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몽십야(夢十夜)은 말 그대로 열 편의 꿈 이야기. 소세키가 영국 유학 생활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온 후에 쓴 단편소설들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된다. 몽십야와 같은 초기 작품에 환영의 세계와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묘사가 많다.

    

 

 

 

 

 

 

 

 

 

 

 

 

 

 

 

* [품절] 나쓰메 소세키 몽십야(하늘연못, 2004)

* 나쓰메 소세키 런던 소식(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회상(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 2018)

 

 

몽십야다섯째 밤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 일본 요괴의 이름이 나온다.

 

 

 말굽 흔적은 지금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실제로 닭은 울지 않았다. 닭이 우는 흉내를 낸 것은 야마노자쿠(天探女)였다. 이 말굽 흔적이 남아 있는 한 야마노자쿠는 나의 적이다.

 

(몽십야, 몽십야, 44~45)

 

      

 말굽 흔적은 아직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닭 울음소리는 낸 것은 아마노자쿠였다. 이 발굽 흔적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한 아마노자쿠는 나의 원수다.

      

(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283)

 

    

* 원문

 

あとはいまだにっている真似まねをしたものは天探女(あまのじゃく)あまのじゃくであるこのあとのみつけられている天探女自分かたきである

 

      

첫 번째 인용문은 2011년에 세상을 떠난 노재명 씨가 번역한 것이다. 노재명 씨가 번역한 열흘 밤의 꿈몽십야(하늘연못)런던 소식(하늘연못)에 수록되어 있다. 몽십야는 소세키의 중단편 24편을 한데 묶은 번역본인데, 현재는 런던 소식회상(하늘연못)으로 분권 되어 나온 상태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에 있는 구절이다.

    

 

 

 

 

 

 

 

 

 

 

 

 

 

 

* [품절]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그런데 노재명 씨가 번역한 몽십야런던 소식모두 일본 요괴의 이름을 야마노자쿠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원문에 있는 あまのじゃく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아마노자쿠이다. 의 음(). ‘야마노자쿠는 번역가의 실수라기보다는 책이 인쇄되면서 나온 오자인 것 같다.

 

아마노자쿠는 인간의 마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요괴이다. 인간으로 둔갑하거나 인간의 말을 흉내 내면서 인간들을 속인다. 노재명 씨는 주석을 통해 아마노자쿠를 일본의 전설에서 주로 나오는 악녀의 화신이라고 설명했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의 번역가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후에 악귀가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라는 내용의 주석을 달았다. 두 사람 모두 아마노자쿠를 천탐녀인 것처럼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마노자쿠는 요괴의 일종이다.

 

아마노자쿠와 첨탐녀는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이다. 아마노자쿠의 한자식 표기는 천탐녀(天探女)가 아니라 천사귀(天邪鬼). 아마노자쿠의 원형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천탐녀이다. 천탐녀의 히라가나 표기는 あめのさぐめ이다. ‘아메노사구메라고 읽는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세키는 천탐녀와 아마노자쿠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썼다. 그러나 천탐녀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는 여신이고, 아마노자쿠는 천탐녀와 비슷한 습성이 있는 요괴이다. 따라서 소세키가 천탐녀=아마노자쿠라고 쓰는 바람에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아마노자쿠를 여신으로 오해한 것이다. 천탐녀가 아마노자쿠의 원형이므로 둘 다 같은 존재로 볼 수 있지만, 일본 신화 속 천탐녀와 민간 설화에 묘사된 아마노자쿠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몽십야원문에 있는 天探女아마노사쿠로 번역하려면, 아마노사쿠가 누군지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일본 요괴에 대해서 자세히 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아마노사쿠를 마치 천탐녀인 것처럼 대충 설명한다면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셈이 된다.

 

      

 

[] 박현석 옮김,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현인, 2018,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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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3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테 있어요, 저 두꺼운 <몽십야> ㅎㅎㅎㅎ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cyrus 2019-01-30 16:58   좋아요 0 | URL
혹시 syo님이 가지고 있는 책에도 ‘야마노자쿠(天探女)’라고 적혀 있습니까?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재미있네요. ^^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읽다가 재미없어서 포기했어요. 일단 <그 후>를 읽었어요. syo님이 추천한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가 소세키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syo 2019-01-30 17:2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면, 시루스 박사님과 저는 넓고 긴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멀리 서 있는 상황이겠어요 ㅋㅋㅋㅋㅋ

cyrus 2019-01-30 20:58   좋아요 0 | URL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나쓰메 소세키 전작 읽기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솔직히 이번 달 안에 읽는 건 무리였어요. 읽어야 할 책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소세키를 읽을 기회를 놓쳐버렸어요... ^^;;

stella.K 2019-01-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한길사에서 전집이 나오면서 몽십야가 안 나왔단 말야?
언제고 나오려나?

cyrus 2019-01-30 17:11   좋아요 0 | URL
소세키의 단편 선집이나 단편 전집 번역본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하늘연못 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전집이고요, 작년에 현인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이름만 전집인 선집’입니다. ^^;;

