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만원 지하철에서 읽은 경향신문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어제의 오늘' 꼭지인데, 1941년 9월 8일은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공습을 감행된 날이라 한다. 이미 6월에 독일군이 침공해들어왔을 때, 당시 소련은 히틀러와 비밀리에 체결한 불가침 협정만 믿고서 전혀 무방비상태에 있었기에 피해가 더욱 컸다(스탈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다). 결국은 독일군을 격퇴하지만 2차 대전 중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곳이 동부전선이었다. 칼럼은 레닌그라드 봉쇄의 눈물겨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09. 09. 08) [어제의 오늘]1941년 독일군에 포위당한 레닌그라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역사와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러시아 제2의 도시다. 18세기 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가 유럽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러시아 북서부 네바강 하구 삼각주에 건설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수립 이후 1924년 레닌그라드로 개명했다가 1991년 소련 해체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6월 독일이 300만 병력을 동원해 소련을 침공하면서 대독전선 전방에 위치한 레닌그라드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파죽지세의 독일군은 개전 두달여 만에 레닌그라드 부근에까지 이르렀으나 시민들이 2만5000㎞에 달하는 참호를 파며 항전의지를 불태우자 점령 대신 포위전으로 전환한다. 히틀러도 독일군에 레닌그라드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린다. 



마침내 9월8일 독일군은 라도가 호수를 제외한 보급선을 완전히 차단하고 공습을 시작했다. 인구 300만명의 레닌그라드에 대한 보급이 차단된 뒤 한달여 만에 시민들은 극심한 기아상태에 빠졌다. 밀가루가 떨어지자 톱밥, 목화씨는 물론 말 사료로 쓰던 귀리까지 먹어야 했다. 소련 해군함대가 보낸 곡물수송선이 라도가 호수에서 격침되자 배를 인양해 썩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9월말에는 석유와 석탄이 떨어져 공장가동이 멈췄고 11월에는 교통수단 통행이 중단됐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아사자들이 속출했고, 사람들은 인육에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강원도만한 크기의 라도가 호수가 얼어붙으면서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 말이 이끄는 수송부대가 호수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물자를 실어 날랐고, 이듬해 4월까지 50만명의 시민들이 결빙상태의 호수를 건너 탈출했다. 1942년 여름에는 라도가 호수 밑바닥으로 석유 파이프라인이 건설되기도 했다.

1944년 1월27일까지 900여일 가까이 상상조차 어려운 굶주림과 추위, 폭격에 맞선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분투는 소련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줬고, 스탈린은 1945년 레닌그라드에 ‘영웅도시’의 칭호를 부여했다. 포위기간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뜨거운 동지애와 전우애로 서로를 격려하고 저항을 이어갔다. 나이 많은 시민들이 “꼭 싸워 이기라”며 젊은이들에게 배급을 양보하고 희생을 자처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계적인 음악거장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투쟁과 애국심을 찬양하는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독일군이 패퇴한 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트로이도 로마도 함락됐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며 만세를 불렀다. 포위전의 희생자는 소련정부의 공식발표로는 67만명이지만 최대 120만명이라는 설도 있다.(서의동기자) 

09. 09. 08. 

 

 

P.S. 찾아보니 레닌그라드 대봉쇄를 다룬 책들은 예상대로 많이 나와 있다. 어떤 책이 가장 정평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두 권은 소개됨 직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데브라 딘의 실화소설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랜덤하우스코리아, 2007)가 있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나치 치하 900일동안,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켰던 한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그리고 네덜란드 작가의 <레닌그라드의 기적>(다림, 2007)도 나와 있는데, 어린이용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레닌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열두 살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물론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을 다룬 책들은 기본서일 텐데, 또다른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그린 안토니 비버의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서해문집, 2004)는 "2차 대전의 향방을 뒤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소개만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책이다. 찾아보니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병사의 회고록과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에서의 전차전에 관한 책도 소개돼 있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라 이름 붙여진 소련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 이로써 불붙은 독일과 소련의 전투는 역사상 최대의 시가전으로 기록될 만큼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안기며 2차 대전의 향방을 뒤집는다. 전체 전사자 중 80%를 이곳에서 잃은 독일군은 이 전투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2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어떻게 스탈린 체제의 비효율적인 공포정치에 익숙해진 소련이 그토록 막강한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흐루시초프는 이 전쟁에 대해 "소련은 스탈린 덕분에 독일에 이긴 것이 아니다. 스탈린이 있었음에도 이긴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 전투의 주인공이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아니라 이름조차 없이 사라진 무명용사들이라는 것.

