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다, 오늘 드디어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핏자를 먹으러 갔다.
한녀석은 - 교리에 절대 안빠지는 녀석인데, 요즘 성적때문에 걱정인지 살도 빠지고 교리도 빠지고 있다. 시험이 끝났다고 나오긴 했지만 나중에 보니 말없이 그냥 가버렸다.
그리고 또 한녀석은 집이 성당과 좀 멀어서 어쩔까.. 싶었는데, 역시나 부모님이 할머니댁에 간다고 그냥 데려가셨다. 혹시나해서 얘길꺼내봤는데, 지난 주에 미리 얘기를 해서 부모님도 오늘 피자 먹으러 가는 줄 알고 계시다고 한다. 그러니 어쩔껀가. 돈 굳었다, 생각하며 좋아하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으니 이상하지?
한녀석은 시험이 끝나니 나왔다. 먹을복은 있는 녀석인가?
그리고... 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석도 조금은 걱정이 되어 조바심내며 자꾸 시계를 본 것이었구나 싶다.
어쩐일인지 요즘 교리시간에 빠지지 않고 들어와서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무심코 그냥 넘겨버렸었다. 나의 무심함이 오늘의 결과를 초래한 걸 어쩌겠나.
사건, 아니 사건이랄 것 까지도 없다. 애들이 간식을 원했고, 견진 축하도 첫영성체 축하도 못해줬고 우리 교리반 녀석들 간식 한번 안사줘봤기에 시간을 내서 친목도모를 위해 피자를 먹으러 간 건데 부모에게 항의전화를 받았다. 꿱.
내가 생각없이 애들 끌고 간 것도 아니고, 그나마 시험기간 다 물어보고 겨우 오늘로 잡은건데 그 엄마, 흥분해서는 다음부터는 아이들 시험이 있는 경우에는 그런 걸 피해달랜다. 오늘도 성당 안보내려다가 보냈다나?
버럭 화가 치밀어오르는 걸 참고 은근히 말을 돌리는데, 그분이 똑같은 말을 서너번 되풀이하신다. 내성질에 많이 참았기에 그냥 툭 내뱉었다. 아니, 어머니 마음도 알겠지만 저 역시 아이들에게 시험기간 다 물어보고 이것저것 다 고려해서 피자를 먹으러 간 것이고 오늘 갑자기 즉흥적으로 간 것도 아니고 이미 지난 주에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얘기까지 다 했다, 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미 오전시간은 다 지났고 남은 시간만이라도 즐겁게 공부하게 하려면 애한테 뭐라 화내지 마시고 그냥 좀 다독여주시라..했지만 그분은 애한테는 이미 한바탕 하셨고 그래도 분이 안풀려 내게 전화를 하신 참인 것 같다.
그래, 내가 당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남편이 칫과 의사지만 당신은 대학교도 못간거 알고 있다. 그래서 아들을 공부에 얽매이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려하지만 그래도 당신, 그러면 안되는거야. 당신 밑에서 애가 그만큼 잘 크고 있는 것이 놀라울뿐이라구. - 내 차마 이런 말은 못한다.
아니, 내 생각이 아니라 오늘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차마 당신들, 엄마라 불리는 당신들에게 전하지 못하겠다.
아이들은 내가 절대로 부모님께 이르지 않을꺼라 믿어서인지, 너무 흥분해서인지 부모님에 대한 성토를 하는 거다. - 솔직히 중학생 꼬맹이들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부모에 대한 불만이 구체적인줄 몰랐다.
고등학교 올라가면 엄마랑 떨어져 살 수 있으니 기숙사에 들어가겠다, 정도는 정말 애교같은 발언이야. 그 와중에 한 녀석은 반드시 대학교는 서울로 간다는데, 어느날 엄마가 자기보고 '니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 가면 우리 식구 모두 서울로 이사갈까봐'라고 말해서 식겁했다더라. 그 말을 들으며 웃어야 할지... ㅉ
아, 애들이 엄청 흥분을 해댔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고 있으려니 나 역시 흥분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그 엄마의 항의전화는... 오늘 나의 하루를 망쳐놓기 딱 좋은 전화였다. 사실 병원에 있다가 전화를 받아서 괜히 아버지 간호하느라 힘든 어머니에게 짜증내고 화내버렸다. 아, 진짜 그 아줌마. 미워진다. 자기 아들이 일주일전에 피자먹으러 갈꺼라고 얘기한 걸 본인이 까먹어놓고는 아들에게 얘기도 없이 갔다고 화내고 시험이 일주일도 넘게 남았는데 준비도 하나 안했다고 조바심내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교리선생에게 시험앞둔 애들 피자나 사준다고 뭐라 항의나 하고. 세상의 엄마들이 당신같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흑일지도 몰라.
아이들이 얘기한 것들을 다 적어놓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그 중에 한가지.
잘했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모두 다르겠지만 저 스스로도 3등했다가 10등하면 그리 기분은 안좋죠. 그러니 엄마는 더 그렇겠죠. 하지만 저도 기분이 안좋은걸 왜 몰라주냐고요. 3등에서 10등으로 떨어진건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 10등이라는 걸 보면 잘한거죠. 그걸 왜 잘했다는 칭찬 한번 안해주시죠?
.......... 왜 엄마들은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몰라줄까?
오늘 녀석들에게 공부도 잘해, 운동도 잘해.. 야, 못하는게 뭐야? 응? 에이~ 짜증나~ 하며 농담을 했는데...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 그냥 그대로 칭찬해주련다. 아이들을 맘 편히 놀게 해 주고 싶지만, 아이들의 공부시간을 뺏으며 아이들을 붙잡아두는 못된 교리선생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답답해 쉽게 그러지도 못하겠다. 오늘 느낀거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을 다그치기만 하는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은건데 부모들은 그걸 모르고 애꿎은 아이들과 교리선생만 잡아 족치는(?) 중이니... 이 딜레마를 어쩌면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