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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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기, 쓰기, 고치기. 누구나 알고 있는 글쓰기의 세 단계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한 후에 쓸 수 있고, 여러 번 지웠다가 다시 쓸 수도 있다. 말을 할 때도 이 세 단계를 지켜야 한다. 생각하기, 말하기, 고치기. 이 말하기 단계에서 가장 쉬운 것이 말하기고, 가장 어려운 것이 고치기다.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말은 엎어진 물과 같다. 말 한번 잘못하면 끝이다. 잘못 나온 말은 수십 마디의 변명으로도 고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땐 정말 신중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도 잘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동진, 김영하, 김겨울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책 읽기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꽤 많은 청취자/시청자/독자들과 소통한다. 게다가 그들의 입심 또한 범상치 않아 재미있게, 유쾌하게 책을 소개한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는 똑똑한 사람도 무지에 근거한 발언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경솔한 발언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만,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무언가 생각나는 것을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흐르는 물이 어딘가에 막힌 것처럼 술술 나오지 못할 때가 많다. 생각나는 대로 더듬더듬 힘겹게 말하고 나면, 얼굴이 화근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발음도 좋지 않다.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내 발음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는데,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갑자기 흔들린다. 그야말로 ‘마음 지진’이다. 그럴 때 급히 대화를 매듭지어버린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려한 언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쓸데없이 긴장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대화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싶어서 작년부터 독서 모임에 나가게 됐다. 1년 동안 두 개의 독서 모임에 나가면서 확실히 알았다. 내가 너무 책에 파묻혀 살았구나. 이러니 말주변이 없었어.

 

말을 잘 하지 못하더라도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내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는 사람이 되는 것. 독서 모임에 나가기 전에 ‘경청하는 태도’를 잊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자가 최면을 걸듯이 여러 번 다짐을 했다. 마침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게 되었고, 경청의 세 단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었다. 듣기, 생각하기, 고치기.

 

 

 타인의 말은 나를 찌르고 흔든다. 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몸에 자리 잡고 나가지 않는 말들이 쌓이고 숙성되고 연결되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내가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도 이 모양인가 싶어 자주 부끄러웠다. 하지만 편견, 무지, 둔감함은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결핍보다 과잉이 늘 문제다. 타인의 말은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온전히 들리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7~8쪽)

 

 

말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생각이 많아진다.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고, 그것을 어떻게 능숙하게 표현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두뇌를 완전 가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두뇌를 너무 빨리 작동하면 정확하지 않은 지식의 파편, 또는 편견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 잡다한 생각으로 꽉 채운 말 한마디는 겉으론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힘은 부족하다. 오히려 ‘청자를 울리는’ 해로운 말이 될 수 있다. 나나 상대방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말 한마디를 꺼내려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낫다. 내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말 또한 나를 아프게 하는 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독소’ 같은 편견들을 제거해주는 따끔한 해독 주사가 되기도 한다. 해독 주사 같은 말이 내 두뇌를 찌르고 나면, 몇 번의 진통을 거치면서 생각한다. 그게 바로 은유 작가가 말한 ‘사고를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편견을 발견하게 되고, 성숙한 ‘나’로 단단히 준비할 수 있도록 편견에 저항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경청의 마지막 단계 ‘고치기’다.

 

제대로 경청하는 사람이 되려면 ‘확신에 찬 사람(19쪽)’이 되지 않아야 한다. 편견이 쌓이고 자기 확신 단계에 들면 오만이 생긴다. 오만은 ‘다가오는 말’을 원천 봉쇄하는 방어막이 되거나 때론 상대방을 제압하는 위력이 되기도 한다. ‘네가 생각한 건 틀렸어’ ‘어딜 감히 내 말에 태클을 걸어?’ 이런 식으로 강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모든 답이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은유 작가는 40대 후반이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할 나이라고 말하는데, ‘젊은 꼰대’가 늘어나는 요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집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고, SNS나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글쓰기의 세 단계를 이행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서 ‘생각하고, 쓰고, 고치는 일’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은유 작가의 글을 읽고 난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글쓴이가 자신의 글에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지 않은 채 글을 쓰고 고친다면, 과연 그 글이 제대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평소에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글 쓸 때도 남의 의견을 잘 듣는다. 이 사람은 무지와 편견으로 살아온 ‘나’를 재발견하고, 삶과 사회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상대방(독자)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글을 쓴다. 내 글을 읽게 될 독자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면서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일단 ‘다가오는 말’을 잘 듣고 마음으로 흡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한다. 그러면 ‘나를 위한 글쓰기’는 ‘남을 위한 글쓰기’로 승화한다.

