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서 <레닌 재장전>(마티, 2010)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긴' 서평이기도 해서 한번 일독해보기 위함이다. 필자는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의 장석준 연구기획실장으로 <레즈를 위하여>(공저, 실천문학사, 2003), <혁명을 꿈꾼 시대>(살림, 2007)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프레시안(10. 02. 06) '레닌 르네상스'…그가 돌아왔다!

'레닌 재장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레닌의 초상을 표지에 실은 책이 나왔다. 원제는 'Lenin Reloaded'. 아무래도 영화 <매트릭스>에서 따온 표현임이 분명하다. 할리우드 영화와 레닌의 이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니, 21세기도 새 10년을 맞이하는 지금, 레닌이 다시 서점가에 등장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최근 베를린 시가 레닌 동상을 복구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 속 마지막 레닌은 거의 스무 해 가까이 전 해체된 동상의 모습인 것 같다. 그리스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에 나왔던, 강에 떠내려가는 레닌 동상.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에 나온, 헬리콥터에 실려 공중에 떠 있는 그 동상. 



1980년대 변혁 운동의 여진이 남아 있을 무렵 읽었던, <무엇을 할 것인가>니 <국가와 혁명>이니 하는 저작 속의 그 단호하고 신랄한 문구들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 퇴장이었던가! 역사가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레닌 동상이 해체되던 그 무렵이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시작된 '짧은 20세기'의 종지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레닌의 저작에 흥분하기도 하고 주눅 들기도 하다가 그 처연한 퇴장을 목도한 우리는 '짧은 20세기'의 끝물에 휩쓸렸던 것이겠다.

지젝-레닌 커넥션
이 씁쓸한 기억이 채 다 가라앉기도 전에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휘저어 놓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레닌이 했던 그 일을, 물론 100년 전과는 분명 다른 방식들을 통해서이기는 하겠지만, '반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시대에 어긋난 몽상가, 선동가들인가. 아니면 <레닌 재장전>이라는 책의 부제('진리의 정치를 향하여')처럼,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리'의 고지자들인가. 



레닌 컴백을 주도하는 사람은 스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다. 2004년에 영국의 좌파 출판사 버소(Verso)에서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한 <Revolution at the Gates>라는 책이 나왔다. 번역하면, '문 앞의 혁명' 정도가 되겠는데, 레닌에 대한 지젝의 글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1917년 10월 혁명 직전에 쓰인 레닌의 글들이다.

국내에도 레닌에 대한 지젝의 저작이 두 권이나 나와 있다. 하나는 그의 독일어 논고들을 번역한 <혁명이 다가온다-레닌에 대한 13가지 연구>(이서원 옮김, 길 펴냄)이고, 다른 하나는 위의 영어 저작을 번역한 <지젝이 만난 레닌-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정영목 옮김, 교양인 펴냄)다. 말하자면 '레닌 르네상스'는 어느 정도는 지젝의 노고의 결과다.

이번에 나온 <레닌 재장전>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편저자 중 한 명으로 지젝의 이름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글도 한 편 수록되어 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집필 시점은 앞에 소개한 책들보다 앞서 있다. 비록 영어본이 나온 것은 2007년이지만, 2001년에 독일에서 열린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레닌의 복구'라는 국제 심포지엄의 발표문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지젝은 왜 이토록 레닌에 집착하는가. 대중 소설과 할리우드 영화를 소재로 삼아 헤겔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강의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 21세기 철학자가 잊혀진 20세기의 혁명가를 자꾸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구나 지젝은 고국인 슬로베니아(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에서 공산당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는 '자유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통해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서기까지 했었다.

수많은 레닌들 중에서도 1917년의 레닌
여기에서 우리는 지젝이 주목하는 레닌이 그의 수많은 얼굴들 중에서도 특히 1917년의 레닌임을 주목해야 한다. 차르 정권에 맞서기 위해 지하 정당을 만들던 <무엇을 할 것인가>의 레닌도 아니고,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위해 불철주야하던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의 레닌도 아니다.

이미 민주주의 혁명이 승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향해 곧장 나아가자고 주장하던, 1917년 2월부터 10월 사이의 레닌이다. 지젝이 여러 레닌들 중에서도 유독 이 시기의 레닌에 주목하는 것은 이 시기의 레닌이 펼친 그 '정치'가 지금 우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시기의 레닌의 정치는 마치 무소불위인 것처럼만 보이던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에 결정적인 균열을 가하는 역사적이자 집단적인 행위였다.

우리 시대 지구화의 미래가 어쩔지 예감케 해주는 지난 100년 전 지구화(흔히 '제국주의'라 불리는)는 1914년 세계 전쟁을 통해 그 모순을 폭발시켰다. 그 동안 일국 단위에서 사회주의 개혁 혹은 민주 혁명을 추진하던 유럽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이 사태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지배 계급의 전쟁 수행에 공범이 되어주든가 시대에 절망하든가 둘 중 하나였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당시 좌파의 맹목(盲目)이 재앙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레닌은 절망하기보다는 시각을 전환했다.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연계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세계 전쟁이 불러일으킬 정치적 효과들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제국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 즉 러시아에서부터 세계 혁명이 폭발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었다. 자본주의 지구화가 낳은 모순을 바탕으로, 그것을 극복할 또 다른 전 지구적인 연계(북반구의 노동자 혁명과 남반구의 민족 해방 혁명 사이의 연대)가 구축될 수 있으리라는 강력한 희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 미친 듯한 유토피아적 열정으로 그는 1917년 2월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의 공간이 열린 조국 러시아에서 새로운 혁명의 시작을 재촉했다. 본래 러시아 민주주의 혁명의 이론가이자 지도자였던 그가 귀국하자마자 그 일성으로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시작을 외친 것이다('4월 테제'). 다들 그의 정신 건강을 의심했다. 처음에는 소속 정당인 볼셰비키당 간부들조차 그랬다. 하지만 실제로 10월에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세계는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의 거대한 균열선을 현실로서 마주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지구화의 시대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게 되었다.

