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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노예의 읊조림, 위대한 유산으로
[세상을 바꾼 노래] ⑥ 로버트 존슨의 ‘크로스 로드 블루스’(1936년)

박은석/음악평론가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1 08


» 로버트 존슨의 ‘크로스 로드 블루스’(1936년)
로버트 존슨(1911~1938)은 대중음악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라고 할 인물이다. ‘델타 블루스(혹은 컨트리 블루스)의 제왕’으로 불리는 명성과 달리 그 생애에 관해 알려진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고, 그나마도 오싹한 전설과 끔찍한 구설 사이에 놓인 것이 대부분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불가사의한 음악적 재능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다. 따지고 보면 영혼매매 전설의 원조는 로버트 존슨이 아니다. 코엔 형제가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년)에서도 다루었다시피, 토미 존슨이라는 동시대 블루스 뮤지션의 자술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존슨이 그 주술적 신화의 음침한 거래당사자로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베일에 싸인 짧은 생애와 시대를 앞서간 음악 때문이다.

악마를 소재로 한 곡들을 즐겨 불렀다는 점도 로버트 존슨의 전설을 부추긴 요인이다. 비평가 그레일 마커스는 그것이, 블루스의 탄생 배경이기도 한, 미국현대사의 어두운 면과 맞닿아 있는 메타포라고 분석했다. 존슨의 노래들이 “여타 미국 예술가들은 표현한 전례가 거의 없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크로스 로드 블루스>는 바로 그 어두운 감정의 체화라는 측면에서 로버트 존슨을 상징하는 곡이다.

<크로스 로드 블루스>는 1936년 11월23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로버트 존슨 최초의 녹음 세션에서 탄생했다. 어스름 무렵의 교차로에서 악마와 조우한다는 이 곡의 내용은 부두교의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파우스트’적 모티프가 혼재한 것이다. 블루스가 흑백인종 간의 문화적 교차로에서 탄생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존슨이 들려준 격렬한 팔세토 보컬과 (문자 그대로) 신들린 기타연주는 대중음악사의 혁명적 전환점이기도 했다. 델타 블루스가 시카고 블루스로 이양하는 양상-어쿠스틱에서 일렉트릭으로, 남부 시골에서 북부 도시로 확장된 과정이 그 속에 생생한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비참한 흑인노예의 읊조림에서 위대한 음악가의 유물로 승화한, 블루스의 음악사적 의미가 교차한 지점이었다.

로버트 존슨은 평생 단 두 번의 녹음세션을 통해 불과 29곡을 남겼을 뿐이다. 게다가 그 곡들 전부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사후 30년도 지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머디 워터스와 키스 리처즈(롤링 스톤즈), 에릭 클랩튼과 지미 페이지(레드 제플린)가 이구동성으로 그를 “가장 위대한 블루스 연주자”라 칭송했다. 실제로 머디 워터스는 로버트 존슨을 카피하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고, 에릭 클랩튼은 온전히 존슨의 곡들로만 채워진 헌정앨범 <미 앤 미스터 존슨>(2004)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히트했던 영화 <스트리츠 오브 파이어>의 감독 월터 힐은 젊은 기타 연주자가 로버트 존슨의 미발표곡을 찾아 나선다는 줄거리의 <크로스로즈>(1986)를 연출한 바 있다. 악마에게 영혼을 걸고 연주대결을 펼치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예술을 가장한 사기와 음악을 변명한 상품이 판치는 물질적 세상에 대한 우화처럼 보인다. 로버트 존슨이 남긴 또 다른 유산이다.





내오랜꿈 --------------------------------------------------------------



» [랄프 마치오의 십자로(Crossroads)] 포스터
"줄리어드? 그게 학교야? 블루스의 학교는 델타뿐이야!"
"미시시피에 한 번도 안 가봤다고? 그러고도 블루스맨이라고 자칭할 수 있나?"
"자네가 아무리 까불어봤자 로버트 존슨 엉덩이의 여드름도 안돼. 그 차이가 뭔지 아나? 체험이야"

영화에서 윌리 브라운이 내뱉는 대사 가운데 일부분이다.

음악 감독, 라이 쿠더(Ry Cooder). 사운드 트랙의 기타 연주, 라이 쿠더. 기타리스트 역의 조연을 맡은 인물, 스티브 바이(Steve Vai). 영화의 모티브는 로버트 존슨의 미발표곡. 음악에 관한 한 이보다 더 화려한 라인업이 있을까? 바로 <크로스로즈(Crossroads)>(우리 말 비디오 출시 제목은 <랄프 마치오의 십자로>)다. 여기서 '크로스로즈'는 물론 로버트 존슨의 고전 <크로스로즈(CROSSROADS)>를 가르킨다. 한국 비디오 출시 제목에 랄프마치오가 붙은 것은 역시 당시 청춘스타였던 그의 상업성에 기댄 것이리라.

영화는 로버트 존슨이 어느 황량한 십자로에 서있는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블루스 음악이 흐른다. 로버트 존슨의 모습에서 시작해서 그의 노래와 그의 동료였던 윌리 브라운(Willie Brown)이 중요한 역할(영화에서의 배역은 존 세네카)을 맡고 있는 진짜 블루스 영화인 것. 따라서 <크로스로즈>는 2004년에 기획돠고 만들어진 마틴 스코시즈(외 7인) 감독의 블루스 시리즈보다 거의 20년이나 앞선 진정한 블루스 영화인 셈이다.

