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출근길.

평소 보다 2분 늦게 나간 대가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떠나가는 통근버스를
안타까움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 속에 보냈다.

이미 떠난 통근버스를 뒤로 하고
멍하니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
한 난폭한 버스가 전력질주를 하며 물세례를 퍼부었다.

순간 난 벙커씨유와 매연,산성비를 뒤집어 썼다.
베이지색 정장은 참혹하게 젖었고,
얼굴에 긴머리까지 다 젖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회사에 가야 하나...

꾸정물에 젖은 베이지색 정장을 보니
군데 군데 까만 알갱이 같은게 묻어 있었다.
티슈를 꺼내 옷부터 닦았다.

회사에 전화해서 하루 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10시에 연기할 수 없는 미팅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난 한기에 떨며 버스를 탔다.
7시도 되지 않았건만 좌석버스에는 빈 자리가 별로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뚱뚱한 남자는 이어폰을 낀 채 드르렁 드르렁 졸고 있었다.
다리는 어찌나 쫙 벌렸는지 내 자리의 반을 그 남자의 거대한 허벅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일상이란 왜 이렇게....왜 이렇게 구질구질할까?
구차하고 비리한 일상.

비 오는 날, 버스가 튀기는 물 한번 뒤집어 쓰고,
옆에 뚱뚱한 사람이 앉아 불편하게 앉아 있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상다반사인 데도
이상하게 서럽고, 외롭고, 서글펐다.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도.대.체, 뭘 위해서 꾸정물을 뒤집어 쓰고 아둥바둥 출근을 하고 있는거지?
7시도 안되서 버스를 가득 메운 이 많은 사람들은,
피곤에 지쳐 시체처럼 자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걸까?

출근을 해서도 우울함은 가시지 않았다.
10시 미팅을 한 바이어와 점심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더니
술기운까지 올라와 몸이 더 힘들었다.(낮술은 무섭다!)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오늘 하루 휴가를 냈다.
사유에 "몸살"이라고 썼더니 팀장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다.
대답하려 하는데, 허옇게 질린 내 얼굴을 보더니 팀장이 말했다.
" 진짜 아픈가 보네. 내일 잘 쉬어라. "

회사에서는 이제 곧 점심시간이 시작되겠지.
하루 휴가를 낸 난 아직 잠옷을 입은 채로 쇼파에 기대 끄적끄적 글을 쓴다.

내가 전업주부라면 항상 이 시간에 이렇게 집에 있을 수 있겠지.
그럼.....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모르겠다.
어쨌거나 선물 같은 오늘 하루.... 푹~쉬어야지.
밥 벌이의 구차함에 하루 휴가를 내고.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드팀전 2006-07-1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든 하루셨네요.이제는 햇빛 보고 싶은데...다음 주 초까지 기다려야 하나봐요.오늘은 밥벌이가 구차하지만 내일은 괜찮을 거에요...... 밥벌이가 힘든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의 시선을...님께도.

2006-07-1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로라 2006-07-19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고단한 아웅다웅 일상, 휴가로 멋지게 날려버리세요~ 선물같은 하루, 부럽구만유~^^

mannerist 2006-07-1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마치고 아무 일이 없어 전화해 밥 뜯고 맥주 한 잔 사드릴려했는데. 헤헷... 어렵겠네요. 푹 쉬시구요, 조만간 만나 밥벌이의 개지겨움과 살아갈 길에 대해 토론 한 번 해 봐요. ㅎㅎ

mannerist 2006-07-19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 5동 171 도로교통공단 3층 혁신평가팀 김대중. 으로 보내주세요.

고마워요. ^_^o-


잉크냄새 2006-07-1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은 가끔 소설 제목처럼 닭털같은 나날이기도 하지요.^^

조선인 2006-07-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늘 이틀 연달아 지각했습니다. 어제는 12분. 오늘은 8분. 늦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난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30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는데, 시간 못 마춘 어린이집 버스 때문에 이틀 연달아 지각했다는 것 때문에 오전 내내 속이 부글거렸다죠.

2006-07-19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6-07-19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우리 수선님 고생하셨네요. 물튀기고 지나가는 차들 나빠욧. -_-+ 힘내세요. 가끔 일상이 더 맘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죠. 그러다가도 또 조그만 일에 더 행복해질 때도 있구요. 오늘 하루 푹 쉬시고 기운 차리시길 바래요. ^^

kleinsusun 2006-07-19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감사합니다.^^ 아침이는 잘 크고 있죠?

속삭이신님, 감사합니다. 님의 문자가 큰 힘이 되었어요. 오늘 운동하고 땀 짝~빼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플로라님, 감사합니다. 근데 선물 같은 하루가 몇시간 안 남았네요. ㅠㅠ

kleinsusun 2006-07-1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매너, 맥주를 사려 했다구? 담에 꼭 사!^^

잉크님, 쌩뚱 맞게도...<닭털 같은 나날>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선인님, 진짜...속이 부글부글 거리셨겠어요. 저야 뭐 지각하면 제가 못 일어나서 그런 거지만, 억울하게 늦는 그 마음이란.... 지금은 기분 좋아지셨나요? 우리 힘내자구요!^^

속삭이신님, 오늘 하루 잘 쉬고 기분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달밤님, 근데요...."의도적"으로 물 튀게 하는 그런 차들도 있데요. 나쁘죠?
전 뚜벅이라 물을 튀게 할 수 없어요.ㅎㅎㅎ
네...이러다 또 작은 일에 행복해 질꺼예요. 그게 우리들의 일상. 일희일비!^^

2006-07-20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07-2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히 좌석에 앉아 전철 창문 너머로 물기에 젖은 초록 들판을 보면서 통근(아니, 지금은 연수중이니 통학?)할 수 있는 저는 행복한거네요. 그냥 얌전히 지금 직장에 박혀있어야겠군하는 생각이 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