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회 - 평등이라는 거짓말
대니얼 리그니 지음, 박슬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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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성경 구절 하나...

무릇 있는 자는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13장 12절)

 

세상을 살다보면 우위는 더 나은 우위를 가져오고 열위는 더 못한 열위를 가져옴으로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계속해서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이러한 현상을 '마태 효과'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위의 성경구절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회에 관통하는 '마태 효과'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물론 '마태 효과'는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다. (하긴 절대적 법칙이란게 있을 수 있을까?) 다만, 생활하면서 경향적으로 관철되는 법칙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법칙은 생활 속에서 허다하게 발견된다. 물론 개인의 경험차이로 이러한 경향을 눈치채지 못할 수는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처럼 빈부의 격차가 절대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성은 확연하다.

 

우리는 절대적 평등을 구가하진 않아도 기회의 평등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사회가 결코 불평등한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공할 기회가 있다'는 말과 '성공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는 말은 동등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 조건의 차이로 인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당장 재벌의 아들과 일반 시민은 출발 조건 부터 틀리다. 이런 점에서 평등은 한갓 신기루일 뿐이다.

 

자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는 이유도 '마태 효과' 때문이다. 일반적인 법칙적 경향성을 거스르는 이야기에는 어떤 위대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우리는 그 성공신화에 취해 이미 5년을 지긋지긋한 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것은 '마태 효과'에 대한 불철저한 대응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은 실제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유리하게 펼쳐낼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용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 졌다. 그리고 가장 환상에 들떠 있던 중산층은 가진 초기 자본에 따라 일부는 부자로 대다수는 가난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측면이 더욱 더 강화되었던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아닌가 한다. 시장의 기능에 대한 맹신이 가져온 자유주의적 경제논리는 결국 '마태 효과'의 극대화로 귀결되고 있다고 본다. 현재 나타나는 복지 담론은 결국 '마태 효과'를 줄여보자는 대중의 요구가 가시화 되면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란 말은 쓸데없는 낭비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물론 '마태 효과'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마태 효과'에 대한 견제가 없다면 사회는 결국 초기조건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기 과학자들의 명성을 조사하면서, 유명해지거나 유력한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실적이나 업적이 비슷함에서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마태 효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과학계 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경제, 심지어 정치도 동일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사회는 하나의 경향성으로 '마태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성을 조심스럽게 논의하고 다루지 않는다면 사회는 이분화되어 그 건강성을 상실할 것이다. 이 책에서 논하는 점이 바로 이 점에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마태 효과'를 바라보는 관점은 상반된다. 보수주의자의 눈에는 어느정도 불평등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마태 효과'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어느정도 불평등이 존재해도 공정사회라고 느낀다. 물론 진보주의자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부의 세습과 대물림으로 불평등이 영속화되는 점에 대해 반대할 것이다.

 

결국 어떤 태도를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현 사회의 방향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관철되는 이 법칙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결국 구성원이 해결해야 하는데... 난 뜬금없이 '계급투쟁'이란 말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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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4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TV 힐링 캠프에서 박근혜씨가 나왔어요.
우아하고 단아하고 뜻밖에도 인간적인 면모도 좀 보여주었지요. 박근혜씨를 원래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마태 효과'를 줄여보기 위해서, 사회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 개개인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선행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자존심이 낮을수록, 근거도 없이 강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며 기대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보수를 지지하든 진보를 지지하든 똑같은거 같습니다. 아무런 근거없이 무조건적인 추앙, 참 무섭더라구요. ㅠ

제 댓글이 산으로 갔습니다... ^^

머큐리 2012-01-04 17:47   좋아요 0 | URL
ㅎㅎ 어느 산으로 가셨을까? ^^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김광기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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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처럼... 호오가 엇갈리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어렷을 때.. 미국은 지구를 대표해서 나쁜 적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 였다. 그리고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고, 미국에 태어난 사람은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한 열번쯤 구한 공덕을 쌓아야 태어나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상을 심어준 것은 이 땅의 지식인들이었고 언론이었다.