 

혼자서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게 ‘다가오는 말들’이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글쓰기가 반복되는 일상은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가 될 수 없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만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말했다. 좋은 말이긴 하나, 책에 파묻혀 사면서 글쓰기에 몰두하는 외로운 일상도 좋다고 볼 수 없다. 낯선 존재와 마주하면서 낯선 말을 접해보지 않으면 머리에 가시가 돋는다. 그 가시는 내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을 위협하는 언어라는 무기가 되곤 한다. 머릿속에 가시가 생기지 않으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낯선 존재의 말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부딪칠 수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공간 안에서 ‘무지로 인한 긴장과 혼돈의 시간을 치르면서(278쪽)’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들어 혼자서 책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이 좋게 느껴진다. 모임 분위기가 즐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 삶, 성격, 정체성, 신념)(과, 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공부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이 좋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공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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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 좋은 공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함께 읽은 텍스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요. 편견 깨기... 확실히 독학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9-04-17 13:38   좋아요 0 | URL
내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없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글만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죠. 솔직히 말해서 요즘 들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들과 직접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게 느껴집니다.
 

 

 

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내 방도 예외가 아니다. 냄새를 없애려고 실내 방향제와 섬유 탈취제를 뿌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몸에 나는 체취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친구, 그것도 절친한 벗으로부터 ‘홀아비 냄새가 난다’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한동안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 피에르 라즐로 《냄새란 무엇인가?》 (민음인, 2006)

* [품절] 마르코 라울란트 《호르몬은 왜?》 (프로네시스, 2007)

 

 

 

남자한테서 풍기는 체취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땀이다. 특히 겨드랑이처럼 체모가 많은 부위에 ‘아포크린(apocrine)’이라는 땀샘이 있다. 아포크린에 나오는 땀이 ‘암내’의 원인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분해되면 특이한 향이 나는 안드로스테롤(androsterol)과 안드로스테논(androstenone)이라는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안드로스테롤은 남자의 모낭 끝부분, 그중에서도 겨드랑이와 음모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사향 냄새를 풍긴다. 안드로스테논은 남성 페로몬의 일종으로, 땀으로 체외에 배출된다. 피부에 사는 세균과 만나면 지린 오줌 냄새 비슷한 악취가 생긴다. 여성의 땀 속에도 안드로스테논이 들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약 30%에 이르는 성인은 안드로스테논이 유발한 냄새를 느끼지 못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바닐라 향기로 느끼기도 한다.

 

 

 

 

 

 

 

 

 

 

 

 

 

 

 

 

 

 

 

* 알랭 코르뱅 《악취와 향기》 (오롯, 2019)

* [품절] 마크 스미스 《감각의 역사》 (수북, 2010)

* [절판] 콘스탄스 클라센 외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 (현실문화, 2002)

 

 

 

악취와 향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후각은 고대로부터 노예 노동, 식민지, 인종과 계급 착취체제가 정착되는 시기까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타자’를 정하고, 그들을 특정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후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철저하게 나누는 근거가 됐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은 후각에 민감하다. 이 소설에서 그는 ‘변태’ 또는 ‘타락한 하층계급’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근대 유럽인들은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악취가 나고, 교양인들에게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향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악취와 향기》에 영감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악취와 향기》는 후각이 역사적이지만,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악취와 향기에 대한 학자와 대중의 반응은 특정한 사회 · 역사적 정황에 따라 달라졌다. 《악취와 향기》는 감각이 타자를 어떻게 규정짓는지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예전에도 《악취와 향기》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몇몇 책들이 나온 적이 있다. 《감각의 역사》후각을 포함한 ‘오감’이 권위와 서열의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주목한 책이다.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는 후각이 서구 문화와 비(非)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억압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냄새는 정치적인 것이고, 권력이다” 이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이다.

