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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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본 사람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한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병을 앓는 사람을 뜻하는 환자(患者)의 ‘환(근심)’은 마음(心)에 꼬챙이(串)가 찔려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질병의 고통은 외부적 요인(꼬챙이)과 내부적 요인(마음)이 동반해서 생기는 것이란 암시로 보인다. 환자는 몸만 아픈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마저 약해지면서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종교의 영역에서 고통은 성스러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기독교가 보는 몸은 위험한 욕망으로 가득한 덩어리로, 자기 정화를 통해 성스러워져야 하는 대상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고통을 바라보는,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몸을 정화해 영적 치유를 얻는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질병의 중세적 관점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이나 초월적 의미로 신비화했던 몸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몸속 장기와 조직, 세균의 실체를 탐색하기 시작한 근대 의학은 질병의 고통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법을 찾았다. 이로써 외과 의사들은 완치율이 높은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네덜란드 현직 외과 의사가 쓴 《메스를 잡다》는 원시적인 방광결석 제거술에서 긴박감 넘치는 JFK(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응급실 현장까지 과거 · 현재 · 미래의 외과술을 보여준다. 이 책 속에 있는 의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의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발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8세기만 해도 외과 의사는 ‘뼈를 자르는 사람’으로 불리며 멸시를 받았다. 외과 수술은 이발소에서 이뤄졌는데, 무시무시한 칼질을 하던 외과 의사의 모습은 푸주한과 다르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대장장이는 칼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방광에 있는 달걀만한 돌덩어리를 직접 빼냈다. 몸속 깊숙이 의사의 메스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취제가 본격적으로 병원에 도입되는 19세기 중엽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날에 마취 없이 환자의 몸에 메스를 대는 의사는 거의 없다. 결국 의학의 역사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 속에 진행된 크고 작은 수술들이 만들어낸 역사이다.

 

이 책은 수술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의학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뿐만 아니라 수술대 위에 누운 유명한 환자들도 소개한다. 의사와 환자,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소리 없이 아파져 오는 통증과 심한 부상을 입은 몸이라는 낯선 신체적 조건에서 시작된 우연한 만남이다. 병원과 수술실에서 만나는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우리가 생각해도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환자는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환자가 평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 불편한 관계가 아닌 질병과 맞서 싸우는 동반자이다.

 

그러나 의사에 대한 지나친 불신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자초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로 활동한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는 지팡이 모양으로 된 지휘봉을 사용했다. 이것은 지금의 지휘봉과는 조금 다른 형태이며 사용 방법도 다르다. 지휘봉을 손에 들고 공중에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쿵쿵 내려치며 박자를 맞추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륄리는 왕을 위한 공연 리허설을 진행하던 도중 지휘봉에 발등을 찔리는 상처를 입는다. 륄리는 발등에 생긴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국 괴저에 걸려 의사로부터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을 무시한 륄리는 괴저가 일으킨 합병증에 시달려 끝내 목숨을 잃었다. ‘내 몸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또한 몸 상태를 더욱더 나쁘게 만드는 원인이다. ‘전설의 마술사’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는 튼튼한 체격을 가진 장사였다. 그는 “내 배를 얼마든지 때려도 난 끄떡없다”라고 떠벌렸다. 그를 만난 대학생이 진짜로 그의 배를 세 번 후려쳤고 후디니는 이틀 만에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충수염과 복막염이었다. 복부 통증을 견디면서 무리하게 마술 쇼를 강행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륄리와 후디니는 안일한 판단 때문에 자신의 생사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저자는 의학이 과거에는 질병을 극복하는 데 치중했다면 미래에는 개인 생활방식의 개선, 신체 기능 증진, 수명 연장 등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의학의 역할도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도 륄리와 후디니가 자신의 몸을 혹사해 파국에 이르렀듯이, 질병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몰아내면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선 안 된다. 급성 질병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없앨 수 있지만, 만성적으로 지속하는 질병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몸에 이상을 느끼면 병원을 찾는 대신 인터넷부터 뒤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의 증세에 해당하는 질병을 확인하려는 본능과도 같은 행동이다. 환자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까지 내리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자신의 증세와 비슷한 사람의 글을 읽고, 병원 진료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해버린다. 심지어 효과 없는 치료법을 믿고 아예 병원을 찾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의사와 환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달린 일이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에게 신뢰를 하고 질병이라는 적에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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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cyrus 2018-12-20 16: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이웃들의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좋은 이웃’은 아니랍니다.. ㅎㅎㅎ

