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무실은 3층.
2층에서 멍때리며 딴 생각하고 올라오다가 슬리퍼가 계단에 걸리면서 넘어졌다. 순간 세상이 달라보여 잠시 여긴 어딘가 싶었지만 정신을 차리고나니 어이없었다. 아, 옷은 안찢어졌으니 다행이다 싶어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무릎아래가 좀 쓸린다. 이건 분명 멍,이다. 그리고 발가락에 작은 생채기가 나서 밴드를 붙여놨다.
겨우 이것에도 이리 아픈데.
꽃샘추위가 사그라지고 이제 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바람은 차갑고 마음이 무겁기만 한데도. 봄이다,싶다.
본당 신학생에게 선물이나 해볼까 싶어 책을 주문하고 - 곁들여 내가 볼 책을 더 많이 주문했다. 그리고 좀 아쉬워 간식을 들여다보다가 이것저것 충동적으로 마구 사들였다. 오랜만에 맛있는 홍차와 원두를 살까 들여다보기 시작할즈음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간병인에게 맘 상해 - 몸을 가누지 못해 간병인을 쓰는건데 간호를 하기 위해 온 간병인이 무시를 한댄다. 의식이 말짱한 어머니에게 그리할진대 의식없는 환자에게 어떻게 할지... 세상 참 무섭다. 아무튼, 그렇게 속터지고 화나는 시간을 보내다 간병인을 바꿨다. 그래서 또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사무실 일들이 하나씩 마무리 되면서 책상의 공간이 생겨나는 것처럼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 그래도 다음주까지는 조금 밀려있는 일들이 있으니 맘 놓고 있으면 안되지.
그런데 이 순간에 들이닥치는 충동구매의 욕구. 어쩔건가.
봄이라 겨울내 신고다니던 운동화도 좀 산뜻하게 바꿔야할테고, 해마다 낡고 유행지난 옷만 입어댔는데 올해는 옷도 좀 사고 싶고, 봄이 되었으니 허브도 키우고 싶고 겨우내 신경못써 얼려죽인 바이올렛들을 대신할 꽃화분도 좀 있어야할 것 같고....
아, 근데 간병비를 내쳐야 한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다가 멈칫한다. 끌어모아서 간병비 주고 나면 어떻게 되나.... 궁리하다가 모든 걸 월급날 뒤로 미뤄버린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충동구매의 욕구해소는는 어쩔수없이 책, 또 책이다.
때마침 미미여사의 신간소식을 친절하신 알라딘 알림메일이 알려주신다. 안그래도 요즘 영화 화차로 인기몰이중이신데.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도...
군사기지 하나를 위해 제주의 역사와도 같은 구럼비를 파괴하고 우리땅을 전쟁의 전초지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 무슨 미친짓인가.
인문학책을 들여다보다가 잠들었다. 아니, 그러고보니 정말 봄인가보다. 점심을 가득 먹고 졸다가 손등에 책 자국까지 내며 십여분 잠들었다,가 깼다. 새벽에 일어나 두어시간 책을 읽다보니 잠이 좀 모자라기도 했지만 오전엔 넘어져서 멍때리고 지금은 졸다 깨서 멍때리고 있다. 아, 오늘 왜 이러냐. 몸도 으슬으슬 추운게.... ㅉ

받고 싶은 소박한 선물,이 뭐냐는 물음에 일년여행 이라고 답했다. 일년여행이 소박한 선물이 될 수 있냐는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소박함과 간절함과 원대함의 차이는 뭔가.
일년여행이 안된다면 이 책 한 권이라도....
주인공 겐은 한자로 元이라고 쓴다. 원소의 원, 원기의 원, 인간의 근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맨발'은 맨발로 원자폭탄이 휩쓸고 간 대지를 굳세게 밟고 다닌다는 이미지로, 두 번 다시 전쟁과 핵무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아 [맨발의 겐]으로 결정한 것이다. 주인공 겐은 본인의 분신이고, 가정 구성도 모두 사실이다. 본서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은 모두 내가 히로시마에서 체험하거나 견문하여 기억해두고 있던 것을 근거로 했다.
인간이란 어리석게도 인종편견과 종교분쟁으로, 또 무기를 양산하는 죽음의 상인들의 간계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평화에 대한 존중과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용기 - 겐의 주제인 보리는 추운 겨울 ...서릿발을 뚫고 싹을 틔우고는 사람들 발 아래 몇번이고 밟힌다. 그렇게 밟히면서도 보리는 땅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찬서리 눈바람을 견디며 반듯하게 자라 탐스런 이삭을 맺는다 - 가 독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작가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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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반딧불의 묘'라는 애니메이션을 두고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반성없이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동정을 구하는 가증스러움이 용서되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는데, 좀 놀라웠다. 일반 민중의 삶은 상관없이 일본과 독일은 가해자이고 다른 나라는 피해자인 것인가.
9.11 테러가 있고난 후, 그들에 대한 용서의 이야기를 꺼냈던 미국인은 매국노와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9.11로 인해 세상의 수많은 이슬람들은 모두 테러범으로 낙인찍혀야 정의로운 세상인 것인가.
미스터리 소설을 한꺼번에 사면 쿠폰 할인이 꽤 있는데 충동구매의 유혹이 너무 강하게 압박해오고 있다.
어제 처음으로 나뭇가지 끝마다 눈꽃처럼 매달려있는 하얀 목련 봉오리를 봤다. 병원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에 정신없이 성당을 향해 걷다가 앞서 길을 걷던 아주머니 두분이 갑자기 옆으로 가면서 '저 나무를 잘라버리면 안돼!'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얼결에 그분들의 발길을 따라 시선을 돌렸더니, 그렇게 하이얀 목련을 보게 되었다. 이파리 하나없이 메마른 가지만 뻗어 있는데 그 어데서 그리 이쁘고 탐스런 꽃이 피어나는지....
아니, 근데 나무를 보듬으면서 잘라버리면 안된다는 소리를 들은 듯 한데 도대체 무슨 얘기였을까? 정말 그 탐스런 목련나무를 잘라버리려는 음모가 있는 것이었을까?
골목마다 아이들이 공을 차며 뛰어노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맛있는 저녁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하고, 담장너머로 이쁜 꽃망울들이 터지며 눈과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그런 옛 풍경이 그리워진다. 그때는 정말 '우리 동네'라는 말이 입에 딱 달라붙었었는데.....
언젠가 더블린 사람들을 들고 아일랜드에 가리라,는 소망을 안고 있었는데 이미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그 자취를 찾아 더블린을 찾아간 작가가 있었네.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