 

머리 좀 굵어지고 대학에 들어간 후의 미국은 어릴적 상상을 무참하게 짓밟아 놓았다. 대한민국에 버금가는 반공의 나라에 힘없는 제3세계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당선된 정권을 뒤업는 나라...냉전시대 저강도 정책과 막강한 군사력으로 힘없는 나라들을 괴롭히는 세계의 깡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구나 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을 피로 진압한 전두환 군사정권을 용인하면서 그들의 국익을 관철하는데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제국주의의 얼굴을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강한 나라였고, 두려운 나라였으며 이 땅에서 그래도 강단있는 대통령을 뽑았다고 자부하면서도 결국 미국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는 외교를 보면서 어찌해 볼 수 없는 대상이라고 자포자기하기도 했다. 이런 미국의 전세계적인 헤게모니가 흔들거리고 있다. 그것도 가장 토대가 되는 경제적 위기에서 흔들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미국의 위기와 세계의 무질서는 역사서에 새로은 21세기 초반의 주요한 현상으로 기록될 듯 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발전 상황에서 미국처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나라가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극단적 반미주의자도 아니며, 무분별한 친미주의자도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럼? 초반 미국 유학시절에 미국의 시스템과 문화에 대해 경탄했으며, 그들이 대국을 이루고 잘 살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현상들에 대해 부러워했던 사람이었단다. 그런데... 자신의 미덕이라고 보았던 미국의 장점이 점점 쇠퇴하고 이제는 몰락의 기운이 넘실거린단다. 그래서 편하게 자신이 느낀 미국의 몰락기에 대해 서술했단다.... 굉장히 솔직한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아마 어린시절 내가 가졌던 환상과 비슷한 미국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미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계신 어른들도 많이 계시다. 더우기 종교적 열정과 겹치면 그 증상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에서 시국기도회를 하면 성조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 문화적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보여진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입장의 사람들 (자신의 계급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역시 아직까진 환상에 빠져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반미주의자들의 현실인식은 올바를까? 정확하게 답하진 못하더라도 미국에 대해 환상을 품은 이들에 비해서는 좀 더 객관에 다가서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위기는 토대의 위기다. 경제적 쇠락으로 인한 사회체제의 근본적 불안과 신뢰의 상실은 미국의 현재 위기가 단순하게 치유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이 더욱 치명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몰락의 배후에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작동이 문제가 된다.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쓰는 부채와 신뢰를 분간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공교육과 재정압박에 국가 자체가 무능력함을 노정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미국이 지금까지 행한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불러운 불신사회는 미국의 안정적 토대인 중산층를 무너뜨리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부터 기인하고 있지만, 미국의 재정위기 역시 치명적이다. 신용등급하락과 더불어 다가올 미국 재정위기의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조업이 무너지고 자체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이 가져올 위기는 어쩌면 최초로 자본의 질서를 벗어나는 기회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이책의 논지와 상관없는 나의 주관적 생각일 뿐이지만...)

 

어쩌면 이미 새천년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땐 긴가민가 했지만 이젠 좀 확연해 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대국으로서 자신의 통제권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는 이 거인의 힘은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그 파국에 함께 쓸려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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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1-02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2011년 서재의 달인 등극을 축하드려용.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
<(▶◀)>
<( = )>
<( = )>

━┛┗━

머큐리 2012-01-03 08: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도 흑룡의 해 보람찬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잉크냄새 2012-01-0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서른이 넘어서야 가면 뒤에 숨겨진 미국의 얼굴을 보게 되었네요.

머큐리 2012-01-03 18:20   좋아요 0 | URL
언제 알게되던 알게된건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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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 이른 아침부터 조그만 확성기에 마이크를 연결하고 끊임없이 주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분이 있다. 아침부터 짜증나는 이야기에 내 죄(?)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설교가 듣기 싫지만 비가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를 지키는 정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분을 볼때마다 두가지 점에서 난 고개를 갸웃한다. 첫째는 성실함이고 둘째는 굳건한 신념이다. 그 분의 부지런함은 그 신념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확신을 갖는 다는 것은쉬운일이면서 매우 까다로은 일이기 때문이다.

 

전직 검사이자 변호사인 금태섭씨의 '확신의 함정'은 쉽게 생각해 버리기엔 너무도 복잡한 사안에 대한 법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에는 쉽게 판단하고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것은 더더욱 그렇다. 생각을 쉽게 한 쪽으로 정리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여러가지 인과관계들이 꼬여있다. 그럼에도 판단을 유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땐... 최대한 논리적인 근거와 현실에 대한 사안을 가지고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최선일 것이다.

