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사랑 이야기>
이런 상투적인 제목의 홍보용 CD가 있었다.
이문세의 노래가 한참 유행할 때였다.
그 때가 언제였는지, 중학교 때였는지 아님 고등학교 때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그 CD가 라디오 드라마 같았고,
성우의 목소리는 아주 인위적이었으며,
대사들은 아주 상투적이고 닭살스러웠다는 기억만이 남는다.

삼성플라자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그 CD는
<태평로 사랑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한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만나 커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들고 그 중간중간에 그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들을 끼어 넣었다.

그걸로 어떻게 홍보를 하냐구?
그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장소가 모두 삼성플라자 안에 있는 식당들, 서점, 음반가게 등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 길에
매일 매일 1년 넘게 보아온 노숙자 아저씨를 보면서
<태평로 노숙자 이야기> 이런 허접한 또는 너무도 현실적인 "제목"이 생각났다.
그 아저씨에 대한 짧은 글을 써보리라 생각했다.

태평로란 어떤 곳인가?
삼성본관, 삼성생명 빌딩, 신한은행 본관이 있는
소위 엘리트 회사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서울역과 시청역은 한 정거장 차이지만,
이 두 역의 분위기는 굉장히 다르다.
서울역에는 노숙자가 셀 수 없이 많지만,
태평로 지하도에는 노숙자가 몇 되지 않는다.

내가 매일 보는 <태평로 노숙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침 마다 태평로 지하도에서 신문지도 깔지 않고 자고 있다.
서울역의 다른 노숙자들은 두꺼운 라면박스를 몇 겹으로 깔고,
적어도 신문지는 깔고 나름대로 침상의 기본적인 구도를 갖추고 잔다.
요즘엔 이불을 덮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태평로 아저씨는 그냥 맨 바닥에 쪼그려 누워 있다.
그 아저씨는 1년 내내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까만 파카에 까만 바지.
쪄 죽을 것 같은 여름에도, 얼어 죽을 것 같은 겨울에도 똑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파카 속에는 난닝구 하나 없이 맨 살이 보인다.

8월의 가장 더웠던 날,
버스 정류장까지의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숨이 턱턱 막히던 날,
그 아저씨는 파카를 입고 왕뚜껑을 먹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아무런 표정 없이 열심히 왕뚜껑을 먹고 있는데,
그 아저씨를 바라 보는 내가 더 더운 것 같았다.

퇴근할 때도 맨날 그 아저씨를 본다.
그 아저씨는 그냥 천천히 걷고 있다.
머리는 나만큼이나 길고,
검은 머리 반 새치(흰 머리?) 반인 아저씨의 머리는
산발 그 자체이다.

그 아저씨는 하루 종일 뭘 할까?
예전에는 그런 생각도 해 봤는데,
지금은 매일 지나가는 버스를 보는 것처럼
그 아저씨는 내게 익숙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아저씨의 하루 일과가 다시금 궁금했다.
그 아저씨는 내가 퇴근할 때 까지 하루 종일 뭘 할까?
그 아저씨는 구걸도 하지 않는다.
다른 노숙자들처럼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시비도 걸지 않는다.

그 아저씨는 무슨 돈으로 왕뚜껑을 먹고
매일 매일의 시간을 견딜 만큼의 식량을 얻을까?
그 아저씨는 덥지 않을까?
그 아저씨는 언제부터 노숙자가 되었을까?
그 아저씨는 가족이 없을까? 등등.

태평로 노숙자는
번듯한 양복을 입은 허울 좋은 회사원들 속에
오늘도 까만 파카를 입고 태평로를 느릿느릿 걷고 있다.

2004년 9월 추석을 앞둔
<태평로 노숙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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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모놀로그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한 개인의 용기가,
한 개인의 열정이,
한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사회적 터부로 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Eve Ensler.
한 여자의 용기와 열정과 노력이
전 세계의 수많은 여자들에게 울림과 에너지를 주었다.