레닌이 마주한 순간들을 되새기려는 시도들
<레닌 재장전>도 이 시기의 레닌에 관심을 집중한다. 안 그런 글들도 있지만, 적어도 2장과 3장의 글들은 그렇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가장 읽을 만한 것이 이 2장(철학에서의 레닌)과 3장(전쟁과 제국주의)이다. 2장, 3장은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저자들의 글로 채워져 있다. 사실 가장 저명한 저자들의 글은 1장(레닌을 복구하기)에 모여 있다. 알랭 바디우, 알렉스 캘리니코스, 테리 이글턴, 프레드릭 제임슨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 우리 시대 좌파 저술가로서는 더 이상 호화로울 수 없는 캐스팅이다.

하지만 심포지엄 발표문들을 모은 책이라 그런지 글의 완성도는 천차만별이다. 특히 스타급 필자들 중에서 몇몇은 뜻밖의 실망을 안겨준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그렇다. 1935년에 트로츠키가 꾼, 레닌이 나오는 꿈 이야기에서 시작해 사뭇 비장하기는 한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글로 끝난다. 4장(정치와 그 주체)에 실린 안토니오 네그리의 글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네그리는 레닌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가 레닌에 대해 쓴 글이 더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데, 막상 읽어보면 레닌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평소 자신의 주장을 반복할 뿐이다.

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2장과 3장의 필자들이 제1차 세계 대전과 2월 혁명, 10월 혁명에 이르는 시기의 레닌의 사상적 고민과 발전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가령 미국 사회과학자 케빈 앤더슨의 글은 레닌의 전망이 남반구 민족 해방 운동 및 유색 인종 해방 운동에 끼친 결정적인 영향을 잘 보여준다. 지젝과 함께 이 책의 공동 편집자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도 레닌의 헤겔 <논리학> 연구와 이 당시 정치 실천 사이의 연관을 분석하면서 레닌 이해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다분히 철학적이라 읽기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말이다.  



2장, 3장 필자들 중 국내에 어느 정도 알려진 이들인 다니엘 벤사이드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글도 많은 시사와 영감을 던져준다. 벤사이드는 레닌의 성취뿐만 아니라 그의 시대적 한계도 가감 없이 지적하고 있으며, 발리바르의 글도 마찬가지로 냉정한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벤사이드(68세대로서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트로츠키주의 운동가였고 반자본주의신당의 산파 중 한 명이었다)는 지난 달 작고했기에 그의 글을 읽는 느낌이 남 다르다.

이들 필자의 글들에서 일관된 것은 레닌의 특정한 주장을 반복하거나 그의 권위를 강조하기보다는 그가 1910년대(그러고 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이다)의 시간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이와 대결했는지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그 순간들, 그 속에서 레닌이 취한 포즈를 되새기려 한다.

이것은 곧 지젝이 "레닌주의적 제스처"라고 말하는 바이기도 하다. 지젝은 다른 공동 편저자들과 함께 쓴 '서문'에서 이를 "상황에 개입하겠다는 결단"이라고 풀어 말한다. "필요한 타협을 하고 현실적인 요구에 이론을 맞추려는 실용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모든 기회주의적 타협을 물리치고, 오직 일이관지하는 급진적 입장(이를 통해서만 우리의 개입이 상황의 배치를 바꿀 수 있는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다)을 채택한다는 의미에서" 개입한다는 결정.

신자유주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정치적 선택 자체가 금기시돼온 지난 30여 년간의 시대를 끝내려면, 바로 이러한 제스처를 통해 한 시대를 갈라야 한다는 것이다. 100년 전 그것이 1917년 10월 러시아 민중들을 통해 작렬했다면, 우리 시대에 그것은 어떠한 모습으로 출현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어떻게 분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

다시금 '돌파'의 시대를 꿈꾸며
<레닌 재장전>에 실린 여러 글들에서 반복되는 한 단어가 있다. '돌파'라는 말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레닌 자신이 1917년의 뜨거운 논설들 중 하나에서 이 말을 인상 깊게 쓰고 있다.

"1917년 2월에서 3월에 걸친 러시아 혁명은 제국주의 전쟁이 내전으로 전화된 시작이었다. 이 혁명은 전쟁을 끝장내는 최초의 일보를 내딛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2보, 즉 국가 권력의 프롤레타리아트로의 이전 그리고 전쟁의 종결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적 규모에서의 '돌파(break-through)',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의 전선에서의 돌파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직 이 전선의 돌파에 의해서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인류를 전쟁의 공포로부터 구해내고 인류에게 평화의 은총을 내릴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이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창조함으로써 이미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끈 것은 바로 자본주의 전선에서의 '돌파'로였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프롤레타리아 당의 강령 초안>)

'돌파'는 교착 상태를 깨는 행위다. 기존의 전선에 머물고 적의 강점과 우리의 약점을 넘을 수 없는 한계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전선을 이동시키고 적의 강점을 약점으로, 우리의 약점을 강점으로 탈바꿈시키는 행위다. 이것은 판박이를 벗어나기 위한 판갈이의 정치이고, 우선은 '판을 깨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지구화, 금융화된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흔들리고 있지만 정치적 선택지는 여전히 과거 그대로인 우리 시대, '반MB의 시간'이 '진보의 시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우리 시대 역시 하나의 교착 상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돌파'의 정치, '판을 깨는' 정치다. 다시 '레닌'을 꺼내는 게 느닷없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과거 레닌주의의 복고(復古)가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어떤 정치의 시의적절한 반복에 대한 대망이라면 말이다.(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10. 02. 08.  

P.S. 참고로, 지젝 등이 쓴 서문에서 '레닌을 반복하기'란 말의 의미를 밝혀놓은 대목을 옮겨놓는다.  