영화 속 대사들은 1930년대 블루스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무슨 의미로 존재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또한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잉위 맘스틴(yngwie malmsteen)과 쌍벽을 이루는 기교파 헤비메틀 기타리스트라 할 수 있는 스티브 바이(Steve Vai)의 모습까지도 만날 수 있다(위의 동영상에서 붉은 기타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스티브 바이다).

랄프 마치오는 줄리어드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고 있으며 학교 최고의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어디까지나 블루스 음악의 대가가 되는 것. 그런 그가 블루스 책들을 뒤지다 로버트 존슨의 미발표곡이 하나 있다는 정보를 얻고는 이걸 찾아내 연주하여 유명해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로버트 존슨의 음악 동료였던 윌리 브라운이 어느 요양원에 살아있다는 걸 알고 찾아가지만, 윌리는 클래식을 전공하고 미시시피엔 가본 적도 없는 중산층 가정의 이 백인 소년을 어처구니 없이 여긴다. 그러나 제법 실력을 보이는 소년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윌리는 "나를 이곳에서 탈출시켜 미시시피까지 데려다준다면 존슨의 미발표곡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한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블루스가 영화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상업영화로서도 충분히 아기자기한 재미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종일관 윌리가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유명하게 만든 건 역시 클라이맥스 부분의 '기타 배틀' 장면. 초창기 블루스 뮤지션들이 맥주 한 병이나 위스키 한 병에 목숨 걸고 실력을 겨뤘을 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상대방을 응시하는 스티브 바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존슨을 떠나서라도 블루스 팬이라면 한번쯤은 꼭 봐야 할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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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오케스트라

찰리 헤이든 - 37년 동안의 급진적 재즈 프로젝트

출처:<레디앙(www.redian.org)> 2006년 11월 03일 / 장석원 객원기자


오래간만에 다시 시작하는 반역의 레코드에 적당한 음반이 무얼까 한참 고민했지만 적절한 음반을 찾지 못하고 대신 오래전부터 다루려고 마음먹었던 아티스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고상하게도(?) 재즈다.

재즈는 그 긴 역사와 대중적인 보급에도 불구하고 좌파와의 연관을 찾기가 쉽지가 않은 음악 분야다. 빨갱이들 천지인 포크와는 처음부터 비교불가이고, 짧은 역사의 록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같은 흑인음악인 블루스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재즈만큼 탈정치적인 대중음악도 드물다. 록이 그런 것처럼 미국보다 영국에는 좌파 재즈 뮤지션들이 많이 있고 시선을 북유럽이나 프랑스로 돌리면 더 급진적인 재즈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런 친구들은 재즈 매니아들도 간신히 이름 석자 정도 들어본 그런 경우가 많다.

물론 존 콜트레인이나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를 뒤져보면 60년대 흑인민권운동이나 심지어는 '블랙팬더당'같은 급진파와의 연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건 그 시절 모타운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재즈 음악계에서 유별난 존재가 바로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이다.

* * *

▲ 이분이 바로 찰리 아저씨다.
재즈전문지 Downbeat에서 14년 연속으로 최고의 어쿠스틱 베이스 연주자로 선정되고 있는 '실력파'이기도 하다.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재즈 뮤지션으로는 정상급에 속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다루게 될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반역의 레코드'에 등장하는 아티스트들 중에 대중적인 지명도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인물이다. 50년대 후반 재즈계의 전설 중의 한명인 오넷트 콜맨의 쿼텟에서 연주를 시작했으니 음악생활이 거의 50년 되가는 베테랑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팻 매스니와 함께 1997년 녹음한 "미주리 하늘 너머Beyond the Missouri Sky" 앨범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참,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베이스다.

그런데 이 양반이 미국 재즈계에서는 보기 드문 '확실한' 좌파다.

찰리 헤이든을 소개할 때 자주 따라다니는 이야기 중에 하나다. 1971년 당시 파시스트 정권이 집권 중인 포루투갈에서 순회공연을 하게 됐다. 공연 중에 그는 자신이 작곡한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Song for Che'를 연주하기에 앞서 이 곡을 여전히 포루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의 혁명가들과 독립투사들에게 바쳤다. 바로 다음 날 비밀경찰은 리스본 공항에서 그를 체포해 억류했다. 미국 대사관의 개입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FBI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그의 앨범과 공연이 정치적인 코멘트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발표했던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앨범에는 좌파는 고사하고 정치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만한 곡이 없다. 공연도 별다른 코멘트 없이 10여분짜리 연주를 길게 이어나가는 편이다. 음반이나 무대를 자신의 주의주장을 알리는 선동의 장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재즈 팬들 중에는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찰리 헤이든은 음악 자체에 충실한 평소의 활동과 달리 급진적인 재즈를 선보일 때는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Liberation Music Orchestra"라는 이름으로 움직인다. '해방'이라는 단어를 앞에 내건 만큼 음악은 주장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다. 구성도 평소 트리오 체계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오케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10명 안팎의 재즈뮤지션으로 이루어진다.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는 지금까지 모두 4번 소집됐다. (99년에 발매된 실황음반은 제외)

* * *

"Liberation Music Orchestra"
1969년
1. The Introduction
2. Song Of The United Front
3. El Quinto Regimiento (Medley)
4. The Ending To The First Side
5. Song For Che
6. War Orphans
7. The Interlude (Drinking Music)
8. Circus '68 '69
9. We Shall Overcome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앨범은 1969년에 발표됐다. 애초에 찰리 헤이든이 이 오케스트라를 연속된 프로젝트로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도 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앨범의 제목에 불과했다.