 

다만, 판단에 대한 확신은 알 수 없다. 향후에 벌어질 여러가지 일들은 어쩌면 기존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회의주의에 빠질 수는 없다. 현실에서 회의주의는 또 다른 판단의 하나일 뿐이다. 확신과 판단은 그래서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일단 가지고 있는 근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과정에서 최대한 성실해야 함을 말한다. 섣부른 확신은 어쩌면 편견의 하나 일지도 모른다. 세심하게 하나 하나 근거를 파헤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섣부른 확신을 경계해야 한다.

 

저자인 금태섭씨는 다독가다. 이 책에서 나오는 어려가지 딜레마적인 이야기들은 자신이 검사시절에 겪은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문학작품이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이를테면 '간통'에 관한 사항은 '주홍글씨'로 성범죄 예방에 관한 화학적 거세에 대한 논의에서는 '시계태엽 오렌지'로 '신성모독'에 관한 예술의 대한 논란은 '악마의 시'로 예들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부제가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때문인지 현재의 법으로 단순하게 해결될 수 없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인용하는 작품들은 다양하다. 그만큼 세상은 다양하고 그 다양한 세상을 해석하는 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음에 대해 그리고 그만큼 섣부른 확신이 위험함에 대해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다. 더우기 그가 설명하는 작품들은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듯한 의무감까지 느끼게 한다. 내용도 좋지만 2차 독서까지 감행하도록 내모는 아주 괘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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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크라운 - Larry Crown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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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의 배경에 자리잡은 차가운 미국의 현실만 보였다.  

그러니까 난 이 영화를 전혀 로맨틱하게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래리크라운(톰 행크스)과 테이노(출리아 로버츠)의 연애는 그렇고 그렇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상황에 따라 너무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잘 나가는 판매원으로 '이달의 우수사원'에 8번이나 뽑힌 래리 크라운... 그의 순탄한 직장경력도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으니 그건 다름아닌 학력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우수한 실적과 상관없이 해고되는 래리 크라운... 그 억울함을 풀기위해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까칠하지만 자신의 학문에 대한 자부심 가득한 교수 테이노를 만나는데.... 

그리고는 별 사건 사고 없이 흘러가다.... 둘이 눈이 맞아서 해피하게... 엔딩... 

오히려 이 두사람의 연애담의 그늘에 보이는 미국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범상치 않다. 그건 실업과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채에 허덕이며 빈곤층으로 몰락하는 중산층에 대한 시선이었고, 미국 역시 사람의 능력을 학력으로 측정하는 학력만능의 사회임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고... 그렇게 필요한 학력을 제공하는 대학이라는 곳이 사실 별볼일 없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솔직히 이건 순전하게 나의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로맨틱하게 스쿠터에 여인을 태우고 달리는 이 영화의 포스터는 사실 기름값이 부담이 된 주인공이 승용차 대신 스쿠터를 타고 다닐 수 밖에 없는 사정을 나타낸다. 전혀 로맨틱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테이노와 동거하는 작가 겸 가슴 큰 여자를 동경하는 남성은 인터넷 시대의 키포드 위리어의 전형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에도 인터넷 시대의 글쟁이들과 지식인에 대한 감독의 야유가 보이지 않나 생각된다. (솔직히 가슴 큰 여자 사진을 저장해 놓고 보는 남자가 왜 야유를 받아야 하는지 난 모르겠다... 흠) 

영화가 끝나갈 무렵... 경제학을 수강한 주인공이 자본주의 경제 법칙을 깨닫고 자신의 자산을 정리하고 독자적인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는 부분에선...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감독이야 말로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남녀의 연애 보다, 현재 미국 사회에 가진 고질적 병폐에 대한 감독의 시선과 해결이 더 낭만적이게 보이는 영화....  

그러니 어차피 로맨틱이고 코메디가 아니겠는가?  

뱀발 : 예전 '댓 씽 유두' 도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았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그것이 무엇인지 딱 꼬집어 얘기 하진 못하겠지만 톰 행크스의 영화는 왠지 미적
          지근한 느낌... 그러면서도 편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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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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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빨갱이 작가로 찍히신 분이라 이런 소설을 썼을까?  