 

 

 

 

 

 

 

 

 

 

 

 

 

 

 

 

 

 

* 엘리즈 티에보 《이것은 나의 피》 (클, 2018)

*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 (동녘, 2015)

* 마사 C.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

 

 

 

 

 

 

 

 

 

 

 

 

 

 

 

 

 

 

* [품절] 메리 더글러스 《순수와 위험》 (현대미학사, 1997)

* 방원일 《메리 더글러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후각에 의존한 인간의 평가는 인종 및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젠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 남성의 정액은 남녀의 성적 욕망을 부추기고, 생명체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본질’로 인식 받았다. 정액은 비릿한 밤꽃 냄새가 난다. 18세기 학자들은 활동력이 왕성한 남자일수록 정액 특유의 ‘메슥거리는 냄새’가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고자한테는 정액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학자들은 남성의 정액이 품고 있는 ‘영기(靈氣)’를 강조했다.

 

남성 학자들은 여성의 월경혈을 몸에 빠져나오는 ‘나쁜 피’로 생각했고, 그것을 성스러운 것을 오염시키는 위험한 물질로 취급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가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체액은 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밖으로 배출되는 순간 불결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우리 몸이 냄새나고, 불결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몸의 불완전함’을 은폐하려면 ‘불결한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 즉 타자가 필요하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주장처럼 ‘불결한 타자’에 오랫동안 장애인, 성소수자,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월경과 월경혈은 금기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남성 할례의 피를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반면 월경혈은 끔찍한 것이라고 여겼다. 네팔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네팔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월경을 ‘차우파디(chhaupadi)라고 부른다. 월경 중인 여성은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없고, 우유와 유제품을 먹지 못한다. 종교와 관련된 건물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네팔 사람들은 ‘월경 금기’를 믿는다. 그들에게 월경은 음식을 부패하게 만드는 원인이고, 신을 모독하는 현상이다. 월경 중인 여성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 속에 혼자 산다. 그녀는 월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금 묻힌 빵으로 연명하면서 움막 안에 지내야 한다. 네팔 정부는 여성을 차별하는 악습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월경 금기를 믿는 네팔 사람들이 많다. 네팔의 젊은 남녀들로 구성된 ‘사마비카스 네팔(Samabikas Nepal)이라는 사회단체는 차우파디 전통을 폐지하는 일이 앞장서고 있으며 ‘차우파디 없는 지역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 음식 맛도 느낄 수 없고 다른 감각도 둔해져 삶이 울적해진다. 그렇지만 ‘냄새에 스며든 권력’은 누군가에게는 저주가 된다. ‘냄새에 스며든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보다 아래인 타자를 ‘불결한 냄새가 나는 존재’로 규정하여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타자에 대한 혐오와 수치심이 확산한다. 냄새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 몫이 아니다. 냄새가 조금 난다고 해서 스스로 ‘죄인’ 취급하지 말자. ‘죄인’이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종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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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10 18:44   좋아요 0 | URL
겨울에 샤워를 자주 안 합니다. 2주에 한 번씩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유독 홀아비 냄새가 자주 나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면 샤워를 자주 해야겠어요.. ^^;;

syo 2019-04-0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아비냄새가 난다˝는 말은, 방에서 난다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만났는데 들은 거라면 ‘솔로 생활 청산하고 애인 만들어라/결혼해라‘로 번역되는 대사 아닌가요..... 진짜 난다는 뜻이었단 말인가....

