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다시금 사법 권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국민과 법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안위와 자리 보전에만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도 아무런 브레이크가 돼주지 못한 걸 보면 자구책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법치주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들에 눈이 간다. 원래 이 분야의 책들이 자주 출간됐던 것인지, 아니면 시국과 관련하여 부쩍 많이 출간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눈에 자주 띈다. 이번주에 눈에 띈 세 권에 관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09, 06. 20) [내 책을 말한다] 비열한 법치주의, 불온한 시민을 만든다

법대에 들어가 법조인의 꿈을 키우던 시절, 모래알을 씹는 것과 같다는 법서를 뒤적이며 생각하던 ‘좋은’ 법과 법률가의 모습을 그렸다.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마주한 시민들과 관료, 군인들의 모습이 있었다. 실제 마주한 법률가들과 우리 법의 현실은 감성적으로 이해한 우리사회의 민주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였다. 교과서 속의 법과 권리는 늘 사람에 의해 왜곡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법을 마주하였을 때를 스스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법은 늘 우리 곁에서 우리 삶을 규율하고 있지만, 그 법이 자신의 근처에서 늘 서성인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은 아직 우리에겐 낯선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민들의 무관심은 ‘침묵하는 다수’로 호도되어 늘 권력자들의 구미에 맞게 이용되고 조작된다. 그 모습을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실히 목격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권력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2007년 가을 한 주간의 뉴스를 통해 법이 담고 있는 의미와 실체를 분석하는 코너를 맡아 근 1년 가까이 라디오 방송을 했다. 그러나 KBS 인사파동 중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퇴보하는 징후가 노골화되는 가운데 방송을 중단하게 됐다. 많이 아쉬웠다. 그런데 방송원고를 모아 책으로 묶어 내자는 제의를 받았다. 방송도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난생 처음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고 보니 무척 당황스럽고 망설여졌다. 그 때 다루던 주제들이 이미 시의성을 잃고 있어 어렵겠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찬찬히 살피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한 주제로 남아 있다는 의견 앞에 시의성 부족의 항변은 더 이상 통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못내 씁쓸하기도 했다. ‘무엇이 시민을 불온하게 하는가’(갤리온 펴냄)는 그렇게 나왔다.  

진실은 여전히 땅 속을 맴돌고 정의는 도무지 활짝 피어나지 못한다. 과거에 비해 퇴보하고 있다는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애써 포장하는 법률 기술자들의 행태는 변함이 없다. 집시법 개악, 집단소송제 도입, 광고주 불매운동, 김용철 변호사 양심고백사건, 삼성특검, 대법관 재판 개입사건 등을 헌법과 인권의 관점에서 다뤘다. 권력을 가진 쪽은 비열한 법치주의를 강요하며 불온한 시민을 양산한다. ‘불온’한지의 여부를 권력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수많은 ‘불온’이 모여 발전해 왔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자 교훈이다. 군주의 절대적 권력이 사라진 오늘에도 ‘불온’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활보하고 있음은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게 한다.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삶의 법, 사람의 법’이었다. 시민들이 삶 속에서 항상 관심을 갖고 법과 그 법을 집행하는 권력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람의 법이 완성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회초리를 든 법이 아니라 푸근한 울타리로서의 법이 피어날 때 우리는 분명 살 만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천학비재(淺學菲才)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하지만 깨어 있는 시민이 좋은 법을 만들고 좋은 나라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최강욱 법무법인 청맥변호사)   

