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스티븐 호킹 지음, 배지은 옮김 / 까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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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신(God)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유신론자들에게 우주는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세계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행성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지구에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기적을 일으킨 존재가 신이다. 그러나 확실성을 추구해온 과학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종교의 불확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신을 찾을 필요 없이 과학의 법칙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킹의 마지막 책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줄여서 ‘빅 퀘스천’)을 읽고 있자니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 떠오른다. 중세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은 논리적이지 않은 군더더기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쉽게 풀자면, 가장 단순한 설명일수록 진리에 더욱더 가깝고 아름답다는 원칙이다.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정(假定)은 최소한으로 해야 하며 쓸모없는 가정을 면도날로 잘라버리듯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킹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는 존재론적 검약의 원리인 ‘오컴의 면도날’에 따를 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호킹은 생전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우주의 법칙,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빅 퀘스천》은 그 고민과 관련된 거대한 질문(Big Questions) 10가지에 대한 최후의 대답이다. 이 책은 그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질문의 주제는 ‘지적 생명체 존재 여부’, ‘인공지능의 미래’ 그리고 ‘우주 식민지 건설 가능성’ 등이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인류가 향후 천 년 안에 핵전쟁이나 환경 재난이 일어나서 지구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거라고 경고한다. 사실 그의 경고는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생전에 언론과 인터뷰를 했을 때나 대중 강연을 했을 때 얘기했던 내용이다. 호킹은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우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인류를 위한 대안으로 ‘우주 식민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는 달이나 화성에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이라고 전망한다.

 

우주에 인류를 보내야 한다는 그의 야심 찬 생각에 동의하지만, ‘식민지’라는 표현을 왜 써야 했는지 궁금하다. 과연 우주 식민지는 지구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전쟁은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다. 미래의 인류는 우주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려고 할 것이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 유지되는 우주의 신세계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호킹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누구보다도 우려를 표시한 학자이다. 그는 ‘성능 좋은 AI 무기’가 등장하게 되면 군비 확장 경쟁이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지구를 넘어 우주로 뻗어가는 군비 확장 경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인공지능 연구는 우주 개발 사업과도 깊이 연계돼 있다. 우주 식민지 개발이 착수하면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대신 인공지능 기술에 의존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우주에서 군비 확장을 노리는 강대국들은 우주에서도 쏠 수 있는 미사일과 이에 대한 방어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트럼프 정부는 2020년까지 ‘우주군’을 창설하고 이와 관련해 향후 5년간 8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주]. 우주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경쟁이 심화한다면 냉전시대 우주 전쟁 시나리오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살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205쪽)

 

 

출처는 확실하지 않지만, 호킹은 “자신을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장애에 갇혀 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연구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은 그의 삶을 완성했다. 호킹은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었던 시대의 영웅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우주를 바라보자는 그의 당부가 장애인들에게 공감을 살지 미지수다. 호킹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사는 인류를 ‘우리’라는 대명사로 호명하면서 미래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는 분명히 장애인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와 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는 같지 않다. 호킹이 쓴 대명사 ‘우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미래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한다. 대부분 장애인은 이동권이 보장되어 마음 놓고 편하게 나들이할 수 세상을 원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꿈꾸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자 ‘미래’이다. 장애인들도 우주를 향해 눈길을 돌릴 수 있고, 우주에서의 생활이 가능한 미래에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한, 그들이 우주에 정착하고 적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고민도 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호킹의 글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나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은 장애인’, 즉 ‘비장애인’의 위치에 서서 쓴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호킹은 자기 생각을 ‘간결하게’ 쓰고 싶은 바람에 면도날을 너무 많이 휘두르고 말았다.

 

 

 

 

[주] <[달 착륙 50년 요동치는 우주패권] 美 우주군 선언 · 러는 우주방어 현대화…불붙는 ‘스타워즈’> (서울경제, 2019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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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3-29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을 사랑하는 직장동료가 이 책을 읽더니 제목만큼 간결하거나 쉽지 않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시무룩했는데ㅠㅠ cyrus 님 존경합니다@_@;;;;;;;

cyrus 2019-04-08 05:43   좋아요 0 | URL
정말 쉽게 쓴 책입니다. 작년에 나온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일부 내용과 비슷해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은 번역한 이종필 씨의 해설이 곁들어 있어서 호킹의 업적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로 좋습니다. ^^

페크pek0501 2019-03-30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비판 자세 좋습니다. 응원합니다.

cyrus 2019-04-08 05:46   좋아요 0 | URL
비판 없는 독서는 재미없어요. 가끔은 저자의 생각에 의문을 품고, 도발하는 일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책 읽을 맛이 나죠. ^^