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거울을 보다 혼잣말을 했다.
"What are you doing?"

맨날, 허구한 날,
바쁘긴 한데, 그 누구보다 바쁘긴 한데,
도대체 뭘하고 있는거지?

"No achievement, but busy!"
도대체...뭘 한다고 이렇게 바쁜거지?
차라리...잠이나 푹~ 자지!
맨날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 도대체 뭘하고 있는거지?

어제 나의 주치의이자 멘토,코치인 S선생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민망하게도...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선씨는 참...대단해요.
회사 하나만 다녀도 힘들텐데...다른 데도 아니고 삼성에서 말이예
요.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는 걸 보면...수선씨는 참 에너지 넘치
는 사람이예요."

그 순간.... 또 다시 회의가 밀려왔다.
도대체....왜 바쁜거지? 뭘 위해서? For what?

차라리...골프 연습장에라도 다니면서 바쁘다면,
퇴근 후 경영대학원이라도 다니면서 바쁘다면,
내 나이 평균의 다른 여자들처럼 일과 가사를 병행하느라 바쁘다면,
나름대로 "생산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도대체...난 왜 바쁜거지?
나의 방향성 없는 독서와 끄적거리는 잡문들은
도대체...무슨 의미가 있는거지?
왜 난 이렇게 돈도 안되고, 생산성 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거지?

얼마 전, 한겨레 신문 연재 시리즈 <한국의 글쟁이들> 11편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씨"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서 평생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남들과 뭔가 달라져야겠어서 향후 좌표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중간’을 골랐어요. 학자가 할 수 없고 기자가 할 수 없는 것, 그걸 하려고 한 거죠.”

공병호는 진정...."포지셔닝"의 대가다!
공병호 본인 조차도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주위의 반응을 인정한다.

“글쓰기는 골프와 비슷해요. 너무 잘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땅을 때리기 쉽습니다. 제 글쓰기 원칙이 있다면 대화하듯 편안하게 풀자는 거에요. 책이 무게가 떨어진다고 비난해도 상관없어요. 그런 비난을 두려워하는 순간 책은 나올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아....평소 싫어했던, 더 나아가 은근히 경멸까지 했던
공병호에게 경외심과 존경이 마구 치솟았다.
공병호 같은 포지셔닝의 대가를 투입했다면
노란색 콜라 콤비콜라도, 콜라 해방 815콜라도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의 영역을 찾지 못한다면,
허접한 개인적 감상이 뭉개뭉개 피어나는 잡문들은
더 이상....쓰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얼마 전, 이런 제의를 받았다.
<톡톡 무역 영어>(가제)를 쓸 생각이 없냐고...

아.....슬펐다.
2년간 노력했던, 잠정적 유보에서 때려 치기 단계에 접어든 에세이집,
여름휴가에 일렁거리는 파도가 있는 해변은 커녕
한강 고수부지도 한번 못가보고 쓴 허접한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그런데...그런데...
현실적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읽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건,
<톡톡 무역 영어> 같은 게 아닐까?
아니면 처세술책을 번역하거나?

도대체 난....뭘해야 되는걸까?
부질 없는 개인적 욕망을 다 접고서 회사일에 올인?
사주 cafe 아저씨 말처럼 눈을 질끈 감고 능력있는 남자와 결혼?
그래서 출산율 저하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조국에 기여?
<톡톡 무역 영어>를 집필해서 개인의 지식을 사회에 환원?
그것도 아니면.....그냥 조용히 살기?

모르겠다. 도대체 뭘해야 될지...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난 투명인간이 된다.
아파트 값이 두배로 뛰고,
모대학의 부속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어떤 노하우가 필요하며,
아싸리 어렸을 때 중국에 유학 보내는 게 낫다....는 등등
그녀들의 청산유수 같은 말들을 들으며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아파트 값이 몇 "억"이 올랐다고 신나서 떠들어 대면서도
돈 낼 때가 되면 왜 나를 쳐다 보는지?

도대체 난....뭘해야 되는 걸까?

"그대가 이 세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노래처럼
글쓰기와 문학에 대한 나의 짝사랑을 겸허히 받아 들이기?

