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입장을 밝히다

 
 

                                         다음은 창비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다. 읽다가 1초, 2초, 3초, 4초......   한참, 웃었다. 웃다가 숨 막혀서 죽는 경우다 있다는 소리가 헛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정형화된 클리쉐, 논리적 비약, 눈 가리고 아,  웅.



 신경숙 작가 <전설>의 표절논란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힙니다.

< 신경숙 작가의 입장>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문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입장을 메일로 보내왔다.
집필 중에는 연락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신경숙 작가는 현재 신작 집필을 위해 몇달째 서울을 떠나 있는 상태이다.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창비 문학출판부의 입장>

언론과 독자분들께 <전설>과 <우국>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두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짤막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내 극우 성향의 민족주의자고, 1970년 쿠데타를 주장하는 연설을 한 뒤 45세의 나이로 할복자살한 작가이다. 1960년에 발표한 <우국(憂國)>은 작가의 말년의 삶을 예견한 단편이라고 봐도 무관한데, 작품의 주인공은 천황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남성주의에 빠진 극우민족주의자이다.
시대적 배경은 1936년 천황 직접 통치를 주장하며 쿠데타(2월 26일)를 일으킨 세력이 3일 천하로 실패한 날이다. 쿠데타의 대의에는 동조했으나 신혼인 점을 고려한 친구들이 배제하는 바람에 거사에 참여하지 못한 주인공(신지 중위)이 할복을 결심하고, ‘천황 군대 만세’라는 유서를 남긴 뒤 자살하는 세세한 과정(창자가 쏟아져나온 뒤에도 죽지 않자 스스로 단도로 목을 찔러 죽어가는 과정의 묘사)을 아내(레이코)로 하여금 눈앞에서 지켜보게 한 다음, 레이코 역시 그의 신념이 당연하다는 듯 뒤따라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성애묘사가 두드러지는 남성주의적인 판타지로 볼 수도 있는 단편이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에 수록된 단편 <전설>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뛰어난 작품으로,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작가가 쓴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직핍한 현장감과 묘사가 뛰어나고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전쟁 중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 인연과 관계의 유전 등을 솜씨있게 다룬다.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고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개정판 제목에 대한 언급이 있어 답을 드린다. 이응준 씨는 개정판 제목을 바꾼 것을 가지고 무슨 문제가 있는 듯한 논조로 이야기하는데 유감스러운 일이다. 구간 개정시에는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해 더 어울리거나 그 시기에 맞는 제목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이를 표절시비와 연관지어 문제 삼는 건 도를 넘어선 억측임을 밝힌다. (2015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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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반응은 내가 예측한 결과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되었다. 모르쇠와 무대응은 모두 한통속. 작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출판사는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 역할을 자임한다는 시나리오. 든든하시겠습니다, 충성스러운 출판사를 두어서 말입니다.    " 집필 중에는 연락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신경숙 작가는 현재 신작 집필을 위해 몇달째 서울을 떠나 있는 상태 " 라는 설정은 전형적인 조경란 - 전술이다.

 

출판사는 왜 별 필요도 없는, 속보이는 사족을 굳이 보도 자료에 집어넣었을까 ?  저 문장은 마치 작가가 앞으로는 집필 작업에 몰두하느라 바람이 전하는 풍문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겠다는, 초연한 자세'를 대중에게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사소한 구설수에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자세. 다시 말해서 잡어들 노는 물에 가지 않겠다는 당당한 태도. 앞으로의 대응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논란이 수면 아래로 잠잠해질 때까지 << 해저 3만리 >> 여행이나 하시라는 출판사의 밑밥 설정'이다. 조경란은 논란 이후 << 백화점 >> 이란 에세이로 돌아왔는데, 어쩌면 신경숙은 << 바다 이야기 >> 로 컴백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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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무신경한 반응  : "  ......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을 보면서 이상하게 정치인들이 비리 사건으로 연루되어 법정에 설 때마다 포토 라인 앞에서 핏대 높이며 항변하는 태도와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저를 믿고 뽑아주신 유권자 및 동지 여러분에게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 " 이런 태도 말이다. 창비의 논리'는 정말 찌질함의 만렙을 보여준다. 이응준이 지적한 것은 전체-서사'에 대한 유사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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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국 / 미시마 유키오 > 의 전체 줄거리와 < 전설 / 신경숙 > 의 전체 줄거리가 유사하다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 내용 자체가 다르니 줄거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표절이라는 게 반드시 전체와 전체를 놓고 비교 평가하는 것일까 ? 그렇지 않다. 표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줄거리를 표절하는 것과 문장을 표절하는 것. 이 경우는 문장을 표절한 것이다. 창비는 전체 표절(줄거리)이 아니니 부분 표절(문장)은 표절이 아니라고 하는 물타기 하는 중'이다. 누구보다도 표절의 정의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 정도면 독자를 핫바지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 마치 1000억이 든 금고에서 100억을 털었으니( 금 무게가 무거워서 다 들고 나올 수 없어서... ) 도둑질이 아니라고 하는 소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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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5-06-1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차라리 무반응이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네요. 뭐 어차피 신경숙 작가를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니지만....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7:04   좋아요 0 | URL
무반응이나 모르쇠는 생깐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작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경숙 초기작을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정나미가 떨어지네요..

피오나 2015-06-1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이런 식은 아니길 바랬는데...좀 그렇네요..그래도 신경숙인데...ㅡㅡ;;;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7:18   좋아요 0 | URL
정치판이나 문학판이나 판박이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종종 시국선언 하면서 떼거지로 사인 받던데 그 나물에 그 밥 아닌가 싶습니다.
남의 허물은 잘 보여주 자기 허물을 보기 힘든 법....

파트라슈 2015-06-1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 작품은 하나도 안읽어 봤는데 이런 일에 대한 작가의 자세를 보니 앞으로도 이 작가의 작품은 볼 일이 없을 듯.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7:20   좋아요 0 | URL
초기작은 꽤 좋습니다. 풍금이 있던 자리`를 꽤 감명 깊게 본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확실히 2000년대 소설은 뭔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습니다.

yureka01 2015-06-1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만부의 작가의 변치고는 초라하네요.게의치 않겟다.라니 실망이네요.
소설가는 독자에게 말해 줘야할 의무가 있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8: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 200만 독자를 거느린 작가가 할 소리치고는 너무 심드렁한 말이네요..

글샘 2015-06-1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의 외딴방, 풍금이 있던 자리~ 같은,... 자전적 소설은 멋있죠.

딱 거기까지였네요. 신경숙...

원래 `내가 안 했다` 이러면 거짓말이라 처벌이 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러면 처벌 못하는 게 법이랍니다. 쳇~!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8:4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거기까지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는 약발이 떠난 것으로 보아 뮤즈가 신경숙에게 질린 모양입니다.

