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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변증법 - 경이로움의 징후들
프랑코 모레티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드라큘라와 메르스
자주 언급한 부분이지만 : “ 괴물 ” 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괴물 영화나 괴기 소설을 좋아한다. " 오따꾸 " 정도는 아니지만 " 3.5따꾸 " 에서 " 4따꾸 " 정도는 된다. 하지만 이 관심은 호기심과는 다르다. 호기심은 말 그대로 대상을 눈요깃감으로 보려는 취향인 반면, 관심은 나와 대상이 맺는 관계‘를 고려한 관찰이다. 관심(關心)에서 < 관 > 이 관계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내가 괴물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는 말은 곧 괴물이 사람, 사물 따위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발생하게 되는 현상에 관심이 있다는 소리’다. 일단, 괴물은 << 미지의 것 >> 를 대표한다. 그것은 본래 내부에 있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혹은 박멸하여 봉인한 것이 재생되거나).
괴물은 미래를 상징하는 기표. 반면 괴물과 싸우는 쪽은 항상 현재’다. 교통 정리‘를 하자면 괴물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는 사람과 괴물이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 싸움 구경 - 서사 > 이지만 사실은 현재와 미래가 서로 다투는 서사'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은 괴물을 통해 “ 미래가 괴물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프랑코 모레티, 공포의 변증법'에서 인용) ”을 느낀다. 그래서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다. 20세기 말, 사람들이 AIDS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원인은 AIDS를 < 바이러스 > 의 한 종류로 보지 않고 < 괴물 > 의 한 종류'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 AIDS가 창궐하는 미래 사회 " 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AIDS 환자'를 괴물로 취급한 것이다. 자기 안의 불안이 아픈 타자를 괴물로 만든다.
결국 그들은 괴물과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꼴이다. << 천국 >> 에는 괴물이 없다. 이유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 아니다, 천국에 사는 천사는 불안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괴물이 사는 곳은 << 지옥 >> 이다. 지옥은 불안 집합소‘다. 이렇듯 괴물은 현재의 불알을 먹고 산다. 아, 오타. 현재의 불안을 먹고 사는 존재’다. << 괴물 >>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드라큘라 백작이 아닐까.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드라큘라 백작은 남장을 한 여성‘이다. 그가 잠이 드는 관은 “ 나팔관 ” 이다. 또한 그가 주로 무는 목( neck)이라는 단어가 “ 자궁 ” 이란 의미도 있으니, 흡혈귀 목을 베어버리는 행위는 자궁 적출이요, 드라큘라 가슴에 말뚝을 박는 행위는 백마를 탄 왕자가 잠이 든 공주를 강간하는 서사다. 미치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라디오에서는 플라이 더 스카이의 " 가슴 아파도 " 가 흐른다. 그래도 흥얼거리지는 말자. 타인의 고통 앞에서 웃으면 안 되니깐 말이다. 비록 그가 괴물이더라도 죽어가는 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흡혈 행위는 유실된 피(월경)를 보충하려는 것이다. 이 모든 인문학적 상상을 종합하면, 그래요...... 드라큘라는 백작이 아니라 공작부인이랍니다(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은 엘리자베스 바토리‘라는 여성이었다), 라고 우기고 싶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완벽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싸한 해석만 있을 뿐이다. 드라큘라’라는 괴물이 지시하는 것은 명백하다. " 물리면 아, 파요. " 다시 말해서 드라큘라는 불가촉천민‘이다. 드라큘라는 접촉하면 안 되는, 나쁜 피를 가진, 저기 저어기 어두컴컴한 강북에서 온, 창백한 존재’다.
그에게 물리는 순간 빠르게 전염되기에 드라큘라는 격리시켜야 할 존재‘다. 드라큘라 영화가 1930년대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1930년대 대공황과 연결된다. 1930년대의 시대적 불안이 드라큘라 영화를 양산한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속 주인공은 드라큘라와 싸운 것이 아니라 시대적 불안과 싸운 것이다. 드라큘라가 외부에서 유입된 괴물이라는 측면에서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수주의의 광기와도 연결된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유령이 대륙의 피를 온통 전염시켜서 황무지로 만들 것이란 막연한 불안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1930년대 드라큘라 영화의 공포는 당시 현대인이 느꼈던 미래에 대한 공포를 다뤘다. 나는 드라큘라 서사'를 순혈주의에 대한 강박으로 이해한다.
현재, 대한민국‘을 떠도는 메르스는 드라큘라와 유사한 괴물이다. 한국인은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채널을 돌리면 메르스, 메르스, 메르스뿐이다. 이 정도면 불안이 아니라 집단 간질 사태’다. 그렇다면 공포의 원인은 메르스인가 ?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괴물은 가까운 미래가 괴물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만든 사생아‘다. 이 사생아의 아비는 현재의 불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르스 때문에 집단 간질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불안한 한국 사회가 밑바탕이 되어서 불안이 공포로, 공포가 광기로 확산된 것이다. 사회가 병들었으니 한국 사회 구성원'인 한국인은 모두 기저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다. 그렇다 보니 변형 독감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에 한국 사회가 건강한 사회였다면 지금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를 믿고, 각자 조심하면 되니깐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메르스가 자국 내에서 발생했지만 완벽한 방역에 성공했으니, 메르스는 그닥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르다.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한국인은 기저 질환을 가진 환자이니까. 메르스 환자는 현대판 드라큘라’다. 접촉하는 순간 감염된다. 하지만 그 분노를 드라큘라에게 물린 흡혈귀‘에게 화살을 돌리지는 말자. 목을 베고 말뚝을 박아야 될 대상은 흡혈귀가 아니라, 흡혈귀 우두머리인 드라큘라’다. 정부라는 이름의 드라큘라, 무능한 관료의 목을 베고 적폐에 말뚝을 박으면 된다. 우두머리가 죽으면 흡혈귀는 정상으로 복귀한다. 일단은..... 영화를 믿을 수밖에 ! 영화에서는 우두머리 드라큘라가 죽으면 감염된 흡혈귀는 모두 정상으로 복귀하니 말이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병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