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10~20대는 핼러윈(Halloween)을 생각할 것이고 중년층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켈트인(Celts)의 축제에서 유래한 핼러윈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그러나 핼러윈이 111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에 하는 축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성절은 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만성절을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크리스마스(Christmas)가 무슨 날인지 잘 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은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라고 한다. ‘Halloween’은 성인(聖人)을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Hallow’와 전야(前夜)를 뜻하는 ‘Eve’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그래서 만성절을 ‘All Hallows’ Day’ 또는 ‘Hallowmas’라고도 한다. 만성절의 원래 날짜는 513일이었다. 8세기에 활동한 그레고리우스 3(Gregorius )교황이 만성절의 날짜를 111일로 변경했다.

 

고대의 핼러윈은 농민들의 축제였다. 농업과 목축업을 하던 켈트인은 1031일을 한 해의 마지막 날로 봤고, 그날에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켈트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불청객인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가면을 쓰거나 불을 피웠다. 교회는 켈트인의 토속신앙과 축제를 이교의 풍속으로 규정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만성절을 지정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112일을 만령절(All Souls’ Day)로 지정했다. 이날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거행한다.

    

 

 

 

 

 

 

 

 

 

 

 

 

 

 

 

* [e-Book] 이디스 네스빗 등신대의 대리석상(올푸리, 2019)

* [e-Book] 이디스 네스빗 살아있는 조각상(이북코리아, 2017)

    

 

 

영국의 작가 이디스 네스빗(Edith Nesbit)의 단편소설 등신대의 대리석상(Man-Size in Marble, 1893)은 만성절에 일어난 기이하고도 무서운 현상을 경험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와 그의 부인의 보금자리가 있는 한적한 마을에 무서운 소문이 떠돈다. 그 소문에 따르면 만성절 전날이면 교회에 있는 대리석상이 움직인다. 살아있는 대리석상을 마주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대리석상은 과거 마을에 살았던 악한들의 모습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리석상에 악마나 다름없는 그들의 영혼이 들어있고, 핼러윈에 그들은 깨어나 자신들이 살던 집으로 간다. 하필 재수 없게도 악한들이 살았던 집은 남자와 부인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대리석상은 핼러윈이 아닌 만성절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인에 대항하는 악마답게 대리석상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악행을 저지른다.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10)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08)

* [절판] 해럴드 블룸 엮음 겨울 사자(생각의나무, 2007)

 

    

 

등신대의 대리석상이 만성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을 묘사한 이야기라면, 미국의 작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의 단편소설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 1937)만령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 워튼의 공포소설 여덟 편을 선별한 거울(생각의나무)에 포함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만령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만령제는 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직접 선별하면서 엮은 시와 단편 모음집 중 하나인 겨울 사자(생각의나무)에 수록되어 있다.

 

모든 영혼의 날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새러 클레이번화이트게이트라는 저택에 거주하는 귀부인이다. 만령절에 새러는 산책하다가 낯선 여인을 만난다. 새러는 처음 보는 그 여인에게 화이트게이트에 가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면서 말을 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그렇다라고 짧게 대답하면서 지나간다. 그 여인을 만난 지 몇 분 후에 새러는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을 삔다. 이로 인해 새러는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여러 명의 하인과 하녀들이 살고 있어서 새러는 큰 불편함 없이 지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평온한 화이트게이트는 조용한 공포의 무대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모든 하인과 하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집에 있는 난방장치와 전기제품의 작동이 멈춘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한 저택이 된 화이트게이트. 새러는 그곳에 고립되고 만다. 어둠과 침묵에 지배당한 저택 안에 홀로 남은 새러는 공포를 느낀다. 그 사건을 겪은 지 일 년이 지난 후에 새러는 미지의 여인의 정체가 만령절에 깨어난 마녀이며 그녀를 만난 뒤에 화이트게이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 아서 코난 도일 J. 하버쿡 젭슨의 진술(북스피어, 2014)

 

    

 

모든 영혼의 날은 안락한 집이 한순간에 공포의 장소로 변해버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생생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 현상에 압도당해 두려워하는 인간의 감정까지 잘 묘사한 이디스 워튼의 수작이다. 모든 영혼의 날배니싱(Vanishing)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배니싱이란 특정 인물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가장 유명한 배니싱은 19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메리 셀러스트 호(Mary Celeste) 사건이다.