우리는 레닌을 반복하고 재장전해야만 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의 성좌에서 똑같은 추동력을 되살려내야 한다. 레닌으로의 변증법적 회귀는 "좋았던 옛 혁명기"를 향수 속에서 재연하는 것도,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옛 프로그램을 "새로운 조건"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 귀환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계대전 - 더 정확히는 1914년의 파국으로 진보주의라는 긴 시기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붕괴되고 난 뒤 - 이라는 조건 속에서 혁명의 기획을 재창조하려는 "레닌의" 제스처를 현재의 지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라는 개념을 자본주의의 오랜 평화로운 확장이 끝난 1914년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식이 생겨난 1990년 사이의 시간으로 정의한다. 레닌이 1914년에 한 것을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해야만 한다.(23-24쪽) 

  

더불어, '레닌의 반복' ' 레닌 재장전'의 구호는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이름붙일 수 없는 것>의 마지막 문장이다(아직 국역본이 없다). '레닌과 변증법의 길'의 필자 사바스 미카엘-마차스가 인용하고 있는데, 지젝도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 말하자면 캐치프레이즈이다. 

"너는 계속해야만 한다, 나는 계속할 수가 없다, 계속하고야 말겠다." 
"You must continue, I cannot continue, I will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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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르넬르 2010-02-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이군요. You, not I , Yes I

로쟈 2010-02-09 12:17   좋아요 0 | URL
지젝이 좋아하는 베케트의 문장은 <최악의 방향을 향하여>에 나옵니다.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카스피 2010-02-0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레닌이 다시 돌아오는군요^^

로쟈 2010-02-09 12:15   좋아요 0 | URL
20년만입니다.^^
 

투르게네프가 말년에 쓴 산문시들은 국내에 일찍 소개되어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가장 대표적으론 '거지'란 시를 들 수 있다. 여러 차례 번역됐는데, 그 중에는 장만영의 번역도 있다. 기억엔 1930년대이고, '비렁뱅이'란 제목이었다. 윤동주의 산문시로 돼 있는 '투르게네프의 언덕'도 이 '거지'를 패러디한 것이다. 지난주 아트앤스터디 러시아문학기행에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다루면서 참고자료로 읽어본 김에 여기에도 옮겨놓는다(번역의 출처는 잊었다). 대학강의에서도 투르게네프 시간에는 곧잘 나눠주곤 한다. 국내에서는 이미 논문들도 나와 있을 만큼 두 시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데, 나도 기회가 되면 제대로 된 규모의 해석을 붙이고 싶다('윤동주와 앙드레 지드' '윤동주와 투르게네프' 등이 내가 쓰고픈 글감이다).  

 

거지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늙어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 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헤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푼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그는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투르게네프의 언덕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통조림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10. 02. 07. 

 

P.S. 윤동주에 관해선 작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푸른역사, 2004 개정판)이 기본서이다. 찾아보니 이상섭 교수의 <윤동주 자세히 읽기>(한국문화사, 2007), 권오만 교수의 <윤동주 시 깊이 읽기>(소명출판, 2009)도 그간에 새로 나왔다. '방학'이란 이런 책도 읽을 수 있다는 뜻인데, 요즘 같아서야 '노예'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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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2-0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동주의 시와 투르게네프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군요. 윤동주의 왕팬이라 송우혜씨의 평전 읽고 사진을 몰래 오려 가지려는 욕구로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아마 빌렸던 책인 것 같아요)윤동주와 관련된 글을 로쟈님이 계획중이시라니 참으로 기다려집니다.^^;;

로쟈 2010-02-08 13:35   좋아요 0 | URL
윤동주에 앙드레 지드에 대해선 약간 써놓은 게 있습니다. 나머진 장담하긴 어려운 계획이죠.^^;

ozzy2012 2010-02-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와 '거지'간의 거리감이 너무 심해서 시가 낯설기만 하네요...
거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로쟈 2010-02-08 13:34   좋아요 0 | URL
투르게네프가 거지로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농노(농민)들에게 가장 동정적인 작가가 투르게네프였습니다...

sophie 2010-02-08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의 시 좋네요. 특히 자신도 적선을 받았다는 대목이..

로쟈 2010-02-08 13:33   좋아요 0 | URL
<산문시>를 한번 읽어보심이...

메르헨 2010-02-0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투르게네프와 윤동주....

로쟈 2010-02-08 13:33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커넥션이 있습니다...

유목민 2010-02-08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노예'이신가요?

로쟈 2010-02-09 12:18   좋아요 0 | URL
할일들에 얽매여 있으니 '노예'지요.^^;

펠릭스 2010-02-0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만남중에 윤동주의 만남은 바라다 보는 것으로 헤어짐이지만 투르게네프는 접촉된 만남으로 자신의 마음마저 나누었네요. 윤동주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없었던 식민지시대 지식인의 한계를 드러낸듯 합니다. 어쩌면 나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로쟈 2010-02-09 12:18   좋아요 0 | URL
윤동주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있을 것은 다 갖고 있었지만 내줄 용기가 없었다고 했으니까요...

펠릭스 2010-02-09 15:26   좋아요 0 | URL
예,,저에게는 새로운 느낌입니다. 별을 헤는 얘기를 듣다,,,

Sati 2010-02-1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문시> 때문에 투루게네프를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거지>, <신문기자>, <술잔> 이렇게 세 가지를 외고 다녔는데...

Кубок.

Мне смешно... и я дивлюсь на самого себя.

Непритворна моя грусть, мне действительно тяжело жить, горестны и безотрадны мои чувства. И между тем я стараюсь придать им блеск и красивость, я ищу образов и сравнений; я округляю мою речь, тешусь звоном и созвучием слов.

Я, как ваятель, как золотых дел мастер, старательно леплю и вырезываю и всячески украшаю тот кубок, в котором я сам же подношу себе отраву.



Январь 1878

로쟈 2010-02-10 09:44   좋아요 0 | URL
암기까지 하셨다면 저보다 한 수 위이십니다.^^
 
러일전쟁과 일본인의 역사관

출간시에 주목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되는 책들이 있다. 오늘 관내 도서관에서 대출한 고사카 시로의 <근대라는 아포리아>(이학사, 2007)도 그런 책이다. 필요 때문에 일본 근대사와 근대문학에 관한 책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읽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동아시아의 근대에 관한 상당히 다양한 주제, 혹은 난제를 다루고 있어서 지난주부터 새삼 주목하게 됐다.  