여자들 스스로가 부끄러워 하며 "거기", "아래"라 부르던,
남자들에 의해 온갖 비속어로 불리던
여자의 성기를 제 이름을 찾아 불리게 했다.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착취 당하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소외 받은 여자들의 입을 열게 했고,
자신의 몸을 외면하고 열등하게 여기고 있는 수많은 여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게끔 넘치는 에너지를 나눠 주었다.

이 책은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조차
출판을 번번히 거절 당하다가 용기있는 출판사에 의해서
힘들게 세상에 나왔다.
여자들의 솔직함은 세상 어디서나 음란하고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나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개인의 용기와 솔직함이 얼마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느꼈다.

글을 쓰려는 나에게 어떤 "소명의식"을 느끼게 한다.
작가가 가져야 할 "용기"에 대해서....

한 편의 드라마가, 영화가, 연극이,
한 권의 책이, 일간지 칼럼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작가는 정직해야 한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보기 싫은 것도,두려운 것도 고개 돌리지 말고 똑바로 봐야 한다.
그것이 작가의 소명이다.

Eve Ensler.
이 용기 있는 여자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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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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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파울로 코엘료/이수은 옮김/문학동네)를 읽다.

역자 후기까지 다 합쳐서 293page.
책 크기도 <연금술사>랑 똑 같은 작은 책이다.
얇고 작은 양장본.

그런데...
이 책 읽는데 일주일 걸렸다.

물론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카페에 앉아서 또는 자기 전 침대에서 작정하고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출퇴근 할때 오고 가며 버스에서 읽었다.

지난 한주, 나의 컨디션은 거의 최악이었다.
항상 피곤했고 아침에 못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출근한 적도 몇번 있다.

하지만...
이런 얇은 책을 읽는데 일.주.일은 너무 했다.
사실 이 책은... 재미있지는 않다.
평론가들한테 인정 받지 못하더라도
독자들을 이야기에 쏙 빠져버리게 하는,
내려야 할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쳐 버리게 만드는
그런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다.

뭐 그렇다고 아주 철학적이나 어려운 소설도 아니다.
각주가 많이 붙은 소설도 아니고,등장 인물이 많아서 이름이 헛갈리는 소설도 아니다.

이상하게 이 책에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잔뜩 지쳐버린 내 컨디션 탓을 해야 할지,
이야기꾼으로서의 코엘료를 원망해야 할지....

사실 줄거리만으로 코엘료의 소설들을 읽으면 실망하기에 딱 좋다.
코엘료는 소설가라기 보다 맑은 영성을 가진 수행자에 가까운 것 같다. 코엘료의 소설은 강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읽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지만, 코엘료의 소설은 세련되지 못하다. 촌스럽기까지 하다.
소설적 기교도 떨어지고, 너무 동화적이고,줄거리만 간추려 얘기하면 상투적이기 까지 하다.
그래서 코엘료의 소설들을 읽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코엘료가 좋다.
코엘료의 소설을 읽으면 에너지가 느껴진다.
살짝 설레인다.
사랑을 하고 싶다.

코엘료의 소설은 선동적이다. 무슨 말이냐구?
혁명의 노래 이런거 들으면 가슴이 마구 뛰는 것 처럼,
"사랑의 힘"과 "자아의 발견"을 외치고 또 외치는 코엘료는
읽는 이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그래서 코엘료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골치 아픈 세상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얻고 싶어한다.
수많은 회사원들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우리팀 사람들의 대부분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읽는다.
가끔씩은 그런 희망 한마디에 허기진 우리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좋은 말, 힘이 되는 말 한마디에 허기졌으면
그런 단체메일까지 읽어야 할까?
신문을 읽듯이 획일적으로.

코엘료의 책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는건지,
베스트셀러를 만들려고 의도하고 희망을 세뇌시키는 글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파울료의 소설이 좋다.
기대고 싶다.