아....머리가 아파.
When will I accept w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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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11-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값이 몇 "억"이 올랐다고 신나서 떠들어 대면서도 돈 낼 때가 되면 왜 나를 쳐다 보는지? --> ^^;;

마태우스 2006-11-1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 이외에는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취미활동도 방향성이 있어야 할까 싶어요. 전 글쓰기와 독서가 좋고, 테니스 치는 게 좋고, 미녀 만나서 수다떠는 게 좋아서 그렇게 삽니다. 음, 그렇다면 미녀에 대한 방향성이 있는 건가^^ 전 님이 방문자가 200명을 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만 해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2006-11-19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6-11-19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결혼한 친구들과는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아요. 만나면 함께 할 화제가 없더라구요. -_ㅠ '톡톡무영영어'같은 책을 쓰시는 것도 보통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훌륭한 일이신데요. 에세이가 잠깐 막혔다 싶으시다면 말씀하신 대로 수선님의 지식을 풀어주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수선님 그 모습 그대로가 귀중한 보물인걸요. ^^

프레이야 2006-11-1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셀프포지셔닝, 이건 저에게도 늘 어려운 문제에요. 공병호님의 말에 존경스러워진다는 느낌, 공감됩니다. 그런 글쓰기가 요즘 트랜드이긴 한데 이도저도 아니면서 선뜻 동의하는 것도 잘 안 되는 어정쩡한 저의 포지셔닝이 불만스러워요.
클라인수선님, 모쪼록 잘 이겨내시고 위치선정 잘 하시기 바래요. 근데 중요한 건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을 님이란 거에요. 톡톡이든 에세이든,, 위치는 바꾸어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구요. 힘내세요^^

글샘 2006-11-1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 생각엔 돈 내라고 쳐다보는 것 같네요. ㅋㅋ
꼭 사람이 훌륭해야 되는 건 아니지 않나요? ㅎㅎㅎ
수선씨는 다른 사람, 다른 좌표에 의해 '거기 계신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선씨가 계신 곳이 수선씨의 좌푠거죠.
누구는 열기구를 타고 세상 모든 지도를 다 내려다 본대요. 그러다가 그런다죠? 우리가 어디에 있지? 하고...
좌표를 생각하시는 거 보니, 조금, 아주 조금 외로우신가봐요. ^^
음, 가을로 너머 겨울이 다가오는데,
그거 아세요? 남자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바로 위에 쓰신 그런 글이란 거.
삼성에 다니면서, No achievement...운운... ㅋㅋ
수선님은 그런 위치에 계신 겁니다. 톡무영을 맘만 먹으면 쓸 수 있는 자리에...
그리고 집이 억대가 오른 친구를 가진 자리. 그 친구에게 밥값을 내는 자리.
무엇보다, 마태우스님이 저렇게 멋진 댓글을 올리는 그런 자리 말이죠. ㅋㅋ
와인 한 잔 드시고, 푹 주무시길...

2006-11-20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6-11-20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이곳에다 이렇게 고민을 남기면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수선님의 편이 되어주잖아요. 그거면 퍽 괜찮게 살아온거 아닌가요? 저는 수선님이 아주 근사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걸요 :)

2006-11-20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로라 2006-11-2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허접하다 자평하신) 수선님 글보면서 무척 용기와 위안을 얻을 때가 많은데... 모자란 제 생각들을 추어올리게 될때도 많고요. ㅎㅎ 저야말로 매일매일 너 뭐하고 있는거니? 하고 묻곤해요. 언제나 신통찮은 답들만 떠오르지만요...
어제 본 영화에서 짝사랑은 그 사랑대로의 의미와 완성도가 있다는 말이 생각나요. (이렇게 어줍잖은 댓글을 달려던게 아니었는데..>,<), 수선님의 글쓰기와 문학에 대한 짝사랑이 곧 열렬한 사랑으로 거듭날거예요. ^^

2006-11-20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11-2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결혼한 친구들은 왜 다들 그런 이야길 하죠?? 이상하네... ^^;

2006-11-21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23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