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앨범은 1969년에 발표됐다. 애초에 찰리 헤이든이 이 오케스트라를 연속된 프로젝트로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도 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앨범의 제목에 불과했다.
앨범의 전반부는 스페인내전에 관한 것이다.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연주자 겸 편곡자로 참여한 칼라 블레이가 작곡한 짧은 도입곡이 끝나면 한스 아이슬러가 쓰고 브레히트가 가사를 붙인 '통일전선의 노래Song Of The United Front'가 연주된다. 이 노래는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시작부분과 똑 닮아서 남한 민중가요 사상 최초의 표절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곡이기도 하다. 이어서 스페인 내전시기 공화군과 국제의용여단의 전사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3곡을 조곡 형식으로 묶은 연주가 20분 넘게 펼쳐진다. 칼라 블레이는 이후 모든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에 편곡자로 참여하게 된다.
앨범의 후반부는 60년대가 주제다. 앞서도 이야기한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와 찰리 헤이든에게는 스승님과 같은 존재인 오넷트 콜맨의 '전쟁고아War Orphans'가 연주된다. 물론 이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인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선곡이었다. 하긴 오넷트 콜맨도 재즈계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인물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 급진정은 정치보다는 음악에서 더 많이 발휘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후반부의 대미는 역시 찰리 헤이든 자신이 직접 쓴 '써커스 68, 69Circus '68 '69'다. 이 곡은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풍자한 것이다. 당시 전당대회는 반전파인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측 대의원들과 린든 존슨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밝힌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측 대의원들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격돌했다.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평화운동가들과 신좌익학생들의 반전데모가 대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경찰이 과잉진압을 펼치면서 시카고는 게엄령이 떨어진 도시를 연상시킬 만큼 폭압적인 분위기였다. 이 모습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었다. '써커스 68, 69'는 당시 미국의 혼란스러움, 전쟁의 공포, 전당대회의 어수선함, 반전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묵시록적인 선율에 담아내고 있다.
이 앨범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민권운동의 송가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로 끝맺는다. 실제로 68년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패배한 반전파 대의원들은 항의의 표시로 기립해 이 노래를 합창했다. 민주당지도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행사밴드에 '미국찬가' 같은 노래를 연주하게 했다. 서로 다른 두 곡조가 메아리치는 전당대회장. 이것이 60년대 미국의 현실이었다. 찰리 헤이든은 당시의 광경을 음반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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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llad Of The Fallen"
1983년 |
1. Els Segadors
2. Ballad Of The Fallen
3. If You Want To Write Me
4. Grandola Vila Morena
5. Introduction To People
6.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7. Silence
8. Too Late
9. La Pasionaria
10. La Santa Espina |
두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1982년에 소집됐다. 첫번째 앨범을 녹음하고 13년 만의 재소집이다.
이듬해 발매된 앨범의 제목은 "쓰러진 자들의 발라드The Ballad of the Fallen"다. 첫 번째 앨범처럼 스페인내전시기의 음악도 들어있지만, 두 번째 앨범의 주제는 라틴 아메리카, 특히 엘살바도르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다.
앨범의 제목이며 도시에 수록곡 중에 하나이기도 한 '쓰러진 자들의 발라드'는 산 살바도르 대학에서 연좌농성 중 정부군에 학살당한 학생의 시신에서 발견된 시다. 또한 앨범 커버에는 난민캠프의 소녀가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 이 그림에는 "우리의 죄는 그저 가난하다는 것뿐이다. 레이건이 보낸 수많은 총알들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글이 적혀있다.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는 미국이 개입으로 전복된 칠레 인민전선 정부의 주제가다. '갈색 마을 그란돌라Grandola Vila Morena'는 1974년 포루투갈 파시스트 정권을 뒤엎은 카네이션 혁명 때 좌익청년장교들이 봉기의 신호로 사용한 노래다.