2019-02-0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15: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일문학을 전공한 적이 없고, 일본어를 쓰고 말할 줄도 모릅니다. 이런 처지에 제가 나쓰메 소세키와 번역가, 그리고 번역본을 함부로 지적하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천탐녀가 천사귀의 원형이라고 해도 천탐녀는 여신이고, 천사귀는 악귀이기 때문에 서로 다를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님이 인용한 사전의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제 생각이 틀렸어요.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말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저는 알라딘에 있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지 못한 채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오해를 했고, 번역자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책을 함부로 평가했습니다. **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봤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책에 꼭 있어야 할 ‘해설’인데, 다음 쇄를 찍을 때 ‘출판사 제공 책 소개’가 ‘해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글로 책에 수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사과문과 정정문을 써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 단편소설이라서 제가 이 작가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 너무 몰랐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대충 읽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어설픈 글을 올려서 정말 죄송하고요, 제가 몰랐던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2-0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노자쿠와 천탐녀>의 오류에 대한 정정문입니다. 이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aladin.co.kr/haesung/10648987
 
인형의 집 (예술의전당 에디션)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인생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앞으로 살아가면서 매번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전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다. 어떤 이는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기 위한 성취욕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내 집을 마련해서 예쁜 마누라 혹은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Nora)는 우리의 이런 세속적인 물음에 “그래, 네가 원하는 데로 사니까 행복하니?, 행복하게 살고 있는 너는 ‘인형’이니, ‘인간’이니?”라고 다시 질문한다.

 

《인형의 집》은 여권신장운동에 불을 댕긴 사회극이다. 노라 헬메르(Nora Helmer)는 변호사인 남편 토르발 헬메르(Torvald Helmer)와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지난 8년간의 결혼생활을 보낸 ‘아내’이자 ‘어머니’다. 그녀는 중병이 걸린 남편이 이탈리아에 요양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남편의 동료 변호사 닐스 크로그스타드(Nils Krogstad)에게 돈을 빌린다. 그 당시에 여성은 돈을 빌릴 수 있는 경제적 권한이 없었다. 노라 헬메르는 친정아버지의 연대 보증을 받아서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친정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서 자신이 대신 서명하는 위증을 했다. 남편이 총재로 취임할 은행에 몸담고 있었던 크로그스타드는 해임 통고를 받아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했는데 그는 자신과 노라와의 거래를 빌미로 노라 헬메르에게 자신의 해임을 번복시켜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뒷거래와 위증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오직 자신의 출세와 명예에만 집착한다. 이에 노라 헬메르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 아내란 인격도 개성도 없는 존재이며 종달새나 같은 한낱 인형에 불과한 것인가? 마침내 노라 헬메르는 인간으로서의 ‘노라’가 되고자 집을 박차고 나간다. 시민사회가 기대했던 ‘예쁘고 상냥하고 헌신적인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조건을 완벽히 갖췄던 노라가 자아를 찾기 위해 가정을 버린다는 결말은 당시로써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인형의 집》이 초연된 지 올해로 140주년이 된 지금 자신의 자아를 찾아 집을 떠나는 노라의 결정은 우리에게 더 이상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노라를 ‘여권주의자’로 바라보는 해석은 다소 진부하다. 노라는 주체적인 자아를 자각해가는 한 여성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또는 연극 공연을 보면서) 봉건 윤리와 사회적 인습에 순응하여 살아 온 ‘헬메르의 인형 아내’가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습에서 깨달음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노라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다음과 같은 그녀의 외침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토르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이 옳다고 할 거예요. 그리고 책에도 그런 비슷한 말들이 있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만족할 수 없고 책에 쓰여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인형의 집》 3막 중에서, 164쪽)

 

※ 글꼴을 굵게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가부장제 사회 속에 사는 여성은 너무나 수동적이었고, 인형 같은 존재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나만의 생각’, ‘나만의 꿈’,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여성들은 ‘자기 삶의 의미’ 또는 ‘삶의 목표’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뚜렷한 언어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타자가 아닌 주체로 살아가는 것. 실존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궁극에 절대적 자유를 얻는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기 삶에 관한 어떠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노라는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인형의 집》은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기 전에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종의 성장 소설 같은 희곡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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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2 16:33   좋아요 0 | URL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공연작이 <인형의 집>이라서 거기에 맞춰 나온 특별판입니다. 저도 한때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서 여주인공의 이름을 ‘로라’로 생각했어요. 아마도 변진섭의 노래 제목 때문에 노라를 로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
 

 

 

 우드하우스의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독자들은 우드하우스가 코믹 작가이자 조크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력적인 플롯이나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혹은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고마워요, 지브스』[주1] 항목 중에서)

 

 

 

 

나는 나이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아재다. 그래서 아재 개그를 좋아한다. 아재 개그는 흔히 말장난이 주를 이룬다. 동음이의어를 사용하거나,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활용한다. 분위기를 한순간에 얼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개그는 뻔뻔하게 해야 한다. 체면도 내려놓고, 나이도 내려놓고, 눈높이도 낮추면서 자신을 낮춰야 개그가 나오고 펀펀(fun fun)해진다.