cyrus 2019-04-10 18:45   좋아요 0 | URL
syo님의 말씀처럼, 말 한 마디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천국의 발명 - 사후 세계, 영생, 유토피아에 대한 과학적 접근
마이클 셔머 지음, 김성훈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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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말 못 하는 친구이자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걸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말한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사별하면 가장 안타까운 이는 반려동물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가족들이다. 그들은 궁금해한다. 떠나간 우리 아이 영혼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무지개다리는 천국(하늘나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다. ‘무지개다리는 사랑하는 동물과의 이별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단어이다. 누가 그랬던가. 자기를 보살핀 가족이 죽은 뒤 천국에 도착하면, 앞서간 반려동물이 반갑게 맞아준다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 역시 죽은 후에도 그것으로 마지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되어 천국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며, 살아생전 함께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무지개다리와 천국을 상상하는 건 기분 좋아지는 일이다. 영원히 살고, 항상 기쁘기만 하고 즐거움만 가득한 곳. 말 그대로 꿈의 이상향이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것과 항상 기쁜 것이 당연한 세상에 살면 행복하다고 느낄까? 천국은 낙원의 동의어일까? 분명 천국은 좋은 곳이기는 하나 지루하고 단조로울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가면 신을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떠들어대면서 전도하는 신도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다. 전도사들의 논리대로 라면 나는 지옥행 열차표를 이미 예매한 사람이 된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돌연 신의 부름을 받아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면 지옥행 열차표를 취소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내세관도 믿지 않는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천국이자 지옥이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곧 천국일 수 있고, 지옥일 수 있다. 좋은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니 그것이 천국이요, 반대로 나쁜 일을 하면 불안하고 괴로우니 그것이 지옥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Sartre)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다. 인간들끼리 서로 자아가 부딪혀 지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정의가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주체가 지옥일 수 있다. 타인과 더불어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에게 타인은 천국이다. 신을 믿든 신을 믿지 않든 간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다양하다.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천국의 발명의 원제는 지상의 천국들(Heavens on Earth)이다. 번역본 제목을 지상의 천국들이라고 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사람은 천국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천국을 복수형으로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천국의 발명을 읽는다면 천국을 단수형으로 쓸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천국에 대한 믿음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천국의 발명은 이 다양한 믿음의 기원을 추적한 책이다. 회의주의자(Skeptics)인 저자는 천국이라는 심오한 주제에 끈질기게 질문을 던진다. 천국은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저자는 죽음 너머 세계가 어딘지 이해하기에 앞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감정을 분석한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죽음과 사후 세계를 상상한다. 사람들이 생명 연장의 꿈을 꾸거나 천국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죽음과 사후 세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떨쳐내기 위해 천국을 발명했다. 천국은 삶이 고달플수록 더욱더 생각나게 되는 달콤한 유토피아(utopia)가 됐다. 중세 가톨릭은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면죄부를 판매하여 신도들을 유혹했다. 유럽의 탐험가들은 지상 어딘가에 있을 천국, 즉 신대륙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섰다. 천국에 대한 인류의 강렬한 믿음은 자신들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하는 사이비종교와 유사 과학(대표적인 예로 임사 체험이 있다)을 만들어냈다.

 

죽지 않고 계속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죽음 너머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은 사후 세계에서도 생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천국을 발명하려는 인간의 심리는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역설이다. 역설이 주는 죽음의 의미,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교훈을 곱씹으면서 인류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데 힘쓴다. 죽기 전에 불후의 걸작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서 인류가 창작 활동에 매달린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 이게 바로 저자가 생각하는 지상의 천국들이다.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이 천국이다.

 

유사 종교가 주장하는 지옥행 열차표는 없다. 그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장 찢어버려야 한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지옥행 열차표를 손에 쥔 채 아등바등 살아가는 건 괴로운 일이다. 천국행 열차표도 없다. 천국행 열차표를 받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면서 신을 믿는 신앙생활은 종교에 귀의한 삶이라 할 수 없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면서 천국행 열차표를 사라고 재촉하는 유사 종교는 신을 모욕하는 사이비다. 신과 천국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나 회의주의자를 ()종교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신론자와 회의주의자는 종교에 적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신론자는 ()종교인이다. 회의주의자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나 대상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비 종교인 중에서도 천국이나 무지개다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타인이 생각하는 천국을 믿지 않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타인이 믿는 천국을 틀렸다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우리 중에 천국이 어떤 곳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천국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전제 없이 타인이 믿는 천국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천국은 아주 많다. 다만 우리는 그게 진짜로 있는지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천국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지옥이다.