글월마야 2018-12-1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cyrus 2018-12-20 16: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목나무 2018-12-19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유독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어떤 의사는 신뢰가 가고 또 어떤 의사는 내내 믿음이 안가기도 하더라구요. 질병은 둘째치고 의사와의 교감도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한 해였어요.

cyrus 2018-12-20 16:56   좋아요 0 | URL
요즘 자격 미달 수준의 의사들이 많아서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게 부담스럽지만, 계속 진료와 치료를 미루면 몸이 더 나빠져요. 병원에 안 갈 수가 없어요.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별명 중 하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오래전 지구를 주름잡았던 최강의 육식공룡이다. 엄청난 양의 독서와 다양한 지적 편력을 자랑하는 에코에게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는 별명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에코의 책 속에는 또 다른 책이 들어 있다. 책을 많이 읽은 독자일수록 에코의 소설 속에 암시하고 있는 책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에코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글쓰기에 여러 번씩 감탄하게 된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열린책들, 2009)

* 움베르토 에코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열린책들, 2009)

 

 

 

 

에코는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라는 글(문학과 관련한 에코의 강의록과 글을 엮은《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에 수록되어 있다)에서 자신의 글쓰기 습관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그는 글을 쓰기에 앞서 책을 읽고 나면 소설에 나올 등장인물들의 초상화, 소설에 묘사할 장소들을 표시한 지도 등을 그린다고 한다. 에코는 이미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에서 《장미의 이름》을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힌 적이 있다.

 

 

 소설의 집필을 시작한 첫 해를 나는 바로 이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에 바쳤다. 중세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발견될 수 있는 방대한 서명 목록을 뒤적거리는 일도 거기에 포함된다. 이어서 나는 등장인물이 될 만한 무수한 사람들의 이름과 성격의 자료까지 준비했다.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41쪽)

 

 

에코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다. 그저 소설 하나 써보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고 한다. 에코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어느 수도사가 도서관에서 살해됐다’는 상황이었다. 그는 소설을 쓸 땐 언제나 ‘씨앗’ 같은 사소한 생각에서 출발해 인물들이 움직이는 소설의 전체적인 배경을 만들어내고, 글 쓰는 작업은 맨 나중에 한다고 밝혔다. 에코는 한 권의 소설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을 ‘자신만의 세계(소설)를 구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비유하면서 길게는 8년이나 걸린다고 했다. 작가는 지금 존재하는 세계뿐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세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작가는 종이 위에서 현실을 부수고 새로운 언어의 집과 세계를 만들어 낸다. 에코는 일 년에 한 편씩 장편소설을 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일 년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코가 생각하는 문학은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에코는 오로지 독자를 위해 소설을 썼다. 그는 설혹 우주의 종말을 앞둔다고 해도 글을 계속 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주의 종말에서 살아남은 미래의 누군가가 자신이 쓴 글의 기호들을 해독할 것으로 기대했다. 에코가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알고 나서 다시 그의 소설들을 다시 읽으면 그 책에서 한번 봤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된다. 에코는 독자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 즉 이스터 에그(easter egg: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숨겨 놓은 재미있는 것들)를 아주 살짝살짝 끼워 넣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한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 움베르토 에코 《제0호》 (열린책들, 2018)

*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열린책들, 2009)

 

 

 

독자를 위한 에코의 장난기 어린 애정은 그의 마지막 소설 《제0호》에서도 변함없이 보여준다. 에코가 문장 곳곳에 숨겨둔 이스터 에그를 찾아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 에코의 수필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제0호》의 이스터 에그를 찾는 데 유용한 단서 중 하나이다. 이 수필집에 수록된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셰틀랜드의 가마우지를 가지고 특종 기사를 만드는 방법』을 읽으면 《제0호》의 이스터 에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문학과지성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 (민음사, 2017)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1 : 미스터리 편》 (코너스톤, 2015)