 

 

 

 

 

 

 

 

 

 

 

 

 

 

 

 

 

*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편집자는 후회 한다 외 38편》

(현대문학, 2018)

 

 

 

영국 출신의 작가 P. G. 우드하우스(P. G. Wodehouse)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대부분은 귀족이다. 그런데 그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권위나 체면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있다. 그들은 명석하지 않다.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엉뚱한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들의 엉뚱하고 어리숙한 모습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에 나오는 귀족인 버티 우스터(Bertie Wooster)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에 마주치면 집사 지브스(Jeeves)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지브스는 주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면서도 가끔 그에게 딴죽을 건다. 집사에게 트집 잡히고 툭 하면 무시당하는데도 우스터는 그걸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활기차고 재미 넘치는 작가의 성격은 순진하고 낙천적인 우스터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우드하우스의 소설에 나오는 남성 인물들은 재치 있는 말장난에 의존하는 영국식 유머를 구사한다. 우스터는 귀족이 아니라 ‘영국 아재’이다. 귀족 같지 않은 귀족. 이러한 인물의 특징은 우드하우스의 작품이 사랑받게 된 비결 중 하나이니라.

 

그런데 번역가들은 유머를 번역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우드하우스의 소설에 나온 유머, 즉 영국식 유머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일상적인 대화는 그대로 번역해도 의미 전달에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말장난, 농담, 비꼬는 말 등은 해당 언어에 특화된 유머 코드나 언어 표현으로 바꾸지 않으면 청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말장난은 청자의 취향에 좌지우지되는 부분이기에 재미를 못 느낄 수가 있다. 그렇지만 번역가는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원문을 우리말로 맛깔나게 번역하지 못하더라도 원문 속에 숨어있는 유머 코드를 파악하여 주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일례로 우리말로 번역된 『모든 것은 지브스 손에』라는 소설에 지브스와 우스터가 처음 만나면서 대화하는 장면을 무심결에 보고 있으면 작가가 의도한 웃음을 지나쳐버린다. 왜냐하면 번역가는 지브스가 언급한 ‘우스터소스’가 무엇인지 주석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한번 마셔 보시겠습니까?” 그[지브스]가 마치 환자를 대하듯이 말했다. 병든 군주에게 기운을 북돋는 음료를 권하는 궁중 의사 같았다. “이건 제가 직접 개발한 음료인데, 색이 이런 것은 우스터소스 때문입니다. 날달걀을 넣었으니 영양가도 좋지요. 빨간 고추가 매콤한 맛을 내고요. 저녁 늦게 귀가한 뒤 이것을 마시면 아주 기운이 난다고 많은 신사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아침 나[우스터]는 무엇이든 생명줄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냉큼 달려들고 싶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것을 꿀꺽 삼켰다. 순간적으로 누가 내 머리 속에 폭탄을 터뜨린 뒤 횃불을 들고 내 목구멍을 느긋하게 걸어 내려가는 것 같더니만, 갑자기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창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고, 나무에서 새들이 지저귀었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희망이 다시 밝아 오고 있었다.

  “자네를 고용하겠어!” 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가 세계 최고의 일꾼 중 한 명이라는 것, 어떤 집에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제 이름은 지브스입니다.”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주인님.”

 

 

(『모든 것은 지브스 손에』, 180~181쪽)

 

 

※ 붉은색 글자는 필자가 표시한 것임.

 

 

 

지브스는 우스터(Wooster)의 침체된 기운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스터소스(Worcester sauce)를 첨가한 음료를 준다. 음료의 효과에 만족한 우스터는 정식으로 지브스를 하인으로 고용한다. 이 장면에 인명 ‘우스터’와 지명 ‘우스터’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유머가 나온다. 우스터소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 우드하우스의 유머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톰 닐론 《음식과 전쟁》 (루아크, 2018)

 

 

 

우스터소스는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우스터라는 도시에서 만들어졌다. 시큼함과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식초와 맵싸한 맛의 고추 추출물, 달콤함이 두드러지는 당밀과 설탕, 짭조름한 소금 등 다양한 맛을 내는 재료들을 한데 모아 숙성시켜 만든다. 우스터소스를 만든 사람은 요리사가 아니라 약사이다. 그래서 지브스가 만든 음료는 우스터소스가 들어간 일종의 ‘피로회복제’인 것이다.

 

우스터소스는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미료 중 하나이다. 특히 바다 위를 항해하는 해운회사 승무원들이 우스터소스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바다 위에 오랫동안 생활하는 승무원들은 육지에 나는 맛있는 음식들을 접할 기회가 적다. 게다가 선박의 전속 요리사들이 만들어주는 음식들의 맛은 대부분 밋밋했다. 그들은 음식이 싱거우면 우스터소스를 찾게 되었고, 우스터소스 특유의 시큼한 맛에 중독된 승무원들은 육지에 도착한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

 

 

 

 

 

 

 

 

 

 

 

 

 

 

 

 

 

 

* 백욱인 《번안 사회》 (휴머니스트, 2018)