앨범의 첫 번째 곡이며 카딸로니아 공화국의 국가로 사용된 '수확Els Segadors'처럼 나머지 곡들의 대부분은 스페인 내전기 공화군의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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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Keeper"
1991년 |
1. Dream Keeper
2. Rabo de Nube
3. Nkosi Sikelel'i Afrika
4. Sandino
5. Spiritual |
"드림 키퍼Dream Keeper"라는 제목이 붙은 세 번째 앨범의 녹음을 위해 새로운 해방음악 오케스트라가 1991년 소집됐다. 이번에는 브랜포드 먀샬리스 같은 유명한 연주자들도 참여했다. 전작의 주제가 라틴아메리카였다면 이번에는 남아프리카가 앨범의 주제였다.
17분짜리 대곡 '드림 키퍼'는 미국의 흑인문학가 랭스턴 휴즈가 쓴 같은 제목의 연작시를 바탕으로 엘살바도르 게릴라의 노래, 베네주엘라 민중가요, 스페인 내전기 아나키스트의 노래를 섞어 만든 것이다. 작곡은 앨범의 편곡자이며 해방음악 오케스트라의 숨은 주역인 칼라 블레이가 했다. 전체적으로는 1곡이지만 작게는 8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작품은 내용만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도 매우 실험적인 재즈를 선보이고 있다. 찰리 헤이든이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일반적인(?) 음악 활동과 분리해서 진행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보다는 음악적 실험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노래 '토네이도의 꼬리Rabo de Nube'는 쿠바의 민중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즈의 작품이다. 최근의 월드 뮤직 유행 덕분에 국내에도 실비오 로드리게즈의 CD가 상당수 수입됐다. 그러나 에스파냐어라는 장벽 때문에 좌익가수라기 보다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같은 아름다운 제3세계 음악으로 소개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무언가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다음 곡인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Nkosi Sikelel'i Afrika'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남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노래로 지금은 남아공의 국가가 됐다. 이 노래는 찰리 헤이든으로 하여금 세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의 녹음을 결심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현지어로 되어있는 가사는 비록 따라 부르기 매우 어렵지만 한번 들으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곡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남아프리카 흑인과 백인들을 단결시켰던 노래에 이어지는 두곡은 찰리 헤이든 자신이 직접 쓴 것들이다. '산디노Sandino'는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니카라과의 투사이며 산디니스타의 기원이 된 인물에게 바치는 찬가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성령Spiritual'은 '킹 목사, 메드거 에버스, 말콤 X에게 바친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찰리 헤이든이 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을 회상하며 만든 작품이다.
메드거 에버스는 전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활동가로 1963년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살해당했다. 밥 딜런은 그의 죽음을 보고 '장기판의 졸일 뿐Only a Pawn in Their Game'이라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피트 시거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듣고 60년대 민권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는 이 곡 뿐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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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in Our Name"
2005년 |
1. Not In Our Name
2. This Is Not America
3. Blue Anthem
4. America The Beautiful (Medley)
5. Amazing Grace
6. Goin' Home (From The Largo Of
The New World Symphony)
7. Throughout
8. Adagio (From Adagio For Strings) |
네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2005년에 소집됐다. 소집의 이유는 당연히 '이라크 전쟁'이다. 두 번째 앨범에서 레이건 행정부의 중남미 개입을 비판한지 22년 만에 이번에는 부시 행정부의 침략전쟁을 비판하기 위해 동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앨범의 제목 "Not in Our Name"은 반전집회의 단골 구호이기도 하다.
앨범 커버는 35년 전 첫 번째 오케스트라의 것을 재현하고 있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찰리 헤이든과 칼라 블레이를 제외하고 첫 번째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던 연주자는 아무도 없다. 이전의 앨범들에는 꼭 들어있던 스페인 내전기의 음악이 안 들어있다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수록곡들은 모두 '미국'에 대한 노래들이다. 이라크와 관련된 곡은 없다. 또한 사용된 곡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처럼 진보적인 노래들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운, 그러나 미국인들이 익숙하게 잘 알만한 것들이다. 이점도 이전의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시대의 혁명가요, 민중가요를 재해석하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우리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어'라는 탄식만 반복하는 느낌이다. 전통적인 해방음악오케스트라 팬들이라면 실망스럽거나 불만이 생길만한 부분이다.