2015-06-1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8:47   좋아요 0 | URL
뭐 저 변명은 고래 몸통을 찌르고 않고 꼬리를 칼로 찔렀으니 공격 의도는 없다는 판결과 다를 것 없죠.
혹은 30페이지를 표절한 것은 대장편 레미제라블의 분량에 비하면 약은 부분에 해당되므로 표절이 아니다, 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듯합니다.

저는 솔직히 터질 것이 터졌다는 생각이어서 놀랄 것도 없습니다.

수다맨 2015-06-17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이런 반응이야 조금은 예상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고 나니 순진(?)한 공주님과, 공주님 지키는 오빠(!)들이 따로 없네요. 명색이 창비면 논리 정연한 글 쓰는 사람들 숱할 텐데 저런 걸 보도자료라고 내놓는 걸 보니 한숨만 나옵니다. 저 에콜은 오래전부터 (지금은 사어死語가 다 되었지만) 민족/민중문학을 주요 이념으로 내세워 정부와 체제 비판을 강도 높게 한 이력이 있는데, 지금 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저들도 (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정부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미시마를 신경숙보다 한 수 아래처럼 취급하는 태도는 조금 웃기네요 ㅎㅎㅎ 단순 우익 민족주의자로 취급하기에는 미시마의 문학적/정치적 스펙트럼은 보기보다 넓고 복잡한데 말입니다. 첨언하면 저는 미시마의 ˝금각사˝나 ˝가면의 고백˝보다 더 뛰어난 신경숙의 소설을 알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9:2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문학 돌아가는 꼴을 누구보다 잘아는 게 창비 같은 출판사인데 미시마를 단순히 우익 꼴통으로만 이해하고 있고 그런 뉘앙스로 신경숙을 옹호하다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솔직히 신경숙 소설 10개와 미시마 걸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미시마를 선택합니다. 그냥 신경숙은 싸구려 대중 작가일 뿐입니다. 어이가 없군요......

시골 개미 2015-06-1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다 돈 문제 같네요. 고매하신 창비도 돈 앞에서는 별거 없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9:26   좋아요 0 | URL
창비가 어느 순간부터 띨해졌더라고요...

마태우스 2015-06-17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000년도 정도에 이미 이 일로 흥분을 와장창 해서, 지금 이 문제가 새삼 왜 다시 나왔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다만 한가지 깨달은 것은, 그때 저는 ˝왜 사람들이 여기에 흥분하지 않느냐˝고 분개했었는데 몰라서 그랬던 것이더군요.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이었으니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06:27   좋아요 0 | URL
그때는 주제 표절, 구성 표절... 이런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대놓고 문장 고대로 복사하는 것 보고 놀랐습니다.
구성이나 주제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도 있으니 그런데 이번 일은...

뭐랄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었다면 2000년 논란이 말이죠. 이번 일은 시시티븨에 훔치는 장면이 찍혔다고나 할까요... 신경숙 반응 참.. 정치가 답지 않습니까 ? 어째 그리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치가 하는 말과 비슷한지....

samadhi(眞我) 2015-06-1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글 못 쓰는 작가 중 하나를 꼽을 때 반드시 신경숙을 넣는데(전 초기작품을 안 읽어서 ㅋㅋ.) 그 잘나가던 [엄마를 부탁해]도 읽지 않았구요. ˝내 독자˝ 라는 표현 자체만으로도 자만심 과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사람 대신 제가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최소 이불킥(?)이라도 할 판인데, 익숙해지면 그렇게 될 수도 있구나 싶어요. ˝권력˝이 독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2 06:32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네요. 덧글이 많다 보니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ㅎㅎㅎㅎ

공지영도 글 못 쓰는 대표적 작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 내 독자 ˝ 이거 무지 웃기네요..... 전형적인 정치가 발언이죠.

네 편 내 편 편갈라서 갈등 조장하려는 듯한...
 

 

 

 

 

 

 

 

 

 

 

 

 



 

 

 


 


 

 

 

 


뮤즈는 7시에 떠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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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먹여 살리는 대표 작가인 경우 표절 논란이 발생하면, 출판사는 작가를 뒤로 빼고 자신이 앞으로 나서서 방패 역할을 한다. 작가‘가 직접 해명을 하면 구질구질한 변명처럼 보이니 대변인을 구한다. 주로 한식구인 경우가 많다. 저잣거리에 깔리는 멍석’은 고상한 문학계답게 문예지 따위로 변한다. 그러니까 질펀하게 놀라고 깐 멍석의 다른 이름이 문예지이다. 문예지는 보통 출판사가 운영한다. 쉽게 말해서 출판사가 스폰서인 경우다. 대변인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글쟁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을 얻는 것. 전투사 역할을 자임하면 지면을 얻을 기회는 높아진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더 ! 결국, 표절 논란에 휘말린 작가가 이리저리 해명하느라 흙탕물에 빠지는 꼴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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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입장에서도 굳이 자신이 해명을 하지 않아도 제3자가 알아서 하니깐 말이다. 쉽게 말해서 지원군이 든든하다는 말씀. 조경란의 표절 논란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녀는 뒤로 쏙 빠졌고, 제3자들이 서로 다퉜다. 그때 조경란은 해외 팔도유람을 다니며 세상물정을 관찰했으니, 논란이 잦아들자 들고 나온 책이 << 백화점 >> 이란 에세이‘였다. 이 뜬금없는 관심사에 의, 아했던 적이 있다. 책소개글을 보면 표절 논란( 2008년 ) 이후의 동선이 보인다.

 

  

소설가 조경란이 이야기하는 쇼핑의 기쁨, 쇼핑의 고통, 쇼핑의 가치.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백화점을 직접 조명한 문화 에세이다. 백화점이라는 '장소'가 현대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기능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책은 현장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깊이와 넓이가 더해져 오롯이 백화점을 다룬 최초의 논픽션이 되었다. 처음 책의 주제가 제안된 것은 2009년 말이었다. 백화점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우리에게 이토록 의미심장한 공간이 되었을까? 백화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작가는 평소 익숙하게 다니던 서울과 도쿄의 백화점들을 새롭게 취재하고, 다양한 참고문헌과 자료를 조사했다. 책의 집필은 2010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177일 동안 이루어졌다.

  

 

놀다, 온 것이다. 본인 때문에 여러 지면에서 “ 앙칼진 말방구 ” 가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문단을 생각하면 고고하고 도도한 태도‘였다. 그녀는 지금도 그때 일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윤식 표절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뒤로 빠졌고 제자들이 앞에 나와 이명원과 (앙칼진말방구) 풍선 놀이‘를 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이 놀이’를 관망하다가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끝냈다. 사실, 신경숙 표절 논란은 이응준 작가가 제기해야 할 게 아니라 문학을 가르치고 문학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 해야 될 몫이다. 그들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니 성질 급한 작가가 300를 찍기로 한 것이다. 문단, 나아가 문학평론이 얼마나 병들었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제부터인가 문학평론가는 출판사의 거수기, 혹은 홍보부장이 되었다.

