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있게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이다. 그래 다 좋다 그래서 어쩌란 이야기냐~~  

아마도 이 책을 커다란 범주로 나누면 행복론에 해당할 것이고, 좀더 전문성에 방점을 찍어 준다면 문화심리학에 대한 재미있는 강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여느 자기개발서와는 틀리게 인간의 개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느끼는 여러가지 한계가 문화적 산물임을 깨닫고 그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진단하고 있다. 나름 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화심리적 비판은 나름 인정할 만한 것도 있다.   

문제는 현상에 대한 분석은 날카로우나 그것을 타파할 본질에 대한 대안은 영 못미덥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자신이 즐기는 일을 찾고 자신을 분석할 수도 있어야 하며, 노는 일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이야기야 뻔한 이야기일테고 문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회적, 심리적 억압이 존재한다는 것이 것인데 그것에 대한 해결은 결국 개인으로 귀결된다는 것에 있다.  

물론 사회과학책이 아니니 만큼 그리고 가벼운 에세이니 만큼 그 문화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한 치말한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느정도 먹고 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좀 더 세련되게 인생을 즐기라고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다른 내용이 없으니 막상 행복을 추구하려 해도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섣부른 충고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해 버린다.  

아니 어쩌면 저자의 경력이 그런지도 모르겠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세리 특강의 유명강사이자 교수인 저자가 느끼기에 이 땅의 중년들은 너무 열심히만 살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살고 나서 나머지 인생에 대한 목적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열심히 살고도 자신의 내면적 욕구를 이해하지 못해 방황하는 꽃중년들을 위로하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열심히 살고 또 살아서 자아 실현에 대한 고민은 커녕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다.  

제목 하나는 섹시하게 뽑아놨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이 도발적 제목처럼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다 거기서 거기고 아무리 바른 훈수를 두어도 인간은 어쩌면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 모르겠다. 사후적으로 아무리 심리적으로 분석을 하고 삶에 적용한다 해도 스스로 각성하고 깨닫기 전에는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나마 현실에 적용하는 심리학적 이론을 쉽게 풀어 쓴 맛이 있고,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더해 구수하게 풀어나가는 입담이 있어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생리적 거부감 비슷한 느낌을 지우기는 힘들다. 구라가 어찌나 세신지 사회주의가 멸망한 이유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회심리적 분석은 아주 쓰러질 뻔 했다. 그럼 자본주의는 재미있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은 기득권자, 중년, 남성, 정규직, 고액연봉자에게는 삶의 재미에 대한 현명한 충고와 위로를 줄수 있다는 것이고, 최대의 단점은 청년, 여성, 비정규직, 생계위험자들에게는 그냥 껌 씹어먹는 소리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골프에 대한 그 사랑은.....좀 재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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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1-03-03 09:10   좋아요 0 | URL
넘...그런가요?

양철나무꾼 2011-03-01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영 재수없었거든요.
근데 남정네들은 열광하여 읽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좀 흐르니 이런 리뷰도 올라오긴 하네요~

"그나마 현실에 적용하는 심리학적 이론을 쉽게 풀어 쓴 맛이 있고,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더해 구수하게 풀어나가는 입담이 있어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생리적 거부감 비슷한 느낌을 지우기는 힘들다."
제 느낌이 딱 이랬거든요~^^

머큐리 2011-03-03 09:16   좋아요 0 | URL
위로받고 싶은 중년들이 많은거 같기는 한데... 그래서 더 어려운게 아닐까 해요..^^ 위로받고는 싶지만 위로해주는 데가 없으니 자족적 만족이라도 구가해야죠..ㅎㅎ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고 보니 한국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추리소설을 읽어도 주로 일본 작품이거나 미국 작품이었던게 아닌가? 가끔 유럽 작품들도 있고....  

현직 판사가 추리소설을 썼다. '어둠의 변호사'라는 근사한 캐릭터를 들고서 말이다. 사건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창의적인 범죄자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다. 항상 선을 추구하기 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로 법규범의 준수나 범죄자 처벌보다는 순수하게 범죄자와 대결을 하기 원하는 인물이라고 할까?  

가끔, 선을 행하는 악에 대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외국 작품에서 발견하는데, 오츠아이의 '암흑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덱스터'시리즈의 덱스터 같은 사이코패스와 비슷한 캐릭터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의 규범을 일탈한 '어둠의 변호사'가 어디까지 진보할지 궁금해 진다. 지금 상태로 보면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삐둘어진 캐릭터 같다.   

