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비타 악티바 : 개념사 4
이재유 지음 / 책세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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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에 관한 개념사이다.
비타악티바 시리즈를 하나씩 보면서, 저자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경우
나쁘지 않다. 그러나 좋지도 않다. 그냥 평범하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이건 솔직하게 말해 저자의 책임이 아니다. 내가 욕구하는 것을 풀기에 계급개념은
너무도 많은 한계와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개념사 기본에 충실해야 할 이 책은
원칙에 충실할 뿐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갈증하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 사회를 바꾸는 주체를 상정할 때 계급이론을통해 조망하고, 시대가 자본주의 시대이니 만큼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자본가 계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 있는 것이다. 맑스가 보편계급으로 상정했던 노동자계급이 과연 보편계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가 문제의 관건이다.  

계급이론의 단순함과 비현실성을 비판하면서, 베버의 계층론이 언급된다. 실제로 이 땅에서 계층론이 우세했지 계급론을 제대로 조망받지 못했다. 당연스럽게 계급을 말하면 뿔난 도깨비가 되는 사회에서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계급론을 주장하기에는 버거운 형편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지역에 따라 그리고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닌 재산의 소유정도에 따른 계층론이 실제적으로 계급을 대신해 왔다. 그리고 계층이론을 대표하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노동자를 노동자하는 자가 아닌 일정한 재산을 소유한 계층으로 치환시켜 버렸다. 누구도 노동자임을 자처하지 않는다. 노동은 왠지 천해 보이므로 그냥 중산층으로 불리길 원했나 보다.  

계층이론이 사회학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군집을 표상하는데는 유리한지 몰라도 그것은 정적인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틀일 뿐이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도구틀은 아니다. 이 사회에 이러저러하게 동질적인 사람들의 집단이 있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계층이론의 한계는 이 사회를 누가 바꿀수 있는가에 대한 계급이론으로 발전해야 했다. 그러나 도약이 이루어지자 막바로 한계에 부딪쳐 버렸다. 사회의 집단을 양대계급으로 나누었지만. 계급내부에서도 여러가지 이해관계와 조건과 처지가 나뉘어져 버린 것이다. 분할해서 통치하라는 고전적인 통치기법이 있듯이 생산수단의 소유여부 하나만으로 계급을 나누다보니 이론적으론 가능한 계급구분이 현실에서는 그렇게 힘을 받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고민이 들어있다. 노동자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안주하는 것이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이 덧붙여 진다. 단순하게 생산관계를 반영해서 생산수단이 없는 것이 계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편적인 노동계급으로 자각해야 비로소 노동계급이 된다는 계급성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계급성이라.... 이것을 누가 담보해야 하는 것일까? 자생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면 만들어 줘야 하는데 만들어서 제공하는 계급성이 과연 진실로 올바른 계급성일까? 여기서 문제는 순환하고 또 순환한다.  

계급이론으로 이 사회를 돌파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한가닥 끈을 놓지 못하는 건, 계급이론을 대신할 새로운 무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변형이론들이 나오지만 기본은 역시 계급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화된 현실은 무엇이고 이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책을 읽을 수록 아리송해진다. 그래서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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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니,책은 더 아리송할 것 같은데요~^^

머큐리 2010-10-02 00:35   좋아요 0 | URL
아마 제 글보다는 아리송하진 않을 거에요.. 제가 정신없이 끄적거린거라..^^;
 
맑스주의 역사 강의 -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새움 총서 1
한형식 지음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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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이사를 하면서 마음을 착찹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맑스의 저작선들... 언제고 읽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둔 그 책들을 이사하면서 포장하면서 드는 자괴감 같은
것이 있었다. 죽기전에 과연 나는 이 책들을 다시 손에 잡을 수 있을까....
이유는 여러가지다. 실천적 철학으로서의 맑스의 저작들을 실천과 유리된 채 읽는다면 고담준론보다 더 답답한 이야기들이고, 이미 실천과 유리된 삶을 사는 생활은 이 책들을 다시 들춰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책들은 맥락을 모르고 읽는 다면 그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변적인 책들이니 가볍게 손에 들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들을 포장하면서 항상 무언가 아쉬움과 자괴감과는 또 다른 감정을 품게 되었다. 어쩌면 평생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지고가야 하는 무슨 업같은 느낌.... 