이 책의 뒷표지에 있는 <리르>프랑스의 평을 보자.

"이 책을 통해 코엘료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위험을 감수하고,도전을 받아들이고,사랑을 믿고,삶의 신비 앞에서 날마다 경탄할 것.그 대답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삶의 신비 앞에서 날마나 경탄할 것!

<연금술사>랑 같은 주제다.
파울료가 말하는 그 위대한 사랑을 해 보고 싶다.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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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5-01-23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코엘료 소설은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개인적으로는 코엘료의 소설이 마구 좋아지지는 않지만, 아무튼 지금 시류는 코엘료의 소설이 맞겠다 싶었어요. 이 소설, 저도 쉽게 읽혀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코엘료답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건 인상적이었어요. 수선님의 리뷰, 무척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
 
살에게 말을 걸어봐
이유명호 지음 / 이프(if)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살에게 말을 걸어봐>(이유명호 지음/이프)를 읽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을 읽고, 이유명호 선생님의 다른 저서인 <살에게 말을 걸어봐>를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꽃피는 자궁>은 여자로서의 "생물학적 자긍심"을 일깨운 책이었다. 내 몸에 대한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을 깨닫고, 또 반성하고...

이유명호 선생님이 쓴 다이어트 책이라면,
병원 광고 전단지와 다를바 없는 이왕림 박사의 책이나
TV에 자주 나오는 반연예인 의사들의 책들과는 확실히 다를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예감, 나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살에게 말을 걸어봐>는 "한의사 이유명호의 몸을 살리는 다이어트 자습서"라는 책표지의 문장대로, 트렌드를 따라 가기 위한 억지스런 노력이 아니라,
몸을 살리기 위한, 건강하고 행복해 지기 위한 "살풀이" 자습서다.
이유명호 선생님 같은 의사들이 많으면, 보다 건강한 세상이 될거다.의사들이 지금처럼 부자는 아니겠지만...

지방분해침 놓고, 살빠지는 보약 팔고, 공부해야 할 시간에 기발한 마케팅 전략을 구상해서 환자를 낚는 의사들...
"비만클리닉"을 전업으로 패키지 상품까지 팔아가며,
웬만한 여자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살빼준다고 받는 의사들....
환자들이 날씬해 지는거 보며 보람을 느낀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근본적인 생활 패턴을 개선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환자들에게
주사 놓고 약 먹이고 지방분해침에 전기마사지 까지 해주고
요요현상이 일어나서 다시 찾아 오는 환자들에게 세일까지 해주어야 할까?

"다이어트"는 생활습관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거다.
수동적인 자세로,
먹던대로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제3자의 물리적인 힘으로 살이 빠지기를 바라면 안된다.
그건 자기 몸에게 미안한 일이고, 자존심 없는 일이다.

또한, 살을 혐오하고 무조건 몸에서 떼버리려고 강박관념을 갖고 덤비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살도 내 몸의 일부다.
왜 살이 쪘는지,살과 대화를 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신체 부위 하나하나와 대화를 해 보고,
자신의 생활 습관을 돌이켜 보고,
자신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이유명호 선생님의 글은 대단히 "감정적"이라,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마치 옆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더 자극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라면"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라면!!!!!!
( 난 라면을 정말 좋아한다. 부대찌개도 라면 때문에 먹는다.
그리고 분식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라볶기다.김치찌개에도 라면사리를 넣어 달라고 한다.)

이 책의 "독이 되는 음식" 을 보면 기름,설탕,밀가루 등과 함께
"라면"이 등장한다.

