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1913년 초에 스탈린, 히틀러, 티토가, 다시 말해서 20세기의 가장 지독한 폭군 두 사람과 가장 역겨운 독재자 한 사람이 잠시 동안 빈에같이 있었던 셈이다. 한 사람은 손님방에서 민족 문제를 연구하고, 또 한사람은 남성쉼터에서 수채화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자동차의 커브길 승차감을 검사하기 위해 링슈트라세를 무의미하게 돌고 있었다. 거대한 연극 ‘1913년의 빈에서 이 세 사람은 대사도 없는 세 명의 엑스트라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 P47

당시 동시대인들에게 이미 프로이트와 슈니츨러는 샴쌍둥이처럼 보였다. 여기서는 『꿈의 해석』, 저기서는 『꿈의 노벨레, 여기서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저기서는 『베아테 부인과 그녀의 아들.. 그러나 두 사람이 너무 비슷했기에, 두 사람은 서로 정중하게 피했다. - P71

언젠가 프로이트가 발분하여 슈니츨러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를 만나는 것이 두렵다고, "일종의 도플갱어 공포일 거라고 했다. 슈니츨러의 단편소설들과 희곡들을 읽은 프로이트는 자신이 타인에 대해 힘들게 연구해서 발견한 것들을 슈니츨러가 "직관적으로, 사실은 섬세한 자아의식의 결과로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백으로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슷한 장력을 지닌 두 개의 자석처럼 그들은 서로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것을 기분좋게 받아들였다. 1913년에 슈니츨러의 병원으로 한 실업가의 아들이 조랑말에게 성기를 물려 피투성이로 실려 왔을때, 슈니츨러는 이렇게 지시했다. "그 환자는 당장 구급 병원으로 보내고, 그 조랑말은 프로이트 교수에게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 P72

아무튼 1913년에 ‘모더니즘’은 끝이 난다. 모더니즘은 너무나 유연한개념이어서, 동시대인과 후세대에 의해 항상 다르게 해석되고 각 세대마다시간적으로 늘 새롭게 규정되기 때문에, 특히 1913년이라는 해의 특징인엄청난 비동시적 동시성을 제대로 묘사하기에 매우 부적절하다. - P88

1913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는다. "모든 인간이 열네 살 적 그대로 머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어쩌면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1913년 초에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아직 열네 살이다.
그의 일기를 읽은 사람들은 그가 나중에 열네 살 때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된 것을 기뻐한다. 어쨌든 그는 게오르게의 제자로서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못했을 것이다. 너무 못생기고, 너무 성급하고, 너무 투덜거려서. - P164

독일에 운명의 날인 11월 9일.
1848년 11월 9일: 로베르트 블룸의 처형을 기점으로 3월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왕정이 복고,
1918년 11월 9일: 11월혁명으로 바이마르공화국 시작,
1923년 11월 9일: 히틀러-루덴도르프 쿠데타,
1938년 11월 9일: 수정의 밤 사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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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0-1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사르트르 어머니의 사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