 

셔머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mystery)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스터리를 즐기자라고 말한다. 천국은 미스터리한 세계이다. 내가 믿고 있는 천국도, 당신이 믿는 천국도. 열심히 그리고 즐기면서 살다가 때가 되면 편안하게 떠나자. 지구라는 천국에 소풍 와서 즐겁게 지내다가 돌아간다는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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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목요일인 11일에 낙태죄(형법 269)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2월부터 낙태죄 처벌 조항이 위헌인지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심리해왔다.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형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시민의 재생산권(reproduction rights), 즉 임신과 출산 전 영역을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재생산권이 그 당사자인 개인, 여성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재생산이란 임신, 출산, 양육 등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활동이다. 재생산권은 말 그대로 여성 자신이 재생산 여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성관계, 임신, 피임, 출산 그리고 임신 중절 등이 이 권리에 포함된다.

 

임신중절은 형법상으로 1953년부터 불법이다. 다만 1973년부터 모자보건법(母子保健法, 141)에 의해 임산부 또는 그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우생학적 ·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혹은 근친상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마지막으로 임산부 건강에 위험이 있을 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이유(원치 않는 임신,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 등)로 임신중절을 하려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임신중절은 법을 어기면서 행해진다. 무허가 임신중절 시술은 시술자 여성의 건강을 해치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다.

 

2010년에 임신중절 근절 운동을 주도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 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병원 3곳을 고발한 일이 있었다. 프로 라이프는 태아의 생명을 중시하여 낙태 범죄화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임신중절을 찬성하고 여성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입장은 프로 초이스(pro-choice)이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프로 라이프 대 프로 초이스논쟁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돼 왔다.

 

 

 

 

 

 

 

지난달 마지막 날인 일요일(331)에 대구에서 열린 페미니즘 이어 달리기 14탄의 강연 주제는 낙태죄 폐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날 강연자는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윤정원 님이다.

 

 

 

 

 

 

 

 

 

 

 

 

 

 

 

 

 

 

* ‘성과 재생산 포럼기획 배틀그라운드(후마니타스, 2018)

* 이은의, 윤정원, 은유, 박선민, 오수경 불편할 준비(시사인북, 2018)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낙태죄 폐지 운동은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적용 예외 규정을 사회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인공 임신중절로 개편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낙태죄 폐지 운동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자기 통제권이다. 장애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 여성 인권 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면서 비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과 재생산 포럼이다. ‘성과 재생산 포럼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과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여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연대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그러한 논의가 담긴 책이 바로 배틀그라운드. 이 책에 윤정원 님이 쓴 글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 중지가 실려 있다. ‘낙태죄 폐지 논란문제를 이해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재생산권의 의미이다. 불편할 준비에 실린 윤정원 님의 글 산부인과 사용 설명서 생리에서 낙태죄까지를 읽어 보면 재생산권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여성의 재생산권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다. 여성의 재생산권은 건강권과 직결되어 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인식의 틀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날 강연은 인공 임신중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낙태대신에 임신 중절이라는 단어를 주로 많이 쓴다. 낙태(落胎)배 속에 있는 아기를 떨어뜨리는 것(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절을 선택한 여성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인공 임신중절이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보장하지 못한다면, 여성의 건강권은 위협받는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음성적인 임신 중절 시술이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뿐만 아니라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로 인한 불의의 사고는 의료 사고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신 중절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언급한 수술 유산(surgical abortion)이다. 또 하나는 약물 유산(medical abortion)이다. 약물 유산은 약을 먹으면서 유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유산 유도약(언론에서는 먹는 낙태약이라고 쓰던데, 이 단어 역시 낙태처럼 임신 중절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상기한다)미페프리스톤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미프진은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억제하여 임신할 수 없게 한다. 미프진을 복용하면 생리통과 비슷한 복통이 일어나거나 하혈 증세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미프진 복용 후의 치사율은 극히 낮으며(미국에서 2000~2011년 동안 미프진을 처방받아 복용한 152만 명 중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는 단 8건에 불과했다[]), 이미 2005년에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약의 안전성은 입증되었다. 하지만 낙태를 범죄로 보는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은 국내에 반입할 수 없다. 2000년에 미프진 도입 논의가 잠시 있었지만, 보건복지위의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먹는 낙태약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청소년의 성생활 문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정식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은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하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 또는 임신 중절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문제다. 나는 프로 초이스를 지지한다. 이번 주 목요일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좋게 나오길 바란다. 그러나 임신 중절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든, 제한적으로 허용하든 그날의 결론은 길었던 논쟁의 끝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또 다른 논의의 시작이다.