 

187211월에 화물선 메리 셀러스트는 알코올 원액을 싣고 미국 뉴욕에서 출항하여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한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배는 제노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화물선이 폭풍을 만나 침몰했거나 해적을 만나 나포되었을 거로 추측했다. 메리 셀러스트 호가 출항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 영국 상선은 북대서양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는 배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그 배가 메리 셀러스트 호였다. 그런데 배에 탔던 선장과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선원들은 실종되었다.  

 

호사가들은 메리 셀러스트 호에 탑승한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들을 내놓았다. 1884년에 어느 익명의 작가가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소설 제목은 J. 허버쿡 젭슨의 진술(J. Habakuk Jephson’s Statement)이다. 이 소설은 진술서 형식으로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진짜라고 믿을 정도였다. 이 소설을 쓴 익명의 작가는 명탐정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를 만들어 낸 추리 작가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다.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은 배니싱을 소재로 한 공포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하나의 공통점은 현대 독자들이 비판할 수 있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두 작품에서 배니싱을 일으킨 존재는 외국인또는 흑인과 혼혈인의 모습이다. 모든 영혼의 날에서 새러는 낯선 여인이 외국인 같은 이상한 억양을 한다고 증언한다. J. 허버쿡 젭슨의 진술에는 흑인과 혼혈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백인의 인종주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작품 속에 언급되는 가상의 진술서에 따르면 백인에게 오랫동안 학대받은 혼혈인이 사라진 배에 탑승한 백인들을 살해했으며 그 배에 탔던 흑인 선원은 공범이다. 당시 독자들이 소설에 나오는 허구적인 내용을 진짜라고 믿는 이유가 있다. 영국 백인들은 흑인’, ‘백인이 아닌 이방인을 배척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백인들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소설에서 악마 또는 괴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의 한계는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이전에 나온 고전 공포소설뿐만 아니라 인종주의가 더욱 심했던 20세기 초중반에 나온 공포소설(가장 대표적인 문제의 작가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그의 소설에는 인종차별적인 문장이 종종 나온다)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부정적인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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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3-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로윈을 전에는 만성절전야라고도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만성절보다 할로윈이 더 유명해진듯 합니다. 만령절은 생소했는데 설명을 읽으니 매년 돌아오는 11월 첫 주 미사가 생각났어요.
cyrus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20-03-03 12:30   좋아요 1 | URL
안부 인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저는 지금 외출을 하지 못할 뿐 잘 살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카스피 2020-03-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성절과 만녕절이라 cyrus님 덕분에 새로운것을 일게되었네요😙

cyrus 2020-03-04 14:57   좋아요 0 | URL
가끔 서양 문학 고전을 읽다가 기독교와 관련된 용어를 보게 돼요. 저는 무교라서 기독교 관련 용어의 의미를 몰라요. 그래서 용어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검색을 합니다. ^^
 
[전자책] 등신대의 대리석상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9
이디스 네즈빗 / 올푸리 / 2020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이디스 네스빗(Edith Nesbit)의 단편소설 등신대의 대리석상은 한 남자가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절망스러운 진실을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진실을 믿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가 들려줄 진실은 그가 겪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그와 그의 아내 로라는 아주 싼 집을 운 좋게 구한다.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로라는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집안일은 부부가 고용한 가정부 도먼 부인이 한다. 그녀는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부는 도먼 부인이 들려준 옛날이야기를 잡지에 기고해 짭짤한 수입을 챙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먼 부인은 아픈 조카를 보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가정부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힌다. 그녀는 1031일 핼러윈(Halloween) 전날에 이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사실 그녀가 이 집을 떠나는 진짜 이유는 부부의 집을 둘러싼 괴이한 소문 때문이다. 부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된 교회가 있다. 그 교회 안에 갑옷 입은 기사들의 모습을 한 대리석상이 있다. 도먼 부인이 들은 소문에 따르면 만성절(All Saints Day: 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 전날, 즉 핼러윈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밤이 되면 교회 안에 있는 대리석상이 살아 움직여 부부의 집으로 걸어간다고 한다. 대리석상의 인물은 옛날 마을에 악행을 저지른 재앙 같은 존재. 부부의 집은 그들이 살았던 집이었다. 부인은 밤에 움직이는 대리석상을 만나면 불길한 일이 생길 거라고 경고한다. 남자는 예민한 성격을 가진 로라를 위해서 대리석상 이야기를 로라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다행히 핼러윈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 남자는 도먼 부인이 알려준 소문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등신대의 대리석상의 이야기 구조를 보면 유령 들린 집이야기. 다만 이 단편소설에서 유령 들린 집이야기의 형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정한 날이면 집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마을의 약탈자들은 죽어서 교회에 안장되었는데(그들의 후손이 재물을 쓴 덕분에 조상들은 교회에 안장할 수 있었다) 대리석상에 그들의 악령이 깃들어 있다.