경향신문(07. 11. 24) 동아시아 ‘근대성’ 해명에 도전하다 

고사카 시로의 ‘근대라는 아포리아’는 야심찬 책이다. 저자는 서구 근대의 보편성을 주장한 막스 베버의 테제를 문제 삼으며 논의를 시작한다. 베버의 테제는 근대화를 논의하는 이론적 출발점으로서 독보적인 위력을 발휘해왔다. 그 점에서 저자의 문제 제기는 야심찬 기획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막스 베버가 말한 서구적 합리성이… 그대로 보편성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 의문에 근거하여 저자는 비유럽 사회, 특히 동양에도 독자적인 ‘합리성’(p.21)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문제 제기 자체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동아시아의 근대라는 주제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주물러 닳고 닳았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적절한 답안이 주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저자의 생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낡은 문제에 새로운 피를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학자의 임무가 아닌가.

저자는 근대 일본 사상의 역사 속에서, 베버 테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음을 잘 안다. 그 다양한 시도들을 뛰어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도 말한다. 더 나아가 이런 논의를 진행할 경우, ‘자칫하면 서양인의 유럽 중심주의적 이해(오해)를 힐난하거나’, ‘민족주의가 얼굴을 내밀어 자아(민족) 의식으로 가득한 논의를 하게 될 위험성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일본에서 그 위험성은 ‘일본의 독자성론’으로 나타난 바 있다. 최근에 유행 담론이 되어 버린 근대 비판론은 첫 번째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일본인으로서 저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새삼스럽게 근대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지독한 난제(아포리아)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자는 ‘아시아인들의 고뇌를 망각한’ 일본적 오만함을 넘어서, 즉 일국적(一國的) 관점을 넘어서 그 난제를 검토해보겠노라고 한다.(p.22) 동아시아의 근대를 일국적 관점을 넘어 검토한다는 그 점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고,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목이다.

한 국가로서 일본은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여전히 오만함의 늪에 빠져 있다. 이 책은 그 늪에 빠진 일본 근대화의 과정을 내부에서 점검하고 반성하며, 그 궤적을 다시 그리고자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동아시아의 근대, 특히 일본의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수많은 이름과 논제들을 만날 수 있다. 근대 연구의 어려움은 도처에서 연구자를 가로막는다. 언어적 난관들, 엄청난 사료들, 극과 극을 달리는 시각들, 가치관의 대립이 얽히고 설키어 어려움은 가중된다. 전문화가 진행될 대로 진행된 학문 상황은 애초부터 근대에 대한 종합적 시각을 가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더구나 자기 영역 지키기를 학문적 미덕으로 여기는 작금의 풍토에서 저자의 고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동아시아 전체의 맥락 속에서 근대를 새롭게 파악하려는 ‘난제’가 한 사람의 연구자에 의해 속시원히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저자의 야심찬 시도가, 어설픈 순진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안다. 일본인으로서 저자는, 일본인의 도취적 자기 인식을 극복하여, 비틀거리며 나온 동아시아 근대의 상(이미지)을 그려보이고자 한다. 그것은 학문적 작업을 넘어서는 자기 고백을 포함한다. 그 고백은 진정한 소통을 소망하는 한 학자의 순수함의 표백이고, 초대의 손짓이다. 그 손짓에 우리는 화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현재 동아시아는 반성과 화해의 손짓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복잡한 세계사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 근대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해도, 그 인식과 반성의 계기는 단일하지 않다. 계기가 다르면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달라진다. 근대가 난제인 이유는, 그것이 탈-근대의 전망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가 단일하지 않은 것처럼, 근대를 넘어서는 그 길 역시 단순하지 않다. 중국이 동아시아라는 개념 자체에 무관심한 이유, 우리가 동아시아 연구에 소극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근대’는 학문만의 문제이거나, 순수한 인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애초부터 순수한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야의 확대, 관용과 대화가 요청된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용기, 동아시아의 소통과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역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이용주|동양학자)  

10. 01. 06.   

P.S. '근대라는 아포리아'가 무얼 뜻하는지 서평기사에서는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데, 이에 대해선 공역자의 한 사람인 야규 마코토의 '후기'가 참조할 만하다. 두 문단만 옮겨놓는다. 인용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바 료타로의 작품에 대해서는 며칠 전에 포스팅한 '러일전쟁과 일본인의 역사관'을 참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에게 있어서 메이지유신부터 러일전쟁까지의 시기는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면서 입헌군주제의 근대 국민국가로 탈바꿈하고 청나라, 러시아 같은 대국에 승전한 영광에 가득 찬 역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메이지유신 전후부터 러일전쟁 사이에 활약한 인물들을 다룬 시바 료타로의 소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자기 역사에 긍지를 가지는 것은 좋지만, 같은 시기에 근대화에 실패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일본인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오만함과, "서구 문명을 성공적으로 수용한 동양 국가 일본"과 "문명화에 실패한 아시아"라는 대립 구도에 입각한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와 맑스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근대주의)의 위력으로 기존의 사회형태나 고유의 가치관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일본에서는 "근대의 초극(극복)"론으로 연결되었고 독일에선 나치즘이 대두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근대의 극복"론은 결국 태평양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나치즘은 히틀러와 나치스에 의한 유태인의 박해, 말살, 그리고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유럽 정복 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사를 감안할 때 현대의 근대 비판은 동시에 어설픈 반근대론을 넘어선 것이어야 한다.