* 오카다 데쓰 《돈가스의 탄생》 (뿌리와이파리, 2006)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스터소스를 생소하게 여기겠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맛보고 있었다. 돈가스 위에 뿌려진 조미료가 바로 우스터소스다. 다만 우리나라에 돈가스와 함께 들어온 우스터소스는 일본식이다. 돈가스는 일본이 고기를 막 먹기 시작한 메이지 유신 시기에 유럽에서 건너왔다. 당시 해산물 위주 식사를 하던 일본인에게 고기 자체를 먹는 일은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후 고기를 먹는 식문화에 점점 익숙해진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제조법(얇게 썬 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많은 양의 기름에 튀겨내는 방식)으로 돈가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일본식 우스터소스도 만들어졌다. 일본식 우스터소스는 기존 우스터소스에 간장을 섞은 것이다. 우리가 평소 즐겨 먹은 돈가스와 우스터소스는 서양의 음식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식으로 ‘번안’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변종’이다. 우스터소스의 기원, 일본식 우스터소스의 탄생 과정, 그리고 일본식 돈가스가 우리나라 경양식 문화 보급에 미친 영향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으면 《음식과 전쟁》(루아크, 2018)의 6장, 《번안 사회》(휴머니스트, 2018)의 2부 10장, 《돈가스의 탄생》(뿌리와이파리, 2006)을 참조하면 된다.

 

 

 

 

 

 

 

 

 

 

 

 

 

 

 

 

 

 

 

 

 

 

 

 

 

 

 

 

 

 

 

 

 

* 존 키츠 《키츠 시선》 (지만지, 2012)

* [e-Book] 존 키츠, 김천봉 옮김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 존 키츠 시선》 (글과글사이, 2017)

* [절판] 김천봉 옮김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3》 (이담북스, 2011)

* [품절] 존 키츠 《가을에 부쳐》 (민음사, 1991)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2011)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에 속한 『설교 대회』라는 소설에 유명한 시구를 이용한 재미있는 대화가 나온다. 우스터의 친구 빙고(Bingo)는 자신의 힘든 상황을 날씨 상태에 빗대어 표현하는데, 이 눈치 없는 우스터는 런던 날씨가 화창하다면서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빙고는 시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씁쓸한 처지를 계속해서 강조한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 무의미한 대화는 우드하우스의 유머로 볼 수 있는데, 이 소설의 번역가는 대화에 나온 시구가 무엇인지 설명한 주석을 달지 않았다. 이러면 독자는 작가의 지적인 유머를 그냥 쓱 지나치게 된다.

 

 

 

[빙고] “지난 몇 주는 힘든 시간이었어, 버티. 햇살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우스터] “그것 이상하군. 런던 날씨는 아주 화창했는데.”

[빙고]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설교 대회』, 104쪽)

 

※ 붉은색 글자, 글꼴을 굵게 표시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표시한 것임.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No birds sing)…‥”라는 구절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무자비한 미녀(La Belle Dame Sans Merci)[주]에 나온다. 이 구절은 1962년 살충제 폐해로 봄이 와도 숲에서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을 예견했던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책의 제사(題詞)로도 유명하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편집자는 후회 한다 외 38편》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 유머 작가의 작품을 수록한 최초의 선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 영국 작가의 유머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잘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우드하우스의 유머’라고 주장한 것들은 가정(假定)에 불과하다. 우드하우스 선집의 번역가는 ‘영국 아재’의 영국식 유머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주1] 원제는 ‘Thank You, Jeeves’이다. 집사 지브스에게 늘 도움을 받는 주인 우스터가 하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마워요, 지브스’보다는 ‘고마워, 지브스’로 옮기는 게 적당하다.

 

[주2] 민음사 판본의 번안 제목은 ‘매정한 아가씨’, 지만지 판본의 번안 제목은 ‘무자비한 미녀: 발라드’, 이담북스와 글과글사이 판본(모두 김천봉 교수가 번역함)은 ‘무정한 미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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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29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역시 넌 이름값을 하는구나.
역시 박사네. 시루스 박사.
나중에 너만의 백과사전 하나 편찬해도 좋을 것 같아.^^

cyrus 2019-01-29 20:14   좋아요 1 | URL
며칠 지나면 제가 뭘 썼는지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이렇게 기록을 남기면 나중에 다시 참고할 수 있어요. ^^

2019-01-30 0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9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9 20:18   좋아요 0 | URL
외국영화에 나오는 유머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가 제일 힘들어요. 간혹 유머를 직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웃음 포인트를 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2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개를) 절레절레~👍

cyrus 2019-01-29 20:22   좋아요 2 | URL
이 글은 한 작가를 덕질하는 자세로 임하면서 썼는데,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작가라 글을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

psyche 2019-01-29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보다 유머가 제일 어려운 분야인거 같아요. 언어로 말장난 하는 건 그 언어를 잘 알고 있어야 이해가 되고 당시의 문화나 시대상을 알아야 웃기거든요.

cyrus 2019-01-30 16: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대부분의 외국 유머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고차원 유머인 것 같습니다... ^^;;

목나무 2019-01-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아재 개그가 문득 궁금해지는 리뷰입니다. ㅎㅎ
우스터소스라고 하니 저는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문득 떠올랐어요.
늘 그렇지만 오늘도 리뷰 보고 몰랐던 지식 얻고 갑니다! ^^

cyrus 2019-01-30 16:33   좋아요 1 | URL
글을 쓰면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돼서 좋긴 한데, 대부분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식’들이네요... ㅎㅎㅎ

북깨비 2019-01-3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저도 cyrus님 아재 개그가 궁금합니다. 갑자기 돈까스도 먹고 싶고 ㅠㅠㅠ 우스터소스와 간장의 만남이었군요. 오늘도 깨알상식 얻어갑니다.
 
