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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억’ 흔들 2007년의 기억은?
디아스포라의 눈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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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눈/

지금 이 원고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쓰고 있다. 12월19일 피렌체대학에서 열린 프리모 레비 타계 20년 기념논문집 출판기념회에 출석하기 위해 달려왔다. 이 논문집 제목은 〈프리모 레비를 향한 세계의 소리※기억 속에서, 기억을 위하여〉. 이 책은 세계 15명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내가 유일한 기고자다. 내 글 제목은 ‘서울과 도쿄에서 프리모 레비를 읽는다※동아시아의 기억의 싸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했던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그의 저작은 증언문학의 고전으로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2월에 내가 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가 출판됐고, 올해 1월에 레비의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모두 돌베개)가 간행됐다.

타계 20년 기념논문집 편자인 루이지 데이 교수가 피렌체 공항까지 마중나와 주었다. 초대면 인사를 교환한 뒤 물어보니 그는 역사와 정치 전문가가 아니라 화학교수라고 했다. 의외의 사실은 아니다. 프리모 레비 자신이 화학자였고, 파시즘류의 비합리적인 열광에 대해 끊임없이 과학적인 합리정신으로 저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에게 남긴 쓰라린 교훈의 하나는 전문가가 자기 전문영역에 갇혀버리는 위험성이다. 사회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방기하고 스스로 기계가 된 전문가(스페셜리스트)들은 자기 지식이나 기술을 얼마든지 반인간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종합적인 인간학’으로서의 인문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데이 교수와 같은 화학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이런 논문집을 자발적으로 편찬한 것 자체를 파탄의 위기에 처한 인문주의를 현대의 상황 속에서 되살리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출판기념회는 프라 안젤리코의 명화 〈수태고지〉가 있는 산 마르코 수도원 옆 피렌체대학 본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강당도 르네상스 이래의 축적된 역사를 느끼게 하는 중후하고 장려한 건축이었다. 대학 총장과 내빈 인사에 이어 데이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해외에서 온 출석자들인 나와 뉴욕 프리모 레비센터 소장 안드레아 피아노를 회의장의 청중에게 소개했다. 피아노는 피렌체 태생의 유대인인데, 아버지는 피렌체에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대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한다.

올핸 ‘홀로코스트의 증언자’ 프리모 레비 타계 20주년이다. 유대인처럼 잔혹한 정치폭력을 경험했던 한국도 ‘과거사 청산’이라는 기억의 싸움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다음 정권에서 크게 정체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정권이 교체돼도 성숙한 민주적 기반까지 뒤엎을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1990년대 초 일 진보세력의 “일본은 쉽사리 우경화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과 닮았다. 10, 20년 뒤, 올해를 “그 시점에서 역사가 역전됐다”고 회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데이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기억의 싸움’의 의의를 강조했다. 프리모 레비를 단지 ‘기억 속’의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기억을 위한’ 존재로 파악하려는 자세가 이번 논문집 제목에도 드러나 있다. 출판기념회의 제2부에서는 1982년 프리모 레비가 이탈리아 시민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의 기록영상이 상영되었다. “강제수용소에서 우리 수인의 인간성은 철저히 파괴당했다. 간수와 친위대 등 수인을 학대하는 쪽의 인간성도 역시 철저히 파괴당했다”고 인터뷰에서 대답하는 레비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생전의 레비를 만난 적이 있는 피아노는 레비가 매우 조심스럽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나치즘이나 홀로코스트에 관한 서적 가운데 소개돼 있는 책들이 극히 적다. 프리모 레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일부 전문연구자를 빼면 거의 없었던 게 현실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근현대사는 식민지 지배, 내전, 군사독재라는 잔혹한 정치폭력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다수는 머나먼 타국의 학살사건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또 “유대인도 수난을 겪었겠지만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비극을 경험했다. 그들의 경험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도 만났다.

한국에서는 참여정권 아래에서 과거 정치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주는 ‘과거사 청산’이 추진됐다. 이것은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인 ‘기억의 싸움’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 다음날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충분했던 ‘과거사 청산’은 이제 크게 정체될 것이다. 우편향의 ‘기억의 싸움’을 추진해온 일본 우파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많은 한국인들한테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한국사회는 과거 군사정권시대와는 달리 크게 변했다. 설령 이명박씨가 승리하더라도 그동안 성숙한 민주적인 기반까지 뒤엎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1990년대 초에 일본 진보세력이 끊임없이 입에 올렸던 “전후 민주주의를 경험한 일본사회는 쉽사리 우경화하지 않을 것이다”는 얘기와 아주 닮았다.