 

이 소설에서도 공포영화의 클리셰가 나온다.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저렴한 가격의 집을 구한다는 점. 영화 속 주인공은 유령이 나오는 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집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집을 구매한다. 등신대의 대리석상의 부부도 그 집의 말도 안 되는 염가에 혹해서 구매한다. 그러나 남자는 도먼 부인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그 집과 관련된 무서운 소문을 모르고 있었다.

 

등신대의 대리석상20세기 이전에 나온 고전 공포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무시하다가 큰코다치는 오만한 이성(=남성)을 보여준다. 남자는 도먼 부인이 들려준 소문을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여긴다. 그리고 그는 지나치게 신경이 예민한 로라를 비이성적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가 무서운 경험을 겪게 된 것은 인과응보로 볼 수 있다. 소설의 결말과 조금 관련된 거라서 이 리뷰에 만성절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날 그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그 실수만 아니었으면 끔찍하면서도 불가사의하고, 절망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 보면 그는 그림을 잘 그릴 뿐 그렇게 이성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Trivia

 

이 전자책에 정말 재미있는 주석 하나가 있다. 주석 내용은 이렇다.

 

 

 8. 루빈스타인: 유럽에서 활약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 작곡가 · 지휘자 안톤 루빈스타인(1824~1894). 많은 피아노 협주곡 · 솔로 피아노 · 교향곡 등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오페라 마왕(The Demon)이다. 독자께서는 이 마왕의 줄거리를 알고 계시는가?

 

 

정말로 이게 주석에 있는 내용이다. 독자에게 갑자기 툭 질문하는(갑툭질) 주석 내용은 처음 본다. 오페라 마왕의 줄거리가 뭔지 궁금해서 알아봤는데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토프(Lermontov)가 쓴 장시 악마가 원작이라고 한다. 사실 루빈스타인의 오페라는 마왕보다는 악마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다. 사족(TMI)을 붙이자면,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마왕이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은 슈베르트(Schubert)가 괴테(Goethe)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가곡이다.

 

, 나는 역으로 이 주석을 쓴 번역자에게 질문하고 싶다. ‘솔로 피아노는 무슨 장르인가()? ‘피아노 솔로 곡이라고 써야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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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3-0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스토리로 영화만들면 재미있을것 같아요~

cyrus 2020-03-01 23:50   좋아요 0 | URL
네. 단편영화나 공포를 주제로 한 단막극로 각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에요. ^^
 

 

 

국내에 번역된 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 중에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이 같은 것이 있다. 그중 한 편이 우수(憂愁) 또는 애수(哀愁)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188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러시아어 원제는 Тоска. 우울과 애수를 뜻한다.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Тоска를 수록한 체호프 단편 선집으로는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등이 있다. 이 두 권에 수록된 Тоска의 작품명은 다르다. 체호프 단편선에 표기된 작품명은 우수이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 표기된 작품명은 애수. 이 글에서는 Тоска의 국내 작품명을 애수로 쓰겠다.

    

 

 

 

 

 

 

 

 

 

 

 

 

 

 

 

* 스티븐 킹 미저리(황금가지, 2004)

    

 

 

애수의 영문판 제목은 ‘Misery’. 이 단어는 1990년에 나온 스티븐 킹(Stephen King) 원작의 동명 영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misery’정신과 육체에 부담을 주는 극심한 고통을 의미한다. 애수의 영문판 제목은 슬픔, 근심, 우울을 뜻하는 러시아어 원제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소설의 줄거리를 보게 되면 고통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마부 요나 뽀따뽀프(‘열린책들판에는 이오나 뽀따뽀프로 되어 있다)는 아들의 죽음에 깊은 실의에 빠진다. 그는 죽은 아들이 계속 생각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요나는 여러 명의 손님을 태워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그는 마차에 타는 손님들에게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손님들은 요나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일을 마친 요나는 동료 마부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향한다. 그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젊은 마부에게 아들이 죽은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젊은 마부는 이내 잠들고 만다. 온종일 마음이 괴로운 요나는 아무나 붙잡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결국 그는 마구간에 있는 자신의 말()에 다가간다. 그리고 말에게 귀리를 주면서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 네게 새끼 말이 있고, 넌 그 새끼 말의 엄마라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버렸단 말이야…‥. 그런데도 슬프지 않니?”