라면-몸이 쓰레기통인가(p128)

라면의 가장 큰 문제는 몸과 환경에 남기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라면에 포함된 정제소금이 보통 6g(세계보건기구,하루 섭취량을 8~10g으로 제한),스프에 들어 있는 조미료가2g(세계보건기구,하루 3~5g으로 제한)이나 밤에 자기 전에 먹었다간 물이 먹고 싶어서 난리가 난다.우리 몸이 짜서 몸부림인데 환경은 괜찮겠는가.그럴 리 없지.먹다 남긴 라면국물,아무렇지도 않게 버리지만 그걸 정화하려면 욕조 물 하나 가들 들이부어도 모자랄 지경이다.또 면을 튀길 떄 쓴 기름도 포화지방산이 고기기름과 다를 게 없는 팜유 아니던가.(라면 한봉지는 65g의 살)

나 라면 먹고 국물 맨날 남긴다.그것도 거의.
휴가 때 황용사에 다녀 왔더니, 물이 얼마나 귀한지 알겠다.
라면 국물 버린거 정화하려고, 욕조 가득한 물이 있어야 하다니...
못할 짓이다. 치즈라면, 떡라면 등 내가 라면을 30년간 수도 없이 많이 먹었으니, 나는 대온천탕 수준의 물을 낭비한 셈이다.
몸에 좋지도 않은 라면을 먹지 말자!!!

다이어트에는 왕도가 없다.
긍정적인 생활습관을 갖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
절제할 줄 알기,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알기.

누가 비싼 한약을 먹고 살을 엄청 뻈다더라,
누가 장세척을 하고 100년된 살이 쏙 빠졌다더라,
누가 한달 월급 다 주고 경락마사지 받아서 얼굴이 반쪽이 됐다더라,
이런 말에 귀가 얇아지고, 의욕을 상실해서,
" 그래, 다이어트도 돈이 있어야 하지."
이렇게 체념하면서,
이런 스트레스로 토핑 잔뜩 얹은 피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이 책은 좋은 "자습서"가 되어 줄 것이다.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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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0-1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지금 나가서 라면 사오려고 했는데;;

바람이되다 2005-01-0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 무엇보다 작심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저두 10킬로 뺐습니다. 10킬로정도면 목둘레에서 타이어 바퀴하나 빠진것과 같습니다. ^^; 오직 살을 빼본 사람만이 다이어트의 즐거움과 건강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 외쳐봅니다. 물따로 밥따로만 해도 한달에 3킬로는 그냥 빠진다는 비밀을 슬쩍 드리며 ... 건강하시길 빕니다.

2005-08-30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강유원의  [책]은 참 여러가지로 [장정일의 독서일기]와 비교가 된다. 강유원의 "hard"한 독서일기를 읽으며, 장정일을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독서일기를 쓴다.
( 나 또한 홈피라는 나만의 장난감을 만들어놓고 허접한 독서일기를 쓴다.)
서점에는 수많은 독서일기, 넘쳐나는 책을 말하는 책들이 있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장정일의 독서일기] 같은 유명한 작가들이 쓴 독서일기 부터, [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읽기],[전작주의자의 꿈],[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대담한 책읽기] 등  다양한 저자들이 쓴 최근의 책들에 이르기 까지  서점에는 늘 새로운 얼굴의 "독서일기"가 살포시 자리를 잡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독서일기를 읽는건
그 사람의 일기를 몰래 훔쳐 보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다.

강유원의 [책]을 읽고, [장정일의 독서일기2]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난 장정일의 독서일기 1~4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강유원의
<책>에 소개된 장정일의 독서일기 2만을 다시 읽었다.)

강유원과 장정일.
두 남자의 공통점은 둘 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고,
자신의 "독서일기"를 출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서일기"가 읽는 사람들의 독서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점을 제외하고 두 남자의 공통점은....
없.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말 그대로 일기다.

예들 들어,

1.13.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간에서 카타리나 할케스의 <아들만 하느님 자식인가-여성신학개론>(분도출판사,1994)을 읽다.

4.13.
집 앞에 있는 도서대여점에서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시더 벤드에서 느린 왈츠를>(시공사,1994)빌려 와서, 단숨에 읽다.

