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온 지 벌써 4년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내가 여수에 있다는 것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 여수를 방문한 사람도 여럿 된다. 손님들이 올 경우 대부분 주목적은 남도의 풍부한 제철 먹거리 탐방이지만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기에 처음 여수를 찾는 방문자에게는 오밀조밀한 남해바다의 동선을 끼고 돌아 여수 시내의 향일암이나 돌산공원에서 바라보는 돌산대교 야경을 일순위로 안내하곤 한다. 일정이 좀 넉넉한 경우에는 보성차밭을 경유하여, 조계산 선암사나 송광사, 벌교, 고흥, 순천만 갈대밭을 둘러보는 코스를 선택하는 게 공식화되다시피 한다. 그래서 여수 시내의 유적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방학을 맞은 대학 동아리 후배 부부 2팀이 지난 1월 중순경 여수에 놀러왔었다. 부부가 모두 학교 선생인지라 이들에게 방학은 그야말로 보통의 직장인들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날들의 연속이다. 이들 부부 가운데 3명이 역사 선생인지라 진남관을 가자고 하니 당연히 좋다고 하여 들리게 된 진남관. 다른 여행객들은 가보자고 하면 "그기 뭔데?" 하기 일쑤여서 쉽게 가볼 수 없었던 곳이기도 하다.
정면을 들어서니 정면 15칸 측면 5칸, 현존하는 지방 관아로는 제일 크다는 팔작지붕의 장대함이 우선 나의 시선을 압도한다. 세상에나, 저 기둥 굵기 좀 보소. "서울에서 비원에서 본 기둥 말고는 아직 저런 굵기의 기둥을 본 적이 없다. 거의 궁궐 수준 아냐?" 라고 후배에게 물으니, 역사 선생이 이야기 하기를 이 정도면 궁궐 수준이 맞단다. 자기도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물은 처음 본단다.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먼저 저 기둥은 '적송'이라는 종류의 소나무란다. 그래서 내가, '아니, 도대체 저 정도 굵기의 소나무를 구할려면 우리 나라를 온통 다 뒤져도 힘든 거 아냐?' 라고 하니, 몇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야산의 적송들이 저 정도 자라는 것은 많았는데, 저 적송들이 열성유전 하면서 지금처럼 볼품없는 나무들만 남아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좋은 나무들은 자꾸 베어져 목재로 쓰였을 것이고, 안 좋은 나무들만 살아남아 씨를 퍼뜨리니 자연 열성 유전자들이 퍼지게 되었음을...
역사 선생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벌써 자기들만의 놀이를 찾아 한참 게임을 즐기고 있다. 역시 아이들은 너른 공간에 풀어 놓기만 하면 저그들이 알아서 잘도 놀이를 만든다.
겨울 같지 않은 어느 겨울날의 오후, 한가로이 앉아 여유를 즐긴 진남관에서의 1시간 30분. 여행은 차를 타고 멋있는 풍경만 찾아 돌아다니는 게 아님을 이곳에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2007.01.14
여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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