*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바다출판사, 2010)

 

 

 

 

 

 

 

 

 

 

 

 

 

 

 

 

 

 

 

 

 

 

 

 

 

 

 

 

 

 

* 코난 도일 《셜록 홈스의 모험》 (엘릭시르, 2016)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코너스톤, 2016)

* 코난 도일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현대문학, 2013)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문예춘추사, 2012)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황금가지, 2002)

 

 

 

 

《제0호》 1장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추리소설 『모르그 거리의 살인』『도둑맞은 편지』, 그리고 코난 도일(Conan Doyle)셜록 홈즈 시리즈와 관련된 문장이 나온다.

 

 

 

 내 아파트에 벽난로가 있다면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 나오는 커다란 원숭이가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에는 그런 벽난로가 없다.

 

(13쪽)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친애하는 와트슨, 급수관의 손잡이는 밤중에 잠긴 거야. 물론 자네가 잠근 건 아니지.

 

(13쪽)

 

 

  그들은 무엇을 찾아내리라고 기대했을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우리 신문에 관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가 편집부에서 하고 있던 모든 일에 관해서 내가 메모를 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브라가도초 사건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면 어딘가에 적어 놓았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모든 것을 디스켓에 보관하고 있으니까. 분명 그들은 간밤에 편집부 사무실에도 들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디스켓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쯤 디스켓이 내 호주머니에 들어 있다고 결론을 내고 있으리라. 우리가 멍청했어, 그자의 재킷을 뒤져 보았어야 하는데, 하고 그들은 푸념하고 있을 것이다. [중략]

  이제 그들은 다시 올 것이다. 적어도 탐정이 <도둑맞은 편지>를 찾으러 오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어쩌면 가짜 소매치기들이 길거리에서 기습을 가할지도 모른다.

 

(14~15쪽)

 

 

 

‘친애하는 왓슨(My dear Watson)’은 홈즈가 자주 쓰는 말 중 가장 유명하다. 내가 인용한 《제0호》 14~15쪽 문장은 포의 『도둑맞은 편지』와 홈즈가 나오는 단편 『보헤미안 스캔들(《셜록 홈즈의 모험》에 수록되어 있다)와 관련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인 탐정이 비밀 편지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둑맞은 편지』의 범인은 별다른 장치 없이 훔친 비밀 편지를 숨기는 트릭(속임수)을 쓴다. 『보헤미안 스캔들』에서 홈즈는 편지를 가지고 있는 아이린 애들러(Irene Adler)에게 접근하기 위해 목사로 변장하여 자신이 고용한 가짜 소매치기들과 함께 ‘연극’을 펼친다. 에코는 추리소설이 탄생하는 데 기여한 두 작가의 작품을 오마주한 이스터 에그를 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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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매주 월요일(저녁 730분부터 930분 또는 10시까지)카페 스몰토크에서 (페미니스트) 회원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밖에도 레드스타킹은 명사 강연, 영화제 등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했습니다.

 

 

 

 

 

 

 

 

 

 

어제 스몰토크에서 레드스타킹 송년회가 열렸습니다. 작년에 페미 부흥회라는 이름으로 송년회가 열렸는데요, 회원이 아닌 분들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송년회는 외부 인사를 받지 않고, 회원들과 함께 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쁘셔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회원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송년회인데 당연히 음식과 술이 빠질 수 없죠. 요즘 연말 모임 문화의 트렌드는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입니다. 포틀럭 파티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는 미국식 파티 문화입니다. 저는 닭강정을 사왔습니다. 맥주를 마시려면 닭고기가 없으면 안 되죠. 연어, 무침 회를 사 온 분도 있었습니다. 음식 사진에 안 나왔지만, 포도주와 위스키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음식이 많았어요. 사진에 나온 음식들을 다 먹은 뒤에 달콤한 디저트를 먹었습니다.