 

(문예출판사, 247)

 

 

애수는 요나가 말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끝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담담하다.

 

 

 요나는 흥분한 어조로 자초지종을 말에게 이야기한다.

 

(문예출판사, 247)

 

 

애수는 단순한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반전을 이용한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의 슬픈 감정을 극대화하고 있다. 요나는 아들의 죽음에 슬퍼할 뿐만 아니라 슬픔에 빠진 자신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한다. 슬픔을 마음속에 묻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괴롭고 힘든 일이다.

 

슬픈 내용의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글에 어울리지 않은 내용이겠지만, 그래도 문제 있는 번역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내가 이 글에서 맨 처음 인용한 우수의 번역문(문예출판사, 274)은 고칠 필요가 있다. 우수』의 번역가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버렸다면이라고  썼으며 애수(열린책들)의 번역가는 새끼 말이 죽었다면이라고 썼다.

 

 

만일 말이다, 너에게 새끼가, 네가 낳은 새끼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다, 그 새끼가 죽었다면 말이다‥… 얼마나 괴롭겠니?

 

(열린책들, 31)

 

 

어딘지 먼 곳으로 간다는 표현은 생이별을 의미한다. 인간을 위한 가축또는 상품이 되어야 하는 망아지에게는 어미 말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인간에 의해서 강제로 생이별을 해야 한다.

 

한편 망자가 사는 세계를 먼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할 때 먼 곳으로 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예출판사 번역문은 어미 말과 망아지의 생이별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망아지와 사별한 어미 말의 상황을 뜻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번역문을 중의적 표현으로 볼 수 없다. 영어로 번역된 애수에서는 망아지의 죽음을 뜻하는 문장(다음에 나올 인용문에 밑줄이 있는 문장)이 나와 있다.

 

 

 “Now, suppose you had a little colt, and you were own mother to that little colt‥…. And all at once that same little colt went and died‥…. You’d be sorry, wouldn’t you?‥….”

 

 

독자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으려면 망아지의 죽음을 가정하는 문장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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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1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 -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뛰어난 여성 예술가 57인의 삶과 작품
플라비아 프리제리 지음, 김영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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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1971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이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으로 남성 중심의 세계 미술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예술이란 오로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나올 수 없었던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술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예술이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왜 위대한 여성 아티스트는 없었는가?”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에 부제를 붙인다면 이런 이름이 적합하지 않을까.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16세기부터 현재까지 위대한 여성 예술가 57인의 삶을 조망한 책이다. 연대순으로 여성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관련 정보를 요약하여 서술했다. 이 책은 여성 화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사진작가, 조각가, 행위예술가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동시대 예술을 선도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술사는 남성 중심, 서구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아시아, 남미 출신의 여성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이런 구시대적 경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유럽과 영미 출신 여성 예술가와 비교하면 아시아, 남미 출신의 여성 예술가의 수는 적은 편이며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다. 또 아쉬운 점은 여성 건축가도 없다는 것이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50여 명이 넘은 여성 예술가를 하루 만에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 지식이 없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입문서이다. 독자들이 짧은 시간에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작품 분석은 과감히 생략했고, 여성 예술가들의 주요 업적과 대표작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중급 이상인 독자들은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예술가 몇 명이 빠진 듯한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여성 예술가가 이 책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무슨 기준으로 위대한 3을 제외한 채 57인의 여성 예술가를 소개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3은 너무나도 유명한 여성 예술가이기 때문이다(이번 주 안으로 이들이 누군지 설명하는 글을 공개하겠다) .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는 분명 좋은 책인데,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Trivia

 

 

* 책 뒤에 여성 중심의 세계사 연표용어 해설이 있다.

 

 

* <용어 해설> 170쪽에 입체파를 설명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문장은 이렇다.

 

 

조지 바로크와 파블로 피카소로부터 시작된

현실 표현에 대한 접근법 중 하나.