​

​기껏 한다는 게 소설 부록에 해당되는 평론을 쓰는 일이다. 말이 좋아서 평론이지, 출판사의 보도 자료를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출판사가 소설에 실릴 평론을 청탁하는데 어느 평론가‘가 신랄하게 평론할까 ?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여도 성찬은 이어진다.  " 이 소설은 눈 감고 상상하기에 탁월한, 전무후무한 소설이다, 압권이다 !!!!!!!!!! "  할 말 없으면 전복적 상상이 돋보인다고 말하고, 현대인의 불알을 예리하게 포착했다고 말한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평론이 실린 소설책을 꺼내서 한 번 읽어보시라. 전복과 불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평론을 찾는 것보다 이 두 단어가 들어간 평론을 찾는 게 쉬울 판이다. 이처럼 작가 - 출판사 - 문단은 서로서로 칭찬하며 눈 감는다. 말이 좋아 문학상이지 돌려막기다. 오늘은 내가 하고 내일은 네가 하는 방식. 그 나물에 그 밥. 언제부터인가 문학상에 거론되는 소설(가)보다 문단과 거리를 둔 작가를 신뢰하는 경향이 생겼다. 적어도 그들은 아첨을 하지는 않으니깐 말이다. 문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출판사나 문단에 밉보이면 죽음이다.

​

​내가 보기엔, 이응준 작가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그는 평생 문학상을 받을 자격을 상실했다. 왜 ? 침묵의 쓰리 콤보 집단에게 밉보였으니까. 한국 소설이 재미없는 이유는 말 그대로 재미가 없기 때문인데 문단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하면 순문학이고, 남이 하면 장르 소설이란다. 어떤 이를 경계 문학이라고도 한다. 차라리 문지방 문학이라고 해라. 지랄 같은 등단 제도 만들어서 끼리끼리 마스터베이션하지 말고 자유롭게 월경해라( 등단 제도는 일본과 한국 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응하는 신경숙의 신경전은 안 봐도 뻔하다. 개인적으로 신경숙 소설에는 관심이 없다. 반짝거렸던 초기 작품과는 다르게 이후에 나온 소설들은 모두 생기를 잃고 기계적으로 써내려간 소설들이었다. 뮤즈가 그녀 곁에서 떠난 것일까 ?  신경숙 소설로 먹고 사는 출판사는 자신이 소속된 문예지를 통해 이응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것이고, 지면 할당에 목마른 사람은 전투사가 되어 싸울 것이다.

​

​내가 보기엔 문학동네가 적극적으로 이응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까 싶다. 혹은 조선일보가 지면을 할당할 것이다. 그녀는 동인문학상(조선일보) 종신 심사위원이라는 크라운을 머리에 쓴 인물이니깐 말이다. 빛나는 ~ 크라운을 쓰신 언니께 ~ 어따대고 지적질이야 ! 라는 논조가 아닐까 ? 뭐, 좋다. 한국 소설에 흥미를 잃은 지는 오래되었으니 관심도 없다만, 문단이 집단적으로 공주병에 걸리는 것은 꼴불견이다. 언론사는 " 표절이 있던 자리 " 를 지적하며 조목조목 따질 것이다. 지금쯤, " 어디선가 나(신경숙)를 찾는 전화벨 " 이 울릴 것이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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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6-1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지방 문학! ㅋㅋㅋㅋㅋ
우리나라 문학계도 알고보면 살벌하네요. 조폭 같아요.
곰발님 글 읽으면 정말 예상도가 그려지네요.
말하자면 이응준은 내부고발자가 된 모양인데
그 사람은 좀 누군가 보호해 줘야하지 않을까요? 힘 없는 독자라도...
설마 생각없이 터트린 건 아니겠죠.ㅠ

진짜 이 문단 제도 없어져야 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4:52   좋아요 0 | URL
즐겨찾기에서 -1이 빠졌네요.

신경숙 열성 지지자`가 내 글 보고 속상하셨던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혜윰 2015-06-17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창비가 먼저 방패막이를ㅠㅠ 창비가 그러면 안되는데ㅠㅠ

공과를 구분짓지 못하는 건 우리 나라 특유의 풍토병인지도....^^;;

그나저나 김윤식 아닌가요??이윤식이라고 쓰셔서☞☜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5:59   좋아요 0 | URL
이윤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윤석과 헷갈렸씁니다. 김윤식이죠...

스윗듀 2015-06-1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걸 신경숙해명 터지기 전에 읽었어야되는데 ㅋㅋㅋ 곰발님 계속해서 글 올려주세요 좋아요 지원은 해드릴게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06:2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아요 지원이라는 말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ㅎㅎㅎㅎㅎ
 
공포의 변증법 - 경이로움의 징후들
프랑코 모레티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드라큘라와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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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언급한 부분이지만 : “ 괴물 ” 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괴물 영화나 괴기 소설을 좋아한다. " 오따꾸 " 정도는 아니지만 " 3.5따꾸 " 에서 " 4따꾸 " 정도는 된다. 하지만 이 관심은 호기심과는 다르다. 호기심은 말 그대로 대상을 눈요깃감으로 보려는 취향인 반면, 관심은 나와 대상이 맺는 관계‘를 고려한 관찰이다. 관심(關心)에서 < 관 > 이 관계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내가 괴물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는 말은 곧 괴물이 사람, 사물 따위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발생하게 되는 현상에 관심이 있다는 소리’다. 일단, 괴물은 << 미지의 것 >> 를 대표한다. 그것은 본래 내부에 있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혹은 박멸하여 봉인한 것이 재생되거나).