'맑스주의 역사강의'를 접하고서야 다시 맑스의 저작들을 챙겨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맑스주의의 기원에서 주요저작들의 역사적 배경과 논점들, 그리고 이론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개괄적이면서도 중요한 지점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새롭게 맑스의 저작들과 그 외 맑스주의에 대한 저작들을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단순하게 맑스의 저작을 설명한 것이 아닌, 사회주의 운동 전반의 전개과정과 그 안에서 논의되었던 실천적 논쟁들이 어떻게 이론적 분화를 했는지, 그리고 그 이론의 현실적 구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친철한 강의가 돋보이는 책이다.  

특히나 제2인터네셔널과 제3 인터네셔널의 진행과정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새로운 논점들에 대한 설명. 스탈린 주의의 성립과정과 전개에 대한 후속 논의들에 대해서는 그전 러시아 교과서에서 얻지 못한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지리적으로 유럽을 벗어나 간략하게나마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점에서 유용했다.
혁명의 순간을 넘어서 혁명을 유지하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과정에서의 사상적 분화와 그 시대배경에 대한 논의들은 단순하게 맑스주의가 철학적 이념적 운동이기 보다는 매우 실천적 운동임을 다시 한 번 각인하는 계기점이 되었다. 특히 중국의 혁명과 더불어 최근에 재조명되는 문화혁명에 대한 논점들은 대중운동노선에 대한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 같다.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보다, 맑스주의 입문서로 매우 적절하다는 점이다. 80년대 이후 맑스는 죽은 개가 되어버렸고, 이 사회의 특성상 맑스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저 자신의 색깔만 드러내는 일이 되어 맑스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맑스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저 서구의 최신 이론만 가져다 글을 쓰면 진보라는 듯한 경향이 농후한 시점에서 그 이론적 바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배경을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무엇보다 러시아 교과서같은 교조주의적 이론이나 철지난 이론 취급하는 서구의 시각을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객관화시키려 한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다만, 맑스주의 이론의 역사를 이 책으로 모두 담기에는 모자람이 있을 것이다. 특히 서구 맑시즘에 비해 라틴 아메리카나 아시아의 상황을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시아의 경우는 짧게라도 다루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은 거의 담지 못한 점이 있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실험에 대한 논점들을 좀 더 추가하여 진행하였다면 좀더 시의 적절했을텐데..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현 시점에서 대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맑스의 비젼을 공유하고 그 대안의 출발점에서 맑스가 제외된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이 책을 출판한다고 했다. 공감하면서 그저 이 땅에서 맑스를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얼른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품어본다. 그 새빨간 양반에게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해 배울건 배워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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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2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스 주의 관련 책을 꽂아두기만 하셨던 마음, 묘하게 이해가 갑니다.
저는 이쪽 관련은 아니고 다른 관련으로 그런 책이 있습니다.

제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도리어 섵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이 있더라구요.
마지막 문구,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현 시점... 아. 맞습니다.
맑스 주의에 온전한 수긍을 할 수 없을지라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드려여~

머큐리 2010-09-27 15:42   좋아요 0 | URL
사람에 따라서 그리 호감가는 책이 아닐수도 있어요...^^

쟈니 2010-09-2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자본-5권이 나와서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전 요즘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각국의 식민지 경험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아시아 리얼리즘 회화전을 보면서, 한국과 아시아의 같으면서도 다른 식민지 경험이 궁금해졌습니다.

머큐리 2010-09-27 22:56   좋아요 0 | URL
뭐 일단 지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리얼리즘 회화전에 다녀오셨군요..^^ 휴가때 갔다 왔는데...쟈니님하고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요..^^

라주미힌 2010-09-2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리뷰 쓴다쓴다하면서 미루고 있었는데 ㅋ.. 완전 제 눈높이 책이었어요~!! ㅋㅋ 강추우...

머큐리 2010-09-27 22:56   좋아요 0 | URL
바쁜건 알지만... 그렇게 좋다면 빨랑 리뷰써야죠...ㅎㅎ
 
비정규직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0
장귀연 지음 / 책세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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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에 대한 논의는 사실 그리 오래 된 것 같지 않다. 그야말로 어느날 아침에 눈을 뜨니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사회에 통용되기 시작하고, 이제는 익숙한 일상용어가 되어버렸다.
이 책은 일자리와 노동문제만 불거지면 항상 나오는 단어...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사이다.  