단발머리 소녀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2
오카모토 기도 외 지음, 신주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에는 오래된 물건에 정령이나 신(付喪神, 쓰쿠모가미)이 깃든다는 믿음이 있다. 그 물건은 언젠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요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7년)에 나온 책과 화첩을 펼치면 요괴가 우르르 쏟아진다. 이런 나라이니 가는 곳마다 괴담이 들려온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여러 종류의 신을 믿는 일본인들답게 일본 각 지역에는 정말 많고 많은 귀신과 요괴, 전설과 괴담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적 풍토 때문인지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추리소설, 공포소설이 많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괴담을 소재로 다룬 문학 작품도 적지 않다.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 시리즈’를 쓴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京極夏彦)는 요괴 연구가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요괴 마니아다. 사실 교고쿠 나츠히코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요괴에 관심이 많은 작가가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 작가가 바로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이다. 그는 괴담을 수집하면서 요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고, 괴담과 요괴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오카모토 기도의 대표작은 1917년에서 1937년까지 잡지에 연재(한차례 연재가 중단된 적이 있었음)《한시치 체포록》시리즈이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탐정소설이며 연재된 작품은 총 68편이다. 한시치는 범인 잡는 일을 하는 하급 경찰 관리이다. 그의 별명은 ‘에도시대의 숨은 셜록 홈즈’이다. 「오후미의 혼」은 한시치의 활약상이 처음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한시치는 매일 밤 무사의 아내와 딸 앞에 나타나는 여자 귀신 오후미의 실체를 밝혀낸다. 「단발머리 소녀」는 ‘단발 뱀’ 전설에서 시작된 기이한 저주에 관한 이야기다. 단발 뱀을 보면 3일 안에 죽는다고 한다. 단발 뱀을 본 사람들이 연달아 죽거나 중병을 앓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전설이 진짜였다고 생각한다. 한시치는 전설을 두려워하는 대중 심리 속에 감춰진 ‘죽음의 진실’을 파헤친다.

 

이상출판사‘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두 번째 책《단발머리 소녀》에 오카모토 기도의 작품 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오후미의 혼」과 「단발머리 소녀」, 그리고 불가사의한 괴담의 색채가 짙은  「맹인의 강」이다. 「단발머리 소녀」는 1935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번역본의 첫 번째 수록작은 《한시치 체포록》 시리즈 말기 작품에 해당하는 「단발머리 소녀」이고, 이 작품의 제목이 번역본 제목으로 정해졌다. 번역본 제목은 ‘단발머리 소녀’로 정하되, 원작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오후미의 혼」, 「단발머리 소녀」 순으로 배치했어야 했다.

 

 

사토 하루오(佐藤春夫)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요코미조 세이시(横溝正史)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 등의 추리소설 작가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을 남겼다. 번역본에 수록된 그의 작품은 총 다섯 편이다. 이 중에 ‘최고의 소설’과 ‘최악의 소설’을 각각 한편씩 고르라면, 나는 「무기력한 기록」과 「불의 침대」를 선택하겠다.

 

「무기력한 기록」은 한마디로 평가하면 ‘스고이(すごい)’다. 스고이는 대단하거나 굉장한 것을 보고 감탄할 때 쓰는 일본식 표현이다. 또 무서운 것을 봤을 때도 이 표현을 쓸 수 있다. 나는 「무기력한 기록」을 읽으면서 ‘대단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알게 돼서 기뻤고,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 묘사된 암울한 미래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다. 「무기력한 기록」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SF에 가깝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모든 인간이 철저히 ‘상류’와 ‘하류’, 두 가지 계급에 맞춰 살아가는 미래 사회이다. 지하 300m에 최하층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가 있다. 상류 사회 사람들은 따사로운 햇볕과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지상에 살고 있다. 하류 사회 사람들은 상류 사회 사람들이 허락한 자선 데이(자선의 날)에만 지상에 올라가 고작 반나절 정도 산책할 수 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나선형 계단, 딱 하나뿐인데 지상으로 오르다가 추락하여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자선 데이’를 만끽하는 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지상에 오르는 데 성공한 하류 사람들은 상류 사람들의 실험 대상이 된다. 상류 사람들은 인구를 줄인다는 목적으로 하류 사람들을 식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무기력한 기록」은 당대 계급사회에 대한 은유와 인간성이 사라진 미래사회의 모습을 암울한 상상력으로 담은 의미 있는 SF 단편소설이다.

 

「불의 침대」는 화자인 시인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어설프게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고사리를 캔 노인은 자작나무에 양 발이 묶인 채 불에 타 죽은 나체의 여자 시신을 발견한다. 언론들은 이 끔찍한 사건에 주목했고, 사실과 전혀 거리가 먼 정보를 퍼뜨리면서 이 사건을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보도한다. 시인은 살인사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언론의 보도 방식에 못마땅해 한다. 그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그는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히스테리 여성’으로 가정한 다음, 피해자의 몸이 불에 타는 과정까지 상상한다.