 

P.S.2. 말하자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가 근대가 떠안겨주는 난제(아포리아)다. <근대성의 아포리아>는 함동주 교수의 <천황제 근대국가의 탄생>(창비, 2009), 그리고 스즈키 사다미의 <일본의 문화내셔널리즘>(소화, 2008)와 함께 책상맡에 놓아두고 있다. 피터 두으스의 <일본근대사>(지식산업사, 1983/2006), 김용덕 교수의 <일본근대사를 보는 눈>(지식산업사, 1991/2005)도 최근에 집으로 나른 책들이다. 일본 근대 관련서는 상당히 많기 때문에 얼마간 읽고 나야 '감'이 잡힐 듯하다. 이달말까지는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 2005)을 정독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로 넘어가는 게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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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10-02-07 00:18   좋아요 0 | URL
하,,, 재밌을줄 알고 눌러봤더니 이광래씨 번역.... ;;;

로쟈 2010-02-07 00:27   좋아요 0 | URL
실번역은 그래도 공역자들이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빵가게재습격 2010-02-07 10:32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근대'라는 제목으로 검색해보면 관련도서가 1800여권이,'근대성'으로 검색하면 120여권, '모더니즘'으로 검색하면 130여권이 나옵니다. 근대, 그 수많은 근대와 모더니즘. 합리적인 선을 어느정도 그을 수 있다고 해도 너무 머리 아픈 문제에요... 근대에 관한 책을 뒤적거리다가 '베버를 이해하기 위해 베버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버의 1/3은 되어야겠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씹었던 생각이 납니다.--;;; 입춘이 지나 슬쩍 들렀습니다. 건강하시죠?^^

로쟈 2010-02-08 13:37   좋아요 0 | URL
'원론적'으로 공부하려면 사실 견적도 안 나오지요.^^; 필요한 대목을 빨리 찾는 것도 요령 같습니다...

펠릭스 2010-02-07 07:33   좋아요 0 | URL
현대는 빤하고 근대는 이야기하기에 적당한 거리감이 있으며, 중세는 아리송하고 고대는 무덤같습니다. 근대 소설, 근대 정치 등, 현재의 문제는 근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듯 합니다. 발견이니 발명이니 하는 말들로 근거들을 제시하더군요.

반딧불이 2010-02-07 11:29   좋아요 0 | URL
"이달말까지는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 2005)을 정독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로 넘어가는 게 목표이다" 저는 로쟈님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데 목표달성을 목마르게 기원합니다.

펠릭스 2010-02-07 18:55   좋아요 0 | URL
'일본 근대문학 개척자'라 칭하는 그의 소설 중에는 <그 후/나쓰메 소세키/민음사>외 최근에 번역된 <피안 지날 때까지/나쓰메 소세키/예옥>도 있습니다.

로쟈 2010-02-08 13:38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소세키 전작에 도전하는 건 아니고, 몇 작품에 대해서 강의를 해야 하기에 필요상 읽는 거예요.^^

게슴츠레 2010-02-07 13:46   좋아요 0 | URL
마침 근대의 초극을 주제로 새움에서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는 와중에 포스트 반갑게 읽었습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전설적(?)이라는 논문 [근대의 초극]은 고진의 책에서 인용만 보다가 이번 기회에 직접 읽게 되었는데 저는 정말 신선하더군요. 아시아에 대한 반성없이 미국으로부터의 '전쟁피해'만을 주장하는 내셔널리즘과 '전쟁가해'를 강조하다보니 국민이 공유할 역사의 구성을 놓치게 되는 탈민족주의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로쟈 2010-02-08 13:38   좋아요 0 | URL
김윤식 교수의 김동리론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세 권이나 되긴 하지만...

노이에자이트 2010-02-07 15:40   좋아요 0 | URL
유신 당시 한국적 민족주의 운운하면서 나온 전통문화 발굴운동도 결국은 외국문화에 대한 통속적인 민족주의에 입각한 비판때문에 보수적인 방향으로 가고 말았지요.위에 나온 <태평양 전쟁의 사상>에 수록된 '근대의 초극'좌담회 내용은 우리나라에도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게슴츠레 2010-02-07 16:4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님, 혹시 그 근대의 초극 좌담회의 한국에 대한 영향에 대해 참고할 만한 논문이나 저술이 없을까요? 현재 세미나를 진행 중인데 이런 제국의 지식인들들의 '발신'이 피식민지의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수신'되었을지 궁금해 지더군요. 아무쪼록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07 22:27   좋아요 0 | URL
<근대를 다시 읽는다>(역사비평사)에 실린 윤대석의 논문

좌담회 '근대의 초극'이 처음 번역된 <다시 읽는 역사문학- 현대문학의 연구 제5권>(평민사)에 실린 이경훈의 논문'친일문학의 한 시각'

김철의 저서나 논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실린 김철의 논문

최근 몇 년 동안 만주국과 친일문학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책들도 꽤 나오니 그것도 참고하십시오.

공부하다가 좋은 내용이 있으면 방문해서 알려주십시오.

비로그인 2010-02-07 15:58   좋아요 0 | URL
저는 강상중 <내셔널리즘>에서 '근대의 초극'론에 대한 언급을 처음 봤던 것 같은데, 곁다리 독서로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군요.

로쟈 2010-02-08 13:39   좋아요 0 | URL
네, 조금 훑어본 책인데, 참고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전공의 역사학자 오항녕의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2010)을 사들고 왔다. 두 가지를 깜박했는데, 하나는 저자가 작년 여름 이덕일 소장의 '십만양병설 및 송강행록 조작설'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여 한겨레 지면에서 잠시 '이덕일-오향녕 논쟁'을 촉발한 당사자라는 점을 잊고 있었고(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67319.html 참조), 또 하나는 그 논쟁을 언젠가 옮겨놓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책에는 그 논쟁을 이루는 두 편의 글이 7장의 보론으로 들어가 있다. 책으로는 한겨레에 연재된 글들을 모은 이덕일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역사의아침, 2009)과 이번에 나온 <조선의 힘>이 짝이 될 수 있겠다.   

  

오항녕 박사는 <한국 사관제도 성립사>(일지사, 2009) 같은 학술서의 저자이기도 한데, <조선의 힘>은 <역사교육>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대중서'이다. 비록 저자가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할 방법은 없다.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이다."라고 적어놓았음에도 나처럼 새로이 조선사 입문서를 찾던 독자에게는 유익한 길잡이가 될 듯싶다. <조선의 힘>에 대해서는 따로 서평기사가 아직 없기에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에 대한 리뷰기사와 함께 오항녕 박사의 두번째 반론을 참고삼아 옮겨놓는다.  