    

 

 

 

 

 

 

 

 

 

 

 

 

 

  

* 장애여성공감 기획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봄, 2018)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그린비, 2013)

 

 

     

낙태에 반대하면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낙태가 가능하다고 보는 모자보건법은 장애인의 몸과 생명권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프로 초이스가 합법적 임신 중절을 강조하면서 장애인 낙태를 허용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두 가지 입장 모두 철저하게 우생학적으로 태아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 운동가와 장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낙태죄 폐지를 신중하게 접근한다(물론, 이들도 낙태죄 폐지를 찬성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인을 낙태시킬 수밖에 없는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근원인 사회적 차별을 도외시한 채, 임신 중절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외치는 ()장애 여성들의 피상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장애인은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있으며 이것 또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에 달린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를 폭로하는 것이며, 이는 낙태죄 폐지 운동에 장애 여성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원 출처: Ushma D Upadhyay et al.(2005), Incidence of Emergency Department Visits and Complications After Abortion, Obstetrics & Gynecology. 본 내용은 윤정원 님의 강연 글을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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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08 18:29   좋아요 1 | URL
임신과 피임은 남성, 여성 모두 선택할 수 있는 행위인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순간, 여성이 모두 짊어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는 미혼모 여성입니다. 피임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임신 문제를 온전히 여성에게 떠넘기는 남성들이 문제입니다. 이러니 혼자 남은 여성은 임신 중절을 선택하게 되고, 임신 중절을 선택한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 ‘아이를 돌보기를 포기하는 여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카스피 2019-04-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결혼전의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눌수는 있습니다.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남녀 모두 피임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론 여기에는 남성의 책임이 좀더 크지 않나 싶어요ㅡ.ㅡ

cyrus 2019-04-09 12:16   좋아요 0 | URL
남자가 실천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은 콘돔입니다. 그런데 콘돔 착용이 불편하다고 여기거나 착용하는 과정이 귀찮다는 이유로 콘돔 없이 섹스를 하려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피임을 하지 못하면 온전히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됩니다.

카스피 2019-04-15 15:57   좋아요 0 | URL
뭐 조만간 먹는 남성용 피임약이 나온다고 하니 그떄까지 남녀모두 자세하면 좋을듯 싶습니다^^

AgalmA 2019-04-14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스켑틱> vol 17 에서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 논점이 각각 틀린 게 있다고 말하죠. 태아의 의식이 발동하는 시점부터는 흐음...정말 낙태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고려되더군요. 왜 여자만 임신이 돼 가지고! 페미니즘 관련한 사항이기도 하니 cyrus님도 그 칼럼 꼭 읽어 보셔야 할 듯/