밀실 살인의 트릭에 용의자들의 완벽한 알리바이.... 살인이 일어날 동기도 배경도 불명확한 사건 속으로 '어둠의 변호사'가 하얗게 웃으면서 들어가는데....

일단 추리소설답게 재미있다. 가독력이 있고 논리적인 추리기법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사건이 너무 꽉 짜여진 틀대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고, 즉 이야기의 구성자체가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구성으로 너무 흘러들어가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개성을 풍부화 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고 논리의 전개에 엇나가는 우연적 요소들이 부족해서 감탄하면서도 무언가 모르는 아쉬움을 남기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성장이 기대되는 시리즈로 성장할 듯 하다. 어쩌면 즐겨 찾는 장르소설 분야에 참신한 신성이 나타난 듯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1권보다 2권을 먼저 읽은 꼴이네...

그런데... 제목인 '라 트리비아타의 초상'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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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24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추리 소설 별 네개? 호홋.
생각해보니 저는 한국 추리 소설은 한번도 못 읽어봤어요...
머큐리님의 페이퍼를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봄이예요, 따스해서 넘넘 좋아요~

머큐리 2011-02-24 08:32   좋아요 0 | URL
동장군의 마지막 발악이 어떨지 지켜보는 중입니다...그래도 포근하니까 넘 좋아요..^^
한국 추리 소설도 사랑해 줘야 할텐데..손길이 잘 가지 않아 큰일입니다..ㅎㅎ

clearever 2012-07-1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페라 '라 트리비에타'의 내용을 보시면 '초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을겁니다.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마이클 무어 감독 / 파라마운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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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들고 왔다.  

영화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전이니 이미 흘러간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야만적인 미국식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한 고발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지극히 체제 내적인 고발인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며 눈물을 보이는 미국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한계가 뚜렸하게 보인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면 미국은 철처하게 성공한 사람들을 우대하는 자본주의이다. 거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창의적으로 살아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부자들에게 갖는 선호와 혐오의 교차에 비교하면 꽤나 의아스러운 일이다. 물론 미국의 역사적 배경에 따른 감정이지만, 성실과 노력에 따른 보상에 대한 광범한 합의와 그 결과에 대한 승복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본주의가 버티고 온 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현실적 결과가 터져버렸다. 이른바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한 금융위기.... 거기에는 단순한 부도덕을 넘어선 체제의 함정이 있었다. 마이클 무어는 이것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또는 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바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좌지우지 하고 있을 때 생존에 쫒기는 사람들이 기댈수 있는 언덕은 어디에 있을까? 금융위기를 통해 기업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위기를 넘기고 무리한 금융투기를 통해 빈털털이가 되어 집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민중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 나라는 정상적인 나라인 것일까? 그리고 그 나라에서 오랫동안 신봉하는 자유, 경쟁, 선택의 가치가 사실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치이고 그 가치를 신봉하도록 교육하여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역시 마이클 무어가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웃기는 건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방법으로 금융위기를 돌파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왜곡하는 대목일 것이다. 어쩌면 사회주의란 단어는 부자에게는 허용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런 의사결정 없이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어도 자본가는 보호 받지만 노동자는 실직으로 이어진다. 자본가에게 도움이 되면 정당한 지원이고 민중에게 돌아가는 지원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는 이중 잣대는 결국 이데올로기란 힘있는 자들이 자신을 변호하는 수단이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변하하고자 하는 열망은 무엇으로 담아내야 하는가?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답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교서에 있다고 마이클 무어는 본다. 미국 역사에서 뉴딜정책을 사용하고 노동조합을 보호했던 거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의 정책이 미국에 정착되었다면 미국은 지금과 다른 사회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다. 세계를 경영하느라 군산복합이 가장 발달한 사회가 스스로를 교정하기란 쉽기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회의 토대를 이해하지 않고서 그 사회의 변화를 추정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라는 미국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이 심화되는 과정과 이에 따른 부의 재분배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신랄한 비판과 비아냥은 최고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일 뿐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죄악하고 최악의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그 다음은... 사회민주적 복지만 장착하면 그 죄악이 사라질까? 유럽처럼 자본주의를 운영한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사라질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마이클 무어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할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만 해결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가라고 요청하는 건 욕심일테니까....그리고 그 한 걸음에 대해서는 아직 어느 누구도 전망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행동한다는 것.... 그것이 유일한 수단임에 틀림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영화다.
민주주의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죽는다.....슬프지만 맞는건 맞다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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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0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1-02-22 08:36   좋아요 0 | URL
암튼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합니다..ㅋㅋ

양철나무꾼 2011-02-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죽는다면...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생물인가요?
전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란 책을 읽었는데, 연관시켜 함 생각해볼만 하네요.