» 서경식 교수
 
피렌체 거리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아직 학생 같은 젊은이들이 브랜드 제품(명품) 가게에 모여 있었다. 확실히 과거 군정시대에는 맛볼 수 없었던 자유와 풍요를 한국인도 맛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 중에 몇명이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전통, 저항운동의 역사, 유대계 시민의 수난에 관심을 갖고 있을까. 내 눈에 그들 모습은 버블(거품) 경제를 구가하던 시대의 일본 젊은이들과 흡사했다.

이렇게 해서 2007년이 지나가고 있다. 내년은 어떤 해가 될까. 지금의 일본이 그러하듯, 10년 뒤 또는 20년 뒤 올해를 “그 시점에서 역사가 역전했다”고 회상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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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민주노동당, 다시 광야에 서라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장·전 민주노동당 의원
출처 : <경향신문> 2007-12-24


71만2121표. 참담한 대선 결과를 두고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고통스럽다.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당원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 당이 어떻게 만들어진 당인가? 오늘의 민주노동당이 있기까지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과 피눈물, 심지어 목숨까지 내걸었던가?

-‘71만표’ 심판의 의미 알아야-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2000년에 창당한 신생정당이 아니다. 지난 19일까지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이 2004년 총선에서 원내 10석으로 만들어 준 희망이자 그들의 고단한 삶을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다. 그런데 19일을 기점으로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을 71만2121표 정당, 정규직당, 친북당, 회계부정 공모당, 자기들끼리 싸우는 당으로 확인시켜줬다. 이 꼬리표가 최소한 5년은 갈 것 같다. 어쩌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또 어쩌면 한국 정치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당 외부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당에 대한 애정 어린 질책과 주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민주노동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를 포함하여 모두 원칙적이고 무난한 립 서비스만 하고 있다. 제도권에, 그리고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것이라고 결코 믿지 않고 싶다. 민주노동당의 말세에는 왜 예언자가 나서지 않는 걸까? 다시 절망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71만2121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으로 다시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당으로 할 것인지 하는 문제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북한의 군사 왕조정권을 보위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로 통일하는 것을 자신의 최고 임무로 하는 세력과는 진보정당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허한 원칙주의와 갈라치기로 자기만족적인 운동을 해온 이른바 좌파의 철저한 반성 없이는 진보정당은 가능하지 않다. 사회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한국적 토양과 국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기반하지 않는 그 어떤 노선도, 주의도 의미가 없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방침에 안주하여 돈과 표를 얻는 대신 그들의 잘못에는 침묵하는 비겁한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 조직노조 운동을 올바르게 세우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회연대를 추진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지구온난화에 대비하고 생태적 생활방식의 삶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이주노동자의 제한 없는 기본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진보일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진보다운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보다운 진보정당이 지금의 민주노동당이라는 틀 안에서 가능할 것인가?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고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이것을 판단하면 된다.

-처절한 반성 없인 ‘진보’ 없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상상을 해보자. 만일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적당히 표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아마 적당히 싸우고 대충 반성하는 척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나아갔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되짚어보면 우리 국민들이 눈물나게 고맙다. 그 현명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국민들은 표로써 민주노동당에 회초리를 들면서 새로운 길로 가라고 가르쳐 준 것이다. 이것을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지도자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퇴장해야 한다. 최소한 앞으로 이 극단의 이윤추구와 경쟁이 압도하는 사회를 거부하고 떨쳐 나올 세대들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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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민족주의’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
박노자칼럼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12-24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가난한 아시아 나라 주민들에게 ‘경제 대국’으로 여겨진다. 세계 13위(2006년 통계)인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러시아(11위), 인도(12위), 멕시코(14위)와 같은 거대 국가들과 맞물릴 정도며, 1인당으로도 32위(2005년 통계)를 점해 유럽연합의 포르투갈(31위)이나 슬로베니아(30위)와 가까운 수준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노동계급의 최하층은 가혹한 착취를 당하는 약 40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루어진다. 이들에 대한 민간 극우파의 공격성은 구미지역에 견주어 덜하긴 하지만 정부는 불합리한 ‘고용허가제’의 강행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법체류’를 양산하면서도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뒤받쳐주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잔혹한 단속을 주기적으로 벌인다. 결혼 이민자가 아닌 외국인의 정주를 결사적으로 막는 이런 정책은 유럽의 우파정권들을 훨씬 능가한다. 서구 기업들이 동유럽의 저임금 노동력 착취의 효과를 챙기는 것처럼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 같은 곳에서 ‘제1위 투자국’이 되어 약 30만 현지인들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수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진보 운동 차원에서는 유럽과 한국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한국과 1인당 국민 소득이 비슷한 수준인 포르투갈이나 그리스에서 민족주의는 우파만의 전유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좌파적 민족주의자’(속칭 ‘엔엘(NL)파’)들이 민주노동당이나 학생운동 조직 등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조가 당국의 탄압을 당하고 중국의 어용노조마저 중국에 진출해 있는 삼성의 노조 탄압을 비난하고 한국 기업들의 부당 노동행위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물론 중남미나 동유럽에서까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피해자 한민족과 가해자 미제’를 중심에 놓고 운동 노선을 잡는 구태의연한 언행이 진보사회에서 계속 동조자를 얻을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일까?