      

동영상을 만들 줄 아는 회원이 올해 레드스타킹 활동을 담은 기록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분 혼자서 몇 개월 동안 손수 촬영하고,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행사(8월에 있었던 정희진 님의 강연. 이 행사 하나만을 위해 회원들 모두 열심히 준비했고, 고생했습니다)를 열심히 준비하는 회원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니 새삼 그분들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말 잘 만들었는데, 여기 블로그에 공개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내년 119일 토요일에 레드스타킹 회원들과 함께 페미니즘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회원들은 그날에 볼 영화를 고르기 위해 논의했습니다. 레드스타킹에는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영화를 즐겨 보는 회원들이 있어요. 저는 책 바보라서 영화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래서 저는 영화 마니아들의 안목을 믿습니다. 이분들의 안목이 얼마나 대단하냐면요, 독립영화를 즐겨 보는 것을 넘어서 독립영화 감독들의 필모그래피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로 남다른 내공이 있어요. 또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외국 페미니즘 영화에 관심이 많아요. 자막 없이도 영화를 보는 분들입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레드스타킹 회원들과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행사에 참여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레드스타킹 회원들 덕분에 책 읽는 시야를 더 넓혔을 뿐만 아니라 책 밖에 있는 페미니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페미니즘 공부는 레드스타킹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어요. 레드스타킹을 처음으로 알기 전에 했던 페미니즘 공부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페미니즘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안 됐습니다. 올해 초에 시작한 레드스타킹 활동이 제겐 소중한 경험입니다. 평생 가슴속에 간직할 특별한 보물을 얻은 기분입니다.

 

 

 

 

 

 

 

 

내년 17일 월요일부터 레드스타킹은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성 정치학(이후) 번역본을 읽습니다(일정과 선정 도서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량은 1장(~70쪽)까지입니다. 참석 신청은 @hippie_yolo 계정으로 DM 보내주세요.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는 분은 여기 댓글로 알려주셔도 됩니다.

 

 

 

 

 

 

 

 

[제목 주] 로버트 풀검의 책 제목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RHK)를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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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2-1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풍이라면서 그런 거 먹어도 되나?
하긴 한번쯤 먹었다고 크게 저어될 건 없겠지.
이럴 때 안 먹으면 언제 먹겠니?ㅎ
아무튼 모처럼 신나는 저녁이었겠구만.^^

아, 그런데 너는 뭐 입고 갔니?
저기 빨간 티셔츠 팔뚝 네거냐?ㅋ

cyrus 2018-12-19 12:59   좋아요 0 | URL
그 날 캔맥주 1개, 포도주 다섯 잔 정도 마셨어요. ㅎㅎㅎ

빨간 티셔츠 팔뚝은 다른 분입니다. 레드스타킹 인스타에 가면 제 얼굴이 나오는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어요. ^^

stella.K 2018-12-19 14:56   좋아요 0 | URL
계속 서서 맥주 마시고 있는
안경 낀 형제가 너냐?ㅎㅎ

cyrus 2018-12-19 17:45   좋아요 1 | URL
네, 맞아여 ㅎㅎㅎㅎㅎ

stella.K 2018-12-19 18:0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알라딘 기네스 봤지?
너랑 내가 남의 글에 댓글 가장 많이 단 사람
1, 2위야. 그거 보고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난 남의 페이퍼에 댓글 많이 안 단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이어서 2연패야.ㅋㅋㅋㅋㅋ

난 꼭 이런 쓰잘떼기 없는 거에 연패를 하고 그더더라고.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거나.
친구 가장 많이 당한 사람이나 땡스투
뭐 이런 영양가 있는 거는 안 되고. 췢!

cyrus 2018-12-20 17:00   좋아요 0 | URL
저는 알라딘 연말 통계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서 감흥이 없어요... ㅎㅎㅎ
알라딘 내에 글을 많이 썼거나 서재 즐찾 수 많은 게 그리 대단한 일 아니잖아요.
알라딘 밖에 나가면 대단한 분이 많아요. ^^

