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억수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영업사원의 인격은 실적.
이번 달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하다.
아침부터 깨지고 큰소리를 들었더니, 하루 종일 긴장이 되고 몸이 힘들었다.

수경이 부부랑 약속이 있었다.
셋이서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기쁘게 만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기쁘게, 즐겁게, 여유 있게, 재미있게 만나야 하는데
하루 종일 눈치를 봤더니 기분은 축축 늘어지고 몸도 힘들었다.

수경이 한테 전화를 해서 미안하지만 약속을 연기하자고 했다.
디따 미안했지만, 만나서 축 늘어져 있는 것 보다는 낫다고 자체 판단을 했다.
(미안해, 수경아!)

그리고......우울한 기분을 달래러 가볍게 한잔 하러 갔다.
나는 럭셔리한 칵테일바 보다 오뎅바나 이자까야를 좋아한다.
오뎅이나 나베 같은 안주도 환장하게 좋아하고, 사께를 좋아한다.

아담하고 조용한 이자까야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를 고심하며 보고 있는데,
우리 앞테이블의 남녀가 하는 말이 카랑카랑 귀에 들어왔다.

안 들으려고 해도 너무 잘 들렸다.
음....애정문제를 그렇게 크게 떠들면 안 되는데....

남자는 여자를 "누나"라고 부른다.
액면상으로도 여자가 몇살 더 많아 보였다.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여자는 그 말을 듣고 큰 소리로 반응한다.
"뭐야? 미쳤어.미쳤어. 걔는 널 이용하는 거라구."
"정신 차려! 걔는 널 좋아하는게 아니라니까."
"확 깬다 깨, 그러고도 걔가 좋냐? 바보 아니야?"

여자의 반응이 격렬했다.
아무래도.....약간의 감정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여자가 후배로 보이는 남자를 좀 좋아하는 것 같기도....

남자의 문제는 이렇다.
옛날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있다.
그 옛날 여친은 유부녀다.

우리 앞테이블의 여자와 남자,
둘 다..... 좀.....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1. 왜 그 남자는 자기의 애정문제를 그렇게 미주알 고주알 다 얘기할까?
- 그 남자는 여친의 사진까지 보여 주었다.
그렇게 다 얘기하고, 사진까지 보여 주고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또, 어쨌거나 자신의 얘기를 듣는 사람이 큰소리로 자신의 여친을 비난하고 있는데
계속 듣고 있는 이유는 뭘까?

2.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까?
- 그 여자의 판단의 근거는 그 남자로부터 들은 말이 전부.
그 남자의 여친을 한번 본 적도 없고, 그 남자의 말이 전부 다 사실인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까?
- 남의 애정문제에 그렇게 직접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원망 듣게 될 수도 있는데....
- 만약 그 여자가 자신에게 고민을 말하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렇게 까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걔는 널 이용하는 거라구!" 소리까지 지르면서....

사실....나도 그 동안 연애 상담을 많이 했었는데,
어제 앞 테이블 남녀를 보니 그게 참 쓸데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보다.....
남의 일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게 느껴진다.
몸을 사리게 되는 건....나이가 든다는 걸까?
아님 삶이라는 게 그리 단순하거나 명확하지 않다는 걸 슬슬 배우게 된걸까?

만약 내가 어제 그 여자의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뭐라고 말했을까? 글쎄다....

p.s) 어제 오랜만에 깨지고 스트레스를 대용량으로 받았다.
오늘 생각해 보니....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니었는데.....

아까 필리핀에서 "dried Mango"가 배달되었다.
필리핀 출장 갔을 때, 먹으면서 계속 맛있다 그랬었는데
그걸 기억한 거래선 담당자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망고 두 상자를 보냈다.

난 씩 웃으면서 팀장님한테 말했다.
"망고 한 상자 댁에 가져가서 드시죠. 맛있어요."

나머지 한 상자는 뜯어서 팀 사람들하고 나눠 먹었다.
K과장은 맛있다고 몇 개를 연속해서 먹더니,
느끼하다고 뭐라고 한다. ㅎㅎ

이렇게 며칠 안 남은 05년이 간다.
지지고 볶고 하면서.....As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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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향 2005-12-2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술을 참 좋아하는데
이전에 '비린내나는 정종'을 마신 뒤로 정종은 안 마십니다.
'영업사원의 인격은 실적' --->오오 그렇군요.
제 인격은 '환자수' 가 될려나?

코마개 2005-12-27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비린내 나는 정종이 복껍질 태워서 넣는...그거 아닌가?
남의 애정에 간섭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입아프게 얘기 해봐야 지맘대로 할걸.(정확한 표현은 지 꼴리는 대로 할걸 뭐)
그냥 지 애정행각에 대해 말하면 조금 들어준 후 쌩뚱 맞은 표정으로 "근데?"라고 대꾸해 주면 됩니다.

moonnight 2005-12-2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수선님. 수고많으셨어요. 토닥토닥.. 망고 드시면서 툭툭 털어버리세요.
그리고 음.. 그 커플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감정이 개입된 것이 맞는 거 같네요. ^^; 후배남자는 정신적으로 어린 거 같구요. 그래요. 무슨 문제라 하더라도 오른쪽이다. 왼쪽이다. 이제는 명확하게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나 애정문제는 더. 설사 내가 이 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니. 얘기한다 해도 상대가 맘속으로 반대쪽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결국은 그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구요. 때로는 상대가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꼭 제 충고가 필요했던 것 보다는..
힘들었던 일들은 다 잊으시고, 남은 며칠 마무리 잘 하시고 해피뉴이어 ^^

BRINY 2005-12-2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인격은 애들 성적이 될라나요?
성적사정하는데, 노력상 대상자가 많아서 기쁘기도 하고, 그만큼 1학기때 바닥을 기었다는 소리가 되서 착잡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천리향 2005-12-2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재뿌시레기가 붙은 건데기가 하나 들어있긴 했었어요.
원래 그 정종은 비린내가 나는 건가보죠?
이참에...강쥐님, 안녕하세요? 첨 뵙겠습니다.

울보 2005-12-2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오늘은 기분괜찮으신거지요,
화이팅!!!!!!!!!!

플레져 2005-12-2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애정사에 관여하는 거 잘해야 본전인데...
토닥토닥. 망고드시고 남은 올해 마무리 잘 하셔요 ^^

코마개 2005-12-2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노님 방가~~추운날 그냥 데운 정종 한컵에 오뎅국물만 있으면 따땃해집니다.
데운 정종에서 올라오는 알콜냄새~~크.

끼사스 2005-12-2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쯤 되면 유사연애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

로드무비 2006-01-0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이 좋아요. 그죠?
올 한 해 모쪼록 수선님의 한 해가 되기를!^^

2006-01-0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