아류 제국 한국이란 새로운 위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한국 지배계급과 미국 지배자들의 비대칭적 연합을 ‘미제에 의한 식민화’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이들은 분명 운동 사회를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시대적 이데올로기가 계속 ‘팔리는’ 데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한국의 지배계급은 식민지적 상황이 종식됐음에도 ‘후견 국가’를 맹종하고 그 문화를 절대시하는 식민지적 관습과 사고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이미 이야기할 수 있음에도 계속 회피하며, 다른 ‘동맹국’들이 다 빠져나간 이라크 침략의 현장을 외로이 지키며, 모국어도 아직 익히지 못한 유아들에게 영어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대한민국 지배계급의 모습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세계의 먹이사슬에서 ‘중진’이 된 강남 귀족들은, 군사안보 차원에서도 문화 차원에서도 아직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들이 확보하지 못한 ‘민족적’ 명분을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이 전유하게 된 것이다.

가짜라도 미국 학위를 가져야 인간 대접을 해주고 미국 측과 협상을 할 때에 아예 한국어를 배제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게’ 영어로만 말하는 자들이 이 나라를 다스리는 이상 운동진영에서 민족주의라는 ‘소아병’은 완치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아시아·중남미·동유럽 각국에서 한국 기업을 위해 피땀을 흘리면서도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200여만 노동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민족’ 노선에서 ‘국제연대’ 노선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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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2-2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당한 말씀.... 이젠 민족주의라면 이가 갈리는걸요. 피해가 너무 크요.
내일 크리스마슨데 뭐해요?
아까 애들 사진 정리하다가 우리 옛날 사진 봤거든요.(10여년 전쯤의 등산다닐때 사진들...)
그때는 형도 꽤 뽀송뽀송하더라.... ㅎㅎ
역시 지리산에중턱에서 우산들고 찍은 사진 보며 우리끼리 낄낄대고 웃었다오. ㅎㅎ

내오랜꿈 2007-12-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가 갈리는 일이지만,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대세'인 것 같네요. 보통의 인민들이나 그 잘난 운동권 출신 인간들에게서나...-.-;

도내체 내가 언제 지리산 중턱에서 너네들과 우산 들고 사진을 찍었나?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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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노-심 금배지보다 당혁신 기수 돼라"
"미봉적 타협 안 돼...통일근본주의, 친북당과 갈라서야"
김은성 기자
출처:<레디앙> 2007년 12월 24일


손호철 교수(서강대 정치학)는 24일 "오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기득권에 기대 금배지를 한 번 더 달기 위해 미봉적 타협 노선을 택하기보다는 긴 안목에서 노회찬, 심상정 같은 민주노동당의 차세대 지도자가 당혁신의 기수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이날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민주노동당, 아니 한국 진보정당의 미래는 심상정, 노회찬 의원과 같은 차세대 스타들의 결단에 달려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손 교수는 "이명박의 승리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고 정동영 후보도 노무현 정부 심판의 분위기 속에서 그만큼 지지를 받은 것은 선방을 한 것인데 반해, 권 의원과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의 최대 패자"라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패기와 변화가 무기인 진보정당의 얼굴로 식상한 후보가 다시 출마하고 특히 대중적 정서와 동떨어진 친북세력의 지지를 받아 출마할 경우 그 결과는 뻔함에도 불구하고 노욕과 정파적 이익에 눈이 멀어 당을 자멸의 길로 끌고 갔다는 사실"이라고 개탄했다.