cyrus 2019-04-17 13:4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부터 태아의 의식이 발동하는 시점에 대한 논쟁이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스티븐 호킹 지음, 배지은 옮김 / 까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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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신(God)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유신론자들에게 우주는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세계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행성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지구에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기적을 일으킨 존재가 신이다. 그러나 확실성을 추구해온 과학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종교의 불확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신을 찾을 필요 없이 과학의 법칙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킹의 마지막 책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줄여서 ‘빅 퀘스천’)을 읽고 있자니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 떠오른다. 중세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은 논리적이지 않은 군더더기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쉽게 풀자면, 가장 단순한 설명일수록 진리에 더욱더 가깝고 아름답다는 원칙이다.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정(假定)은 최소한으로 해야 하며 쓸모없는 가정을 면도날로 잘라버리듯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킹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는 존재론적 검약의 원리인 ‘오컴의 면도날’에 따를 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호킹은 생전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우주의 법칙,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빅 퀘스천》은 그 고민과 관련된 거대한 질문(Big Questions) 10가지에 대한 최후의 대답이다. 이 책은 그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질문의 주제는 ‘지적 생명체 존재 여부’, ‘인공지능의 미래’ 그리고 ‘우주 식민지 건설 가능성’ 등이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인류가 향후 천 년 안에 핵전쟁이나 환경 재난이 일어나서 지구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거라고 경고한다. 사실 그의 경고는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생전에 언론과 인터뷰를 했을 때나 대중 강연을 했을 때 얘기했던 내용이다. 호킹은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우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인류를 위한 대안으로 ‘우주 식민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는 달이나 화성에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이라고 전망한다.

 

우주에 인류를 보내야 한다는 그의 야심 찬 생각에 동의하지만, ‘식민지’라는 표현을 왜 써야 했는지 궁금하다. 과연 우주 식민지는 지구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전쟁은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다. 미래의 인류는 우주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려고 할 것이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 유지되는 우주의 신세계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호킹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누구보다도 우려를 표시한 학자이다. 그는 ‘성능 좋은 AI 무기’가 등장하게 되면 군비 확장 경쟁이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지구를 넘어 우주로 뻗어가는 군비 확장 경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인공지능 연구는 우주 개발 사업과도 깊이 연계돼 있다. 우주 식민지 개발이 착수하면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대신 인공지능 기술에 의존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우주에서 군비 확장을 노리는 강대국들은 우주에서도 쏠 수 있는 미사일과 이에 대한 방어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트럼프 정부는 2020년까지 ‘우주군’을 창설하고 이와 관련해 향후 5년간 8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주]. 우주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경쟁이 심화한다면 냉전시대 우주 전쟁 시나리오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살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205쪽)

 

 

출처는 확실하지 않지만, 호킹은 “자신을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장애에 갇혀 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연구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은 그의 삶을 완성했다. 호킹은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었던 시대의 영웅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우주를 바라보자는 그의 당부가 장애인들에게 공감을 살지 미지수다. 호킹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사는 인류를 ‘우리’라는 대명사로 호명하면서 미래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는 분명히 장애인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와 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는 같지 않다. 호킹이 쓴 대명사 ‘우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미래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한다. 대부분 장애인은 이동권이 보장되어 마음 놓고 편하게 나들이할 수 세상을 원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꿈꾸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자 ‘미래’이다. 장애인들도 우주를 향해 눈길을 돌릴 수 있고, 우주에서의 생활이 가능한 미래에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한, 그들이 우주에 정착하고 적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고민도 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호킹의 글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나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은 장애인’, 즉 ‘비장애인’의 위치에 서서 쓴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호킹은 자기 생각을 ‘간결하게’ 쓰고 싶은 바람에 면도날을 너무 많이 휘두르고 말았다.

 

 

 

 

[주] <[달 착륙 50년 요동치는 우주패권] 美 우주군 선언 · 러는 우주방어 현대화…불붙는 ‘스타워즈’> (서울경제, 2019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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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3-29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을 사랑하는 직장동료가 이 책을 읽더니 제목만큼 간결하거나 쉽지 않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시무룩했는데ㅠㅠ cyrus 님 존경합니다@_@;;;;;;;

cyrus 2019-04-08 05:43   좋아요 0 | URL
정말 쉽게 쓴 책입니다. 작년에 나온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일부 내용과 비슷해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은 번역한 이종필 씨의 해설이 곁들어 있어서 호킹의 업적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로 좋습니다. ^^

페크pek0501 2019-03-30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비판 자세 좋습니다. 응원합니다.

cyrus 2019-04-08 05:46   좋아요 0 | URL
비판 없는 독서는 재미없어요. 가끔은 저자의 생각에 의문을 품고, 도발하는 일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책 읽을 맛이 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