​

​괴물은 미래를 상징하는 기표. 반면 괴물과 싸우는 쪽은 항상 현재’다. ​교통 정리‘를 하자면 괴물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는 사람과 괴물이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 싸움 구경 - 서사 > 이지만 사실은 현재와 미래가 서로 다투는 서사'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은 괴물을 통해 “ 미래가 괴물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프랑코 모레티, 공포의 변증법'에서 인용) ”을 느낀다. 그래서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다. 20세기 말, 사람들이 AIDS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원인은 AIDS를 < 바이러스 > 의 한 종류로 보지 않고 < 괴물 > 의 한 종류'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 AIDS가 창궐하는 미래 사회 " 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AIDS 환자'를 괴물로 취급한 것이다. 자기 안의 불안이 아픈 타자를 괴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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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은 괴물과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꼴이다. << 천국 >> 에는 괴물이 없다. 이유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 아니다, 천국에 사는 천사는 불안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괴물이 사는 곳은 << 지옥 >> 이다. 지옥은 불안 집합소‘다. 이렇듯 괴물은 현재의 불알을 먹고 산다. 아, 오타. 현재의 불안을 먹고 사는 존재’다. << ​괴물 >>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드라큘라 백작이 아닐까.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드라큘라 백작은 남장을 한 여성‘이다. 그가 잠이 드는 관은 “ 나팔관 ” 이다. 또한 그가 주로 무는 목( neck)이라는 단어가 “ 자궁 ” 이란 의미도 있으니, 흡혈귀 목을 베어버리는 행위는 자궁 적출이요, 드라큘라 가슴에 말뚝을 박는 행위는 백마를 탄 왕자가 잠이 든 공주를 강간하는 서사다. 미치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라디오에서는 플라이 더 스카이의 " 가슴 아파도 " 가 흐른다. 그래도 흥얼거리지는 말자. 타인의 고통 앞에서 웃으면 안 되니깐 말이다. 비록 그가 괴물이더라도 죽어가는 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흡혈 행위는 유실된 피(월경)를 보충하려는 것이다. 이 모든 인문학적 상상을 종합하면, 그래요...... 드라큘라는 백작이 아니라 공작부인이랍니다(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은 엘리자베스 바토리‘라는 여성이었다), 라고 우기고 싶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완벽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싸한 해석만 있을 뿐이다. 드라큘라’라는 괴물이 지시하는 것은 명백하다. " 물리면 아,          파요. "  다시 말해서 드라큘라는 불가촉천민‘이다.  드라큘라는 접촉하면 안 되는, 나쁜 피를 가진, 저기 저어기 어두컴컴한 강북에서 온, 창백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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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물리는 순간 빠르게 전염되기에 드라큘라는 격리시켜야 할 존재‘다.  드라큘라 영화가 1930년대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1930년대 대공황과 연결된다. 1930년대의 시대적 불안이 드라큘라 영화를 양산한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속 주인공은 드라큘라와 싸운 것이 아니라 시대적 불안과 싸운 것이다. 드라큘라가 외부에서 유입된 괴물이라는 측면에서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수주의의 광기와도 연결된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유령이 대륙의 피를 온통 전염시켜서 황무지로 만들 것이란 막연한 불안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1930년대 드라큘라 영화의 공포는 당시 현대인이 느꼈던 미래에 대한 공포를 다뤘다. 나는 드라큘라 서사'를 순혈주의에 대한 강박으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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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을 떠도는 메르스는 드라큘라와 유사한 괴물이다. 한국인은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채널을 돌리면 메르스, 메르스, 메르스뿐이다. 이 정도면 불안이 아니라 집단 간질 사태’다. 그렇다면 공포의 원인은 메르스인가 ?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괴물은 가까운 미래가 괴물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만든 사생아‘다. 이 사생아의 아비는 현재의 불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르스 때문에 집단 간질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불안한 한국 사회가 밑바탕이 되어서 불안이 공포로, 공포가 광기로 확산된 것이다. 사회가 병들었으니 한국 사회 구성원'인 한국인은 모두 기저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다. 그렇다 보니 변형 독감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에 한국 사회가 건강한 사회였다면 지금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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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믿고, 각자 조심하면 되니깐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메르스가 자국 내에서 발생했지만 완벽한 방역에 성공했으니, 메르스는 그닥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르다.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한국인은 기저 질환을 가진 환자이니까. 메르스 환자는 현대판 드라큘라’다. 접촉하는 순간 감염된다. 하지만 그 분노를 드라큘라에게 물린 흡혈귀‘에게 화살을 돌리지는 말자. 목을 베고 말뚝을 박아야 될 대상은 흡혈귀가 아니라, 흡혈귀 우두머리인 드라큘라’다. 정부라는 이름의 드라큘라, 무능한 관료의 목을 베고 적폐에 말뚝을 박으면 된다. 우두머리가 죽으면 흡혈귀는 정상으로 복귀한다. 일단은..... 영화를 믿을 수밖에 ! 영화에서는 우두머리 드라큘라가 죽으면 감염된 흡혈귀는 모두 정상으로 복귀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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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보다 무서운 병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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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6-1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의든 타의든 메르스 환자를 진료를 보고 확진을 받은 `병원, 병원의 부서` 폐쇄가 이어져 막상 다른 질병으로 진료를 봐야 하는 환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메르스 환자의 간호 역시 ; 간병인, 가족 모두 간호하기를 거부해서 환자만 덩그러니.

병원에서 `불법적인 진료를 거부`를 하든 안 하든, 폐쇄병원이 점차 늘어가면서 전국의 모든 병원이 폐쇄로 달려가는 느낌이네요. 그리고 국민의 정신적 피로도 급상승 ... ; 마무리가 ...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11:50   좋아요 0 | URL
이야.... 이거.... 참..... 영화 같은 일이네요. 병원이 하나둘 메르스에 의해 점령되어 페소ㅔ가 폐새가 되고.... 병원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 묘하군요.


말레이지아는 메르스 1호 환자 생기자 간단하게 방역해서 그냥 쫑을 냈다고 하는데 이 나라는 당최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병원 공개를 왜 꺼려했는지 의아합니다. 진짜 삼성 이기 때문에 공개를 꺼랴 한 것일까요 ?

풀꽃놀이 2015-06-1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르스보다 무서운 병균은 행정부 수장으로부터 퍼져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무능 바이러스죠...우리 정부가 일처리하는 것을 보면 정말 두렵기 짝이 없구요..정말 이러다가 큰일을 내지 싶습니다. 남탓 하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해도 이것..참..
메르스에 묻혀 훨씬 심각한 탄저균 문제는 공론화조차 되지 못하고 있고..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었을 때 느껴지던 `답답한`공포가 느껴지네요. 무서운건 사람이니까요. 병균이 아니라...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06:25   좋아요 0 | URL
바이러스야 격리시키면 되지만 무능과 부패는 답이 없죠. 국개론이 슬슬 정답이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몰락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무능한 정부는 처음 봅니다. 확실히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이에요... 그게 정답입니다.

samadhi(眞我) 2015-06-1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유가 뜬금없이(?) 적절해서 저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9 13:3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글이 마음에 듭니다. 신경숙 관련 글 때문에 묻혔어요... ㅎㅎㅎ
 

 

 

 

 

 



글 출처 : 2015. 06.16일자 허핑턴 포스트 전문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 주우(主友) 세계문학20, 주식회사 주우, P.233. (1983년 1월 25일 초판 인쇄, 1983년 1월 30일 초판 발행.)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창작과비평사, P.240-241. (1996년 9월 25일 초판 발행, 이후 2005년 8월1일 동일한 출판사로서 이름을 줄여 개명한 '창비'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로 소설집 제목만 바꾸어 재출간됨.)