2018-12-18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9 13:00   좋아요 0 | URL
내년에도 이런 푸짐한 모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
 
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 - 시대의 위기를 돌아보는 경제학사 두 거인의 날카로운 분석
토머스 호버 지음, 김효원 옮김, 이승환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학문을 가장 쉽고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학문의 이론이 만들어지게 된 전체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하나의 이론이 발전하면 수많은 분야로 갈라져서 나오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못하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일이 된다. 특히 요즘같이 모든 면에서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자꾸 나오는 상황에서는 학문 전체를 보는 방식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경제학은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너무 많이 세분되어 발전한 각 경제학 분야들을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접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불리는 시장의 기능과 ‘보이는 손’인 정부의 기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논의는 경제학 역사만큼 오래됐다. 《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은 경제학사의 두 거인이 걸어온 길, 그 과정의 대립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케인스(Keynes)하이에크(Hayek)는 20세기 한복판에서 시장의 기능, 시장과 사회 그리고 경제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그 고민을 많은 저작과 현실 참여를 통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구현했던 경제학자들이기도 하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시장의 자유를 옹호한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의문이 생겼다. 주가는 하루아침에 40% 이상 폭락했다. 공장이 줄줄이 도산했고,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생산은 많은데 사서 쓸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케인스는 시장이 저절로 최적의 상태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펴냈다. 미국은 케인스의 처방을 선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에 케인스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케인스의 처방은 효과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유럽에 ‘복지 국가’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비대해졌다.

 

케인스 이론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던 세계 각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위기를 만났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물가만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하이에크의 이론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케인스 이론을 반대하면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은 하이에크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서 하이에크는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독일 나치, 이탈리아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사실, 하이에크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노예의 길》을 썼다)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복지 국가도 위험한 것으로 봤다. ‘복지병’으로 알려진 정부 개입의 부작용이 생기면서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는 ‘작은 정부’와 시장 경쟁을 지향하는 정책을 폈다.

 

이 책의 일차적 목표는 누가 옳나 그르냐를 따지기보다는 서로 다른 주장을 선명하게 대비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경제학의 이론적 지형을 드러내는 데 있다. 똑같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인식, 경제 대공황의 처방을 둘러싼 대립, 시장 기능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차를 보여준다. 저자는 두 경제학자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여주기 위해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한계도 설명한다. 이 책의 이차적 목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경제학’이라는 편견을 깨는 일이다. 경제학은 학자들의 세계에서만 논의되는 어려운 학문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경제학만큼 세계를 움직이게 한 학문은 없다. 저자는 대중이 다가설 수 있는 경제학이 되려면, 경제학자들은 사회를 이해하고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자유주의 사상을 다소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려는 무한한 욕망은 자유주의의 반갑지 않는 측면으로 간주되어왔다. 물론 18세기라면 이러한 욕망은 여전히 환영할만했을 것이고, 애덤 스미스라면 틀림없이 강력하게 옹호했을 것이다.

 

(225~226쪽)

 

 

스미스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또는 신자유주의의 조상(하이에크가 ‘신자유주의 아버지’라면 스미스는 ‘신자유주의의 할아버지[주]’ 정도?)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사상은 훨씬 복잡해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국부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동기를 풀어놓고 잘 활용하는 자유 방임 경제를 강조한다면, 《도덕감정론》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적 이타심을 사회의 구성 원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절제없는 부의 추구는 정의와 도덕이라는 사회의 근본 원리를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시장과 사회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도덕감정론》에 드러난 스미스의 견해를 생각하면 그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을 강력하게 옹호했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국부론》만 본 채 스미스를 부와 탐욕의 화신인 것처럼 오해한다.

