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대중으로 누군가의 기록을 판단하는 것에 앞서
이 글은 내가 쓴 책의 또 다른 서문을 표방한다.
편의상 서문-B라고 하겠다. 서문-B를 나누는 이유.
『다소 곤란한 감정』을 읽고 있거나 읽을 이들이 인식하게 되는 지적 지형도 속 ‘위치의 문제’ 때문이다. ‘이 책은 과연 사회학 도서의 위치에 있는가’ ‘이 책은 산문집인가’. 학술계 내 연구자나 비평가. 전자의 위치를 기대하다 후자의 위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일반 독자들. 후자의 위치로 파악하면서 전자의 위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유형화의 시도보다 중요한 것은 본 책이 지향하는 고민거리다. 그 고민거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 여정을 공개하는 게 이 책에 접근하는 유익한 경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경로엔 ‘위치의 문제’라고 밝힌 대목에 관한 나만의 입장도 있다. 아울러 이 글은 본 책의 주요 형식인 단상에 스민 학술적 두께에 대한 소개도 될 것이다. 다만 일반 독자들이 독서를 통해 꾀할 다양한 목적을 고려하는 가운데, 굳이 책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대목이라고 생각해 책에 싣진 않았음을 밝힌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한 나의 결언부터 말하자면, 내 생각이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이 도모할 제각기 다른 독해의 자유를 제한시킬 이유란 없다. 다만 당신이 본 기록물을 접해가는 가운데 이런 지적인 배경이 있었구나, 떠올려주면 그만이다.
이런 지점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분들은 여기까지 읽고 자신의 독서를 계속 진행해도 좋으리라.
2 감정사회학 이전에 ‘심리(학)적 사회학’에 대해
아무래도 학술계, 학술계와 가까운 출판계에 몸담지 않은 일반 독자가 많을 것이기에, 사회학의 역사를 조금 챙겨보는 일.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당신이 사회학으로 인식하는 학문. 오랜 시간 분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오래전부터 사회학자의 글쓰기인지 심리학자의 글쓰기인지 구분 불가능한 사회학 내 분야, 사회학자의 타입이 있어왔다. 나는 감정사회학 연구를 행하고 이후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감정사회학 입문서에 늘 처음 등장하는 레퍼토리, ‘그동안 사회학사 내에서 감정의 위상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식의 설명에 심히 집착하기보단 사회학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연구하기, 기록 쓰기를 행해온 이들에게 끌렸다.
대표적으로 게오르그 짐멜이 있으며, 가브리엘 타르드도 해당된다. 나는 특히 게오르그 짐멜이 남긴 기록을 탐독하면서 ‘심리(학)적 사회학’이라는 명명 아래 이것이 사회학인지 심리학인지 쉬이 구분되지 않는 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 열중의 영역엔 조지 허버트 미드, 찰스 호튼 쿨리, 그리고 사회학사 내에서 가장 뛰어난 일상의 조사관 중 한 명인 어빙 고프만, 고프만의 이론을 전유&확장하면서 사회 내 감정, 정서, 심리의 문제를 챙긴 랜들 콜린스가 있다. 이들 모두 사회적 상호작용론이라는 테마 아래 묶을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론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부대끼는 각종 ‘상황’에서 나타나는 마음, 정서, 감정, 심리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특히 사회적 상호작용론자의 대표격인 랜들 콜린스는 인간이 사회인으로 살아가며 맞닥뜨린 상황에 대해 탄탄한 시선과 풍부한 해부를 시도해왔다.
+참고로 그는 언뜻 보기에 사회학의 연구 분야라 볼 수 없는 생각의 의미에 대해, 내향성의 특성에 대해서도 연구한 바 있다.
그는 생각의 사회학자이자 내향성의 사회학자였다. 이참에 말하자면 나는 성격심리학이 오랜 시간 유형화해온 성격 유형의 내향성을 넘어서는 지점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다소 곤란한 감정』은 내향적 인간의 유형에 부합하는 이들을 위한 심리학적 처방전의 위치를 경계한다.
오히려 이 책의 관심사는 사회적 차원의 내향성은 과연 가능한가, 사회적 차원의 내향성이라는 렌즈 아래 점점 '내향화되어가는 사회'란 어떤 상황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다. 나는 책에서 내향화되어가는 사회를 우려하며 '사회적 우울'이란 용어를 제시했다. 고로 나는 부러 책을 통해 성격심리학에서 말해온 내향성의 눈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에서 통용되어온 내향인의 기준 안에서 나를 판단하고 당신을 판단할 때 놓치고 있던 지점이 뭘까 곱씹게 됐다. 그러므로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라는 부제에서 내향적인-이란 , 나를 내향적 인간으로
두어보는 일종의 실험적 명칭에 더욱 가깝다.
3 ‘상황의 힘’을 주목하며
사회를 살아가면서 개인도 구조도 아닌 ‘상황의 힘’이 중요하다고 설파한 대표적인 학자로 심리학계에선 리처드 니스벳이 있고, 사회학계에선 랜들 콜린스가 있다. 굳이 학술적 해명을 하지 않아도 당신과 내게 상황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나는 상황에 대해 강의할 때 상황과 더불어 당황이란 단어를 함께 설명하는 편이다. 상황은 아무리 유비무환의 자세로 준비한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 연루된 이들을 어떻게든 당혹시킨다. 다시는 그런 상황에 휘말리지 않겠다 마음먹고 준비한 대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계획 그대로 실행하진 못하는 게 상황이다. 공고한 사회구조도 상황의 불확실성엔 맥을 못 추곤 한다.
