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결혼하려는 이유는 사회적인 거예요.독신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더 이상 독신 여성으로 살기 불편해서죠.세 걸음에 한 번씩은 독신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편견들과 제도적 불합리함에 발이 걸리죠.그것이 사실이든 제 과민 반응이든 간에, 제가 사는 데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개선하려고요."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서 주인공 세진의 대사다. 결혼을 하려는 이유가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서도 아니고, 더 행복해 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불편"해서란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한다. 외롭거나 또는 불편해서.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30대 싱글, 그것도 여자로 살아 가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결코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화~금, 3박 4일간 신임과장 교육을 받고 어제 왔다. 교육 차수별로 인원이 다른데 이번 차수는 127명, 그 중 여자는 7명이었다. 10개 조로 나누어 분임토의를 했다. 한 조에 12~13명.

첫 날, 조별로 분임토의장에 모여 자기소개를 했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한 명이 소개를 마칠 때 마다 박수를 치고 하는 전형적인 시간이었다.내가 속한 10조는 모두 12명. 12명의 구성은?
"11명의 남자 + 1명의 여자" , " 11명의 기혼자 + 1명의 미혼자".
난...이래도 저래도, 어떻게 구분해도 완벽하게 혼자였다. 이런걸 "마이너리티", "소수자 집단" 이라고 하나?

"결혼을 안한 30대 여자"는 소수자 집단에 속한다.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또는 "더 늦기 전에 좋은 사람 만나야죠." 하는 말을 "오랜만이네요.잘 지냈어요?"하는 인사처럼 자주 들어야 한다.더 심한 경우엔 "애를 낳을 생각이면 결혼을 서둘러야죠,더 이상 늦장 부릴 여유가 없어요." 하는 주제 넘은 말까지 들어야 한다.

김형경의 소설 속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듣는 건 정말이지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다.

분임토의장에서 옆에,앞에 앉은 남자들의 넷째 손가락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눈부신 결혼반지들을 보면서 내가 외계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생김새도 다르고, 처음 지구에 와서 매 순간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외계인.가만히 있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튈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 가끔은 아줌마가 되고 싶을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같은 귀찮은 질문에 "했죠."하며 허접한 대화를 단칼에 끝내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 난 지금의 내가 좋다.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함과 외로움에 흔들릴 때도 있지만, 내가 꼭 궤도를 벗어나 떠돌고 있는 인공위성처럼 느껴져 두려울 때도 있지만, 난 지금의 내가 좋다. 가끔 주위에서 들이대는 "평균의 잣대"에 기가 죽어 가라앉기도 하지만, "의무" 보다 "꿈"에 설레여 하는 나만의 일상이 소중하다.

"소수자 집단"에 속한 다는 건 분명 불편한 일이다.스스로가 외계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한 쪽 다리가 흔들리는 테이블처럼 불안정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불편함을 개선(?)하려고 결혼하는 것도 미친 짓이다.결혼 자체가 미친 짓이라지만, 결혼을 "식스 시그마"로 착각하고 개선 활동을 하려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짓이 아닐까? 결혼은 개선활동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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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5-2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담이지만 결혼을 식스 시그마에 접목한다면 김형경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define단계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같기도 합니다.ㅎㅎ
근데, 개선활동, 식스 시그마에서 느껴지는 이 동질감이란...

hnine 2006-05-28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으로 자기 인생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결정, 개선 될 것으로 생각하는 미혼 여성들을 가끔 볼 때가 있어요. 개선이라기보다 나 자신의 '개조'를 요구할 때가 많은 것이 결혼 생활인데 말이지요.

2006-05-28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5-2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맞아요."Define"부터 다시 해야 해요.음하하하.
잉크님도 시그마 땜에 스트레스 받으세요? 전 6월말까지 완료해야 하는데, 아직 M까지 밖에 안했어요.ㅠㅠ

hnine님,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어요. 결혼을 하면 인생이 정리되어 굴러갈 것 같은....ㅎㅎㅎ 제가 아직 철이 없어요. 인생 선배로서 hnine님의 조언과 지도편달이 필요해요.^^

잉크냄새 2006-05-2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작년에 시그마 프로젝트를 수행했어요. 제가 리더였는데 리더뿐 아니라 팀원들도 웃기는 인간들이라 지도위원으로부터 시그마팀이 아니라 시트콤팀이라는 불명예를 받았죠. 막판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효과금액 부문에서는 팀원들의 교육비를 겨우 만회하는 허접한 효과를 달성해서 전사발표때 진땀 꽤나 흘렸답니다. 이제 M 단계시라면 아직도 가시밭길일텐데...힘내세요.^^

nada 2006-05-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명의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당당한 수선님이 멋져 보입니다. 제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반대였죠. 여자들만 바글바글, 남자 한두명. 것도 그리 좋진 않더라구요. 뭐든지 균형이 제일 좋은 듯해요.^^

다락방 2006-05-2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시간이 흐를수록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불편한건 사실이예요. 정말 싫어요.

kleinsusun 2006-05-28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저희는 1년에 인당 하나씩 해야 해요.ㅠㅠ
이번주 목표는 "A" 완료! 안하면 디따 볶이거든요. 6월에는 2주간 BB교육도 받는답니다. 아....시그마, 시그마! 누가 대신해 주면 좋겠어요.ㅎㅎㅎ

꽃양배추님, 전 항상 남자들만 있는 조직에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힘든 일도 많았고, 문화적 충격도 있었고...그랬죠.^^ "홍일점" 이런 말 참 듣기 싫었는데, 요즘엔 여자 후배들이 많이 들어온답니다. 주말이 끝나가는 소리가 들리네요. 월욜이 오기 전에 실컷 놀자구요. 마지막 순간까지, 아자!

다락방님, 네....뭐 "불편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예요. 주위에서 우리들의 평화를 자꾸만 깨뜨리죠. 그래도...결혼에는 결혼의 불편함이 있을꺼예요.이렇게 위로하자구요.ㅎㅎ

2006-05-28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05-2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반 회사 다닐 때 '최초의 여자**'라는 수식어가 너무 싫었다...기 보다는 부담스러웠어요. 결국 그걸 이겨내지 못했지만...

kleinsusun 2006-05-2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Briny님, 그러셨군요. 저는 아직도 "최초의 여자**"를 쭈~욱 듣고 있어요.이게 사람 엄청 부담스럽게 하는건데...그죠? 주말은 잘 보내셨어요?^^

moonnight 2006-05-2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삼십대의 독신여성. 살기 힘들죠. ^^;;;; 이런 '불편함' 때문에 결혼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또 문제겠지만요. -_-; 흐흐. 지금의 수선님이 저도 좋아용. ^^

DJ뽀스 2006-06-0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십대 독신여성으로서 100%공감합니다. 오죽하면 30대후반의 독신녀인 지인은 "대한민국사회에선 독신녀보다 이혼녀가 살기편하다"라고 하더군요. 결혼을 실패할 순 있지만 결혼을 안한건 용납하지 않는 이상한 사회, 정말 웃기네요. (스트레스 만땅입니다. ㅠ.ㅠ)

kleinsusun 2006-06-0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네...아직은 "불편함" 때문에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가 만땅! ㅎㅎㅎ

DJ뽀스님, 아.....맞아요. 결혼을 안하면 "문제 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저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답니다. ㅠㅠ

2006-06-03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