    

 

조지 바로크가 아니라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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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1 19:00   좋아요 0 | URL
여성이 그린 작품을 대놓고 무시하는 시절이 있었어요. ‘예술’로 취급 안 한 것이죠. ^^;;

페크pek0501 2020-02-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문서, 환영합니다.

cyrus 2020-03-01 19:00   좋아요 0 | URL
정말로 누구든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입니다. ^^

카스피 2020-02-12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는 안나오지만 저는 로댕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카미유 클로델 역시 안타까운 여성 예술가란 생각이 듭니다.카미유는 비롯 소아바미역시만 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유명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꽃피우려고 했지요.그런데 이때 로댕을 만나게 되과 그와 20살의 나이차임에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로댕은 그녀 덕에 예술적 영감을 받으면서 조각가로서 승승장구를 하게 되지만 까미유는 로댕의 연인이란 타이틀 덕분에 그녀의 작품은 실제 예술적 평가를 못 받았다고 하지요.

cyrus 2020-03-01 19:01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한 책에 카미유 클로델이 빠져 있습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을 맞추셨네요. ^^

Angela 2020-02-1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읽어봐야 겠어요~단숨에 읽는다니 더 좋아요 ㅎ

cyrus 2020-03-01 19:02   좋아요 0 | URL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다 읽고 나면 아쉬울 거예요.. ^^;;
 

 

 

 

* 2020년 2월 8일 세 번째 글쓰기 모임. 스몰토크에서 이 글을 쓰다

 

 

 

내 대학교 전공은 행정학이다. 대학교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에 타과 전공과목 수업을 들었다. 2학년 때 들은 과목은 서양미술사이고, 3학년 때 들은 과목은 현대미술론이다. 두 과목 모두 회화과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반드시 수강 신청을 해야 한다. ‘서양미술사1학년 학생들의 전공필수과목이며 현대미술론3학년 학생들의 전공필수과목이다. 나는 독학으로 미술사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회화과 수업을 듣는 것에 부담감은 느끼지 않았다. 수업에 충실히 참여하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과목의 담당 교수는 김○○ 교수님이다. 그분은 웃음이 많았다. 시원시원하게 웃는 교수님의 모습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기분을 좋게 했다. 만약 다시 대학교에 입학한다면 김 교수님의 미술사 수업을 다시 듣고 싶다. 8년 전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의 수업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서양미술사현대미술론수업 교재는 김 교수님이 직접 쓰고 편집한 것이다. 수업 도중에 교재에 나오지 않는 예술가들을 언급할 때가 있었다. 교수님은 구글의 검색 기능을 이용하면서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예술가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다.

 

셔먼은 현대미술을 이끄는 최고의 사진작가이다. 대부분 사람은 회화와 사진이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예술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회화와 사진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셔먼은 원래 회화과를 전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사는 사진과 퍼포먼스 미술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30여 년간 사진을 발표했다. 이 작가의 모델은 늘 작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을 옛 명화 속 모델이나 영화배우 또는 주부처럼 정교하게 분장하고 치장해 촬영, 배우 겸 연출자처럼 여성을 재현한 500여 점의 사진을 발표해왔다. 셔먼은 여성의 신체에 주목한 사진작가이다. 특히 여성의 정체성을 욕망과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와 고립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집중 조명해 왔다. 그녀는 사진 한 장으로 여성이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억압적인 상황들을 함축해서 보여주었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예경, 2003)

 

 

 

김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여성 예술가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그분의 수업을 들으니까 내가 미술사를 잘못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까지 알려진 미술사는 남성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두꺼운 검은 베개처럼 생긴 그 유명한 <서양미술사>라는 책에 단 한 명의 여성 예술가가 언급되지 않았다. 언급된 여성 예술가는 열 여섯 명에 불과했다. 나는 김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주의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 교수님은 내가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해준 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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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2-09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양 미술사>에는 16명의 여성 예술가가 나온다고 일주일 전 네이버 기사에 있었습니다. 물론 인류 예술사 비해 책에 절대 많은 여성 예술가 아닙니다. ^^

cyrus 2020-02-09 20: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맞는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

Angela 2020-02-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가지셨네요. 역사는 강자와 남성중심으로 쓰여졌으니까요.

cyrus 2020-02-11 07:3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과거 중에 제일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생 시절을 선택했을 거예요. 아, 물론 군에 입대하기 전의 대학교 1학년이 아니라 전역하고 나서 학교에 복학한 시기를 말합니다... ㅎㅎㅎㅎ

2020-02-25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1 19:03   좋아요 0 | URL
학생들에게 유익한 지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수업 자료를 열심히 준비하는 교수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분이라면 졸업하고 나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