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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버들 도령 ㅣ 그림책이 참 좋아 84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겨울부터 기다렸다. 귀마개(=> 귀도리)를 하고 겨울 산을 헤매는 아이의 이야기를.
알라딘의 책 소개에 나온 것 처럼 힘겨운 삶을 지내던 연이가 버들 도령의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며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전래 동화의 다시 쓰기인 셈인데 이 과정에서 백희나 작가의 섬세함과 단단한 마음이 돋보인다.
연이는 '나이 든 여인'과 함께 산다. 종처럼 여인의 지시를 따르며 일을 한다. 여인은 심술 궂은 표정으로 이야기의 악역임을 드러낸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계모 쯤으로 칭해진 많은 여성들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그 흔한 호칭이 여기에는 없다. 그 둘 사이에 '보살핌'의 노동이 역전되어 존재한다. 가사일은 연이의 몫이고 나이든 여인은 계속 심술 궂다. 추운 날씨에 상추를, 진달래 꽃을 구하라고 겨울 산으로 연이를 내몬다. 그 과업을 연이는 버들 도령의 도움으로, 마법 같은 장소와 시간의 초월로 해낸다.
하지만 두둥, 나이 든 여인이 악행을, 발악을 한다. 스포할 순 없지만 바로 사건 직전의 책장에 이미 독자는 심장이 발목까지 떨군다. 이 여인은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고 만다. 왜 그랬을까. 질투일까. 연이의 시간, 젊음, 혹은 고운 심성을 질투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을 혼자만 독점하고 싶었을까. (중년 여인의 소녀에 대한 집착을 그린 애거서 크리스티의 "복수의 여인"도 주문해두었다) 처참한 현장(아주 어린 독자에게는 충격적일 만큼 적나라하다)에 뒤늦게 도착한 연이. 연이는 울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고 차분하게 타인을 먼저 불쌍히 여긴다. 그러자 해결법이 보인다.
백희나 작가의 단어 선택 하나 하나, 인물과 소품의 세세한 면이 (현실의 나이 든 여인이 쓴 돋보기 렌즈와) 눈을 통해 내 심장에 와 닿았다.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행복해야해, 연이야, 그리고 버들 도령도. 버들 도령 밥 잘 짓더라, 나물이랑 전 어쩜 그리 얌전하니 잘 차려냈을까. 그래도 설겆이는 장갑 꼭 끼고 해요, 나처럼 습진에 고생하지 말고. (아 참, 이들은 마법 아이템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