 

 

  나는 더 이상 사실과는 상관없이 창작가의 의식과 의욕만 가지고 내 마음대로 공상의 날개를 펼친다.

 

  만약 그녀가 혐오스러운 체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것을 잊기 위해 꽃을 가까이 했을지도 모른다. 그 체취 때문에 남편의 사랑도 얻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녀는 남편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혐오하고 자신의 몸을 저주할 것이다. 어쩌면 이 불쾌한 악취가 사타구니에서 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이는 불길이 변사체의 허리부분에서부터 사타구니, 대퇴부를 가장 강렬하게 태웠다는 사실을 보고 떠올린 공상이다. 가공의 히스테리녀의 자살 원인을 창작한다면 이런 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부득이한 사실의 기록이 아닌 이상 자연주의적 작풍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것이 공상인 경우는 오죽하랴. 그래서 다시 한 번 공상의 날개를 시(詩)의 하늘로 펼쳐본다.

 

 그녀의 선조는 야쓰가타게 봉우리의 상카(山窩: 떠돌이 생활을 하며 특수 사회를 이루고 있던 사람들) 출신이고(시인의 공상은 이런 전설을 좋아한다), 그녀는 지금은 산촌이긴 하지만 보통 농촌의 근면하고 강건한 여자로서, 성격과 외모 모두 보통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결혼해서 다른 집에 들어가보니 인정과 풍습이 조화되지 않는 바가 있어 자타의 호의와 노력도 부부 금실이 나쁜 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호의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과 격렬한 노동으로 이 고독감을 겨우 잊을 수 있었는데, 패전 후 국내에 만연한 허탈감과 불안이 그녀의 고독감을 복잡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극수면(極睡眠)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최근 특별한 원인도 없이 죽음을 동경하고 죽음을 위한 죽음을 생각하는 병적인 상태였다. 사후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죽이고 그 시체를 화장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듯이 즐겁게 장작과 나뭇가지, 낙엽 등을 그러모아 쌓아올렸다. 그리고 화톳불 위에 몸을 눕히고 죽음의 침상을 준비했다. 화톳불 속에 불을 던져놓고 서서히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 조용히 침상 위에 몸을 눕히고 느낌을 시험한 끝에 결국 안정감을 찾는다. 높은 산의 조용함과 따뜻한 봄의 온기에 감싸여 그녀의 마음은 평온해졌다. 귀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눈에는 멀리 봉우리들의 잔설이 보인다. 등 뒤에는 마치 정화작용과 같은 기분 좋고 통렬한 자극이 밀려오는 것을 특유의 오기로 참아내는 사이 영혼은 화창한 하늘을 방황하고 강한 졸음이 몰려온다. 이 상쾌함에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급작스레 황홀한 질식사의 순간에 다다른 것이다. 불은 타오를 대로 타올라 그녀를 태울 만큼 태우고 거의 잦아들었고, 시체는 희망하던 것에 비해 많은 부분을 남기고 불은 자연스레 꺼졌다.

 

 나는 변변치 못한 산문시(소설가 모리 오가이의 와카 초고에 있는 구절)를 읊은 것 같았다.

 

 

베어 쌓아둔 가슴속 땔나무를 한바탕 태운

모닥불 그 속에서 웃으며 죽었으면

 

 

 

(「불의 침대」, 208~210쪽)

 

 

 

아주 오래전부터 월경과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오염이 가능한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혐오스러운 체취’와 ‘사타구니에서 나는 불쾌한 악취’는 여성의 몸을 혐오하는 남성들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부정적 인식이 오랜 시간 재생산되면서 남성은 손쉽게 여성을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로 규정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여성은 월경이나 몸의 냄새를 감추려 하고, 청결하지 못할수록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시인은 여성이 죽기 직전에 황홀감을 느꼈을 거라고 상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소리’다. 분신(焚身)은 자살 방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이다. 여성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여성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물화(物化)시키려는 내러티브는 남성 중심의 왜곡된 판타지다. 일부 작가와 비평가들은 여성을 타자화하는 편협한 틀은 못 깨면서 그저 일탈적인 성을 다루는 게 파격과 혁명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나는 파격을 가장한 문학의 성 착취를 보고 싶지 않다. 추리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추리소설은 ‘소설’의 한 장르이며 더 넓게 보면 ‘문학’에 포함된다. 여성, 여성의 신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주체로 보지 않는 문학 작품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기 위한, 의미 있는 불편함이다.