위클리경향(09. 09. 10) [이주의 책]십만양병설은 조작됐다?

율곡 이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적이 없다. 유성룡이 십만양병설을 반대했다는 것도 그러므로 성립할 수 없는 명제다. 십만양병설은 후대에 조작된 허구다.

역사학자 이덕일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에서 십만양병설은 조선 시대 노론 문인들이 정파적 목적으로 날조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십만양병설의 원적지는 김장생의 <율곡행장>이다. 김장생은 구체적인 연대는 밝히지 않은 채 “경연에서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고 썼다. 그의 제자인 송시열은 한 발 더 나갔다. 송시열은 <율곡연보>에서 ‘선조16년’(1583)이라고 연대를 특정했다. 십만양병설이 사후 창작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이이의 시호에서 발견된다. <율곡연보>를 보면 유성룡은 이이를 ‘이문성’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이이가 ‘문성’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은 죽은 뒤인 인조2년(1622)으로, 유성룡이 사망한 지 이미 17년이 지난 후다.

문제는 십만양병설이 허구라는 데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유성룡의 반대로 십만양병설이 무산된 것으로 서술돼 있다”는 점이다. 서인 출신 김장생과 송시열은 제 당파의 영수 이이가 주장한 십만양병설을 반대 당파인 남인 영수 유성룡이 반대했다고 서술했다. 저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발언을 있던 것처럼 가정해 반대 당파의 영수를 공격하는 것은 전형적인 정치공작”이라고 말한다.

2007년도 개정판에서 바뀌기는 했지만 ‘노론이 중상주의 실학 사상을 주도했다’는 2007년 이전 국사 교과서의 서술도 사실과 다르다.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 중농주의 실학 사상을 주장한 이들은 당시 재야 세력인 남인들이었다. 게다가 중상주의 실학의 선구자라고 알려져 있는 유수원은 노론이 아니라 노론이 적대시했던 소론이다. 유수원은 노론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해 죽은 인물이다. 개정판 교과서라고 해서 이 문제가 완전히 수정된 건 아니다. 중상주의 실학을 “노론이 주장했다”는 말은 빠졌지만 중농주의 실학을 “남인이 주장했다”는 사실마저 삭제됐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일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은 아직까지 노론 정체성을 지닌 학자들의 사고로 국사 교과서가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주류 사학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사관은 일제 식민사관과 조선 후기 노론 사관으로, 이 두 사관은 ‘자기정체성 부인과 사대주의 극대화’라는 점에서 인식을 공유하고 인맥으로도 연결된다. 책은 이 두 사관이 역사 서술에 끼친 폐해를 앞에서 든 사례 이외에 ‘한사군 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에서도 찾아내 조목조목 반박한다. 



독자의 구미를 잡아당기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책은 올해 초 ‘정조어찰첩’이 공개된 후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정조독살 사실 무근설’도 반박한다. 저자는 정조어찰첩을 근거로 정조가 독살됐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 또한 “소수 학벌 카르텔의 당파적 해석”이라고 본다.

독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십만양병설이나 정조어찰첩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이다. 지적인 편식을 경계하는 독자들은 뉴스 검색창에서 역사학자 오항녕, 유봉학 한신대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이름을 입력해보시길. 역사 해석의 다양성과 중층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정원식 기자)  

한겨레(09. 08. 06) ‘십만 양병설 허구론’ 오항녕씨 재반론 

저는 지난번, 이이의 십만양병론을 부정한 이덕일 소장의 주장이 판본과 전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으며, 기축옥사에 대한 김장생의 기록이 서인에게 유리하게 날조되었다는 이덕일 소장의 주장 역시 연도의 착각에서 시작된 왜곡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오류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장은 ‘이이의 십만양병론에 대한 1차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면 간단’하다고 했는데, 저는 이미 서인과 남인이 함께 편찬한 <선조수정실록>, 이정구의 ‘시장’(諡狀), 이항복의 ‘신도비문’ 등 ‘1차 사료적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이 소장은 십만양병설을 부정할 ‘1차 사료적 근거’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황해도 군적을 잘 정비한 것과 십만양병 주장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군사를 키우려면 현황부터 파악하는 건 상식입니다. 군적 정리와 십만양병론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그의 해설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는 제가 ‘서지학자처럼 문정(文靖)이니 문성(文成)이니 하는 판본의 문제를 장황하게 서술해 논점을 흐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정말 자신의 논거가 무너진 것을 모르나 봅니다. 이 소장은 또 ‘이이의 주장은 현 국방부 장관이 국세 징수는 20% 이상 삭감하되 군사비는 1000% 이상 올려 군사를 600만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이 비유에 나온 통계의 근거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정철과 유성룡의 대화를 기록한 김장생의 ‘송강행록’이 조작이라고 이 소장은 주장했습니다. 선조 23년에 위관(委官)은 정철이었는데, 마치 유성룡인 것처럼 김장생이 기록하여 이발의 노모와 아들을 유성룡이 죽인 것처럼 덮어씌웠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선조 23년이 아닌 선조 24년의 일이었다고 바로잡아 그의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광해군 9년(1617) 생원 양몽거(楊夢擧)의 상소’와 ‘아계 이상국(이산해) 연보’를 근거로 선조 23년이 옳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조반정 이후의 서인들 기록에서부터 ‘선조 24년’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몽거의 상소는 광해군 9년이 아니라, 60년 뒤인 숙종 3년(1677)의 일이었습니다. 그 뒤 이 양몽거의 상소에 대해, 신묘년(선조 24년)을 경인년(선조 23년)으로 잘못 보았다는 다른 이들의 비판이 이어집니다. ‘아계 이상국 연보’도 광해군 때가 아니라 인조반정 이후에 편찬된 것입니다. 이것이 ‘장황한 판본 조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발의 노모와 아들들이 죽은 시기는 분명 선조 23년 5월이 아니라 유성룡과 이양원이 위관을 맡았던 선조 24년 5월입니다.