앨범의 전반부는 스페인내전에 관한 것이다.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연주자 겸 편곡자로 참여한 칼라 블레이가 작곡한 짧은 도입곡이 끝나면 한스 아이슬러가 쓰고 브레히트가 가사를 붙인 '통일전선의 노래Song Of The United Front'가 연주된다. 이 노래는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시작부분과 똑 닮아서 남한 민중가요 사상 최초의 표절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곡이기도 하다. 이어서 스페인 내전시기 공화군과 국제의용여단의 전사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3곡을 조곡 형식으로 묶은 연주가 20분 넘게 펼쳐진다. 칼라 블레이는 이후 모든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에 편곡자로 참여하게 된다.

앨범의 후반부는 60년대가 주제다. 앞서도 이야기한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와 찰리 헤이든에게는 스승님과 같은 존재인 오넷트 콜맨의 '전쟁고아War Orphans'가 연주된다. 물론 이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인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선곡이었다. 하긴 오넷트 콜맨도 재즈계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인물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 급진정은 정치보다는 음악에서 더 많이 발휘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후반부의 대미는 역시 찰리 헤이든 자신이 직접 쓴 '써커스 68, 69Circus '68 '69'다. 이 곡은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풍자한 것이다. 당시 전당대회는 반전파인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측 대의원들과 린든 존슨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밝힌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측 대의원들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격돌했다.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평화운동가들과 신좌익학생들의 반전데모가 대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경찰이 과잉진압을 펼치면서 시카고는 게엄령이 떨어진 도시를 연상시킬 만큼 폭압적인 분위기였다. 이 모습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었다. '써커스 68, 69'는 당시 미국의 혼란스러움, 전쟁의 공포, 전당대회의 어수선함, 반전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묵시록적인 선율에 담아내고 있다.

이 앨범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민권운동의 송가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로 끝맺는다. 실제로 68년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패배한 반전파 대의원들은 항의의 표시로 기립해 이 노래를 합창했다. 민주당지도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행사밴드에 '미국찬가' 같은 노래를 연주하게 했다. 서로 다른 두 곡조가 메아리치는 전당대회장. 이것이 60년대 미국의 현실이었다. 찰리 헤이든은 당시의 광경을 음반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 * *

"The Ballad Of The Fallen"
1983년
1. Els Segadors
2. Ballad Of The Fallen
3. If You Want To Write Me
4. Grandola Vila Morena
5. Introduction To People
6.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7. Silence
8. Too Late
9. La Pasionaria
10. La Santa Espina
두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1982년에 소집됐다. 첫번째 앨범을 녹음하고 13년 만의 재소집이다.

이듬해 발매된 앨범의 제목은 "쓰러진 자들의 발라드The Ballad of the Fallen"다. 첫 번째 앨범처럼 스페인내전시기의 음악도 들어있지만, 두 번째 앨범의 주제는 라틴 아메리카, 특히 엘살바도르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다.

앨범의 제목이며 도시에 수록곡 중에 하나이기도 한 '쓰러진 자들의 발라드'는 산 살바도르 대학에서 연좌농성 중 정부군에 학살당한 학생의 시신에서 발견된 시다. 또한 앨범 커버에는 난민캠프의 소녀가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 이 그림에는 "우리의 죄는 그저 가난하다는 것뿐이다. 레이건이 보낸 수많은 총알들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글이 적혀있다.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는 미국이 개입으로 전복된 칠레 인민전선 정부의 주제가다. '갈색 마을 그란돌라Grandola Vila Morena'는 1974년 포루투갈 파시스트 정권을 뒤엎은 카네이션 혁명 때 좌익청년장교들이 봉기의 신호로 사용한 노래다.

앨범의 첫 번째 곡이며 카딸로니아 공화국의 국가로 사용된 '수확Els Segadors'처럼 나머지 곡들의 대부분은 스페인 내전기 공화군의 노래들이다.

* * *

 
"Dream Keeper"
1991년
1. Dream Keeper
2. Rabo de Nube
3. Nkosi Sikelel'i Afrika
4. Sandino
5. Spiritual
"드림 키퍼Dream Keeper"라는 제목이 붙은 세 번째 앨범의 녹음을 위해 새로운 해방음악 오케스트라가 1991년 소집됐다. 이번에는 브랜포드 먀샬리스 같은 유명한 연주자들도 참여했다. 전작의 주제가 라틴아메리카였다면 이번에는 남아프리카가 앨범의 주제였다.