 

 

 

 

 

※ Trivia

 

* 책 앞날개에 오카모토 기도의 간지(한자)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奇(기이할 기)가 아니라 ‘綺(비단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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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28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타 이런 거 기똥차게 잡아내는 거 보면 천상 기곈데......

cyrus 2019-01-29 14:20   좋아요 0 | URL
‘현미경 리뷰’를 쓰다 보니 책을 읽을 때마다 오탈자 한 두 개 정도 찾게 되네요. ^^;;

2019-01-28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9 14:28   좋아요 0 | URL
네. 일본 문화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을 뛰어넘는 것들이 많아요... ^^;;

psyche 2019-01-3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신을 황홀한 질식사라니.. 정말 헐 이군요. 그것보다 정말 cyrus 님은 인공지능 이신가요. 오타면 오타, 잘못된 지식, 이름 이런 거를 어찌 그렇게 잘 찾아내시는지요. 이름의 간지 틀린 거 까지 잡아내시다니!!

cyrus 2019-01-30 17:08   좋아요 0 | URL
옛날에 나온 소설들을 보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그 때 그 시절에 당연하게 여긴 상식이라고 해도 잘못되었으면 비판해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신기하게도 이번 달에 제가 읽은 책들 대부분은 오자가 한 두개 정도 있네요.. ^^;;
 
애서광들
옥타브 위잔 지음, 알베르 로비다 그림, 강주헌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 수백 권의 책들이 나오는 이 세상에 당신이 그 정도의 책만 가지고 있다면 ‘애서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애서가에게 책은 소중한 대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애지중지 대하듯이 읽고 간직해야 한다. ‘책을 사랑하는 것’은 책 내용이나 책 읽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애서가와 애서광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둘 다 책에 과도하게 빠져 있다는 건 같지만, 이 두 단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보통 애서가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책이나 작가를 보고 선택한다. 애서광은 그러한 목적이 없으며 구하기 힘든 희귀한 책들을 찾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저자 친필 사인이 있는 책이나 한정판, 초판본 등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말한다. 또한 애서가는 자신이 좋다고 보는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하지만, 애서광은 책을 개인 수집품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려 들지 않는다.

 

《애서광들》은 책을 너무 사랑해서 황당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집이다. 총 열한 편의 단편소설이 채워져 있다. 이 소설집을 쓴 프랑스 출신의 작가 옥타브 위잔(Octave Uzanne)도 애서가이다. 그는 사드 후작(Marquis de Sade)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등 작가들의 미발표 작품을 발굴해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책을 사랑하고 모으는 것 자체도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의미 있는 문화 활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애서가가 묘사하는 애서광들은 ‘책의 노예’가 되거나 ‘책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애서광들》에 나오는 여러 인물 중에 애서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뮤즈 연감, 1789년』의 화자이다. 뮤즈 연감은 프랑스 18세기 중반부터 매년 발행된 시 전문 잡지다. 헌책방에 자주 드나드는 화자는 1789년 판 뮤즈 연감을 사들인다. 그는 이 책을 읽다가 그 안에 끼워져 있는 조그마한 종이봉투를 발견한다. 그 봉투 안에 1789년 판 뮤즈 연감의 전 주인 이름으로 추정되는 머리글자가 적혀 있다. 화자는 이 책의 주인이었던 18세기 인물이 누군지 조사하게 되고, 그와 결혼한 여인의 정체까지 밝혀낸다. 두 사람은 불행하게도 1789년 프랑스혁명에 휘말려 생이별을 한 연인이었다.

 

『시지스몽의 유산』은 《애서광들》 완역본이 나오기 전에 이미 두 차례나 번역된 적이 있는 단편[주1]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애서가인 에드몽 드 공쿠르(Edmond de Goncourt)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모은 수많은 책을 경매장에 보내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는 다른 애서가들이 자신의 책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시지스몽은 무덤 안에 가지고 가지 못할 책들이 경쟁자인 애서가들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고, 자신의 사촌 엘레오노르에게 넘겨준다. 엘레오노르는 거대한 저택에 보관된 책들을 관리하는 주인이 된 것이다. 시지스몽이 살아있었을 때 그의 장서를 호시탐탐 노리던 경쟁자 중에 라울 기유마르로 포함되어 있다. 기유마르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파리의 유명한 애서광이다. 그는 시지스몽의 유산인 책들을 어떻게든 손에 넣기 위해 엘레오노르에 찾아가 애걸복걸한다. 기유마르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엘레오노르 앞에서 사정하는 모습은 ‘책에 빠진 바보’다운 면모이다. 엘레오노르는 책에 전혀 관심이 없고, 애서가들을 업신여기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책을 싫어하는 악녀’‘늙고 못생긴 마녀’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시지스몽은 엘레오노르와 같은 여자를 ‘음란한 욕망을 가진 하와(Ḥawwāh: 아담의 아내)의 판본’이라고 무시한다.

 

 

 

[기유마르의 대리인] “이게 시지스몽 씨의 유언장 사본입니다. 나의 사촌 엘레오노르 스테파니 퓔셰리 시지스몽 양에게 이것 등등을 유증한다.”

 

[기유마르] “결혼하면 그 책들이 내 재산이 되니까, 엘레오노르 시지스몽 양과 결혼하는 겁니다!”

 

[기유마르의 대리인] “엘레오노르 시지스몽 양의 나이가 지금 58세입니다.”

 

[기유마르] “당신은 내가 성욕이나 풀려고 결혼을 계획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겁니까? 비난받아 마땅한 색욕! 육체를 탐하는 욕정! 음란한 욕망! …‥쳇! 여자라는 게 무엇입니까? 하와의 한 판본에 불과합니다.”

 

[기유마르의 대리인] “퐁투아즈행 기차가 몇 시에 있습니까? 당장 달려가서 내가 청혼한다고 알려주십시오.”