사실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가 엄밀하지 않다.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를 뭉뚱그려 표현한 말이
비정규직이다. 개념 자체를 보면 그저 정규직이 아닌 상태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표현한 말이
고 결국 일자리의 문제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문제는 이 비정규직을 우리는 너무 친숙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에 있다. 이 사회는 이제 비정규
직이 불가피한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고, 사회적 의식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했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 의식의 변화는 급격하고 가파르다. 사실상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확산되기 전 부터 비정규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사회가 된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형태는 여러가지다. 흔히 계약직, 임시직, 파트타임, 파견직, 용역직...이라 불리는
일자리를 비정규직이라 한다. 이 비정규직의 확산은 IMF체제 이후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혀왔고, 이 관계는 사실상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힘의 역관계가 전체적으로 역전되어 나타난
현상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자본을 압도한 적도 없거니와 노동을
강조하면, 빨간색으로 덧칠하는 경우 자본의 공격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이전의 자본은 그래도 '평생직장'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을 사회적 이념으로 통용시켰고
경제발전과 더불어 중산층이라는 애매한 계층을 탄생시켰다. 이젠 그러한 이유도 원인도
찾지 못한다. 다만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외칠뿐이다.  

비정규직에게 안정이란 환상일 뿐이다. 언제 어느때 자신의 일자리에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안정이란 말을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불안정을 예외적으로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정상적으로 항시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비정규직의 핵심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 소속감 없는 노동자에게 생산성이란 말이 통용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러면
자본은 왜 생산성없는 이 체계를 유지하려 할까?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해고의 자유가
주는 자본사용의 유용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윤의 문제가 대두하자 생존과 인권의 문
제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사실 어울릴 수 없는 대립관계이다.
다만, 자유주의적 외피 속에 발전한 자본은 그 자유를 이제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쓰고
있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모두 살 수 있다는 구호를 외치며... 

한국에서의 자본의 발전은 지역적 내부의 경쟁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자본의 경쟁력은 노동을 희생으로 강화시킨다.
이것이 대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다. 이런 대자본의 파렴치한 행위는
중소자본을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과 더불어 골치아픈 노사 문제를 자신의 의지대로
처리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이제 사회에 발디디는 20대는 정규직 채용보다 비정규직 채용으
로 몰리고 있다. 비상상적인 고용관계가 양적으로는 정상적 고용관계를 압도하고 결국은
비정상이 정상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명확함에서 해결의 실마리는 쉽지않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이미 법적, 제도적 측면과
실질적 노동의 결집을 통한 해결의 문제가 겹쳐져 진행되고 있다. 동희오토 노조의 투쟁과
같이 실질적 투쟁은 거칠고 험하며, 제도적 변혁은 막강한 대자본의 로비와 지배층의 오도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같다. 다만 이대로 진행된다면 빈부의 격차는 계속 벌어질 것이고
사회의 분열과 이제 변두리로 몰려나갈 사람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누가 이 흐름을 멈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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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15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공감..하고 갑니닷!!

머큐리 2010-08-16 07:55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양철나무꾼 2010-08-1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자본을 압도한 적도 없거니와 노동을
강조하면, 빨간색으로 덧칠하는 경우 자본의 공격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전 이 구절이 빨갛게 돌출되어 동동 떠다니네요.
저도 깊은 공감~^^

머큐리 2010-08-16 07:56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빨간색으로 덧칠해주시는군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08-1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는 책에 조선은 모내기를 500년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모내기가 이모작 등의 효과로 엄청난 생산량을 낼 수 있지만,
대신 일손이 덜 필요해져서, 실업자 양산이 될 수 있답니다.. 그래서 양민 보호 차원으로
그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욕심많은 양반이나 지주들은 몰래 모내기를 했구요.

적어도 조선에서는 법제적이라도 <모내기> 금지를 했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법에서 더욱 앞서나가네요.... 꼬인 실타래 같습니다.

머큐리 2010-08-16 07:58   좋아요 0 | URL
제도와 법률이 정비되어 있어도 사람의 탐욕 앞에서는 종종 무력화되지요..그래서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고, 견제와 감시를 위해서는 정말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이게 관건이자 문제이자 어려움이지요..

카스피 2010-08-15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생산지 노조원들 빼고 안정적인 직장인이 어디 있을까요.대기업의 경우도 알게 모르게 사람을 자르며 상황이 좀 어렵다 싶으면 부서 전체를 날리는 편이니까요.
대기업은 이익을 내겠다고 중소기업의 목을 조르고 중소기업을 살아남겠다고 비정규직만 양산하니....참으로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머큐리 2010-08-16 07:58   좋아요 0 | URL
살기 힘드니 바꿔야지요...방법을 찾지 않으면 더욱 더 살기 힘들어질텐데요..