이 책은 이같은 입장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들여다본다. 전투 현장의 양쪽 군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전투에 휩쓸린 보통의 사람들이 이 전투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견뎠는지를 담아낸 한편의 다큐멘터리와 같다. 이를 위해 양측 군인의 일기와 편지, 군목들의 보고서, 개인적 메모 등 다양한 사료들을 동원했다.  

겸사겸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도 감상해본다(http://www.youtube.com/watch?v=m3G9ZqxcReU)...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바다 2009-09-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러시아 사람을 작년에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왈 레닌그라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정확한 러시아 발음은 어떻게 되나요?^^)로 복귀했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아직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스탈린그라드 대회전과 관련되어 있기에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하던데, 전 사실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 갑자기 내가 제대로 알았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반박을 못했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1961년 이후 볼고그라드로 복귀된 걸로 되있네요.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을 테고, 행정적으로는 볼고그라드지만 아직 많은 러시아인 기억에는 스탈린그라드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Sati 2009-09-08 20:34   좋아요 0 | URL
검색해보니, 러시아공산당을 중심으로 개명운동이 매년 꾸준히 펼쳐지고 있는데, 아직 공식적으로는 볼고그라드입니다. 2004년에 푸틴이 국민정서를 고려하여 모스크바 크레믈린 옆 무명용사의 묘역에 있는 '볼고그라드' 명판을 '스탈린그라드'로 바꾼 일이 있었네요.

로쟈 2009-09-08 23:41   좋아요 0 | URL
'뻬쩨르부르그'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러시아지명에 대해선 러시아인들도 모르는 수가 있군요.^^

푸른바다 2009-09-09 16: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Sati 님 감사합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있군요... 업무상 러시아 인들을 만날 일이 있는데, 소련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답을 회피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싸움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 이름을 바꾼다는 건 그 싸움의 명분이 상당부분 사라지는 것을 상징하기에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음악 잘 들었습니다~

로쟈 2009-09-08 23:40   좋아요 0 | URL
중국엔 잘 다녀오셨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9-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오래전 번역된 것도 있고 국내 저자가 쓴 것도 있지만 레닌그라드 공방전 자체만을 다룬 것은 단행본으로 나온 게 없어요.해리슨 솔즈베리 것이 영어권에선 꽤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번역되지 않았구요.좀 오래된 것 중 윌리엄 샤이러<제3제국의 흥망>이 자세한데 60년대에 번역된 것은 일본어 중역이라 가타카나 발음으로 나와서 좀 어지럽지요.

최근 나온 것은 데이빗 글랜츠<독소전쟁사>가 군사전문가 쪽에서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오버리는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글랜츠는 러시아어를 안다는 잇점이 있지요.그리고 전투 묘사에 더 치중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9-09-08 23:39   좋아요 0 | URL
언젠가 서점에서 본 듯한 책이군요. 덕분에 챙겨둡니다.^^

펠릭스 2009-09-0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소피아로렌 주연 "해바라기(sunflower)"가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년)" 전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군인의 얘기가 아닌가요?
*'독소전쟁사' : '독소(toxin)전쟁사'로 오인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9-10 23:02   좋아요 0 | URL
마츠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독일군의 동맹군으로 소련에서 전투 중 낙오되어 현지여인과 결혼한 이탈리아 남자로 나오지요.그 소련 배우가 미녀로 유명한 루드밀라 샤벨리에라입니다.배경은 우크라이나입니다.현지에서 직접 찍었지요.촬영당시는 소련 시절이라 우크라이나가 소련 내 공화국이었습니다.

펠릭스 2009-09-12 09: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접경이군요. 주위에는 동유럽국인 '벨로루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있군요.
현재 동유럽은 '경제.금융상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1) 외부 유입된 부채에 의한 경제구조.
2) 사회복지에 대한 많은 재정적자.
3) 정치불안,'우크라이나'경우 은행개혁과 정부 예산 수정 등 각종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미미한 상태로 201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쟁으로 인해 혼돈 심화.(조선,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2009-09-1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1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