17분짜리 대곡 '드림 키퍼'는 미국의 흑인문학가 랭스턴 휴즈가 쓴 같은 제목의 연작시를 바탕으로 엘살바도르 게릴라의 노래, 베네주엘라 민중가요, 스페인 내전기 아나키스트의 노래를 섞어 만든 것이다. 작곡은 앨범의 편곡자이며 해방음악 오케스트라의 숨은 주역인 칼라 블레이가 했다. 전체적으로는 1곡이지만 작게는 8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작품은 내용만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도 매우 실험적인 재즈를 선보이고 있다. 찰리 헤이든이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일반적인(?) 음악 활동과 분리해서 진행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보다는 음악적 실험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노래 '토네이도의 꼬리Rabo de Nube'는 쿠바의 민중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즈의 작품이다. 최근의 월드 뮤직 유행 덕분에 국내에도 실비오 로드리게즈의 CD가 상당수 수입됐다. 그러나 에스파냐어라는 장벽 때문에 좌익가수라기 보다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같은 아름다운 제3세계 음악으로 소개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무언가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다음 곡인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Nkosi Sikelel'i Afrika'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남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노래로 지금은 남아공의 국가가 됐다. 이 노래는 찰리 헤이든으로 하여금 세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의 녹음을 결심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현지어로 되어있는 가사는 비록 따라 부르기 매우 어렵지만 한번 들으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곡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남아프리카 흑인과 백인들을 단결시켰던 노래에 이어지는 두곡은 찰리 헤이든 자신이 직접 쓴 것들이다. '산디노Sandino'는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니카라과의 투사이며 산디니스타의 기원이 된 인물에게 바치는 찬가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성령Spiritual'은 '킹 목사, 메드거 에버스, 말콤 X에게 바친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찰리 헤이든이 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을 회상하며 만든 작품이다.

메드거 에버스는 전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활동가로 1963년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살해당했다. 밥 딜런은 그의 죽음을 보고 '장기판의 졸일 뿐Only a Pawn in Their Game'이라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피트 시거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듣고 60년대 민권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는 이 곡 뿐이라고 평했다.

* * *

"Not in Our Name"
2005년
1. Not In Our Name
2. This Is Not America
3. Blue Anthem
4. America The Beautiful (Medley)
5. Amazing Grace
6. Goin' Home (From The Largo Of
    The New World Symphony)
7. Throughout
8. Adagio (From Adagio For Strings)
네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2005년에 소집됐다. 소집의 이유는 당연히 '이라크 전쟁'이다. 두 번째 앨범에서 레이건 행정부의 중남미 개입을 비판한지 22년 만에 이번에는 부시 행정부의 침략전쟁을 비판하기 위해 동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앨범의 제목 "Not in Our Name"은 반전집회의 단골 구호이기도 하다.

앨범 커버는 35년 전 첫 번째 오케스트라의 것을 재현하고 있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찰리 헤이든과 칼라 블레이를 제외하고 첫 번째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던 연주자는 아무도 없다. 이전의 앨범들에는 꼭 들어있던 스페인 내전기의 음악이 안 들어있다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수록곡들은 모두 '미국'에 대한 노래들이다. 이라크와 관련된 곡은 없다. 또한 사용된 곡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처럼 진보적인 노래들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운, 그러나 미국인들이 익숙하게 잘 알만한 것들이다. 이점도 이전의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시대의 혁명가요, 민중가요를 재해석하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우리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어'라는 탄식만 반복하는 느낌이다. 전통적인 해방음악오케스트라 팬들이라면 실망스럽거나 불만이 생길만한 부분이다.

음악도 좀 다르다. 예전의 오케스트라가 도전적이다 싶을 정도로 실험적인 연주를 들려줬다면 이번 앨범은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연주를 보여준다. 평단의 반응은 따뜻했지만 누군가는 '이거 진짜 해방음악오케스트라 맞아'라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물론 여전히 17분짜리 대곡도 들어있고 재즈가 아닌 장르의 음악을 가져와 재해석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최근 한층 부드러워진 찰리 헤이든의 연주 스타일과 많이 닮아있다.

첫 번째 곡이자 타이틀 곡인 '우리 이름으로는 안돼Not In Our Name'은 찰리 헤이든의 작품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자신의 성명서이기도 하다. '이건 미국이 아니야This Is Not America'는 97년에 이어 팻 매스니와 다시 작업한 결과물이다. 데이빗 보위(!)도 함께 하고 있다. '미국 찬가America The Beautiful'은 2001년 9/11 이후 미국 방송을 도배했던 노래를 테마로 만든 17분짜리 대곡이다. 물론 찰리 헤이든의 의도는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지만, 미국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아무런 차이가 없듯이 우파가 부르는 미국찬가나 좌파가 부르는 미국찬가나 지루하긴 매한가지다. 생각해보라 무대 위에서 꽃다지가 애국가를 부른다고 그게 갑자기 진보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머지 곡들은 클래식을 재즈로 변형한 것들이다. '귀향Goin' Home'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를 편곡했고, 마지막 곡인 '아다지오Adagio'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인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편곡한 것이다. 물론 모두 미국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이번 가을 뉴욕에 기반한 진보적인 독립라디오 'Democracy Now!'의 설립 10주년을 맞아 기금마련을 겸한 공연을 가졌다. 찰리 헤이든은 내년이면 70살이 된다. 사실 이라크 전쟁이 아니었다면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15년 전의 소집이 마지막이 됐을 것이다. 부쉬가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팬들은 다시 한 번 해방음악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고마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 * *

찰리 헤이든은 15년 전의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에 이런 문구를 적어놓았다. "꿈이 살아 숨 쉬게 하라! Keep the dream alive!" 확실히,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녹음은 지난 37년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모든 살아 숨 쉬는 인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내오랜꿈 --------------------------------------------------------------

찰리 헤이든의 연주는 일단 편안하다. 물 흐르듯 고요한, 정통 재즈연주자들과는 뭔가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재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언급할 주제가 못 되니 생략하자.