자, 이제 눈을 감고, 내가 말하는 장면을 각자의 머릿속에 그려보자.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 유력 소설가 신경숙은 문단의 까마득한 선배인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일본의 대표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주우 세계문학 전집 제20권)에서 단편소설 「우국(憂國)」의 한 부분을 가만히 펼쳤다. 이어 신경숙은 자신이 청탁을 받아쓰고 있는 중인 단편소설 「전설」의 원고에 「우국(憂國)」의 그 한 부분을 거의 그대로 옮겨 타이핑한다. 이 원고는 1994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실린 뒤 1996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에 대한 표절로 저렇게 적발되고 있는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분은, 한 소설가가 '어떤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설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 '소설이 아닌 문건자료'의 내용을 '소설적 지문(地文)'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활용하는 등'의 이른바 '소설화(小說化) 작업'의 결과가 절대 아니다. 저것은 순전히 '다른 소설가'의 저작권이 엄연한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하는', 그야말로 한 일반인으로서도 그러려니와, 하물며 한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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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과연 경륜 있는 시인답게 김후란은, 1996년 6월 30일 초판이 발행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제2권 '죽음의 미학' 편에 실린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에서는 "한 달이 채 될까 말까 할 때, 레이꼬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라고 번역된 부분에서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는 밋밋한 표현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라는 유려한 표현으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언어조합은 가령, '추억의 속도' 같은 지극히 시적인 표현으로서 누군가가 어디에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을 실수로 적어서는 결코 발화될 수가 없는 차원의,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도용(盜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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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憂國)」 속 저 부분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거라고 주장하려면, 가령,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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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신경숙은 표절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다.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은 고인의 부친 안창식이 쓴 것인데 이를 신경숙이 자신의 소설 「딸기밭」에 모두 여섯 문단에 걸쳐 완전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장으로 무단 사용한 것이나,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소설 「작별 인사」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 속 문장과 모티프와 분위기 들을 표절했다는 고발 등등은 필경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표절한 것과 비슷하거나 같은 노릇을 여기저기서 상습으로 일삼던 와중에 흩뿌려진 흔적과 증거들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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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 이르러 우리는, 신경숙이 미사마 유키오를 표절한 저 방식으로 다른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많이 표절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의심'을 충분히 품을 수 있다. 예리한 독서가들 여럿이 작정하고 장기간 들러붙어 신경숙의 모든 소설들을 전수조사(全數調査)해보면 위와 같은 사례들은 얼마든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

무라카미 류의 유쾌한 장편소설 『69』에는 이런 명언이 나온다. "똥에는 사상이 없다." 표절도 마찬가지다. 표절은 '똥'이다. 똥에 사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듯 표절에는 사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문단에서는 그런 문학적 야만이 버젓이 벌어졌다. 그래서 신경숙의 '표절'은 그저 '치워버리면 끝이 나는 똥'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치명적인 상처'가 돼버렸던 것이다.

​

소설가 신경숙은 시인인 나보다 5년 정도 문단에 먼저 나왔다. 우리는 20세기의 끄트머리에서 한국문단 생활을 함께 시작한 셈이다. 그러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문인들의 표절에 대한 염결함이 유독 신경숙에게만 무감각하거나 다르게 해석될 리 만무하다. 본시 한국문단은 요즘처럼 표절에 관해 널널한 입장을 취하는 그런 개념 없는 동네가 절대 아니었다. 가령, 어느 밤 동료 문인과 단 둘이 술자리를 갖다가 그에게서 어떤 흥미로운 경험담을 들었을 때 다음날 아침 술이 덜 깬 상태에서조차 그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어젯밤 내게 말했던 그 이야기를 내가 내 시나 소설에 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 정도가 내가 데뷔하던 당시 우리 한국문단의 표절에 대한 경계(警戒)의 수준이었으니, 공적인 자리나 매체에서의 표절에 대한 엄격함이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가령 소설가 이인화처럼 표절과 페스티쉬(혼성모방)의 논쟁들 사이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문인이 있었고,

​

한 번 표절작가로 찍힌다는 것은 문인으로서의 죽음을 은유하는 것을 넘어서 자연인으로서의 자살까지 고려할 만큼 심각한 부끄러움이었음을 나와 나의 문우들은 자명하게 술회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신경숙의 남편(1999년도에 결혼. 신경숙의 표절 시비들은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터져 나옴.)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하일지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을 표절작가라며 그토록 가혹하게(아아, 정말로 가혹하게!) 몰아세우고 괴롭혔던 것 아니겠는가? 참으로 기적적인 것은, 그랬던 그가 자신의 부인인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서는 이제껏 일언반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

아무튼. 나처럼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작가도 당연히 알고 있던 한국문단의 저 호흡 같은 '문학헌법 제1조'를 신경숙처럼 고매하고 대단한 작가가 몰랐다고 우기려면 적어도 그때 신경숙의 문단은 화성에 있었고 신경숙은 화성인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신경숙은 「전설」이 실린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의 제목을 『감자 먹는 사람들』로 바꿔서 재출간했다. 절판된 책을 재출간하는 경우도 아닌데 굳이 왜 그랬을까. '오래전 집을 떠날 때'라는 제목이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보다 못생겨서?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은 그 오리지널이 고흐의 그림 제목인데도 왜 굳이? 참으로 요상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

신경숙과 같은 극소수의 문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문인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버겁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작가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려는 까닭은 비록 비루한 현실을 헤맬지라도 우리의 문학만큼은 기어코 늠름하고 진실하게 지켜내겠다는 자존심과 신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빈센트 반 고흐가 광기에 젖어 온갖 패악을 부렸다고 한들 누구도 예술가로서의 그를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흐가 누군가의 그림을 표절 했다면 문제는 사뭇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평생 지독한 성욕에 시달렸던 피카소의 마성(魔性)에 가까운 여성편력을, 마약 과용으로 요절한 바스키아를, 장주네의 도둑질과 비역질을, 가족을 내팽개치고 타히티로 가버린 이기주의자 고갱을, 절친한 친구 부부와 동거하며 그 친구의 부인을 사랑했던 마야코프스키를, 랭보와 베를렌느의 무자비한 퇴폐와 일탈을 예술사가 심판했다는 민망한 소리는 이제껏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으나 만약 저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남의 작품을 표절했다면 지금 우리는 그를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의 범죄자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예술가에게도 도덕은 있으니, 그것은 '예술에 대한 도덕'인 것이다. 문인이 안하무인일 수는 있다. 그러나 문인이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안하무인일 수 없다. 문인이 범죄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인이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범죄자여선 안 되는 것이다. 종이책마저 사라져가는 21세기 디지털 시대, 문학에 싸늘해진 세상보다 막상 더 섭섭하고 화가 나는 것이 문학인들이 문학을 두고 부끄러운 짓들을 서슴지 않을 때인 까닭 역시 그래서이다.

