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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ㅣ 비타 악티바 : 개념사 4
이재유 지음 / 책세상 / 2008년 12월
평점 :
계급에 관한 개념사이다.
비타악티바 시리즈를 하나씩 보면서, 저자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경우
나쁘지 않다. 그러나 좋지도 않다. 그냥 평범하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이건 솔직하게 말해 저자의 책임이 아니다. 내가 욕구하는 것을 풀기에 계급개념은
너무도 많은 한계와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개념사 기본에 충실해야 할 이 책은
원칙에 충실할 뿐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갈증하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 사회를 바꾸는 주체를 상정할 때 계급이론을통해 조망하고, 시대가 자본주의 시대이니 만큼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자본가 계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 있는 것이다. 맑스가 보편계급으로 상정했던 노동자계급이 과연 보편계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가 문제의 관건이다.
계급이론의 단순함과 비현실성을 비판하면서, 베버의 계층론이 언급된다. 실제로 이 땅에서 계층론이 우세했지 계급론을 제대로 조망받지 못했다. 당연스럽게 계급을 말하면 뿔난 도깨비가 되는 사회에서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계급론을 주장하기에는 버거운 형편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지역에 따라 그리고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닌 재산의 소유정도에 따른 계층론이 실제적으로 계급을 대신해 왔다. 그리고 계층이론을 대표하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노동자를 노동자하는 자가 아닌 일정한 재산을 소유한 계층으로 치환시켜 버렸다. 누구도 노동자임을 자처하지 않는다. 노동은 왠지 천해 보이므로 그냥 중산층으로 불리길 원했나 보다.
계층이론이 사회학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군집을 표상하는데는 유리한지 몰라도 그것은 정적인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틀일 뿐이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도구틀은 아니다. 이 사회에 이러저러하게 동질적인 사람들의 집단이 있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계층이론의 한계는 이 사회를 누가 바꿀수 있는가에 대한 계급이론으로 발전해야 했다. 그러나 도약이 이루어지자 막바로 한계에 부딪쳐 버렸다. 사회의 집단을 양대계급으로 나누었지만. 계급내부에서도 여러가지 이해관계와 조건과 처지가 나뉘어져 버린 것이다. 분할해서 통치하라는 고전적인 통치기법이 있듯이 생산수단의 소유여부 하나만으로 계급을 나누다보니 이론적으론 가능한 계급구분이 현실에서는 그렇게 힘을 받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고민이 들어있다. 노동자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안주하는 것이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이 덧붙여 진다. 단순하게 생산관계를 반영해서 생산수단이 없는 것이 계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편적인 노동계급으로 자각해야 비로소 노동계급이 된다는 계급성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계급성이라.... 이것을 누가 담보해야 하는 것일까? 자생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면 만들어 줘야 하는데 만들어서 제공하는 계급성이 과연 진실로 올바른 계급성일까? 여기서 문제는 순환하고 또 순환한다.
계급이론으로 이 사회를 돌파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한가닥 끈을 놓지 못하는 건, 계급이론을 대신할 새로운 무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변형이론들이 나오지만 기본은 역시 계급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화된 현실은 무엇이고 이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책을 읽을 수록 아리송해진다. 그래서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