음악도 좀 다르다. 예전의 오케스트라가 도전적이다 싶을 정도로 실험적인 연주를 들려줬다면 이번 앨범은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연주를 보여준다. 평단의 반응은 따뜻했지만 누군가는 '이거 진짜 해방음악오케스트라 맞아'라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물론 여전히 17분짜리 대곡도 들어있고 재즈가 아닌 장르의 음악을 가져와 재해석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최근 한층 부드러워진 찰리 헤이든의 연주 스타일과 많이 닮아있다.
첫 번째 곡이자 타이틀 곡인 '우리 이름으로는 안돼Not In Our Name'은 찰리 헤이든의 작품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자신의 성명서이기도 하다. '이건 미국이 아니야This Is Not America'는 97년에 이어 팻 매스니와 다시 작업한 결과물이다. 데이빗 보위(!)도 함께 하고 있다. '미국 찬가America The Beautiful'은 2001년 9/11 이후 미국 방송을 도배했던 노래를 테마로 만든 17분짜리 대곡이다. 물론 찰리 헤이든의 의도는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지만, 미국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아무런 차이가 없듯이 우파가 부르는 미국찬가나 좌파가 부르는 미국찬가나 지루하긴 매한가지다. 생각해보라 무대 위에서 꽃다지가 애국가를 부른다고 그게 갑자기 진보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머지 곡들은 클래식을 재즈로 변형한 것들이다. '귀향Goin' Home'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를 편곡했고, 마지막 곡인 '아다지오Adagio'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인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편곡한 것이다. 물론 모두 미국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이번 가을 뉴욕에 기반한 진보적인 독립라디오 'Democracy Now!'의 설립 10주년을 맞아 기금마련을 겸한 공연을 가졌다. 찰리 헤이든은 내년이면 70살이 된다. 사실 이라크 전쟁이 아니었다면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15년 전의 소집이 마지막이 됐을 것이다. 부쉬가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팬들은 다시 한 번 해방음악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고마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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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헤이든은 15년 전의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에 이런 문구를 적어놓았다. "꿈이 살아 숨 쉬게 하라! Keep the dream alive!" 확실히,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녹음은 지난 37년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모든 살아 숨 쉬는 인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내오랜꿈 --------------------------------------------------------------
찰리 헤이든의 연주는 일단 편안하다. 물 흐르듯 고요한, 정통 재즈연주자들과는 뭔가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재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언급할 주제가 못 되니 생략하자.
1980년대 중반, 대학 캠퍼스는 봄을 맞은 들판 마냥 활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학내에 상주하던 '짭새'들이 철수하고 학생회가 막 부활하기 시작한 터라 반정부 학내집회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반정부 유인물 하나라도 뿌릴라치면 잔디밭에서 공놀이 하던(할일 없는 짭새들이 평평하고 전망 좋은 잔디밭을 접수하여 공놀이를 즐기고, 학생들은 그 광경을 "시발시발" 하며 못본 척 지나쳐야 했다-.-) 사복경찰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잡아가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캠퍼스의 봄은 86년 초까지는 학내만을 배경으로 하여 움직였다. 역시 학교 정문 앞에는 수백 명의 전경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모든 집회는 교문을 사이에 두고 투석전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수십 명의 학생들이 4줄로 서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교내를 한바퀴 돌면 이내 행렬은 수백 명으로 불어나 있었고, 그러면 교문밖 진출을 시도하며 전경들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 80년대 중반 당시 대학 캠퍼스의 일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 수없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우리 승리하리라!"였다. 집회 한 번 하면 거의 10번쯤은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이 노래 말고는 별로 부를 만한 노래가 없었다. 광주를 노래한 몇 곡과 양희은의 "아침이슬", "늙은 군인의 노래" 그리고 몇 곡의 번안곡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오늘, 찰리 헤이든과 행크 존스의 연주로 듣는 "We shall overcome"은 그래서 참 감회가 깊다. 조안 바에즈나 피트 시거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원음의' 선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