이런 식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책을 읽었는지를 먼저 적고, 자신의 느낌을 자유롭게 써내려 간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Review"도 아니고, "서평"도 아니다.
자신이 읽은 책을 비평하거나 소개하려고 쓴 글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써내려간 "일기"다.  
 
강유원의 [책]은 서평집이다.
책을 읽고 그 한권의 책이 책값은 하는 책인지를 신랄하게 평가하고 비난한다. 어떤 서평들은 좀 너무 하다 싶을만큼 공격적이고,독설로 가득차 있다.
복거일에게 필요한건 "논술 선생님" 이란다.
정말 대단한 배짱 또는 오만이다.

강유원은 "서평가"로서의 자신의 사명에 대단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 엄청난 책임감으로 눈에 불을 켜고 책을 한줄 한줄 꼼꼼히 읽고 무섭게 날이 선 비평의 칼날을 망설임 없이 흔들어댄다.

강유원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참 슬프고 또 안타깝다.

강유원은 "책 사서 읽고 서평 쓰기"로 자신을 "차별화"한다.

그런데....
책을 사서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직업적 서평가는 아니지만 책읽고 서평 쓰는 사람들 무지하게 많다. 알라딘 서재들을 한번 방문해 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맛깔나는 글솜씨와 예리한 안목으로 서평을 쓰고 있는지....그 사람들 다 돈주고 사서 책 읽고 서평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기본적인게 자랑이 되는 세상이라니....
정말 안타깝다.

강유원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같은 엄청난 일간지의 때깔 좋은 문화부 기자도 아니고, 서평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전문 서평가도 아닌데, 책을 돈주고 사서 읽는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왜 자기가 돈주고 서평을 쓴다는걸 자랑해야 하는가?
정말이지 블랙 코미디 같은 현실이다.

장정일 같은 훌륭한 작가도 책을 사서 읽는다.
그의 독서일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집앞 도서 대여점에서 빌려 읽기도 한다.
강유원은 도대체 왜 책을 사서 본다고 잘난 척 하는가?

강유원은 말한다.

나는 서평자이면서 동시에 이 서평집의 저자다.거듭 말하거니와 이 책에 실린 글들 중에 거저 얻은 책에 대한 것은 없다.그러니 서평자로서의 기본 자세는 갖추었다고 자부한다.누가 한 권 달라고 하면 "사서 보슈"라고 대꾸하겠다.냉정한 감식안을 가진 서평자를 기대한다.

너무도 기본적인걸 대단하게 말한다.
꼭  "난 결혼하고 당신 아닌 여자하고 자본 적 한번도 없어!"하고 소리치는 남자들 처럼...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자유로운 형식의  "일기"인데 반해,
강유원의 [책]이 "서평집"이라는 기본적인 차이점 외에도
이 두 남자의 책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다.

두 남자가 읽는 책 부터가 전혀 다르다.
이 두 남자가 같은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도 절대 부딪히지 않을꺼다. 한명은 사회과학 코너에, 한명은 문학 코너에 죽치고 있을 테니까...

강유원과 장정일이 읽은 책이 얼마나 다른지 예를 들어 보자.
5권 씩만!

강유원 : 복거일 [현실과 지향],[소수를 위한 변명] 등.
            카를로스 푸엔테스 [미국은 섹스를 한다]
            노엄 촘스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모리스 버만 [미국문화의 몰락]

정정일 :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밀란 쿤데라 [느림]
            최수철 [벽화 그리는 남자]
            김형경  [세월]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내가 일부러 강유원 책에서 역사책, 논평 등 딱딱한 책들만 뽑고,
장정일 책에서 소설들만 골라 뽑은게 아니다.

실제로 이 두 남자가 읽는 책들이 이렇게 다르다.
강유원의 서평집에 소설은 다섯권 미만이고,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90% 이상이 소설이다.