1980년대 중반, 대학 캠퍼스는 봄을 맞은 들판 마냥 활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학내에 상주하던 '짭새'들이 철수하고 학생회가 막 부활하기 시작한 터라 반정부 학내집회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반정부 유인물 하나라도 뿌릴라치면 잔디밭에서 공놀이 하던(할일 없는 짭새들이 평평하고 전망 좋은 잔디밭을 접수하여 공놀이를 즐기고, 학생들은 그 광경을 "시발시발" 하며 못본 척 지나쳐야 했다-.-) 사복경찰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잡아가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캠퍼스의 봄은 86년 초까지는 학내만을 배경으로 하여 움직였다. 역시 학교 정문 앞에는 수백 명의 전경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모든 집회는 교문을 사이에 두고 투석전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수십 명의 학생들이 4줄로 서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교내를 한바퀴 돌면 이내 행렬은 수백 명으로 불어나 있었고, 그러면 교문밖 진출을 시도하며 전경들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 80년대 중반 당시 대학 캠퍼스의 일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 수없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우리 승리하리라!"였다. 집회 한 번 하면 거의 10번쯤은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이 노래 말고는 별로 부를 만한 노래가 없었다. 광주를 노래한 몇 곡과 양희은의 "아침이슬", "늙은 군인의 노래" 그리고 몇 곡의 번안곡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오늘, 찰리 헤이든과 행크 존스의 연주로 듣는 "We shall overcome"은 그래서 참 감회가 깊다. 조안 바에즈나 피트 시거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원음의' 선율이다.



We shall overcome - Charlie Hadan & Hank Jones



We shall overcome - Joan Baez



We shall overcome - Pete See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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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마지막 식민지 아일랜드의 노래

앨리어스 어쿠스틱 밴드 <아일랜드 저항의 노래>

출처:<레디앙(www.redian.org)> 2006년 11월 18일 / 장석원


"1798-1998 Irish Songs of Rebellion, Resistance And Reconcilliation"
The Alias Acoustic Band
1998년
CD 1
1. Easter 1916/Caoimhneagdh Roisin 
2. To Welcome Paddy Home 
3. Boolavogue 
4. Shan Van Vocht 
5. Erin's Lovely Lee 
6. Boys Of Bar Na Strade 
7. Johnny I Hardly Knew Ya 
8. Brennan On The Moor 
9. Wind That Shakes The Barley 
10. Reconcilliation 
11. Grand Aul' Dame Britania 
12. Glory-o To The Bold Fenian Men 
13. Pursuit Of Farmer Michael Hayes 
14. James Connolly 
15. Roddy McCorley 
16. Dunlavin Green 
17. Reobert Emmett's Last Words / Scaffold Passage 
18. Cry Cry Cry 
19. Kitty/Tadie O'Neill 
CD 2
1. Force Of Argument/Lament Of Limerick 
2. Wearing Of The Green 
3. Patriot Game 
4. Skibereen 
5. Home Fire/Beyond The Pale 
6. Foggy Dew 
7. Boys Of County Cork 
8. Follow Me Up To Carlow 
9. Four Green Fields 
10. God Bless England 
11. Boys of Mullaghbawn 
12. Praties The Grow Small 
13. Truth and Understanding 
14. Mountains Of Pomeroy 
15. Sands of Time/Kesh Jig 
16. Rocks of Bawn 
17. Sea Around Us 
18. A Nation Once Again / Amhran Na Bhfiann
 
80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지배는 아일랜드의 모든 노래를 저항가요로 만들었다. 굳이 노랫말에 영국에 대한 증오를 담지 않더라도 아일랜드의 자연경관에 대한 노래조차도 ‘빼앗긴 들’에 대한 탄식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19세기 중반의 아일랜드를 덮쳤던 대기근이나 1972년 ‘피의 일요일’ 학살 사건처럼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지배는 인도나 다른 영국 식민지들과 비교해도 잔혹한 편이었다.
이탈리아 남부에 대한 북부의 태도나 유태인, 슬라브인에 대한 나치의 태도처럼 백인들의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는 종종 백인들 내부로 향하기도 한다. 아일랜드는 가장 좋은 예이다.

비록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되지만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아일랜드는 분단국가인 셈이다.

영국인들의 눈에야 북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이 테러리스트의 음모와 가톨릭교회의 분열책동으로 비춰지겠지만 아일랜드인들에게는 독립과 자유가 여전히 추구해야할 미완의 과제인 것이다.

오래된 독립운동은 거리의 투사들뿐만 아니라 노래하는 전사들을 태어나게 했다. 특히 북아일랜드에는 걸출한 좌익 뮤지션들이 많은데, 사회주의자이며 포크싱어인 크리스티 무어는 시네이드 오코너, U2같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아일랜드의 아티스트들에게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받고 있다.

총 대신 기타를 든 IRA라고 불리는 테리 오닐이나 북아일랜드의 왕당파들에게는 알카에다 취급을 받는 울프톤즈도 있다. 이들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오늘 소개할 앨범은 “앨리어스 어쿠스틱 밴드”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저항가요 37곡을 모아 지난 1998년에 발표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앨리어스 어쿠스틱 밴드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구하질 못했다.

심지어 CD 안에도 밴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도 이름을 보건데 실재하는 밴드가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가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아티스트가 사용하는 가상의 이름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 앨범은 아일랜드의 저항 노래들을 모아놓은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 더 많은 곡과 더 훌륭한 연주를 모은 CD들은 북아일랜드 신페인당의 홈페이지에 마련된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 구할 수 있다. 다만 앨리어스 어쿠스틱 밴드의 이 CD가 아일랜드 바깥의 지역에서는 가장 구하기 쉬운 최선의 선택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일랜드의 민요나 저항가요를 담은 음반이 유독 미국에서 꽤 많은 종류가 발매돼 있고 또 구하기도 쉬운 편이다. 미국 내에 존재하는 아일랜드계 이주민 공동체의 영향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지만, 아무래도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연안의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IRA의 자금줄이라는 영국 정보당국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미국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 올라있는 앨리어스 어쿠스틱 밴드의 CD 소개란에도 보면 “미국에 있는 모든 아일랜드 가톨릭계 가정은 반드시 이 음반을 한 장씩 갖고 있어야 한다”는 한 구매자의 평이 붙어 있다.

