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사 문화
아버지는 집안 대대로 내려왔던 족보를 귀히 여기셨다. 책을 펼치면 곰씨 가문의 창세기'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들아, 우리 곰씨 가문은 나랏 말쌈이 듕귁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하기 전부터 누대로 내려왔던 집안이란다. 천방지축 같은 오랑캐 상놈 가문과는 격이 달랐단다.
하지만 말씀과는 달리 곰씨 성의 시조가 오랑캐의 씨앗이었다는 사실을 역사 시간에 배우게 되었다. 역사책에도 나올 정도면 그 악행이 하늘을 찔렀으리라(역사책에 의하면 ●다구는 삼별초의 난을 제압했다고 한다. 특기는 아녀자 겁탈이었다고). 하, 시바 ! 이런 출생의 비밀이 있었구나. 부끄러워서 대낮에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구나. 부끄러움도 잠시, 무정부주의자인 내가 그깟 국적 가지고 절망하고 그럴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나를 향해 뼈대 없는 놈이라며 너희 몽골로 돌아가 이 색햐 _ 라고 손가락질한다면 그 손가락을 거두는 것은 온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양반 계급은 전체 인구의 5%에 지나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조선시대 지배 계급이었던 양반 사회가 붕괴되자 상놈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성을 부여받고 돈으로 족보를 샀다. 그리고 양반 가문의 문화에 속하는 제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유교 문화에 속하는 제사는 계급이 세습되는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양식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사 문화는,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적폐에 해당된다. 내가 오랑캐의 후손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제사 문화가 꼴도 보기 싫다. 전체 인구의 95%가 상놈 출신이었다면 양반 계급에게 착취당했던 옛 설움을 곱씹고 반면교사로 삼아도 모자랄 판에
양반 흉내를 내며 가부장 놀이에 열중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문헌에 의하면 제사는 주로 남성(의 노동력)이 차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변형되어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되었다. 더군다나 명절날 여성 노동의 팔 할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며느리 몫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사 문화는 계급 배반이며 반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