손 교수는 "고종석 객원논설위원이 ‘민주노동당, 시간이 없다’(2007년 12월 20일자) 칼럼에서 정확히 지적했듯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 참패를 계기로 북한과의 정분을 끊는 한편 민족지상주의, 통일근본주의와 결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더 이상 북한 정권은 연대할 진보적 체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시대착오적 대상이라는 냉철한 인식에 기초해 김정일 체제가 아니라 북한 민중을 연대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북한관을 확립해야 한다"면서 "이 같은 변화를 포함한 재창당수준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만일 친북적인 자주파가 당내 다수파라는 현실로 인해 이같은 개혁이 힘들다면 이번 기회에 친북적인 조선노동당과 그렇지 않은 민주노동당이 갈라서야 한다"면서 "특히 심상정, 노회찬 의원 같은 민주노동당의 차세대 지도자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칼럼 전문 



  [손호철의 정치논평] 심상정, 노회찬의 결단

“지금이라도 권영길 의원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3김 식의 욕심을 버리고, 민주노동당의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2선으로 물러나기를 바라는 것은 정치의 논리를 모르는 순진한 먹물의 기대일까?”
대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난 7월 30일 이 지면에 썼던 ‘진보의 세대교체’라는 나의 칼럼이었다. 이 글은 권영길 의원이 민주노동당과 한국 진보운동의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했지만 이제는 이선으로 물러나 세대교체를 해야 하며, 특히 시대착오적인 친북적 자주파의 지지를 받아 당내경선에서 승리하려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이었다.

■ 당 자멸의 길로 끌고간 권후보

그렇다. 이명박의 승리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고 정작 놀라운 결과는 민주노동당의 참패다. 사실 정동영 후보만 해도 노무현 정부 심판의 분위기 속에서 그만큼 지지를 받은 것은 선방을 한 것이다.

그러나 권 의원은 2002년 대선의 득표율보다 오히려 후퇴한 3% 득표에 그쳤고 무소속의 이회창, 정치 신인 문국현 후보보다 뒤진 5위로 밀려났다. 이 점에서 권 의원과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의 최대의 패자이다.

특히 득표율의 단순비교를 넘어서 구체적인 조건들을 생각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2002년의 경우 민주노동당은 원내 의석이 하나 없는 원외정당이었다. 게다가 노무현, 이회창 후보간의 박빙승부로 인해 적지 않은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노무현을 찍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경우 원내 제 3당으로 적지 않은 국고보조까지 받고 있고 노무현정부의 실정에 따른 민생파탄으로 서민들에게 “서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자유주의자들까지도 믿을 수 없으며 역시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기에 너무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이명박의 독주체제로 인해 지지자들이 사표를 걱정해 권 의원 대신 정동영 후보를 찍을 걱정도 적었다. 그런데도 목표치인 300만 표는커녕 2002년보다 후퇴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진보의 세대교체’에서 지적했듯이 패기와 변화가 무기인 진보정당의 얼굴로 식상한 후보가 다시 출마하고 특히 대중적 정서와 동떨어진 친북세력의 지지를 받아 출마하는 경우, 그 같은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함에도 불구하고 노욕과 정파적 이익에 눈이 멀어 당을 자멸의 길로 끌고 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북한과 연방제로 통일하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선거공약까지 들고 나왔으니 할 말이 없다. 아니 김정일체제라는 사실상의 세습왕정체제를 민주화하는 계획도 없이 북한과 연방공화국이라니 ‘코리아 왕정-공화국 연방’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

고종석 객원논설위원이 ‘민주노동당, 시간이 없다’(2007년 12월 20일자) 칼럼에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참패를 계기로 북한과의 정분을 끊는 한편 민족지상주의, 통일근본주의와 결별해야 한다.

더 이상 북한정권은 연대할 진보적 체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시대착오적 대상이라는 냉철한 인식에 기초해 김정일체제가 아니라 북한민중을 연대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북한관을 확립해야 한다. 즉 이 같은 변화를 포함한 재창당수준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 차세대 지도자 당혁신 기수돼야

만일 친북적인 자주파가 당내 다수파라는 현실로 인해 이 같은 개혁이 힘들다면 이번 기회에 친북적인 조선노동당과 그렇지 않은 민주노동당이 갈라서야 한다. 특히 심상정, 노회찬 의원 같은 민주노동당의 차세대 지도자들이 중요하다.