* * *

앨범에 수록된 첫 곡 ‘1916년의 부활절Easter 1916’은 제목에서 보여지 듯 1916년 아일랜드 공화군이 더블린의 중앙우체국을 점거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한 ‘부활절 봉기’를 다룬 노래다.

비록 봉기 자체는 실패했지만 봉기의 대담함은 영국 식민당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6년 뒤 영국으로 하여금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지역의 독립을 인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영국인들에게는 3.1만세운동에 비유될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 봉기의 자세한 과정은 국내에서도 개봉된 영화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에서도 다루고 있다.

‘제임스 코널리James Connolly’는 부활절 봉기를 사실상 입안했던 인물에 관한 노래다. 코널리는 사회주의자로 노동운동과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부활절 봉기 당시 사실상의 총사령관 역할을 맡았던 그는 봉기가 진압된 후 사건의 주모자로 영국군에 의해 처형당했다.

코널리는 제2인터내셔널 안에서도 좌파, 그러니까 1차세계대전에 반대했던 반전파에 속했던 인물이다. 비록 러시아 혁명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아일랜드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은 레닌이나 트로츠키보다도 더 크고 뛰어났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에서 그의 영향력은 살아 있을 때 그가 관여한 적이 전혀 없는 정당이나 단체들조차도 코널리를 자신들의 사상적 지도자로 선포하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오죽하면 영국인들조차도 지난 2002년 BBC가 100명의 ‘위대한 영국인’을 선정할 때 64위에 코널리의 이름을 올렸다. IRA는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 앨범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아일랜드 저항가요를 모은 선집에는 스페인내전때 국제 의용군이 부른 ‘제5여단 만세Viva La Quinte Brigada’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조지 오웰의 종군기록인 “카탈로니아 찬가”에 보면 당시 국제의용군에 IRA 출신이 많았다는 구절이 있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는 어찌됐건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가 표방한 것이 ‘공화군’이었으니까 같은 ‘공화주의자’로서 연대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했다. 그러나 후에 아일랜드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IRA와 그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이 단순한 공화주의자들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IRA와 신페인당을 맑스주의에 입각한 노동자정당으로 정의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이다.

‘애국자 놀음Patriot Game’은 헐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됐었다. 50년대 IRA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합운동을 밀어부칠 때 만들어진 노래인데 노랫말에는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듯한 구절이 들어있다. 이런 이유로 아일랜드의 무정부주의자들이 특히 애창했던 노래라고 한다. 후에 밥 딜런이 미국의 역사를 비꼰 ‘신은 항상 우리 편에With God On Our Side’를 작곡할 때 곡조의 일부를 빌려오기도 했다.

이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798년 ‘아일랜드 반란’을 다룬 ‘불라보그Boolavogue’다. 프랑스 대혁명에 영향을 받아 아일랜드에서도 혁명적 공화주의가 태동하고 그 혁명적 공화주의를 표방한 그룹이 일으킨 봉기가 아일랜드반란이다. 존 머피 신부는 공화군의 일원으로 참여해 불라보그에서 봉기를 지도했는데 영국군에 진압당한 후 교수형에 처해졌다. 노래는 존 머피 신부와 불라보그의 반란군을 추모하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 곡은 두 개의 노래(‘Nation Once Again’와 ‘Amhran Na Bhfiann’)를 하나로 이어 부른 것이다. ‘국민이여 다시한번Nation Once Again’은 아일랜드의 저항가요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다.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만큼 역사도 오래된 편이고 가사도 좀 구식이지만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독립에 대한 영감이 새롭게 떠오르는지 집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얼마나 유명하냐면 대부분의 영국인들조차도 어렵지 않게 부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런던 거리를 걸어가면서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노래기도 하다.

‘Amhran Na Bhfiann’은 영어로는 ‘군인의 노래A Soldier's Song’라고 불리는 곡으로 현재 아일랜드공화국의 국가이며 북아일랜드의 공화주의자들에게는 사실상의 국가로 불리는 노래다. 물론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하는 왕당파들은 기를 쓰고 반대하는 노래다. 이 두 곡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아일랜드의 축구경기장에서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라는 것이다.

* * *

아일랜드인들의 노래에는 아일랜드 현대사의 순간 순가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앨리어스 어쿠스틱 밴드의 이 앨범은 노래로 듣는 아일랜드 현대사 혹은 독립운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노래들에 얽힌 이야기를 일일이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후에 다른 아일랜드 뮤지션들을 소개할 때 다시 이야기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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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실은 음악을 만난 반가움
[음반리뷰]《Once》OST

안석희 / 작곡가
출처:<컬쳐뉴스> 2007-10-31


《Once》OST 자켓
▲ 《Once》OST 자켓
예전 리뷰에서 조약골의 새 음반 《평화란 무엇인가》를 소개하며 ‘Just Folk’ 라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노래와 인터뷰로 짜나가는 평택평화항쟁의 음악 다큐멘터리 <평화란 무엇인가>는 포크만으로 충분했다. 이번 《Once》OST 음반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 이 말을 떠올린다. 주위의 무수한 호평과 권유에도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나는 그 영상과 스토리가 주는 감동을 아직은 모른다. OST 음반의 가장 큰 강점은 영화의 스토리와 영상이 주는 감동이 음악에 더해져 한층 더 깊은 울림으로 증폭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음반에 실린 13곡의 노래를 주루룩 이어 들으면서 나는 슬쩍 이런 생각이 들었다. ‘Just Music’, 음악으로 충분해.