한겨레(09. 06. 20) '석궁재판’ 법치주의 실태를 전하다

2007년 1월15일 저녁 6시30분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김명호는 자신이 낸 교수지위 확인소송의 항소심 재판장인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의 아파트를 찾았다. 1층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퇴근하는 박 판사와 마주친 김 교수는 화살이 장전된 석궁을 들고 “항소를 기각한 이유가 뭐냐”고 따져물었다. 잠시 뒤 화살이 발사됐고, 아파트 경비와 운전기사에 제압당한 김 교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사건 직후 대법원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 집에 찾아와 흉기를 사용해 테러를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대법원장의 발언과 “법치주의가 흔들리면 국가 질서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전국법원장회의의 담화가 잇따랐다. 그런데 여론은 법원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사건을 보도한 인터넷 기사에는 “법치주의? 똥 싸고 자빠졌다” “나도 석궁을 쏘고 싶었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부러진 화살>은 “원칙대로 고집스럽게 살면서 주변에 적당히 사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성질 깐깐한 한 수학자’가 벌인” 대한민국 법원과의 전투 기록이다. 책을 쓴 전문 인터뷰어 서형씨는 3대 권력기관(청와대·국회·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1인시위계의 전설’이 된 김 교수를 뒤늦게 만났다. 석궁사건에 대한 7차 공판이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글쓴이가 지켜본 공판은 한 편의 부조리극이다. 피고인 신분의 김 교수가 판사와 검사를 향해 “법을 지켜라” 하고 호통치는가 하면, 재판장은 피해자 박 판사에 대한 변호인의 신문을 수시로 가로막는다. 피고인에겐 공공연한 경멸감을 표출하면서 박 판사에게는 깍듯하게 대하는 검사나, 부장판사를 지낸 사람이 맞을까 싶을 만큼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박 판사, 재판중임에도 문을 박차고 나가거나 소리를 질러대는 방청객들 역시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원고 쪽이 밝힌 사건 전모 역시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박 판사의 복부에 난 상처는 1.5m 거리에서 쏜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다고 보기엔 턱없이 경미하고,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품 가운데는 박 판사가 맞았다는 ‘부러진 화살’이 사라지고 없다. 박 판사의 겉옷과 내복에 남아 있는 핏자국이 와이셔츠에는 없는 점, 확보된 혈흔이 박 판사의 것이 맞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부실 수사도 의혹만 키울 뿐이었다. 그런데 증거의 부실함을 지적하며 박 판사에 대한 추가 신문과 혈흔 감정이 필요하다는 김 교수의 요청을 재판장은 모두 기각한다. 김 교수는 결국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거쳐 교도소에 3년째 수감중이다.

글쓴이는 석궁 재판을 사실상의 징벌 재판으로 규정한다. 재판의 부당성을 고발하며 판사의 실명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판사를 석궁으로 위협하고 재판정에서도 법조항을 들이대며 재판부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겁 없고 불손한 피고인에 대한 ‘법조 카르텔’의 집단보복이란 얘기다.   

사건 당사자인 김 교수와 주변 인물은 물론, 현직 부장판사와 법원 직원, 나아가 유사한 사법 피해자들과 사건을 취재한 언론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항소심 재판장과 김 교수의 법정공방을 속기록 형태로 정리한 5장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문제점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현장 르포로도 손색이 없다.(이세영 기자)   

세계일보(09. 06. 20) 재판제도는 신이 만든 제도가 아니다

인간사회를 가장 명확하게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재판제도’다. 국가가 형성된 이후 인류의 역사는 ‘재판의 역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개체성이 강하고 지혜가 발달한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다툼과 분쟁과 반역이 있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공정한 판단과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공정한 재판이 존재할까. 죄 있는 사람은 벌을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은 무죄판결을 받는 것이 재판의 원리거늘 과연 그럴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왜 통용되며, 살인이나 반역죄로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 무죄로 방면되는 일은 왜 반복해서 일어날까. 정권이 바뀌면 왜 전 정권 고위인사들은 줄줄이 쇠고랑을 찰까.

영국 변호사인 브라이언 해리스가 지은 ‘인저스티스―세기의 정치범 재판’(이보경 옮김, 열대림)은 부정 혹은 불의가 발생한, 즉 무고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거나 유죄판결에 ‘합리적 의혹’이 존재하는 악명 높은 재판들을 탐구하여 그 재판이 ‘공정했는가’의 문제는 물론 피고는 ‘유죄인가, 무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의’의 본보기로서 반역죄, 간첩활동, 폭동 같은 명백한 범죄뿐만 아니라 의무태만, 비겁함, 정치적 목적의 강탈, 불경죄, 노동쟁의 같은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은 무엇보다도 ‘판결에 대한 균형 잡힌 검증’을 시도한다.