봄이 오려나 봐요, 잘 지내시죠?^^


머큐리 2011-02-22 08:36   좋아요 0 | URL
그리 잘 지내고 있지는 못하지만...나름 봄을 즐기려고 노력 중입니다..^^
 
복지 국가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2
정원오 지음 / 책세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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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국가들은 적건 많건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복지국가 실험에 많은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감히 복지를 포기하겠다고 나서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없다. 다만 효율적으로 하자고 하던가.. 예산이 부족하니 맞추어서 하자고 하던가.... 이리저리 에둘러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인 복지로 돌리려고 하는 모양새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면서 복지 논쟁이 불붙는 와중에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 복지제도의 형태와 이념등을 비교적 간략하면서 충실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복지국가실험 자체가 워낙 좌와 우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실험이라 언제나 유동적이었다는 사실과 복지국가라고 해도 그 사회의 역사적 경험과 세력관계 (특히 노동계급의 조직화 정도) 에 따라 천차만별임을 알수 있다.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3가지 전재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는 국민들의 복지를 이루기 위해 국가의 헌신이 있어야 하고, 둘째, 민주적 절차가 완결되어야 하며, 세째로 복지국가를 담보할 이념정당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조건을 담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첫째 국가는 아직도 국민을 보호보다 경쟁을 더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고 (복지 논쟁에는 항상 경제 발전의 문제로 딴지를 거는 모양새를 보라) 87년 체제 이후 형식적 민주절차는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 민주적 절차는 항상 위배되고 있고 복지 얘기만 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역사적 사회적 현상은 이념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존재자체가 신기할 지경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진보정당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람살이 팍팍한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지에 대한 선호를 불러 일으켰으니 이건 거의 생존권 확보 차원의 문제가 되겠다. 복지라는 말은 좌파의 전용어도 아니고 우파의 전용어도 아니다. 오히려 좌파와 우파의 세력관계에 따라 복지라는 이름 속에서 천차만별의 제도가 시행이 된다. 우려되는 점은 우파쪽 그것도 꼴통이라는 한나라당에서 조차 복지를 들고 나올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열망이 존재하지만 그 열망에 부응할 만한 복지 프로그램은 어디서든 확고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영국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보수당을 거부하고 베버리지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겠다고 공약한 노동당을 선택한 역사적 사실을 볼때 복지에 대한 선점과 정책의 문제는 어쩌면 진보진영이 마지막으로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우파가 내용은 없어도 복지라는 프레임을 선점하고 공세적으로 정치일정을 풀어나가는 현실은 그만큼 진보진영의 힘이 약하다는 현실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어려운 정치지형에서 복지까지 꼴통들과 중도우파에게 넘겨주고 진보진영이 획득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 책에서 복지국가 유형을 3가지로 나누고 있다. '자유주의적 복지국가 모델' 이른바 영미식 모델이다. '조합주의적 복지국가 모델'  즉 독일, 프랑스식 모델이고, '사민주의적 복비국가 모델'  즉 핀란드, 스웨덴 등 노르딕 모델로 나눌수 잇다고 한다. 자유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은 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만 한시적으로 보조하는 시혜적, 선별적 요소가 강하고 당장 급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노르딕 모델은 전체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게 만드는 구조를 상정하고 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진보측이 지향하는 복지국가 모델은 노르딕 모델이 분명할진대 문제는 그 모델을 이끌고 갈 역량과 힘이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복지국가는 돈이 많이 드는 모델이고, 경제성장이 어느정도 뒷받침되지 않고는 시행하기 힘든 모델이다. 따라서 항상 예산문제로 인한 실현가능성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갱인적으로 세금제도만 투명하게 만들고 국가 예산 중 낭비적 부분에 대한 합리적 조정을 이루어내고 부자감세 등 꼴통들이 선호하는 제도를 수정한다면... 어느정도 복지국가로 들어가는 초입의 문제는 해결될 듯하다. 그리고 세금을 올려야 하면 올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복지제도하에 복지의 맛을 본 국민들이 선택할 사항이다. 조세 투명성이 강화된다면 조세 저항은 좀더 줄어들지 않을까? 