<원스>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아일랜드 그룹 ‘더 프레임즈 The Frames’의 리드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글렌 한사드 Glen Hansard.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체코 출신의 뮤지션 마르게타 이글로바 Marketa Irglova. 이 두 사람이 엮어가는 음악만으로 나는 이 영화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쓸쓸함, 진실함, 그 열정과 어긋남, 비탄과 격정 그리고 그 애잔한 그리움. 뜨거운 불길과 차가운 물살을 가르고 벼려지는 주인공들의 성장기.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한 이야기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이 음반에 담긴 노래들은 해설이 그리 필요치 않다. 노랫말이 무얼 말하는 지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노래들은 편하게 귀에 감겨오고 음악은 알기 쉽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포크, 혹은 조금 모던한 포크 록의 곡들. 음악적으로 풀어 이야기할 것도 별로 없다. 아일랜드 영화음악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 때 유행이었던 아이리쉬 민속음악의 요소를 차용한 곡도 없다. 음반의 한 곡인 <Gold>에서 슬쩍 흔적을 드러낼 뿐이다. 두 사람이 다루는 악기인 기타와 피아노 이 두 악기의 어울림이 주를 이루고 여기에 절제된 현악기와 드럼과 베이스를 얹는 소박한 편성의 곡들이 번갈아 이어진다. 멜로디의 여운이 오래 남는 느린 템포의 첫 곡 <Falling Slowly>와 유일하게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한 전형적인 포크록 편성의 <Trying To Pull Myself Away>의 악기 구성이 최대치이다. 이 단출한 편성이 두 사람 목소리가 가진 절절한 감정의 결을 잘 드러내주는 최선의 방법이다.

▲ 영화 <원스>의 한 장면
물론 이 노래들은 영화의 수록곡이라는 덕을 본다. <Say To Me Now>, <Leave>를 비롯한 몇 몇 곡의 노래와 연주는 보통의 음반이었다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과잉, 속칭 오버로 들리겠지만 여기서는 이런 절규가 주인공이 느끼는 깊은 감정을 잘 표현해준다. 음반에 그대로 싣기 쉽지 않은 거친 기타 스트로크 연주와 외침에 가까운 목소리가 외려 진솔한 감정을 가감 없이 효과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 사운드나 형식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하고 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개척자들의 노력이 대중음악의 진정성의 한 축을 이룬다면, 익숙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한 개인의 진실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태도를 더 중시하는 방식들이 진정성의 다른 한 축을 이룬다. 《Once》OST의 미덕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올 상반기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삽입곡 <마리아>의 빅히트를 보며 가수가 아닌 배우가 부른 영화 삽입곡이 상반기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는 대중음악계의 당혹감도 읽을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라는 매체의 강력한 힘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대중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담아내는 데 영화의 기획이 한 발 앞섰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통로로 빈번히 이야기된 대중음악의 위축은 다른 말로 뒤집어보면 대중음악계의 기획이 대중들의 욕망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대중음악계와 영화계를 비교해서 누가 더 낫다 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잘 짚어냈다면 그건 왜일까라는 점을 조금 더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음악영화라 볼 수 있는 <즐거운 인생>과 이 <Once>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는 주제가 되리라. 다만 이건 이 리뷰의 허용치를 넘어서는 일이다.)

어찌되었건《Once》OST음반은 감동의 많은 부분을 영화에 기대고 있다 해도 그 음악만으로 충분한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의 핵심에는 익숙한 동어반복의 지루함과 아는 사람들만 알아듣는 일방통행식의 소통에 지쳐 더 이상 따라가기를 포기한 대중들에게 다시금 음악의 의미를 되살려주는 소통의 힘에 있다. 그래서 언어의 벽을 훌쩍 넘어선다. 원래 노래나 음악이 우리네 삶과 그리 먼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부분들이 다 노래가 된다는 것을. 내가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말로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노래한다는 걸 새삼 다시 일깨워준다. 말이 되지 못한 그 웅얼거림들이 음악에 실려 마음에 와 부딪혀 푸르게 잎을 틔운다. 겨울 초입에 마음을 실을 음악들을 하나 더 가지게 되어 반갑다. 그게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먼 아일랜드 - 더블린의 이야기라 해도 말이다.



안석희 _ 작곡가, 노리단 예술감독
유인혁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노래를 만들었다. 지금은 하자센터 노리단Noridan에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나무를 깎고 플라스틱 파이프를 자르고 쇠를 갈아서 악기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요즘은 책이나 음반을 주문하면 거의 대부분 다음 날 배송된다. 너무 빨리 받아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주문한 음반 가운데 《Once》OST를 두세 번 들었는데, 역시 이 음반은 영화라는 매체에 의존하고 있는 노래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선율이 아니라 보이스 그 자체의 강한 느낌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이 음반은 충분히 권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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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건진 미국 민요 ‘불멸의 노래’ 되다
세상을 바꾼 노래
⑤ 레드벨리의 <미드나이트 스페셜>(1934년)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1 01

» 미국 민속음악의 현대화에 기여한 두 거인 레드벨리(오른쪽)와 우디 거스리.