 

[기유마르의 대리인] “안 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또 내가 엘레오노르를 봤습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빼빼 마른 노파였습니다. 대패로 제대로 다듬지 않은 낡은 나무판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기유마르] “당장 출발하세요! 서둘러주세요!”

 

[기유마르의 대리인] “세월의 풍파에 쭈글쭈글해진 사과처럼 주름투성이였다고요! 괴물이 따로 없었습니다!”

 

[기유마르] “아 참, 그만하십시오!”

 

[기유마르의 대리인] “머리칼도 없어 가발을 썼고, 이빨도 다 빠져 틀니를 했습니다. 코도 매부리코였고, 뺨에 박힌 세 개의 사마귀에는 뻣뻣한 털들이 돋아 있더라고요…‥.”

 

 

(『시지스몽의 유산』, 55~57쪽)

 

 

 

18~19세기 남성들이 보기에 ‘책 읽는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들로 보였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남성들의 손가락질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펼쳤으며 빠른 속도로 책 속에서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똑똑한 여자를 두려워한 남자들 그리고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는 여자들이 애서가가 될 수 있는 사회적 · 경제적 여건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시지스몽의 유산』의 문제점은 ‘책 읽는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데 있다.

 

『프랑스계 일본인 무사의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 유행하던 자포니슴(japonisme)[주2]이 반영된 소설이다. 라리브는 일본 서적을 수집하는 애서광이다. 일본에 푹 빠진 그는 프랑스 문화 및 예술이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프랑스인의 후손으로 알려진 오가타 리쓰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시지스몽의 유산』 다음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든 이야기다. 서양의 입장에서 동양을 제멋대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리브는 한 남자의 팔을 잡고 우리 쪽으로 잡아당겼다. 거스무레한 얼굴빛, 짧게 기른 검은 콧수염, 귀의 위쪽으로 당겨진 날카로운 눈…‥.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완전한 일본인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피부색이 노랗고, 체구가 작은 사람들, 유럽식 옷을 입은 원숭이를 닮은 사람들, 유럽 대도시의 일본인 시장에서 흔히 보던 사람들과 약간 달랐다.

 

 

(『프랑스계 일본인 무사의 이야기』, 113쪽)

 

 

『프랑스계 일본인 무사의 이야기』는 ‘긍정적(positive) 오리엔탈리즘’‘부정적(negative) 오리엔탈리즘'의 사례를 동시에 제공한다.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를 낀 유럽인들은 동양 문화를 서양 문화의 대안으로 인식하면서 과도하게 찬양한다. 앞서 언급한 자포니슴은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의 한 축으로, 일본을 미지의 세계 혹은 신비의 대상으로 본다. 반면 부정적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를 끼게 되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 달라진다.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동양인은 야만적(“원숭이를 닮은 사람들”)이고, 열등한 외모(“귀의 위쪽으로 당겨진 날카로운 눈”)를 가진 존재이다.

 

『나폴레옹 1세의 수첩』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전시 중에 들고 다니던 수첩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책의 종말』종이책이 사라진 미래의 모습을 그린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 언급되는 ‘스토리그라프(storygraphe)’는 저자의 목소리로 채워진 책이다. 미래의 독자는 이것을 언제든지 휴대하면서 들을 수 있다. 오늘날의 오디오북과 거의 비슷하다. 소설에 묘사된 종이책이 사라지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19세기 유럽 애서가들의 모습, 그리고 종이책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책이 등장할 거로 예언하는 화자의 주장은 현실이 되었다. 『책의 종말』은 쥘 베른(Jules Verne)이 썼다고 하면 속아 넘어가서 믿을 정도로 책이 진화되는 현실과 가능성을 정확하게 반영한 공상 소설이다.

 

‘책은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놓는다’라는 말이 있다. 책 읽기가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애서광들에게 적용한다면 그 의미는 180도 달라진다. 책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애서가는 애서광으로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에 중독되고 ‘책의 노예’가 된 채 살아가게 된다. 애서가라고 생각하는 나는 《애서광들》을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도 언젠가는 ‘책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1] 《애서광 이야기》(범우사, 2004), 《애서 잔혹 이야기》(이모션북스, 2017)에 수록되어 있다.

 

[주2] 자포니슴은 프랑스어 발음이며 영어로 발음하면 ‘자포니즘(Japonis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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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8 16:59   좋아요 1 | URL
일하면서 돈을 벌면 그나마 책 살 형편은 될 줄 알았는데, 역시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ㅎㅎㅎㅎ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하니 책을 많이 사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게 됩니다. 저비용으로 고효율 책을 사는 소비 방식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

레삭매냐 2019-01-24 17: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우리는 이미 책 읽는 노예
가 아닐까요 ㅋㅋㅋ

책 읽는 여성의 이야기에서는 선구적
페미니즘의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애서광보다는 애서가이고 싶으나,
현실계에서는 전자로 기우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사고 또 한편으로는 팔아
치우는 역설적 인간의 모습이 바로
저네요.

cyrus 2019-01-28 17:0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책의 노예를 증명해주는 문서는 영수증인가요? ㅎㅎㅎㅎ
저도 가끔 필요한 책을 사고 싶으면, 가지고 있는 책을 팔 때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