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난 선배 P가 신나서 떠드는 나를 보며
라디오 패널 같은 거 하면 잘하겠다...고 말했다.
술 먹다가 한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가슴이 막 설레였다. 촌스럽게.

난 사실....라디오 책 소개 프로 패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누구한테 말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무슨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이주향처럼 교수는 아니더라도 시간강사도 아니고,
하루하루 헉헉거리는 회사원 주제에 그런 기회가 있겠어? 하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꼬리를 내렸다."

- 06년 6월 10일 에세이 <6시간 동안의 수다의 향연> 中

작년 6월 10일, 그러니까 딱 1년 전에 쓴 글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난 SBC(삼성 그룹 방송)의 책 소개 코너 <즐거운 책 읽기>의 진행자다.
오늘 아침, 두 번째 방송이 나갔다.

공중파 방송은 아니지만....
꿈은 이루어진다. 비스무리 하게라도!

한 달에 한 번, 주제별 책 소개를 하고 있다.
주제 선정부터 주제에 맞는 책 선정, 책 소개까지 완결형으로!

지난 달, 첫번 째 방송은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목소리 톤도 너무 높고 안정감이 없었다.

오늘 두 번째 방송은 한결 안정감이 느껴졌다.
사무실에 앉아 내가 나오는 방송을 보고 있자니
디따 뻘쭘하면서도 매우...행복했다.
내가 상상했던 곳에 내가 있음에.

기회가 된다면
회사원들이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 아침방송(그러니까...FM 대행진 같은) 패널이 되어
회사원들의 감성과 눈높이에서 소설을 소개해 보고 싶다.
코너 제목은.... 회사원들이여, 소설을 읽자! or 회사원 감성 충전소?

사실...회사원들이, 특히 30대 이상의 남자 회사원들이
소설에서 멀어지는 데는 일간지 기자들과 문학평론가들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일간지 북섹션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매주 기자들이 모여 사전회의를 하나?
무슨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신문 마다 똑 같은 신작소설을 소개한다.
붕어빵처럼 똑같이 박혀 있는 표지 사진들!

기사들은 또 어찌나 두리뭉실하게 쓰는지...
그런 기사들을 읽으면 예전에 택시를 타면 자주 볼 수 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

회사원들이 간만에 소설 한 번 읽어보려 해도
뭘 읽어야 할지...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입사 10년, 나날이 "드라이" 해지는 자신의 감성에 덜컥 겁이 나
해외여행이라도 가듯 큰 맘 먹고 간만에 소설 한 번 읽어보려는 30대 후반 남자.
그런데...그는 알 수 없다. 뭘 읽어야 할지.

문학평론가가 말하는 "좋은" 소설이 누구에게나 좋은 소설은 아니다.
한 페이지 넘는 "묘사"가 가득한,
특별한 줄거리 없이 심리 묘사로만 가득한,
"서사 없는" 소설을 간만에 소설을 잡은 회사원이 읽는다면?
빙고! 다시는 소설 안 읽는다.

평론가들은 그런 소설에서 새로운 문제의식과 미학을 발견하지만
회사원들은 그런 소설에서 민방위 훈련 보다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느낀다.

언젠가... 금요일 아침방송 코너를 맡아
주말에 배 깔고 누워,
우울한 퇴근 길 지하철에서,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 외계인한테 납치라도 당하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을 소개하고 싶다.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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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7-06-2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지금 이 글을 다시 내년 쯤, 더 큰 꿈을 이룬 후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인연도 만나시기를......^^

비로그인 2007-06-2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수선님...
제꿈도 그렇게 이뤄지면 좋겠어요 :)

마늘빵 2007-06-2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 축하해요. 나도 이런거 하고 싶다아. 라디오 방송 듣지는 않아도 하고는 싶던데. 잠시 라디오PD를 꿈꿔본 적이 있어요. :)

드팀전 2007-06-2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섭외 들어오겠군요.^^ ...이런 게스트를 찾을 때가 있을 겁니다.
갑자기 생각이나서 S그룹 있는 친구에게"야 너 혹시 화학 쪽에 있는 성과장 아냐?"물어더니..
그친구가 그러네요.."어..책 좀 읽는 성과장...직접은 모르고 그냥 알아" 이러네요.^^

이게다예요 2007-06-2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나중엔 책 고르느라 스트레스도 좀 받고. 하긴 저는 너무 정신없는 틈에 맡겨진 일이라 더 그랬기도 했지만요.
아무튼 꿈이셨다니, 멋지게 해 내세요! 정말 적성에 딱 맞게, 잘 하실거 같아요. ^^

stella.K 2007-06-2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꿈은 이루어지죠. 축하해요. 정말 수선님은 방송 진행 잘 하실거 같아요. 기회 있으면 방송 내용 좀 올려 주세요. 수선님 목소리 좀 들어 보게.^^

BRINY 2007-06-2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셨다니 좋으네요. 축하드려요~

2007-06-22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7-06-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감사합니다.^^ <밀양>에서 교회 주차 안내하면서 싱글벙글거리는 종찬 같은 남자 만나고 싶어요. 꿈은 이루어진다! 호홋

체셔고양이님, 님의 꿈이 꼬~옥 이루어질꺼예요. 홧팅^^

아프님, 저도 대학4학년 때...라디오 PD 시험쳤다 떨어진 적 있어요. ㅋㅋ

드팀전님, 친구분이 저를 안다구요? 쑥스럽네요.^^

이게 다예요님, 벌써...다음달 주제를 뭘로 할지, 어떤 책을 고를지 걱정이 되요.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려요.^^

stella님, 감사합니다.^^ 동영상을 어떻게 올리는지 몰라서...ㅋㅋ

BRINY님, 감사합니당^^

속삭이신님, 저는 그런 소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만족을...^^
암튼....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