이덕일 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논조를 바꿉니다. 아니지요. 기본 성격은 바로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에서 도출되는 것입니다. 이 소장과 같은 방식으로 사료를 인용하면서 주장하는 ‘기본 성격’을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덕일 소장에게 편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편견의 기반은, 식민사관에서 시작되어 근대주의적 역사관, 즉 ‘자본주의맹아론-실학’ 구도에서 강화된 당쟁론입니다. 제가 ‘콩쥐-팥쥐’ 프레임이라고 부르는 한국지성사의 안타까운 일면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장은 비장하리만큼 자신과 ‘주류학계’를 구별하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는 ‘주류학계’의 충실한 일원입니다.

제가 근대주의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근대사회의 이성과 자유, 민주주의는 긍정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성은 독단적 신화가 되고, 자유는 일자리에서 밀려날 자유만 남고, 민주주의는 인민을 합법적으로 주권에서 배제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장차 근대적 삶과 가치에 대해 성찰하든 대안을 찾든, 역사학자가 볼 때 조선시대는 참으로 풍부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 계기를 통해 조선시대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논의가 계속되었으면 합니다.(오항녕/역사학자·조선시대사) 

10. 02. 06. 

P.S. <조선의 힘>의 프롤로그를 읽었는데, 저자가 표나게 내세우는 것은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주의는 일제 식민사관의 토양이었다. 광복 이후에 한국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근대주의에 빠져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근대주의로 다시 근대주의(식민주의)를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위의 식민주의와 근대주의를 합쳐 '범식민주의'라고 부른다.  

요컨대, 조선사를 이해하는 저자의 시각은 '범식민주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와 무관하게 저자가 '제도사' 연구자라는 데 있고,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시론서'로서 이 책이 조선사 "500년 시스템을 유지한 '힘'과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한다고 소개된 데 있다. 말하자면 조선이라는 국가체제를 500년간이나 유지한 힘이 '조선의 힘'이다. 문화사보다는 먼저 제도사에 대한 독서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한국사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내가 세운 기준이고, 그래서 때마침 출간된 <조선의 힘>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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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의 힘과 대동법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11 11:16 
    오전에 늑장부린 원고를 써보내고 아직 세수도 안 한 상태이지만 잠시 휴식을 취한다. 취하는 김에 책상 맡에 있는 수십 권의 책 가운데 하나인 오항녕의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2010)에 대한 리뷰기사를 읽는다. 조금 있다가는 오늘 종업식을 한 아이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줘야 한다(아이는 잠시 친구들과 놀러나갔다). 일은 많고 머리는 복잡하지만 기분전환도 가끔은 필요하다.     
 
 
펠릭스 2010-02-07 20:28   좋아요 0 | URL
<조선의 힘>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일제 식민 사관>이라는 말에 단재 신채호에 대한 연구학자인 '신용하' 명예교수의 저서인 <신채호의 사회사상연구/신용하/나남출판>가 생각났습니다. 복학전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민족사학자 신채호의 며느님의 열성으로 그분의 유골도(?) 극내로 이장되었을 것입니다.

로쟈 2010-02-08 13:32   좋아요 0 | URL
근대주의와 식민주의를 모두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 저자의 독특한 시각 같고, 생산적인 작업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어요...
 
'죄악'에서 '범죄'로

문학 분야의 신간들은 자주 둘러보지 않아서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가 작년말에 출간된 걸 뒤늦게 알았다. 알다시피 마조히즘(매저키즘)이란 말의 빌미가 된 작품인데, 이전에 나온 <모피를 입은 비너스>(열림원, 2006)는 이미 품절 상태다. 사드와 자허마조흐의 책들은 다 어디에 두었는지 행방이 묘연하지만, 이 참에 찾아서 읽어볼까란 '몽상'도 하게 된다. 관련기사를 찾아보다가 <사랑의 범죄>(열림원, 2006)과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나란히 나왔을 때 이를 다룬 최재봉 기자의 기사 또한 뒤늦게 읽었다. 타이틀이 그럴 듯하다. 때릴 것인가, 맞을 것인가? 

  

한겨레(06. 12. 29) 때릴 것인가 맞을 것인가

사디즘과 마조히즘. 합쳐서 사도마조히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학적 음란증’으로 해석되는 사디즘과 ‘피학적 음란증’으로 풀이되는 마조히즘이 각각 두 사람의 소설가와 그들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사디즘은 흔히 ‘마르키 드 사드’로 불리는 프랑스 작가 도나티앵 알폰스 프랑수아 드 사드(1740~1814)에게, 그리고 마조히즘은 사드보다 한 세기 가까이 늦게 태어난 독일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1836~1895)에게 각각 연원을 두고 있다.

상대방에게 (육체적)고통을 가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사디즘, 그리고 상대방에게서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쾌감을 느끼는 마조히즘은 정신분석학의 비조 프로이트에 의해 주목받은 이래 정신병리학은 물론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회현상 일반을 해석하는 데에 유용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억압된 것들의 귀환’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인문학에서 인간 심층심리의 비밀을 파헤친 선구자들로 평가받는 사드와 자허마조흐는 그러나 자신들의 당대에는 미치광이와 범죄자로 취급당해 수십년 동안 옥살이를 하지 않으면(사드), 다만 미미한 작가로 분류되었을 뿐이다. 



사드의 실명으로 펴낸 2권 중 한권
그 두 불운한 선구자 사드와 자허마조흐의 대표작 두 권이 최근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출판사 열림원이 세계문학의 숨은 걸작들을 발굴해서 소개한다는 취지로 내고 있는 ‘이삭줍기 시리즈’의 19, 20번째 권으로 나온 <사랑의 범죄>(사드)와 <모피를 입은 비너스>(자허마조흐)가 그것들이다.