표절은 시대와 시절에 따라 기준이 변하거나 무뎌지는 '말랑말랑한 관례'가 아니다. 만약 표절에 대한 엄중한 잣대를 무시하고 그 벌을 농락해 지식과 지성과 과학과 문화와 예술 등의 사법체계가 무너지면, 인간과 인간이 공부하고 노동하고 창조하는 모든 것들은 '모럴 헤저드'에 빠져들고 만다. 가장 양심이 없다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마저도 논문표절을 하면 장관이 안 되고 산악 14좌 등반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각되면 그 인정이 취소됨과 동시에 산악인으로서의 명예가 박탈된다. 인기 절정의 대중강연자는 논문표절로 인해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일거에 퇴출되고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도 도핑 테스트에 걸리면 평생의 업적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리는 세상이다.

​

그러나 표절을 저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문단이다. 단, 조건이 있다. 책이 많이 팔린다거나 그것과 음으로 양으로 연관된 문단권력의 비호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설혹 표절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더라도 그저 약간의 소란 아닌 소란을 거쳐 다시 납득할 수 없는 평온으로 되돌아갈 뿐인 것이다. 어느덧 표절에 대한 도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한국의 순수문학 안에서 표절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치밀하게 진행돼 몽롱하게 마무리 된다. 개인적인 표절 말고도, 가령, 거대 출판사의 사장과 편집부가 작가에게 이거 써라 저거 써라 제시하고 조종하다가 유리잔이 엎어져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표절사건이 터지기도 하며 이러한 와중에 자신의 작품을 표절당한 한 신인 소설가는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매장당하기까지 하건만 한국문단의 어느 문인도 시원스럽게 나서서 입장을 표명해 도와주지 않는다.

​

왜냐. 일종의 '내부 고발자'가 돼버려 자신의 문단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한국문단의 이러한 '표절의 환락가화(歡樂街化)'가 2000년 가을 즈음부터 줄줄이 터져 나왔던 신경숙의 다양한 표절 시비들을 그야말로 그냥 시비로 넘겨버리면서 이윽고 구성되고 체계화된 것임을 또렷이 증언할 수 있다.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한국문단의 '뻔뻔한 시치미'와 '작당하는 은폐'는 그 이후 한국문단이 여러 표절사건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 악행을 고질화, 체질화시킴으로서 한국문학의 참담한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

이렇듯 한국문인들은 신경숙의 표절 사실을 알건 모르건 간에 어쨌든 '침묵의 공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문학은 표절을 용인하는 집단이 돼 버린 것이고 한국문인들을 그러한 자괴의 콤플렉스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이는 자결할 기운도 남겨두지 않는 낙담이다. 우리 한국문인들과 한국문학의 독자들은 이제 이 폭압 같은 좌절로부터 기필코 해방돼야 한다. 신경숙의 표절로 인해 한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다른 많은 문인들도 수치심을 느꼈다. 어떤 경로로든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도 수치심을 느꼈다.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까지 문학의 순수함과 숭고함과 엄격함에 대해 감동적으로 설파하곤 하는 신경숙의 모습은 우리에게 극심한 충격과 자책, 한국문학 자체에 대한 환멸을 안겨준다.

​

신경숙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다. 신경숙은 한국문학의 당대사 안에서 처세의 달인인 평론가들로부터 상전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으며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등등'의 요인들로 인해 한국문단 최고의 권력이기도 하다. 그러한 신경숙이기에 신경숙이 저지른 표절이 이른바 순수문학에 대해서는 순진할 수밖에 없는 대중, 특히 한 사람의 작가만큼이나 그 개개인이 소중하기 그지없는 한국문학의 애독자들과 날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인 한국문학의 본령에 입힌 상처는 그 어떤 뼈아픈 후회보다 더 참담한 것이다.

​

뿐인가. 신경숙의 소설들은 다양한 언어들로 번역돼 각 외국 현지에서 상업적으로도 일정한 가시적인 성과를 올린 바 있다. 그런데 만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 뉴욕에 알려진다면? 파리에 알려진다면? 영국에 알려진다면? 일본의 문인들이, 일본의 대중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는 감춘다고 감춰질 문제도 아니며, 감추면 감출수록 악취가 만발하게 될 한국문학의 치욕이 우리가 도모할 일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대표 소설가가 일본 극우 작가의 번역본이나 표절하고 앉아있는 한국문학의 도덕적 수준을 우리 스스로 바로잡는 것 말고는 한국문학의 이 국제적 망신을 치유할 방법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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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누가 누구의 흠결을 잡아내 공격하는 성격의 일이 정녕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지난 십 년 가까이의, 그리고 앞으로의 문단생활을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이 글을 쓸 이유란 애초에 없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나와 나의 문우들이 문학을 처음 시작했을 적에 신앙했던 문학의 그 치열하고 고결한 빛을 되찾는 일일 뿐이다. 신경숙의 개인사가 아니라 한국문학사 전체를 병들게 하는,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한국문학 작가들과 그들의 독자들에게까지 채워질 저 열등감의 족쇄를 바수어버리는 일일 뿐이다.


한국문단과 한국문학은 이 글을 통해 표절에 대한 패배감과 우울증을 치유 받아야 하고 그것이야말로 이 글의 사회적, 문화적 공익성이 될 것임은,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작가란 표절을 하지 않는 존재라고, 또한 비록 작가가 아닐지라도 누구든 남의 작품을 표절하는 것은 도둑질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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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아니고서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칼로 무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악한 사람이기도 하고 선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악한 일과 선한 일은 있다. 나는 나의 이 글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에 악영향을 끼칠 어떤 악한 일을 바로잡는 선한 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보통의 경우 나는 용감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가 죽으면서 나는, 내가 용기 없는 문인이었다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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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문학은 세상을 능욕하는 더러운 시스템을 무시하고 무너뜨린다. 또한, 인간의 영혼을 기만하고 예술의 가치를 짓밟는 야만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결의는 유별난 한 문인만의 것일 수도 없는 것이다. 세상은 법률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다. 세상은 인간의 모순과 슬픔을 예술의 순수를 통해 사랑하고 위로하면서 제 핵심을 사수한다. 예술가의 예술에 대한 윤리가 예술가의 본분임은 바로 그 소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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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신경숙이라는 한국문학의 우상(偶像)이 저지른 표절에 관해 한 작은 문인이 정식으로 써서 그 사실과 의미를 일깨우는 일은 한국문인들의 긍지를 회복하는 길이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피눈물과 땀방울로 한국문학을 일궈낸 선배작가들과 독자들에게 사죄하려는 오늘의 한국문인들 모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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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비록 그 글을 쓴 자가 죽은 다음일지라도 오히려 새 생명을 부여받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신의 무거운 책무를 감당한다. 어떤 대단한 권력이 협박하고 공격하고 회유하고 은폐하고 조작한다고 한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순정한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기록한다면 그 기록은 그 기록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의 진실을 필요할 적마다 매번 소환해 영원히 증명해낸다는 뜻이다. 이것이 곧 온갖 어둠을 이용해 당대에 설치는 거짓보다 훨씬 강한 참된 글의 빛이며 문학의 위대함이다. 나는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우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 오로지 그것만을 믿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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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응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외 9편의 시로 등단했고, 1994년 계간 『상상』 가을호에 단편소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3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중앙선데이」에 21편의 칼럼을 연재하면서 정치․사회․문화 비평을 시작했다. 시집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애인』, 소설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무정한 짐승의 연애』, 『약혼』,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소설선집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논픽션 시리즈 '이응준의 문장전선' 제1권 『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 등이 있다. 2008년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 「Lemon Tree」(40분)가 뉴욕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파리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SBS 16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문화무정부주의 조직 '문장전선'을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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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재봉, 「왜 신경숙씨 '딸기밭'에 남의 글이 그대로 담겼나」, 한겨레신문, 1999년 9월21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2100289124008&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09-21&officeId=00028&pageNo=24&printNo=3614&publishType=00010
이 일이 드러나 문제가 커지자 신경숙은 고(故) 안승준의 유족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 소설집 『딸기밭』의 그 다음 인쇄본부터는 "유의 어머니 편지는 故 안승준 씨의 유고집 서문의 일부를 변형한 것임."이라는 문구를 단편소설 「딸기밭」의 말미에 달았다. 신경숙, 「출처 안밝힌 인용은 죄송, 표절혐의 이해할 수 없다」, 한겨레신문, 1999년 9월28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2800289124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9-09-28&officeId=00028&pageNo=24&printNo=3618&publishType=00010