감옥은 시간이 정체된 곳이다. 사회로의 포섭을 위해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변화 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쇼생크’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이미 수십 번이나 돌려본 리타 헤이워스 영화에 매번 시사회와 같은 열광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포크음악의 보존과 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민속학자 존 로맥스가 구전가요들을 녹음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머물러 있는 음악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1933년 로맥스에게 ‘발견’되었을 때, 허디 레드베터는 폭력상해죄로 복역 중이었다. 본명보다 레드벨리(188?~1949)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타고난 음악재능과 방대한 레퍼토리로 로맥스를 사로잡았다. 블루스와 컨트리의 뿌리였다고 할 노동요, 영가, 춤곡, 동요의 원형질들이 그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권위 있는 음악지 <롤링 스톤>이 레드벨리를 일컬어 “현대 세계와 민속 전통 사이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라고 평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드나이트 스페셜>은 1935년 형기를 마치고 나온 후 레드벨리가 남긴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곡의 하나다. 이미 1920년대부터 이 노래를 불러왔던 레드벨리는 몇 가지 다른 버전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당시 최고의 가스펠 그룹이었던 ‘골든 게이트 쿼텟’과 함께한 녹음이다. 그의 노래들 대부분이 그렇듯, 전승가요를 편곡한 이 곡은 소위 ‘프리즌 블루스’라는 고전적 하위 장르의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영어의 몸이 된 처지와 ‘야간특급’ 열차의 불빛을 극적으로 대비시킨 노랫말에, 불완전한 형식의 블루스 악곡을 얹은 이 곡은 그 자체로 음악사의 ‘미싱 링크’를 메우는 살아있는 화석인 것이다.

너바나의 유작 <언플러그드 인 뉴욕>(1994)에서 커트 코베인은 “가장 좋아하는 퍼포머의 노래”라는 소개와 함께 레드벨리의 곡을 연주했다. 그 곡 <웨어 디드 유 슬립 라스트 나이트>를 통해 당대의 젊은이들이 그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 레드벨리는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때로는 함께) 활동했던 우디 거스리가 미국 ‘모던포크의 아버지’로 명성을 남긴데 비하면 초라한 위상이다.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미지의 과거로 사라질 뻔했던 무수한 고전민요들은 레드벨리의 기억 속에 봉인된 덕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아바를 거쳐 유투에 이르기까지. 댄스 팝 가수에서 펑크 록 밴드까지. 장르와 시대를 불문한 수많은 이들이 레드벨리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굿나이트 아이린>, <록 아일랜드 라인>,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 등은 그가 남긴 유산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랑에 관한 최고의 노래들이 실연에 상심한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인생에 관한 최고의 노래들은 그것의 쓴맛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나왔다고 할 것이다. 감옥을 들락거리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궤적을 질주했던 레드벨리의 노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존할 수 있는 힘 또한 그로부터 비롯한 것일 터다.

박은석/음악평론가


내오랜꿈 ------------------------------------------------------------


Leadbelly - Cotton Fields

Leadbelly (Huddie Ledbetter, 1888-1949)

리드벨리.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아마도 박은석씨는 차마 그가 살인혐의로 복역했다는 언급은 하지 못하고 그냥 폭력상해죄라고만 언급하고 있지만 그는 살인혐의로 복역한 전력도 가지고 있다. 1918년 살인혐의로 복역하다가 1924년 텍사스 주지사가 그의 노래를 듣고 사면해주었으나, 1930년 다시 살인기도 혐의로 수감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1933년, 당시 Folk Blues 연구가인 John Lomax, Allan Lomax 부자에 의해 이 앨범, <미드나이트 스페셜>의 녹음이 이루어졌는데, 이 앨범에 들어있는 "Governor O.K. Allen"란 곡은 그의 석방 청원을 위해 쓴 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존 로맥스가 이 곡을 녹음하여 교도소장에게 전달하는 등의 구명 운동을 벌였고 얼마 후 리드벨리는 석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시대상황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흑인음악가들이 그랬겠지만, 리드벨리도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낮에는 목화농장에서 목화 따고 밤에는 거리의 술집에서 연주했다 한다. 그런 와중에 살인 및 폭행으로 교도소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내다가 말년에 겨우 판도 내고 공연도 하게 되지만 얼마 못가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흔히 블루스의 양대 계보를 미시시피 지역과 텍사스 지역으로 나누는데 남부 텍사스 지역의 블루스가 미시시피 블루스에 비해 보다 포크적인 요소가 많고 멜로디가 풍부한 편이다. 리드벨리도 텍사스 출신이라 그런지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성량이 풍부하고 리듬감이 두드러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곡은 "Cotton Fields"란 곡인데,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와 CCR이 불러 유명해진 곡이다. 그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릴 때부터 일했을 'cotton fields'를 생각하면 노래가 의외로 너무나 경쾌하게 들린다.

아래에 링크시킨 곡은 <니르바나>의 마지막 유작이 된 'MTV Unplugged' 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불러 더욱 유명해진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이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커트코베인의 그 절규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겠지만 리드벨리의 원곡에는 커트코베인의 절규와는 또다른 슬픔이 묻어난다. 한번 비교해서 들어보시길.....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Leadbelly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Kurt Cob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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