저자는 사법 살인의 대표적 희생자로 영국 해군 지휘관 존 빙 제독을 예로 들었다. 1756년 지중해 미노르카 섬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빙 제독은 영국 함대의 형편없는 전투력으로는 도저히 프랑스 함대를 이길 수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다. 그럼에도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에서 무승부를 기록한다. 하지만, 왜곡된 보고서에 기초한 해군본부는 빙 제독이 일을 다 그르쳤다며 체포했고, 그 후 근거가 부족한 명령불복종죄, 근무태만죄, 영국 정부에 의해 선동된 전국적인 편견과 여론을 등에 업은 군사재판이 열렸다. 그를 구하기 위해 적이었던 프랑스 장군까지 서신을 보냈지만 정부 측에 의해 탈취되었고, 정부는 미노르카 섬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빙 제독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당시 ‘뉴게이트 캘린더’지는 “존 빙 제독은 온 유럽을 경악시키며 처형되었다. 그의 과오와 무분별함이 무엇이었든 영국 정부는 그를 가혹하게 매도했고 비열하게 포기했으며 정치적 음모에 잔혹하게 희생시켰다”고 보도했다.

책은 이 밖에도 링컨 암살자들부터 영국 왕 찰스 1세, 방송인 윌리엄 조이스, 영국 영사였던 로저 케이스먼트, 노동조합운동의 등불로 여겨지는 톨퍼들 순교자들, 아나키스트였던 사코와 반제티, 대법관 토머스 모어, 그리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의 나치주의자들, 그리고 원폭 기밀 간첩 로젠버그 부부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재판’으로 인식되는 13가지의 악명 높은 재판 사례를 통해 권력자 또는 국가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대상을 어떻게 희생시켰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의’는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파헤쳤다.

“수많은 악명 높은 사건들을 살펴보고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저자는 “불확실함과 도덕적 모호함이 넘치는 정치범 재판은 인간의 행동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험대”라고 말한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정치성 재판에 관여하고 있는 검사와 판사,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에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다.(조정진기자)  

09. 06. 20.


댓글(2) 먼댓글(3)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sh.의 생각
    from sanghyun's me2DAY 2009-06-20 12:04 
    대학교수가 판사를 석궁으로 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전후사정이 책으로 엮어졌군요. via 로쟈의 저공비행
  2. 이제 검찰의 이빨을 뽑아야 할 때
    from 급진적 생물학자 Radical Biologist 2009-06-20 23:58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때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개혁을 위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검찰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박연차 게이트, 용산참사, 촛불시위, 피디수첩 등등의 개개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때다.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검찰의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그 성과는 보잘것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3. 사코와 반제티 사건과 한국사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2 09:13 
    이번주에 눈에 띄는 신간은 저널리스트들이 쓴 역사서이다. '알 카에다에서 9·11까지'를 다룬 로렌스 라이트의 <문명전쟁>(다른, 2009)과 '세계를 뒤흔든 20세기 미국의 마녀재판'이란 부제를 단 브루스 왓슨의 <사코와 반제티>(삼천리, 2009). 미국사/문명사의 한 단면을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는 책들인데, 개인적으론 내용보다도 이런 책들을 쓸 수 있는 필자와 시장 조건이 좀 부럽다. 이번주 한겨레2
 
 
승주나무 2009-06-20 16:43   좋아요 0 | URL
제목 없음

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알라딘 서재지기와 네티즌들이 함께 시국선언 의견광고를 하려고 합니다.
알라디너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의사를 댓글로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즐찾 서재들을 다니면서 통문(댓글)을 돌리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남기는 스팸성 댓글이지만 어여삐 봐주세요~~~

http://blog.aladdin.co.kr/booknamu/2916466


2009-06-2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