오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기득권에 기대여 금배지를 한번 더 달기 위해 미봉적 타협노선을 택하기보다는, 긴 안목에서 이 같은 당혁신의 기수로 나서야 한다. 결국 민주노동당, 아니 한국 진보정당의 미래는 심상정, 노회찬 의원과 같은 차세대 스타들의 결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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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포럼]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은수미/한국노동연구원·연구위원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2월 09일


얼마 전 영화 색, 계(Lust, Caution)를 보았다. 와호장룡, 센스앤센서빌러티, 브로큰백마운틴으로 이어지는 이안 감독의 이력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리뷰가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무삭제된 것은 정사장면만이 아니었다. 1940년대 일본 점령 하, 지독한 궁핍과 도처에서 벌어지는 살인 행위 속에서 식량을 얻기 위하여 무표정하게 줄 서있는 상하이 서민들, 그들의 모습이 무삭제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름이 불려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주인공과 조연들뿐, 그렇게 서있는 서민들은 거리나 건물처럼 하나의 배경이었다. 이름이 불리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던 사람들의 긴 줄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 사회 양극화 그늘의 노동자들 -

1984년 초겨울, 지금은 디지털 단지로 바뀐 구로공단의 토요일 오후 퇴근길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 어린 10대, 20대의 여성 노동자들 중 일부는 대학마크가 커다랗게 찍힌 노트를 하나씩 들고 있곤 했다. 달리 보이고 싶고 다른 이름을 갖고 싶은 소박한 욕망이 대학노트를 쥔 손에 점점 더 힘을 넣을 즈음, 그들 뒤를 따라가던 한 무리의 젊은 남성 노동자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공순아, 치마에 실밥 묻었다!” 순간 대학노트를 들고 있던 여성들이 치마를 보려고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고 곧바로 터져나온 젊은 웃음이 거리를 뒤덮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쳐지나가는 배경이었을 뿐인 그들 사이에서 이름이 불려졌다. 간혹 산업역군으로 미화되곤 했지만 공장의 미싱이나 옷감처럼 간주되었던 사람들이 이름을 통해 갑자기 배경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그 기억 탓인지 문득 색, 계의 배경이었던 서민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간절한 충동에 극장 문을 나섰다.

2000년대, 필자의 컴퓨터와 책상 앞에는 비정규직, 간접고용노동자, 사내하청노동자, 근로빈민, 빈곤여성, 이주노동자의 통계 자료가 넘쳐난다. 비정규직 입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규모는 2006년 대비 0.4% 늘었고 그 중에서도 건설일용이나 간병인 등 일일근로, 청소경비 및 단순사무 등의 용역 및 파견근로가 현저하게 늘어 고용의 질은 개선될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시간당 급여 및 월평균 급여는 지속적으로 떨어져 300인 이상 정규직 월평균 임금 294만5000원을 100으로 할 경우 100~299인 사업장의 비정규직 임금은 59.4%, 30~99인 사업장은 52.6%로 점점 줄어들다가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정규직은 28.9%인 85만원을 받는다. 월평균 급여 100만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들이 200만명이 넘고 이들의 사회보험 및 기업복지 수혜율은 10% 수준이 되기도 어렵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근거자료이기도 한 통계수치 앞에서 반문한다. 혹여 필자 역시 이 사람들을 사회양극화의 배경으로만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살아있는 존재로서 확인하기 위해, 통계 수치 아래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무엇을 하였을까? 분신과 자살, 집단적 저항을 통해 스스로 이름을 드러낼 때까지, 두 눈 가득 눈물을 담고 통곡하는 모습이 간혹 언론에 비춰질 때까지 필자는 무엇을 하였던가.

- 비정규직·이주노동자 기억을 -

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대선 주자의 이름만이 하루에도 수백번씩 호명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일지 모른다. 그래도 부르고 기억해야할 이름이 있다.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겸 서울지부장, 마숨 사무국장. 11월 말 길거리에서 체포되어 청주 출입국보호소에 갇혔다는 이주노조 임원들이다. 이랜드, 코스콤의 노동자들 이름도 애써 찾아본다. 직업으로서의 교수나 연구자가 아닌,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나 연구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차마 대답을 못한 12월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씻어내고 싶은 변명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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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나어릴때'님이 포스팅하신 이주민의 날 집회 소식과 출입국관리법 개악에 관한 지적을 볼 수 있다.

이주민의 슬픈 현실, 2007 이주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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