오래전 논의지만 사실 사회학 내에서 상황의 힘을 주목하게 된 것은 개인 대 사회라는 구도 아래 사회를 해부하는 사회학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감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 중간항으로 상황이 설정되었다. 내가 『다소 곤란한 감정』에서 55개의 어휘를 활용한 것은 ‘55개의 상황’과 그 속 의미를 어떻게 시각화, 장면화할 것인가에서 비롯됐다. 책을 읽은 이나 책을 읽을 이가 알게 되겠지만 나는 가급적 ‘사회구조’나 ‘개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려 했다.
상황엔 개인으로 혹은 사회구조로도 쉬이 얽어낼 수 없는 당혹감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나는 외려 그 당혹감의 자리에 매혹되었고, 상황과 감정이라는 두 키워드 아래 감정사회학을 공부하고 연구해나갔다. 그런 가운데 국내의 감정사회학 연구자들이 이 같은 ‘상황의 힘’보단 감정으로 한국 사회의 거시적 형체를 규명하는 데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마도 사회적 상호작용론은 주목받기엔 너무 오래된 이론이자, 한편으론 자칫 어떤 심리학주의에 경도된 사회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오늘날처럼 유형화가 되어있지 않으면 의심부터 하고 안심하지 못하는 지식의 지형도를 볼 때) 그런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이해해보려 한다. 그러나 사회적 상호작용론에서 강조하는 상황과 감정의 경우. 여기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상의 차원. 그리고 그 차원에서 사람들이 쓰고 있는 감정의 언어와 그 언어에 대한 해석을 국내 감정사회학 연구자나 비평가들이 도통 챙기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사회학자 데버라 럽턴은 『감정적 자아』에서 사람들은 대체 일상에서 감정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심층인터뷰를 수행한 바 있는데, 나는 이 기록을 접하면서 책을 쓴다면 이런 접근성을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느 감정사회학자처럼 뒤르켐과 베버라는 두 사회학 거두의 이론에서 차마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의 역설부터 설명하려는 대신,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의 차원, 그 차원이 스민 장면들을 수집하고 열거하며 유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게 감정사회학이 무언지 궁금해할 이들을 위한 ‘입문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아울러 글을 써가는 데 우리나 현대인이라는 사회학 연구 내 익숙한 호명 대신 '당신과 나'라는 호명을 쓴 까닭은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결합태'라는 이론에 기반했다. 그 또한 개인 대 사회, 거시 대 미시라는 구도 아래
사회학이 전개되는 양상을 못마땅해했고, 사회란 어떻게든 나로 출발해 나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 타인이 존재하며
그렇게 나와 타인이 결부되어 만들어가는 사회적 연계, 그 연계의 덩어리들이 얽히고설키는 것이 사회라고 보았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또한 사회에서 당신과 내가 결합된 채 맞닥뜨리는 상황들의 역사에 주목해왔고, 나는 고로
나와 너, 너와 나로 출발하는 사회적 상황의 장면들에서 감정을 읽어나가는 시도부터 이뤄져야
비로소 감정사회학 '입문'이 가능하지 않을까 곱씹게 됐다.
『다소 곤란한 감정』은 감정사회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간편히 ‘에세이화’해버렸다는 유형화의 유혹을 일찍이 경계하려는 책이며, 오히려 소개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단상이란 형식의 감정사회학 입문서다. 물론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나는 감정사회학을 접해가면서 사회‘과’학만으로 역부족임을 깨달았고 다행히도 오랜 기간 각종 인문&사회&예술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지적 조류 및 기록과 친숙해질 기회를 얻었다. 나는 이를 전형적인 학술적 글쓰기로 용해시켜 발표하기보단 단상이란 형식으로 남기려 했다. 이는 가독성/독이성에 대한
인식과 거리가 멀며, 사회학적 글쓰기에 대한 내 나름대의 확장을 염원하는 시도였다.
보론)
나는 대학원 시절, '사회학 출판의 이해'라는 강좌가 개설되면 어떨까 자주 꿈꿔왔던 사람이었다. 익히 알다시피
학계 내에서 통용되는 사회학적 글쓰기와 단행본 시장에서 통용되는 글쓰기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학술계와 출판계 둘 다에 속하면서 두 위치를 모두 체험했고 두 위치를 오가며 서로의 오해와
곡해를 확인하게 됐다. 『다소 곤란한 감정』은 그러한 오해와 곡해에 머무는 대신 사회과학이라는 학술계와 이를 다루는
출판계 사이를 교란하면서도 혼융하는 '사회학적 글쓰기'의 시도이기도 하다.
이 책을 기존 사회학 도서의 위치에서 보리라고, 혹은 에세이의 위치에서 보리라고 정해야 안심이 되는 누군가가
다소 곤란한 심경을 느꼈다면, 외려 나의 의중은 통했다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