2) 이는 주로 문학평론가 박철화가 주장한 것들인데, 계간 작가세계 1999년 가을호에 실린 「야성성의 글쓰기, 대화와 성숙으로」와 이후 한겨레신문에 발표한 그의 기고문들을 참조할 수 있다. 특히 박철화는 신경숙의 단편소설 「작별인사」가 마루야마 겐지의 장편소설 『물의 가족』의 여러 요소들을 그저 멋 부리기 위해 가져다가 표절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박철화, 「비슷한 문장과 모티프 모든 것이 우연인가」, 한겨레신문, 1999년 10월 5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00500289124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10-05&officeId=00028&pageNo=24&printNo=3624&publishType=00010

3) 최재봉, 「국내 포스트모더니즘 거센 내부 비판」, 한겨레신문, 1993년 3월 13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31300289109010&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3-13&officeId=00028&pageNo=9&printNo=1500&publishType=00010

4) 소설가 하일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남진우의 공격이 문학평론이 아닌 인신공격적 언어폭력이라고 일갈했다. 또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강준만과의 공저 『문학권력』 (개마고원, 2001) 속 자신의 글 「심미적 비평의 파탄―남진우의 반론에 답한다」에서 남진우가 하일지의 장편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로브그리예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아무런 증거를 내세운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남진우의 하일지 비판(특히 로브그리예에 대한 표절 시비가)이 그야말로 인신공격적 언어폭력에 불과하다고 소설가 하일지와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고미석, 「문학평 인민재판식 안된다」, 동아일보, 1991년 9월 30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93000209213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9-30&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606&publishType=00020
윤성노, 「권성우·강준만 공저 '문학권력서' 재비판」, 경향신문 2001년 12월 17일자 참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0112171931211

5) 「문화단신」 문학, 연합뉴스 2005년 8월 9일자 참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1070362 

 

 

 

 

 

 

 

 


 

 

 

 

 

 


예상 가능한 신경숙의 신경전



1. 신경숙은 침묵한다.

2. 신경숙과 관련이 있는 문예지'나 언론( 동아일보 ) 은 신경숙을 대신할 타자의 입'을 물색하여 신경숙의 입장을 대변한다

3. 오고가는 앙칼진 말방구들. 반론에 재반론에 재재반론.

4. 신경숙은 침묵한다.

5. 괘씸죄에 걸린 반대파는 문단 주류와 거대 출판 권력으로부터 외면받는다.

6. 신경숙은 침묵한다.

7. 대중으로부터 잊혀질 만할 때 신경숙은 새 작품을 들고 " 짠 ! " 하며 나타난다.

8. 대중은 와와, 한다.



뭐, 이런 신경전을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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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6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6-16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한국문학이 독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데,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은 파장이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메르스 소식 때문에 이 글이 조용히 묻힐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책 좀 읽고, 한국문학에 정말 관심 있는 독자들만 이 부끄러운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05:47   좋아요 0 | URL
조경란 < 혀 > 논란은 송사리 노는 연못에 숭어가 끼어들면 되겠나-정신`으로 아예 조경란이 무시를 하더군요. 일체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매체에서도 반론 재반론이 이루어졌으나 조경란이 아무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매우 부적절했죠. 잠시 한국을 떠나 있다가 나온 작품이 엉뚱하게도 소설이 아닌
<< 백화점 >> 인가 하는 책이었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느낀 백화점 이야기....

아마, 이 사태도 그리 되지 않을까요 ? 개야 짖어라, 나는 고고하게 물 위에 떠 있을란다...

표맥(漂麥) 2015-06-1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네요... 어째 신 작가의 표절에 관한 글이 두 편이나 알라딘 서재에 올라와 있어 읽게 되었는데...
참 부끄러운 일 인듯 한데... 신작가의 의견이 궁금해 지는군요... 저 정도면 다른 눈 밝은 이들이 금방 알아볼 것이라는 걸 알았을 듯 한데요. 그 참...
--------
이 댓글 써고나서 찾아보니 오늘 몇몇 곳에서 기사화 되었군요...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언듯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05:49   좋아요 0 | URL
한국만큼 표절에 둔감한 나라가 있을까 싶습니다.
언제부터 표절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나라가 되었는지
정치가서부터 문학인까지.... 참......

비연 2015-06-17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어제 접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글은 유명해서 금방 알아챌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너무나 당당하게(?) 베껴서 자기 책에 넣었다는 데에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네요. 신경숙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런 일이 그대로 묻히면 절대 안될텐데. 그냥 무심히 넘어갈까봐 걱정될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7 09:17   좋아요 0 | URL
패턴은 동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경숙은 침묵할 것이고,
대신 신경숙을 밀어주는 거대 출판사가 침묵을 대신할, 지지할 문학평론가 입을 빌려 대변하겠죠.
안 봐도 뻔한 사실. 이런 걸 두고 조경란 전술이라고 하죠....

samadhi(眞我) 2015-06-1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절시비뉴스를 보고 그저 당연히 표절했겠거니 하고 말았는데 이응준 작가의 글을 읽으니 그 정도가 심각했네요. 신경숙이 표절한 부분을 읽으니 문대성의 논문표절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탈자까지 ˝그대로˝ 붙여쓰기하는 바람에 더 들통날 수밖에 없었던 글처럼, 원서도 아닌 번역문을 갖다붙인 놀라운 무신경(숙)함.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9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뭐 그냥 내용이나 주제 표절인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100% 문장 표절인데다 다른 것도 특히 생의한가운데도 거의 100% 표절이죠... 상습범인 겁니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아예 읽은 적도 없다 ?! 꽤 건방진 반응이죠....
 
