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일 년 전. 빈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문화계, 그리고 정치계 인사들을 일 년 동안 따라가면서 (역자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여행을 하는 책이다. 장면마다 저자의 감상 및 평이 첨가되고 때론 신랄하게 혹은 환호하며 백년 이상의 시간 차를 (잠시) 잊게 해준다. 맥콜리프의 파리 시리즈와 비교해서 더 감정적으로 몰입하도록 구성된 책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은 낯설기도 하고 파리 쪽에서 만났던 릴케는 조금 더 주체적으로 다방면 (주로 원거리) 연애를 주도한다. 펜으로 여인들을 어루만지고 (참, 릴케는 애도 있는 유부남) 부유한 여인들은 그에게 돈과 숙소를, 더해서 장미도 제공한다. 아직 가시엔 찔리기 전. 시대가 그런 건지 예술가들 연애사들은 꽤 복잡하고 질릴 정도다. 프로이트가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의 첫 장, 1월 1일은 멀리 미국 남부에서 총성으로 시작한다. 열두 살 루이 암스트롱이 새해 첫 시작을 축하하고 싶어서 총을 쐈고. 이 장난꾸러기는 보호감호소로 가고, 그곳에서 음악적 스승을 만난다. (자, 이렇게 시작하면 끝까지 달릴 수 밖에) 2년 전 도난 당한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12월에 가서야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었고 12월 31일 파리로 돌아온다. 이 책의 작가는 매달, 모나리자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써놓으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하지만 난 여기서 스포.... 역사가 스포일러다)
1913년 초에 빈에 히틀러, 스탈린, 티토가 함께 있었다는 것과 가을엔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무질이 지중해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 함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쩌면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눈빛을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무질은 이해 8월이 날씨가 좋았다고 소설 시작에 썼지만 1913년 8월 빈의 평균기온은 18도 였다. 5월에 (탈영 후) 뮌헨으로 간 히틀러는 공원에서 젊은 부부와 스치는데 이들의 돌이 막 지난 아기는 후에 히틀러의 애인이 되는 에바 브라운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식으로 역사 속 그 장면을 다소 억지스럽게 살려내며 독자들의 과몰입을 부추긴다. 1913년은 또한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한 해이다. 이들의 잔뜩 억누르지만 분노가 뚝뚝 떨어지는 편지들, 냉기 흐르는 학회 전경에 더해 이 해를 거듭 '친부 살해'의 테마로 이해할 이유는 많다. 어쩐지 아버지!를 부르고 다투고 대들고 죽이지만 다시 아버지의 탈을 쓰는 작가들이 유달리 많았다. 헷세는 부인과 사이가 나빴고 부부 싸움 후엔 꼭 세세한 기록을 소설의 옷을 입혀서 기록했고 주저하고 고민하고 겁과 말이 많이 많은 카프카는 사랑이 실패할까, 성공해서 결혼하게 될까, 그래서 개인의 시간이 줄어들까, 아니면 사랑을 되돌려주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이때도 미친 테러리스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무차별 총기 난사로 어린이 여럿을 죽이고, 어떤 미친 놈은 가족 살해후 시내로 나가 방화 후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독일식 우드스톡 행사에서 젊은 벤야민은 연설을 하고 10월 차베른 사건은 독일의 시민권 위에는 군권이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DH 로렌스는 차털레이 부인의 모델이 될 여인을 만나며 토마스 만의 '베니스의 죽음'은 여러 의미를 띠면서 독자들을 만났다. 12월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며 스타 탄생을 했으며 이탈리아에서 프라다는 개인 샵을 오픈했다. 유명인들의 편지(의 사본)를 매달 받아보는 구독 서비스가 시작했으나 실패했고 젊은 뒤샹은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 놓으며 예술사에 획을 그었다. 알베르 카뮈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고 책에선 안 나오지만 보부아르가 10월에 가톨릭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65년 재위중인 큰아버지 황제에 스트레스가 많다. 게다가 황태자비는 출신 신분으로 지위를 인정받기가 어려웠으며 공식 석상에서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황태자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가족을 아꼈다. 이들 부부는 이듬해 1914년 여름 사라예보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정신 없이 과거 속 일 년을 이틀에 살아 냈다. 그리고 역시나, 읽을 책 목록이 길어졌다. 내 개인의 책 쌓기 역사는 이렇게 되풀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