이왕 복지국가 논쟁이 붙었다면... 2가지는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야 할 듯하다. 하나는 복지는 무조건 시행해야 하는 것으로 못박는 것, 또하나는 시행되는 복지는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것. 따라서 복지에 무능하거나 보편적 복지를 거부하는 세력에게는 권력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작은 책을 읽으면서 꿈꿔본 나의 망상(?)이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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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17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겨레 신문에서 계속 복지론에 대해 특집으로 다루었어요.
그에 맞추어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복지론을 들고 나오더군요, 참 얄팍해요. ㅡㅡ^
그래서 복지라는 진정한 의미는 퇴색되고,
(공부하지 않는) 국민들은 다시 헛갈리겠죠.

자신의 권리 주장도 못 하는 우리 국민들, 너무 착하다(?) 해야 할지.
그래도 오늘 햇살 좋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머큐리님.
 
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
NHK <워킹푸어> 촬영팀 지음 / 열음사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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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왜 세계화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일본이야기인지 우리 주변의 이야기 인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세계화의 그림자는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의 고통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보다 그래도 조금은 낫다고 하는 일본 역시 빈곤의 문제는 심각한 지경이다. 그리고 그 해법을 찾아가는 논의 구조 역시 우리와 비슷하다. 문제의 근원이 같으니 해결의 방안조차 비슷한 것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냥 10년 후의 우리사회 모습이 그려진다. 보다 더 참혹하게 말이다.  

20세기를 노동의 세기라고 불린다면... 21세기도 결국 노동의 세기로 불리게 될 것이다. 오히려 자본의 고도화된 집중력은 노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규정할지도 모른다. 노동할 수 있는 인간과 노동하지도 못하는 인간... 노동하지 못하는 인간은 잉여로 규정받고 '쓰레기가 되는 삶'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쓰레기가 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을 가지지 못하면서 생존의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면... 그러한 삶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차기 대선 후보들을 이른바 '복지정책'으로 승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도 빈곤의 문제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지 않고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반증일게다. 문제는 어떤 복지를 해야 하는가이고 여기에 심각한 이념적 분열이 발생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의 생활에 기반한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포괄적으로 빈곤의 문제를 살펴본 일본의 방송은 그만큼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만, 구조적으로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반영하는가는 의문이다. 일본식 성장과 발전을 이루면서도 미국식 자본주의를 끊임없이 접목해야 했던 일본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성장은 일본식으로 했으나, 일본을 넘어 미국식 자본주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제를 보면 탈출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미 빈곤의 문제는 소수자와 약자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어 비싼 등록금을 빚으로 지고 나가야 하는 청년 실업과 지하철에서 무가지 신문을 줍기위해 뛰어 다니는 노년의 모습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고단함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순간 사회는 이들을 잉여로 루져로 판결내리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회, 노년의 삶을 돌보지 않는 사회, 대기업이 아니고는 살아남기 힘든 중소기업의 현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임금과 점점 비어지는 농촌의 모습은 무언가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은 모양새다.  

열심히... 부지런하게... 긍정적으로.... 살면 무언가 개선될 수 있고 삶의 긍지를 찾을 수 있을까?워킹푸어의 문제는 결국 구조적으로 개인의 자질과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규정된다는 것에 있고 사회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개입하지 않고 개인에게 모든 것을 미룬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죽어나는 건 개인들 밖에 없다. 하지만 그토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다면 이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빈곤과 복지, 워킹푸어의 문제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동전의 양면이고 우리의 생활과 떨어지지 않은 문제이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일상이 어느 한 순간 무너져 내리고 빈곤의 늪으로 빠지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집단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지 않는다면 사회의 통합력은 극도로 침체될 수 밖에 없으면, 그 비용 또한 고스란히 사회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부모의 연봉이 얼마냐에 따라 성적이 차이가 나는 현실을 뉴스로 전해듣고 나서... 이런 결정론적인 사회의 암울한 전망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아닐진대 이 사회는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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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2-01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일하는데 왜 주거지 마련때문에 이만큼 빚을 져야 하는지...
서민들 가용소득이 늘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을까요--

마녀고양이 2011-02-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여년 전부터 일본을 바라보고,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자고 계속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머머, 현실은. ^^

머큐리님, 즐거운 설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