Paparazzi 2014-05-1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성노조에 대한 비판 없이 자본가만 비판한다면 균형이 없겠지요?
 
[중고]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 MIT대 교수가 독한 마음 먹고 쓴 자기비판서
존 터먼 지음, 하워드 진 서문, 이종인 옮김 / 재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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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훨씬 넘지만...이거라도 밝히는 그 양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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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1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머큐리 2010-08-14 00:31   좋아요 0 | URL
타계하신 하워드 진선생이 쓰신 서문도 아주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0-08-1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이거 참... 제목이 당기네요. ㅋ

머큐리 2010-08-14 00:32   좋아요 0 | URL
제목이 당기신다고요? 그럼 마고님은...땡땡주의자??ㅎㅎ

같은하늘 2010-08-1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했더니 판매완료래요.
이게 뭐야? 다시는 팔지 않겠다는 얘기?!?

머큐리 2010-08-14 00:33   좋아요 0 | URL
아 그건 제가 중고책을 사서 그렇구요..ㅎㅎ
새 책은 팔고 있을겁니다..^^

순오기 2010-08-13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가지만 되겠습니까~ㅋㅋ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세계를 다 미국 시민으로 만들면 전쟁이 없을 거라고...
발명매니아에 써 있던데요.ㅋㅋ

머큐리 2010-08-14 00:33   좋아요 0 | URL
그래도 미국시민은 싫어요..ㅎㅎ
 
공화주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5
김경희 지음 / 책세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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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고 한다.
여기서 공화국은 공화주의의 이념을 체화하고 있다는 뜻이고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은 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결국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권력의 원천으로 하는 공화국인 셈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헌범
1조의 정신이다.  

민주주의란 말은 정확하게는 몰라도 감이라는 것으로도 대략적으로 느낌이온다.
그런데 공화주의는 공화주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공화적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차이가 있는 것인가?
비타악티바 개념사 시리즈인 이 책은 공화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공화주의적 핵심이념은 다음과 같다.
공화주의적 자유 : 남들의 간섭을 배제하는 소극적 자유와는 조금 다른 이념을 갖는다.
공화주의에서 자유는 억압이나 지배가 없는 자유를 뜻하며, 소극적 자유보다 공공의 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 자유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법치 : 서구정치사에서 공화주의는 결국 군주제에 반대하여 일어난 사상이다. 시민들은
자의적인 일인 통치에 대항해 자신들이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정치체제를 원했고
이러한 정치체제는 군주의 자의적 권력이 아닌 시민들의 합의로 결정된 법의 통치를
원칙으로 한다.  

시민적 덕성 : 시민들의 공동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복무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의미한다. 따라서 시민적 덕성은 자신만의 사익을 추구하는 경향과 대조된다. 공화주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려 할 때 정치공동체가 벊영할 수 잇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단순하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느냐 아니면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느냐의 문제로도 차이를 나눌 수 있다. 시민적 덕성을 중요시 여기는 공화주의
의 성격 상 시민적 덕성이야 말로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겠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이기심에서 발로하는 영리 추구가 사회의 공동체의 이익으로
전환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화주의는 개인의 이기심이나 나쁜 의도는 사회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공화주의적 사회에서 공공선을 추구한다. 공공선이념은 정치공동체 각 구성원들과 각 계층간의
의견조율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존의 이념이다. 공화주의는 어느 한 계급이난 계층
의 일방적 지배를 거부한다. 특정 지배계급의 권력 독점은 부패로 이어지고 부패는 결국 정치
공동체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제 계급, 계층의 경쟁을 통한 세력의 균형, 무지배의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공화주의가 사회를 통치하는 방법이다.  

공화주의는 법의 지배를 시민적 덕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기에 국가의 기능에 대해 긍정적이다.
국가는 공공선을 이루는 도구로서 여겨진다. 공공선에 대한 복무는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나라에 대한 사랑, 즉 조국애와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공화주의적 애국은 민족주의적
애국과는 다른다. 혈연과 지연에 기반한 자기 것에 대한 막연한 애착 그리고 그것으로 부터  
나오는 타인과 타국에 대한 배척은 공화주의적 애국은 아니다.
종족과 인종 등에 대한 열정은 배타성과 차별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적 애국은
다원성을 지지한다. 따라서 공화주의적 애국은 자유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애정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공화주의에 대해 고민할 수록 대한민국은 공화국으로 나아가는 도중 어딘가에 헤매고 있지
공화국을 이루지는 못한 것 같다. 우리의 헌법은 가치로만 빛나고 있고 현실로 실현되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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