[블루레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감독, 샤를리즈 테론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 대한 시시콜콜한 잡담 : 미워도 다시 한 번

 

                                                                                    

                                                                                          막대한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간 영화는 일단 제작 단계에서부터 최고의 스텝이 붙는다.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글쟁이‘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 작가를 " 스토리 입말 " 에만 정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당대에 대한 유행에 민감하고 텍스트를 풍부하게 만드는 문학과 상징 해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직업군이며, 또한 갖추고 있어야 일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화만 가지고 승부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여러 방면의 수용자에게 지적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를 첨부해야 한다. 기획 상품이란 그런 것이다. 영화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 는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꾸민 티가 역력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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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프로이트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고,     페미니즘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영화’다. 감독은 두 가지 길‘을 열어놓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두고 페미니즘 영화이냐, 아니냐며 싸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텍스트 수용자는 평소 자신의 입장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모르는 쪽보다 아는 쪽에 대해 말하는 게 유리하니 말이다. 이 영화를 << 거대한 남근 >> 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 원초적 자궁 >> 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단 전투 트럭은 기니까 ! 프로이트 식 귀납법에 의하면 ㉠ 원숭이 똥구멍은 빨갛다 - ㉡ 사과도 빨갛다 - ㉢ 사과는 맛있다 - ㉣ 바나나도 맛있다 - ㉤ 바나나는 길다 - ㉥ 길면.......        남근 男根 이네요. 헤헤헤.  결론은 기승전- 근(根)인 셈이다. 

​

프로이트 범성론'이란  :  < ㉠ - 목록 > 에 아무리 쌈박한 오브제를 놓아도 < ㉥ - 목록 > 에 가서는 페니스가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러분이 봐도 기가 찰 노릇이니, 시대의 거성 들뢰즈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 앙띠 오이디푸스 >>에서 이렇게 말했다.  " 꿈에 막대기가 나오면 무조건 페니스라고 말해. 안 그러면 따귀를 맞을 테니깐 ! ” 프로이트 식 해석에 의하면 8기통 엔진 두 개짜리 전투 트럭은 남근’이다. 더군다나 긴 몸통 끝에 달린 둥근 유류 탱크‘는 불알’이다. 하나 더 달렸다면 완벽한 남근이 될 터인데, 프로덕션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면 너무 노골적은 디자인이라 망설였을 것이다. 지나치게 또렷한 상징'만큼 촌스러운 은유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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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를 비롯한 일행은 거대한 남근을 탈취하여 약속의 땅으로 향한다는 이야기. 강유정 평론가는 우유를 싣고 달린다는 점을 들어 " 전투 트럭을 부푼 배(임신한) 와 거대 자궁에 대한 은유 " 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면, 같은 이유로 전투 트럭이 거대하고 딱딱한 페니스라는 점을 들어 우유가 아니라 정액이라고 우겨도 될 것 같다. 부푼 배라는 해석이나 우유가 아니라 정액이라는 해석이나 도 긴 개 긴'이지 않은가.  해석에 정답은 없다. 그저 그럴싸한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전투 트럭은 싱싱한 정자가 가득 담긴 페니스-기계’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 남근 >> 은 곧 << 권력 >> 을 뜻하니, 거대 남근을 장악한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셈이다. 그들은 거대 남근 기계’를 이끌고 가스타운'에 무혈입성한다.

​

​거대 남근은 곧 반지의 제왕이요, 왕관인 셈이다. 그런데 꿀과 젖이 흐르는 거스타운을 << 자궁 >> 으로 해석해서 그럴싸한 해석이 나온다. 프로이트 이론은 아버지가 중심이 된 오이디푸스 세계’이다. 모든 것은 남근이 있는가, 없는가, 남근을 욕망하는가, 욕망하지 않는가에 달렸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여자는 페니스가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프로이트는 여자를 당최 해석이 불가능한 < nothing > 으로 정의한 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 에라이, 몰것다. 썅 ! "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점은 등장인물들이 구호처럼 외친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 We are not things.'라는 대사였다. 영화 속 여성들은 프로이트가 여성을 정의하면서 내린 < nothing > 를 < not thing > 으로 분류한 것이다.

​

이 태도는 여성은 < nothing > 이 아니라 < not  thing > 이라는 선언이다. 그것은 오이디푸스 아버지 세계를 향한 “ 빅엿 ” 이었다. 이성복 시인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 ” 오이디푸스적 남근과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바로 << 코라 >> 다. 코라는 원초적 어머니의 세계로 거대한 자궁을 뜻한다. 이 영화에서 자궁은 거스타운’이라는 동굴이다. 이 동굴에서 (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이 영화 속 거스타운은 동굴이다 ) 워보이들이 양육된다. 그들 외형이 머리털이 자라지 않고 창백하다는 점에서 탯줄에 매달린 태아'이다. 이곳은 자궁이다.  가스타운을 원초적 자궁'이라고 본다면 퓨리오사가 탈출을 시도하면서 겪게 되는 관문,  모래 폭풍은 질 구멍과 자궁목 사이에 위치한 여성의 생식 통로이다.

​

​음문을 통과해야지만 약속의 땅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약속의 땅은 이미 황무지가 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돌아왔던 코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곳이 바로 약속의 땅인 셈이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 귀태 >> 라는 말은 이 영화 설정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작명의 달인, 프로이트는 이 욕망을 “ 자궁 환상 ” 이라고 명명했다. 탁,  월한 프로이트 할아버지 !   이렇듯 이 영화는 남근적 상징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원초적 자궁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 재미있는 영화‘다. 또한 모래 폭풍 통과 장면을 관문(음문)을 통과해야지만 어른의 세계(약속의 땅)에 진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퓨리오사의 성장 영화'로 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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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주의자 정성일은 영화를 가지고 인문학적 소양을 뽐내지 말라며 사이비 영화평론가를 비판했는데, 그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이야말로 영화를 가지고 인문학적 소양을 뽐내는 대표적 평론가라고 말이다. 한국 영화를 말하면서 맥락과는 별 상관없이 프루동, 바쿠닌, 조르주 소렐을 호명하는 태도야말로 영화를 가지고 인문학적 소양을 뽐내는 대표적 평론가의 태도가 아닐까 ? 영화를 영화라는 장르 안에서만 소비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독선이다. 정성일의 저 태도가 옳다면 고다르 감독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온갖 문학적 재료'를 끌어왔으니깐 말이다.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자면 저자는 죽었다. 텍스트는 온전히 수용자의 몫이다. 수용자가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상관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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