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어 이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굳이 소개를 덧붙일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인터뷰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개인적으론 얼마전 작가를 가까운 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등장하는 모습과 너무도 닮아서(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좀 낯선 느낌을 받았다. 영화에서 '어색한 연기'를 한 줄 알았지만, 그냥 그는 평소 포즈가 어색했던 것이다!(작가들은 두 부류가 있는 듯싶다. 사교적 모임에서 발군의 입담과 화색을 자랑하는 경우와 저런 보릿자루가 다 있나 싶은 경우.)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이 예외적이지 않나 싶다.
경향신문(09. 09. 11) 소설가 김연수 “고통에 대한 글쓰기가 곧 사랑의 경험”
소설가 김연수(39)의 네 번째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의 수록작 ‘달로 간 코미디언’의 주인공 소설가는 이렇게 호언한다. 하지만 과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대체 쉬운 일일까. 김연수는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에 도전한다. 김씨가 2005년부터 지난 여름까지 써내려온 소설 9편을 모은 이 책은 ‘고통, 이야기, 이해’에 관한 슬프지만 따뜻한 이야기다.
김씨가 펴낸 열 번째 소설이기도 한 이번 소설집에서 김연수는 작가로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이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까지는 내가 소설로 쓰고자하는 명확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나는…>을 끝내며 이제 내 얘기는 그만 쓰고 싶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2005년부터는 외부 세계에 나 자신을 맡겨두고 타인과 얼마나 소통되는 지점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한 소통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소설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는 그런 그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미국의 여성 소설가는 17살 연하의 한국인 애인 ‘케이케이’의 고향 ‘밤메’를 찾아 한국을 방문한다. 케이케이는 미국 LA 폭동 때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통역사 혜미는 3살배기이 아들을 잃은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다. 혜미를 부르기 어려워 ‘헬프 미’를 본떠 ‘해피’라고 부르는 소설가. 소설가와 해피의 소통은 원활치 않다. ‘밤메’라는 지명은 어디에도 없고, 비슷한 곳을 어렵사리 찾아가도 그곳은 산업단지가 들어선 황폐한 곳이다. 초조한 마음에 소설가는 해피에게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화를 낸다.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그들은 말보다는 서로의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불꽃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는데, 각자 혹은 함께 타오르는 불꽃의 온기를 그들은 공유한다.
“서로 소통이 안되니까 그게 고통이잖아”라고 말하는 주인공이 시각장애인과의 대화를 통해 여자친구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달로 간 코미디언’, 인도인 이주노동자와의 서툰 대화를 통해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역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소통에 이르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고통의 이해는 무엇을 통해 이뤄지는가. 그것은 이야기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고통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야기, 이야기를 통한 소통, 그리고 이어지는 불통의 과정을 무겁지 않고 위트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십년째 매일 도서관에 나와 책만 읽는 노인이 있다. 그는 사실 대공 업무를 담당했던 경찰관으로 그가 고문하던 도중 한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 그는 잠적해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읽으며 “단 한 권이라도 자기 같은 인생도 이 세상에 필요했다고 말해주는 책”을 찾아 헤매지만 그런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는 자기가 쓰는 수밖에. 노인은 속죄의 의미로 그 이야기를 도서관 사서에게 털어놓고 자살한다. 사서는 노인의 고통이 전이된 듯 몸이 아파 휴가를 내려 하지만 상사는 자기보다 먼저 휴가를 가려는 후배가 못마땅해 고함을 지를 뿐이다.
김씨는 “점점 사회적 고통이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것 같다”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말만 계속하는 소설이 부질없는 행위 같지만 절망과 고통에 대해 쓴다는 것이 반어적으로 사랑의 경험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영경기자)
09. 09. 10.
P.S. 기사를 보니 이번에 나온 소설집에서 단편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발표 당시에 읽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우화적이어서 별로 내키진 않았다(위트보다는 작위성이 마음에 걸린 듯하다). "수십년째 매일 도서관에 나와 책만 읽는 노인" 같은 인물이 주인공이면 나는 책을 덮는다('수십년'을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처리하는 소설을 나는 싫어한다). 하지만, 작품집이란 '배치' 속에서는 또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머지 작품들은 틀림없이 걸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