 

 

 

 

[주] ‘고전적 자유주의의 어머니’ 또는 ‘신자유주의의 어머니’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자유지상주의자인 아인 랜드(Ayn R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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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8 17:06   좋아요 0 | URL
학자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 세력의 하수인이 되는 게 문제죠. 물론 공적 지원금을 받는 학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또 어떤 경제 전문가들은 뻔뻔하게 자신의 분석과 예측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요. ^^;;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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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포크로 비행기 안에서 콩을 찍어 먹으며 파시즘을 걱정하는 사람.” 영국의 신문사 <선데이 타임스>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에게 보낸 찬사이다. 이 문구는 에코의 산문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뒤표지에 있다. 유쾌한 성격의 에코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 책에서 에코는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어리석은 세상을 비틀어 보고 있다. 그는 세상의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어리석음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음의 목록을 더 늘어나게 해줄 뿐이다. 짧은 글로 이런 얘기를 쉴 새 없이 풀어내는 에코이지만 그 안에는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웃음이 있다. 글 속에서 그는 여러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엉뚱한 질문을 던지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답을 한다.

 

에코는 악의적인 일이나 잔혹함에 화가 난다면 웃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 요즘 들어 웃음을 줄어들게 만드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 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공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 현안은 물론, 국가 안보나 국가 원수와 관련된 턱도 없는 가짜 뉴스까지 나온다. 요즘의 가짜 뉴스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고 빠르게 퍼진다. 이른 시간 안에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또 꼼짝없이 가짜 뉴스의 덫에 걸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가짜 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살인자다. 우리는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보고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주]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는 에코 특유의 웃음을 생각하면서 읽을 수 없다. 잘 드러나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일상을 파멸시키는 가짜 뉴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과정, 또 그 가짜 뉴스를 만든 인물이 몰락하는 과정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글쟁이 콜론나는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이탈리아어로 ‘내일’을 뜻함)> 주필 시메이를 만나게 되면서 창간되지 않을 신문 <제0호> 제작 과정에 투입된다. <제0호> 제작을 위해 자금을 대는 사람은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라는 세력가다. 세력가와 주필은 사회 거물들이 궁지로 몰 만한 가짜 뉴스를 만들려고 한다. 주필은 편집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 작성법을 알려준다. 에코는 이 소설에서 돈벌이나 정치적인 거래를 목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드는 황색 저널리즘의 실체를 해부한다.

 

에코는 20년 전부터 《제0호》을 구상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부패 정치 청산의 물결이 일던 1992년 이탈리아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출간된 연도는 1992년이다. 재미있게도 이세욱 씨가 두 권의 책을 번역했다. 《제0호》를 읽으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제0호》에 콜론나는 신문을 함께 만드는 동료들에게 신문 기사를 반박하는 독자의 편지에 반박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그때 콜론나가 반박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편지글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에 나왔던 글이다. 서양 고전문학 작품과 에코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 일부를 패러디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죽음을 앞둔 에코는 《제0호》를 쓰면서 익살스럽게 웃어보지만, 그 웃음이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는 자기 위안이었는지, 아니면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울까 봐 애써 웃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소설에 간간이 나오는 에코의 유머를 보면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제0호》는 에코의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세욱 씨는 《제0호》를 ‘음모론에 잘 빠지는 기자와 나쁜 저널리즘을 보여 주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나는 소설에서 시도한 에코의 풍자를 웃으면서 볼 수가 없었다. 가짜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헛소리하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짜 뉴스로 인해 점점 더 파열음을 내는 현실을 보면 그저 화가 날 뿐이다. 가짜 뉴스가 지배하는 세상은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잔혹하고 야비한지 보여준다. 나는 그런 세상을 향해 정색하면서 화를 내는 방법을 선택하겠다. 웃으면서 화내는 에코의 방식으로 여태 즐겨왔으니 이제는 정공법으로 진지하게 정색할 때다.

 

 

 

 

[주] 이세욱 옮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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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어요. 저는 왜 딴 책만 보고 있을까요? ㅋ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무척 재밌게 읽어서 리뷰까지 썼었어요. 코믹한 글이 많지요. 그런 저자가 진지하게 소설을 쓰면 어떤 게 될까 궁금해서 구입했는데... 이 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년으로 넘어갈 것 같은... 내년이 코 앞이네요.

cyrus 2018-12-17 13:19   좋아요 0 | URL
알라딘 시점에서는 지금이 2019년이에요. 일년치 알라딘 활동 통계를 낼 때 집계 기간은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거든거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