<사랑의 범죄>를 사드의 대표작으로 꼽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다. 사드의 대표작이라면 자주 영화로 만들어지곤 하는 <소돔 120일>과 <규방 철학>,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 같은 작품을 우선 꼽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에서 사드는 파격적인 상상력과 잔혹한 묘사로 뒤틀린 욕망의 해방을 끝 간 데까지 밀어붙였으며 그런 ‘사랑의 철학’을 현실에서 실천한 것이 그의 수십 년 옥살이의 까닭이 되었다. 문제는 사드가 이 작품들을 대부분 익명으로 발표했다는 데에 있다. 사드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발표한 작품은 서한체 소설 <알린과 발쿠르>(1795)와 이 소설집 <사랑의 범죄>(1800)가 유일하다. 제 이름을 내걸고 공개 출판한 만큼 묘사의 수위와 문제의식은 다른 익명의 소설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들’이라는 부제 아래 11편의 단편을 묶어 펴낸 <사랑의 범죄>에서도 사드 특유의 ‘어두운 욕망’은 충분히 만날 수 있다. 한국어판에 수록된 세 단편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팍스랑주 혹은 야망이 낳은 과오>의 경우, 아메리카에서 온 부유한 신사로 위장한 프랑로는 실은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는 도적떼의 우두머리일 뿐이며, 속아서 그와 결혼한 팍스랑주 양은 절망과 후회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포로들의 처형을 지시하는 등 남편을 대신해 악덕에 몸을 담근다. <플로르빌과 쿠르발, 혹은 운명론>에서 주인공 플로르빌은 뒤늦게 자신의 오빠로 확인된 과거의 연인 센느발을 향해 “그대 아들의 살인범이자 그대 아버지의 부인이며 또 그대의 어머니를 교수대로 보낸 추악한 여자가 바로 나예요”(194쪽)라고 절규한다. 선의와 미덕으로 생에 임하고자 했던 여주인공이 자신의 그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고 끔찍한 운명을 떠안게 되는 과정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극한까지 몰고 간 듯한 느낌을 준다. <외제니 드 프랑발, 비극적 이야기>에서도 주인공 프랑발은 자신의 딸을 사랑하게 된 ‘패륜’을 당당하게 변호한다: “미의 제국과 사랑의 신성한 권리는 인간의 하찮은 규범 따윈 염두에 두지 않아. 한낮의 태양빛이 밤 동안 지구를 덮고 있던 안개를 말끔히 걷어내듯이, 미와 사랑이 지평선 위에 떠오를 때 규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지.”(236쪽)

육체적 학대와 배신 통한 치유
그렇지만 사드의 ‘공식적인’ 소설들에서 악덕의 주인공들은 결국 ‘죗값’을 치르고 파멸해 간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드가 소설집 <사랑의 범죄>에 서문으로 실은 ‘소설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을 참조할 만하다. 이 글에서 사드는 자신이 죄악을 과도할 만큼 끔찍하게 그린 까닭은 독자들로 하여금 “죄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46쪽)이라고 밝혔다. 



사드의 ‘공식’ 소설집이 그의 사상의 핵심과 일정한 거리를 보이는 데 반해 자허마조흐의 장편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명실공히 그의 사상의 진수를 담고 있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생활에서도 쫓겨다니다가 사지가 묶이고 굴욕스러운 처벌을 받거나 모피를 입은 당당한 여자에게 채찍질과 같은 육체적 고통을 당하기를 즐겼다는 자허마조흐의 경험과 취향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소설은 액자 구조로 되어 있다. 화자가 주인공 제베린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자신의 집 위층에 사는 반다라는 아름다운 과부에게 매혹된 제베린이 반다와 노예계약을 맺고 육체적 학대를 당하고 질투의 심연을 맛보는가 하면 치욕스러운 배신을 거치면서 비로소 증상을 ‘치료’하게 된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 제베린이 반다의 사랑(=그러니까 학대)을 갈구하며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는 전형적인 마조히즘에 해당한다. 모피는 그에게 피학성욕의 상징과 같다. 



“저는 고통 속에서 이상한 매력을 느낄 뿐만 아니라 폭력, 무자비 외에는 그 무엇도 제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특히 아름다운 여인의 배신이 그러합니다. 이런 여자, 추함의 미학으로부터 나온 이런 특이한 이상형, 몸은 프린이지만 영혼은 네로인 여자를 저는 모피 없이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74쪽)

“사랑에는 평등 관계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내가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를 선택한다면, 아름다운 여자의 노예가 되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군요”(46)라는 그의 말은 사도마조히즘이라는 ‘비정상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 자체를 꿰뚫는 핵심을 담지하고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사랑의 범죄’란 ‘사랑이라는 범죄’의 다른 말이 아닐까.(최재봉 문학전문기자)  

10. 02. 05. 

P.S. 예전에 마조히즘 읽기에 관해서 적을 때 언급한 바 있지만, 들뢰즈의 <매저키즘>(인간사랑, 2007)에도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번역돼 있다. 이 작품의 우리말 번역이 최소 3종은 되는 셈. 닉 맨스필드의 <마조히즘: 권력의 예술>(동문선, 2008)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그렇게 계획만 세워두고 실행하지 못한 지도 몇 년째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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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2-0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소설도 생각나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로쟈 2010-02-06 17:43   좋아요 0 | URL
<빛의 제국>인가요?..

얼그레이효과 2010-02-0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예전 기억으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떠올라서요.^^;

로쟈 2010-02-08 13:42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도 봤는데, 마조히즘 장면이 얼른 떠오르진 않는군요.^^;

펠릭스 2010-02-07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권력에 예속되어 자신의 둥지를 만들려는 인간의 자존력이 곧 생존 본능같습니다(06:31). 오후에 우연히 <모피를 이은 비너스>의 표지 그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오스트리아생)'의 '키스'를 보게되어 반가웠어요. '자허마조흐' 책의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클림트'의 그림은 출판기획자의 의도인지 작가가 좋아한 그림인지 궁금합니다.

로쟈 2010-02-08 13:42   좋아요 0 | URL
영화 <클림트>도 볼 만합니다.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이기도 하네요...

딸기 2010-02-0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96년에 나온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읽었어요. 재미있었는데...
근데 저는 그 책보다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훨씬 더 재밌었어요 ^^

로쟈 2010-02-08 13:39   좋아요 0 | URL
그거야 그럴 거 같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