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내 방도 예외가 아니다. 냄새를 없애려고 실내 방향제와 섬유 탈취제를 뿌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몸에 나는 체취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친구, 그것도 절친한 벗으로부터 ‘홀아비 냄새가 난다’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한동안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 피에르 라즐로 《냄새란 무엇인가?》 (민음인, 2006)
* [품절] 마르코 라울란트 《호르몬은 왜?》 (프로네시스, 2007)
남자한테서 풍기는 체취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땀이다. 특히 겨드랑이처럼 체모가 많은 부위에 ‘아포크린(apocrine)’이라는 땀샘이 있다. 아포크린에 나오는 땀이 ‘암내’의 원인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분해되면 특이한 향이 나는 안드로스테롤(androsterol)과 안드로스테논(androstenone)이라는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안드로스테롤은 남자의 모낭 끝부분, 그중에서도 겨드랑이와 음모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사향 냄새를 풍긴다. 안드로스테논은 남성 페로몬의 일종으로, 땀으로 체외에 배출된다. 피부에 사는 세균과 만나면 지린 오줌 냄새 비슷한 악취가 생긴다. 여성의 땀 속에도 안드로스테논이 들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약 30%에 이르는 성인은 안드로스테논이 유발한 냄새를 느끼지 못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바닐라 향기로 느끼기도 한다.
* 알랭 코르뱅 《악취와 향기》 (오롯, 2019)
* [품절] 마크 스미스 《감각의 역사》 (수북, 2010)
* [절판] 콘스탄스 클라센 외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 (현실문화, 2002)
악취와 향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후각은 고대로부터 노예 노동, 식민지, 인종과 계급 착취체제가 정착되는 시기까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타자’를 정하고, 그들을 특정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후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철저하게 나누는 근거가 됐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은 후각에 민감하다. 이 소설에서 그는 ‘변태’ 또는 ‘타락한 하층계급’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근대 유럽인들은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악취가 나고, 교양인들에게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향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의 《악취와 향기》에 영감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악취와 향기》는 후각이 역사적이지만,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악취와 향기에 대한 학자와 대중의 반응은 특정한 사회 · 역사적 정황에 따라 달라졌다. 《악취와 향기》는 감각이 타자를 어떻게 규정짓는지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예전에도 《악취와 향기》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몇몇 책들이 나온 적이 있다. 《감각의 역사》는 후각을 포함한 ‘오감’이 권위와 서열의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주목한 책이다.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는 후각이 서구 문화와 비(非)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억압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냄새는 정치적인 것이고, 권력이다” 이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이다.
* 엘리즈 티에보 《이것은 나의 피》 (클, 2018)
*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 (동녘, 2015)
* 마사 C.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
* [품절] 메리 더글러스 《순수와 위험》 (현대미학사, 1997)
* 방원일 《메리 더글러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후각에 의존한 인간의 평가는 인종 및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젠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 남성의 정액은 남녀의 성적 욕망을 부추기고, 생명체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본질’로 인식 받았다. 정액은 비릿한 밤꽃 냄새가 난다. 18세기 학자들은 활동력이 왕성한 남자일수록 정액 특유의 ‘메슥거리는 냄새’가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고자한테는 정액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학자들은 남성의 정액이 품고 있는 ‘영기(靈氣)’를 강조했다.
남성 학자들은 여성의 월경혈을 몸에 빠져나오는 ‘나쁜 피’로 생각했고, 그것을 성스러운 것을 오염시키는 위험한 물질로 취급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가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체액은 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밖으로 배출되는 순간 불결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우리 몸이 냄새나고, 불결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몸의 불완전함’을 은폐하려면 ‘불결한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 즉 타자가 필요하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주장처럼 ‘불결한 타자’에 오랫동안 장애인, 성소수자,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월경과 월경혈은 금기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남성 할례의 피를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반면 월경혈은 끔찍한 것이라고 여겼다. 네팔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네팔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월경을 ‘차우파디(chhaupadi)’라고 부른다. 월경 중인 여성은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없고, 우유와 유제품을 먹지 못한다. 종교와 관련된 건물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네팔 사람들은 ‘월경 금기’를 믿는다. 그들에게 월경은 음식을 부패하게 만드는 원인이고, 신을 모독하는 현상이다. 월경 중인 여성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 속에 혼자 산다. 그녀는 월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금 묻힌 빵으로 연명하면서 움막 안에 지내야 한다. 네팔 정부는 여성을 차별하는 악습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월경 금기를 믿는 네팔 사람들이 많다. 네팔의 젊은 남녀들로 구성된 ‘사마비카스 네팔(Samabikas Nepal)’이라는 사회단체는 차우파디 전통을 폐지하는 일이 앞장서고 있으며 ‘차우파디 없는 지역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 음식 맛도 느낄 수 없고 다른 감각도 둔해져 삶이 울적해진다. 그렇지만 ‘냄새에 스며든 권력’은 누군가에게는 저주가 된다. ‘냄새에 스며든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보다 아래인 타자를 ‘불결한 냄새가 나는 존재’로 규정하여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타자에 대한 혐오와 수치심이 확산한다. 냄새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 몫이 아니다. 냄새가 조금 난다고 해서 스스로 ‘죄인’ 취급하지 말자. ‘죄인’이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종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