<타인의 취향>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강유원과 장정일, 이 두 남자의 독서세계, 그들의 취향은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강유원은 그의 서평집 [책]에서 장정일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2](p58~60)에서 난 정말 "충격"을 받았다.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물론 내가 장정일을 사랑하는 만큼, 냉정하게 읽을 수 없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강유원의 자세도 "냉정한 감식"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강유원이 장정일에 대해
얼마나 객곽적이지 못한지,
얼마나 냉정하지 못한지,
얼마나 삐딱하게 쳐다 보고 있는지,
몇개의 예를 들어 보자.

"...놀라운 것은 장정일이 참으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다.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그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별로 어려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p58)

"...나름대로의 시각이나 이론적 줄거리 없이 촌평만 적어 놓은 것을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별로 칭찬할 만한 건 못 된다.차라리 도서목록만 한 장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장정일은 많은 분량의 책을 읽지만 그것이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 같지는 않다.다시 말해서 구슬은 많지만 그것을 꿰어서 이론적 줄거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는 듯 하다."(p59)

강유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강유원은 장정일에게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강유원이 장정일의 독서와 그의 책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대상으로 한 "비평"이 뭐가, 어떻게,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어려움이 없으니까 책을 많이 읽는다는
누가 들어도 한심한 폄하를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도대체 강유원의 수준은 댄스 가수들을 보면서
"하루 종일 먹고 하는 일이 춤추는 것 밖에 없는데 저만큼을 못쳐?"
하는 동네 아저씨와 무엇이 다른가?

타고난 몸치가 하루종일 먹고 춤만 춘다고 해서 박진영 처럼 될 수 있을까?
책만 보면 하품을 하는 졸부 아들을 몇천권 책이 있은 호화별장에 보내면 책을 한권이라도 읽을까?
제발 비난할껄 비난하자.

강유원은 말한다.
"픽션"에만 관심을 갖는 소설가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강유원에게 말해주고 싶다.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은,
지식을 쌓는데만 혈안이 된 사람은,
균형 잡힌 서평가가 될 수 었다고....

전반적으로 강유원의 글들은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덕분에 좋은 책들도 많이 알았다.

그런데...
내겐 강유원이 똘똘이 스머프 처럼 느껴진다.

나는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이 싫다.
소설은 말랑말랑한  크로상도 아니고,
인문서들을 읽으며 곁다리를 끼어 읽기에 적합한 만만한 대상도 아니다.

당대에 반짝했던 수많은 사회학 서적들이 사라졌지만,
소설은 질기게 살아 남는다.
그 강한 생명력으로....

강유원에게 소설 몇권을 보내고 싶다.
읽으려나?

수선이의 도서관

www.kleinsu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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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15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강유원이 그랬단 말이죠~흥=3=3=3

꼭꼭 2009-02-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 같은 훌륭한 작가도 책을 사서 읽는다." (글중 발췌)

장정일이 '훌륭한 작가'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시비거는게 아니라 님의 판단 기준이 궁금해섭니다.

offhego 2009-02-2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도, 장정일 스스로도 강유원의 비판을 인정합니다. (강유원의 글을 읽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장정일씨가 가장 최근에 낸 서평집이 '공부'인 것만 봐도, 그 전의 독서에 대해서 나름대로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인터뷰 등에서도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많이 했구요. 장정일을 너무 사랑하시는 나머지 장정일 스스로도 인정하는 문제를 혼자만 부인하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 없는 존경을 받지요. 그러나 시인이라면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수집가나 난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장정일씨가 직접 한 말입니다. 장정일씨도 소설만 읽는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난을 열심히 치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이죠.


p.s 하지만 장정일이 경제적 여유가 넘쳐서 그렇게 책을 읽는다는 강유원의 냉소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겠죠.

루루 2015-03-17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사서 봄을 강조하는 것은 책을 출판사에 요청해서 받아 먹은 후 주례사에 가까운 글을 쓰는 인간들을 비판하기 위함이겠지요. 님이 찔리지 않으니 해당하지 않는 분인가 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