소설은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그대로 이 시대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습들보다 현재 당면하고 있는 정치, 사회적 모순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그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87년 체제 이후 정치적 민주화의 일정한 성과를 그대로 부정하는 경제적 독점에 대한 경고다.  

조정래는 이미 80년대에 '태백산맥'이라는 걸출한 장편으로 그 시대적 사명에 온 몸을 던져왔다. 그 후 '아리랑'과 '한강'을 잇는 작품은 그대로 한국의 현대사를 소설로 승화시켰다. 그의 소설 속에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모순과 아픔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기에 사실 읽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준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바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아픈 충고임을 알게한다.  

'한강'이 80년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종결된 것은 아마도 작가가 당대를 서술하기에 좀 더 많은 숙고의 시간이 필요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강'에 이어 가장 최근의 배경을 가진 소설이 바로 '허수아비 춤'이다. 이 소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이고 사실 뉴스에서 많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다. 재벌의 행태가 비판받고 있지만 그들의 권력은 철옹성이다. 결국 이 나라의 법과 제도는 어떻게 하면 재벌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지켜줄 것인가에 몰두하는 듯 보이고 실제로 결과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천문학적인 돈의 힘이 개입된다. 그리고 그 금권은 실제 민주주의를 압살한다.  

재벌의 비자금을 통한 변칙적 재산상속은 일반적 재산의 상속이 아닌 기업의 지배권을 상속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결과를 위해 합법적으로 내는 세금은 그야말로 생색용일 뿐이다. 이것을 합법적 절세라는 표현으로 무마한다면 그것 역시 사기일 뿐이다. 그러한 일이 법의 외관을 가지고 버젓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여기에 항의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삼는 일은 철저하게 외면된다. 법조계나 정치계나 기업의 후원금을 받지 않는 곳이 없고, 심지어 언론사는 이제 기업의 나팔수가 되어 불리한 것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하고 마치 기업이 없으면 이 나라가 절단날 듯 선전하고 이 땅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세뇌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돈의 권력으로 무너진다면 그것은 공화국이 아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며, 돈을 가진 자가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는 결국 재벌을 비판하고 올바르 경제활동을 행하도록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노예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쓴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을 체포하고 조사해서 삼성의 비자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양심선언을 했지만 공권력은 무시했다. 그리고 파장이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무마시켜 버리고 오히려 숨겨놓은 비자금을 합법적으로 승계하도록 해 버렸다. 이런 조사는 정치적 반대파를 겨냥한 무리한 수사에 비하면 수사한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시간을 끌면서 사람들이 잊을때 쯤이면 바로 무마해버리는 고질적 행태는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한' 기업인들의 공로를 생각한다는 상투적 말로 사람들에게 정당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제 이 말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되었다.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문제라기 보다. 기회의 형평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이다. 이런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는 내부적으로 썩어 들어간다. 공적인 업무를 해야 할 사람들이 동에 팔려 공적인 사안을 왜곡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면 누가 이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는가? 누가 자신의 노동에 긍정적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른바 배운 사람들의 행태는 지식이란 결코 중립적이지 않음을 알려준다. 이러니 공부 잘하고 똑똑한 놈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때는 더 파괴적이다.  

사실적이기에 더 불편하고 불쾌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 사회는 참 숙제가 많은 사회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 소설에서는 시민운동을 하는 건강한 시민들에게 기대를 많이 하던데...서울시장으로 시민운동가가 당선이 되고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올 기회가 왔다고 하지만... 노동이 빠진 시민운동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왜인지 모르겠다. 재능교육 농성장이 철거되었다. 자본의 부당한 해고에 저항하던 해고 노동자의 농성천막이 시민운동 출신 서울 시장 취임 후 철거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딴나라당을 이기는게 성공이 아니다. 그건 전제조건일 뿐... 갈길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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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1-11-0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암울함을 느꼈습니다. 우리사회가 정의사회가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중첩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더이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춘몽이 되지않도록 더많은 감시와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왜이리도 먹먹할까요?

머큐리 2011-11-08 10:5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조그만 일을 하면서.. 그 먹먹함을 달래고 있습니다..^^; 안될 확율이 더 높겠지만...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죠..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주눅들지 않으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